1156년은 서기 1156년에 해당하는 해로, 간지는 병자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 고려,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서 연호가 사용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1월 10일 고양원의 서거, 7월 28일 고시라카와 천황 세력의 승리로 끝난 보겐의 난, 오스트리아 공국의 성립 등이 있다. 또한, 1156년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태어나고 사망했다.
유리 돌고루키 키예프 대공이 키예프의 도시 모스크바를 건설하고 요새화하여 정착지 내에 목조 크렘린을 세웠다 (대략적인 연도).
1월 20일 – 전설에 따르면, 자유민 랄리가 핀란드 외일리외르비 호의 얼음판에서 영국 선교 주교 헨리를 도끼로 살해했다.
2월 – 베네치아 총독 도메니코 모로시니(모로시니 가문)가 8년의 통치 후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비탈레 2세 미켈이 베네치아의 통치자가 되었다.
5월 28일 – 시칠리아 왕 빌헬름 1세 ('''악당''')가 시칠리아 원정군과 함께 아풀리아에 상륙했다. 그는 브린디시에서 비잔티움 군대를 물리치고 바리를 탈환했다.
6월 9일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베아트리체 1세 (레지날드 3세의 딸)와 결혼했다. 이로써 부르고뉴 백국이 신성 로마 제국에 합쳐졌다.
6월 18일 – 교황 아드리아노 4세가 협상을 통해 베네벤토 조약에 서명했다. 그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의 통치자로서 빌헬름 1세의 종주권을 인정했다.[3]
9월 17일 – 프리드리히 1세가 오스트리아 변경백국을 공국으로 승격시키고 바벤베르크 왕조에 특권을 부여했다(''프리빌레기움 미누스'').
12월 25일 – 스웨덴 왕 스베르케르 1세 ('''장로''')가 교회로 가는 길에 살해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경쟁자였던 에리크 9세 ('''성인''')가 스웨덴의 통치자가 되었다.
봄 – 안티오크 공국의 공작 레날 드 샤티용은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통치자 토로스 2세와 동맹을 맺고 키프로스를 침략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섬을 광범위하게 약탈하였다.[1] 십자군과 아르메니아 군대는 섬을 돌아다니며 모든 건물, 교회, 수도원뿐만 아니라 상점과 민가까지 약탈하였고, 농작물은 불태웠으며 가축들과 모든 주민들을 해안으로 몰아갔다. 약 3주 동안 학살이 지속되었으며, 비잔티움 함대가 접근한다는 소문에 레이날드는 탑승 명령을 내렸다. 십자군 함선은 전리품으로 가득 찼고 모든 키프로스인들은 스스로를 위해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2]
독립 도시 국가인 스팍스는 노르만족의 지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알모하드 왕조 군대가 도시를 정복하고 기독교 시민들을 학살하였다.[4]
6월 20일(보겐 원년 6월 1일) 또는 그 다음날 - 토바 법황이 토바의 안락수원전에서 위독해졌다.
6월 22일(보겐 원년 6월 3일) - 스토쿠 상황이 토바 법황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고 같은 날 환궁했다.
7월 20일(보겐 원년 7월 2일) - 토바 법황이 서거하고, 같은 날 관을 덮고 매장했다. 스토쿠 상황은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토바의 다나카덴에 머물렀다.
7월 26일(보겐 원년 7월 8일) - 고마쓰덴 내리의 조정이 (종오위하) 미나모토 요시토모 등에게 동삼조원을 무력으로 점거하게 하여, 좌대신 후지와라 요리나가의 소유인 가보를 빼앗았다. 같은 장소에서 기도하던 평등원의 승려 쇼손이 조복의 혐의로 체포되고, 요리나가를 섬기는 타이라 타다마사와 (미나모토 요리노리)도 출두를 명령받지만, 두 사람은 거부했다.
7월 27일(보겐 원년 7월 9일) - 상황이 다나카덴을 나와 시라카와의 전제원 어소로 들어갔다.
7월 28일(보겐 원년 7월 10일) - 아버지 후지와라 타다자네의 우지 저택에 있던 요리나가에게 조정에서 사자가 와서 타이라 타다마사와 미나모토 요리노리의 출두를 요구했다. 상황은 전제원 어소 남쪽에 있는 시라카와 북전으로 옮겨 군사를 소집하고, 미나모토 타메요시와 그의 아들들이 왔다. 저녁, 요리나가가 우지에서 시라카와 북전에 도착했다. 밤, 고마쓰덴 내리에 미나모토 요시토모와 타이라 키요모리가 군사를 이끌고 집결하여, 고시라카와 천황의 측전에서 관백 후지와라 타다미치와 신사이와 작전회의를 했다.
7월 29일(보겐 원년 7월 11일) - 새벽, 상황이 있는 시라카와 북전에 조정 측이 야습을 가했다(=보겐의 난). 오후, 전투가 끝나자 "후지와라 타다미치를 후지와라 씨 장자로 임명한다"는 선지가 내려왔다.
8월 5일(보겐 원년 7월 18일) - "본래 몰수해야 할 후지와라 타다자네의 우지의 영지를 그의 아들 타다미치에게 맡긴다"는 윤지가 내려왔다.
8월 6일(보겐 원년 7월 19일) - 타다미치가 후지와라 씨 장자 임명의 선지를 수락했다.
8월 7일(보겐 원년 7월 20일) - 나라로 도망쳤던 타다자네가 자신의 영지와 고고양원 명의의 영지를 타다미치에게 양도했다.
안티오크 공국의 공작 레날 드 샤티용은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통치자 토로스 2세와 동맹을 맺고 키프로스를 침략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섬을 광범위하게 약탈하였다.[1] 십자군과 아르메니아 군대는 섬을 돌아다니며 모든 건물, 교회, 수도원뿐만 아니라 상점과 민가까지 약탈하였고, 농작물은 불태웠으며 가축들과 모든 주민들을 해안으로 몰아갔다. 약 3주 동안 학살이 지속되었으며, 비잔티움 함대가 접근한다는 소문에 레이날드는 탑승 명령을 내렸다. 십자군 함선은 전리품으로 가득 찼고 모든 키프로스인들은 스스로를 위해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2]
독립 도시 국가인 스팍스는 노르만족의 지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알모하드 왕조 군대가 도시를 정복하고 기독교 시민들을 학살하였다.[4]
[1]
서적
The Armenian Kingdom of Cilicia during the Crusades: The Integration of Cilician Armenians with the Latins (1080–1393
Routledge Curzon (Taylor & Francis Group)
[2]
서적
A History of The Crusades. Vol II: The Kingdom of Jerusalem
[3]
서적
Medieval Italy: an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Routledge
[4]
논문
La Sicile et l'espace libyen au Moyen Age
http://www.storiamed[...]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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