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FIFA 월드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개최된 FIFA 월드컵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렸다.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모로코, 이집트 등을 제치고 개최권을 획득했으며, 2015년에는 유치 과정에서 뇌물 수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32개국이 참가하여 조별 리그와 결선 토너먼트를 거쳐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마스코트는 자쿠미, 공식 주제가는 샤키라의 "와카 와카"였으며, 공인구는 '자블라니'였다. 부부젤라 소음, 티켓 문제, 오심 논란 등 다양한 논란이 있었으며, 사회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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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관한 - 테디 셰링엄 테디 셰링엄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프리미어리그 원년 득점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트레블 달성,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극적인 동점골, PFA와 FWA 올해의 선수상 동시 수상, 2002 FIFA 월드컵 참가, 프리미어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 등 1983년부터 2008년까지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2010년 FIFA 월드컵 - [국제 축구 대회 정보]에 관한 문서
대회 정보
대회 이름
2010년 FIFA 월드컵
다른 이름
2010 FIFA World Cup FIFA Sokker-Wêreldbekertoernooi in 2010 iNdebe Yomhlaba Ye-FIFA ka-2010 (줄루어) FIFA Sokker-Wêreldbekertoernooi in 2010 (아프리칸스어) 2010 FIFuRoni da Futboll (코사어) Mogopo wa Lefase wa FIFA wa 2010 (북소토어) Mohope wa Lefatshe wa FIFA wa 2010 (남소토어)
2010 FIFA 월드컵 로고
슬로건
"Ke nako" (츠와나어, 소토어) "It's time. Celebrate Africa's Humanity" (영어) "Dis tyd. Vier Afrika se mensdom" (아프리칸스어) "Isikhathi. Gubha Ubuntu Base-Afrika" (줄루어) "Lixesha. Ukubhiyozela Ubuntu baseAfrika" (코사어) "Inguva. Kupemberera hupenyu hweAfrica" (쇼나어) "Ke nako. Keteka Botho ba Afrika" (남소토어)
2010년 FIFA 월드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월드컵이었다. FIFA은 2007년에 폐지된 대륙 순환 개최 정책[259]에 따라 아프리카를 개최 대륙으로 선정했다.
제프 블라터 당시 FIFA 회장은 1998년 FIFA 회장 선거에서 레나토 요한손 UEFA 회장을 꺾고 당선되었는데, 이때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블라터 회장은 2006년 월드컵이 유럽에서 개최된 후, 아프리카 개최를 위한 "월드컵 순회 시스템"을 제안하여 FIFA의 공식 방침으로 채택했다.[192] 이에 따라 2010년 대회는 아프리카, 2014년 대회는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이후 개최되지 않은 남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아프리카는 2007년에 폐지된 대륙 순환 개최 제도[259]에 따라 2010년 FIFA 월드컵 개최 대륙으로 선정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로코,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5개국이 유치 경쟁에 참여했다.
FIFA 상임위원회가 공동 개최를 불허함에 따라 튀니지는 유치전에서 철회하였다. 위원회는 리비아의 단독 개최가 공식 조건 목록에 미달한다고 판단하여 유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개최국 최종 선정은 2004년 5월 14일, 취리히에서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기자 회견에서 발표되었다. 1차 투표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14표, 모로코가 10표, 이집트가 0표를 얻었다. 2006년 대회 유치에 실패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개최권을 획득하였다.[260]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치 성공을 이끈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FIFA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261]
2006년과 2007년, 여러 언론 매체에서 2010년 FIFA 월드컵 개최권이 다른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262][263]프란츠 베켄바워, 호어스트 R. 슈미트 등 FIFA 상임위원회 일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준비 속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262][264] 그러나 FIFA 공식 관계자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훌륭한 개최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265]
2. 2. 매수 및 부패 혐의
2015년 5월 28일, 2015년 국제 축구 연맹 부패 사건 관련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고위 관계자들이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해 잭 워너 전 FIFA 부회장 등 FIFA 상임위원들에게 1000만달러을 건넸다고 한다.[266]
2015년 6월 4일, 척 블레이저 FIFA 상임위원은 FBI 및 스위스 당국과 협력하여, 자신과 다른 FIFA 상임위원들이 1998년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밀어주기 위해 매수되었다고 확인했다. 블레이저는 "나와 다른 FIFA 상임위원들이 2010년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선정하기 위해 뇌물을 받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267][268]
2015년 6월 6일,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모로코가 유치전에서 실제로 이겼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대신 유치권을 가져갔다고 보도했다.[269]
3. 지역 예선
2010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추첨식은 2007년 11월 25일 더반에서 열렸다. 개최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하였다. 전 대회 우승국 자동 진출권 제도가 폐지되었기에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도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했다. 총 204개국이 참가하여 2010년 FIFA 월드컵은 2008년 하계 올림픽과 함께 최다 국가가 참가한 스포츠 대회로 기록되었다.
예선 과정에서는 몇 가지 논란이 있었다. 아일랜드와 프랑스 간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티에리 앙리가 주심 몰래 손으로 공을 쳐서 득점했고, 이는 프랑스가 아일랜드를 제치고 본선에 진출하는 결정적인 골이 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FIFA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의 재경기 요청을 거부했고,[270] 아일랜드는 이후 33번째 FIFA 월드컵 참가국 제안을 취소했다.[271][272] FIFA는 기술 도입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으나, 골라인 쪽 부심의 빠른 판단을 따르기로 결정했다.[273]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는 총 32개국이 진출했다. 2007년 11월 25일 더반에서 열린 예선 조 추첨을 통해 대륙별로 본선 진출국이 결정되었다. 개최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했고,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도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국 (파란색), 탈락국 (노란색), 불참국 (검은색), FIFA 비회원국 (회색)
2010년 FIFA 월드컵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9개 도시, 10개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경기장 건설 비용은 84억 남아프리카 랜드 (미화 약 10억달러 또는 9.5억유로)로 예상되었다.[30] 새로운 경기장 5곳이 건설되었고, 기존 경기장 5곳은 개보수되었다.[30] FNB 스타디움, 케이프타운 스타디움,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은 각각 8경기를 개최하여 가장 많은 경기를 유치했다.
몇몇 경기장의 고도는 공의 움직임[46]과 선수들의 경기력[47][48]에 영향을 미쳤다. 10개 경기장 중 6개는 해발 1200m 이상이었으며, 요하네스버그의 두 경기장—FNB 스타디움과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은 약 1750m로 가장 높았다.[50][51]
2009년 3월, 2010년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 대니 조르단은 모든 경기장이 6개월 이내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32] 남아프리카공화국은 FIFA 표준 요건에 따라 관중의 안전과 보안을 확보하기 위한 특별 조치를 시행했으며,[33] 여기에는 경기장 주변 상공의 비행 운항 제한도 포함되었다.[34] 대회 100일 전 기념식에서 FIFA 회장 제프 블래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회 준비 상황을 칭찬했다.[35]
5. 본선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은 조별 리그와 결선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32개국이 참가한 조별 리그는 4개 팀씩 8개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각 조 1, 2위 팀이 16강에 진출했다. 아프리카 팀들은 대체로 부진했으나,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함께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하여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반면 남아메리카 팀들은 강세를 보였다.
결선 토너먼트는 16강전, 8강전, 준결승전, 3·4위전, 결승전 순서로 진행되었다. 각 경기는 90분 동안 진행되었으며, 동점일 경우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이어졌다.[323] 16강전에서는 독일이 잉글랜드를 4-1로 대파하는 등 이변이 속출했고, 가나와 파라과이는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독일과 잉글랜드 경기,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경기에서는 오심 논란이 발생하여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사과하고 득점 판독 기술 도입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326]
준결승전에서는 네덜란드가 우루과이를, 스페인이 독일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3·4위전에서는 독일이 우루과이를 3-2로 이기고 3위를 차지했다. 결승전에서는 스페인이 연장전 끝에 네덜란드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FIFA 조직위원회는 2009년 12월 2일에 본선 조 추첨 방식을 결정하였다.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2009년 10월 FIFA 랭킹 상위 7개국이 시드 배정을 받았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대륙은 같은 조에 2개국 이상 편성될 수 없었고, 유럽 국가는 한 조에 최대 2개국까지 허용되었다.[307]
조 추첨식은 2009년 12월 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케이프타운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308] 이 행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였다.[309] 추첨에는 데이비드 베컴,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존 스미트, 마카야 은티니, 매슈 부스, 심피웨 들루들루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였다.[310]
5. 2. 조별 리그
2010년 FIFA 월드컵은 32개국이 참가하여 4개 팀씩 8개 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를 진행했다. 각 조는 리그전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 같은 조의 모든 팀이 서로 한 번씩 맞붙었다. 승리하면 승점 3점, 무승부는 1점, 패배는 0점이 주어졌다. 각 조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팀은 16강에 진출했다.[322]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열린 월드컵이었지만, 아프리카 팀들은 대체로 부진했다. 카메룬의 로제 밀라 등은 이러한 결과에 실망감을 표했다.[320] 6개의 아프리카 참가국 중 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코트디부아르만이 1승 이상을 거두었고, 가나만이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프랑스를 이겼지만, 우루과이와 멕시코에 밀려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며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개최국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13개 팀 중 6개 팀만이 16강에 진출했는데, 이는 1986년 16강 토너먼트 도입 이후 최저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은 두 유럽 국가 간의 대결이었다.[315] 지난 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는데, 이는 월드컵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탈리아는 1950년, 1966년 브라질, 2002년 프랑스에 이어 1라운드에서 탈락한 네 번째 전 대회 우승국이 되었다.[321] 뉴질랜드는 3경기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파라과이와 슬로바키아에 밀려 탈락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그리스를 2-0으로 이기고, 아르헨티나에 1-4로 패했지만,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브라질에 1-2로 선전했지만, 포르투갈에 0-7, 코트디부아르에 0-3으로 패하며 3전 전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남아메리카 팀들은 강세를 보였다. 5개 팀 모두 16강에 진출했고, 그 중 4개 팀은 조 1위를 차지했다. 4개 팀이 8강에 진출했지만, 우루과이만이 준결승에 진출했다.
2승을 거둔 칠레와 1승 1무를 기록한 슬로베니아는 최종전 결과에 따라 탈락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칠레는 스페인에 패했지만, 스위스가 온두라스와 비기면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슬로베니아는 잉글랜드에 패했지만, 미국이 알제리를 꺾으면서 조 3위로 탈락했다.
조별 리그 순위는 다음 규정에 따라 결정되었다.[322]
순위 결정 기준
조별 리그 범례
style="background:#BBF3BB; width:20px;"|
조 1위와 2위가 16강전에 진출한다.
조별 리그 탈락.
5. 3. 결선 토너먼트
결선 토너먼트에는 조별 리그를 통과한 16개국이 참가했다. 16강전, 8강전, 준결승전, 결승전까지 총 4단계로 진행되었으며, 각 단계마다 절반의 팀이 탈락했다. 준결승전에서 패배한 두 팀은 3위 결정전을 치렀다. 각 경기는 90분 동안 진행되며, 동점일 경우 30분간의 연장전이 이어졌다.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승부차기를 통해 다음 라운드 진출국을 결정했다.[323]
16강전에서는 각 조 1위 팀이 다른 조 2위 팀과 맞붙었다. 남아메리카 팀들이 강세를 보였고, 브라질은 칠레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독일은 잉글랜드를 4-1로 대파하며 잉글랜드에 FIFA 월드컵 본선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를 안겼다.[324][325]가나는 미국을 꺾고 8강에 진출하여 1990년 카메룬, 2002년 세네갈에 이어 8강에 오른 세 번째 아프리카 국가가 되었다. 파라과이와 가나는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는 논란이 될 만한 심판 판정도 있었다. 독일과 잉글랜드 경기에서 프랭크 램퍼드의 슛이 골라인을 넘었음에도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경기에서는 카를로스 테베스가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득점한 것으로 보였으나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잉글랜드와 멕시코에 사과하고, 득점 판독 기술 도입에 대한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326]
8강전에서는 유럽 팀들이 강세를 보였다.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0으로 꺾었고, 네덜란드는 브라질에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스페인은 파라과이를 1-0으로 꺾고 1950년 이후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우루과이는 가나와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여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에서 네덜란드는 우루과이를 3-2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스페인은 독일을 1-0으로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은 2010년 7월 11일 요하네스버그의 소커 시티에서 열렸다.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연장전 골로 1-0으로 꺾고 첫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83] 이니에스타의 골은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가장 늦게 터진 결승골(116분)이었다.[83] 스페인은 조별 예선 첫 경기를 패한 후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67]
결승전에서는 많은 파울이 나왔다. 주심 하워드 웹은 14장의 경고를 줬는데, 이는 1986년 결승전의 6장을 두 배 이상 넘어선 기록이었다.[67] 네덜란드의 존 하이팅아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네덜란드는 아르연 로번이 이케르 카시야스와 일대일 기회를 맞았지만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혔고, 스페인은 세르히오 라모스의 헤딩슛이 무산되었다.[85] 결국 이니에스타가 연장전에서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넣었다.[86]
이 결과로 스페인은 1974년 서독 이후 유럽 챔피언으로 월드컵을 우승한 최초의 팀이 되었고, 유럽은 남아메리카(9회)를 제치고 10번째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유럽 국가가 유럽 대륙 이외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승한 최초의 사례였다.
결승전 전에는 가수 샤키라의 공연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등장 등 폐막식이 열렸다.[71][87]
FIFA는 우승 상금을 3000만 달러(2640억원)로 책정했다. 이는 2006년 독일 대회보다 증액된 금액이다. 준우승팀은 2400만 달러(2112억원), 3, 4위 팀과 조별리그 탈락 국가도 상금을 받았다. 모든 출전팀에는 경비 100만 달러(88370000KRW)가 지급되었다. 상금 총액은 4억 2000만 달러(3.696조원)였다.[219]
FIFA는 G-14와의 합의에 따라 선수 소속 클럽에 총액 약 4000만 달러(35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각 클럽에는 선수 1인당 하루 1600달러(140000KRW)가 지급되었다.[221]
7. 대회 상징
2010년 FIFA 월드컵의 대회 상징은 다음과 같다.
'''마스코트''': 자쿠미는 의인화된 아프리카 표범으로, 2008년 9월 22일에 공개되었다. 이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제 기호 "ZA"와 여러 아프리카 언어에서 "10"을 뜻하는 "쿠미"를 합쳐 만들었다. 마스코트의 색상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대표팀 유니폼 색상인 황색과 녹색을 사용했다.
'''공식 주제가''': 콜롬비아 출신 가수 샤키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레실리그라운드 그룹이 함께 부른 "와카 와카"이다. 이 곡은 영어와 스페인어 버전으로 녹음되었으며, 아프리카 군가인 "잔갈레와"에서 영감을 받았다.[345][346] R. 켈리의 "승리의 표식"도 공식 주제가 중 하나였다.
'''공인구''': 아디다스가 제작한 자블라니는 줄루어로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다"라는 뜻이다. 11개의 색상은 경기장 안의 팀원 수와 11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식 언어를 의미한다.[347][348]요하네스버그 결승전 전용 공인구는 금색 패널로 제작되었으며, '조'블라니' (Jo'bulani) 라는 명칭이 붙었다.
'''부부젤라''': 경기 내내 팬들이 불었던 긴 나팔인 부부젤라는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358][359][360][361]
부부젤라를 부는 사람
7. 1. 마스코트
2010년 FIFA 월드컵의 공식 마스코트는 ''자쿠미''였다. 의인화한 아프리카 표범으로 2008년 9월 22일에 첫선을 보였다. 자쿠미의 이름은 국제 기호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뜻하는 "ZA"와 다수의 아프리카의 언어에서 "10"을 뜻하는 "쿠미"를 합성한 것이다.[344] 마스코트의 색상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대표팀 홈 유니폼의 색상인 황색과 녹색을 따왔다.
7. 2. 공식 주제가
2010년 FIFA 월드컵의 공식 주제가는 콜롬비아 출신 가수 샤키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레실리그라운드 그룹이 함께 부른 "와카 와카"이다. 이 곡은 영어와 스페인어 버전으로 녹음되었으며,[345] 아프리카 군가인 "잔갈레와"에서 영감을 받았다.[346]
샤키라와 프레실리그라운드는 2010년 6월 10일 소웨토에서 열린 FIFA 개막 기념 콘서트에서 이 곡을 공연했다.[317] 또한 6월 11일 개막식과[318] 7월 11일 폐막식에서도 공연을 펼쳤다.[319]
R. 켈리의 "승리의 표식"도 2010년 FIFA 월드컵의 공식 주제가 중 하나로, 소웨토 영가단과 함께 개막식에서 공연되었다.
7. 3. 공인구
아디다스가 제조한 자블라니는 줄루어로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다"라는 뜻이다. 자블라니는 독일 스포츠 용품 업체가 제작한 FIFA 월드컵의 11번째 공인구이다. 11개의 색상으로 되어 있으며, 경기장 안의 팀원 수와 11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식 언어를 의미한다.[347][348]요하네스버그의 결승전 전용으로 쓰일 공인구는 금색 패널로 따로 제작되었으며, '조'블라니' (Jo'bulani) 라는 명칭이 붙었다.
공인구는 최신 설계를 적용하여 제작되었는데, 8개의 입체 패널이 열 접착으로 연결되었다. 이 패널은 에틸렌-비닐 아세테이트 (EVA) 와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TPU) 로 구체 형태로 제작되었다. 공의 표면은 홈이 파여 울퉁불퉁한데, 아디다스가 새로 도입한 그립앤그루브 (GripnGroove)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349] 공의 공기역학적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적용되었다. 이 공인구를 설계하기 위해 아디다스는 영국 러프버러 대학교의 연구원들과 협력하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350] 공인구는 인도에서 제작된 고무 주머니, 대만에서 제작한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제조한 에틸렌-비닐 아세테이트, 등방성 폴리에스테르 / 면섬유, 접착제와 잉크를 사용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조립되었다.[351]
몇몇 정상급 선수들은 공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새 공인구에 불만을 제기하였다.[352]줄리우 세자르 브라질 골키퍼는 골키퍼를 상대로 공격수들에게 유리한 "슈퍼마켓"에서나 팔 법한 공이라고 불평하였다.[353]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감독은: "공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으니까 이번 FIFA 월드컵에서 긴 패스 따위는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354] 그러나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몇몇 선수들은 공인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355][356][357]
7. 4. 부부젤라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는 경기 내내 팬들이 불었던 긴 나팔인 부부젤라가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358][359][360][361] FIFA 월드컵 참가자 다수는 부부젤라 나팔이 일으키는 소음에 불만을 제기하였다. 프랑스의 파트리스 에브라는 자국이 형편없는 성적을 거둔 것을 부부젤라 탓으로 돌렸고,[362]리오넬 메시는 부부젤라 소음이 경기장 내 선수들 간의 소통을 방해한다고 불만을 표출했으며,[363] 방송사들은 소음에 해설가 목소리가 묻힌다고 불평하였다.[364]
텔레비전 시청자들 또한 경기장 구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부부젤라뿐이며, 관중석 사람들의 자연적인 소리가 묻힌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다.[365][366]ESPN을 비롯한 여러 방송망 대표자들은 방송을 통해 전체적인 소리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며,[367] BBC도 부부젤라 소음 없는 방송을 제공할 방법을 찾았다.[368]
8. 대회 효과
2010년 FIFA 월드컵은 사회, 경제, 평가, 중계, 게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코카콜라가 후원한 FIFA 월드컵 트로피 투어 비행기 (2010)
사회: 대니 조던 대회 조직 위원회장은 앙골라에서 발생한 토고 국가대표팀 공격 사건이 월드컵 안전과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369] 하지만, 월드컵 기간 동안 방문객 대상 도난 사건이 보고되었고,[370]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FIFA에 보안 문제를 항의하기도 했다.[371] 또한, 월드컵을 위한 도시 미화 과정에서 빈민가 강제 퇴거 문제가 발생하여 논란이 되었다.[373][374][375][376][377]
경제: FIFA는 중계권 관련 권한을 강화하려 했고, 이로 인해 여러 단체들과 법정 논쟁을 벌였다.[385][386][387] 대회 초반에는 빈 좌석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388]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경기장 건설 및 기반 시설 확충에 30억파운드를 투자했지만, 실제 관광객 수와 수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389] 지역 상인들은 FIFA의 규제로 인해 경기장 주변에서 판매 활동을 하지 못해 불만을 표출했다.[390]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대회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했다.[391] 총 상금 규모는 4.2억달러였으며, 이는 2006년 대회보다 60% 증가한 금액이다.[41] 또한, FIFA는 사상 처음으로 선수들의 소속 국내 클럽에 상금을 지급했다.[42][43][44]
평가:제프 블라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회 조직 성과를 10점 만점에 9점으로 평가했다.[392] 하지만, 대중교통 부족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392] 경기에서는 핸들링 반칙과 고의적인 플레이로 인한 파울과 퇴장이 많았으며, 루이스 수아레스의 핸들링 사건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남미 팀들은 강세를 보인 반면, 아프리카 팀들은 부진했다.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유럽 팀들의 16강 진출은 1986년 이후 최저 기록이었다. 대회 MVP는 디에고 포를란이 수상했고, 득점왕은 토마스 뮐러가 차지했다. 최우수 골키퍼는 이케르 카시야스, 최우수 유소년 선수상은 토마스 뮐러가 받았다. FIFA 페어플레이상은 스페인에게 돌아갔다.
중계: 2010년 FIFA 월드컵은 텔레비전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393] FIFA는 7억 명이 결승전을 시청할 것으로 예상했다.[394]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온라인 시청자 수도 증가했다.[395] 미국의 경우, ESPN과 ABC의 시청률이 2006년 대회보다 크게 증가했다.[396]유니비전의 시청률도 증가했다.[396]닐슨은 미국-가나 경기의 시청률을 "경이롭다"고 평가했다.[397] ESPN3의 생중계는 역사상 최다 시청자를 기록했다.[398]
촬영:소니의 기술이 대회 촬영에 활용되었으며, 25경기가 입체 카메라로 중계되었다.[399]
게임: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홈은 2010년 FIFA 월드컵을 배경으로 하는 가상 현실 게임을 발매했다.[403]EA 스포츠는 공식 2010년 FIFA 월드컵 게임을 발매했다.[404]
대니 조던 대회 조직 위원회장은 2010년 1월 앙골라에서 일어난 토고 국가대표팀 공격 사건이 FIFA 월드컵 안전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369]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 도난 사건이 보고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포르투갈, 스페인, 대한민국, 일본, 그리고 콜롬비아의 여행객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370] 6월 19일, 잉글랜드와 알제리 간의 경기 후, 한 팬이 그린 포인트 스타디움의 FIFA가 채용한 안전 경비원을 따돌리고 잉글랜드 대표팀의 탈의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사건은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가 탈의실을 떠난 직후 발생하였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FIFA에 정식 항의서를 제출하여, 보안에 신경 쓸 것을 요구하였다.[371]
블리키스도프 퇴거민촌 순찰대
전 세계적으로 '전형적인 행사'가 그렇듯이,[372] 2010년 FIFA 월드컵도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도시를 미화한다'는 것과 오두막 거주자들을 숨기는 퇴거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373][374][375][376][377] 2009년 5월 14일, 더반을 기반으로 둔 오두막 거주자들의 아바랄리 베이스미온돌로 운동이 콰줄루-나탈 정부가 2010년 FIFA 월드컵 시작 시점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빈민가를 없애고 집 없는 오두막 거주자들을 이동 거주촌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시행하는 논란의 빈민가 활동 억제 및 예방 조항을 법정에 서게 했다.[378][379]
FIFA 월드컵의 준비 과정에서 낳은 또 다른 논란은 케이프타운의 N2 게이트웨이 시가지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붐비는 N2 고속도로 인근의 조 슬로보 임시 거주지에 상주하는 20,000명의 거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임대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을 2010년 FIFA 월드컵 개최 시기에 세우는 것이었다.[380] 비정부단체, 국제 인권 위원회, 그리고 반퇴거 운동은 블리키스도프의 상황에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거주촌이 2010년 FIFA 월드컵의 준비 과정에서 빈민가들이 눌러앉게 되었다고 덧붙였다.[377][381][382][383]
하지만 일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퇴거 현상은 흔히 발생하며, 대회 이전에 발생한 집단 퇴거의 경우에는 FIFA 월드컵에 그저 좀 지나치게 할당됐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었다.[384]
8. 2. 경제
몇몇 단체들은 FIFA가 대회 중계권에 관한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계획된 스포츠 행사, 광고, 그리고 중계권에 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단체로는 국제 럭비 유니언 테스트 경기,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항, 그리고 몇몇 TV 통신망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FIFA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법정 논쟁에 휘말렸다.[385][386][387]
대회 초반에는 단체 표 구매자들 중 일부가 배정된 표를 가지지 못해 무려 11,000석의 빈 좌석이 나오기도 했다.[388]
이번 대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켰지만, 재정적으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389] 경기장 건설과 기반 시설 확충에 30억파운드 (€3.6B)가 소요되었고, 정부는 관광객 증가로 5.7억파운드 (€680M)의 수익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309,000명의 외국인 관광객만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여 기대치였던 450,000명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수익은 3.23억파운드 (€385M)에 그쳤다.[389]
지역 상인들은 FIFA 월드컵 경기장 반경 1.5km 내에서 식품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반경 내에서 판매하려면 FIFA에 60000ZAR (€6,200 혹은 $7,888)의 등록비를 지불해야 했다. 이 비용은 대부분 개인으로 활동하는 지역 상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이로 인해 국제 방문객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지역 음식을 경험하기 어려웠다. 일부 지역 상인들은 상업적 이득을 얻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문화를 홍보할 기회를 다국적 기업 편에 선 FIFA에 의해 박탈당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390]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대회를 통해 22.400000000000002억파운드 (€2B)의 이득을 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 모두, 그리고 FIFA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이라고 주장했다.[391]
총 상금 규모는 FIFA가 4.2억달러(국내 클럽에 대한 4000만달러 지급 포함)라고 발표했으며, 이는 2006년 대회보다 60% 증가한 금액이다.[41] 대회 전, 32개 참가국은 각각 100만달러의 준비 비용을 받았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FIFA는 대회에 참가한 국가 대표팀 선수들의 소속 국내 클럽에 상금을 지급했다. 총 4000만달러가 국내 클럽에 지급되었다. 이는 2008년 FIFA와 유럽 클럽 간에 체결된 합의의 결과로, G-14 그룹을 해산하고 2005년 이후로 제기된 국제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부상에 대한 보상 청구를 철회하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2004년 친선 경기에서 모로코의 압델마지드 울머스가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한 벨기에 클럽 샤를루아 SC의 청구, 그리고 2006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언이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한 잉글랜드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청구 등이 있었다.[42][43][44]
8. 3. 평가
2010년 12월, FIFA 회장 제프 블라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회 조직 성과를 10점 만점에 9점으로 평가하며, 남아공이 향후 모든 대회의 대체 방안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품질 연구소(SAQI)는 시설 공사, 대회 홍보, 조직 운영을 지원했다. 다만, 대중교통 부족은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392]
이번 대회에서는 지난 대회보다 경고가 훨씬 많았으며, 핸들링 반칙이나 고의적인 플레이로 인한 파울과 퇴장이 각 경기에서 두드러졌다. 이는 심판 판정 기준이 엄격해진 것과 더불어, 수비적인 팀이 증가하여 경기가 거칠어진 점, 남아공 특유의 고온 건조한 환경에서 선수들의 플레이 질이 저하된 점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8강전 우루과이 대 가나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가 페널티 지역 안에서 고의적인 핸들링으로 득점을 막고 퇴장당한 사건과 그 이후의 태도는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남미 팀들은 5개 팀 모두 16강에 진출하고, 4개 팀이 8강에 진출하는 등 강세를 보였다. 반면, 6개의 아프리카 팀 중에서는 가나만이 16강에 진출했다.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프랑스를 이기고 멕시코와 비기는 등 선전했지만,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아프리카 팀들의 전반적인 성적은 로저 밀라와 같은 축구 전문가들에게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74]
13개의 UEFA 팀 중 16강에 진출한 팀은 6개 팀에 불과했는데, 이는 1986년 이후 최저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은 두 유럽 팀이 치렀다.[67] 또한, 직전 대회 결승 진출팀인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이탈리아는 1966년 브라질과 2002년 프랑스에 이어 1라운드에서 탈락한 세 번째 전 대회 우승팀이 되었다.[75] 뉴질랜드는 조별리그 세 경기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며 무패로 대회를 마친 유일한 팀이 되었다.
대회 MVP인 골든볼은 디에고 포를란(우루과이)이 수상하였고, 실버볼은 베슬리 스나이더(네덜란드), 브론즈볼은 다비드 비야(스페인)가 수상하였다. 득점왕인 골든부츠는 토마스 뮐러(독일)가 차지했으며, 실버부츠는 다비드 비야(스페인), 브론즈부츠는 베슬리 스나이더(네덜란드)에게 돌아갔다. 최우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는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가 수상했고, 최우수 유소년 선수상은 토마스 뮐러(독일)가 받았다. FIFA 페어플레이상은 스페인이 수상했다.
드림팀은 다음과 같다.
포지션
선수명
국적
GK
이케르 카시야스
스페인
DF
카를레스 푸욜
스페인
DF
세르히오 라모스
스페인
DF
마이콩
브라질
DF
필립 람
독일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스페인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독일
MF
베슬리 스나이더
네덜란드
MF
샤비 에르난데스
스페인
FW
디에고 포를란
우루과이
FW
다비드 비야
스페인
감독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
대회 기간 중 각국의 매체들은 남아프리카의 샤먼 등에게 경기 결과를 예측하게 했다. 독일의 문어파울은 독일 경기의 승패를 모두 맞혔고, 싱가포르의 앵무새 마니는 8강전 결과를 모두 예측하여 화제가 되었다. 결승전에서 파울은 스페인, 마니는 네덜란드의 승리를 예측했고, 파울의 예측이 맞았다.
8. 4. 중계
대회 당시 FIFA 국제 중계 센터 시설 내부
2010년 FIFA 월드컵은 텔레비전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대회로 예상되었다.[393] 70여개국을 대표하는 100여개의 방송사가 텔레비전 시청자에게 대회 내용을 송출하였고, FIFA 공식관계자들은 경기당 약 4억명, 총 260억명이 경기를 시청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FIFA는 7억명이 FIFA 월드컵 결승전을 시청할 것으로 예상했다.[394]
디지털 매체의 새로운 중계 방식은 시청자들이 경기를 다른 방식으로도 볼 수 있게 했다. AP의 제이크 코일 기자는 "휴대전화와 컴퓨터로 경기를 중계하면서, FIFA 월드컵은 여태까지 나오지 않은 수의 시청자들이 온라인으로 시청할 것입니다." 라고 평하였다.[395]
미국의 ABC, ESPN, 그리고 ESPN2에서 평균 2.1의 등급을 받았고, 2,288,000호의 3,261,000명의 시청자들이 FIFA 월드컵 64경기를 시청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등급은 2006년의 1.6에서 31퍼센트 증가한 수치였고, 기존의 1,735,000호, 2,316,000명에서 32퍼센트 시청자가 증가했다. 미국이 대회 조별 리그를 통과하면서 증가폭이 종전보다 가팔랐다. 처음 50경기동안의 등급은 48퍼센트이며, 가정수는 54퍼센트 증가하였고, 시청자 수는 60퍼센트가 증가하였다. 유니비전은 2,624,000명이 대회를 시청한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전 대회에 비해 17퍼센트 증가한 수치이며, 1,625,000호로, 11퍼센트 시청한 가정 수가 증가했다.[396] 미국 시청률 조사 기업인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양 방송사의 시청률을 도합하면 미국-가나 경기의 시청률은 "경이롭다"고 평하였다.[397] ESPN3의 FIFA 월드컵 생중계는 역사상 최다 시청자를 끌어모았고, 중복 제외 740만의 시청자들이 경기를 시청했다. ESPN3는 9.42억분의 시청 시간을 기록하였고, 중복 시청자를 제외하고 2시간 이상의 시청을 기록자를 포함해 기록했다. 64경기를 모두 도합하여 평균 114,000명의 분당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최고 수치를 기록한 경기는 스페인과 독일 간의 준결승전으로, 분당 355,000명의 시청자를 기록해 ESPN3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398]
8. 5. 촬영
소니의 기술이 대회를 촬영하는데 활용되었다. 25경기가 입체 카메라로 중계되었다.[399] 경기 영상은 소니가 등록한 다중 이미지 MPE-200 프로세서를 통해 입체로 촬영되었고, 특수 설계된 입체 방송 트럭에 의해 구성되었다.[400] 이는 주력 기종인 HDC-1500 카메라와 신형 HDC-P1 모델이 사용되어 복합, 시점 (POV) 형 카메라와 3과 2/3인치 CCD 센서를 같이 사용했다.[401] FIFA 입체 경기 영상은 개최국 방송망에 의해 제작되었다.[402]
8. 6. 게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홈은 2010년 FIFA 월드컵을 배경으로 하는 가상 현실 게임을 2009년 12월 3일 일본에 발매하였다. 이 가상 현실은 "피바아레나"로 불렸고, 2010년 FIFA 월드컵의 가상 경기장으로, 다양한 장소를 선보였으며, FIFA 미니게임과 FIFA 관련 상점이 존재했다.[403]
2010년 4월 27일, EA 스포츠는 공식 2010년 FIFA 월드컵 게임을 공식 발매하였다.[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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