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니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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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보니아 현은 1713년 러시아 제국에 의해 설립되어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에스토니아 현으로 분할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행정 구역이다. 스웨덴령 리보니아를 러시아가 니스타드 조약을 통해 할양받은 후 설치되었으며, 발트 귀족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었다. 19세기 말까지 농노 해방, 행정 구역 개편 등의 변화를 겪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점령, 에스토니아 자치현 형성 등을 거쳐 해체되었다. 리보니아 현은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형과 풍부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농업, 어업, 임업 등이 주요 산업이었다. 또한, 1897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라트비아어, 에스토니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루터교가 가장 큰 종교였다. 리보니아 현은 법률, 사법, 교육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우편, 철도, 항만 등의 사회 기반 시설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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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니아현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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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리보니아 현 |
로마자 표기 | Liflyandskaya guberniya |
현지 이름 | 러시아어: Лифляндская губерния 독일어: Livländisches Gouvernement 라트비아어: Vidzemes guberņa 에스토니아어: Liivimaa kubermang |
위치 | 러시아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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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리가 |
설립 | 1796년 |
소멸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
지리 | |
면적 | 47,030.87km² |
최고 고도 | 318m |
최고 지점 | 수르 무나매기 |
인구 | |
인구 (1897년) | 1,299,365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농촌 인구 비율 | 70.69% |
도시 인구 비율 | 29.31% |
2. 역사
리보니아현은 1710년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의 항복 이후 171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리가현(Рижская губерния|리가 구베르니야ru)이 창설되면서 시작되었다. 1721년 니스타드 조약으로 스웨덴령 리보니아가 러시아에 할양되었고, 1722년 도르파트 군(Tartumaa|타르투마et)이 리가 현에 추가되었다.
1726년 스몰렌스크현이 분리되고 리가, 벤덴, 도르파트, 페르나우, 외젤 5개 지방이 남았다. 1783년 슐로크 군이 추가되었고,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리가 부왕령으로 개편되었다. 1796년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 리보니아 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리보니아 현은 Landtag|리보니아 의회de를 통해 지역 독일 발트 귀족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었다.[2] 1816년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리보니아 농노 해방이 이루어졌다.[3]
1917년 2월 혁명 이후 북부는 에스토니아 현과 결합하여 에스토니아 자치현이 되었고, 9월에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12월, 소비에트 러시아는 다우가프필스, 루자, 레제크네 군을 비테프스크 현에서 분리하여 이스콜라트 통제하의 비제메와 통합했다.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지방 의회(Baltische Landesrat|발트 지방 의회de)는 발트 지방을 독일 보호령으로 만들 것을 요청했다.[4]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베를린 협정에서 에스토니아 자치현과 리보니아 현의 상실을 인정했다.
발트 연합 공국은 1918년 9월 22일 빌헬름 2세에 의해 명목상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다. 11월 5일, 아돌프 필라르 폰 필차우 남작이 이끄는 임시 섭정 위원회(Regentschaftsrat|섭정 위원회de)가 형성되었다.
2. 1. 설립 배경
1710년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의 항복 이후,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는 1713년 7월 28일 리가현(Рижская губерния|리가 구베르니야ru)을 창설했다.[2] 이 지역에는 스몰렌스크현의 스몰렌스크 우예즈드, 도로고부시 우예즈드, 로슬라블 우예즈드 및 뱌지마 우예즈드가 포함되었다. 1726년 스몰렌스크 현은 리가 현에서 분리되었다.스웨덴은 1721년 니스타드 조약을 통해 스웨덴령 리보니아를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할양했다.[2] 1722년 도르파트 군(Tartumaa|타르투마et)이 리가 현에 추가되었다.
2. 2. 러시아 제국 시기
1721년 니스타드 조약을 통해 스웨덴은 스웨덴령 리보니아를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할양했다. 1722년 도르파트 군(Tartumaa|타르투마et)이 리가현에 추가되었다. 1726년 스몰렌스크현이 리가 현에서 분리되었고, 리가, 벤덴, 도르파트, 페르나우, 외젤의 5개 지방이 리가 현에 남았다. 1783년에는 슐로크 군이 추가되었다.[2]1783년 7월 3일, 예카테리나 2세는 행정 개편을 통해 리가 현을 리가 부왕령으로 변경하였다. 1796년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에야 이 영토는 리보니아 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2]
19세기 후반까지 리보니아 현은 러시아 법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 않고, Landtag|리보니아 의회de를 통해 지역 발트 독일 귀족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었다.[2] 이들은 자신들의 특권과 독일어 사용 유지를 주장했다. 1816년에는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리보니아 농노 해방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러시아 제국 전체의 농노 해방 계획의 전조로 여겨진다.[3]
2. 3. 제1차 세계 대전과 해체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리보니아 현의 북부는 에스토니아 현과 결합하여 새로운 에스토니아 자치현을 형성하였다.[2] 1917년 9월, 리가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3] 같은 해 12월 14일, 소비에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는 다우가프필스, 루자, 레제크네 군을 비테프스크 현에서 분리하여 당시 볼셰비키 이스콜라트의 통제하에 있던 비제메와 통합하기로 결정했다.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발트 독일인 35명, 에스토니아인 13명, 라트비아인 11명으로 구성된 지방 의회(Vereinigter Landesratde)는 독일 황제에게 발트 지방을 군주국으로 인정하고 독일 보호령으로 만들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4] 같은 해 8월 27일 베를린에서 체결된 협정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에스토니아 자치현과 리보니아 현의 상실을 인정했다.
발트 연합 공국은 1918년 9월 22일 빌헬름 2세에 의해 명목상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다. 같은 해 11월 5일, 남작 아돌프 필라르 폰 필차우가 이끄는 새로운 국가의 임시 섭정 위원회(Regentschaftsratde)가 지역 토지 의회의 공동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3. 지리
이 현은 비교적 직사각형 모양으로, 최대 길이는 262km, 너비는 211km였다. 북쪽으로는 에스토니아 현, 동쪽으로는 페이푸스 호와 프스코프 호를 연결하는 해협, 남쪽으로는 프스코프 현과 비테프스크 현, 서쪽으로는 쿠를란트 현과 리가 만이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서쪽 국경(해안선)의 길이는 299km이다. 리보니아 현의 면적은 (스트렐비츠키에 따르면) 47030.87km2이다.[5]
리보니아 현과 섬은 지질학적으로 실루리아기, 데본기, 현대의 홍적세에 속한다.
3. 1. 지형
이 현은 비교적 직사각형 모양으로, 북쪽으로는 에스토니아 현, 동쪽으로는 페이푸스 호와 프스코프 호를 잇는 해협, 남쪽으로는 프스코프 현과 비테프스크 현, 서쪽으로는 쿠를란트 현과 리가 만에 접해 있었다.리보니아 현과 섬은 실루리아기, 데본기, 홍적세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루리아기는 현 최북단과 섬에 분포하며, 백운암, 마사토, 석회암,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 북부 중간 부분은 실루리아기 중층에 속한다. 나머지 지역은 홍적세 퇴적물 아래 데본기 석회암, 백운암, 석고를 포함한 점토, 마사토, 사암, 모래가 분포한다. 데본기 사암층은 동굴로 유명하며, 현 중부 대부분을 차지한다. 현 남부 지역은 백운암, 석회암, 석고를 포함한 점토와 마사토로 구성된 데본기 중층이 분포한다. 제데 강[5], 압제 강, 오구레 강 사이에서 서부 드비나 강까지는 사암, 모래, 점토, 마사토로 구성된 데본기 상층이 분포하며, 어류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해안 지형과 표면을 덮고 있는 부유석은 홍적세에 속하며, 석회질 응회암, 이탄질 마사토, 습지 철광석, 결정질 암석(편마암, 화강암, 시에나이트, 다이오라이트, 반암) 등이 있다.
에스토니아 고원 지대의 연장선은 리보니아 현에서 높이 최대 121m의 넓은 고원을 형성하며, 중앙부는 비르츠-에르브 저지대에 가려진다. 가장자리에서는 펠린 분기와 추드스키 호수 사이의 분수령을 형성하는 동부 분기로 나뉜다. 펠린 분기는 높이 133m에 달하며, 동쪽으로 아 강, 남쪽으로 렘살까지 뻗어 렘살 고원을 형성한다. 여기에는 라트비아인들이 존경하는 "푸른 산"이 있다. 동부 분기는 엠바흐 강에 의해 절단되며, 남쪽은 오덴페 고원이라 불린다. 아랄 근처에는 문나-메기 산(최대 244m)이 있다. 리보니아 현에서 가장 높은 고원인 강고프는 베로 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마리엔부르크 호수로 내려가며, 남서쪽 지맥은 피에발가 고원과 연결된다. 강고프 고원 북부에는 동유럽 평원에서 가장 높은 지점 중 하나인 문나-메기 산(높이 323m)이 있고, 근처에 벨라-메기(228m)가 있다. 강고프 고원은 남동쪽으로 악마의 산을 지나 프스코반드 비테브스크 현까지 이어진다.
피에발가 고지는 수백 개의 호수로 덮여 있으며, 가장 높은 지점은 가이싱-칼른 산(312m)이다. 시굴다, 투라이다, 크리물다 근처의 가우야 강 경사면과 젤부르크와 코크네세 근처의 서부 드비나 강둑은 특히 아름답다. 이 지역에는 많은 성 유적이 있다. 피에발가 고지에는 가우야 강과 서부 드비나 강의 발원지가 있다. 숲, 초원, 이탄 습지로 덮인 리보니아 현의 풍요로운 관개 저지대는 페이푸스 호수, 비르츠-에르바 호수, 페르노브스코예 호수 주변, 리가 만 연안, 페르나바 강과 살리스 강 유역, 아 강과 자파드나야 드비나 강 하류에 있다. 이 저지대는 북쪽으로 에스토니아 현, 남쪽으로 쿠를란트 현으로 이어진다. 리가 만 해안에는 모래 언덕이 있으며, 가장 큰 곳은 구트만스바흐 근처로 높이가 129m이다. 현 동부 저지대는 늪이 많다. 비르츠-예르브 저지대는 북쪽으로 확장되고, 남쪽으로 좁아지며, 테라스와 같은 고지대를 분리한다. 현 동쪽과 남동쪽의 언덕은 깊은 곳에 주요 강과 시내의 발원지를 가진다. 에스토니아 현의 주요 섬인 에젤과 문은 에스토니아 현과 연결되어 지형이 유사하다. 평평한 언덕이 두 섬을 통과하고, 북쪽 경사면 해안은 갑자기 바다 위로 끊어져 글린트를 형성한다. 문 섬은 에젤 섬처럼 많은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3. 2. 수자원
리가 만이 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325개의 강이 현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다. 호수는 1,000여 개에 달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벤덴 군에 있다. 동쪽의 페이푸스 호는 리보니아 현을 117km 이상 씻어내고 있다. 현의 중심에는 비르츠예르브 호가 있고, 그 외에도 부르트네크 호수, 루반 호수, 마리엔부르크 호수 등이 있다. 이러한 호수들은 현재까지는 어업 외에 상업적, 산업적으로 중요하지 않지만, 수로 시스템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리가 만에는 두 개의 주요 항구가 있는데, 서부 드비나 강 어귀의 리가 항과 페르나바 강 어귀의 페르나바 항이다. 이 항구들은 대형 선박이 접근할 수 있지만, 모래톱과 좁고 굴곡진 항로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 리보니아 섬 해안의 발트 해에는 작은 항구들이 많지만, 얕은 물과 암초, 여울 때문에 불편하며, 아렌스부르크를 제외하면 더 나은 정박지가 없다.
리가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주요 강으로는 페르나바 강(나바스트 강, 할리스트 강, 레이오 강이 지류), 살리스 강(루이엔 강과 제데 강이 흘러듦), 스벤트-우페 강 등이 있다. 리가 아 강은 숲에만 떠다니며 봄에 현 남부 대부분을 관개한다. 서부 드비나 강은 에브스타 합류 지점부터 리가 항이 형성하는 어귀까지 147km 동안 리보니아 현에 속하며, 대 에바흐 강이 비르츠예르브 호를 페이푸스 호와 연결한다.
3. 3. 토양 및 식생
리보니아 현의 토양은 일반적으로 모래, 점토, 석회암, 백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옥도가 낮은 편이다. 흑토는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난다. 저지대에서는 토양이 초원과 이끼 늪으로 변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이탄 늪으로 변한다.[5]주요 산림 수종은 가문비나무, 소나무(선박용 숲의 크기에 달함), 자작나무,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참나무, 버드나무이다. 과거에는 참나무 숲이 현을 지배했음을 증명하는 거대한 크기의 참나무들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참나무 숲은 몇몇 장소에서만 보존되어 있다. 현재 리보니아 현에서는 산림 관리 및 보존 작업이 모든 곳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인공적인 산림 재배도 발전하고 있다. 국유림의 임업은 특히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약 210000ha 면적을 차지한다.
리보니아 현 전체 면적의 3분의 1은 저지대로 덮여 있다. 저지대 초원 늪지(독일어: Wiesenmoor, 에스토니아어: Soo, 리투아니아어: Purr)는 여름에만 통과할 수 있으며, 페이푸스 호와 리가 만을 따라 뻗어 있고, 페르나바 강, 엠바추 강, 드비나 강 등을 따라 뻗어 있다. 늪지대 초원(Sumpfwiesen)은 주로 현 북부에서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이끼 늪(Hochmoor)(독일어, 에스토니아어 Hochmoor, 에스토니아어 Rabba, 리투아니아어 Tirrul), 즉 이탄 늪은 주로 리가 및 페르노바 군, 그리고 페발가 고지의 남서쪽 경사면의 우울증과 구덩이에서 발견된다. 매년 늪을 배수하면 늪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게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늪은 대부분 황무지이고 이끼가 많으며 약 360000ha, 즉 현 전체 면적의 1/10을 차지한다.
4. 행정 구역
1710년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의 항복 이후, 표트르 대제는 1713년 7월 28일 리가현()을 창설했다. 1721년 니스타드 조약을 통해 스웨덴은 스웨덴령 리보니아를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할양했다. 1722년 도르파트 군()이 리가 현에 추가되었다. 1726년 스몰렌스크현이 분리되었고, 리가, 벤덴, 도르파트, 페르나우, 외젤의 5개 지방이 리가 현에 속하게 되었다. 1783년 슐로크 군이 추가되었다. 1783년 7월 3일 예카테리나 2세는 리가 현을 리가 부왕령으로 개편했다. 1796년 제3차 폴란드 분할 이후에야 이 영토는 리보니아 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리보니아 현은 러시아 법에 따라 통치되지 않고 봉건적인 Landtag|란트타크de (Vidzemes landtāgs|리보니아 의회lv)를 통해 지역 독일 발트 귀족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었다.[2] 1816년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리보니아 농노 해방이 이루어졌다.[3]
1917년 9월, 리가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1917년 12월 14일, 소비에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는 다우가프필스, 루자, 레제크네 군을 비테프스크 현에서 분리하여 당시 볼셰비키 이스콜라트의 통제하에 있던 비제메와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1918년 4월 12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발트 독일인 35명, 에스토니아인 13명, 라트비아인 11명으로 구성된 지방 의회(Vereinigter Landesratde)는 독일 황제에게 발트 지방을 군주국으로 인정하고 독일 보호령으로 만들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4] 1918년 8월 27일 베를린에서 체결된 협정에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에스토니아 자치현과 리보니아 현의 상실을 인정했다.
발트 연합 공국은 1918년 9월 22일 빌헬름 2세에 의해 명목상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다. 1918년 11월 5일, 아돌프 필라르 폰 필차우 남작이 이끄는 새로운 국가의 임시 섭정 위원회(Regentschaftsratde)가 지역 토지 의회의 공동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4. 1. 변천사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 임시 정부는 1917년 3월 30일에 "에스틀란트 자치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라 리보니아 현이 분할되었다. 에스토니아인 인구(도르파트, 페르나우, 펠린, 베로 및 외젤) 및 발크 군의 에스토니아인이 거주하는 읍은 모두 5개의 북부 군(Kreis|크라이스de)으로 인접한 에스토니아 현의 구성원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 현 사이의 새로운 경계는 제대로 경계가 정해지지 않았다.[2]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리보니아 현의 북부는 에스토니아 현과 결합하여 새로운 에스토니아 자치현을 형성했다.[3]
4. 2. 1914년 기준
(1897년 인구 조사)[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