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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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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론종은 용수의 반야중관사상을 대표하는 세 논서인 《중론》, 《십이문론》, 《백론》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 불교의 종파이다. 승랑을 거쳐 길장에 의해 삼론종으로 정립되었으며, 인도 불교의 중관학파에 대한 중국식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삼론종은 7대상승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가지며, 승랑은 고삼론과 신삼론을 구분하여 삼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삼론종은 이제합명중도설을 통해 세제와 진제를 종합하여 중도를 밝히는 독자적인 사상을 펼쳤으며, 길장은 삼론종을 대성하여 중국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삼론종은 당나라 시대 이후 쇠퇴했지만, 천태종과 선종 등 다른 종파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중국 불교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삼론종은 625년경 혜관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으며, 헤이안 시대 지코의 활동을 거쳐 다른 종파에 흡수되었다. 삼론종 외에 《대지도론》을 더한 사론종도 존재했으나 삼론종에 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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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론종
개요
종파중관학파
기원인도
지역동아시아
주요 경전중론
십이문론
백론
주요 인물구마라습
승조
길장
역사
기원나가르주나의 중관학
중국 전래구마라습에 의해 중국에 전래
한국 전래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
교리
핵심 교리 사상
주요 내용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강조
언어와 개념의 한계를 지적
중도(中道)를 통해 진리에 도달
특징
강조점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 (반야)
집착에서 벗어나는 해탈
수행 방법명상
지혜 개발
관련 종파
영향천태종, 화엄종, 선종 등 대승불교 종파에 큰 영향
한국 삼론종
역사고구려승랑에 의해 시작, 이후 신라에 전래
주요 사찰영묘사, 보문사
쇠퇴선종의 흥기로 인해 쇠퇴

2. 성립

중론》, 《십이문론》, 《백론》이 언제부터 용수 계통의 반야중관사상을 대표하는 핵심 논서로 간주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49] 승랑을 거쳐 길장(549-623)에 이르러 중국 불교의 중요한 종파 중 하나인 삼론종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때부터 삼론종이라는 명칭은 인도 불교의 중관학파(Madhyamika)에 대한 중국 측 명칭으로 통용되었다.[49]

2. 1. 7대상승

삼론종의 7대상승(七代相承)은 구마라습-승숭-법도-승랑-승전-법랑-길장으로 이어진다.[51]

2. 2. 승랑과 신삼론

고구려의 승려 승랑은 구마라습-승조로 이어지는 삼론학을 배웠으나, 당시 삼론학은 《성실론》의 영향으로 본래의 진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51] 승랑은 이러한 사조를 탈피하여 새로운 삼론(신삼론)을 설립하였고, 이로 인해 과거의 삼론학은 고삼론이라 불리게 되었다.[51]

삼론의 오의(奧義)를 깊이 터득한 승랑은 중국 남방으로 떠나 회계산 강산사에 머물렀고, 다시 종산 초당사로 와서 정계에서 은퇴한 주옹에게 삼론학을 가르쳐 주옹이 《삼종론》을 저술하는 계기가 되었다.[51]

만년에 섭산 서하사로 와서 스승이자 주지였던 법도화상의 지위를 계승(500)하였다.[51] 양무제는 그의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천감 11년(512)에 우수한 학승 10명을 선발하여 승랑의 문중에서 공부시켰다.[51] 그때 학승 중 한 명인 승전은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여 섭산에 머물렀고, 승전을 계승한 법랑이 흥황사에 있었으므로 승랑의 삼론학 학통을 '''섭령흥황'''(攝嶺興皇) 또는 '''섭령상승'''(攝嶺相承)이라 불렀다.[51]

승랑의 삼론학은 법랑의 제자인 길장 때에 와서 독립된 종파인 삼론종으로 성립되었다.[51]

2. 3. 길장과 삼론종의 대성

길장(549-623)은 법랑의 제자가 되어 《중론》, 《십이문론》, 《백론》의 삼론에 주석을 달고, 《삼론현의》를 지어 삼론종을 대성하였다.[48] 가상대사라고 불린 길장은 가상사에 머물면서 용수의 공관불교를 중국식으로 발전시켰다.[48]

3. 사상

삼론종은 삼론의 사상을 단순히 종합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무득(無得)의 정관(正觀)"이라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불교 통일론을 제시하였다.[48]

3. 1. 이제합명중도설

승랑이 제창한 인식 방법으로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다.[52][53] "이제합 명중도 설"로 띄어 읽는데,[54]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이제(二諦)를 종합하여 중도를 밝힌다"이다. 중도(中道)는 불교의 궁극적인 진리를 의미하는데, 이 중도를 밝히는 방법으로 세제(世諦)와 진제(眞諦)의 이제(二諦)를 합명(合明)하는 방법, 즉 정반합지양(正反合止揚)시키는 방법을 쓴 것을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이라 한다.[53][54]

승랑의 활동 당시, 삼론과 함께 《성실론》을 공부하고 있던 당시의 학승들은 모두 이제를 중시하여, 부처는 항상 이제에 의하여 설법했으며, 모든 경전이제를 벗어나지 않으며, 이제를 밝히면 모든 경전을 해득하게 된다는 견해를 가졌다. 승랑도 이 견해에는 같은 입장을 가졌다.[53] 그러나 승랑은 이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들과 견해가 달랐다.

당시의 학승들은 《성실론》의 영향을 받아 이제(二諦)를 이(理: 진리) 또는 경(境: 경지)으로 보는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55] 반면 승랑은 이제(二諦)를 교(敎: 방편 또는 수단)로 보는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55]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은 이제를 어떤 고귀한 "이"(理: 진리) 또는 "경"(境: 경지)으로 봄으로써 이제를 어떤 고정된 실체로 여기게 되고 이에 집착하게 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55] 반면 승랑의 약교이제설에서는 이제를 "교", 즉 고정된 성품이 있다는 집착을 타파하여 중도를 밝히는 "방편"으로 보기 때문에, 이제를 실체로 여기는 결함 없이 이제를 통해(즉, 이제를 사용하여) 고정된 성품이 있다는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제1의제(第一義諦)인 중도, 즉 진정한 이(理: 진리)가 밝히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55]

당시에 승랑의 약교이제설은 과 중도에 대한 용수의 견해에 진실로 합치하는 것이라고 여겨졌으며, 당시의 중국의 삼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승랑을 기점으로하여 승랑 이전의 학파를 고삼론(古三論)이라고 부르고 승랑 이후의 학파를 신삼론(新三論)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삼론에서는 《성실론》을 함께 공부하던 고삼론의 태도를 버리고 오직 삼론에 의거하여 중관(中觀)을 전개하게 되었다.

4. 중국에서의 역사

수나라 시대에 길장(549년 - 623년)이 삼론종을 크게 발전시켰다.[46] 길장의 저서 『삼론현의』는 삼론종의 관점에서 불교를 설명하는 개론서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천태종, 화엄종, 법상종 등이 융성하면서 삼론종은 상대적으로 쇠퇴하여 학문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성실종은 삼론종의 부속 종파였다.

길장은 수많은 중국 불교도들이 잘못된 형이상학적 가정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존재와 무존재에 대한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을 독단적인 개념적 혼란으로 여겨 거부했다. 쉬에루 청에 따르면, 길장에게 진정한 지혜는 모든 견해를 버리는 것이다. 존재와 무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변은 잘못된 견해의 근원이며,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개념화와 언어의 본질과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8]

길장은 자신의 철학적 방법을 "오해를 해체하고 교정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불렀으며, 어떤 특정한 관점에도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9]

길장 이후 삼론종은 쇠퇴했지만, 그 경전은 천태종이나 선종 등 다른 종파에 영향을 주었다.

4. 1. 초기

삼론종의 명칭은 용수아리아데바가 저술하고 구마라집과 그의 번역팀이 중국어로 번역한 세 개의 주요 중관파 경전에 기반한다.[6][7] 이 세 경전은 중론, 십이문론, 백론이며,[8] 때때로 대지도론을 추가하여 "사론"이라고도 한다.[15]

구마라집의 또 다른 번역 경전인 성실론은 법의 공(空)을 가르쳐 중국 중관파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16] 승예와 승조 등 구마라집의 제자들은 중관파의 가르침을 장려하고 여러 작품을 저술했다.[17][20] 승조는 종종 "정식" 삼론종의 창시자로 여겨지며,[22] 그의 철학은 유식경(예: 유마힐소설경), 도교도덕경장자, 신도교적 "현학"(''현학'') 텍스트 등 다양한 출처에서 영향을 받았다.[22][23]

4. 2. 당나라 시대와 길장

당나라 시대의 중요한 삼론종 인물은 법랑이었다. 그는 중관의 대가 승천(470–528)을 비롯한 여러 스승 밑에서 널리 공부했으며, 결국 징캉의 흥황사에서 거주하며 25년 동안 사론을 설법하라는 황제의 조서를 받았다.[24]

당나라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삼론종 학자는 법랑의 제자 길장(549–623)이었으며, 그는 이 세 논문에 대한 주석을 많이 썼다.[25]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이체의'(二諦意) 즉 "두 가지 진리의 의미"로, 세속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를 가리킨다.[26] '이체의'의 한 구절에서 길장은 법랑을 인용하여 사론이 "두 가지 진리를 설명하고 불이(不二)의 교리를 나타내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27]

길장은 부당한 형이상학적 가정을 하는 수많은 중국 불교도들을 비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존재와 무존재에 대한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을 독단적인 개념적 혼란으로 거부한다. 쉬에루 청에 따르면, 길장에게 있어:

진정한 지혜(반야)는 모든 견해를 버리는 것이다. 길장은 존재와 무(無)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변은 질병(병)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모든 잘못된 견해나 왜곡된 견해의 근원이다. 이 질병의 치료는 새로운 형이상학적 이론을 개발하는 데 있기보다는 인간의 개념화와 언어의 적절한 본질과 기능을 이해하는 데 있다. 길장은 용수를 따라 인간이 만들고 사용하는 바로 그 언어가 그들을 속이고 그들의 "지혜의 눈"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깨달은 자들은 이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개념화를 버려야 한다. 길장에게 공(空)은 "철학적 질병"을 치료하는 약(요)이다.중국어[28]

길장은 자신의 철학적 방법을 "오해를 해체하고 교정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불렀다. 그는 어떤 특정한 관점이나 관점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사고와 행동의 교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9]

길장은 중관을 대중화하는 것 외에도, 대승경전인 '묘법연화경', '유마경' 및 '여래장'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도 저술했다.

4. 3. 선종에 대한 영향

길장 이후 삼론종은 쇠퇴했지만, 그 경전은 천태종이나 선종과 같은 다른 종파에 영향을 미쳤다. 선종에서 나가르주나는 삼론종의 조사 중 한 명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혜능과 같은 주요 인물들은 사론(四論)에 익숙했을 것이다.[30] 쉬에리 정에 따르면 "우두 법융(594–657)이나 남천 보원(748–834)과 같은 선승들은 선승이 되기 전에 삼론불교도였다."[30] 또한, 개념화의 부정, 모든 견해의 거부, 이중 진리 등 주요 삼론(Sānlùn)의 교리가 선종에 채택되었으며, 이에 따라 쉬에리 정은 "여러 면에서 선종은 중관 사상의 실용적인 적용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린다.[31]

4. 4. 현대 중국 불교

20세기 초, 재가 신자였던 양문회와 구양점(歐陽漸, 1871–1943)은 중국에서 불교 연구를 장려했고, 유식학, 중관, 화엄종과 같은 불교 전통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32][33]

현대 중국 중관 연구에서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인순(1906–2005)이다.[34][35] 인순은 중국 아함경에 대한 연구를 중관에 적용하여, 용수의 저술이 "아함경에서 제안된 연기의 개념화를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36] 인순은 용수의 저술을 올바른 불교로 보았지만, ''여래장'' 사상을 중관에 통합했다는 이유로 ''삼론종''의 저술은 타락했다고 생각했다.[37]

그는 동료들에게 ''삼론종'' 학자로 여겨졌지만, 자신은 그러한 직접적인 소속을 주장하지 않았다.[38] 리즈푸, 양후이난, 란지푸와 같은 많은 현대 중국 중관 학자들이 인순의 제자였다.[39]

5. 일본에서의 역사

625년고구려의 승려 혜관(일본어: 에칸 慧灌)이 일본에 삼론종을 전파하였으며, 강고지(Gangōji)에 머물렀다.[40] 쇼토쿠 태자는 삼론종 출신의 두 명의 불교 스승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혜관은 성실종(사띠시디)을 일본에 도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성실종의 가르침은 일본 삼론종에서 중관과 함께 보충적으로 가르쳐졌다.[40]

헤이안 시대에는 지코(709–781)가 중요한 삼론종 인물이었는데, 그의 반야심경 주석은 헤이안 불교 학문의 고전이 되었고, 초기 헤이안 시대의 가장 권위 있는 반야심경 주석이 되었다.[41]

이 종파는 이후 덴다이종과 선종과 같은 다른 일본 종파에 의해 가려졌다.

일본으로의 전래에는 다음과 같은 3계통이 있다.

계통전래 시기전래 인물비고
원흥사625년(추고 33년)고구려의 승려 혜관
호류지의 공종지장 (혜관의 제자, 오나라 출신)당나라 유학 후 전래
대안사류718년(양로 2년)도자 (지장의 제자)



원흥사·대안사의 2류는 일본 삼론의 2류라고 칭하며, 나라 시대에는 남도육종의 하나로서 번성했다. 삼론종의 중흥조로 여겨지는 성보(832년 - 909년)는 원흥사류 출신이다.

후에 성보는 진언종도 수행하여 도다이지도난인과 다이고지를 설립했다고 전해지며, 모두 삼론종과 진언종의 겸학 사찰로 여겨진다. (남도육종의 중심인 도다이지에 속하는 도난인에서는 삼론종에, 교토의 다이고지에서는 진언종에 비중을 두지만, 모두 겸학인 것은 변함이 없다).

6. 사론종

삼론종이 소의 경전으로 삼는 중론, 십이문론, 백론대지도론을 더하여 교리의 기본으로 삼은 '''사론종'''도 중국에서 성립되었으나, 후에 삼론종에 융합되었다.[4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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