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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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슙은 아시리아학 및 히타이트학 문헌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기되는 후르리 종교의 날씨 신이자 신들의 왕이다. 이름의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후르리어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수메르 문자 dIŠKUR로도 표현되었다. 후르리 종교에서 테슙은 천둥, 번개, 비를 다스리며, 신들의 왕으로서 하늘과 땅을 지배하며, 아내 헤파트, 자녀 샤루마, 알란주, 쿤지샤리와 샤우슈카와 같은 가족 및 가신들과 함께 숭배되었다. 테슙은 시리아-메소포타미아의 아다드, 아나톨리아의 타르훈나와 동일시되었으며, 우가리트에서는 바알과도 연관되었다. 테슙 숭배는 쿰메, 아라파, 알레포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신화에서는 쿠마르비와의 갈등을 다룬 '쿠마르비 주기'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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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슙 | |
|---|---|
| 테슙 | |
| 신화 정보 | |
![]() | |
| 종류 | 후르리인 |
| 역할 | 날씨의 신, 신들의 왕 |
| 숭배 중심지 | 쿰메, 아라파, 알레포, 카흐트, 쿰마니 |
| 동물 | 황소 |
| 무기 | 기상 현상 |
| 탈것 | 셰리와 후리가 끄는 전차 |
| 배우자 | 헤파트 |
| 자녀 | 샤루마, 알란주, 쿤지샬리 |
| 형제자매 | 샤우슈카, 타슈미슈, 아란자흐 |
| 부모 | 아누와 쿠마르비 |
| 다른 문화에서의 대응 | |
| 메소포타미아 | 아다드 |
| 우가리트 | 바알 |
| 히타이트 | 타르훈나 |
| 루위 | 타르훈즈 |
| 우라르투 | 테이셰바 |
2. 이름
테슙(Teshub)의 이름은 아시리아학 및 히타이트학 문헌에서 Teššub, Tešub, Teššob, Teššop 등 다양한 로마자 표기로 나타난다. 무성 치찰음 표기는 이름의 일반적인 설형 문자 표기를 반영하는 현대적 관례이지만, ''š''뿐만 아니라 ''s''와 ''ṯ''로 표기된 글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누지에서 나온 텍스트는 ''te-šub''을 포함하여 여러 음절 표기와 ''te-šu-ub'', ''te-eš-šub'', ''te-eš-šu-ub'', 드물게 ''te9-šub'', ''te-eš15-šu-ub'', ''te-su-ub''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 것은 전체 텍스트 코퍼스에서 단 한 번만 확인된다. Te, Tē, Teya, Tēya와 같은 축약형은 신을 이름으로 하는 이름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축약형은 애칭 접미사 ''še''와 ''šeya''가 "형제"를 의미하는 ''šēna''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알랄라크의 이름에서는 ''te-eš-šu-ub''으로 표기되었다. 미탄니 서한에서는 ''dte-eš-šu-ub-bá-''로 쓰여 있는데, 이 형태는 /Teššob/ 발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문 변형인 ''-a'' 접미사는 다양한 지역의 신을 이름으로 하는 이름에서만 확인된다.
테슙의 이름은 동족어로 우라르트어의 신명 테이세바(Teišeba)와 일치한다고 여겨진다. 이 신은 기원전 1천년기의 자료에서만 확인된다. 우라르트어와 후리어는 후르-우라르트어족과 같은 언어족에 속했지만, 이미 기원전 3천년에 분리되었고, 테이세바가 우라르트 종교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언어가 후리어에서 파생된 결과로 볼 수 없다. 후르 종교에서 테슙의 지위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판테온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할디(Ḫaldi) 다음으로 두 번째로 중요한 신이었지만, 다니엘 슈베머에 따르면 이는 이차적인 발전으로 간주해야 한다.
테슙은 아누와 쿠마르비의 아들로 여겨졌다. 아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한 신으로, 테슙의 아버지라는 역할을 제외하면 후르족 종교에서 큰 비중은 없었다. 테슙의 탄생 과정은 ''탄생의 노래''에 나오는데, 쿠마르비가 하늘의 왕권을 두고 싸우는 과정에서 아누의 생식기를 물어뜯었고, 아누가 테슙을 뱉어내기 위해 자신의 두개골을 쪼개야 했다는 내용이다. 후르족 찬가 (KUB 47.78) 역시 이 신화의 내용을 암시하며, 아누를 테슙의 아버지로, 쿠마르비를 그의 어머니로 칭한다.
우가리트 문자에서는 이 이름이 일관되게 ''tṯb''로 표기되었으며, 단 하나의 다른 변형인 ''tṯp''가 있다. 데니스 파디(Dennis Pardee)는 이 형태의 이름을 Teṯṯub로 발음한다. 표준 음절 설형 문자로 쓰인 같은 도시의 텍스트에서는 ''te-šab'', ''te-šub'', dIŠKUR-''ub'', d10-''ub'' 등 여러 변형이 나타난다. 루위아어 상형 문자에서는 ''ti-su-pi'' (야즐르카야) 또는 DEUSFORTIS-su-pa-sa (텔 아흐마르)로 표기될 수 있으며, 축약된 형태 TONITRUS-''pa-sá/ti-sa-pa'', 티스파 또는 티사파는 카르케미쉬에서 나온 신을 이름으로 하는 이름에서 확인되었다.
테슙 이름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후르리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볼커 하스는 "높은" 또는 "군주"로 번역되는 형용사 ''teššai''에서 파생되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다니엘 슈베머(Daniel Schwemer)는 이 제안이 접미사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으며, ''teššai''가 실제로 확인된 단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마리 클로드 트레무이에(Marie Claude Trémouille)는 수메르어 칭호 ''ugula'' ("감독관")와 동등한 것으로 확인된 ''tešš-''와의 연관성이 제안되었지만, 증거는 설득력이 없다고 언급한다.
음성 음절 표기 외에도, 테슙의 이름은 설형 문자로 수메르 문자 dIŠKUR로 표현될 수 있었다. 같은 기호는 /im/, "바람" 또는 "폭풍"으로 읽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수메르 문자는 dIM으로 렌더링되기도 하지만, dIŠKUR 표기가 더 선호된다.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기원의 상형 문자를 사용하여 신들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은 고대 근동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dIŠKUR는 사르곤 이전 마리의 텍스트에서 처음 문서화되었지만, 이 관습은 에블라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dIŠKUR가 어떤 신을 나타내는지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알라라크에서 온 ''a''-RI-dIŠKUR는 테슙 또는 아다드를 나타낼 수 있다. 누지와 다른 인근 도시에서 숭배되는 날씨 신의 정체성 또한 상형 문자의 사용과 후르리아어와 아카드어 화자의 존재로 인해 모호하다. 셈어족 언어 화자와 후르리아인들이 상형 문자를 다르게 읽었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신을 섬기는 이름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구성 요소의 언어적 친화성에 따라 렌더링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이쿤-테슙과 같은 특이한 이중 언어 혼성 이름도 존재한다.
테슙의 이름을 나타내는 또 다른 기록된 상형 문자는 d10인데, dIŠKUR보다 늦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상형 문자는 문맥에 따라 dU로 렌더링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리 클로드 트레무예는 이 표기가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 숫자를 사용하여 날씨 신의 이름을 렌더링하는 것은 기원전 15세기에 아다드에 대해 처음 기록되었다. 이 관습은 북부 메소포타미아 또는 시리아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지만, 다니엘 슈베머는 바빌로니아 전통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두 개의 상형 문자는 히에로글리프 루위아어 비문에서 테슙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DEUSL.318과 DEUSFORTIS이며, 이들은 DEUSTONITRUS와 다르다.
3. 성격
테슙과 티쉬파크(Tishpak) 사이의 이름에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티쉬파크는 에슈눈나의 도시 신으로 여겨지는 메소포타미아 신이다. 이 가설은 1932년 토르킬드 야콥센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1960년대에 그는 이 가설을 포기하고 대신 티쉬파크의 이름을 아카드어 ''šapāku''에서 파생된 것으로 해석하여 “쏟아지는 자”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어원은 오늘날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알폰소 아르키는 티쉬파크가 테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하며, 메소포타미아 신이 디얄라 강 지역에서 후르 신을 받아들여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맨프레드 크레버닉은 티쉬파크의 이름을 엘람어로 분류한다. 마르텐 스톨 또한 잠정적으로 그렇게 묘사한다. 다니엘 슈베머는 현재 테슙과 티쉬파크가 관련된 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4. 다른 신들과의 관계
KUB 33,89+라는 문헌에는 테슙의 혈통에 대한 다른 내용이 있는데, 달의 신 쿠슈를 그의 아버지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일반적이지 않으며, 그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이 구절은 표의 문자(dU DUMU d30)로 되어 있어, 과거에는 하티족의 전통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날씨 신은 타루, 달의 신은 카슈쿠로 해석되었지만, Jörg Klinger|외르크 클링거de는 이러한 해석이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탄생의 노래''에는 타슈미슈와 아란자흐 (티그리스 강)도 테슙과 함께 태어났다고 나온다. Piotr Taracha|피오트르 타라차de에 따르면 타슈미슈는 테슙의 쌍둥이로 여겨졌다. 타슈미슈는 테슙의 신성한 "재상" (''sukkal'') 역할도 했다. 테누 역시 이러한 역할을 맡았는데, 알레포 지역의 전통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테슙의 형제자매로는 여동생 샤우슈카가 있다. ''dLAMMA의 노래''에서 샤우슈카는 테슙을 남동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니엘 슈베머는 샤우슈카가 원래 테슙의 배우자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신화에서 샤우슈카는 종종 전투에서 테슙을 돕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Beate Pongrats-Leisten은 테슙과 샤우슈카가 메소포타미아의 아다드와 이슈타르와 서로 바꿔 쓸 수 있다고 보며, 초기 후르족 비문에서 벨라트-나가르가 샤우슈카의 지역적 현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Joan Goodnick Westenholz는 나가르의 수호 여신이 샤우슈카 또는 이슈타르의 한 형태라는 이론에 대해 비판하며, 이 여신들이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알폰소 아르키에 따르면, 벨라트-나가르에 해당하는 원 후르족 신은 나바르비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녀의 이름은 "목초지"를 뜻하는 ''naw''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헤파트는 테슙의 아내로 여겨졌다. 헤파트는 후르족에게 알레포 지역 판테온에서 받아들여졌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마리에서 짐리-림 왕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에는 헤파트가 수메르어 dIŠKUR과 헤파트가 지정한 날씨 신 앞에서 왕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헤파트는 기원전 3천년기에 하드다라는 지역 날씨 신의 배우자로 여겨졌다. 헤파트는 주로 시리아 북부, 특히 알레포와 알라라크에서 숭배받았지만, 그녀와 관련된 지역은 남부 아나톨리아와 중부 유프라테스 강도 포함했다. 헤파트와 테슙의 관계는 서부 후르족 공동체에 국한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미탄니 왕족도 헤파트를 잘 알고 있었고, 일부 구성원의 신성한 이름에 헤파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녀가 동쪽에서도 테슙의 아내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헤파트와 테슙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헤파트는 테슙의 칭호 ''šarri''의 여성형에 해당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형용사는 "여인"을 의미하는 ''allai''였다. 이들의 자녀로는 샤루마, 알란주, 쿤지샤리가 있었다. 샤루마는 "테슙의 황소"라고 불릴 수 있지만, 게르노트 빌헬름에 따르면 이들 간의 가족 관계는 비교적 늦게 발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펜티칼리 (Belet-ekallim)는 후르족 판테온에 통합된 메소포타미아 여신으로, 테슙의 "첩" (''na-šar-ti-ya'' ŠA dIM)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헌납 목록에서 그녀에게 바쳐진 태양 원반 (''šapši ḫišammi'')을 언급한다. 후르족 맥락에서 펜티칼리는 피타누와 연결될 수 있었다. Volkert Haas는 피타누를 빗타누로 표기하고, 이 이름을 아카드어로 번역하여 "하나의 딸"이라고 해석했으며, 그녀가 Belet-ekallim의 신격화된 별칭이라고 제안했다. 이들 둘은 알레포의 테슙에게 바치는 히타이트 헌납 목록에 나타난다. Pithanu는 "테슙의 왕좌에 피타누가 앉아 있다"고 언급한 텍스트 KUB 45.28+39.97(+)에도 언급되어 있다. Haas에 따르면, 이것은 신들의 조각상 배열에 대한 설명으로 보아야 한다.
이샤라가 고대 바빌로니아 에블라, 에마르, 알라라크에서 테슙의 파트너(''parhedra|Paredrosde'')였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테슙의 전차는 두 마리의 황소, 셰리 및 후리가 끌었다. 셰리는 인간과 테슙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졌지만, 후리의 역할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울리쿠미''의 노래에서 후리는 틸라로 대체되지만, 틸라는 누지에서 인기 있었던 독립적인 신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니엘 슈베머에 따르면, 틸라는 일반적으로 테슙과 관련되지 않았으며, 틸라 숭배가 가장 잘 증명된 지역에서 황소로 여겨졌다는 증거는 없다. 테슙의 무리에 속하는 두 신은 헌납 목록에서 종종 그의 황소 다음에 배치되었으며, 남니와 하찌였다. 이 산악 신들은 테슙과 함께 알레포에서 숭배되었을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산악 신과 날씨 신의 연관성은 시리아와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오래되었으며, 하드다를 아므리크와 함께 언급하는 에블라의 텍스트에서 처음 나타났을 수 있다.
후르족의 헌납 목록, 소위 ''kaluti|칼루티de''는 테슙과 관련된 신들의 긴 목록을 보여준다. 표준 버전은 중요도에 따라 배열되었으며, 테슙, 타슈미슈(샤피누와에서 아누 다음), 쿠마르비, 에아, 쿠슈, 시미게, 샤우슈카, 아슈타비, 누파티크, 피렌기르, 헤슈이, 이르샤파, 테누, 지구와 하늘, "산과 강", 샤루마, 셰리와 후리, 남니와 하찌, "테슙의 우구르", "테슙의 영웅", "테슙의 조상" 및 그와 관련된 다양한 속성과 숭배 용품을 포함했다. 여신들은 일반적으로 헤파트의 ''칼루티''에 속했다. 이러한 성별에 따른 분리는 후르족의 혁신으로 추정되며, 시리아의 아모리족 또는 아모리족 이전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는 없다.
4. 1. 가족과 가신
테슙은 후르리 종교에서 날씨의 신이자 신들의 왕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파괴적인 존재인 동시에 인류를 보호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테슙은 천둥과 번개를 다스렸으며, 신화에서는 폭풍, 번개, 비, 바람 등 다양한 기상 현상이 그의 무기로 등장한다. 그는 비를 내려 식물이 자라게 하고, 강과 샘을 창조하는 역할도 했다.
상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날씨의 신이 높은 지위를 차지한 것은 농업에서 강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관개 시설에 의존했던 남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날씨의 신(이슈쿠르/아다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테슙의 왕권은 신과 인간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졌다. 후르리 전통에서 그의 영역은 하늘과 땅을 모두 포함했지만, 바다와 지하 세계는 그에게 적대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늘과 땅의 주" (EN AN ''ú'' KI)라고 불렸다. 이 칭호는 시리아 전통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에게 붙여진 가장 일반적인 두 가지 칭호는 "주"를 뜻하는 ''ewri''와 "왕"을 뜻하는 ''šarri''였다. ''ewri''는 일반적인 통치자를, ''šarri''는 신화 속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테슙은 ''šarri talawoži''(위대한 왕), ''šarri ennāže''(신들의 왕) 등으로도 불렸다. ''šarrašši''(왕권)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의식도 있었다. 어떤 문헌에서는 그를 ''eni ennāže''(신들의 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오트르 타라차(Piotr Taracha)는 테슙이 처음부터 후르리 판테온의 최고신은 아니었으며, 기원전 2천년대 초에 날씨의 신이 점차 중요해지는 현상의 일부로 이 지위에 올랐다고 주장한다. 게르노트 빌헬름(Gernot Wilhelm) 역시 비슷한 시기에 테슙이 최고신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다니엘 슈베머(Daniel Schwemer)는 테슙이 기록된 역사의 시작부터 후르리 판테온의 최고신이었으며, 반대되는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기 신명에서 테슙이 적게 나타나는 것은 Šauška나 쿠마르비와 같은 다른 주요 신들도 초기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알폰소 아르키(Alfonso Archi)는 슈베머(Schwemer)의 견해를 지지한다.
테슙의 모습은 드물게 묘사된다. 고대 근동 미술에서 개별적인 날씨 신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테슙은 보통 짧은 치마와 뾰족한 신발을 신고, 때로는 황소, 산, 또는 산신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폴케르트 하스(Volkert Haas)에 따르면, 누지의 조각 미술에서는 세 갈래 번개와 굽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문헌 자료에 따르면 그는 두 마리의 황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와 관련된 또 다른 동물은 독수리였을 수도 있다.
히타이트 미술에서 테슙을 포함한 모든 날씨 신은 긴 머리와 수염, 뿔 달린 원뿔형 모자, 킬트, 위로 굽은 신발을 착용하고, 곤봉을 든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야즐르카야 신전에서 테슙은 세 갈래 번개를 들고 두 개의 산(남니와 Ḫ찌) 위에 서 있다. 말라티야에서 발견된 신 히타이트 부조에서는 황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삼중 번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프란스 위게르만은 벌거벗은 여신과 함께 있는 날씨 신의 일부 묘사가 메소포타미아의 아다드와 샬라가 아닌 테슙과 미상의 신을 나타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알레포의 날씨 신으로 추정되는 테슙의 독특한 도상학이 확인되었다. 그의 특징은 독수리 모양의 전차였다. 이 전차는 모델이 된 새처럼 빠르고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4. 2. 시리아-메소포타미아의 날씨 신
후르리 종교에서 테슙은 날씨의 신이자 신들의 왕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파괴적인 존재인 동시에 인류를 보호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테슙은 천둥과 번개를 다스렸으며, 신화에서는 폭풍, 번개, 비, 바람 등 다양한 기상 현상이 그의 무기로 등장한다. 그는 비를 내려 식물이 자라게 하는 역할도 했다. 식물 및 농업과의 연관성 때문에 강과 연결되기도 했다. 후르-히타이트 의례(CTH 776)에서는 테슙을 강과 샘을 만든 신으로 언급한다.
상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아나톨리아에서 날씨의 신이 높은 지위를 차지한 것은 농사를 지을 때 비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주로 관개에 의존하는 남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날씨의 신(이슈쿠르/아다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테슙의 왕권은 신과 인간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졌다. 후르리 전통에 따르면 테슙의 영역은 하늘과 땅을 모두 포함했지만, 바다와 지하 세계는 그에게 적대적인 곳이었다. 따라서 테슙은 "하늘과 땅의 주" (EN AN ''ú'' KI)라고 불렸다. 이 칭호는 시리아 전통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테슙에게 붙는 가장 일반적인 두 가지 칭호는 "주"를 뜻하는 ''ewri''와 "왕"을 뜻하는 ''šarri''였다. ''ewri''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역사적 통치자를 가리킬 때 쓰였고, ''šarri''는 신화의 영역에 국한되어 사용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테슙과 관련된 다른 칭호로는 ''šarri talawoži''(위대한 왕)와 ''šarri ennāže''(신들의 왕)이 있다. 테슙을 기리는 의식 중 하나가 ''šarrašši''(왕권)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어떤 문헌에서는 테슙을 ''eni ennāže''(신들의 신)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오트르 타라차(Piotr Taracha|de)는 테슙이 처음에는 후르리 판테온의 우두머리가 아니었으며, 기원전 2천년대 초에 날씨의 신이 점점 중요해지는 현상의 일부로 이러한 지위에 올랐다고 주장한다. 게르노트 빌헬름(Gernot Wilhelm|de) 역시 테슙이 기원전 2천년대 초에 이 역할을 얻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 그러나 다니엘 슈베머(Daniel Schwemer|de)는 테슙이 후르리 판테온의 최고 신으로서의 지위는 기록된 역사의 시작부터 그에게 속했으며, 그 반대의 주장은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기에 테슙을 부르는 신명이 적다는 것을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는데, Šauška나 쿠마르비와 같은 다른 주요 후르리 신들은 초기 후르리 인명 사전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비신명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슈베머의 견해는 알폰소 아르키도 지지했다.
4. 3. 아나톨리아의 날씨 신
후르리 종교에서 테슙은 날씨의 신이자 신들의 왕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파괴적인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인류를 보호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테슙은 천둥과 번개를 다스렸다. 신화에서 폭풍, 번개, 비, 바람 등 다양한 날씨 현상은 그의 무기로 묘사된다. 그는 비를 내려 식물이 자라도록 돕는 역할도 했다. 식물, 농업과의 연관성 때문에 테슙은 강과도 연결될 수 있었다. 후르-히타이트 의례(CTH 776)에서는 그를 강과 샘을 만든 창조자로 언급하기도 한다.
상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아나톨리아에서 날씨의 신이 높은 지위를 가졌던 이유는 농업이 비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로 관개 농업에 의존했던 남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날씨의 신(이슈쿠르/아다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5. 숭배
테슙의 이름은 수메르 문자 dIŠKUR로 표현될 수 있었다. 같은 기호는 /im/("바람", "폭풍")으로 읽을 수도 있었다. 수메르 문자는 고대 근동 연구 문헌에서 dIM으로 렌더링되기도 하지만, dIŠKUR 표기가 더 선호된다.dIŠKUR는 사르곤 이전 마리의 텍스트에서 처음 문서화되었지만, 이 필사 관습은 에블라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dIŠKUR가 어떤 신을 나타내는지 불확실하다. 셈어족 언어 화자와 후르리아인들이 상형 문자를 다르게 읽었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테슙의 이름을 나타내는 또 다른 상형 문자는 d10인데, dIŠKUR보다 늦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숫자를 사용하여 날씨 신의 이름을 렌더링하는 것은 기원전 15세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히에로글리프 루위아어 비문에서 테슙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두 개의 상형 문자는 DEUSL.318과 DEUSFORTIS이며, 이 필기 시스템의 기본 날씨 신 상형 문자인 DEUSTONITRUS와는 다르다.
테슙은 메소포타미아의 날씨 신 아다드와 유사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 사이의 동조화는 기원전 2천년기 북부 시리아와 상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했지만, 자료 부족으로 정확한 발전을 연구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 테슙은 알레포의 날씨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신 목록 ''An = Anum''에는 테슙과 아다드의 동일성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테슙은 수바르투와 관련된 신으로 직접 언급된다. ''헤담무의 노래''에서 테슙은 "인류의 운하 관리자"라는 칭호로 불리는데, 이는 바빌로니아 환경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누가 테슙의 아버지라는 지위 역시 메소포타미아 전통을 반영한다.
우가리트에서 테슙은 지역 날씨 신인 바알과 동일시되었다. 현대 학계에서는 신들 사이의 왕권 다툼에 초점을 맞춘 신화에 대한 비교가 이루어졌다. 바알과 테슙은 모두 바다의 신과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에마르에서 테슙과 바알의 신명이 모두 지역 날씨 신을 지칭하는 데 서로 바꿔서 사용되었다고 주장되었다.
5. 1. 주요 숭배지
테슙은 키주와트나 북부의 쿰만니에서 숭배받았다. 이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에 관한 여러 의례 텍스트는 알레포의 신학을 반영했다. 키즈와트나의 자료는 종종 그를 ''ḫamri''(''(é)ḫa-am-ri'')와 연관시키는데, 이는 상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 북부에서 서약과 사법 절차와 관련된 건물 유형이다. ''ḫamri''는 고 바빌론 제국의 샤두푸에서 아다드 숭배와 관련이 있었지만, 고 아시리아 시대의 자료는 이를 어떤 날씨 신 숭배와도 연결하지 않는다. 키즈와트나의 후르리안 전통에서 이러한 구조물은 이슈하라와도 연관될 수 있었다. ''ḫamri'' 건물이 사원의 일부였다는 징후는 없으며, 아마도 그와 관련된 개별 신들의 숭배는 서약, 정의 또는 조짐과의 연관성을 반영했을 것이다."테슙 마누찌"를 포함하여 쿰만니의 신들에게 헌정된, 왕실 부부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한 축제가 나중에 히타이트 제국에서 기념되었지만, 푸두헤파 시대의 사본에 따르면 그 지침은 키즈와트나에서 전해졌다.
13세기 우가리트의 텍스트는 테슙을 포함한 후르족 신들이 이 도시에서 숭배되었음을 나타낸다. 알폰소 아르키는 우가리트의 후르족 판테온 전체가 알레포의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오트르 타라차는 이것이 뚜렷한 전통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우가리트의 제물 목록은 후르족과 지역 전통의 융합을 보여주며, 엘이나 아낫과 같은 우가리트 신들이 후르족 맥락에서 등장하면서 두 판테온의 인물을 결합한다. 그러한 텍스트 중 하나는 테슙을 엘과 쿠수흐 사이에 위치시킨다. 또 다른 텍스트에서는 그에게 제물이 두 번 처방되는데, 두 경우 모두 엘과 쿠마르비에게 바쳐진 제물 사이에 위치한다. 샤우슈카와 아슈타르트를 모두 언급하는 후르어와 우가리트어의 조합으로 쓰여진 의례 텍스트에서, 그는 제물을 받는 신들의 열거에서 엘과 이 두 여신 중 전자의 사이에 위치한다. 전반적으로, 우가리트의 후르족 제물 목록에서 테슙의 위치는 엄격히 지역 전통을 반영하는 목록에서 바알의 위치와 비교할 수 있다.
테슙을 기원하는 수많은 신명칭이 우가리트 텍스트에서 증명된다. 2016년 현재, 이러한 이름을 가진 70명의 개인이 확인되었다. 이는 그를 이 사이트의 자료에서 증명된 신명칭에서 가장 흔한 다섯 신 중 하나로 만들며, 엘과 바알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레셰프와 샤파쉬와 비교할 수 있는 빈도로 나타난다.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이름 | 뜻 |
|---|---|
| 아나니-테슙 | 테슙이 기뻐했다 |
| 아리-테슙 | 테슙이 주었다 |
| 켈-테슙 | 테슙이 무사히 떠난다 |
| 탈미-테슙 | 테슙은 위대하다 |
| 우리-테슙 | 테슙이 여기 있다 |
| 일리-테슙 | 나의 신은 테슙이다 |
빌프레드 H. 반 솔트는 이 맥락에서 "테슙이라는 이름으로 후르족 판테온의 주신이 아니라 우가리트의 주신을 의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며, 후르족 신은 바알을 대신할 뿐이다. 그러나 메리 E. 벅은 우가리트 및 아모리트 명명 패턴을 분석한 결과 우가리트에서 지역 날씨 신과 테슙이 공존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그의 중요성이 이 도시를 다른 아모리트 지역과 구별한다고 언급한다.
5. 2. 히타이트의 수용
중기 히타이트 시대부터 히타이트는 후르리안 문화의 영향을 받아 테슙을 그들의 날씨 신인 타르훈나와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루위아인의 날씨 신인 타르훈츠 또한 테슙의 영향을 받았다. 히타이트인들은 테슙에 초점을 맞춘 후르리안 텍스트(찬송가, 기도문, 신화)를 채택하면서, 자신의 신의 이름으로 테슙의 이름을 대체하기도 했다.사무하의 샤우슈카 숭배와 관련된 의례 텍스트는 다양한 아나톨리아 날씨 신들을 테슙이라는 이름으로 언급하는 "해석"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신들의 완전한 통합은 히타이트 종교에서 드물었으며, 개별 날씨 신들은 별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테슙의 황소는 그와 함께 히타이트 판테온에 통합되었는데, 황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이동하는 날씨 신의 이미지는 후르리안의 영향으로 히타이트 문화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닐 수 있으며, 황소는 이미 구 히타이트 시대에 날씨 신의 상징적인 동물이었다. 후르리안 신들의 도입 이후 히타이트 텍스트에서 테슙은 슈왈리야트와 함께 나타날 수 있지만, 이 신은 타슈미슈에 해당하며, 이 아나톨리아 신과 타르훈나 사이에 이전 시대에 연결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히타이트 궁정 신학자들은 헤파트와 아린나의 태양 여신을 동일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아이디어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은 낮다. 기원전 1천년기에 테슙과 타르훈츠 사이의 동일시는 타발의 텍스트에서 암묵적으로 증명되는데, 이 텍스트에서는 타르훈츠가 헤파트의 남편으로 여겨진다.
테슙은 히타이트인들에게 숭배받았다. 수필룰리우마 1세에 의해 히타이트 땅에 처음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피오트르 타라차는 그의 소개를 키즈와트나에서 유래한 새로운 왕조의 시작과 연결한다. 히타이트 자료에서 테슙은 국가의 판테온이 아닌 왕조의 머리로 인식되었으며, 왕실 신으로 간주되었다.
하투사에서는 타파르와슈로 불리는 히타이트 날씨 신의 신전이 알레포의 테슙에게 재할당되었다. 이 도시에서 그의 위격에 대한 숭배는 후르리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 형태의 테슙과 그의 배우자 헤파트에 대한 숭배는 히타이트 종교에서 일정 수준의 중요성을 얻었다. 그들을 기리는 13개의 축제가 공동으로 열렸으며, 이는 매월 축하하는 연례 주기로 해석되었다.
왕조 신으로서 테슙은 샤피누와의 지역 판테온의 머리로 인식되었으며, 무르실리 2세가 통치 말기에 카타파로 이주했을 때 그는 테슙을 이 도시에 소개했고, 그의 숭배는 지역 신들의 숭배를 능가했다. 아린나에서 무와탈리 2세가 통치하는 동안 후르리 형용사로 자격을 얻은 테슙의 두 위격, 즉 ''에흘리비''("구원의")와 ''슈후르리비''("생명의")가 지역 판테온과 함께 숭배되었다. 안쿠와에서 투달리야 4세의 통치 기간 동안 테슙은 AN.TAḪ.ŠUM 축제 기간 동안 숭배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에서 숭배된 테슙의 다른 위격으로는 키즈와트나의 테슙, 마누지의 테슙, 샤피누와의 테슙, 두르미타의 테슙이 있었다. 또한 ''무와탈리''("강력한") 및 ''피하샤시''("번개의")라는 용어로 지정된 날씨 신은 피오트르 타라차에 따르면 테슙의 형태라고 간주되어야 한다.
테슙은 야즐르카야 신전의 부조에서 확인된 후르리 신들 중 하나이며, 그 중심(42)은 두 산 신의 목덜미에 서 있는 그를 가족과 함께 묘사한다. 히타이트의 영향으로 인해 테슙은 에마르의 의례 텍스트에 언급된 신들 중 하나이다.
5. 3. 루위아의 수용
키주와트나의 쿠만니에서 테슙은 지역 신인 마누지와 동일시되었다. 후자는 후르리 여신 레르리의 배우자로 여겨졌다.중기 히타이트 시대부터 히타이트는 문화에 대한 후르리인의 영향이 커지면서 테슙을 그들의 날씨 신인 타르훈나와 연관시키게 되었다. 루위아인의 날씨 신인 타르훈츠의 성격 또한 테슙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아나톨리아 날씨 신들, 그들의 후르리안 대응 신, 그리고 하티의 타루와 메소포타미아의 아다드와 같은 다른 날씨 신들 사이의 특징 교환을 용이하게 한 요인은 그들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동일한 수메르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히타이트인들은 테슙에 초점을 맞춘 후르리안 텍스트(찬송가, 기도문, 신화)를 채택했지만, 자신의 유사한 신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대체했다. 사무하의 샤우슈카 숭배와 관련된 의례 텍스트와 같은 출처는 피오트르 타라차가 "해석"이라고 설명하는 사례, 즉 테슙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아나톨리아 날씨 신들을 언급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게리 백먼이 언급했듯이, 신들의 완전한 통합은 히타이트 종교에서 드물었으며, 일반적으로 "늦고 예외적"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개별 날씨 신들은 별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테슙의 황소는 그와 함께 히타이트 판테온에 통합되었지만, 황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이동하는 날씨 신의 이미지는 후르리안의 영향으로 히타이트 문화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닐 수 있으며, 황소는 이미 구 히타이트 시대에 날씨 신의 상징적인 동물이었다. 후르리안 신들의 도입 이후 히타이트 텍스트에서 테슙은 슈왈리야트와 함께 나타날 수 있지만, 이 신은 타슈미슈에 해당하며, 이 아나톨리아 신과 타르훈나 사이에 이전 시대에 연결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들의 병치는 키주와트나에서 수입된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 히타이트 궁정 신학자들은 표준 히타이트 판테온과 후르리안 신들을 포함하는 왕조 판테온을 조화시키기 위해 헤파트와 아린나의 태양 여신을 동일시하려는 시도를 했다. 푸두헤파의 기도문에서 증명되지만, 피오트르 타라차에 따르면 이러한 아이디어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
기원전 1천년기에 테슙과 타르훈츠 사이의 동일시는 후자가 헤파트의 남편으로 여겨지게 된 타발의 텍스트에서 암묵적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만프레트 후터에 따르면 이 여신 숭배의 "루위아화된" 형태에 대해 이전 시대에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루위아의 영향을 통해 그녀는 카르케미쉬에서도 타르훈츠와 함께 숭배되었지만, 아람인의 종교에 통합되지 않았으며 결국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걸쳐 시리아의 출처에서 점차 사라졌다. 테슙의 탄생에 대한 신화의 메아리가 아르수즈에서 온 상형 문자의 루위안 비문에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비문은 남성 신 쿠마르마를 타르훈츠의 어머니로 지칭하는 반면, 후르리안 찬송가는 쿠마르비를 테슙의 어머니로 언급한다.
6. 신화
아라파 (Arrapḫum) 또는 알-일라니("신의 도시")는 현대의 키르쿠크로, 고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날씨 신의 숭배 중심지로 알려졌다. 지역 사원은 티그리스 동쪽, 리틀 자브 근처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성소로 여겨졌다. 샴시-아다드 1세 통치 기간 동안 이미 지역 신이 테슈브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비문 중 하나는 날씨 신과 태양신을 기리기 위해 아라파에서 열린 축제(''ḫumṭum'') 동안 행해진 희생에 대해 언급하는데, 사용된 수메르어가 일반적으로 아다드와 샤마쉬로 해석되지만, 신들이 테슈브와 시미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샴시-아다드 1세와 그의 후계자 야스마-아두 모두 아라파의 신을 아다드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다니엘 슈베머에 따르면, 그는 당시 슈샤라에 살던 사람들에게 테슈브라고 불렸는데, 이 지역 주민들은 그에게 두 개의 청동 용기를 바쳤으며, 주로 후르족이었다.
지역 판테온의 구조를 포함하여 아라파 왕국의 종교에 대한 정보는 특정 신들의 숭배를 위해 마련된 배급 목록과 같은 행정 텍스트에서만 알려져 있다. 기름 배급 목록에서 테슈브는 항상 니네베의 샤우슈카와 함께 나타난다. 또한, 현지 달력의 네 번째 달(6월 또는 7월에 해당)에 dIŠKUR 로고그램으로 지정된 신을 기리는 축제가 열렸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테슈브 숭배와 관련된 건축 프로젝트나 봉헌물에 대한 비문은 지역 왕에게서 발견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러한 활동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텍스트 증거의 부족은 우연일 수 있다.,
테슈브는 아라파 자체 근처의 다른 두 지역인 누지 (요르간테페)와 쿠르하하니 (텔 알-파카르)의 텍스트에서도 증명된다. 전자의 도시에서 발굴된 이중 사원은 그와 샤우슈카에게 공동으로 헌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는 이쉬타르 사원이었을 수도 있으며, 후르족이 기원전 19세기에 정착하면서 후르족의 성격을 띠게 되었을 수 있다. 아마도 이 과정은 원래 가수르로 알려졌던 도시의 이름 변경 또는 재건과 동시대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테슈브의 성직자들은 누지 텍스트에서 언급되는데, 여기에는 ''상구'' 사제와 ''엔투'' 여사제가 포함된다. 그는 힐마니와 울람메, 그리고 틸라 (고 바빌로니아 기록에 따르면 북동부 상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틸레와 동일할 수 있음) 와 같은 같은 지역의 다른 정착지에서도 숭배되었다. 아라파 왕국의 또 다른 도시인 슈리니웨에서는 테슈브와 달의 신 쿠슈에게 공동으로 헌정된 이중 사원이 존재했다.
아라파 왕국에서 테슈브 숭배의 중요성은 사회 최고 계층 구성원을 포함하여 그를 부르는 많은 신명에서 반영된다. 테슈브 이름은 왕족 구성원 사이에서도 두드러지며, 알려진 거의 모든 왕과 절반의 왕자들이 그 이름을 사용했다. 확인된 이름에는 아립-테슈브("테슈브가 주었다"), 에겔-테슈브("구원하라, 테슈브"), 파가르-테슈브("테슈브는 좋다"), 판드-테슈브("테슈브가 옳게 만든다"), 히즈미-테슈브("테슈브는 빛난다"), 키비-테슈브("테슈브가 보냈다"), 타디프-테슈브("테슈브가 사랑했다"), 테슈브-아달("테슈브는 강하다"), 테슈브-에우리("테슈브는 주님이다"), 테슈브-마디("테슈브는 지혜를 [소유한다]"), 툰-테슈브("테슈브는 할 수 있었다"), 투피-테슈브("테슈브가 여기 있다"), 운-테슈브("테슈브가 왔다" 또는 "그[아이]가 왔다, 오 테슈브"), 애칭 테쇼야, 그리고 테슈브-니라리("테슈브는 나의 도움이다") 또는 와라드-테슈브("테슈브의 종")와 같은 드문 혼성 후르-아카드 이름이 있다., 테슈브를 부르는 유사한 신명은 동시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유적, 예를 들어 니푸르의 텍스트에서도 증명되었다. 카시트 시대의 이 도시에서 텍스트에서는 15개의 다른 사례가 증명되었는데, 이는 테슈브가 이 코퍼스에서 신명에 나타나는 가장 흔한 비메소포타미아 비카시트 신이며, 전체적으로 16번째로 흔한 신임을 나타낸다.
알레포의 날씨 신전은 이미 사르곤 시대보다 앞선 에블라의 문서에서 주요 성소로 여겨졌다. 마리의 조약에서, 알레포와 쿰메의 날씨 신들은 서로 분리되어 언급되며, 가장 중요한 두 날씨 신으로 언급된다. 이 지역의 후르리화는 기원전 15세기와 14세기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부 시리아에서 후르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원래 아다드였던 그곳에서 숭배되던 신은 대신 테슙으로 동일시되었다. 알폰소 아르키에 따르면, 그는 사실상 더 오래된 신 위에 겹쳐졌다. 예를 들어, 원래 'Ḫiyaru' 달에 아다드에게 바쳐졌던 축제는 나중에 테슙을 기리기 위해 열렸다.
게르노트 빌헬름에 따르면, 알레포와 관련된 테슙의 위격은 서쪽의 하투사와 우가리트에서 동쪽의 누지에 이르기까지 증언을 통해 이 신의 "가장 중요한 지역 변종"이 되었다. 누지의 증거에는 dIŠKUR ''ḫalba=ġe''에 대한 언급과 Ḫalbae 또는 Ḫarbaḫe라는 신, 즉 "신성한 할라베안"(알레포의 아카드 이름인 할라브)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같은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알파벳 문자로 쓰여진 우가리트 문서에서, 알레포의 테슙은 tṯb ḫlbġ로 나타난다. 테슙과 관련된 것을 포함하여 알레포의 전통은 키주와트나에도 도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레포의 날씨 신전은 기원전 1100년경에 루위아인의 왕자 타이터에 의해 개조되었으며, 그는 기원전 14세기 또는 13세기에 제작된 신의 더 오래된 묘사 옆에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부조를 추가했다.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지만, 도시의 주요 신은 더 이상 테슙이 아니었다; 대신 지역 신은 상형 문자 루위아어 비문에서는 타르훈즈, 아람어 문서에서는 하다드,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아카드어 문서에서는 아다드로 확인되었다.
테슙에 초점을 맞춘 가장 잘 알려진 신화는 "쿠마르비 주기"에 속하며, 왕위 등극과 그 후 쿠마르비의 책략으로 인해 그가 직면하는 도전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신화는 ''탄생의 노래'', ''람마의 노래'', ''은의 노래'', ''헤담무의 노래'', ''울리쿰미의 노래'' 등이 있다.
테슙과 관련된 ''탄생의 노래''의 추가 단편은 점토판 KUB 33.105에 보존되어 있을 수 있으며, 여기에는 그와 아누 사이의 대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쿠마르비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그가 일곱 번 하늘로, 일곱 번 땅으로, 일곱 번 산과 강으로 보내졌다고 묘사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지혜는 나라에게 빚지고, 자신의 남성다움은 아누에게 빚졌다고 말하지만, 이 부분의 나머지는 끊어져 있다.
''바다의 노래''가 ''쿠마르비 주기''에 속하는 또 다른 신화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노래는 하찌 산을 기리는 축제 기간에 공연되었다. 후르리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줄거리가 완전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의인화된 바다와 테슙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안 러더포드는 이 노래가 ''헤담무의 노래'' 이전에 위치할 수 있으며, 아마도 같은 이야기의 전반부에 해당하며, 테슙에게 바다가 패배한 것이 쿠마르비와 힘을 합치게 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대안으로 그는 이 노래를 ''탄생의 노래''와 ''LAMMA의 노래'' 사이에 위치시킬 것을 제안한다. 반면에 다니엘 슈베머는 테슙과 바다 사이의 갈등이 테슙을 중심으로 한 신화 사이클의 마지막을 구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승리가 마침내 그를 신들의 왕으로 확정했을 것이라고 본다.
''바다의 노래''와 관련되고, 마찬가지로 이 존재와 테슙의 갈등을 다루는 텍스트는 KBo 26.105일 수 있는데, 쿠마르비가 다른 신들에게 바다에 공물을 바치라고 촉구하는 구절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아스타르테와 바다''와 유사한 이야기로 간주된다. 이는 같은 신화의 히타이트식 각색일 수 있다. 테슙과 바다 사이의 갈등과 후자의 패배에 대한 언급은 또한 피샤이사의 신화(KUB 33.108)에도 나타나며, 이 신화는 또한 반역적인 산의 신들이 날씨의 신이 사용한 무기를 훔쳤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테슙과 산들 사이의 갈등은 다른 곳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지만, 남니와 하찌의 이름이 피샤이사 신화에서 파편적인 맥락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이 두 신의 굴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신화 ''에아와 짐승''이 ''쿠마르비 사이클''에 속하는 또 다른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신화는 ''탄생의 노래''와 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거나, 적어도 이 작품에서 알려진 정보를 반복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은, 이 신화가 테슙을 찬양하는 찬가와 같은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 신화의 줄거리는 곧 태어날 신에 대한 예언을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동물인 ''수팔란자''가 에아에게 이 예언을 전한다. 이 신은 테슙으로 확인될 수 있으며, 예언은 쿠마르비와의 갈등과 그의 왕위 등극에 관한 것이다., 상대방을 지하 세계로 보내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는 후르리안 전통에서도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모티프이다. 예를 들어, 원시 신들을 지하 세계로 몰아넣는 것은 또한 정화 의식의 한 구절(KBo 10.45 + ABoT 2.30)에서 언급되는데, 이 구절은 또한 날씨의 신이 소나 양이 아닌 새를 그들에게 적합한 제물로 여기는 전통을 확립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수팔란자는 또한 테슙으로 추정되는 신이 뱀, ''MUŠ일루얀카''를 “끌어낼” 것이라고 언급하지만, 이는 또한 일루얀카라는 이름을 가진 적대자가 등장하는 기존의 히타이트 신화를 언급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징후는 없다. 해당 이야기(CTH 321)는 하티안 종교에서 파생된 네릭시의 전통과 관련이 있었다. 이안 러더포드는 히타이트의 일루얀카를 의미한다고 가정하려면, 엄격하게 히타이트 전통과의 어느 정도의 혼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야 하며, 또한 관련 신화가 그를 어떤 날씨 신의 권력 상승과 관련된 인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또한 그 구절이 ''헤다무의 노래''에 대한 언급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텍스트 KBo 22.87은 ''쿠마르비 사이클''에 속하는 또 다른 신화라고 주장되어 왔다. 이 텍스트는 엘타라, 즉 원시 신들 중 한 명이 신들의 왕으로 군림했던 기간을 묘사한다., 생존한 두 줄에는 테슙이 언급되어 있는데, 한 줄에서는 그가 엘타라처럼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이며, 다른 줄에서는 여러 하인들이 그에게 복종한다. 안나 마리아 폴바니는 엘타라의 신화가 테슙의 신들의 왕으로서의 최종 즉위에 관한 것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6. 1. 테슙과 쿠마르비
테슙을 중심으로 한 가장 잘 알려진 신화는 "쿠마르비 주기"에 속한다. 이는 테슙의 왕위 등극과 그 후 쿠마르비의 계략으로 인해 겪는 시련을 묘사한다. 카를로 코르티는 현대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를 테슙의 주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이 개명 제안은 피오트르 타라차도 지지한다. 에릭 반 동겐은 이전 명칭을 재고할 필요가 있으며, 쿠마르비보다는 테슙을 주요 등장인물로 인정하지만, 단일 신보다는 천상의 왕권을 더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제목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긴다.원래 주기를 구성했던 신화가 몇 개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테슙과 쿠마르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신화가 하나 이상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 문헌에서 인용되는 재구성된 일반적인 순서는 ''탄생의 노래'', ''람마의 노래'', ''은의 노래'', ''헤담무의 노래'', ''울리쿰미의 노래''의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알폰소 아르키에 따르면, 마지막 세 가지 신화는 적대자의 위협적인 본질이 증가하는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지만, 이들이 일관된 전체를 형성한다고 가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바다의 노래''가 주기의 일부였는지, 그리고 이 분류가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는 불확실하며,, ''Ea와 야수'', 신 엘타라에 초점을 맞춘 단편을 포함하여, 이러한 이야기와 관련된 여러 추가 단편 텍스트가 확인되었다. 개별 신화는 모두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쿠마르비의 테슙에 대한 음모가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묘사되지만, 결국 젊은 신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한다. 갈등의 주요 참가자들은 다양한 동맹국의 도움을 받는데, 테슙은 샤우슈카, 시미게, 쿠슈, 헤파트, 타키투, 타슈미슈, 아슈타비 등 하늘과 관련된 인물의 지원을 받고, 쿠마르비는 지하 세계 또는 바다에 거주하는 인물들의 지원을 받는다.
히타이트어로 된 테슙에 관한 신화 번역본은 그의 이름을 타르훈나로 대체할 수 있지만, 게리 백먼에 따르면, 그들 중 어느 것이 평균적인 히타이트인이나 심지어 왕실의 측근들에게 알려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 줄거리는 히타이트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아 북부와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는 후르리인의 믿음을 반영하며, 티그리스, 무키쉬, 하찌 산과 같은 위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이루어진다. 이들 신화에서 흔히 언급되는 "천상의 왕권" 개념은 히타이트 신학에서는 대체로 부재했으며, "문학적 차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 후르리 신화는 시리아 북부에서 수입되어 서기 훈련의 한 형태로, 아마도 궁정 오락으로 사용하기 위해 히타이트어로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일부 각색은 투달리야 2세 또는 투달리야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사피누와에서 준비되었을 수 있다.
6. 2. 해방의 노래
테슙은 '해방의 노래'(Song of Release)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이며, '해방 서사시'(Epic of Freeing)로도 알려져 있다. 후르족 신화에서처럼 그는 신들의 왕이자 쿰메의 주인으로 묘사된다.'해방의 노래'는 기원전 1400년경 하투사의 서기관들이 후르 원본과 히타이트어 번역을 짝지어 만든 여러 개의 이중 언어 판본 조각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원래는 이보다 더 이른 시기, 아마도 기원전 16세기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번역은 후르어를 배우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신화의 사건 순서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그 줄거리에 대한 해석은 학계의 논쟁거리이다. 유일하게 고정된 부분 중 하나는 서시이다. 서시에서는 줄거리의 주요 역할을 하는 신들을 소개한다.
같은 부분에서는 또한 니네베 출신으로 알려진 피지갈라라는 이름의 남자를 소개하지만, 그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자료에서는 그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다.
'해방의 노래'의 중심 주제는 에블라에 노예로 갇힌 이징갈리쉬 도시의 주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게르노트 빌헬름에 따르면, 그들은 빚으로 노예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 포로로 확인되지만, 이전의 학문에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맞다는 가정하에 텍스트를 해석하기도 했다. 에바 폰 다소도 비슷한 관찰을 했는데, 그녀는 도시의 전체 인구가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이는 전쟁에서의 정복을 반영한다고 언급했다. 이징갈리쉬 도시는 역사적 기록에서도 증명되었으며, 아마도 어느 시점에는 에블라의 조공국 또는 종속 영토였을 것이다.
한 조각에서 테슙은 에블라의 왕, 메기에게 이징갈리쉬의 노예 주민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이미 여러 통치자 밑에서 섬겼던 푸라라는 인물을 지목한다. 그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도시를 축복하고, 거부당할 경우 파괴하겠다고 제안한다.
이 신화에 등장하는 다른 인간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푸라와 메기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며, 후자의 이름은 역사적인 에블라 통치자들이 사용했던 칭호에서 파생되었다.
메기는 이후 테슙의 메시지를 도시의 원로원에게 전달하고, 그곳에서 연설가인 자잘라가 그 요청을 따르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테슙 자신이 자유를 잃었는지 조롱하며, 만약 그가 어려움에 처했다면, 그와 원로원은 빚, 질병 또는 다른 요인에 관계없이 그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이징갈리쉬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메기는 그 후 테슙을 다시 만난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상황을 설명하고 텍스트가 끊어지기 전에 스스로를 정화한다. 조각의 보존 상태로 인해 에블라가 그 후에 테슙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에바 폰 다소에 따르면,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의 위협을 이행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텍스트는 원인론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시간적 차이로 인해 이 텍스트가 초기 왕조 시대의 역사를 반영할 가능성은 낮으며, 묘사된 사건은 대신 기원전 1600년경에 발생한 중기 청동기 시대 에블라의 파괴와 관련될 수 있다.
메리 R. 바흐바로바는 적어도 일부 노예는 테슙의 종이었으며, 자잘라의 연설은 단지 그를 위한 적절한 섬김이 부재한 상태에서 신의 고통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또한 푸라가 동료들과 달리 사망한 통치자들의 장례 의례를 담당했다고 추정한다. 바흐바로바의 해석은 폰 다소에 의해 비판을 받았는데, 그녀는 자잘라의 연설을 종교적 의무의 소홀함으로 인해 발생한 테슙의 상태에 대한 묘사로 잘못 해석했으며,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을 에블라에 고유하며 전담 직원이 수행하는 것으로 잘못 취급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대신 신들이 정의를 집행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테슙이 단지 이징갈리쉬 사람들을 대신하여 개입했으며, 그들의 노예화는 부당한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주장한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구절에는 테슙과 이슈하라의 대화 형식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있다. 알폰소 아르치에 따르면, 그녀의 목표는 에블라를 보호하는 것이며, 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에블라와 연관되어 왔음을 반영한다. 최초의 기원 밖에서는 이것이 그녀가 등장하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구절이다.
텍스트의 또 다른 부분은 테슙이 저승에서 알라니를 방문하는 내용을 다룬다. 타슈미슈(히타이트어 버전에서는 슈왈리야트)와 원시 신들과 함께, 다른 곳에서는 일관되게 그의 반대자로 묘사되며, 그녀가 주최한 연회에 참여하여 그녀가 직접 손님들을 접대한다. 이 에피소드의 의미와 에블라와 노예제에 초점을 맞춘 텍스트의 부분들과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으며, 여러 해석이 제안되었다. 에바 폰 다소는 에블라가 파괴될 것이라는 선언에 이어 테슙이 알라니를 만나는 것은 그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녀의 영역에 많은 새로운 거주민이 들어와야 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게르노트 빌헬름은 에블라가 파괴된 후에 일어나는 일이며, 테슙이 분노를 다루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 지역의 문헌에서 잘 증명된 모티프를 반영한다고 제안한다. 볼케르트 하스는 테슙이 저승에 갇혔다고 추정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연회에서 음식을 먹은 날씨 신은 그 결과 죽음의 영역에 갇혔다. 그러나 빌헬름이 지적했듯이, 텍스트에서 테슙의 투옥이나 석방에 대한 실제 언급은 식별할 수 없다. 하스의 제안에 대해 비슷한 비판적 평가를 한 폰 다소는 그의 텍스트 해석을 "모순적"이라고 부르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텍스트에 없는 가상적인 요소, 예를 들어 투옥으로 이어지는 저승의 음식과 같은 모티프를 삽입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대신 빌헬름은 이 연회가 죽은 통치자들이 저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례를 반영하며, 저승에 거주하는 신들이 조상들이 필멸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를 맞이한다고 제안한다. 해리 A. 호프너는 그것이 천상의 신과 저승의 신 사이의 일시적인 화해를 반영한다고 제안한다.
발문으로 테슙이 저승을 방문하는 것을 묘사한 부분의 현존하는 사본 KBo 32.13은, 이를 '해방의 노래'의 일부로 지정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적어도 한 개의 태블릿이 더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나머지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6. 3. 인간 영웅에 대한 이야기
미탄니에서 테슙 숭배에 대한 물질적 증거는 제한적이지만, 널리 퍼졌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투슈라타는 아멘호테프 3세와 아멘호테프 4세에게 보낸 편지(아마르나 서신)에서 테슙을 자신의 주로 언급하고, 축복 형식에서 주신들의 우두머리인 그와 샤우슈카를 소환하며,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했던 아문(후르리안어로 "아마누")도 함께 소환한다. 미탄니 영토 내 테슙의 주요 숭배 중심지는 카하트, 와슈칸니, 우후슈마니, 이리데였다. 그와 관련된 그의 위격들은 샤티와자 왕의 조약에서 증인으로 모두 열거되었다. 이러한 현현의 열거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 신들의 열거는 정치적 차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왕국의 핵심 영토로 간주되는 지역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의도되었다.셰크나 근처에 위치한 카하트(현대 텔 바리)는 미탄니 국가의 중심부에 위치한 테슙과 관련된 주요 지역이었다. 이미 구 바빌로니아 시대 동안, 샴시-아다드 1세의 통치 시기부터 날씨 신의 숭배 중심지로 인식되었지만, 기원전 15세기에 미탄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가 테슙으로 확인되었다는 증거는 없으며, 짐리-림의 통치 시대의 문서에 따르면 이 도시의 통치자들은 후르리안인이 아닌 아모리트인이었다. 샤티와자 조약에서 테슙은 카하트의 "''쿠린누''의 주인"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예배당 또는 상징의 한 종류로 추정된다. 이 도시에는 신전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살마네세르 1세가 그곳에서 숭배되었던 신을 아다드로 언급하면서 신전의 재건을 기념하는 비문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같은 조약에 열거된 나머지 숭배 중심지 중 와슈칸니는 제국의 수도였으며, 신 아시리아 제국 자료에서 아다드의 숭배 중심지로 증명된 시카니와 동일할 수 있으며, 우후슈마니는 다른 곳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리데는 테슙의 지역적 위격이 "''카마루''의 주인"(''쿠린누''와 마찬가지로 상징 또는 신전의 일종으로 추정)이라고 불렸는데, 텔 반다르 칸에 해당할 수 있다. 중 아시리아 제국 자료에는 테슙의 미탄니 관련 숭배 중심지였을 수 있는 두 개의 도시, 즉 슈라와 이사나가 언급되어 있다. 전자는 단 하나의 자료에서만 증명되었으며, 현대 사부르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지역의 텍스트에는 후르리안 이름을 가진 날씨 신과 도시 신, 즉 "슈라에 속하는" 슈리하가 언급되어 있다.
테슙에 대한 언급은 아푸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게리 베크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신화와는 다른 장르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는 후르-히타이트 문헌에서 "이야기"라는 용어는 신성한 주인공이 아닌 인간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론적 함의가 없는 서사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며, 이는 신화와 대조된다고 말한다. 테슙을 언급하는 구절은 다양한 신들의 이름과 거주지를 열거하며, 그의 경우 쿰메가 언급된다. 또한 태양신(시파르), 달의 신(쿠지나), 샤우슈카(니네베), 나나야(키쉬시나) 및 마르두크(바빌론)가 언급된다. 그들의 숭배 중심지와 함께 신들을 열거하는 유사한 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톨리아의 다양한 텍스트 장르에서 잘 나타난다.
후르어 버전의 ''길가메시 서사시''의 단편에서도 테슙이 언급된다. 베크만은 이 텍스트의 전체 번역과 해석은 현재 불가능하지만, 테슙은 그 안에서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아카드어 원본과 히타이트어 각색본과 대조될 수 있는데, 여기서 각 날씨 신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6. 4. 비교 신화 연구
티구나눔에서 발견된 텍스트에는 테슙을 언급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알려져 있다. 티구나눔은 투르 압딘 북쪽, 티그리스강 남쪽 또는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불법적인 발굴로 인해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투실리 1세 통치 기간 동안 이 도시의 왕은 투니브-테슙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왕의 군대에 속한 남성들의 후르리안 이름을 열거한 티구나니 프리즘에는 테슙을 언급하는 9개의 신을 섬기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테슙은 신자르 산맥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인 하부라툼에서도 숭배되었는데, 그곳은 이미 짐리-림 시대에 후르리안 왕 나니프-샤우리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의 편지가 짐리-림에게 보내졌을 때 이름이 표의 문자로 기록되었으므로, 짐리-림은 사용된 수메르 문자를 아다드로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텔 알-리마 (카타라)의 텍스트에는 테슙을 언급하는 신을 섬기는 이름들이 증명되었지만 희귀하며,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예는 아립-테슙("테슙이 주었다")과 테슙-에우리("테슙이 주님이다")이다.
1944년, 이그나스 J. 겔브는 테르카에서 나온 카나 왕국의 왕 슈누흐루-암무의 후기 구 바빌로니아 비문에 "후르리안의 다간"(''ša'' ḪAR''-ri'', 종종 ''ša ḫurri''로 해석됨)으로 지정된 신이 테슙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오늘날 이 견해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대부분의 저자는 대신 그를 쿠마르비로 간주한다. 루이스 펠리우는 후르리안 신을 의미한다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대신 에마르에서 텍스트에서 증명된 dKUR ''en ḫa-ar-ri''와 유사한 다간의 위격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한다.
에흘리-테슙이라는 인물은 투쿨티-니누르타 1세 통치 기간 동안 반 아시리아 동맹에 속한 국가인 알제(알셰)의 왕이었다.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 통치 기간 동안 상 티그리스 지역의 다양한 소국을 통치한 테슙을 언급하는 이름을 가진 여러 왕들이 있었다. 슈프리아의 왕들도 그를 언급하는 신을 섬기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예를 들어 에사르하돈 통치 시대의 텍스트에서 증명된다. 타바툼은 어느 시점에서 아키트-테슙이라는 인물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이는 그의 후손 아다드-벨-가베의 비문에서 나타난다.
테슙의 왕위 쟁탈 신화와 그리스 신화의 모티프 사이의 유사점이 지적되었으며, 그의 판테온 수장 자리에 대한 등극은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제시된 제우스의 역사와 비교되었다. 게리 백만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유사성은 천상의 왕위 쟁탈전이 원시 인도유럽 신화 기원의 서사시라는 징후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지중해 전역에서 알려진 "신학적 '지역적 특징'"임을 나타낸다. 또한 아테나가 제우스의 갈라진 두개골에서 태어난 신화가 테슙의 탄생을 본뜬 것으로 여겨진다. 아미르 길란에 따르면 테슙에 대한 신화의 특정 요소의 파생물은 기원전 1천년기에 알레포의 초기 신학적 측면을 유지했던 왈리스틴 왕국을 통해 그리스에 도달했을 수 있으며, 이는 예를 들어 아르수스의 비문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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