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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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 역사는 폴리네시아인인 마오리족의 정착으로 시작되어, 17세기 유럽인 아벌 타스만의 발견, 18세기 제임스 쿡의 탐험을 거치며 유럽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 체결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마오리 전쟁과 토지 몰수를 겪었다. 1852년 자치 정부를 수립하고, 1907년 자치령으로 승격되었으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하고 1950년 한국 전쟁에 참전했으며, 1962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80년대 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고, 1980년대 이후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으며, 21세기에는 관광 산업과 서비스 산업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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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자치령은 1907년 뉴질랜드 식민지가 자치령으로 승격되며 시작되었으나, 국방, 헌법 개정 등 일부 권한은 영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었고, 1947년 웨스트민스터 법령 채택과 1986년 헌법 제정을 통해 완전한 독립 국가가 되었다. - 뉴질랜드의 역사 - 와이탕이 조약
와이탕이 조약은 1840년 영국과 마오리 족장들 사이에 체결되어 뉴질랜드의 주권을 영국에 넘기고 마오리 족의 권리와 토지 소유권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영어와 마오리어 번역상의 차이로 해석 논쟁이 지속되고, 마오리족 권리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뉴질랜드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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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오리족의 정착과 초기 역사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동폴리네시아계 마오리족으로, 10세기 후반경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거대한 새인 모아 사냥을 주 생업으로 삼았으나, 모아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14세기경 생활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마오리족은 모아를 쫓아 북섬에서 뉴질랜드 남섬으로 점차 거주지를 넓혔다. 모아 사냥은 1300년대를 정점으로 쇠퇴하여 1550년경에는 거의 멸종하기에 이르렀다.
모아는 마오리족에게 식량뿐만 아니라, 뼈는 낚시 바늘, 장신구, 공구로, 깃털은 케이프나 목걸이로 활용되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233]
모아가 줄어들면서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에서 가져온 토란과 고구마를 재배하고, 어패류와 해수를 포획하며 생활 기반을 다졌다.[234] 이들은 지리적, 기후적 환경에 따라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는데, 북부에서는 식물 재배를 중심으로, 남부와 채텀 제도에서는 지방이 많은 해수를 중요한 식량 자원으로 삼았다.[235]
1500년경부터는 참호, 나무 울타리, 성벽을 갖춘 파(요새)가 급속히 보급되었다.[235] 이는 부족 간의 전투가 빈번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뉴질랜드 전역, 특히 북섬 북부에 6,000개가 넘는 파 유적이 남아있다.[235]
2. 1. 폴리네시아인의 이주와 정착
DNA 검사 결과 약간의 멜라네시아인의 특징이 확인되지만,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폴리네시아 동쪽에서 온 폴리네시아인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1000년에서 1300년대 사이에 뉴질랜드에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착민들의 후손은 마오리로 알려졌으며,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였다.언어적,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인간은 동남아시아를 거쳐 타이완에서 멜라네시아로 이주한 후, 사모아와 통가에서 하와이, 마르키즈 제도, 이스터 섬, 소시에티 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섬들을 식민화하는 발견의 파동과 물결을 통해 태평양으로 퍼져나갔다.[5] 마오리족 구전에 따르면, 영웅적인 탐험가 쿠페가 뉴질랜드 또는 "아오테아로아"를 처음 발견했다.[6]
타라웨라 산 분화구에서 1314년경에 퇴적된 화산재 층인 카하로아 테프라보다 더 오래된 인골, 유물 또는 구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8] 쥐뼈, 쥐가 갉아먹은 조개 껍데기, 씨앗 껍데기 표본은 타라웨라 분화구 이후의 시기를 나타냈으며, 약 10년 정도 앞선 세 개의 표본을 제외하고는 더 오래된 시기를 나타내지 않았다.[9]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분화구 폭발 직전의 광범위한 산불에 대한 꽃가루 증거 또한 분화구 폭발 전의 인간 존재를 나타낼 수 있다.[10][11] 1999년에 일부 키오레(폴리네시아 쥐) 뼈의 연대를 서기 100년경으로 측정한[12] 것은 나중에 오류로 밝혀졌다. 새로운 쥐뼈(및 쥐가 갉아먹은 조개 껍데기 및 나무 씨앗 껍데기) 표본은 대부분 타라웨라 분화구 이후의 연대를 나타냈으며, 단 세 개의 표본만이 약간 더 이른 연대를 나타냈다.[13] 또한, 마오리 인구 내 미토콘드리아 DNA 변이는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이 1250년에서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 열도에 처음 정착했음을 시사한다.[14][15] 따라서 현재의 의견은 1314년 이전에 일부 정착민이 도착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주요 정착 시기는 그 후 수십 년 동안이었으며, 아마도 계획된 대규모 이주가 있었을 것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의 뉴질랜드 정착이 계획적이고 의도적이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폭넓은 합의이기도 하다.[16][17][18][19][20]
이후 수세기에 걸쳐 정착민들은 오늘날 마오리로 알려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많은 설립 카누 (와카)의 도착 시기를 약 1350년으로 추정하는 전통적인 계보(whakapapa|와카파파mi)를 통해 많은 마오리족이 그들의 기원을 추적한다.[21][22]
약 1500년에 뉴질랜드 동부의 작은 채텀 제도에 정착하면서 모리오리가 생겨났다. 언어적 증거에 따르면 모리오리는 본토의 마오리족이 동쪽으로 진출한 것이다.[23] 마오리 이전의 문명이 뉴질랜드 본토에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다.[24][25]
최초의 정착민들은 뉴질랜드에서 풍부했던 모아와 같은 대형 동물을 사냥했다. 모아는 1500년경에 멸종된 거대한 날지 못하는 ratite였다. 모아와 다른 대형 동물이 희귀해지거나 멸종되면서, 마오리 문화는 지역적 차이를 보이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토란과 쿠마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원예가 더 중요해졌다. 남섬 남부에서는 고사리 뿌리와 같은 야생 식물이 종종 이용되었고, 양배추 나무는 식량으로 수확되어 재배되었다. 마오리족은 특히 북섬에서 화전 농업을 시행하면서 뉴질랜드 원래 숲의 약 40%를 개간했다.[26][27]
토지와 기타 자원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쟁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 시기에 요새화된 파가 더 흔해졌지만, 전쟁의 실제 빈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태평양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간 식인 풍습은 전쟁의 일부였다.[28]

지도력은 족장 제도를 기반으로 했으며, 이는 종종 세습되었지만, 족장(남성 또는 여성)은 리더십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유럽 이전 마오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단위는 와나우 또는 확대 가족, 그리고 하푸 또는 와나우 집단이었다. 그 다음에는 하푸 집단으로 구성된 이위 또는 부족이 있었다. 관련된 하푸는 종종 상품을 교환하고 주요 프로젝트에 협력했지만, 하푸 간의 갈등 또한 비교적 흔했다. 전통적인 마오리 사회는 서사, 노래, 그리고 성가를 통해 역사를 구전 전통으로 보존했다. 숙련된 전문가들은 수백 년 동안 부족 계보(''whakapapa'')를 암송할 수 있었다. 예술에는 와이코레로(웅변), 여러 장르의 노래 작곡, 하카를 포함한 춤, 고도로 발달된 목각, 그리고 타 모코 (문신)가 포함되었다.
뉴질랜드에는 (일부 희귀 박쥐를 제외하고) 토착 육상 포유류가 없으므로 새, 물고기, 바다 포유류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에서 가져온 식물, 즉 고구마, 토란, 호박, 그리고 참마를 재배했다. 그들은 또한 뉴질랜드 고유종인 양배추 나무, 그리고 전분질 페이스트를 제공하는 고사리 뿌리와 같은 야생 식물을 활용했다.
2. 2. 마오리 사회와 문화의 발전
마오리족의 전승에 따르면, 그들의 조상은 "하와이키에서 와카(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고 한다. 이들이 뉴질랜드에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언어학적 추측과 뉴질랜드 유적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대략 1100년에서 1200년경 쿡 제도, 소시에테 제도 또는 마르키즈 제도에서 뉴질랜드 북섬으로 도래한 것으로 추정된다.[229][230]원래 어로와 농경을 하던 마오리족은 뉴질랜드에 온 후 사냥 중심으로 생활이 변화했다.[231] 이들은 물개와 뉴질랜드 고유의 날지 못하는 큰 새인 모아를 사냥했으며, 섬 곳곳에 수많은 사냥 유적이 남아있다. 1960년대, 사냥 유적에서 대량의 모아 뼈가 발견되면서, 마오리족 이전에 다른 민족(모아 사냥꾼)이 살았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232] 현재는 마오리족의 생활 중심이 어로에서 사냥으로 바뀐 것뿐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233]
모아는 식량뿐만 아니라 뼈는 낚시 바늘, 장신구, 공구로, 깃털은 케이프나 목걸이로 사용되는 등 마오리족의 생활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233] 마오리족은 모아를 쫓아 북섬에서 뉴질랜드 남섬으로 점차 거주 지역을 넓혀갔다. 모아 사냥은 1300년대를 정점으로 개체 수 감소로 쇠퇴했지만, 1550년경 거의 멸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233]
모아가 줄어들면서 마오리족의 생활 방식도 변화하여, 폴리네시아에서 가져온 토란과 고구마 재배, 어패류와 해수류 포획이 생활의 기반이 되었다.[234] 모아를 쫓아 확산된 사람들은 지리적, 기후적 환경 차이로 인해 독자적인 생활 문화를 만들었다. 북부에서는 식물 재배 중심의 생활이, 남부나 채텀 제도 등에서는 지방이 많은 해수가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235]
1500년경부터는 참호, 나무 울타리, 성벽을 갖춘 파(요새)가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했다.[235] 이는 집단, 지역 교류와 함께 부족 간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 전역에 6,000개가 넘는 파가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인구 밀도가 높았던 북섬 북부에 많이 남아있다.[235]
3. 유럽인의 도래와 식민지 시대
1830년경 뉴질랜드에는 약 2,000명의 유럽인이 거주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오스트레일리아 유배지에서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이로 인해 뉴질랜드의 치안은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특히 러셀은 "태평양의 지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242][244] 1830년 영국인 선장이 마오리족 간의 분쟁에 개입하여 응아이 타후 마오리족을 학살한 오나웨 사건을 계기로, 영국은 뉴질랜드에 법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1833년 5월 제임스 버스비를 주재 변무관으로 임명했다.[244]
버스비는 우선 뉴질랜드 국기 제정에 착수하여 1834년 3월 마오리 추장들과 회의를 열어 국기를 결정했다. 이어 1835년 10월 25일에는 마오리 추장들에게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도록 하여 뉴질랜드 북부에 뉴질랜드 부족 연합국을 수립했다.[246]
3. 1. 초기 유럽인의 탐험과 접촉
1642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 최초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236] 그는 남섬 서해안에 도착하여, 고국 네덜란드에 있는 제일란트주의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고 이름 붙였다. 뉴질랜드는 이 말의 영어식 번역이다.[239] 타스만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끝이라고 오인하여 남섬과 북섬을 가르는 쿡 해협에 도착했을 때 마오리족에게 발견되어 선원 4명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으로 타스만은 상륙하지 않고 뉴질랜드를 떠났다.[239]

1769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금성의 태양면 통과 관측을 마치고 서쪽으로 항해하던 중 뉴질랜드 북섬을 발견했다.[240] 쿡은 유럽인 최초로 뉴질랜드에 상륙하여 6개월 동안 북섬, 남섬 전 해역을 항해하며 매우 정확한 해안선 지도를 작성했다.[241]

쿡의 발견 이후, 무역, 포경, 선교 등을 목적으로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유럽인들이 나타났다. 카우리와 뉴질랜드 삼이 돛대나 밧줄 재료로 인기를 얻었으며,[242] 러셀은 포경선의 좋은 기항지로 알려져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선박이 정박하는 항구 도시가 되었다. 고래 외에 물개나 바다사자 등도 거래되었으나, 남획으로 인해 19세기 초부터 급격히 수가 줄어 1850년대에는 쇠퇴했다.[243]
1807년 이후에는 머스킷총이 유입되어 원주민 간의 전쟁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이는 유럽인이 가져온 인플루엔자, 이질, 백일해, 홍역, 장티푸스와 같은 질병과 함께 19세기 마오리 인구 감소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243][244] 기독교는 1814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 새뮤얼 마스덴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말 등의 가축도 이때 들어왔다.[245]
3. 2. 와이탕이 조약과 영국의 식민지화
1840년 식민지 총독 윌리엄 홉슨과 마오리족 간의 와이탕이 조약 체결로, 마오리족은 보호를 받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했다.[271] 이 조약은 뉴질랜드를 2민족 국가로 규정짓는 성격의 것이었다.[271] 조약 이후 뉴질랜드 회사, 오타고 협회, 캔터베리 협회 등을 통해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했다.마오리족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를 원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대영제국의 막강한 해상 장악력
- 중앙 정부와 통합된 지도자의 부재로 인한 유럽 이주민과의 협력 및 소통의 한계
- 문화적 차이로 인한 잦은 충돌, 유럽 이주민 증가에 따른 법률 및 규범 부재, 비조직적인 토지 매각, 프랑스 침공 우려
1831년 13명의 북쪽 추장들은 영국의 윌리엄 4세에게 프랑스의 침공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공식 청원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마오리족과 파케하(유럽인) 모두 법과 질서, 그리고 영국의 보호를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40년 영국 해군 장교 홉슨이 총독으로 뉴질랜드를 찾아왔다. 그는 와이탕이에서 버스비와 협의 후, 2월 6일 아일랜즈 만의 와이탕이에 있는 제임스 버스비의 집에 마오리 추장 46명을 모아 뉴질랜드를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로 하는 《와이탕이 조약》에 서명했다. 이후 7개월 동안 500명 이상의 추장 사인을 받아냈으며, 39명의 와이카토 추장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명했다.
와이탕이 조약은 3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뉴질랜드의 주권을 영국에 이양한다.
2. 마오리인의 토지 소유를 계속 인정한다. 그러나 이후 토지 매각은 영국 정부에게만 한다.
3. 마오리 사람들은 앞으로 영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다.
이 조약 체결 후, 뉴질랜드는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로부터 분리되어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271] 홉슨은 1842년 9월에 사망했고, 새로운 총독으로 로버트 피츠로이가 와서 마오리족의 관습을 인정하는 법률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다.
3. 3. 마오리 전쟁과 토지 몰수
1843년부터 1870년대 사이에는 마오리 전쟁이 두 차례 일어났다. 웨이크필드가 이끄는 뉴질랜드 토지회사의 지나친 토지 매수가 원인이 되어 일부 추장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뉴질랜드 중부 지역에서는 토지 판매를 중단시키려는 킹 무브먼트(King Movement)가 일어났다.1860년, 타라나키에서 초대 마오리 왕 포타토우 1세에게 집결한 마오리군과 영국군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북섬의 타라나키, 와이카토 지방을 중심으로 12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당시 영국군은 14,000명으로 영국 본토에 남아 있는 방위 병력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전쟁은 부분적으로 파케하(유럽인)에 의한 공식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계속되었고 1872년까지 마오리 소유로 남은 토지는 전국토의 1/6에 불과했다.[271] 결국 마오리족의 패배로 끝났는데, 자존심이 강한 마오리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고 한다. 마오리 사람들이 다시 일어선 것은 1880년대의 마오리 부흥 운동 이후이다.[271]

와이탕이 조약 체결 이후, 유럽인 이민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럽인들은 뉴질랜드에서 농목업을 추진하기 위해 마오리족에게서 잇따라 토지를 사들였다. 특히 인구 밀도가 낮았던 남섬에서는 거의 저항 없이 토지를 확보하여, 1864년에는 남섬에서 마오리족이 소유한 토지가 전체 면적의 1%가 되었다.[251]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에 대한 예속화를 우려한 마오리족에 의해 토지 거래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마오리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특히 와이카토에서는 마오리 왕 옹립 운동으로 발전하여 격렬한 저항을 보였다.
1859년 3월, 토지 거래 찬성파인 마오리 족장 테이라가 공동 소유권을 가진 토지를 독단적으로 영국 정부에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반대파 마오리 족장 와이레무 킨기와의 사이에 분쟁이 발발했다. 이는 마오리 전쟁을 전국 규모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타라나키 땅에서 1,500명의 마오리가 전쟁에 참여하여 3,000명의 영국 정부군과 충돌했다. 1861년 4월에 휴전이 호소되어 일시적으로 전투가 멈췄지만, 1863년에는 와이카토로 확산되었고 게릴라전이 벌어졌다. 조지 그레이는 12,000명의 영국·식민지 정부 연합군과, 영국 측에 붙은 1,000명의 마오리 군을 이끌고 이를 진압했다.[252] 마오리는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전투로 수적 열세를 메웠지만, 점차 전황은 정부군이 우세해졌다. 1864년 3월에 마오리의 용장 레위 마니아포토가 사망하면서 남은 마오리들은 와이카토에서 쫓겨나 북섬 중서부로 도망쳤다. 소강 상태가 되면서도 단속적인 전쟁은 계속되어 킨기가 항복하는 1872년까지 전쟁이 이어졌으며, 1881년의 정식 평화 협상으로 마오리 전쟁은 종결되었다. 사망자 수는 정부 측이 1,000명, 마오리 측이 2,000명에 달했다.[253]
전쟁 발발에 따라 정부는 1863년에 반란 진압법을 제정하여 마오리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이듬해에는 뉴질랜드 정착지법을 제정하여 전쟁 관련 마오리의 토지를 몰수했다. 마오리에게 정부군과의 전쟁은 자신들의 토지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인 것이었지만, 반란자의 낙인이 찍히고 선조 전래의 토지를 몰수당하는 결과를 낳았다.[254] 마오리 전쟁의 결과, 와이카토(1,205,000에이커), 타라나키(1,275,000에이커), 타우랑가(738,000에이커) 등 여러 지역에서 정부에 의한 토지 몰수가 이루어졌다.[255]
한편, 영국은 마오리족의 반영(反英) 감정 완화를 위해 힘썼고,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영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노력을 했다. 1870년부터는 인종 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마오리족과의 공존 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어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272]
4. 자치령 시기와 독립
1852년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선 후, 뉴질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확대해 나갔다. 1890년대부터 뉴질랜드 국회는 여성 참정권과 노령 연금 같은 진보적인 법률들을 제정하였다. 특히, 1893년에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여 세계 최초로 보편적 여성 참정권을 확립한 국가가 되었다.[123]
1891년에는 존 밸런스 총리가 이끄는 뉴질랜드 최초의 정당인 뉴질랜드 자유당이 결성되었다.[260] 자유당 정부는 토지 개혁, 노령 연금 도입, 노동 시간 규제, 최저 임금 법 제정, 산업 분쟁 해결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122][121][261]
1907년, 뉴질랜드는 식민지에서 자치령으로 지위가 변경되었다.[132] 이후 뉴질랜드는 대영 제국의 일원으로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뉴질랜드는 10만 명의 병사를 파병하였고,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ANZAC(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을 구성하여 갈리폴리 전투 등에서 싸웠다.[265] 그러나 갈리폴리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는 등, 뉴질랜드군은 17,000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264]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뉴질랜드는 영국과 함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하였다.[264] 뉴질랜드군은 북아프리카, 유럽, 솔로몬 제도 등지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12만 명의 병력을 지원했다.[152] 1942년 9월에는 군 병력이 15만 7천 명으로 정점에 달했고, 13만 5천 명이 해외에서 복무했으며, 1만 100명이 사망했다.
4. 1. 뉴질랜드 자치령 성립
1852년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섰다.[272] 증가하는 영국 정착민들의 자치 정부 요구에 따라 영국 의회는 뉴질랜드 헌법법 1852를 통과시켜 선출된 총회(의회)와 6개의 지방 정부로 구성된 중앙 정부를 수립했다.[84] 총회는 1854년 5월 24일에 처음 소집되었다. 정착민들은 곧 책임 정부를 얻을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총독과 런던의 식민지부는 1860년대 중반까지 원주민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했다.[86]1890년대부터 뉴질랜드 국회는 여성의 투표권, 노령 연금 같이 진보적인 법률들을 발의하였다. 1893년에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확대하여 뉴질랜드를 보편적 여성 참정권을 제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만들었다.[123]
1891년, 존 밸런스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뉴질랜드 최초의 정당인 뉴질랜드 자유당이 결성되었다.[260] 자유당은 1891년에 '토지·소득세 평가법', 1892년에 '입식 용지법', '영속 임대차법', 1894년에 '입식자 융자법'을 제정하고, 토머스 매켄지 주도로 대대적인 토지 개혁을 실시했다.[261] 이 개혁을 통해 1912년까지 52만 헥타르의 농장이 7,000가구에게 재분배되었다.
자유 정부는 노령 연금 도입, 노동 시간 규제, 최저 임금 법,[121] 산업 분쟁 해결 시스템을 개발했다.[122]
1907년, 뉴질랜드는 식민지에서 자치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132]
4. 2.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참전
뉴질랜드는 대영 제국의 일원으로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뉴질랜드는 10만 명의 병사를 제공했다.[264] 뉴질랜드군은 오스트레일리아군과 연합하여 ANZAC(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을 조직하고, 중동에서의 갈리폴리 전투 등에 참전했다.[265] 갈리폴리 전투에서는 파병된 8,574명 중 2,721명이 전사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264]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뉴질랜드군의 전사자 수는 17,000명에 달했다.[264]1939년 9월 3일, 영국이 독일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하자 뉴질랜드도 이에 따라 북아프리카, 유럽 등지의 전선을 중심으로 참전했다.[264] 이와 더불어 태평양 방면의 방위는 미국에 의존했기 때문에 뉴질랜드가 미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264] 뉴질랜드는 약 12만 명의 병력을 지원했다.[152] 이들은 주로 북아프리카, 그리스/크레타, 이탈리아에서 전투를 벌였다. 제3 뉴질랜드 사단은 1943~44년 솔로몬 제도에서 싸웠지만, 뉴질랜드의 제한된 병력으로는 2개 사단을 유지할 수 없었고, 해산되어 병사들은 민간으로 복귀하거나 이탈리아의 제2 사단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군대는 1942년 9월에 15만 7천 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13만 5천 명이 해외에서 복무했으며, 1만 100명이 사망했다.
5. 현대 뉴질랜드
1930년대 대공황으로 뉴질랜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1935년 제1차 노동당 정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복지 국가 시스템을 구축했다.[150] 1970년대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고,[168]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168] 1984년 뉴질랜드 제4차 노동당 정부는 로저노믹스라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181] 1980년대에는 동성애 비범죄화 등 사회적 자유주의적 변화가 있었다.[186] 마오리족은 도시화를 통해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겪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 마오리 항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172]
21세기 뉴질랜드는 관광 산업이 경제에 크게 기여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헬렌 클라크 총리의 뉴질랜드 제5차 노동당 정부는 이전 정부의 경제 개혁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정책에 더 중점을 두었다.[200][201] 뉴질랜드는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뉴질랜드의 공화주의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이다.[203] 1980년대 중반 이후 뉴질랜드는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해왔다.[204]
존 키 총리는 2008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국민당을 승리로 이끌었으며,[206]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복구를 위해 캔터베리 지진 복구 당국을 설립했다.[207] 아프가니스탄 파병 뉴질랜드군을 철수시키고 미국과 웰링턴 선언을 체결했다.[208]
재신다 아던 총리의 뉴질랜드 제6차 노동당 연립 정부는 뉴질랜드 부동산 버블로 인한 뉴질랜드의 주택 부족 위기 해결에 나섰다.[209] 2019년 3월 15일,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210][211] 아던 총리는 총기 규제를 강화했다.[214][215]
코로나19 팬데믹이 2020년 초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뉴질랜드 정부는 전국적인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217] 뉴질랜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은 국제적인 칭찬을 받았다.[219][220]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223] 대마초 합법화는 부결되었고 안락사 합법화는 통과되었다.[224]
2023년 1월 아던 총리는 사임했으며,[225] 크리스 힙킨스가 총리직을 승계했다.[226] 2023년 1월 25일, 카멜 세풀로니가 부총리에 취임하여 최초의 태평양 섬 출신 부총리가 되었다.[227] 2023년 10월, 크리스토퍼 럭슨이 이끄는 중도 우파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228]
5. 1. 경제 발전과 사회 변화
1930년대 대공황은 뉴질랜드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농산물 수출 감소로 인해 실업률이 급증하고 경제가 침체되었다.[148]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35년 제1차 노동당 정부가 출범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복지 국가 시스템을 구축했다.[150] 이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노령 연금, 실업 수당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회 복지 정책이었다.[150]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뉴질랜드는 다시 경제 불황을 겪게 되었다. 1973년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최대 수출 시장을 잃었고,[168]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인해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168] 로버트 멀둔 정부는 복지 국가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174] 이는 대규모 차입으로 이어져 재정 적자를 심화시켰다.[174]
1984년 집권한 뉴질랜드 제4차 노동당 정부는 로저 더글러스 재무장관의 주도 하에 로저노믹스라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181] 이는 규제 완화, 공공 자산 매각, 보조금 폐지, 세금 감면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혁이었다.[181] 이로 인해 경제 구조는 크게 변화했지만, 주식 시장 붕괴와 경제 성장률 하락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181]
1980년대에는 사회적으로도 자유주의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동성애 비범죄화,[186] 무과실 이혼 도입, 권리 장전 초안 작성 등이 이루어졌다.[187] 또한, 이민 정책이 자유화되어 아시아 이민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185]
한편, 마오리족은 도시화를 통해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마오리족이 도시로 이주하여 더 나은 일자리와 생활 수준을 추구했지만,[170] 인종차별과 차별에 직면하기도 했다.[172] 1960년대 후반부터 마오리 항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마오리족의 권리 회복과 문화 부흥을 요구했다.[172] 와이탕이 재판소는 와이탕이 조약 위반 청구를 조사하고 불만을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188]
5. 2. 21세기 뉴질랜드
21세기 뉴질랜드는 국제 관광 산업이 경제에 크게 기여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서비스 부문은 전반적으로 성장했으며, 전통적인 농업 수출품(육류, 유제품, 양모) 외에도 과일, 와인, 목재 등의 상품 수출이 증가하며 경제 다변화가 이루어졌다.[198]헬렌 클라크가 이끄는 뉴질랜드 제5차 노동당 정부는 1999년 뉴질랜드 총선 이후 9년간 집권하며 이전 정부의 경제 개혁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정책에 더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고용법을 개정하여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고,[200] 뉴질랜드의 학생 대출 이자 부담을 완화했다.[201]
뉴질랜드는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OE"(해외 경험)를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202] 영국인은 여전히 뉴질랜드 이민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뉴질랜드는 영국의 군주를 국가 원수로 삼는 등 헌법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지만, 1996년 영국 제국 훈장 폐지, 뉴질랜드 총독의 대외적 역할 강화, 2003년 뉴질랜드 대법원 설립 등 독자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화주의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이다.[203]
1980년대 중반 이후 뉴질랜드는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해왔다. 클라크 총리는 민주주의, 인권, 유엔의 역할 강화, 반군사주의, 군축, 자유 무역을 강조했다.[204]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현재)에는 군대를 파견했지만, 이라크 전쟁에는 전투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205]
존 키는 2008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국민당을 승리로 이끌고 총리가 되었다.[206] 대침체 시기에 집권한 키 정부는 2011년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크라이스트처치 복구를 위해 캔터베리 지진 복구 당국을 설립했다.[207] 외교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뉴질랜드군을 철수시키고 미국과 웰링턴 선언을 체결했다.[208]
좌익 정치 성향의 재신다 아던 총리가 이끄는 뉴질랜드 제6차 노동당 연립 정부는 2017년에 출범하여 뉴질랜드 부동산 버블로 인한 뉴질랜드의 주택 부족 위기 해결에 나섰다.[209]
2019년 3월 15일,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51명이 사망하고 4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210][211] 재신다 아던 총리는 이를 "뉴질랜드의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라고 언급하며 무슬림 공동체를 지원하고[213] 총기 규제를 강화했다.[214][215]
코로나19 팬데믹은 2020년 초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경제,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뉴질랜드 정부는 2020년 3월 모든 비거주자의 입국을 금지하고,[216] 전국적인 봉쇄 조치를 시행했다.[217] 2020년 6월 9일 국경 통제를 제외한 모든 제한 조치가 해제되었다.[218] 뉴질랜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은 국제적인 칭찬을 받았다.[219][220]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승리를 거두었다.[223] 노동당은 녹색당과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2020년 선거에서는 대마초 합법화와 안락사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는데, 대마초 합법화는 부결되었고 안락사 합법화는 통과되었다.[224]
재신다 아던 총리는 2023년 1월 사임했으며,[225] 크리스 힙킨스가 총리직을 승계했다.[226] 2023년 1월 25일, 카멜 세풀로니가 부총리에 취임하여 최초의 태평양 섬 출신 부총리가 되었다.[227]
2023년 10월, 크리스토퍼 럭슨이 이끄는 중도 우파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228]
6. 한국과의 관계
뉴질랜드는 1949년 7월 대한민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후, 경제, 문화, 인적 교류를 확대하였다.
6. 1. 한국 전쟁 참전
1949년 7월 대한민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총 5,350명이 참전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6. 2. 외교 관계 수립 및 발전
1962년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후 경제, 문화, 인적 교류가 확대되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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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オリの渡来時期について8世紀(#矢野、p.301。)あるいは10世紀(#トロッター、p.47。)としているものも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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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青柳、p.50。
[232]
문서
矢野、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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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青柳、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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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青柳、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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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青柳、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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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柳、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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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総督の名を取り、ヴァン・ディーメンズ・ランドと名付けら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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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青柳、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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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柳、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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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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