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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폴리트와 아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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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장-필리프 라모가 작곡한 1733년 초연된 프랑스 오페라이다. 50세에 오페라 작곡을 시작한 라모의 첫 번째 주요 작품으로, 륄리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혁신적인 음악적 시도를 통해 프랑스 오페라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이폴리트와 아리시아의 비극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테세우스, 페드라 등 신화 속 인물들의 갈등을 다루며, 18세기 음악 논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라모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20세기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공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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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폴리트와 아리시
기본 정보
제목Hippolyte et Aricie
장르tragédie en musique
작곡가장필리프 라모
대본가시몬-조제프 펠르그랭
언어프랑스어
원작파에드라 (라신)
초연 날짜1733년 10월 1일
초연 장소팔레-루아얄 극장, 파리
이미지
장필리프 라모 초상화
1728년 조제프 아베가 그린 장필리프 라모의 초상화

2. 역사

《이폴리트와 아리시》(Hippolyte et Ariciefra)는 장필리프 라모가 작곡한 첫 오페라로, 그의 나이 50세가 되던 1733년에 초연되었다. 이전까지 주로 음악 이론가이자 하프시코드 작곡가로 활동했던 라모는 미셸 몽테클레르의 오페라 《예프테》에 감명을 받아 시몽조제프 펠레그랭에게 대본을 의뢰하며 오페라 작곡에 첫발을 내디뎠다.[3]

초연은 성공적이었으나, 라모의 혁신적인 음악 양식은 당시 프랑스 오페라계를 지배하던 륄리의 전통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작품은 당시 모욕적인 표현이었던 '바로크'라는 평가를 받은 최초의 오페라가 되었으며,[10] 전통을 옹호하는 '륄리파'(lullistesfra)와 라모를 지지하는 '라모파'(ramistesfra)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14] 이는 프랑스 음악사에서 중요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오페라는 1742년과 1757년에 라모 자신에 의해 개정되었으며,[16][17] 특히 1757년 개정에서는 초기에 연주자들의 반발로 삭제되었던 대담한 음악들이 복원되기도 했다.[18] 그러나 1767년 공연 이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 초반부터 다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17][19] 오늘날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라모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자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64]

2. 1. 작곡 배경

라모는 50세가 되어서야 《이폴리트와 아리시》를 작곡했는데, 그 이전까지 그의 삶에서 오페라 작곡가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할 만한 징후는 거의 없었다. 그는 주로 음악 이론가이자 하프시코드 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극음악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경험은 몇몇 세속적인 칸타타를 작곡하거나, 친구 알렉시 피롱을 위해 파리 박람회에서 연주될 인기곡 몇 곡을 쓴 것이 전부였다.[1]

하지만 라모는 오페라 작곡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1727년 10월, 그는 앙투안 우다르 드 라 모트에게 편지를 보내 대본을 요청했다. 라 모트는 과거 앙드레 캄프라의 《유럽의 우아함》(1697)이나 마랭 마레의 《알시오네》(1706) 같은 작품의 대본을 쓴 유명 작가였지만, 당시에는 거의 20년 동안 음악 극 작품을 쓰지 않고 있었다. 라모의 요청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고 답장을 받았다는 기록도 없지만, 라모가 이 편지를 개인 서류 사이에 소중히 보관했다는 사실은 그가 오페라 작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2]

결정적인 전환점은 1732년에 찾아왔다. 그해 2월, 미셸 몽테클레르의 뮤지컬 비극 《예프테》가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되었는데, 라모는 이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예프테》의 대본을 쓴 펠레그랭에게 자신의 뮤지컬 비극을 위한 대본을 써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폴리트와 아리시》였다.[3]

1733년 봄, 완성된 오페라는 라모의 후원자였던 라 푸플리니에르[4]의 저택이나 카리냥 공작의 집에서 비공개로 시연되었다.[5] 같은 해 7월부터는 오페라 극장에서 정식 리허설이 시작되었다.[6]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 연주자들이 악보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여, 라모는 결국 2막에 포함되었던 두 번째 '운명의 삼중주곡'(Trio des Parques)을 삭제해야만 했다.[7] 이는 1733년 10월 1일, 라모의 50번째 생일 직후에 《이폴리트와 아리시》가 초연되었을 때 겪게 될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라모 자신은 1744년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8]

나는 12살 때부터 무대를 동경해왔다. 50세가 되어서야 오페라 작업을 시작했고, 그때까지도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시도했고, 운이 좋았으며, 계속 나아갔다.


음악학자 라부아에 따르면, 라모가 파리에 정착했을 당시(1722년에 『자연의 여러 원리에 환원된 화성론』을 출판했다) 그는 이미 오르간곡과 클라비어 곡으로 인기 있는 작곡가이자 명성 높은 이론가였지만, 극장에서의 성공 또한 간절히 원했다. 그의 강력한 음악적 재능은 본능적으로 극음악을 향하고 있었고, 오직 극음악을 통해서만 자신이 발견한 음악 이론들을 실제로 구현하고 그가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음악 언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담하고 의지가 강한 천재는 평범한 시인들에게 거절당하고 재능 있는 이들에게 조롱받았으며, 극장 지배인들에게 악보를 돌려받고 대중의 신뢰도 얻지 못한 채 약 10년 동안 기회를 기다려야만 했다. 마침내 1733년 10월 1일 《이폴리트와 아리시》의 악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음악계의 반향이 아닌 명백한 혁명이었다.[62]

2. 2. 초연과 논쟁

1733년 봄,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라모의 후원자였던 라 푸플리니에르의 집이나 카리냥 공작의 집에서 시연되었다.[5] 7월에는 파리 오페라에서 리허설을 시작했으나[6], 연주자들이 너무 어렵다고 판단하여 라모는 2막의 두 번째 "운명의 삼중주곡"(Trio des Parques프랑스어)을 잘라내야 했다.[7] 이는 오페라가 1733년 10월 1일, 라모의 50번째 생일 직후 초연되었을 때 겪게 될 논란의 시작이었다.

초연 자체는 성공적이었고, 같은 해 12월 26일에는 베르사유에서도 공연되었으며, 초연부터 이듬해까지 약 40회 연속 공연되었다.[63] 많은 관객은 라모를 "우리 시대의 오르페우스"라고 칭송했고,[10] 노 작곡가 앙드레 캄프라는 "이 오페라에는 열 개의 오페라를 만들기에 충분한 음악이 있다. 이 사람은 우리 모두를 능가할 것이다"라며 라모의 풍부한 창작력에 감탄했다.[11][67][68]

그러나 모든 사람이 라모의 음악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관객과 비평가들은 음악이 기이하고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으며,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당시 모욕적인 표현이었던 '바로크'라는 평가를 받은 최초의 오페라가 되었다.[10] 이들은 라모의 작품을 륄리와 키노가 1670년대와 1680년대에 확립한 프랑스 오페라-발레 전통[9]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륄리의 작품은 오랫동안 프랑스 오페라 무대를 지배하며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비 부이수(Sylvie Bouissou)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2] 라모는 단번에 륄리가 수년간 구축해 온 모든 것, 즉 륄리와 키노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적 대상 주위에 형성된 프랑스인들의 자랑스럽고 맹목적이며 자기 만족적인 연합을 파괴했다. 라모의 미학은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유산에 대해 가졌던 확신을 흔들었고, 변하지 않기를 바랐던 국가 오페라를 공격했다.

구조적으로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프랑스식 서곡, 서막, 5막 구성 등 륄리가 확립한 모델을 따랐지만, 음악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웠다. 특히 오케스트레이션에서 혁신적이었으며, 레치타티보와 짧은 아리아(petits airs프랑스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 즉 춤곡과 묘사 음악(symphonies프랑스어), 아리아, 합창 등의 반주를 새롭게 구성했다. 반대파들은 음악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장식적이며, 연주하기 어렵고, 너무 학구적이어서 진정한 감정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불협화음과 과장된 기교가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13]

이러한 반응 속에서 관객과 비평가들은 곧 두 개의 파벌로 나뉘었다. 전통을 중시하는 '륄리파'(lullistes프랑스어)와 라모를 지지하는 '라모파'(ramistes프랑스어 또는 ramoneurs프랑스어, '굴뚝 청소부'라는 단어를 이용한 말장난)였다. 커스버트 걸들스톤(Cuthbert Girdlestone)은 이 논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14] 《이폴리트와 아리시》 공연 이후 프랑스에는 서로에게 분노하는 두 극단적인 당파가 생겨났으며, 오래된 음악과 새로운 음악은 각자에게 종교와 같아 무기를 들고 싸우는 형국이었다. 륄리 편에는 노인들과 비전문가들이 있었고, 장조제프 무레와 같은 소수의 음악가들은 륄리에 대한 헌신보다는 떠오르는 별(라모)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들과 합류했다. 《미의 에세이》(Essai sur le Beau)의 저자 앙드레 신부(Père André)와 《자연의 광경》(Le Spectacle de la Nature)으로 유명한 누엘-앙투안 플뤼슈(Noël-Antoine Pluche) 아베와 같은 이론가들도 보수파에 속했다. 반면 라모파는 새로운 것에 매료된 젊은이들, 많은 전문 음악가, 그리고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라모에게서 발견한 지식인들이 주를 이루었다.[65] 륄리파는 라모를 전통을 파괴하는 허풍쟁이이자 이탈리아 양식에 굴복하여 조국을 배신한 작곡가라고 비난했다.[66]

이 논쟁은 단순한 음악적 취향의 차이를 넘어 프랑스 음악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격렬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라모가 새로운 오페라를 발표할 때마다 논쟁은 계속되었고, 1739년 《다르다누스》 초연 때 정점에 달했다. 이후 라모의 명성이 확고해지면서 논쟁은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그 여파는 175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15] 초연 당시 가수들이 어려운 부분을 소화하지 못하거나 꺼렸고, 줄거리 구성에 대한 비판 때문에 일부 내용이 삭제되어 극적인 효과가 약화되는 등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64],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라모의 음악적 혁신을 알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 3. 개정 및 재공연

라모는 1742년 재공연을 위해 《이폴리트와 아리시》를 개정했다. 세부적인 변경 외에도 페드르의 역할을 상당히 축소했는데, 3막의 아리아 "잔혹한 사랑의 어머니"(Cruelle mère des amours프랑스어)를 레치타티보로 대체하고 4막의 죽음 장면을 완전히 삭제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파격적이어서 음악학자 실비 부이수(Sylvie Bouissou)는 이를 "신성 모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소프라노 슈발리에(Mlle Chevalier)는 페드르 역을 거부했다. 개정된 버전은 1742년 9월 11일에 처음 공연되었고, 초기에는 미숙한 노래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어 1742년과 1743년에 걸쳐 43회 공연되었다.[16]

라모는 1757년 24회 공연을 위해 작품을 다시 한번 개정했다.[17] 이때 그는 프랑스 최고의 작곡가로서 명성이 확고해졌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초기 버전의 가장 대담한 음악 일부, 즉 "운명의 삼중주"(Trio des Parques프랑스어)와 페드르의 아리아들을 복원했다. 또한 1749년 《조로아스터》 이후의 관행에 따라 프롤로그를 완전히 삭제했다.[18] 라모가 사망한 후인 1767년, 파리 오페라에서 14회에 걸쳐 다시 공연되었으나, 그 이후 이 작품은 20세기까지 무대에서 사라졌다.[17]

현대에 들어 최초의 공연은 1903년 3월 제네바에서 이루어졌는데, 달크로즈 유리즈믹스(Dalcroze Eurhythmics)의 창시자인 에밀 자크-달크로즈가 지휘를 맡았다.[19]

150년 만인 1908년 5월 13일,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파리 오페라 무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공연은 앙리 키타르나 루이 라루아(Louis Laloy)와 같은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연출, 연기, 안무의 부족함을 지적했지만, 가장 큰 비판은 뱅상 댕디가 수정한 악보에 집중되었다. 라루아는 아리아를 희생시키고 레치타티보에 초점을 맞춘 편곡을 비판하며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지, 가르치거나 감동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예술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초기 오페라의 특징, 즉 대화와 아리아로 연결된 일련의 춤이지, 19세기처럼 축제와 행렬로 치장된 극적인 줄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공연에서는 바로크 시대 악기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없었고, 가르니에 궁전의 거대한 공간에서 하프시코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레치타티보 부분에서 더블 현악 사중주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가수들의 음정이 불안정하다는 문제도 지적되었다.[20]

20세기 후반부터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무대 공연과 콘서트 형식으로 점차 자주 연주되기 시작했다. 장-클로드 말그와르와 찰스 매커러스 등이 지휘봉을 잡았다. 존 엘리엇 가디너는 피에르루이지 피치(Pier Luigi Pizzi)의 연출로 1983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과 1984년 리옹에서 이 작품을 선보였다. 피치의 연출은 이후 1985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윌리엄 크리스티의 지휘로, 1987년 로잔과 레조 에밀리아에서 장-클로드 말그와르의 지휘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마르크 민코프스키는 1994년 베르사유 궁전을 포함한 여러 장소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을 이끌었다. 윌리엄 크리스티는 1996년 장-마리 빌지에(Jean-Marie Villegier)의 연출로 파리 가르니에 궁전에서 다시 한번 오페라를 지휘했으며, 이 공연은 니스, 몽펠리에, 캉, 비엔나, 뉴욕 등지로 순회 공연을 가졌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제인 글로버, 라이언 브라운(Ryan Brown), 에마뉘엘 아임, 라파엘 피숑, 죄르지 바세기(György Vashegyi), 그리고 윌리엄 크리스티(2013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오페라) 등이 지휘하는 등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다.[21]

2. 4. 현대의 재조명

최초의 현대적인 공연은 1903년 3월 제네바에서 에밀 자크-달크로즈[19]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150년 만인 1908년 5월 13일,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파리 오페라 무대에 다시 올랐다. 그러나 이 공연은 앙리 키타르와 루이 라루아 같은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연출, 연기, 안무의 부족함이 지적되었으며, 특히 뱅상 댕디가 수정한 악보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라루아는 아리아보다 레치타티보에 초점을 맞춘 수정을 비판하며, 초기 오페라가 가진 춤과 아리아, 대화의 연결이라는 특징을 잊고 19세기적 극 형식으로 변질시켰다고 지적했다. 당시 공연에서는 바로크 악기 사용 시도가 없었고, 하프시코드 소리는 파리 가르니에 궁전의 큰 공간에서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가수들의 음정도 불안정했다는 평가가 있었다.[20]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장-클로드 말그와르, 찰스 매커러스 등의 지휘로 무대와 콘서트에서 점차 자주 공연되기 시작했다. 존 엘리엇 가디너는 1983년 엑상프로방스와 1984년 리옹에서 피에르루이지 피치의 연출로 이 작품을 지휘했다. 이 연출은 1985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윌리엄 크리스티에 의해, 1987년 로잔과 레조 에밀리아에서는 장-클로드 말그와르에 의해 다시 선보여졌다. 마르크 민코프스키는 1994년 베르사유 등 여러 곳에서 콘서트 공연을 지휘했다. 윌리엄 크리스티는 1996년 장-마리 빌지에의 연출로 파리 가르니에 궁전에서 다시 이 오페라를 지휘했고, 이후 니스, 몽펠리에, 캉, , 뉴욕 등지로 순회 공연을 가졌다.

21세기에도 제인 글로버, 라이언 브라운, 에마뉘엘 아임, 라파엘 피숑, 죄르지 바세기, 그리고 2013년 글린드본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은 윌리엄 크리스티 등 여러 지휘자들에 의해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21]

초연 당시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고 한동안 잊혔던 시기도 있었지만[64], 오늘날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라모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다.[64]

주요 국가별 초연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국가초연 연도장소주요 정보
영국1965년 5월 13일버밍엄지휘: 앤서니 루이스 / 출연: 자넷 베이커, 로버트 티어, 존 셜리-커크 등[70]
미국1966년 4월 6일보스턴[70]
일본2003년 11월 7일기타토피아 사쿠라홀콘서트 형식 / 지휘: 테라코베 료 / 관현악 및 합창: 레・보리아드[71][72]


3. 등장인물 및 배역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배역을 선보인다. 주인공인 이폴리트는 테너가, 그의 연인 아리시는 소프라노가 맡는다. 극의 중심 갈등을 이끄는 페드르는 메조소프라노,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베이스 음역의 가수가 연기한다.

신화 속 신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저승의 신 플뤼통(베이스), 사냥의 여신 디안(소프라노), 사랑의 신 아무르(소프라노), 신들의 전령 메르퀴르(테너) 등이 등장하여 극의 신화적 배경을 강화한다.

이 외에도 페드르의 친구 에논(소프라노), 테세우스의 친구 아르카스(테너), 복수의 여신 티시포네(테너) 등 다양한 조역과 합창단(저승의 정령, 트리준 사람들, 선원, 사냥꾼, 님프, 양치기 등)이 극을 다채롭게 구성한다.

3. 1. 주요 등장인물

장 라신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라신의 비극 《페드르》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등장인물의 중요도에는 차이가 있다.[23][24][76] 라신의 희곡이 페드르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 펠레그랭의 대본에서는 오페라 제목과는 달리 극의 중심이 젊은 연인 이폴리트와 아리시가 아니라 비극적인 인물인 테세우스페드르이다.[26][76]

특히 테세우스는 바로크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기념비적인 인물 중 하나로 묘사된다.[26] 2막 전체가 그의 이타적인 하데스 방문과 그곳에서의 시련에 할애되면서 그의 비중이 크게 부각된다.[26][76] 그의 자살 시도와 넵투누스의 벌을 위엄 있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 불멸의 등장인물에게 어울리는 결말을 제공한다.[76]

페드르 역시 여전히 중요한 인물로, 이폴리트에 대한 금지된 사랑 고백 장면과 이폴리트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의 죄책감을 표현한 음악은 18세기 오페라의 뛰어난 부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76]

리브레토는 라신의 원작에서 몇 가지 설정을 변경하였다. 아리시의 배경 설정이 변경되었고, 이폴리트가 왕비에게 사련(邪恋)했다고 중상하는 것이 왕비가 아니라 유모 에노네로 바뀐 것이다. 또한 이폴리트는 의붓어머니를 범하려 했다는 의도만으로 고발되며, 실제 행동에 대한 죄를 묻는 것은 아니다.[63]

인물명원어음역역할초연 출연진
지휘: 프랑수아 랑크루
이폴리트
(히폴리토스)
Hippolyte오트콩트르테세우스의 아들. 어머니는 아마조네스의 여왕.드니-프랑수아 트리부 (Denis-François Tribou)
아리시Aricie소프라노아테네 왕족의 딸마리 펠리시에 (Marie Pélissier)
테세
(테세우스)
Thésée베이스아테네 왕클로드-루이-도미니크 샤세 드 시네 (Claude-Louis-Dominique Chassé de Chinais)
페드르
(파이드라)
Phèdre소프라노테세우스의 아내. 미노스파시파에의 딸.마리 앙티에 (Marie Antier)
디아나Diane소프라노사냥, 정절과 달의 여신엘마낭 양 (Mlle Eremans)
아무르L'Amour소프라노피에르 젤리오트
플루톤Pluton베이스지하세계의 신장 뒬 (Jean Dun)
유피터Jupiter베이스로마 신화의 주신장 뒬 (Jean Dun)
아르카스Arcas바리톤테세우스의 친구루이-앙투안 퀴비예 (Louis-Antoine Cuvilliers)
메르퀴리우스Mercure바리톤뒤마스트 (Dumast)
파르케Parques테너, 바리톤, 베이스운명의 세 여신퀴니에, 퀴비예, 젤리오트 (Cuignier, Cuvilliers et Jélyotte)
에노네Œnone소프라노페드르의 유모이자 조언자몽빌 양 (Mlle Monville)
디아나의 여사제La Grande-Prêtresse de Diane소프라노쁘띠파 양 (Mademoiselle Petitpas)
티시포네Tisiphone바리톤복수의 여신루이-앙투안 퀴비예 (Louis-Antoine Cuvilliers)
합창: 지하의 정령, 트로이젠 사람들, 선원, 사냥꾼, 디아나의 요정, 목동, 숲 사람들



마리 카마르고가 무용수로 참가했다.

3. 2. 배역

초연은 1733년 10월 1일 프랑수아 프랑쿠르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역할 (원어)음역역할초연 배우
이폴리트 (Hippolyte프랑스어)오트콩트르테세우스의 아들. 어머니는 아마조네스의 여왕.드니-프랑수아 트리부 (Denis-François Tribou프랑스어)
아리시 (Aricie프랑스어)소프라노아테네 왕족의 딸마리 펠리시에 (Marie Pélissier프랑스어)
테세우스 (Thésée프랑스어)베이스아테네 왕클로드-루이-도미니크 샤세 드 시네 (Claude-Louis-Dominique Chassé de Chinais프랑스어)
페드르 (Phèdre프랑스어)소프라노테세우스의 아내. 미노스파시파에의 딸.마리 앙티에 (Marie Antier프랑스어)
디안 (Diane프랑스어)소프라노사냥, 정절과 달의 여신므와젤 에레망 (Mlle Eremans프랑스어)
아무르 (L'Amour프랑스어)소프라노사랑의 신피에르 젤리오트 (Pierre Jélyotte프랑스어)[50]
플뤼통 (Pluton프랑스어)베이스지하세계의 신장 뒨 (Jean Dun프랑스어)
주피터 (Jupiter프랑스어)베이스로마 신화의 주신장 뒨 (Jean Dun프랑스어)
아르카스 (Arcas프랑스어)테일테세우스의 친구루이-앙투안 퀴비예 (Louis-Antoine Cuvilliers프랑스어)
메르퀴르 (Mercure프랑스어)테일신들의 전령뒤마스트 (Dumast프랑스어)
파르크 (Parques프랑스어)베이스, 테일, 오트콩트르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퀴니에, 퀴비예, 젤리오트 (Cuignier, Cuvilliers et Jélyotte프랑스어)
에논 (Œnone프랑스어)소프라노페드르의 유모이자 조언자므와젤 몽빌 (Mlle Monville프랑스어)
디안의 대사제 (La Grande-Prêtresse de Diane프랑스어)소프라노디안의 대사제므와젤 쁘띠파 (Mlle Petitpas프랑스어)
티시포네 (Tisiphone프랑스어)테일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루이-앙투안 퀴비예 (Louis-Antoine Cuvilliers프랑스어)
아무르의 추종자오트콩트르큐피드의 추종자피에르 젤리오트 (Pierre Jélyotte프랑스어)[50]
양치기 소녀소프라노-므와젤 쁘띠파 (Mlle Petitpas프랑스어)
여성 선원소프라노-므와젤 쁘띠파 (Mlle Petitpas프랑스어)
여성 사냥꾼소프라노-므와젤 쁘띠파 (Mlle Petitpas프랑스어)
합창: 지하의 정령, 트로이젠 사람들, 선원, 사냥꾼, 디안의 님프, 목동과 목녀, 숲 사람들



무용수로는 마리 카마르고가 참여했다.

4. 악기 편성

이 오페라는 다음과 같은 악기 편성을 가진 오케스트라를 사용한다.[51]

'''악기 편성'''
분류악기수량
목관악기피콜로2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 (파곳)2
금관악기호른2
트럼펫2
뮤제트2
타악기팀파니 및 기타 타악기-
현악합주현악기 (비올라는 2부로 나뉨)-
콘티누오하프시코드 (쳄발로)-


5. 줄거리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의 대본은 아베 시몽조제프 펠레그랭(Abbé Simon-Joseph Pellegrin)이 작성했다.[22] 펠레그랭은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와 세네카의 《페드라》를 참고했지만, 가장 직접적인 영감은 장 라신의 유명한 비극 《페드르》(1677)에서 받았다. 당시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의 대표작인 라신의 작품을 오페라로 각색하는 것은 다소 논쟁적인 시도로 여겨질 수 있었다.[23][24]

펠레그랭의 대본은 라신의 《페드르》와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는 연극과 오페라(특히 프랑스 서정 비극, tragédie en musique) 장르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라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시간과 장소의 통일성을 엄격히 지켜 단일 장소에서 24시간 내에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지만, 펠레그랭의 오페라는 각 막마다 배경이 바뀌며 더 넓은 시공간을 포괄한다. 또한, 라신의 비극적인 결말과 달리 오페라는 주인공 이폴리트와 아리시에게 해피 엔딩을 선사한다.[25]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인물의 비중이다. 라신의 작품은 페드르(파이드라)의 내면과 비극에 초점을 맞추지만, 펠레그랭의 오페라에서는 테세우스의 역할이 훨씬 강조된다. 예를 들어, 2막 전체가 테세우스가 친구 피리토스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는 모험에 할애된다. 음악학자 그레이엄 새들러(Graham Sadler)는 "오페라 제목에도 불구하고, 극을 지배하는 것은 젊은 연인 힙폴리투스와 아리시아가 아니라 테세우스와 페드라의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테세우스의 비중은 더욱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2막 전체를 왕의 이타적인 하데스 여행에 할애하기로 한 펠레그랭의 결정 덕분에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테세우스를 "바로크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기념비적인 인물 중 하나"라고 묘사하기도 했다.[26]

오페라의 배경은 신화 시대로, 주요 무대는 펠로폰네소스의 트로이젠과 저승이다. 이야기는 이폴리트아리시의 금지된 사랑, 이폴리트를 향한 계모 페드라의 비극적 욕망, 아들을 오해하고 비극을 초래하는 아버지 테세우스의 고뇌, 그리고 신들의 개입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고 해결되는 과정을 그린다. 각 막의 상세한 줄거리는 아래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5. 1. 프롤로그

전형적인 륄리(Jean-Baptiste Lully) 양식의 서곡이 연주된 후, 그리스 신화의 에리만토스 숲(Forest of Erymanthus)을 배경으로 우화적인 서막이 시작된다. 숲의 요정 님프들이 합창으로 여신 디아나(오페라에서는 Diane)를 찬양한다. 디아나와 사랑의 신 큐피드(L'Amour)는 숲 주민들의 지배권을 두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다. 이때 주신 주피터(Jupiter)가 나타나, 일 년에 단 하루 동안은 큐피드가 숲에 사는 순결한 처녀들의 마음을 지배해도 좋다고 선언하며 갈등을 중재한다. 디아나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지만, 아테네테세우스의 아들인 이폴리트(Hippolyte)와 팔라스의 후예인 아리시(Aricie)만은 자신이 보호하겠다고 약속한다. 서막은 큐피드가 사랑의 승리를 노래하고 숲의 주민들도 함께 노래하며 마무리된다.

5. 2. 1막

트로이제느 지역에 위치한 디아나 여신의 신전.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적대 가문인 팔라스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팔라스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아리시에게 평생 순결을 지킬 것을 강요하며 디아나 신전에 사실상 감금했다. 아리시는 테세우스의 아들 이폴리트를 사랑하지만, 이폴리트는 테세우스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아리시는 원수의 딸이라는 비극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이폴리토에 대한 사랑으로 고뇌하는 페드라


테세우스의 명령에 따라 순결 서약을 강요받은 아리시는 〈아리아〉 ‘성스러운 사원, 고요한 거처’(Temple sacré, séjour tranquille프랑스어)를 부르며 이폴리트에 대한 숨겨진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한다. 이때 이폴리트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여사제들이 디아나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테세우스의 아내인 페드르가 등장한다. 페드르는 의붓아들인 이폴리트에게 남몰래 품어서는 안 될 욕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리시를 질투하고 있었다. 페드르는 아리시에게 테세우스의 명령대로 순결 서약을 하라고 강요하지만, 아리시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페드르는 아리시가 이폴리트를 사랑하기 때문에 서약을 거부한다고 의심하며 질투심에 사로잡혀, 호위병들에게 디아나 신전을 파괴하라고 명령한다.

여사제들이 도움을 청하자 천둥과 함께 디아나 여신이 강림한다. 디아나는 페드르를 꾸짖으며 신전을 떠날 것을 명령하고, 이폴리트와 아리시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한다. 페드르는 자신의 시녀인 에놀(오이노네)과 함께 물러나며 좌절감을 토로한다.[52]

그때 아르카스가 나타나 테세우스가 저승으로 갔으며 아마 죽었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에놀은 이제 과부가 된 페드르에게 이폴리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아테네의 왕관까지 제안하여 그의 마음을 얻으라고 부추긴다. 아리시는 사랑만 줄 수 있지만, 페드르는 사랑과 함께 아테네의 왕관까지 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페드르는 망설이지만 결국 에놀의 제안에 동의하며, 이폴리트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한다.

5. 3. 2막

'''하데스, 지하 세계'''

테세우스는 친구 피리토스를 구출하기 위해 하데스(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피리토스는 지하 세계의 신 플루톤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유혹하거나 납치하려다 붙잡혀 감금된 상태였다.[52] 테세우스에게는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의 생애 동안 세 번의 기도에 응답하겠다는 약속을 한 특별한 이점이 있었다. 테세우스는 첫 번째 기도를 사용하여 하데스에 도달한다.

운명의 세 여신. 테세우스의 운명을 예언한다.


저승 입구에서 테세우스는 복수의 여신 티시포네와 마주한다. 테세우스가 피리토스의 석방을 요청하자 티시포네는 이를 거절하며 이중창 〈한 명의 희생으로 만족해라〉(Contente-toi d'une victimefra)를 부른다. 곧이어 저승의 문이 열리고 플루톤이 나타난다. 테세우스는 친구와 운명을 공유하거나 같은 벌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분노한 플루톤은 이를 거절하고 지옥의 강들을 불러 복수를 외친다. 지옥의 신들은 테세우스에게 "죽음만이 재회의 때"라고 말하며 그의 요청을 일축한다.

테세우스는 절망하여 죽음을 원하지만, 운명의 세 여신이 나타나 첫 번째 삼중창 〈운명의 신의 최고 의지에 따라〉(Du Destin le vouloir suprêmefra)를 부르며, 죽는 시점은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으므로 그의 뜻대로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방법이 막힌 테세우스는 지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두 번째 기도를 올려 도움을 청한다. 지하 세계의 신들은 "지옥에 들어간 자는 다시 나올 수 없다"고 노래하지만, 포세이돈의 사자 메르쿠리우스가 나타나 플루톤에게 테세우스의 석방을 명령한다.

테세우스가 하데스를 떠나려 할 때, 운명의 세 여신은 두 번째 삼중창을 통해 "너는 지옥에서 나오지만, 네 나라에서 지옥을 볼 것이다!"(Tu sors de l’infernal Empire, pour trouver les Enfers chez toi.fra)라고 불길하게 예언한다.[52][77] 이 두 번째 삼중창은 활기차게 상승하는 음계, 공격적인 붙임표 리듬, 갑작스러운 휴지, 그리고 이명동음을 활용한 독특한 진행으로 공포와 전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77]

5. 4. 3막

페드라에게 고백받은 히폴리토스


3막은 바다를 마주한 테세우스의 궁전을 배경으로 한다. 페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투스를 향한 금지된 사랑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이는 어머니 파시파에의 잘못으로 인해 비너스 여신에게 받은 저주 때문이기도 하다. 자책감에 시달리면서도 페드라는 히폴리투스를 향한 사랑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아리아 〈Cruelle Mère des Amours|사랑의 여신의 잔혹한 어머니프랑스어〉를 통해 복잡한 심정을 노래한다.

이때 히폴리투스가 나타나 아리시에 대한 일로 페드라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을 사과하고, 왕비에 대한 충성을 다시 한번 맹세한다. 그는 왕위 계승권을 페드라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동생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오직 아리시와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페드라는 히폴리투스의 말을 자신에 대한 사랑의 증표로 오해하고, "le trône, & le fils, & la mère|왕위, 아들, 그리고 어머니프랑스어"를 모두 바치겠다며 격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페드라의 진심을 알게 된 히폴리투스는 큰 충격을 받고 그녀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오직 "Aricie est tout ce que j’aime|아리시 뿐이다프랑스어"라고 외친다. 자신의 사랑이 완전히 거절당하자 페드라는 질투와 절망에 휩싸여 죽음을 결심하고, 히폴리투스의 칼을 빼앗아 자신을 찔러달라고 애원한다. 히폴리투스는 이를 막기 위해 그녀에게서 칼을 빼앗는다.

바로 그 순간, 저승에서 돌아온 테세우스가 이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아들 히폴리투스가 칼을 들고 자신의 아내 페드라와 다투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계모를 겁탈하려 했다고 오해한다. 테세우스가 진실을 묻지만, 페드라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나고, 고결한 성품의 히폴리투스 역시 계모를 비난하는 것을 거부하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때 페드라의 시녀 에노네가 히폴리투스가 페드라를 범하려 했다는 거짓을 암시하고, 이는 테세우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신하들이 테세우스의 귀환을 축하하는 합창(〈Que ce rivage retentisse, de la gloire du dieu des flots|이 해신의 영광으로, 해안을 채우라프랑스어〉)을 부르며 춤을 추지만, 테세우스의 마음은 아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신하들이 물러간 후, 테세우스는 깊은 고뇌 속에서 바다의 신 네프투누스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사용하여 히폴리투스를 벌해달라고 기도한다.[52] 기도가 끝나자 바다가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하며, 네프투누스가 테세우스의 소원을 들어주었음을 암시한다.

5. 5. 4막

힙폴리토스, 페드라, 테세우스


4막은 바닷가에 위치한 디아나 여신의 신성한 숲을 배경으로 한다.

자신이 망명해야 함을 깨달은 이폴리트는 "Ah ! Faut-il en un jour, perdre tout ce que j’aime !|하루 만에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다니!프랑스어"라고 노래하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이때 아리시가 나타나 이폴리트의 고뇌를 이해하며, 그의 아내로서 추방길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한다. 테세우스에게 반항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수호신 디아나를 증인으로 삼아 〈이중창〉 "Nous allons nous jurer une immortelle foi|영원한 신앙을 맹세하리프랑스어"를 부르며 서로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이때 뿔피리 소리가 들리고, 사냥꾼들이 나타나 디아나 여신을 찬미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즐거운 분위기는 갑작스러운 돌풍과 함께 깨진다. 바다가 거세게 솟구쳐 오르며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이 나타나고, 이는 테세우스가 내린 형벌의 도구임이 암시된다. 격렬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합창단은 놀라움을 표현한다. 이폴리트는 용감하게 괴물과 맞서 싸우려 하지만, 결국 불길에 휩싸여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폴리트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그의 죽음을 격렬하게 애도하고, 아리시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는다.

그때 페드르가 괴로워하며 등장하여, 이폴리트의 죽음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임을 인정하며 "sa mort est mon seul ouvrage|힙폴리토스의 죽음은 내가 저지른 짓이다프랑스어"라고 깊은 후회를 드러낸다. 그녀는 이 사실을 테세우스에게 알리려 한다.[52]

5. 6. 5막

'''바닷가의 디아나의 숲'''

「사랑하는 밤울음 꾀꼬리들이여」의 악보


페드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테세우스에게 모든 진실을 밝힌다. 아들과 아내를 모두 잃고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테세우스는 깊은 후회와 비탄에 잠겨 "위대한 신들이여! 나는 얼마나 후회로 괴로워하는 것인가!"라고 외치며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때 바다의 신 넵투누스가 나타나 이폴리트디아나 여신의 보호 덕분에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아들을 끝까지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벌로, 테세우스는 다시는 이폴리트를 만날 수 없다는 신탁을 받는다. 테세우스는 "다시는 너를 볼 수 없다." (Je ne te verrais plus.프랑스어)라고 슬퍼하며 신의 벌을 엄숙하게 받아들인다.[52]

'''아리시의 숲'''

목가적인 선율이 흐르는 이탈리아 아리치아의 숲에서 아리시는 눈을 뜨지만, 사랑하는 이폴리트를 잃었다는 생각에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양치기들이 디아나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자, 여신이 강림하여 아리시에게 "사랑스러운 영웅이 나타나 너의 남편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아리시는 위로받지 못하고 영웅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 디아나는 살아있는 이폴리트를 아리시 앞에 나타나게 한다 (다른 판본에서는 이폴리트가 서풍에 실려 온다고도 묘사된다).[52]

두 사람은 감격적으로 재회하며 〈이중창〉 "나에게 당신을 돌려주는 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Le moment qui vous rend à moi est le plus heureux de ma vie프랑스어)를 부르며 디아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디아나는 이폴리트를 이 땅 백성들의 왕으로 임명한다. 숲의 주민들도 두 연인의 재회를 축복하고 디아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양치기 소녀가 부르는 아리아 "사랑에 빠진 밤울음 꾀꼬리들아" (Rossignols amoureux프랑스어) 노래와 함께 오페라는 모두의 기쁨 속에서 막을 내린다.[52]

6. 음악적 특징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라모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로, 륄리 시대 프랑스 오페라의 전통적인 형식(상징적 프롤로그, 막마다 배치된 디베르티스망, 풍부한 합창과 기악곡 등)을 계승하면서도[73] 음악적으로는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라모의 음악 어법은 륄리에 비해 기술적으로 더 복잡하고 화성적으로 풍부하며, 관현악의 다채로운 활용이 특징이다. 서곡의 푸가적 악장은 이러한 복잡성을 예고하며[27], 작품 전반에 걸쳐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73] 이러한 혁신성 때문에 일부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그의 음악이 지나치게 savant|사방프랑스어(학구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27]

라모는 레치타티보에서 륄리의 방식을 따르면서도 더 선율적이고 표현력이 풍부하게 만들었으며[30],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에도 힘썼다.[75] 합창과 관현악은 단순히 배경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극의 전개와 감정 표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며[74], 특히 몇몇 합창 장면에서는 당시 최고 수준의 화성적 풍요로움을 보여준다.[73]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프랑스 오페라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륄리 사후 다소 정체되어 있던 프랑스 오페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으며[74], 라모는 전통적인 형식 위에 뛰어난 감정 묘사와 강화된 극적 표현을 더하여 고전 신화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74] 비록 일부 비평가들의 비판과 논쟁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청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프랑스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74]

6. 1.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륄리 시대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는 주로 가사의 의미 전달과 강세에 중점을 두었으며, 등장인물의 내면 감정 표현보다는 대사의 명확한 전달에 음악 반주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75] 이에 반해 라모의 레치타티보는 륄리와 마찬가지로 단어의 운율을 존중하면서도, 보다 cantabile|캉타빌레프랑스어 (노래처럼)하고 장식이 풍부하며,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더 넓은 음정 간격을 사용하는 특징을 보인다.[30] 또한 라모는 가사의 내용을 음악적 음형(音型)으로 모방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75] 『랄뤼스 세계 음악 사전』에 따르면, 라모의 레치타티브는 대사 전달 방식, 선율적 음정, 화성 진행 등에서 끝없는 변화를 보여주며 독창 성악 서법의 기초를 이룬다.[73]

아리아 역시 다양한 형식과 규모로 작곡되었다.[73] 1막에서 아리시의 아리아 "Temple sacré, séjour tranquille"는 엄숙하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지니며[29], 페드라의 아리아 "Périsse la vaine puissance"는 질투심을 격렬하게 표현한다. 디아나 대사제의 아리아는 대위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31] 3막에서 페드라의 아리아 "Cruelle mère des amours"는 가사가 평범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독창곡"으로 평가받으며[39], 테세우스의 기도 "Puissant maître des flots"는 바이올린 선율과 느린 베이스의 대조가 돋보이는 18세기 최고의 독창곡 중 하나로 여겨진다.[41] 4막에서는 히폴리토스의 독백 "Ah, faut-il qu'en un jour"가 등장하는데, 이는 라모 후기 오페라의 애가적 아리아를 예고하는 성격을 띤다.[42] 같은 막의 페드라의 비가는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의 가장 훌륭한 페이지 중 하나"로 묘사된다.[44] 테세우스 역할에는 아리오소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조성적 통일성과 풍부한 관현악 덕분에 아리아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73] 론도 형식이나 다 카포 형식의 명상적인 아리아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 반주의 밀도가 높은 것이 주목할 만하다.[73]

마지막 막에 삽입된 "나이팅게일 아리아" (Rossignols amoureux|로시뇰 아무뢰프랑스어)는 ariette|아리에트프랑스어의 한 예로, 가수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이탈리아풍의 화려한 bravura aria|브라부라 아리아it를 가리킨다. 이 아리아는 극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 이는 라모가 후기 작품에서 작곡한 ariettes|아리에트프랑스어와는 다른 점이다.[48][49]

6. 2. 합창과 관현악

장필리프 라모


륄리 시대 오페라처럼 『이폴리트와 아리시』에서도 합창과 기악곡은 풍부하게 사용된다. 라모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합창과 관현악에 더욱 중요한 역할과 다채로운 표현력을 부여했다.
합창은 단순히 배경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극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디아나의 대사제가 부르는 대위법적인 아리아에는 합창이 함께하며[31], 3막에서는 선원들의 즐거운 합창이 테세우스의 억눌린 분노와 대조를 이룬다.[40] 4막의 사냥 장면 합창과 막 마지막의 가슴을 치는 듯한 합창은 극적인 효과를 높인다.[73] 특히 2막의 운명의 여신 삼중창과 4막 사냥의 여신 합창은 화성적 풍요로움과 음향적 화려함 면에서 당시 바흐헨델에 비견될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다.[73] 옥스퍼드 오페라 대사전은 라모의 합창이 "주인공의 배경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줄거리에도 참여하며, 그 극적 수법은 당시의 모범으로 주목할 만한 진보를 보여주었다"고 분석한다.[74]
관현악의 활용 역시 륄리와 차별화된다. 륄리의 음악이 주로 가사의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둔 반면, 라모는 관현악을 통해 가사의 내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75]

  • 묘사적 음악: 1막의 천둥 소리(비발디 풍의 트레몰로와 빠른 음계 사용)[32][33], 2막 지하 세계의 어두운 분위기(남성 저음 악기 중심)[34], 4막 사냥 장면(호른의 적극적 사용)과 폭풍우(플루트로 바람 소리 묘사)[43], 5막의 목가적인 풍경(뮈제트 사용)[46] 등 관현악을 활용한 다채로운 음향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 독창적인 기법과 화성: 서곡의 푸가적 악장은 기술적 복잡성을 보여주며[27], 레치타티보 반주는 륄리보다 더 cantabile|칸타빌레프랑스어(노래와 같은)하고 장식적이며, 넓은 음정 도약을 통해 표현력을 높였다.[30] 명상적인 아리아에서는 오케스트라 반주의 밀도가 특히 두드러지며[73], 테세우스 역의 아리오소는 풍부한 관현악 덕분에 아리아와 같은 효과를 낸다.[73] 2막의 두 번째 '운명의 삼중주'에서는 공포감을 자아내기 위해 협화음계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라모는 이 기법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데 이상적이라고 보았다.[37][38] 또한, 라모는 이후 작품들에서도 즐겨 사용하게 되는 샤콘을 통해 관현악적 기량을 선보인다.[47]
  • 극적 효과: 각 막에 포함된 디베르티스망의 기악곡들은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73], 때로는 4막의 사냥 장면 디베르티스망처럼 뒤따르는 비극적 장면(이폴리트의 죽음 예상, 페드르의 절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격렬함을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73]


랄뤼스 세계 음악 사전은 이 작품의 음악 서법이 복잡하면서도 질적으로 높으며, 작품 전체에 독창적인 분위기가 유지된다고 평가한다.[73] 라모는 륄리의 오페라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합창과 관현악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여 프랑스 오페라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74]

6. 3. 화성과 조성

라모는 《이폴리트와 아리시》에서 당시 기준으로 혁신적인 화성 사용과 조성 체계를 선보이며 프랑스 오페라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륄리 시대의 오페라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일부 보수적인 비평가들에게는 그의 음악이 지나치게 학구적(savant|사방프랑스어)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27]

륄리 시대의 오페라는 주로 레치타티보로 구성되었고, 음악은 가사의 강약을 따라 의미 전달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에 반해 라모는 가사의 내용을 음형으로 모방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75], 레치타티보에서도 선율적 음정과 화성 진행에 끊임없는 변화를 주어 표현력을 높였다.[73] 그의 레치타티보는 륄리처럼 단어의 운율을 존중하면서도 더 노래와 같고(cantabile|칸타빌레프랑스어) 장식적이며,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더 넓은 음정 간격을 사용했다.[30]

특히 라모의 화성은 풍부함과 독창성으로 주목받았다. 『랄뤼스 세계 음악 사전』은 2막 5장의 '운명의 여신들의 삼중창'과 4막 '사냥의 여신들의 합창'에서 나타나는 화성적 풍요로움과 음향적 화려함이 당시 바흐헨델에 필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73] 또한 초연 당시 연주가 너무 어렵다고 판단되어 생략되었던[37] 2막의 유명하고 논란 많은 두 번째 '운명의 삼중주'에서는 협화음계를 사용하여 라모 자신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데" 이상적이라고 믿었던 효과를 추구했다.[37][38] 이러한 복잡하고 대담한 화성 사용은 작품 전체에 매우 독창적인 분위기를 부여했다.[73]

조성 면에서도 라모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지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2막에서는 남성 목소리만 사용하여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34] 테세우스 역에는 아리오소가 주어져 있지만, 조성적 통일성과 풍부한 관현악 덕분에 아리아와 같은 무게감을 지닌다.[73] 명상적인 아리아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 반주의 밀도를 높여 곡의 깊이를 더했다.[73]

라모의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즉각적으로 프랑스 오페라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옥스퍼드 오페라 대사전』에 따르면, 이 작품은 륄리 사후 양식적으로 동면 상태에 빠져 있던 프랑스 오페라를 깨우는 역할을 했다.[74] 비록 보수적인 비평가들과 아카데미 회원들은 라모의 음악을 비난하며 논쟁을 일으켰지만, 청중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74] 청중은 라모의 음악에서 프랑스 음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발견했으며, 그의 작품은 륄리의 형식적 틀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감정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과 강화된 극적 표현으로 오페라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고 명확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74]

7. 작품의 영향 및 의의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장필리프 라모가 5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표한 첫 오페라 작품으로, 그의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화려하게 시작하게 한 중요한 작품이다.[1] 이 작품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장바티스트 륄리 풍의 프랑스 오페라 전통을 따르면서도, 라모 특유의 대담하고 혁신적인 화성과 풍부한 관현악법을 선보여 음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초연 당시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전통적인 륄리 스타일을 옹호하는 '륄리파'와 라모의 새로운 음악을 지지하는 '라모파' 사이의 대립(륄리파와 라모파의 논쟁)은 이후 수십 년간 프랑스 음악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도 《이폴리트와 아리시》는 프랑스 오페라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바로크 시대 오페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작품은 후대에 여러 차례 패러디되거나 다른 작곡가들에 의해 새롭게 각색되는 등 지속적인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7. 1. 후대 오페라에 미친 영향

이 오페라는 파리의 코메디-이탈리엔에서 두 차례 패러디되었다. 첫 번째는 프랑수아 리코보니와 장-앙투안 로마녜지가 1733년 11월 30일에 초연한 것이고, 두 번째는 1742년 재공연 때 샤를-시몽 파바르가 1742년 10월 11일에 선보인 것이다. 두 패러디 모두 ''히폴리트와 아리시''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53]

카를로 이노첸초 프루고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을 혼합하려 했던 작곡가 토마소 트라에타를 위해 이탈리아어 대본을 만들었다. 트라에타의 오페라 ''이폴리토 에드 아리치아''(Ippolito ed Ariciaita)는 1759년 5월 9일 파르마의 테아트로 두칼레에서 처음 공연되었다.[54] 프루고니가 펠레그랭의 대본을 각색한 이 버전은 이후 다른 오페라들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그나츠 홀츠바우어의 ''이폴리토 에드 아리치아''(1759년 만하임 초연),[55] 조반니 파이지엘로의 ''페드라''(1788년 1월 1일 나폴리 초연),[56] 그리고 세바스티아노 나솔리니의 ''테세오 아 스티제''(1790년 12월 28일 피렌체 초연) 등이 있다.[5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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