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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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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키스탄의 역사는 선사 시대의 메르가르 유적과 소안 문화에서 시작하여, 인더스 문명의 번영, 베다 시대, 아케메네스 제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을 거쳤다. 이후 인도-그리스, 인도-스키타이, 쿠샨 제국 등 다양한 왕조가 파키스탄 지역을 지배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가즈나 제국, 고르 왕조, 무굴 제국이 흥망성쇠를 겪었다. 19세기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영국령 인도 제국에 편입되었고, 독립 운동을 거쳐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했다. 독립 이후 카슈미르 분쟁, 군사 정권, 민주화 과정을 겪었으며,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핵 개발, 쿠데타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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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역사
지도 정보
개요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인더스 사제 또는 왕의 동상, 1927년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인더스 사제 또는 왕의 동상 (1927년)
역사
고대구석기 시대
소안 문화, 기원전 500,000 – 250,000년경
신석기 시대
메르가르, 기원전 7000 – 3000년경
인더스 문명, 기원전 3300 – 1700년경
베다 문명, 기원전 1500 – 500년경
아케메네스 제국, 기원전 550 – 330년경
게드로시아, 기원전 542 – 330년경
간다라, 기원전 518 – 330년경
아라코시아, 기원전 518 – 330년경
힌두쉬, 기원전 517 – 330년경
사타기디아, 기원전 516 – 330년경
로르 왕조, 기원전 489 – 450년경
마케도니아 제국, 기원전 329 – 323년경
아라코시아, 기원전 323 – 312년경
게드로시아, 기원전 323 – 312년경
파로파미사다에, 기원전 323 – 312년경
포루스, 기원전 323 – 312년경
탁실레스, 기원전 323 – 312년경
마우리아 제국, 기원전 322 – 200년경
셀레우코스 제국, 기원전 312 – 63년경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원전 190 – 140년경
인도-그리스 왕국, 기원전 170 – 50년경
인도-스키타이 왕국, 기원전 110 – 서기 95년경
아프라차라자스, 기원전 25 – 서기 50년경
파라타라자스, 서기 120 – 300년경
고전 시대파르티아 제국, 기원전 90 – 서기 25년경
인도-파르티아 왕국, 서기 25 – 80년경
쿠샨 제국, 서기 60 – 345년
사산 제국, 서기 250 – 655년
인도-사산족, 서기 240 – 410년
쿠샨-사산 왕국, 서기 240 – 410년
굽타 제국, 서기 345 – 455년경
라이 왕조, 서기 415 – 644년
에프탈 제국, 서기 450 – 560년
브라만 왕조, 서기 641 – 725년
중세 시대칼리파조, 서기 643 – 860년
라시둔 칼리파조, 서기 643 – 661년
우마이야 칼리파조, 서기 670 – 860년
팔라 제국, 서기 770 – 850년
하바리 왕조, 서기 841 – 1024년
힌두 샤히, 서기 870 – 1010년
사만 제국, 서기 905 – 999년
가즈나 왕조, 서기 999 – 1186년
숨라 왕조, 서기 1024 – 1351년
구르 왕조, 서기 1170 – 1215년
델리 술탄국, 서기 1206 – 1526년경
맘루크 왕조, 서기 1206 – 1290년경
할지 왕조, 서기 1290 – 1320년경
투글루크 왕조, 서기 1320 – 1413년경
사이이드 왕조, 서기 1414 – 1451년경
로디 왕조, 서기 1451 – 1526년경
몽골 제국, 서기 1221 – 1327년경
차가타이 칸국, 서기 1225 – 1485년경
일 칸국, 서기 1256 – 1353년경
라에스 왕조, 서기 1320 – 1620년
카토르 왕조, 서기 1570 – 1947년경
삼마 왕조, 서기 1351 – 1524년경
아르군 왕조, 서기 1520 – 1554년경
무굴 제국, 서기 1526 – 1707년경
봄베이 관구, 서기 1618 – 1947년경
수리 왕조, 서기 1540 – 1556년경
타르칸 왕조, 서기 1554 – 1591년경
초기 근대두라니 제국, 서기 1747 – 1826년경
라스 벨라, 서기 1802 – 1947년경
미슬, 서기 1716 – 1799년경
마라타 제국, 서기 1758 – 1760년경
시크 제국, 서기 1799 – 1849년경
영국령 인도, 서기 1858 – 1947년경
독립 운동
현대파키스탄, 서기 1947년 – 현재
파키스탄 자치령, 서기 1947 – 1956년
공화국 파키스탄, 서기 1956년 – 현재
파키스탄의 역사적 지역
역사적 지역아자드 카슈미르
발루치스탄
동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
이슬라마바드 수도권
카이베르파크툰크와
펀자브
신드

2. 선사 시대

구석기시대의 소라니안 유적[21], 신석기시대의 메르가르 유적 등이 있다.[22][23][24][25][26] 소안 문화는 오늘날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시발릭 언덕에 있는 소안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기원전 774,000년경부터 기원전 11,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1] 메르가르는 1974년에 발견된 중요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초기 농경과 목축, 그리고 치의학의 증거를 보여준다.[22][23] 이 유적은 기원전 7000년에서 55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가며,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카치 평원에 위치해 있다. 메르가르의 주민들은 진흙 벽돌 집에서 살았고, 곡물을 창고에 저장했으며, 구리로 도구를 만들고, 보리, 밀, 대추와 대추야자를 재배했으며, 양, 염소, 소를 길렀다. 문명이 발전하면서(기원전 5500–2600년) 주민들은 석기 세공, 가죽 무두질, 구슬 생산, 금속 가공을 포함한 공예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이 유적은 기원전 2600년까지 지속적으로 점유되었는데,[24] 당시 기후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600년에서 2000년 사이, 이 지역은 더욱 건조해졌고, 메르가르는 인더스 문명의 초기 발달 단계에 있던 인더스 문명을 위해 버려졌다.[25][26]

2. 1. 구석기 시대

소안 계곡에서 발견된 소안 문화는 구석기 시대의 아슐리안 문화에 해당한다.[21] 소안 문화는 오늘날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시발릭 언덕에 있는 소안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기원전 774,000년경부터 기원전 11,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1]

2. 2. 신석기 시대

구석기시대의 소라니안 유적, 신석기시대의 메르가르 유적 등이 있다. 메르가르는 1974년에 발견된 중요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초기 농경과 목축,[22] 그리고 치의학의 증거를 보여준다.[23] 이 유적은 기원전 7000년에서 55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가며,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카치 평원에 위치해 있다. 메르가르의 주민들은 진흙 벽돌 집에서 살았고, 곡물을 창고에 저장했으며, 구리로 도구를 만들고, 보리, 밀, 대추와 대추야자를 재배했으며, 양, 염소, 소를 길렀다. 문명이 발전하면서(기원전 5500–2600년) 주민들은 석기 세공, 가죽 무두질, 구슬 생산, 금속 가공을 포함한 공예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이 유적은 기원전 2600년까지 지속적으로 점유되었는데,[24] 당시 기후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600년에서 2000년 사이, 이 지역은 더욱 건조해졌고, 메르가르는 인더스 문명의 초기 발달 단계에 있던 인더스 문명을 위해 버려졌다.[25][26]

3. 고대

인더스강유역에서 베다 시대 문명을 꽃피웠다. 아케메네스 제국이 침공하여 인더스 강 유역을 차지했다. 그 후 450 BC경 로즈 왕조가 신드 지역을 지배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메니아 제국이 박트리아를 침공했다. 그 후 마우리아 제국이 인도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으로 이어진다.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3300년경 인더스 문명과 함께 인더스 계곡에서 시작되었다.[27]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이것은 구세계의 3개의 초기 문명 중 하나였으며, 3개 중 가장 광범위한 문명이었다.[27] 125만 km2의 지역을 덮었다.[27] 그것은 오늘날 파키스탄의 신드, 펀자브, 발루치스탄 지방의 인더스 강 유역에서 번성했으며, 한때 북서부 인도 지역의 계절성 가그라-하크라 강 근처를 흐르는 다년생, 주로 몬순의 영향을 받는 강 시스템을 따라 발전했다.[27] 전성기에는 이 문명이 약 5백만 명의 인구를 수용했으며, 현재의 남부 및 동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아라비아 해까지 확장된 수백 개의 정착지에 분산되어 있었다.[28] 고대 인더스 강 유역의 주민인 하라파인들은 야금술과 수공예(카넬리언 제품, 인장 조각)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으며 구리, 청동, 납, 주석을 생산했다.

인더스 문명


성숙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600년에서 1900년경까지 번성했으며, 인더스 계곡에서 도시 문명의 시작을 알렸다. 이 문명에는 하라파, 가네리왈라, 모헨조다로와 같은 도시 중심지가 있었으며, 벽돌로 지어진 도시, 도로변 배수 시스템, 그리고 여러 층으로 된 집으로 유명했다. 또한 일종의 시 당국 조직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문명의 후기 하라파 시대 동안, 점진적인 쇠퇴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1700년경에는 대부분의 도시가 버려졌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며, 인더스 문명의 일부 요소가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기원전 3천 년 동안 이 지역의 건조화는 문명과 관련된 도시화의 초기 동기가 되었을 수 있지만, 결국 물 공급을 줄여 문명의 종말을 초래하고 인구를 동쪽으로 흩어지게 했다. 문명은 기원전 1700년경에 붕괴되었지만, 붕괴의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인더스 도시의 발굴과 도시 계획 및 인장의 분석을 통해, 이 문명이 도시 계획, 예술, 공예 및 무역에서 높은 수준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론되었다.[29]

고고학적 문화. GGC, 묘지 H, 구리 보물 및 PGW 문화는 인도-아리아인과 관련된 문화의 후보이다.


베다 시대()는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전 8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아리아인들이 이주하여 인더스 계곡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독특한 종교적 전통과 관습이 유입되었고, 이는 현지 문화와 융합되었다.[17] 인도-아리아인의 종교적 신념과 관습은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와 이전 인더스 문명의 토착 하라판 인들의 신념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결국 베다 문화와 부족으로 이어졌다.[30] 초기 인도 아리아인은 펀자브를 중심으로 한 후기 청동기 시대 사회였으며, 왕국보다는 부족으로 조직되었고, 주로 목축 생활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이 시기에 힌두교의 가장 오래된 성경인 베다가 저술되었다.[31]

오늘날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의 상당 부분이 아케메네스 제국에 복속되어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쳤다.


아케메네스 시대의 탁실라 도시를 나타내는 비르 마운드의 유적


기원전 550년경에 인더스 계곡에 남아 있던 주요 베다 부족은 간다라의 '캄보자', '신두', '탁사스', 체나브 강의 '마드라스'와 '카타스', 라비 강의 '말라스'와 수틀레지 강의 '투그라스'였다. 이 여러 부족과 군주국들은 서로 격렬하게 싸워서 인더스 계곡에는 외부 세력에 맞서 싸울 강력한 베다 부족 왕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전쟁을 벌이는 부족들을 하나의 조직적인 왕국으로 통합할 수 없었다. 간다라의 푸슈카라스린 왕은 지역 경쟁자들과 권력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카이베르 고개는 제대로 방어되지 않았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다리우스 1세 왕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침략을 계획했다. 인더스 계곡은 금과 비옥한 토지로 인해 페르시아에서 명성이 높았고, 이를 정복하는 것은 그의 전임자 키루스 대왕의 주요 목표였다.[32] 기원전 542년에 키루스는 군대를 이끌고 남부 발루치스탄의 마크란 해안을 정복했다. 그러나 그는 마크란 너머(칼라트, 후즈다르, 판구르) 지역에서 원정을 벌였고, 대부분의 군대를 ''게드로시아 사막''(오늘날의 카란 사막으로 추정)에서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518년에 다리우스는 카이베르 고개를 통해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진군하여 기원전 516년경에 신드의 아라비아해 해안에 도달했다. 페르시아 통치하에 관료 체계를 갖춘 중앙 집권적 행정 시스템이 처음으로 인더스 계곡에 도입되어 몇 개의 사트라프가 설립되었다. 즉, 간다라 지역 주변의 간다라, 펀자브와 신드 주변의 힌두쉬, 오늘날 카이베르 파크툰크와, 발루치스탄 일부를 포함하는 아라코시아,[33] 반누 구 분지 주변의 사타기디아,[35] 그리고 발루치스탄 남부의 마크란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게드로시아였다.[34]

아케메네스 제국의 가장 동쪽 사트라프와 국경 지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다리우스 대왕의 비문과 헤로도토스의 『역사』, 그리고 후대의 『알렉산드로스 연대기』(아리안, 스트라보 등)와 같은 그리스 자료에서 암시된다. 이 자료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되어 페르시아 왕에게 조공을 바친 세 개의 인더스 계곡 지류 또는 정복지를 열거하고 있다.[35]

오늘날 파키스탄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


포루스, 알렉산드로스 3세와 함께


기원전 326년 봄,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박트리아에서 인더스 원정을 시작하여 말 3,500필과 병사 10,000명을 남겨두었다. 그는 군대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더 큰 부대는 다리우스 1세가 200년 전에 했던 것처럼 카이베르 고개를 통해 인더스 계곡으로 들어갔고, 알렉산드로스 3세가 직접 지휘하는 더 작은 부대는 북쪽 경로, 아마도 치트랄 근처의 브로골 또는 도라 고개를 통해 들어갔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방패를 든 근위병, 보병, 궁수, 아그리아니안족, 말 탄 창병들을 지휘하며 과거 간다라 사트라피 부족에 맞서 이끌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부족은 쿠나르 계곡의 아스파시오이 부족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알렉산드로스 3세는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 그러나 아스파시오이는 결국 패배했고 4만 명이 노예로 잡혔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남서쪽으로 계속 진격하여 기원전 326년 4월에 스와트 & 부네르 계곡의 아사케노이 부족과 마주쳤다. 아사케노이는 용감하게 싸웠고 오라, 바지라(바리코트) 및 마사가 도시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와 그의 군대에 완강하게 저항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아사케노이의 저항에 격분하여 마사가의 모든 주민을 살해하고 건물을 파괴했다. 오라에서도 비슷한 학살이 이어졌다.[36] 아사케노이의 또 다른 요새인 오라에서도 비슷한 학살이 이어졌다. 이 학살에 대한 소문이 수많은 아사케노이인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상글라와 코히스탄 사이에 위치한 언덕 요새인 아오르노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그들의 뒤를 바싹 쫓아 전략적 언덕 요새를 포위했고, 결국 요새를 점령하여 파괴하고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였다. 남은 작은 부족들은 항복하거나 푸슈칼라바티(차르사다)의 아스타네노이 부족처럼 재빨리 제압되어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병사 38,000명과 황소 230,000마리가 포획되었다.[37] 결국 알렉산드로스 3세의 작은 부대는 카이베르 고개를 통과한 더 큰 부대와 아토크에서 만났다. 간다라 정복이 완료되자 알렉산드로스 3세는 군사 보급선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보급선은 이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박트리아의 발흐까지 위험하게 확장되었다.

간다라를 정복하고 박트리아로의 보급선을 강화한 후, 알렉산드로스 3세는 택실라의 암비 왕과 군대를 합쳐 기원전 326년 7월에 인더스 강을 건너 아르코시아(펀자브) 원정을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저항은 베라 근처의 젤룸 강에서 파우라바 부족의 포루스 왕과 마주치면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암비와 함께)와 포루스 사이의 유명한 히다스페스 전투(젤룸)는 그가 치른 마지막 주요 전투였다. 포루스를 격파한 후, 그의 전투에 지친 군대는 난다 왕조의 군대와 짓밟는 코끼리 부대에 맞서 인도로 진격하는 것을 거부했다.[38] 따라서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인더스 계곡을 따라 남서쪽으로 진군했다.[39] 그 과정에서 그는 물탄과 신드에서 여러 작은 왕국과 전투를 벌였고, 그 후 군대를 서쪽으로 행진하여 마크란 사막을 건너 현재의 이란으로 향했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알렉산드로스 3세의 군대는 굶주림과 갈증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냈지만 인간 적과는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마크란 해안에 살았던 원시인인 "물고기 먹는 자", 즉 익티오파기족과 마주쳤는데, 이들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불, 금속, 옷이 없었고, 고래 뼈로 만든 오두막에서 살았으며, 날생선을 먹었다.

[[File:India_250_BC.jpg|thumb|right|아쇼카 왕 치하의 마우리아 제국, 기원전 250년경.[40]

마우리아 제국은 기원전 322년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 의해 건국되어 기원전 185년까지 느슨한 형태로 존재했던 마가다(Magadha)를 기반으로 한 지리적으로 광대한 철기 시대의 역사적 강대국이었다.[41] 마우리아 제국은 인더스-갠지스 평원 정복으로 중앙 집권화되었으며, 수도는 파탈리푸트라(현대 파트나)에 위치했다. 이 제국의 중심지 외 지역에서의 제국의 지리적 범위는 제국을 흩뿌려 놓은 군사 도시들을 통제하는 군 지휘관들의 충성에 달려 있었다.[42] 아쇼카의 통치 기간(기원전 268~232년경) 동안 제국은 남부를 제외한 인도 아대륙의 주요 도시 중심지와 간선 도로를 잠시 통제했다.[41] 아쇼카의 통치 이후 약 50년 동안 쇠퇴했으며, 푸시야미트라 숭가에 의한 브리하드라타 암살과 마가다에서 숭가 제국의 건국으로 기원전 185년에 해체되었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자 차나키아의 도움을 받아 군대를 일으켜[44] 기원전 년에 난다 제국을 전복시켰다. 찬드라굽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남긴 사트라프를 정복하여 서쪽으로 중앙 및 서부 인도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으며, 기원전 317년까지 제국은 북서부 인도를 완전히 점령했다.[45] 마우리아 제국은 그 후 셀레우코스 제국의 창시자이자 디아도코이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와의 셀레우코스-마우리아 전쟁에서 승리하여 인더스강 서쪽의 영토를 획득했다.[45]

마우리아 제국 하에서 단일하고 효율적인 금융, 행정 및 보안 시스템의 구축으로 인해 내부 및 외부 무역, 농업 및 경제 활동이 번창하고 남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마우리아 왕조는 파탈리푸트라에서 탁실라까지 그랜드 트렁크 로드의 전신을 건설했다.[46] 칼링가 전쟁 이후 제국은 아쇼카 치하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중앙 집권 통치를 경험했다. 아쇼카가 불교를 받아들이고 불교 선교사를 후원하면서 이 종교가 스리랑카, 북서부 인도 및 중앙 아시아로 확장되었다.[48]

마우리아 시대의 남아시아 인구는 1500만에서 3000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47]

제국의 지배 기간은 예술, 건축, 비문 및 텍스트 제작에 있어 뛰어난 창의성으로 특징지어졌다.[48]

4. 중세

4. 1. 고전 시대

인도-그리스 왕국, 인도-스키타이, 인도-파르티아 왕국, 쿠샨 제국 등 여러 왕조가 파키스탄 지역을 지배했다.[49][53][63][64] 이 시기 헬레니즘 문화와 아시아 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간다라 미술이 발전하였다.





인도-그리스의 메난드로스 1세(재위 기원전 155–130년)는 간다라에서 그리스-박트리아인들을 몰아내고 힌두쿠시 산맥 너머까지 진격했으며, 그의 영토는 현대 아프가니스탄의 판지시르와 카피사를 포함했고, 펀자브 지방까지 뻗어 있었다.[51] 수도인 사가라(현대 시알코트)는 크게 번영했으며, 밀린다 팡하는 메난드로스를 칭찬하며 "모든 인도에서 밀린다와 같은 자는 없다"고 말했다.[52] 그의 제국은 마지막 독립 그리스 왕인 스트라토 2세가 서기 10년경 사라질 때까지 분열된 채로 존속되었다.

|thumb|시르카프, 펀자브의 초기 사카 시대에서 발견된 유형의 석재 팔레트

|thumb|right|최대 영토 확장 시기 인도-스키타이인의 영토

인도-스키타이인은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중앙아시아 남부에서 파키스탄아라코시아로 이주한 사카족(스키타이인)의 후손이었다.[53] 그들은 인도-그리스인들을 몰아내고 간다라에서 마투라까지 이르는 왕국을 다스렸다. 사카 통치자들의 세력은 기원후 2세기에 사타바하나 왕조의 남인도 황제 가우타미푸트라 사타카르니에게 패배한 후 쇠퇴하기 시작했으며,[53][54] 이후 사카 왕국은 4세기에 동인도에서 온 굽타 제국의 찬드라굽타 2세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다.[55]

|썸네일|인도-파르티아인이 건설한 고대 불교 수도원 탁트이바히 (유네스코 세계 유산)

|썸네일|최대 영토 시기인 서기 40년경의 인도-파르티아 왕국과 주변 남아시아 국가들.

인도-파르티아 왕국은 곤도파레스 왕조가 통치했으며, 서기 1세기 경이나 약간 전부터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북서부 인도 일부를 통치했다.[63][64] 그들의 주화가 종종 아르사케스 왕조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인도-파르티아인으로 불렸다. 기독교 저술에 따르면 사도 토마스는 곤도파레스 왕의 궁정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탁실라에 왕을 위한 궁전을 지었다고 한다.

페샤와르의 카니슈카 사리함은 한때 신성한 불교 유물을 카니슈카 사리함에 보관했다.


서기 2세기의 인도 지도, 카니슈카 치세 동안의 쿠샨 제국(녹색)의 범위를 보여준다.


쿠샨 제국은 서기 1세기 중반 경 초대 황제 쿠줄라 카드피세스의 지휘 아래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대륙 북서부로 확장되었다.[63][64] 카니슈카 대왕 시대에 제국은 아프가니스탄 대부분[65]과 인도 아대륙 북부 지역으로 뻗어 나갔다.[66] 카니슈카 황제는 불교의 훌륭한 후원자였으며, 쿠샨 왕조는 인도에서 불교를 정착시키고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69] 쿠샨족은 간다라 미술에 새로운 경향을 가져왔다. 3세기 무렵, 그들의 인도 제국은 붕괴되었고, 마지막으로 알려진 위대한 황제는 바수데바 1세였다.[71][72]

굽타 제국, 라이 왕조, 브라만 왕조가 파키스탄을 지배했다.[55] 이후 아랍계 정통 칼리파조와 우마이야 왕조가 파키스탄 지역을 차지했다.[78]

|right|thumb|300x250px|아랍 칼리파조의 확장.

비잔틴 제국과 사산 제국으로부터 중동을 정복한 후, 정통 칼리파조는 현재의 발루치스탄에 있는 마크란의 해안 지역에 도달했다.[78] 제2대 칼리프 우마르()는 라이 왕조에 대항하여 마크란 침공을 명령했고, 마크란의 정통 칼리파조 점령이후, 군대가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마크란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제4대 칼리프 알리()의 통치 기간 동안, 정통 칼리파조 군대는 발루치스탄의 중심부에 있는 칼라트 마을을 정복했다.[78]

제6대 우마이야 칼리프 알-왈리드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아랍 군 사령관 무함마드 이븐 알-카심은 신드로의 우마이야 침공을 지휘했다. 712년, 그는 힌두 ''마하라자'' 다히르 아로르()의 군대를 격파하고 신드의 칼리파조 속주를 설립했다. 이후, 이븐 알-카심은 물탄을 정복했고, 물탄은 이후 이슬람 문화와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79]

4. 2. 중세 후기

가즈나 제국, 일 칸국, 삼마 왕조 등이 파키스탄을 지배했다. 16세기에는 무굴 제국이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인도를 통일했으나, 이후 두라니 제국이 파키스탄 지역을 대체로 지배했고, 일부 지역에는 마라타 왕국이 세워졌다.

1030년 가즈나 제국의 최대 영토


997년, 튀르크계 통치자 마흐무드 가즈나비는 가즈나 왕조 제국을 물려받아 대호라산 대부분을 정복했다. 1005년 카불의 힌두 샤히 왕조에 맞서 페샤와르로 진격했으며, 펀자브 (1007년), 물탄 (1011년), 카슈미르 (1015년), 카노치 (1017년)를 차례로 정복했다. 1030년 그의 통치가 끝날 무렵, 마흐무드의 제국은 서쪽으로는 쿠르디스탄에서 동쪽으로는 야무나 강까지 확장되었고, 가즈나 왕조는 1187년까지 존속했다. 아볼파즐 베이하키와 페르도우시는 라호르의 광범위한 건축 사업과 마흐무드의 학문, 문학, 예술 지원 및 후원을 묘사했다. 마흐무드의 후계자들은 157년 동안 통치했으나, 왕국은 점차 축소되었고, 격렬한 왕위 계승 투쟁으로 찢어졌다. 1160년대까지 가즈나 왕조 국가와 힌두 왕국들 사이의 경계선은 현재의 인도와 파키스탄 경계선과 거의 일치했다. 고르 왕조는 1160년경 가즈니를 점령했고, 가즈나 왕조의 수도는 라호르로 이전되었다.



고르 왕조는 서쪽으로 니샤푸르와 메르브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97][98] 고르 군대는 카스피해 연안의 고르간까지 이르렀다.[99] 동쪽으로 고르인들은 벵골까지 침략했다.[100] 1170년대에 고르 왕자 무함마드 고르는 가즈니를 점령했고, 1186-87년까지 마지막 가즈나 왕조 통치자 호스로 말리크를 폐위시켜 가즈나 왕조 제국을 종식시켰다. 고르인들은 1215년에 전복되었지만, 쿠트브 웃딘 아이바크가 세운 델리 술탄국 아래에서 인도 아대륙에서의 정복은 수 세기 동안 존속했다.

아우랑제브() 치하 년 무렵 제국의 최대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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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der = 파키스탄의 무굴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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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1 = Beautiful pavilion of Faiz Baksh terrace.jpg

| caption1 = 라호르의 샬리마르 정원[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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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tion2 = 라호르 성의 알람기리 게이트는 아우랑제브 통치기에 지어졌다.[116]

| image3 = Dewan-e-Khas (Hall of Special Audience).JPG

| caption3 = 라호르 성의 디완-이-카스는 샤 자한 통치기에 지어졌다.

| image4 = Badshahi Mosque, Lahore I.jpg

| caption4 = 아우랑제브가 건설한 바드샤히 모스크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이다.

| image5 = Wazir khan iwan.jpg

| caption5 = 라호르의 와지르 칸 모스크, 무굴 프레스코화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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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tion6 = 아크바리 사라는 자항기르 묘로 이어지는 기념비적인 문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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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6년, 바부르는 티무르 왕조의 후손이자 페르가나 계곡(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후손으로, 카이베르 고개를 넘어 무굴 제국을 세웠다.[117] 무굴족은 중앙아시아 출신의 튀르크인 (상당한 몽골인 혼혈)의 후손이었다.[117] 후마윤은 1540년 셰르 샤 수리에게 패배하여 카불로 후퇴해야 했다. 셰르 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이슬람 샤 수리가 통치자가 되었고, 그의 죽음 이후 재상 헤무가 왕위에 올랐으나, 1556년 11월 6일 제2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악바르 황제의 군대에 패했다. 악바르는 종교적, 민족적 관용의 초기 지지자였으며, 초기 형태의 다문화주의를 선호했다. 무굴 왕조는 1600년까지 남아시아 대부분을 통치했다. 무굴 황제들은 지역 왕족과 결혼하고 지역 ''마하라자''와 동맹을 맺었다. 1707년 아우랑제브가 죽은 후, 현대 파키스탄과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16세기 말 잠시 동안 라호르는 제국의 수도였다. 무굴의 건축 유산으로는 라호르 성, 와지르 칸 모스크, 샬리마르 정원, 자항기르 묘, 누르 자한 묘, 아크바리 사라, 히란 미나르, 샤 자한 모스크, 바드샤히 모스크가 있다.[116]

18세기 초, 무굴 제국은 쇠퇴했다. 1749년, 무굴은 신드, 펀자브 지역과 중요한 인더스강을 건너는 지역을 아흐마드 샤 두라니에게 양도하도록 설득당했다.[118] 아흐마드 샤는 1757년 델리를 약탈했지만, 무굴 왕조가 명목상으로 도시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118]

페샤와르의 발라 히사르 요새는 두라니 왕의 왕실 거주지 중 하나였다.


1751-52년, 마라타무굴 사이에 '아함디야' 조약이 체결되었고, 발라지 바지라오가 페슈와였다.[119] 이 조약을 통해 마라타는 푸네의 수도에서 인도의 전체를 통제했고, 무굴 통치는 델리에만 국한되었다.[119] 마라타는 이제 인도의 북서쪽으로 통제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했다.[119] 아흐마드 샤는 무굴 수도를 약탈하고 그가 탐낸 전리품과 함께 물러났다.[119] 아프간에 대항하기 위해 페슈와 발라지 바지라오는 라구나트라오를 보냈다.[119] 그는 펀자브에서 로힐라족과 아프간 수비대를 격파하고 티무르 샤와 그의 궁정을 인도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라호르, 물탄, 카슈미르 및 아토크 인도 측의 다른 수바를 마라타 통치 하에 두었다.[120] 1758년, 마라타 제국의 장군 라구나트 라오는 펀자브, 국경 지역 및 카슈미르를 공격하여 정복하고 티무르 샤 두라니를 몰아냈다. 1759년, 마라타와 동맹군은 라호르 전투에서 승리하여 두라니를 격파했고,[121][122] 라호르, 데라 가지 칸, 물탄, 페샤와르, 카슈미르 및 아프가니스탄 국경의 남동쪽의 다른 수바가 마라타 통치 하에 들어갔다.[123]

아흐마드 샤는 지하드 (또는 이슬람 성전)를 마라타에 선포했고, 다양한 아프간 부족의 전사들이 그의 군대에 합류했다. 초기 소규모 전투 후, 북서인도에서 훨씬 더 큰 마라타 수비대에 대한 아프간의 결정적인 승리가 이어졌고, 1759년까지 아흐마드 샤와 그의 군대는 라호르에 도착하여 마라타와 대결할 준비가 되었다. 1760년까지 마라타 집단은 사다시브라오 바우의 지휘 하에 충분히 큰 군대로 뭉쳤다. 제3차 파니파트 전투 (1761년 1월 14일)는 주로 무슬림 군대와 주로 힌두 군대 간에 12킬로미터 전선에서 벌어졌다. 두라니의 군대가 마라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지만, 그들은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파니파트에서의 승리는 아흐마드 샤와 아프간의 권력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전에도, 제국은 펀자브에서 시크교도의 부상이라는 형태로 도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1762년, 아흐마드 샤는 여섯 번째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스를 건너 시크를 제압했다. 이 시점부터 제국의 지배와 통제가 약해지기 시작했고, 두라니의 죽음 즈음에는 펀자브를 시크에게 완전히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우즈베크에게 북부 영토를 잃었고, 그들과의 타협이 필요하게 되었다.[124]

란지트 싱의 사마디, 배경에 바드샤히 모스크의 첨탑이 있다.


18세기에는 시크 왕국이 펀자브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구루 나나크 (1469년 11월 29일 – 1539년 9월 22일)는 시크교의 창시자이며, 현대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근처 낭카나에 있는 ''Rāi Bhōi dī Talwandī'' (현재 난카나 마을)에서 힌두교 카트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북인도의 영향력 있는 종교 및 사회 개혁가였으며, 현대적인 일신교 질서의 성스러운 창시자이자 시크교의 열 명의 신성한 구루 중 첫 번째였다.

시크 제국 (1799–1849)은 마하라자 란지트 싱이 "''사르카르-이-칼사''"로 선포되어 "라호르의 마하라자"로 불리며, 시크 칼사군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125] 이 제국은 주로 펀자브 지역에 있는 미슬다르가 통치하는 자치적인 펀자브인 미슬들의 집합체로 구성되었다.[126] 이 제국은 서쪽의 카이베르 고개에서 북쪽의 카슈미르, 남쪽의 물탄에서 동쪽의 카푸르탈라까지 확장되었다. 제국의 주요 지리적 영향력은 펀자브 지역이었다. 시크 칼사군 시대의 시크 제국의 기초는 1707년 아우랑제브의 죽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 무굴 제국의 붕괴는 시크 군대가 무굴 제국과 파슈툰족에 대한 원정을 이끌 기회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군대가 성장하여 여러 시크 군대로 분할되었고, 이후 반독립적인 "미슬"로 나뉘었다. 그러나 1762년부터 1799년까지, 그들의 미슬을 통치하는 시크교 통치자들이 자체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시크 제국의 공식적인 시작은 1801년 란지트 싱의 대관식 때 시크 칼사군이 해산되면서 시작되었고, 통일된 정치적 국가를 창출했다.

5. 근대

5. 1. 영국 식민지 시대

19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 회사는 파키스탄 지역을 점령하고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다.[127] 영국은 철도, 도로 등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근대적인 교육 제도를 도입했다.

현대 파키스탄 영토는 1839년까지 영국이나 다른 유럽 열강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카라치는 1839년에 점령되어 제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한 항구와 카라치 주둔지로 사용되었다.[127] 신드의 나머지 지역은 1843년에 점령되었으며, 이후 수십 년 동안 동인도 회사세포이 항쟁 이후(1857–1858) 빅토리아 여왕의 직접 통치가 전쟁과 조약을 통해 대부분의 국가를 장악했다. 주요 전쟁은 발루치족 탈푸르 왕조에 대항하여 미아니 전투 (1843)에서 신드에서 종결되었고, 앵글로-시크 전쟁 (1845–1849), 앵글로-아프가니스탄 전쟁 (1839–1919)이었다. 1893년까지 모든 현대 파키스탄은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으며, 1947년 독립할 때까지 그렇게 유지되었다.[127]

영국 통치하에서 현대 파키스탄은 대부분 신드 지방, 펀자브 지방, 발루치스탄 기관으로 나뉘었다. 신드는 봄베이 행정부의 일부였으며, 카라치에 기반을 둔 위원이 있었다. 펀자브는 벵골 행정부의 일부로 통치되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현지 영국 관리에게 위임되었다. 처음에는 경 헨리 로렌스가 이끄는 "행정 위원회"가 있었다.[128] 세포이 항쟁 이후, 경 존 로렌스는 첫 번째 펀자브 총독이 되었다. 펀자브 운하 식민지는 1880년대에 시작된 야심 차고 대체로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발루치스탄 기관은 주로 토후국과 부족 영토로 구성되어 가볍게 통치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 퀘타는 군사 기지로 건설되었다. 1935년 퀘타 지진은 큰 재앙이었다. 1876년부터 민감한 최북단 지역은 "최고 위원 지방"으로 지정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은 1893년 듀랜드 라인에서 최종적으로 고정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파키스탄의 국경으로 남아 있다.

카라치는 영국 통치하에서 크게 확장되었고, 라호르와 다른 더 큰 도시들이 그 뒤를 따랐다.

파키스탄의 여러 지역은 다음과 같이 동인도 회사에 의해 정복되었다:

• 신드는 1843년 하이데라바드 전투와 미아니 전투에서 정복되었다.

• 펀자브와 동부 카이베르 파크툰크와는 1849년 제2차 앵글로-시크 전쟁 중에 정복되었다.

영국 라지에 의해 정복된 지역은 다음과 같다:

• 남부 발루치스탄은 1876년 칼라트 조약에 따라 통제하에 들어갔다.

• 서부 발루치스탄은 1879년 간다막 조약을 통해 제2차 앵글로-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대영 제국에 의해 정복되었다.

5. 2. 독립 운동

1906년 벵골 분할령에 찬성하면서 전인도 무슬림 연맹이 결성되었다. 1877년 사이드 아미르 알리는 세포이 항쟁 실패 이후 고통받던 인도 무슬림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 '중앙 국민 무하마단 협회'를 결성했으나 19세기 말 쇠퇴했다. 1885년 인도 국민 회의가 설립되었고, 영국령 인도 제국으로부터 독립 투쟁에 무슬림 공동체를 포함시키려 노력했으나, 시르 사이드 아흐메드 칸을 포함한 대다수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 정당을 신뢰하지 않았다.[129]

민토 경은 1906년 6월 무슬림 대표단을 만났다.


1900년 아그라 및 아우드 연합주의 영국 행정부가 힌디어를 데바나가리 문자로 표기하는 것을 공식 언어로 지정하면서 무슬림들은 영국이 떠난 후 힌두교 다수가 무슬림의 권리를 억압할 것을 우려했다. 1909년 민토-모릴리 개혁은 무슬림 분리 선거구를 요구했다. 1929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 정권이 약해지면서 인도의 자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무슬림 국민국가 건설 운동이 일어났다. 1933년 파키스탄 선언을 통해 영국령 인도 서북부(현재의 파키스탄) 지역을 파키스탄으로 명명했다.

1940년 라호르에서 열린 무슬림 연맹 실무 위원회


1930년대 무함마드 이크발 등이 무슬림 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파키스탄 운동을 시작했다. 1940년 진나는 라호르에서 무슬림 연맹 임시 총회를 소집, 인도 국민 회의와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하고 두 민족 이론과 분리된 고향을 요구하는 이유를 옹호했다.[149] 시칸다르 하야트 칸이 초안한 결의안은 무슬림 연맹 주제 위원회에서 재작업을 거쳤으며,[150] 최종 텍스트는 종교 간 폭력 증가로 통합 인도 개념을 거부하고[151] 독립 국가 창설을 권고했다.[152] ''셰레-방글라'' 벵골 민족주의자 AKF 하크가 발의하고 차우드리 칼리쿠자만 등이 지지한 이 결의안은 1940년 3월 23일 채택되었다.[153] 결의안은 무슬림 다수 지역을 자율적이고 주권적인 독립 국가로 구성하고, 소수 민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154]

무슬림 연맹 지도자들은 파키스탄을 '새로운 메디나'로 강조하며 이슬람 유토피아, 이슬람 세계 전체의 지도자이자 보호자로 구상했다.[155][156] 이슬람 학자들은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155][156] 1942년 인도 독립 운동 이후, 인도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별도 고향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156] 대부분의 바렐비[157]와 바렐비 울레마는 파키스탄 창설을 지지했으며[158], 무슬림 연맹은 ''피르''와 수니 울레마를 동원하여 이를 보여주었다.[159] 반면, 대부분의 데오반디들은 파키스탄 창설과 두 민족 이론에 반대했다.[161][162][163] 그러나 일부 데오반디 울레마는 파키스탄 분리 요구를 지지했다.[159][164]

1946년 제헌 의회 선거에서 무슬림 연맹은 무슬림에게 할당된 496석 중 425석을 차지했다(총 투표의 89.2% 득표).[135] 영국은 분할을 피하기 위해 내각 사절단을 구성했으나,[166] 이 계획은 실패했고, 진나는 직접 행동의 날을 요구했다. 이는 캘커타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폭력적인 폭동으로 변질되었으며, 민족 청소의 요소가 나타났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격렬한 공동체 폭동이 발생하여 대규모 이주가 발생했다. 1947년 3월, 펀자브 지역에서 시크교도와 힌두교도가 무슬림에 의해 학살당하고 쫓겨났다.[167]

영국 총리 애틀리는 로르 루이 마운트배튼을 인도의 마지막 총독으로 임명했다. 마운트배튼을 포함한 영국 지도자들은 파키스탄 창설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진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168][169] 1947년 초, 영국은 1948년 6월까지 인도에 독립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마운트배튼은 그 날짜를 앞당겼다. 6월 회의에서 아불 칼람 아자드, 진나, B. R. 암베드카르, 마스터 타라 싱은 종교적 경계에 따라 인도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이 성립했다. 인도와는 별도로 독립하는 형태로, 무슬림 다수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국가 체제로는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영연방 왕국이었다.

독립 직후, 카슈미르 지방의 귀속을 둘러싸고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6. 현대

6. 1. 독립과 분단

1947년 8월 14일, 영국에서 독립한 파키스탄이 성립되었다. 인도와는 별도로 독립하는 형태로 무슬림 다수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현재 파키스탄 외에 벵골 지방 일부(방글라데시)도 포함되었다. 국가 체제는 영국 국왕을 원수로 받드는 영연방 왕국이었다.[171][172]

독립 직후, 카슈미르 지역의 귀속을 둘러싸고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카슈미르는 잠무 카슈미르 번왕국으로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으나, 번왕은 힌두교도였고 주민 다수는 이슬람교도였기 때문에 귀속 문제가 발생했다. 유엔의 중재로 휴전되었으나, 카슈미르 분쟁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펀자브와 벵골 두 주는 종교적 기준으로 래드클리프 위원회에 의해 분할되었다. 마운트배튼은 래드클리프 위원회에 영향을 미쳐 인도의 편을 들도록 선을 그었다고 전해진다.[171][172] 펀자브의 대부분 무슬림이 거주하는 서쪽 지역은 파키스탄으로, 대부분 힌두교/시크교도가 거주하는 동쪽 지역은 인도에 속하게 되었지만, 펀자브 동부 지역에는 상당수의 무슬림 소수민족이 있었고, 펀자브 서부 지역에도 많은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거주하고 있었다.

펀자브에서 격렬한 종교 분쟁이 발생하자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는 펀자브에 거주하는 무슬림과 힌두교/시크교 소수민족의 강제적인 인구 교환에 동의했다. 이 인구 교환 이후 파키스탄 측 펀자브에는 수천 명의 낮은 카스트 힌두교도만 남았고, 인도의 펀자브 지역 말레르코틀라에는 극소수의 무슬림 인구만 남았다.[173] 정치학자 이쉬티아크 아흐메드는 비록 펀자브에서 무슬림이 폭력을 시작했지만, 1947년 말까지 동부 펀자브에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에 의해 살해된 무슬림의 수가 서부 펀자브에서 무슬림에 의해 살해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의 수보다 더 많았다고 말한다.[174][175]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새로운 국경을 넘어 이동했으며, 20만 명에서 200만 명[176][177][178]의 사람들이 펀자브에서 발생한 종교 폭력 사태로 사망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를 종교 간의 '보복 학살'이라고 묘사했다.[179]

6. 2. 군사 정권과 민주화

1948년 무하마드 알리 진나 총독이 사망하고, 1951년 리야카트 알리 칸 총리가 암살되면서 파키스탄의 정국은 불안정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1958년 군사 쿠데타로 아유브 칸이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1956년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어 영국연방에서 독립했지만, 아유브 칸의 집권으로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경쟁에서 1954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와 중동조약기구(METO)에 가입하는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1962년 중소 국경 분쟁 이후에는 중국과도 접근하여 카슈미르 분쟁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했다.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으나, 유엔과 소련의 중재로 타슈켄트 선언이 발표되면서 휴전했다.

1960년대 후반, 군사 독재에 대한 반정부 운동이 거세지면서 아유브 칸은 실각했으나, 야히야 칸이 집권하여 군정은 계속되었다. 1970년 동파키스탄에 대규모 사이클론이 덮쳐 큰 피해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동파키스탄에서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었다. 1970년 총선에서 무지부르 라흐만이 이끄는 아와미 연맹이 압승했으나, 야히야 칸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인도의 개입으로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1972년 7월 2일, 파키스탄은 인도와 심라 협정을 체결하여 카슈미르 지방에서의 양국 간 세력 범위를 확인했다.

1973년 야히야 칸 정권이 붕괴되고 민정으로 이행했으나, 1977년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육군 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정권을 수립하고 이슬람화를 추진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은 파키스탄 군사 정권을 지원하며 '신냉전' 시대에 소련을 견제했다.

1988년 지아울하크의 사망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져 베나지르 부토가 총리가 되었으나, 군부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었다. 1990년대 파키스탄은 핵 개발 의혹에 휩싸였고, 1998년 인도와 경쟁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1999년 페르베즈 무샤라프가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6. 3. 21세기 파키스탄

7. 역대 지도자

파키스탄의 역대 지도자에 대한 정보는 파키스탄 대통령과 파키스탄 총리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8. 지역별 역사

파키스탄 각 지역별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 아자드 잠무 & 카슈미르 역사
  • 발루치스탄 역사
  • 동파키스탄 역사
  • 길기트-발티스탄 역사
  • 이슬라마바드 수도권 역사
  • 카이베르 파크툰크와 역사
  • 펀자브 역사
  • 신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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