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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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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트리니티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로, 소설 《몰로이》, 《고도를 기다리며》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무의미함과 절망적인 상황을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베케트는 20세기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적 경향을 보이며, 언어와 침묵, 고독과 갇힌 자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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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77년의 베케트
1977년의 베케트
본명사뮈엘 바클레이 베케트
출생지더블린, 아일랜드
사망지파리, 프랑스
안장 장소몽파르나스 묘지
국적아일랜드
사뮈엘 베케트 서명
작가 활동
장르모더니즘 문학
영향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주목할 만한 작품고도를 기다리며
수상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소설과 희곡의 새로운 형태 속에서 현대인의 비참함을 드러낸 그의 예술적 업적에 대하여

2. 생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출생하여 트리니티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고등사범학교영어 강사가 되었다가, 아일랜드로 돌아와 모교의 프랑스어 강사가 되었다. 1938년 소설가로 데뷔한 후, 제임스 조이스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로 건너가 전위적인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다.

1952년 현대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하였다. 이 희곡은 이듬해 로제 블랑의 연출로, 파리의 작은 전위 연극 극장인 테아트르 드 바빌론(Théâtre de Babylone)에서 초연되었다.

1959년 트리니티 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함께 포르멘토르 상을 수상했다.

1969년 10월, 튀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 1. 초기 생애 (1906년 ~ 1927년)

사뮈엘 베케트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교외 폭스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프랭크 베케트는 위험 관리사였으며, 어머니 마리아 존스 로는 간호사였다. 베케트의 가족은 성공회 신자였으나, 베케트는 불가지론자가 되었고, 이는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4]

2021년 사진, 베케트의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거주지


베케트의 집 쿨드리나흐는 1903년 그의 아버지가 지은 큰 저택이었다. 이 집과 정원, 주변 시골, 레오파드스타운 경마장 등은 훗날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베케트는 다섯 살 때 더블린의 유치원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얼스포트 하우스 스쿨로 옮겨 다녔다. 1919년 또는 1920년경 오스카 와일드가 다녔던 포르토라 로열 스쿨에 입학하여 1923년에 졸업했다. 이후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문학적 모더니즘과 로망스어를 공부하고 1927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크리켓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더블린 대학교 크리켓 클럽에서 활동하며 1군 크리켓 경기를 치른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5][6]

2. 2. 초기 작가 시절 (1928년 ~ 1939년)

파리에서 산책하는 사뮈엘 베케트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트리니티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고등사범학교영어 강사가 되었다가, 아일랜드로 돌아와 모교의 프랑스어 강사가 되었다. 1938년 소설가로 데뷔한 후, 제임스 조이스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로 건너가 전위적인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다.

베케트는 1923년부터 1927년까지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공부했다.[7] 1926년 현대 언어 분야에서 학자로 선출되었다.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벨파스트의 캠벨 칼리지에서 잠시 가르친 후, 1928년 11월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있는 고등 사범 학교에서 ''lecteur d'anglais'' 직책을 맡았다.[8] 그곳에서 시인이자 베케트의 측근이었던 토머스 맥그리비를 통해 제임스 조이스를 소개받았다. 이 만남은 베케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베케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 연구를 돕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이스를 지원했다.[9]

1929년, 베케트는 비평 에세이 "단테... 브루노. 비코.. 조이스"를 발표했다. 이 에세이는 조이스의 작품과 방법을 옹호했으며, ''진행 중인 작업의 진화에 대한 그의 사실화의 둥근 평가''(조이스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에 기고되었다. 베케트와 조이스 가족의 긴밀한 관계는 조이스의 딸 루시아의 구애를 거절하면서 소원해졌다. 베케트의 첫 번째 단편 소설인 "가정"은 ''트랜지션''에 게재되었다. 그 다음 해, 르네 데카르트의 전기를 바탕으로 쓴 시 "호로스코프"로 작은 문학상을 받았다.

1930년, 베케트는 트리니티 칼리지 강사로 돌아왔다. 같은 해 11월, 트리니티 현대 언어 학회에 툴루즈 시인 장 뒤 샤에 대한 프랑스어 논문을 발표했다. 베케트는 나중에 청중을 속일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10] 1931년 말 트리니티에서 사임하며 짧은 학문적 경력을 마감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1934년 ''더블린 매거진''에 "그놈"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베케트는 유럽을 여행하며 1931년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비평 연구 ''프루스트''를 출판했다. 2년 후 부친 사망 후, 타비스톡 클리닉 정신 분석가 윌프레드 비온 박사에게 2년간 치료를 받았다.[12] 1932년 첫 소설 ''중간에서 괜찮은 여자의 꿈''을 썼으나 출판되지 못하고 1992년에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1933년 단편 소설 모음집 ''킥보다 꼬챙이가 더 많다''의 원천이 되었다.

베케트는 "최근 아일랜드 시"(1934년 8월 ''더 북맨'' 게재), "인본주의적 침묵주의"(1934년 7월~9월 ''더블린 매거진'' 게재) 등 에세이와 평론을 출판했다. 그는 이 시들을 통해 아일랜드 시 모더니스트 정경의 윤곽을 그렸다.[13]

1935년 시집 ''에코의 뼈와 기타 침전물'' 출판 후, 소설 ''머피''를 집필했다. 1936년 중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과 브세볼로트 푸도프킨에게 제자로 받아줄 것을 제안하는 편지를 썼으나, 에이젠슈타인의 격리 등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1936년 아르놀트 게울링크스의 작품을 접하고 많은 메모를 남겼다.[14] ''머피''는 1936년에 완성되었고, 독일 여행 중 나치의 잔혹함에 혐오감을 느꼈다. 1937년 아일랜드로 돌아와 1938년 ''머피'' 프랑스어 번역본 출판을 감독했다. 어머니와의 불화로 파리에 영구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도 파리에 남았다.[15] 좌안 카페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교류하고,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르셀 뒤샹체스를 두는 등 새로운 교류를 맺었다. 1937년 12월 페기 구겐하임과 짧은 관계를 맺었다.[16]

1938년 1월 파리에서 포주에게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이스는 베케트를 위해 병원에 개인실을 마련했다. 이 사건으로 수잔 드쉐보-뒤메닐과 평생의 동반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베케트는 공격자에게 칼로 찌른 동기를 물었고, 공격자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사과드립니다"라고 답했다.[17] 베케트는 공격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2022년 자신의 피습 이후, 살만 루시디는 베케트의 예를 언급하며 공격자를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18][19]

1930년대는 베케트에게 예술적 탐험의 시기였다.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고, 네덜란드 황금 시대를 연구했다. 1933년 런던 국립 미술관 부 큐레이터 직책에 지원했다. 1936년 9월 26일 함부르크로 항해한 후 독일 갤러리와 소장품을 탐구했다.[20]

2. 3. 제2차 세계 대전과 레지스탕스 활동 (1939년 ~ 1945년)

1940년 나치 독일프랑스를 점령한 이후, 베케트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합류하여 ''글로리아 네트워크''에서 연락병으로 활동했다.[21] 2년 동안 여러 차례 게슈타포에게 발각될 뻔했으며, 1942년 8월 네트워크가 배신당하자 수잔과 함께 보클뤼즈 주 루시용으로 피신했다.[22] 베케트는 루시용에서 마키의 독일 점령군 상대 사보타주 작전을 간접적으로 도왔으나, 이후 자신의 전쟁 활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23] 프랑스 정부로부터 십자 무공 훈장과 레지스탕스 훈장을 받았지만, 베케트는 생이 다할 때까지 프랑스 레지스탕스에서의 활동을 "보이스카우트 활동"이라고 표현했다.[24][25]

루시용 은신 중 베케트는 소설 ''왓''을 집필, 1941년 시작하여 1945년 완성했지만 1953년에 출판되었다.

2. 4. 전후 활동과 주요 작품 (1945년 ~ 1969년)

1945년, 베케트는 짧은 방문을 위해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머무는 동안 그는 어머니의 방에서 계시를 받았는데, 문학에서의 그의 모든 미래 방향이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베케트는 제임스 조이스의 그림자에 영원히 남을 것이고, 그를 그의 방식으로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의 계시는 그에게 방향을 바꾸도록 촉구했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 무능력에 대한 관심을 인정하게 했다.

"나는 조이스가 아는 것에 대한 방향, 즉 자신의 재료를 통제하는 데 있어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항상 그것을 더하고 있었죠. 그의 교정본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길이 빈곤, 지식 부족, 빼앗는 것에 있으며, 더하는 것보다는 빼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28]


놀슨은 "베케트는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세상을 창의적으로 이해하고 통제하는 방법이라는 조이스의 원칙을 거부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의 작품은 빈곤, 실패, 망명, 상실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그가 말했듯이, '무지한' 그리고 '할 수 없는' 사람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라고 하였다.[1] 그 계시는 "그의 전체 경력에서 중추적인 순간으로 올바르게 여겨져 왔다." 베케트는 그의 희곡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1958)에서 그 경험을 소설화했다. 크라프는 자신의 젊은 시절에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면서, "마침내 오랫동안 억누르려고 애썼던 어둠이 실제로 나의 가장..."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목소리를 듣게 되지만, 크라프는 테이프를 빨리 감는다 (관객이 완전한 계시를 들을 수 있기 전에). 베케트는 나중에 놀슨에게 테이프에서 빠진 단어가 "소중한 동맹"이라고 설명했다.[29]

1946년, 장 폴 사르트르의 잡지 레 탕 모데른은 베케트의 단편 소설 "''Suite''"(La Fin|라 팽프랑스어 또는 "끝"이라고 불림)의 첫 번째 부분을 게재했는데, 베케트가 소설의 전반부만 제출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공동 편집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두 번째 부분의 출판을 거부했다. 베케트는 또한 네 번째 소설인 ''메르시에와 카미에''(1970년에 출판됨)를 쓰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희곡 En attendant Godot|앙 아탕당 고도프랑스어(''고도를 기다리며)''보다 먼저 쓰여졌으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쓰여졌다. 더 중요한 것은, ''메르시에와 카미에''는 베케트가 프랑스어로 쓴 첫 번째 장편 소설이었고, 이후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의 파리 출판사 레디시옹 드 미뉘이의 디렉터 제롬 린든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베케트는 포이우메논 "3부작" 소설인 ''몰로이'' (1951), Malone meurt|말론 뫼르프랑스어 (1951), ''말로네는 죽는다''(1958), L'innommable|랭노마블프랑스어 (1953), ''이름 없는 자''(1960)를 썼다. 베케트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말했듯이, "스타일 없이" 글을 쓰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30]



''고도를 기다리며''는 1947년 이후의 그의 작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로 먼저 쓰여졌다. 베케트는 1948년 10월과 1949년 1월 사이에 이 희곡 작업을 했다.[31] 그의 파트너 수잔 드셰보-드메닐은 이 작품의 성공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드셰보-드메닐은 그의 에이전트가 되어 여러 제작자에게 원고를 보냈고, 마침내 희곡의 연출자가 될 로제 블린을 만났다.[32]

블린의 프랑스 연극에 대한 지식과 비전은 베케트가 희곡이 무엇을 나타내기를 원하는지 아는 것과 함께 작품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평론가 비비안 메르시에는 "베케트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달성했다.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관객을 자리에 묶어두는 희곡을 만들었다. 게다가 두 번째 막이 첫 번째 막의 미묘하게 다른 반복이므로,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희곡을 두 번 썼다"고 인용되는 기사를 썼다.[33] 이 희곡은 1952년에 출판되었고 1953년 파리에서 초연되었으며, 2년 후에 영어 번역본이 공연되었다. 이 희곡은 파리에서 비평적으로, 대중적으로, 그리고 논란이 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1955년 런던에서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더 선데이 타임스''의 해롤드 홉슨과 나중에는 케네스 타이넌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마이애미 상연 이후 이 희곡은 매우 인기를 얻었고, 미국과 독일에서 매우 성공적인 공연을 했다. 이 희곡은 즐겨 찾는 작품이다. 자주 공연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극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모방하게 만들었다.[34] 이것은 베케트가 원고를 결코 판매, 기증 또는 양도하지 않은 유일한 희곡이다.[34] 그는 이 희곡을 영화로 번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텔레비전에서 상연하는 것은 허락했다.[35]

1950년대 동안 베케트는 종종 지역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여러 어른 중 한 명이었다. 그러한 아이 중 한 명이 앙드레 더 자이언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프로 레슬러가 될 앙드레 루시모프였다.[36] 그들은 놀라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크리켓에 대한 사랑으로 유대감을 형성했으며, 루시모프는 나중에 두 사람이 다른 것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37] 베케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직접 영어로 번역했으며, ''몰로이''는 패트릭 보울스와 공동 작업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성공은 작가에게 연극 경력을 열어주었다. 베케트는 Fin de partie|팽 드 파르티프랑스어(''엔드게임'') (1957),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1958, 영어로 쓰여짐), ''해피 데이즈''(1961, 또한 영어로 쓰여짐), ''놀이''(1963)를 포함한 성공적인 장편 희곡을 계속 썼다. 1961년, 베케트는 그의 작품을 인정받아 국제 출판사 포르멘토르 상을 받았으며, 그 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함께 수상했다.

1952년, 현대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했다. 그는 "삼부작을 쓰는 고통 속에서 숨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참신함과 보편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이 희곡은 이듬해 로제 블랑의 연출로, 파리의 작은 전위 연극 극장인 테아트르 드 바빌론(Théâtre de Babylone)에서 초연되었다.

1959년, 베케트는 모교인 트리니티 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함께 포르멘토르 상을 수상했다.

2. 5. 후기 생애와 죽음 (1970년 ~ 1989년)

1969년 10월, 베케트는 수잔과 함께 튀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극도로 사적인 남편이 그 순간부터 명성에 시달릴 것을 예상하고 수잔은 이 상을 "재앙"이라고 불렀다.[40] 베케트는 인터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지만, 때때로 파리몽파르나스 자택 근처에 있는 호텔 PLM 생 자크의 익명의 로비에서 그를 찾아온 예술가, 학자, 팬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그는 약속을 잡았고 종종 점심을 먹었다.[41] 베케트는 매우 사적인 사람이었지만, 2011년 12월 15일자 ''The New Republic''에 실린 로이 포스터의 그의 편지 2권에 대한 평론은 베케트가 예상외로 상냥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과 그 배후의 과정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하려 했다는 것을 밝힌다.[42]

수잔은 1989년 7월 17일에 사망했다. 요양원에 갇혀 폐기종과 아마도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에 사망했다. 두 사람은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함께 안장되었으며, 베케트의 지침에 따라 "회색이면 어떤 색이든 상관없다"는 간단한 화강암 묘비를 공유한다.

3. 작품 세계

에드먼드 S. 발트만의 베케트 캐리커처


사뮈엘 베케트의 작가 경력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1945년 이전), 중기(1945~1960년대 초), 후기(1960년대 초~1989년)이다.

초기 작품은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아 박식하고 난해한 구절이 많았다. 예를 들어, 단편 소설집 ''More Pricks than Kicks''(1934)의 첫 구절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언급하여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44] 첫 소설 ''머피''(1938)는 정신 이상과 체스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염세적인 어조와 블랙 코미디를 암시한다.[44] ''와트''는 인간의 움직임을 수학적 순열로 탐구하며,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확한 움직임에 대한 집착을 예고한다.

베케트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철학적 염세주의에 영향을 받아 193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어로 창작을 시작했다. 이 시기 프랑스어로 쓴 단편 시들은 간결함을 추구하며, 이는 ''와트''에서도 나타나는 변화이다.[4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베케트는 프랑스어를 주된 창작 언어로 사용하며, 내면 세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고도를 기다리며》, 《승부의 끝》,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날들》 등 주요 희곡들이 나왔다. 이 작품들은 부조리극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개념과 유사한 주제를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다루었다.[47]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시기 베케트는 《몰로이》(1951), 《말로네는 죽는다》(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자》(1953) 3부작 소설을 통해 간결하고 단순한 문체를 추구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는 장소와 시간에 대한 감각이 거의 사라지고, 말하려는 충동과 침묵을 향한 욕구 사이의 갈등이 주요 주제로 나타난다.[51]

1950년대 후반, 베케트는 가장 급진적인 산문 작품 중 하나인 《이렇게 된다》(1961)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이름 없는 화자가 진흙 속을 기어가는 모험을 전보체에 가까운 스타일로 묘사한다.[52][53]

베케트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에 영향을 받아 하이쿠의 양식과 정신을 작품에 반영했다.[110] 연극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베케트의 연극이 셰익스피어 등과 같이 후세에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작가 돈 드릴로는 카프카와 베케트를 독자의 세계관을 바꾸는 작가로 언급했다.

3. 1. 부조리극

1961년에 구두점이 전혀 없는 산문인 《어떤 식으로 그것이》, 1963년에는 《아! 아름다운 나날》 등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그 작품들을 통하여 세계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의미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극히 인상적인 언어로써 허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후, 《승부의 끝》,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나날》 등 종래의 연극 개념을 뒤엎는 독창적인 희곡을 발표하여 전후의 새로운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주제는 《고도를 기다리며》 이후 변치 않는 인간의 일의 무의미함과, 서구적인 합리주의에 의한 세계의 붕괴인데, 신선한 문체와 뛰어난 연극적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후기작으로 어두운 무대에 입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독백하는 특징이 있는 희곡인 《내가 아니다》가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극이다. 나무 한 그루만 있는 무대에서 두 명의 부랑자가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고도를 만난 적이 없다. 기다리는 동안 시시한 게임을 하거나, 우스꽝스럽고 결실 없는 대화를 계속 나눈다. 거기에 또 다른 두 사람이 지나가고, 더욱 두서없는 대화와 유희가 이어진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소년이 와서 고도가 오늘은 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두 사람은 다시 하루를 기다리자고, 내일 고도가 오지 않으면 목을 매달자고 말한다. 같은 일이 다음 날 또 반복되고, 연극은 거기서 끝난다.

스토리는 특별히 전개되지 않으며,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 고독감을 참신한 스타일로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악평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점차 화제가 되어 인기를 끌게 되었다. 초연 약 5년 후에는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걸작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후에도 작품마다 다양한 새로운 수법을 시도한 베케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연극을 이야기함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군은 부조리극의 계보를 잇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현대극의 제작자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쿼드』를 시작으로 텔레비전용 작품이나 라디오용 작품도 다루었으며, 그 각각에서 특이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54]

3. 2. 언어와 침묵

프랑스어로 된 3부작 소설 《몰로이》, 《말론은 죽다》, 《명명하기 힘든 것》으로 주목받고,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문단과 극계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1961년에 구두점이 전혀 없는 산문인 《어떤 식으로 그것이》, 1963년에는 《아! 아름다운 나날》 등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그 작품들을 통하여 세계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의미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극히 인상적인 언어로써 허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후, 《승부의 끝》,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나날》 등 종래의 연극 개념을 뒤엎는 독창적인 희곡을 발표하여 전후의 새로운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주제는 《고도》 이후 변치 않는 인간의 일의 무의미함과, 서구적인 합리주의에 의한 세계의 붕괴인데, 신선한 문체와 뛰어난 연극적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후기작으로 어두운 무대에 입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독백하는 특징이 있는 희곡인 《내가 아니다》가 있다.

산문에서는 특이한 광경, 절제된 어투, 착종된 묘사,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파고드는 듯한 독백 등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확립했고, 그 경향은 3부작(특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하나의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그 작품들은 훗날 누보 로망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또한 『말로운은 죽는다』에서의 " '나'가 여러 이야기를 메모에 적어 나가는" 형식은, 메타픽션의 커다란 선례 중 하나가 되었다. 그 후의 작품, 『사물의 방식』이나 『동반자』, 『또 끝나기 위하여』 등에서는 표현하는 말 자체를 줄이면서 더욱 작품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노력이 기울여졌다.

3. 3. 미니멀리즘

베케트는 후기 작품에서 표현하는 단어 자체를 줄이면서 작품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사물의 방식', '동반자', '또 끝나기 위하여' 등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베케트의 이러한 미니멀리즘적 접근은 극도로 절제된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기여했다.[59][60]

4. 주요 작품 목록

사뮈엘 베케트는 주로 프랑스어나 영어로 작품을 쓰고, 직접 번역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베케트의 주요 작품 목록이다.

한국어 제목원제집필 연도출판 연도비고
그저 그런 여자들의 꿈Dream of Fair to Middling Women1932년1992년처녀 소설[111]
발길질의 가시More Pricks Than Kicks1934년단편집
머피Murphy1938년
와트Watt1943년1953년
메르시에와 카미에Mercier and Camier1946년1970년
몰로이Molloy1951년(프랑스어), 1955년(영어)
말로운은 죽는다Malone Meurt - Malone Dies1951년(프랑스어), 1956년(영어)
이름 붙일 수 없는 자'LInnommable - The Unnamable''1953년(프랑스어), 1958년(영어)
일의 경위Comment cst - How It Is''1961년(프랑스어), 1964년(영어)
또 끝나기 위해Pour finir encore et autres foirades - For to End Yet Again and Other Fizzles1976년(프랑스어, 영어)
동반자Company - Compagnie1979년(영어), 1980년(프랑스어)
잘못 보고 잘못 말하기Mal Vu Mal Dit - Ill Seen Ill Said1981년(프랑스어), 1982년(영어)
최악의 방향으로Worstward Ho1983년
사무엘 베케트 단편집1972년, 2015년(신장판)카타야마 노보루・안도 신야・다카하시 야스야 역


4. 1. 희곡

프랑스어로 된 3부작 소설 《몰로이》, 《말론은 죽다》, 《명명하기 힘든 것》으로 주목받고,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문단과 극계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다. 1961년 구두점이 전혀 없는 산문인 《어떤 식으로 그것이》, 1963년 《아! 아름다운 나날》 등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그 작품들을 통하여 세계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의미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극히 인상적인 언어로써 허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후, 《승부의 끝》,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나날》 등 종래의 연극 개념을 뒤엎는 독창적인 희곡을 발표하여 전후의 새로운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주제는 《고도》 이후 변치 않는 인간의 일의 무의미함과, 서구적인 합리주의에 의한 세계의 붕괴인데, 신선한 문체와 뛰어난 연극적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후기작으로 어두운 무대에 입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독백하는 특징이 있는 희곡인 《내가 아니다》가 있다.

빌리 화이트로는 25년 동안 베케트와 함께 ''나는 아니다'', ''에 조'', ''발걸음'' 그리고 ''자장가''와 같은 연극 작업을 했다.[61][62][63] 1963년 처음 베케트를 만난 그녀는, 베케트를 위해 많은 실험적인 연극 작품을 썼고, 베케트의 뮤즈이자 "그의 작품을 가장 훌륭하게 해석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나는 아니다''에서 입의 역할로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녀는 ''발걸음''에서의 역할에 대해 "나는 움직이는, 음악적인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같았고, 사실 베케트가 ''발걸음''을 연출할 때, 그는 나를 음표를 연주하는 데 사용할 뿐만 아니라, 거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64] 그녀는 베케트가 사망한 1989년에 그의 연극 공연을 중단했다.[65]

조슬린 허버트는 베케트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그녀는 로열 코트 극장에서 그와 함께 ''행복한 나날''(그들의 세 번째 작품)과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와 같은 연극 작업을 했다. 베케트는 허버트가 잉글랜드에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다.[66]

발터 D. 아스무스는 1974년 베를린의 쉴러 극장에서 베케트와 함께 작업을 시작하여, 극작가가 사망한 1989년까지 관계를 이어갔다.[67]

'''연극'''

제목비고
인간의 소망(Human Wishes)(c. 1936; 출판 1984)
엘레우테리아(Eleutheria)(1947년 프랑스어로 집필, 1995년 프랑스어판, 1996년 영어판 출판)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1952년 출판, 1953년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4년 출판, 1955년 공연)
말 없는 연극 1막(Acte sans Paroles I)(1956); 말 없는 연극 1(Act Without Words I)(1957)
말 없는 연극 2막(Acte sans Paroles II)(1956); 말 없는 연극 2(Act Without Words II)(1957)
고별(Fin de partie)(1957년 출판); 고별(Endgame)(1957년 출판)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Krapp's Last Tape)(1958년 초연)
극장 습작 1편(Fragment de théâtre I)(1950년대 후반); 극장 습작 1(Rough for Theatre I)
극장 습작 2편(Fragment de théâtre II)(1950년대 후반); 극장 습작 2(Rough for Theatre II)
해피 데이즈(Happy Days)(1961년 초연); 오 레 보 주르(Oh les beaux jours)(1963년 출판)
플레이(Play)(1963년 독일어로 공연, 슈필(Spiel), 1964년 영어 버전)
왔다 갔다(Come and Go)(1966년 독일어 초연, 이후 영어 공연)
숨결(Breath)(1969년 초연)
나 아니다(Not I)(1972년 초연)
그때(That Time)(1976년 초연)
발자국(Footfalls)(1976년 초연)
니더(Neither)(1977) (음악: 모턴 펠드먼)
독백 한 토막(A Piece of Monologue)(1979년 초연)
록키바이(Rockaby)(1981년 초연)
오하이오 즉흥곡(Ohio Impromptu)(1981년 초연)
대참사(Catastrophe)(Catastrophe et autres dramatiques, 1982년 초연)
어디에 무엇이(What Where)(1983년 초연)


4. 2. 소설

사뮈엘 베케트는 프랑스어로 된 3부작 소설 《몰로이》, 《말론은 죽다》, 《명명하기 힘든 것》으로 주목받았다.[61][62][63] 1961년에는 구두점이 전혀 없는 산문인 《어떤 식으로 그것이》를 발표했다.[61]

'''3부작'''

  • ''몰로이(Molloy)'' (1951); 영어 버전 (1955)
  • ''말론 죽다''(Malone meurt) (1951); ''말론 죽다(Malone Dies)'' (1956)
  • ''이름 없는 자''(L'innommable) (1953); ''더 언네임블(The Unnamable)'' (1958)


'''소설'''

  • ''꿈, 그럭저럭 괜찮은 여성들(Dream of Fair to Middling Women)'' (1932년 집필; 1992년 출판)
  • ''머피(Murphy)'' (1938); 1947년 베케트의 프랑스어 버전
  • ''와트''(Watt)'' (1943); 1968, 베케트의 프랑스어 버전
  • ''그것이 어떻게든''(Comment c'est) (1961); ''그것이 어떻게든(How It Is)'' (1964)
  • ''메르시에와 카미에(Mercier and Camier)'' (1946년 집필, 1970년 출판); 영어 번역 (1974)


'''단편 산문'''

  • ''킥보다 더 많은 찌르기(More Pricks Than Kicks)'' (1934)
  • "에코의 뼈들(Echo's Bones)" (1933년 집필, 2014년 출판)
  • "추방자"(L'Expulsé) (1946년 집필, ''새로운 이야기와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Nouvelles et Textes pour rien) (1955)에 수록); "추방당한 자"(The Expelled)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와 텍스트(Stories and Texts for Nothing)'' (1967)
  • "진정제"(Le Calmant) (1946년 집필, ''새로운 이야기와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Nouvelles et Textes pour rien) (1955)에 수록); "진정제"(The Calmative),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와 텍스트(Stories and Texts for Nothing)'' (1967)
  • "결말"(La Fin) (1946년 집필, 1946년 "스위트"(Suite)로 ''레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에 부분적으로 출판); ''새로운 이야기와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Nouvelles et Textes pour rien) (1955)에 수록; "결말"(The End),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와 텍스트(Stories and Texts for Nothing)'' (1967)
  •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Texts for Nothing), ''새로운 이야기와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Nouvelles et Textes pour rien) (1955)을 위해 프랑스어로 번역됨;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와 텍스트(Stories and Texts for Nothing)'' (1967)
  • "이미지"(L'Image) (1959) ''그것이 어떻게든''의 단편
  • "첫사랑"(Premier Amour) (1970, 1946년 집필); 1973년 베케트가 "첫사랑(First Love)"으로 번역
  • ''잃어버린 자들(Le Dépeupleur)'' (1970); ''잃어버린 자들(The Lost Ones)'' (1971)
  • ''다시 끝내기 위해 그리고 다른 포이러드들(Pour finir encore et autres foirades)'' (1976); ''다시 끝내기 위해 그리고 다른 피즐스(Fizzles)'' (1976)
  • ''컴퍼니(Company)'' (1980)
  • ''잘 보고 잘못 말함''(Mal vu mal dit) (1981); ''잘 보고 잘못 말함(Ill Seen Ill Said)'' (1982)
  • ''최악의 방향으로(Worstward Ho)'' (1983)
  • "여전히 흔들림(Stirrings Still)" (1988)
  • "이야기가 전해진 대로"(As the Story was Told) (1990)
  • ''완전한 단편 산문(The Complete Short Prose)'': 1929–1989, S. E. 곤타르스키 편집. 뉴욕: 그로브 프레스, 1995


'''비소설'''

  • "단테...브루노. 비코..조이스"(Dante...Bruno. Vico..Joyce) (1929; ''우리의 과장된 조사, 진행 중인 작품의 활성화를 위한(Our Exagmination Round His Factification for Incamination of Work in Progress)'' 컬렉션에 대한 베케트의 기고)
  • ''프루스트(Proust)'' (1931)
  • ''세 개의 대화(Three Dialogues)'' (조르주 뒤튀, 자크 퓌트남과 함께) (1949)
  • ''디스젝트: 잡다한 저작과 극적인 단편(Disjecta: Miscellaneous Writings and a Dramatic Fragment)'' (1929–1967)


다음은 베케트의 주요 작품 목록이다. 베케트는 주로 프랑스어나 영어로 집필했으며, 후에 직접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한국어 제목원제집필 연도출판 연도비고
『그저 그런 여자들의 꿈』Dream of Fair to Middling Women1932년1992년처녀 소설, [111]
『발길질의 가시』More Pricks Than Kicks1934년단편집
『머피』Murphy1938년
『와트』Watt1943년1953년
『메르시에와 카미에』Mercier and Camier1946년1970년
『몰로이』Molloy1951년(프랑스어), 1955년(영어)
『말로운은 죽는다』Malone Meurt - Malone Dies1951년(프랑스어), 1956년(영어)
『이름 붙일 수 없는 자』'LInnommable - The Unnamable''1953년(프랑스어), 1958년(영어)
『일의 경위』Comment cst - How It Is''1961년(프랑스어), 1964년(영어)
『또 끝나기 위해』Pour finir encore et autres foirades - For to End Yet Again and Other Fizzles1976년(프랑스어, 영어)
『동반자』Company - Compagnie1979년(영어), 1980년(프랑스어)
『잘못 보고 잘못 말하기』Mal Vu Mal Dit - Ill Seen Ill Said1981년(프랑스어), 1982년(영어)
『최악의 방향으로』Worstward Ho1983년
『사무엘 베케트 단편집』1972년, 2015년(신장판)카타야마 노보루・안도 신야・다카하시 야스야 역


4. 3. 기타

빌리 화이트로는 25년 동안 베케트와 함께 ''나는 아니다'', ''에 조'', ''발걸음'' 그리고 ''자장가''와 같은 연극 작업을 했다.[61][62][63] 1963년에 베케트를 처음 만난 그녀는 자서전 ''빌리 화이트로... 후 히?''(Billie Whitelaw... Who He?)에서 이 만남을 "첫눈에 신뢰"라고 묘사했다. 베케트는 이후 그녀를 위해 많은 실험적인 연극 작품을 썼다. 그녀는 베케트의 뮤즈이자 "그의 작품을 가장 훌륭하게 해석하는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나는 아니다''에서 입 역할로 가장 유명하다. 연극 ''자장가''에 대해 그녀는 "나는 테이프를 머릿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보지만, 관객을 보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연출자로서 베케트는 절대적인 보석 같은 것을 내놓고, 나는 그것들을 다른 분야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는 ''해피 데이즈''(Happy Days)를 하고 있었는데, 이 특정 부분에서 극장의 어디를 봐야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면을 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했다.[64] ''발걸음''에서의 역할에 대해 그녀는 "나는 움직이는, 음악적인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같았고, 사실 베케트가 ''발걸음''을 연출할 때, 그는 나를 음표를 연주하는 데 사용할 뿐만 아니라, 거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샘은 내가 그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샘의 모든 작품에서 비명이 있었고, 내 임무는 그것을 꺼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베케트가 사망한 1989년에 그녀는 그의 연극 공연을 중단했다.[65]

5. 영향 및 유산

사뮈엘 베케트는 영어권 모더니즘 작가들 중에서도 사실주의 전통을 가장 지속적으로 공격한 작가로 꼽힌다. 그는 관습적인 플롯과 시간, 장소의 통일성을 포기하고 인간 조건의 본질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연극과 소설의 가능성을 열었다. 바츨라프 하벨, 존 밴빌, 에이단 히긴스, 톰 스토파드, 해럴드 핀터, 욘 포세 등 여러 작가들이 베케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1950년대 비트 세대에서 1960년대 이후의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실험 문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68]

루치아노 베리오, 죄르지 쿠르탁, 모턴 펠드먼, 파스칼 뒤사팽, 필립 글래스, 로만 하우벤스톡-라마티, 하인츠 할리거 등 많은 20세기 주요 작곡가들이 베케트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음악 작품을 만들었다. 또한 에드워드 올비, 샘 셰퍼드,[69] 아비그도르 아리카, 폴 오스터, J. M. 쿳시,[70] 리처드 칼리크, 더글러스 고든, 브루스 나우만, 앤서니 밍겔라,[71] 데미안 페티그루,[72] 찰리 카우프만[73] 및 브라이언 패트릭 버틀러를 포함한 수많은 국제 작가, 예술가 및 영화 제작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74][75]

베케트는 20세기 작가 중 가장 널리 논의되고 높이 평가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제임스 조이스를 중심으로 생겨난 비평 업계와 경쟁할 만한 비평 업계를 만들어냈다. 그는 비평적 의견을 분열시켰는데, 사르트르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그를 칭찬한 반면, 게오르그 루카치는 '퇴폐적인' 현실주의 부족으로 비난했다.[76]

베케트 사후, 그의 희곡 공연에 대한 모든 권리는 작가의 조카인 에드워드 베케트가 관리하는 베케트 재단에서 처리한다. 이 재단은 베케트의 희곡 공연 방식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유지하며, 작가의 연출 지침을 따르지 않는 제작에 대해서는 라이선스를 부여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사무엘 베케트가 묘사된 아일랜드 기념 주화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


더블린의 사무엘 베케트 다리


2004년에는 베케트의 DNA 확인 추적 샘플을 이용한 분자 계통 연구가 수행되었다. 베케트의 사진 중 일부는 존 미니한이 찍었는데, 그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베케트의 공식 사진 작가였다. 이 사진 중 하나는 20세기 최고의 사진 3장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77] 베케트의 가장 널리 재현된 이미지는 연극 사진 작가 존 헤인스가 촬영한 것으로, 런던 로열 코트 극장에서 샌 퀜틴 드라마 워크숍의 리허설 중에 촬영되었다.[78]

아일랜드 우체국은 1994년에 베케트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아일랜드 중앙 은행은 2006년 4월 26일에 베케트 탄생 100주년 기념 주화 2종(10유로 은화, 20유로 금화)을 출시했다.

2009년 12월 10일, 더블린 리피 강을 가로지르는 사무엘 베케트 다리가 개통되었다. 이 다리는 제임스 조이스 다리를 설계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했으며, 공식 개통식에는 베케트의 조카, 시인 세이머스 히니, 배리 맥거번 등이 참석했다.[80] 아일랜드 해군 함선 LÉ ''사무엘 베케트'' (P61)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페르마나 카운티 에니실렌의 포토라 로열 스쿨에는 그를 기리는 파란색 명판이 있다.

베케트가 별장을 가졌던 라 페르테-수르-주아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공 도서관과 지역 고등학교가 있다.

해피 데이즈 에니실렌 국제 베케트 페스티벌은 베케트의 작품과 영향을 기념하는 연례 다중 예술 축제이다. 2011년에 설립되어 북아일랜드 에니실렌에서 열린다.[81][82][83]

1983년에는 공연 예술 글쓰기의 혁신과 우수성을 보인 작가에게 사무엘 베케트 상이 제정되었다. 2003년에는 옥스퍼드 사무엘 베케트 극장 신탁[84]이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혁신적인 연극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마틴 펄먼은 베케트의 희곡 3편(''Words and Music'', ''Cascando'', ''...but the clouds...''')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으며, 베케트 100주년을 기념하여 뉴욕 92번가 Y에서 의뢰, 하버드 대학교에서 제작되었다.[85][86]

2022년 제임스 마시는 베케트의 전기 영화 ''댄스 퍼스트''를 촬영, 가브리엘 번과 핀 오셰이가 베케트의 생애 각 단계를 연기했다. 이 영화는 2023년 스카이 시네마에서 공개되었다.[87]

5. 1. 한국 문학에 끼친 영향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 《승부의 끝》,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나날》 등 종래의 연극 개념을 뒤엎는 독창적인 희곡을 발표하여 전후의 새로운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인간사의 무의미함과 서구적인 합리주의에 의한 세계의 붕괴를 주제로 다루며, 신선한 문체와 뛰어난 연극적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후기작으로는 어두운 무대에 입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독백하는 특징이 있는 희곡인 《내가 아니다》가 있다.

6. 비판

사뮈엘 베케트는 《몰로이》, 《말론은 죽다》, 《명명하기 힘든 것》 3부작 소설과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문단과 극계에서 크게 호평받았다. 1961년 《어떤 식으로 그것이》, 1963년 《아! 아름다운 나날》 등을 발표하며 세계의 부조리와 의미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묘사했다.

이후 《승부의 끝》,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나날》 등 독창적인 희곡을 발표하며 전후 새로운 연극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인간의 무의미함과 서구 합리주의에 의한 세계 붕괴라는 주제는 변치 않았으나, 신선한 문체와 뛰어난 연극적 감각으로 정평이 났다. 후기작으로는 어두운 무대에 입술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독백하는 희곡 《내가 아니다》가 있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참조

[1] 논문 Developmental Psychology Rediscovered: Negative Identity and Ego Integrity vs. Despair in Samuel Beckett's Endgame http://www.ijla.net/[...] 2014
[2] 서적 Samuel Beckett and the Second World War Bloomsbury 2020
[3] 웹사이트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1969 http://nobelprize.or[...] Nobel Foundation 2010-10-07
[4] 웹사이트 Samuel beckett −1906-1989 http://www.imagi-nat[...] Imagi-nation.com
[5] 웹사이트 Samuel Beckett http://www.espncrici[...] ESPNcricinfo
[6] 웹사이트 Never a famous cricketer http://www.espncrici[...] ESPNcricinfo 2001
[7] 논문 Nothing is Impossible: Bergson, Beckett, and the Pursuit of the Naught https://muse.jhu.edu[...] 2017
[8] 서적 Grove Companion to Samuel Beckett
[9] 서적 (Unspecified) 1997
[10] 서적 The Grove Companion to Samuel Beckett Grove Press 2004
[11] 시집 Gnome
[12] 웹사이트 Beckett, Samuel. (1906–1989) http://www.samuel-be[...]
[13] 문서 Disjecta
[14] 서적 Notes de Beckett sur Geulincx Les Solitaires Intempestifs 2012
[15] 뉴스 Moody Man of Letters 1956-05-05
[16] 서적 1989
[17] 서적 (Unspecified) 1997
[18] 뉴스 Knife by Salman Rushdie review – a story of hatred defeated by love https://www.theguard[...] 2024-04-15
[19] 비디오 TikTok - Make Your Day https://www.tiktok.c[...]
[20] 서적 Transdisciplinary Beckett: Visual Arts, Music, and the Creative Process https://www.amazon.c[...] ibidem 2021
[21] 웹사이트 Lettres – Blanche – GALLIMARD – Site Gallimard http://www.gallimard[...] 2014-05-20
[22] 서적 (Unspecified) 2020
[23] 서적 (Unspecified) 1997
[24] 웹사이트 The Modern Word https://web.archive.[...] The Modern Word
[25] 서적 (Unspecified) 1997
[26] 뉴스 Down but not out in Saint-Lô: Frank McNally on Samuel Beckett and the Irish Red Cross in postwar France https://www.irishtim[...]
[27] 서적 (Unspecified) 2020
[28] 서적
[29] 서적 (Unspecified) 1997
[30] 서적 (Unspecified) 1997
[31] 서적 (Unspecified) 1997
[32] 논문 Samuel (Barclay) Beckett http://0-link.galegr[...] Gale 1982
[33] 뉴스 195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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