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한다. 17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인들의 아르헨티나 이주가 시작되었으며, 1880년부터 1920년 사이 유럽 대이민 물결 동안 대규모 이민이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이민은 아르헨티나 사회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외에 이탈리아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2011년에는 아르헨티나 인구의 62.5%가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이탈리아 디아스포라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규모를 차지한다. 이들은 정치, 사회,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아르헨티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 디에고 시메오네
    디에고 시메오네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며, 선수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코파 아메리카 우승 등을, 지도자로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 UEFA 유로파리그 우승 등을 이끌었다.
  •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가브리엘라 사바티니는 1990년 US 오픈 단식 우승, 27개의 단식 타이틀, 14개의 복식 타이틀, 1988년 윔블던 여자 복식 우승을 기록하고 슈테피 그라프와의 라이벌 관계와 함께 2006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아르헨티나의 전 프로 테니스 선수이다.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기본 정보
오베라에서 열린 이민자 축제 퍼레이드 중인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오베라, 미시오네스에서 열린 제34회 이민자 축제 개막 퍼레이드 중인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주요 거주 지역아르헨티나 전역 (팜파스 지역에 다수 거주)
사용 언어아르헨티나 스페인어
리오플라텐세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피에몬테어
베네토어
나폴리어
시칠리아어
아르베레슈어
기타 이탈리아의 언어
코콜리체 혼성어 (룬파르도 속어 포함)
종교가톨릭교회(라틴 교회) (소수의 동방 가톨릭 신자 존재 (비잔틴 전례))
관련 민족이탈리아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볼리비아인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이탈리아계 캐나다인
이탈리아계 칠레인
이탈리아계 콜롬비아인
이탈리아계 코스타리카인
이탈리아계 쿠바인
이탈리아계 도미니카 공화국인
이탈리아계 에콰도르인
이탈리아계 과테말라인
이탈리아계 아이티인
이탈리아계 온두라스인
이탈리아계 멕시코인
이탈리아계 파나마인
이탈리아계 파라과이인
이탈리아계 페루인
이탈리아계 푸에르토리코인
이탈리아계 엘살바도르인
이탈리아계 우루과이인
이탈리아계 베네수엘라인
이탈리아어 명칭italo-argentini
스페인어 명칭italoargentinos
저명한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설명카를로스 펠레그리니, 아르투로 프론디시, 아스토르 피아졸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리오넬 메시, 루치아나 페드라사,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마누 지노빌리, 파울라 파레토

2. 역사

2022년 아르헨티나 각 지역별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비율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민자 호텔에서 마차를 타고 있는 이탈리아 이민자


이탈리아 최초 이민자들의 레시스텐시아(차코 주) 도착을 상징하는 조각상


미시오네스 주 오베라에 있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의 집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의 역사는 17세기 후반, 소규모 이탈리아인들이 오늘날 아르헨티나 영토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11] 5월 혁명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이미 이탈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19]

1880년부터 1920년까지 아르헨티나로의 유럽 대이민 물결 기간 동안 이탈리아인의 아르헨티나 이민은 대규모 현상이 되었다. 약 200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으며, 1900년부터 1914년 사이에만 100만 명이 이주했다.[8] 191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이탈리아 출생자만 30만 명 이상이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했다.[4]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이탈리아 내 파시즘 부상은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약간의 회복세가 있었지만,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이민은 중단되었다.[14]

전쟁이 끝난 후,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약 38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다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15] 이스트리아-달마티아 엑소더스 동안 이스트리아 이탈리아인과 달마티아 이탈리아인 소수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오기도 했다.[16]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경제는 성장과 회복의 시기를 겪으면서 이민의 주요 동기 중 하나가 사라졌다. 2016년 현재, 527,570명의 이탈리아 시민이 여전히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17]

2011년, 최소 2,500만 명의 아르헨티나인(국가 인구의 62.5%)이 어느 정도 이탈리아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인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인"이라고 말했다.[18]

1861년부터 1920년까지 아르헨티나로의 이탈리아 이민[4]
기간총 이민자 수이탈리아인비율
1861–1870159,570113,55471%
1871–1880260,885152,06158%
1881–1890841,122493,88559%
1891–1900648,326425,69357%
1901–19101,764,103796,19045%
1911–19201,204,919347,38829%
1861–19203,798,9252,270,52559%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시민[30][31]
인구 조사외국인 인구이탈리아 시민 인구외국인 대비 이탈리아인 비율전체 인구 대비 이탈리아인 비율
1869210,33071,40333.8%4.9%
18951,006,838492,63648.9%12.5%
19142,391,171942,20939.4%11.9%
19472,435,927786,20732.3%4.9%
19602,604,447878,29833.7%4.4%
19702,210,400637,05029.8%2.7%



마르델플라타에 있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협회. 원래 캄파니아 지역 출신이다.


마르델플라타의 몰리세 지역 출신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의 알레고리


루이지 피란델로의 기념비. 이탈리아 도시 아그리젠토 (시칠리아)가 아르헨티나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기증. 아르헨티나의 시칠리아 공동체에 대한 헌사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칼라브리아 공동체 여성들


19세기에는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20세기에는 주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의 모든 지역에서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5]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탈리아 이민자와 지역별 분포[42]
기간북서부 이탈리아북동부 이탈리아 및 중부 이탈리아남부 이탈리아 및 섬 이탈리아총계
1880–188459.8%16.8%23.4%106,953
1885–188945.3%24.4%30.3%259,858
1890–189444.2%20.7%35.1%151,249
1895–189932.3%23.1%44.6%211,878
1900–190429.2%19.6%51.2%232,746
1905–190926.9%20.1%53.0%437,526
1910–191427.4%18.2%54.4%355,913
1915–191932.3%23.1%44.6%26,880
1920–192419.7%27.4%52.9%306,928
1925–192914.4%33.1%52.5%235,065


2. 1. 이탈리아인의 아르헨티나 이주 배경

스페인 정복 당시 사르데냐 출신 이탈리아인 레오나르도 그리베오가 페드로 데 멘도사를 동행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 건설에 참여했다.[20] 17세기 후반부터 소규모 이탈리아인들이 라플라타 강 유역, 즉 오늘날 아르헨티나 영토로 이주하기 시작했다.[11]

5월 혁명 당시 마누엘 벨그라노, 마누엘 알베르티, 후안 호세 카스텔리 등 이탈리아계 인사들이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의 시작에 기여했다.[19] 1836년에는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이 대사를 파견할 정도로 이탈리아 공동체가 성장했다.[20]

본격적인 이탈리아인의 아르헨티나 이민은 1880년부터 1920년까지 아르헨티나로의 유럽 대이민 물결 기간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 약 200만 명의 이탈리아인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으며, 1900년부터 1914년 사이에만 100만 명이 이주했다.[8] 1887년 이탈리아인들은 아르헨티나 전체 이민의 60.4%를 차지했다.[10]

191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이탈리아 출생자가 30만 명 이상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했다.[4]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주로 14세에서 50세 사이의 남성이었으며, 절반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직업별로는 농업 노동자나 미숙련 노동자가 78.7%, 장인이 10.7%, 상업 또는 전문직 종사자는 3.7%였다.[4]

제1차 세계 대전파시즘의 부상으로 이민이 급감했다가 1923~1927년 잠시 회복되었으나,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으로 중단되었다.[14]

전쟁 이후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약 38만 명의 이탈리아인이 다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15] 이스트리아-달마티아 엑소더스로 인해 이스트리아 이탈리아인과 달마티아 이탈리아인도 아르헨티나로 이민했다.[16]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경제 성장으로 이민 동기가 줄어들었다. 2016년 기준 527,570명의 이탈리아 시민이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다.[17]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탈리아인들의 이민은 빈곤, 인구 압박, 과도한 세금 등이 원인이었다.[26] 반면 아르헨티나는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1853년 헌법은 유럽 이민을 장려하고, 토지 경작, 산업 개선, 과학 및 예술 도입을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어떠한 제한이나 세금도 부과하지 않도록 규정했다.[29] 1876년 법률은 토지 무상 할당 또는 저렴한 가격의 구매 기회를 제공했으며, 1882년에는 모든 가족에게 25헥타르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28]

2. 2. 이탈리아인의 대규모 이주와 정착



이탈리아인의 라플라타 강 유역 존재는 아르헨티나 건국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소규모 이탈리아인들이 오늘날 아르헨티나 영토로 이주하기 시작했다.[11] 5월 혁명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이미 이탈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 특히, 이탈리아계인 마누엘 벨그라노, 마누엘 알베르티, 후안 호세 카스텔리는 5월 혁명과 프리메라 훈타에 참여했다.[19]

그러나 이탈리아의 아르헨티나 이민은 1880년부터 1920년까지 아르헨티나로의 유럽 대이민 물결 동안 대규모 현상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약 200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으며, 1900년부터 1914년 사이에만 100만 명이 이주해왔다.[8] 1914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이탈리아 출생자만 30만 명 이상이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했다.[4]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주로 14세에서 50세 사이의 남성이었고, 절반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직업 면에서는 활동 인구의 78.7%가 농업 노동자 또는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였고, 10.7%는 장인이었으며, 3.7%만이 상업 또는 전문직에 종사했다.[4]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이탈리아 내 파시즘 부상은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약간의 회복세가 있었지만,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이민은 중단되었다.[14]

전쟁이 끝난 후,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약 38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다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15] 이스트리아-달마티아 엑소더스 동안 이스트리아 이탈리아인과 달마티아 이탈리아인 소수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오기도 했다. 이들은 1947년 이탈리아와의 평화 조약 이후 이탈리아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넘어간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16]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경제는 성장과 회복의 시기를 겪으면서 이민의 주요 동기 중 하나가 사라졌다. 2016년 현재, 527,570명의 이탈리아 시민이 여전히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17]

2011년, 최소 2,500만 명의 아르헨티나인(국가 인구의 62.5%)이 어느 정도 이탈리아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2]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디아스포라의 두 번째로 큰 공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브라질 다음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인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인"이라고 말했고,[18] 스페인 철학자 훌리안 마리아스는 아르헨티나가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탈리아-스페인 공화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19]

1861년부터 1920년까지 아르헨티나로의 이탈리아 이민[4]
기간총 이민자 수이탈리아인비율
1861–1870159,570113,55471%
1871–1880260,885152,06158%
1881–1890841,122493,88559%
1891–1900648,326425,69357%
1901–19101,764,103796,19045%
1911–19201,204,919347,38829%
1861–19203,798,9252,270,52559%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시민[30][31]
인구 조사외국인 인구이탈리아 시민 인구외국인 대비 이탈리아인 비율전체 인구 대비 이탈리아인 비율
1869210,33071,40333.8%4.9%
18951,006,838492,63648.9%12.5%
19142,391,171942,20939.4%11.9%
19472,435,927786,20732.3%4.9%
19602,604,447878,29833.7%4.4%
19702,210,400637,05029.8%2.7%



19세기에는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이민자들이 왔고, 20세기에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주로 이주해 왔다.[5] 초기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대부분 피에몬테, 리구리아, 베네토,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롬바르디아 등 북부 출신 농부들이었다.[32][33] 20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초기 산업화로 인해 이민 패턴은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시칠리아 등 남부 이탈리아 농촌 지역으로 이동했다.[34]

1876년에서 1930년 사이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2,386,181명의 이탈리아인 중 47%(1,116,369명)는 남부 이탈리아, 41%(988,235명)는 북부 이탈리아, 12%는 중부 이탈리아(281,577명) 출신이었다.[35]

아르헨티나 속어에서 (Napulitanonap에서 유래, "나폴리 사람")는 원래 나폴리 왕국 사람들을 의미했지만, 현재는 모든 이탈리아계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나폴리는 1860년 왕국의 수도에서 이탈리아의 평범한 대도시로 전락하면서 관료적 일자리가 감소하고 재정 상황이 악화되어 높은 실업률을 겪었다. 이는 나폴리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의 대규모 이주를 야기했다.[38][39]

1990년 연구에 따르면, 남부 이탈리아인들은 더 영구적인 정착을 보였다. 아르헨티나 사회의 이탈리아 구성 요소는 북부보다는 남부의 영향이 더 크다.[40][41]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탈리아 이민자와 지역별 분포[42]
기간북서부 이탈리아북동부 이탈리아
및 중부 이탈리아
남부 이탈리아
및 섬 이탈리아
총계
1880–188459.8%16.8%23.4%106,953
1885–188945.3%24.4%30.3%259,858
1890–189444.2%20.7%35.1%151,249
1895–189932.3%23.1%44.6%211,878
1900–190429.2%19.6%51.2%232,746
1905–190926.9%20.1%53.0%437,526
1910–191427.4%18.2%54.4%355,913
1915–191932.3%23.1%44.6%26,880
1920–192419.7%27.4%52.9%306,928
1925–192914.4%33.1%52.5%235,065


2. 3. 20세기 이후의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부상은 아르헨티나로의 이민을 급격히 감소시켰지만,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약간의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이민은 결국 중단되었다.[14]

전쟁이 끝난 후,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약 38만 명의 이탈리아인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15] 이스트리아-달마티아 엑소더스 동안 소수의 이스트리아 이탈리아인과 달마티아 이탈리아인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는데, 이들은 1947년 이탈리아와의 평화 조약 이후 이탈리아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합병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었다.[16]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경제는 성장과 회복의 시기를 겪으면서 이민의 주요 동기가 사라졌다. 2016년 현재, 527,570명의 이탈리아 시민이 여전히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17]

2011년, 최소 2,500만 명의 아르헨티나인(국가 인구의 62.5%)이 어느 정도의 이탈리아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2]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디아스포라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인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인"이라고 말했고,[18] 스페인 철학자 훌리안 마리아스는 아르헨티나가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탈리아-스페인 공화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19] 이탈리아 경제학자 마르첼로 데 체코는 "이탈리아인들은 이민자의 민족으로, 수세기 동안 세계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 두 국가에서만 인구의 다수를 구성한다"고 말했다.[12]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2세 및 3세는 양국에서 인정하는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20][21] 이는 아르헨티나가 자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속지주의'' 원칙을 사용하고, 이탈리아가 이탈리아인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속인주의'' 원칙을 사용하기 때문이다.[22]

해외에 있는 이탈리아인들은 2006년부터 이탈리아 의회의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을 선출했다. 헌법 개혁 이후 하원 12석과 상원 6석이 이탈리아 디아스포라에 할당되었기 때문이다.[24] 아르헨티나는 남미 선거구에 속하며, 3명의 하원 의원과 2명의 상원 의원을 선출한다.[25]

19세기에는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20세기에는 주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의 모든 지역에서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5] 처음에는 피에몬테, 리구리아, 베네토,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롬바르디아 등 북부 출신 농부들이 주로 이주했다.[32][33] 20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초기 산업화로 인해 이민 패턴은 캄파니아, 칼라브리아, 시칠리아 등 남부 이탈리아의 농촌 지역으로 이동했다.[34] 북부 출신 이민자들은 주로 농촌 지역에 정착한 반면, 남부 출신들은 대도시를 선호했다.[13]

1876년에서 1930년 사이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2,386,181명의 이탈리아인 중 47%(1,116,369명)는 남부 이탈리아, 41%(988,235명)는 북부 이탈리아, 12%(281,577명)는 중부 이탈리아 출신이었다.[35] 피에몬테(북부)와 칼라브리아(남부)는 이민자 대부분의 출신 지역이었다. 칼라브리아 이민자들은 꾸준히 많은 수가 도착했으며, 시칠리아 이민자들은 1895년부터 1900년대 초까지 대규모로 도착하여 1914년에는 이민자 6명 중 1명이 시칠리아인이었다.[37]

1950년대에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65% 이상이 남부 출신이었으며, 칼라브리아 출신이 30%, 캄파니아 출신이 15%, 시칠리아 출신이 12%였다. 나머지 35% 중 21%는 아브루초와 몰리세(14%)를 포함한 중남부 지역 출신이었고, 13%는 주로 베네토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에서 온 북부 출신이었다.[36]

1876년에서 1915년 사이에 도착한 이민자 중 16.9%는 피에몬테 출신, 13.2%는 칼라브리아 출신, 11.1%는 시칠리아 출신, 10.4%는 롬바르디아 출신, 8.2%는 마르케, 7.5%는 캄파니아 출신, 7.2%는 베네토 출신, 3.2%는 아브루초와 몰리세 출신이었다. (당시 이 두 지역은 단일 지역)[4] 토스카나, 움브리아, 라치오, 에밀리아-로마냐 등 중부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 이민에 가장 적게 기여했다.[37]

아르헨티나 속어에서 (Napulitanonap에서 유래, "나폴리")는 원래 나폴리 왕국 거주자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모든 이탈리아계 사람을 지칭한다. 1860년 나폴리가 자체 왕국의 수도에서 이탈리아의 대도시로 전락하면서 관료적 일자리가 감소하고 재정 상황이 악화되어 높은 실업률이 발생했다. 이는 나폴리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의 대규모 이탈을 야기했다.[38][39]

1990년 연구에 따르면, 높은 귀환자 비율은 출신 지역과 목적지 사이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남부 이탈리아인들은 더 영구적인 정착을 보이며, 아르헨티나 사회의 이탈리아 구성 요소는 북부보다는 남부의 영향이 크다.[40][41]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탈리아 이민자와 지역별 분포[42]
기간북서부 이탈리아북동부 이탈리아
및 중부 이탈리아
남부 이탈리아
및 섬 이탈리아
총계
1880–188459.8%16.8%23.4%106,953
1885–188945.3%24.4%30.3%259,858
1890–189444.2%20.7%35.1%151,249
1895–189932.3%23.1%44.6%211,878
1900–190429.2%19.6%51.2%232,746
1905–190926.9%20.1%53.0%437,526
1910–191427.4%18.2%54.4%355,913
1915–191932.3%23.1%44.6%26,880
1920–192419.7%27.4%52.9%306,928
1925–192914.4%33.1%52.5%235,065


3. 문화적 영향

아르헨티나 문화는 이탈리아 문화, 특히 남부 이탈리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세기 말 아르헨티나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새로운 국가였고,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온 대규모 이민은 강력한 문화적 공존 정책을 통해 국가적 존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22] 이탈리아 이민은 1870년대에 대량으로 시작되어 196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이탈리아인 거주지는 스페인인 거주지와 함께 오늘날 아르헨티나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서 잊혀지거나 거의 기억되지 않는 이탈리아 전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22]

트레레우의 마누엘 벨그라노 기념비. 마누엘 벨그라노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만든 정치인이자 군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었다.


오베라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축제


주세페 가리발디 기념비, 이탈리아 광장에 위치.


아드로게의 이탈리아 협회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주로 가톨릭 신자이다.[3]

아르헨티나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지중해식 식단의 변형된 형태를 띠고 있다. 피자파스타는 매우 흔한 음식이며, 다양한 이탈리아식 소스와 조리법이 사용된다. 아르헨티나식 피자는 이탈리아의 피자 알 탈리오와 유사하며, 둥근 모양으로 여러 명이 나눠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파이나는 병아리콩 가루로 만든 얇은 빵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자 가게에서는 피자와 함께 제공된다.

파스타는 아르헨티나 요리의 특징이다


밀라네사 나폴리타나와 프렌치 프라이


아르헨티나 소렌티노스


아르헨티나 피자와 파이나


아르헨티나 레지아니토


아르헨티나 사르도


아르헨티나 파스타 플로라


다양한 브랜드의 페르넷


파스타는 '알루소-노스트로'("우리 방식")라는 현지 방식으로 요리되며, 흰 빵과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소렌티노스는 라 플라타 강 지역에서 발명된 현지 요리로, 모차렐라, 코티지 치즈, 바질을 토마토 소스에 넣은 큰 둥근 모양의 라비올리와 비슷하다. 폴렌타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매우 흔하게 먹는 음식이다. 밀라네사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 중 하나이며, ''밀라네사 나폴리타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옛 레스토랑 "나폴리"에서 유래되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레지아니토, 사르도, 로마노, 프로볼로네 등의 치즈를 아르헨티나에서 재현했으며, 크레모소 치즈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치즈이다.

파스타 플로라는 남부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요리이다. 디저트로는 판둘체, 칸투치니, 티라미수, 자바이오네, 크로스타타(리코타 케이크), 판나 코타 등이 있으며, 아이스크림(헬라도|heladoes, 젤라토|gelatoit) 또한 매우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리큐어 중에는 치트론첼로그라파가 있으며, 간치아와 페르넷과 같은 이탈리아 알코올 음료도 널리 소비된다.

매달 29일에 뇨키를 먹는 '노키스 델 29'("29일의 뇨키") 전통은 성 판탈레온 전설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 국가에서 널리 퍼져 있다.

예술 분야에서도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누에보 탱고의 창시자로 알려진 탱고 음악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이며, 레오노르 피니는 초현실주의 화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이다. 루치오 폰타나는 공간주의(Spatialism)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진 화가, 조각가, 이론가이다.

3. 1. 언어

Ethnologueit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150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어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스페인어와 영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54] 이탈리아 이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는 아르헨티나에서 실제로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대량 이민 당시 거의 모든 이탈리아인들이 현재 표준 이탈리아어가 아닌 고유의 지역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어가 아르헨티나의 주요 언어로 사용되는 것이 불가능했다. 스페인어와 이러한 언어들 간의 유사성은 또한 이민자들이 비교적 쉽게 스페인어로 의사소통 능력을 습득하게 해주었고, 따라서 큰 어려움 없이 언어적으로 동화될 수 있게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이탈리아 이민은 아르헨티나 방언 스페인어의 억양에 지속적이고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예비 연구에 따르면 Rioplatense 스페인어,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시의 발음은 이탈리아 방언(특히 나폴리 언어를 기층으로 하는 것들)과 유사한 억양 패턴을 보이며, 다른 형태의 스페인어 패턴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56] 이는 19세기부터 막대한 수의 이탈리아 정착민이 있었던 아르헨티나,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민 패턴과 잘 일치한다. 아르헨티나 국립 과학 기술 연구 위원회가 실시하여 ''Bilingualism: Language and Cognition'' (ISSN 1366–7289)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57] 연구자들은 이것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며, 남부 이탈리아 이민의 주요 물결이 시작된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전까지는 ''porteño'' 억양이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의 억양과 더 유사했다.[58]

룬파르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와 그 교외에서 생겨나 발전한 속어로, 로사리오(산타페 주) 및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와 같은 다른 인근 도시로 퍼져나갔다.[59][60] 이 단어는 롬바르드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롬바르디아(이탈리아 북부)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61] 룬파르도의 소리는 주로 이탈리아 언어, 특히 북부 언어에서 유래되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이탈리아 식민지가 매우 광범위하여 어원론과 용어에 방대한 어휘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또한 룬파르도는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영어와 같은 다양한 언어에서 자체 단어, 표현 또는 말하기 방식(차용어)을 가져왔고, 가우초를 통해 팜파에서 온 다른 단어들도 있었으며, 아르헨티나 원주민들로부터 소수의 단어들이 왔다. 룬파르도 단어는 Rioplatense 스페인어 문장의 정상적인 흐름에 삽입된다.

188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거의 또는 전혀 배우지 못한 남부 이탈리아 출신 농민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 이민자들이 지역 ''criollos''와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들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 언어 및 방언, 특히 나폴리 언어를 혼합한 가변적인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 피진 언어는 지역 주민들에게 ''코콜리체''라는 경멸적인 이름으로 불렸다. 이민자들의 자녀들은 학교, 직장 및 군 복무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코콜리체는 주로 1세대 이민자들에게만 국한되었고 서서히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 피진은 다리오 비토리와 같은 아르헨티나 사이네테 극에서 문학 작품과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었다.

3. 2. 요리

아르헨티나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식단은 지중해식 식단의 변형이며, 피자와 파스타와 같은 이탈리아 요리가 흔하다. 파스타는 버터나 오일만 사용하거나 토마토나 베샤멜 소스를 곁들여 먹는 등 매우 흔하며, ''바냐카다'' (bagna càuda)도 즐겨 먹는다.

피자(현지에서는 "피사" 또는 "피차"로 발음)는 아르헨티나식으로 변형되었는데, 둥근 모양으로 이탈리아 피자 알 탈리오와 더 유사하며, 2명 이상이 나눠 먹는다.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피자에는 ''피자 칸체라'', ''피자 레예나''(속을 채운 피자), ''피자 포르 메트로''(미터 단위 피자), ''피자 아 라 파리야''(구운 피자) 등이 있다. 아르헨티나 ''푸가자''/''푸가짜''는 포카치아에서 유래했지만, 이탈리아 피자와는 조리법이 다르며, 치즈를 추가한 ''푸가자 콘 케소'' 또는 ''푸가제타''는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되었다.[62]

''파이나''는 병아리콩 가루로 만든 얇은 빵으로, 이탈리아 ''파리나타''의 리구리아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피자 가게에서는 파이나를 피자와 함께 제공하며, 피자 위에 파이나를 얹어 먹기도 한다.

''파스타''(파스타, 항상 복수)는 피자보다 소비량이 많으며, ''타야린''(페투치네), ''라비올''(라비올리), ''뇨키''(뇨키), ''라사냐''(라자냐), ''카넬로네스''(카넬로니) 등이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파스타 전문 이탈리아 레스토랑도 있다.[63] 파스타는 ''알루소-노스트로''("우리를 위해" 또는 "우리 방식")라는 현지 방식으로 요리하고 제공되며,[64] 종종 흰 빵("프렌치 빵")과 함께 먹는다. 이는 빵의 저렴한 가격과 아르헨티나 파스타에 많은 양의 ''투코'' 소스(이탈리아 ''수고'')와 ''에스토파도''(이탈리아 ''스투파토'')가 곁들여 나오기 때문이다. 덜 흔하지만, 파스타는 바질로 만든 녹색 소스인 ''페스토'' 또는 ''살사 블랑카''(베샤멜 소스)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소렌티노스''는 라 플라타 강 지역에서 발명된 현지 요리이다.[65] 소렌토 출신의 이탈리아 이민자인 로살리아 페르시코 또는 그의 아들 카예타노 페르시코가 마르 델 플라타의 트라토리아에서 일하면서 이 파스타를 만들었다고 한다.[65][69][68] 모차렐라, 코티지 치즈와 바질을 토마토 소스에 넣은 큰 둥근 모양의 ''라비올''처럼 보인다.

''폴렌타''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매우 흔하다. 이탈리아의 ''폴렌타 콘시아''와 유사하며, 메인 요리로 소스와 녹인 치즈를 곁들여 먹거나 스튜에 곁들여 먹을 수 있다. ''테네르 폴렌타''("폴렌타를 가지고 있다")라는 표현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구어체로 사용된다.[72] 트라이프, 콩, 토마토 퓨레, 당근, 셀러리로 만든 롬바르디아 요리인 ''부세카''도 아르헨티나에서 인기가 있다.[74]

''밀라네사''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 중 하나이며, "전형적인 라 플라타 강 요리 중 하나"로 묘사된다.[75] ''밀라네사 나폴리타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옛 레스토랑 "나폴리"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밀라노 요리인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세''를 소개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유산이다.[76] 밀라네사는 아르헨티나 문화에 매우 흔해서 5월 3일에 "밀라네사의 날"까지 있다.[76][77][78]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재현한 치즈로는 ''레지아니토'', ''사르도'', ''로마노'', 프로볼로네 등이 있다. ''크레모소'' 치즈는 크레센차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이탈리아 치즈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치즈이다.[79]

파스타 플로라는 남부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요리 레시피이다. 얇은 페이스트리 베이스에 마멀레이드, 고구마 잼 또는 우유 캐러멜(둘세 데 레체)로 채워지고, 동일한 페이스트리의 얇은 조각으로 덮여 사각형 패턴을 형성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오후에 마테와 함께 파스타 플로라를 먹는 것이 전통이다.

디저트 중에는 제노바 판돌체에서 유래된 ''판둘체''가 있으며,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인기가 있다. 칸투치니, 토스카나 요리의 디저트도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 먹는다.[80] 티라미수, 자바이오네, 크로스타타(아르헨티나에서는 리코타 케이크로 알려짐) 및 판나 코타와 같은 다른 이탈리아 디저트도 아르헨티나에서 소비된다.[82]

아이스크림(헬라도|heladoes, 젤라토|gelatoit)은 특히 인기 있는 아르헨티나 디저트이다. 크림 같은 질감은 크림의 많은 비율에 의해 발생하며,[81] 다양한 맛을 맛볼 수 있다. 리큐어 중에는 ''치트론첼로''(리몬첼로)와 ''그라파''(그라파)가 있다. 간치아와 페르넷과 같은 이탈리아 알코올 음료는 아르헨티나에서 널리 소비된다.[82]

''노키스 델 29''("29일의 뇨키")는 매달 29일에 접시에 뇨키를 먹는 남미 일부 국가에서 널리 퍼진 관습이다.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같은 남방 원뿔 국가에서 널리 퍼져 있으며,[83][84][85] 이들 국가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상당한 이탈리아 이민을 받아들였다. 뇨키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의식, 즉 새로운 선물을 바라는 마음을 상징하는 접시 밑에 돈을 놓는 의식이 있다. 행운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지폐나 동전을 접시 밑에 놓는 것도 관례이다.[86]

매달 29일에 뇨키를 제공하는 전통은 니코메디아 출신의 젊은 의사였던 성 판탈레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북부 이탈리아를 순례했다. 그곳에서 판탈레온은 기적적인 치료를 행하여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한 번은 베네치아 농부들에게 빵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이 가난한 식탁을 함께 나누도록 초대했다.[87]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판탈레온은 뛰어난 어획량과 풍성한 수확의 해를 발표했다. 그 에피소드는 7월 29일에 발생했고, 이 날은 뇨키로 대표되는 간단한 식사로 기억된다.[86]

3. 3. 예술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아스토르 피아졸라: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이다. 누에보 탱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 레오노르 피니: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초현실주의 화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이다.
  • 페드로 마피아: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 작곡가, 배우이다.
  • 카를로스 디 사를리: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 작곡가, 피아니스트이다.
  • 프랑코 디 산토: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다.
  • 키리노 크리스티아니: 아르헨티나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만화가이다.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와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미아 마에스트로: 아르헨티나의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 훌리오 데 카로: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이다.
  • 후안 데 디오스 필리베르토: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 작곡가이다.
  • 로베르토 필포: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 작곡가, 피아니스트이다.
  • 루치오 폰타나: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이론가이다. 공간주의(Spatialism)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4. 주요 인물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주요 인물
초상화인물설명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266대 교황
리오넬 메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마누 지노빌리
마누 지노빌리아르헨티나의 농구 선수
후안 페론
후안 페론아르헨티나의 군인, 정치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투로 프론디치아르헨티나의 정치인
아르투로 일리아아르헨티나의 정치인
마누엘 벨그라노
마누엘 벨그라노아르헨티나의 장군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가브리엘라 사바티니아르헨티나의 테니스 선수
후안 마누엘 판지오
후안 마누엘 판지오아르헨티나의 카레이서
아스토르 피아졸라
아스토르 피아소야아르헨티나의 음악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라울 디 블라시오아르헨티나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시저 펠리아르헨티나 출신의 미국 건축가



리오넬 메시, 마누엘 벨그라노와 같이 스페인계와의 혼혈도 있으며, 후안 페론과 같이 메스티소도 일부 존재한다.


  • 스포츠
  • 축구: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 호세 아치아리, 레오넬 알토벨리, 가브리엘 아마토, 빅토르 휴고 아마티, 안토니오 안젤릴로, 크리스티안 안살디, 후안 안토니니, 토마스 아르헨토, 프랑코 아르마니, 레안드로 아르마니, 마리아노 아르멘타노, 로베르토 아얄라, 레안드로 바카로, 토마스 바달로니, 파쿤도 바그니스, 오라시오 라울 발데사리, 에스테파니아 바니니, 마리아노 바르보사, 엔조 바레네체아, 기예르모 바로스 셸로토, 구스타보 바로스 셸로토, 알피오 바실레, 로베르토 바실리코, 오스카르 바소, 파블로 바스티아니니, 다미안 바탈리니,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세바스티안 바탈리아, 크리스티안 바토키오, 엘리아스 바지, 루시아노 베치오, 카를로스 베크톨트 바자노, 다리오 베네데토, 에두아르도 베리소, 루카스 베르나르디, 아틸리오 베르나스콘, 세르히오 베르티, 다니엘 베르토니, 루카스 베소치, 후안 베티노티, 곤잘로 베티니, 클라우디오 비아지오, 브루노 비안키, 카를로스 비안치, 에마누엘 비안쿠치, 막시 비안쿠치, 루도비코 비도글리오, 마르셀로 비엘사, 루카스 비글리아, 카를로스 빌라르도, 마리아노 비톨로, 리카르도 보치니, 호세 루이스 보피, 마리오 볼라티, 엔리케 볼로냐, 이반 보르게요, 클라우디오 보르기, 안헬 보시오, 후안 보타소, 안드레스 보티기에리, 조나단 보티넬리, 엘모 보비오, 루이스 브루네토, 에세키엘 부야우데, 파쿤도 부오나노테, 기예르모 부르디소, 니콜라스 부르디소, 헤레미아스 카지아노, 디에고 카냐, 파블로 칼란드리아, 조나탄 카예리, 페드로 칼로미노, 호세 마리아 칼보, 아돌포 캄비아소, 에스테반 캄비아소, 니콜라스 캄비아소, 훌리안 카미노, 루카스 카마레리, 마티아스 카마레리, 마우로 카모라네시, 우고 캄파냐로, 구스타보 캄파뇰로, 파쿤도 캄파소, 곤잘로 카날레, 클라우디오 카니자, 빈센테 칸타토레, 살바도르 카피타노, 로베르토 카파렐리, 프랑코 카라치오, 에세키엘 알레호 카르보니, 마르틴 카르데티, 세사르 카리냐노, 루이스 알베르토 카란자, 후안 파블로 카리소, 페데리코 카르타비아, 레안드로 카루소, 다미안 카살리누에보, 라울 알프레도 카스치니, 이반 카스텔라니, 에우제니오 카스텔루치, 마르틴 카스트로지오반니, 루카스 카스트로만, 레나토 체사리니, 로베르토 체로, 알베르토 치비디니, 니콜라스 시날리, 루시아노 친골라니, 에세키엘 시리아노, 레나토 치벨리, 세바스티안 코벨리, 프랑코 콜라핀토, 로베르토 콜라우티,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나사레노 콜롬보, 후안 파블로 콤파그누치, 펠리페 콘테포미, 라울 콘티, 엔조 코페티, 훌리오 코치, 에르난 크레스포, 토마스 쿠벨리, 파트리시오 쿠치, 호세 루이스 쿠치우포, 마티아스 클라우디오 쿠파, 엑토르 쿠페르, 로베르토 데 빈첸초, 마르틴 데미첼리스, 호세 데베치, 로드리고 데 폴, 마르코 디 체사레, 앙헬 디 마리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파울로 디발라, 브라이언 파리아리, 페데리코 파시오, 엔조 페르난데스, 프랑코 페라리, 잔루카 페라리, 파울로 페라리, 엑토르 페르톨리, 페르난도 포레스티에리, 이그나시오 가릴리오, 페데리코 가토니, 파울로 가차니가, 프란시스코 제로메타, 라우타로 지아네티, 페데리코 지로티, 곤살로 고니, 가브리엘 그라치아니, 마우로 이카르디, 에르난 람베르티, 마누엘 란치니, 니콜라스 라프로비톨라, 카를로 라탄치오, 에세키엘 라베찌, 리카르도 라 볼페, 프란체스코 로 셀소, 조바니 로 셀소, 마르셀로 로프레다, 아우구스토 로티, 크리스티안 루케티,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 훌리안 말라티니, 토마스 마르키오리, 알란 마리넬리, 알레한드로 마르티누치오, 곤잘로 마로니,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헤라르도 마르티노,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움베르토 마스키오, 가스톤 마차카네,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리오넬 메시, 니콜라스 메시니티, 곤잘로 미첼리, 디에고 밀리토, 가브리엘 밀리토, 페르난도 모네티, 알레한드로 몬테키아, 루이스 몬티, 안토니오 나폴리타노, 후안 이그나시오 나르도니, 파브리시오 오베르토, 라이문도 오르시, 니콜라스 오르시니, 다니 오스발도, 니콜라스 오타멘디, 후안 이그나시오 파치니, 마르틴 팔레르모, 페드로 파스쿨리, 다니엘 파사레야, 루카스 파세리니, 하비에르 파스토레, 아구스틴 파스토렐리, 니콜라스 파스키니, 마우리시오 펠레그리노, 로베르토 페레이라, 게르만 페첼라, 이그나시오 피아티, 산티아고 피에로티,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마스 포체티노, 카를라 레베키, 마테오 레테기, 안토니노 로카, 레안드로 로마뇰리, 아구스틴 로시, 오스카르 루게리, 알레한드로 사벨라, 하비에르 사비올라, 리오넬 스칼로니, 에세키엘 스켈로토, 루이스 스콜라, 우고 스코노치니, 로베르토 센시니, 마르코스 세네시, 디에고 시메오네, 조바니 시메오네, 오마르 시보리, 산티아고 솔라리, 훌리안 스페로니, 기예르모 스트라델라, 니콜라스 타글리아피코, 알베르토 타란티니, 렌초 테수리, 디에고 발레리, 마누엘 비센티니, 하비에르 자네티, 마우로 사라테
  • 테니스: 호세 아카수소, 파쿤도 바그니스, 아구스틴 카예리, 안드레아 콜라리니,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 럭비 유니온: 마티아스 알레마노, 곤잘로 카날레, 마르틴 카스트로지오반니, 펠리페 콘테포미
  • 농구: 파쿤도 캄파소, 브루노 체렐라, 카를로스 델피노, 마누 지노빌리
  • 권투: 오라시오 아카발로, 오스카 보나베나, 미겔 앙헬 카스텔리니, 후안 마르틴 코기, 루이스 앙헬 피르포, 니콜리노 로체
  • 필드 하키: 아구스티나 알베르타리오, 토마스 아르헨토, 레안드로 바카로, 파쿤도 카요니, 루카스 카마레리, 마티아스 카마레리, 산티아고 카푸로, 마리아 카스텔리, 디에고 키오도, 마리아 콜롬보, 실비나 데리아, 로사리오 루체티, 소피아 마카리, 델피나 메리노, 바니나 오네토, 세실리아 로뇨니, 마리에라 스카로네, 벨렌 수치
  • 배구: 다니엘 카스텔라니, 이반 카스텔라니, 야엘 카스티글리오네, 파쿤도 콘테, 우고 콘테, 후안 쿠미네티, 미겔 앙헬 팔라스카
  • 육상: 단 비오키, 루이스 브루네토, 게르만 키아라비글리오, 발레리아 키아라비글리오
  • 조정: 훌리오 쿠라텔라
  • 요트: 루카스 칼라브레스
  • 핸드볼: 아멜리아 벨로티, 발레리아 비안키, 로시오 캄피글리, 빅토리아 크리벨리
  • 기계 체조: 페데리코 몰리나리
  • 폴로: 아돌포 캄비아소
  • 자동차 경주: 프랑코 콜라핀토, 가스톤 마차카네
  • 레슬링: 안토니노 로카
  • 유도: 파울라 파레토
  • 과학: 신포로소 아모에도 카나베리, 도밍고 리오타, 후안 데 카나베리스, 후안 바우티스타 암브로세티, 플로렌티노 아메기노, 호세 보나파르테, 술마 브란도니 데 가스파리니, 콘스탄사 세루티, 프리마로사 키에리, 마리오 크로코, 르네 파발로로, 호세 인헤니에로스
  • 예술: 안토니오 알리체, 아킬레스 바디, 안토니오 베르니, 에르미니오 블로타, 에밀리오 카라파, 리카르도 카르파니, 후안 카를로스 카스타니노, 티토 치타디니, 피오 콜리바디노, 루치오 폰타나
  • 문학: 올란도 바론, 엑토르 비안시오티, 엔리케 브레시아, 수사나 칼란델리, 마리아 루이사 카르넬리, 오스카 콘티, 파스쿠알 콘투르시, 로베르토 코사, 키리노 크리스티아니, 호세피나 파사도리, 리카르도 피글리아, 시리아 폴레티, 마누엘 푸이그, 에르네스토 사바토, 후안 호세 세브렐리, 아우로라 벤투리니
  • 음악: 다니엘 아고스티니, 안토니오 아그리, 찰리 알베르티, 티토 알베르티, 후안 다리엔조, 알바 아르노바, 후안 카를로스 바글리에토, 가토 바르비에리, 아구스틴 바르디, 아드리안 바릴라리, 마리아 베체라, 마릴리나 베르톨디, 로돌포 비아지, 라울 디 블라시오, 제타 보시오, 호세 안토니오 보티롤리, 호세 브라가토, 엔리케 카디카모, 빌리 카파로, 안드레스 카라마로, 카르멘 리소 데 칸첼리에리, 파비아나 칸틸로, 알베르토 카라치올로, 셀레스테 카르발로, 프란시스코 데 카로, 훌리오 데 카로, 엘레오노라 카사노, 카초 카스타냐, 에르난 카타네오, 카추, 구스타보 세라티, 플라비오 치안치아룰로, 달릴라, 엔리케 산토스 디스세폴로, 두키, 에코, 라리 에스포시토, 발레리아 가스탈디, 월터 지아르디노, 레온 기에코, 길다, 알베르토 기나스테라, 카를로스 구스타비노, 카를로스 인실로, L-Gante, 파울로 론드라, 루이사나 로필라토, 아구스틴 마갈디, 오메로 만지, 레오 마티올리, 다니엘 멜링고, 리토 네비아, 니키 니콜, 파포, 구스타보 파리시, 솔레다드 파스토루티, 나티 펠루소, 아스토르 피아졸라, 피에로, 라울 포르체토, 아리엘 푸체타, 디노 살루치, 알레한드로 세르기, 인디오 솔라리, 루이스 알베르토 스피네타, 디에고 토레스, 아니발 트로일로, 트루에노, 리토 비탈레, 비센티코, 워스
  • 기업: 다니엘 안젤리치, 포피 베르무데스 피파, 디에고 보시오, 알레한드로 불게로니, 카를로스 불게로니, 알레한드로 부르자코, 에두아르도 코스탄티니, 엔리케 모스니, 오라치오 파가니, 파올로 로카, 토르쿠아토 디 텔라
  • 범죄: 카예타노 산토스 고디노
  • 엔터테인먼트: 다니엘라 아나이 베시아, 퀴리노 크리스티아니, 파올라 카로셀라, 히메나 아카르디, 그라시엘라 알파노,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 에르네스토 알테리오, 엑토르 알테리오, 말레나 알테리오, 루이스 세사르 아마도리, 마이크 아미고레나, 마리아나 안길리에리, 노르베르토 아롤디, 카탈리나 아르투시, 크리스티안 바흐 보티노, 앙헬레스 발비아니, 마리오 바로피오, 발렌티나 바시, 플로렌시아 베르토티, 발레리아 베르투첼리, 텔마 비랄, 호세 보달로 주폴리, 파트리시오 보르게티, 루이스 브란도니, 알리시아 브루초, 엑토르 칼카뇨, 후안 호세 캄파넬라, 샬롯 카니지아, 디에고 카푸소토, 우고 델 카릴, 안토니오 카리소, 에반젤리나 카로조, 모리아 카사노바, 카트라노 카트라니, 아구스티나 체리, 후안 치오란, 툴리아 치암폴리, 리카르도 다린, 루카스 데마레, 알레한드로 판티노, 돌로레스 폰지, 토마스 폰지, 기예르모 프란셀라, 니콜라스 프란셀라, 레나타 프론지, 카를로스 갈레티니, 카를로스 간돌포, 다리오 그란디네티, 후안 페드로 란사니, 발레리아 린치, 발레리아 마자, 티타 메렐로, 안드레스 무시에티, 플로렌시오 파라비치니, 리카르도 파사노, 디에고 페레티, 로미나 리치, 비올레타 리바스, 오리아나 사바티니, 훌리안 세라노,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마르셀로 티넬리, 발렌티나 제네레

4. 1. 정치 및 사회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미국 등 다른 지역의 이탈리아인들과 비교했을 때 반가톨릭주의나 인종차별적 정서로 큰 고통을 받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사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새로운 정착민들을 환영했으며, 이들은 국가 형성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은 라틴 계통의 친근함으로 인해 독일계 아르헨티나인들보다 일반 사회에 더 잘 통합되었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이 외국인 혐오증으로 고통받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31년 무정부주의자 세베리노 디 지오반니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디 지오반니의 재판은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들의 아르헨티나 국가에 대한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동기 부여된 일부 반이탈리아주의 정서를 불러일으켰다.[52]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스페인 출신 부르주아들은 처음에는 많은 이탈리아인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음 세대의 사회적 상승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르헨티나 국가 문화의 개입을 요구했다. 주요 관심사는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들을 위해 1902년과 1910년에 억압적인 법률이 통과되었다.[46]

세베리노 디 지오반니 법정 출두


다음은 정치 및 사회 분야에서 활동한 주요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들이다.

인물분야설명
세베리노 디 지오반니반파시스트
후안 데 카나베리스공증인
카를로스 알프레도 다미코변호사
호세 마리아 캄파뇰리검사
세바스티안 카사넬로판사
수사나 루이스 세루티변호사, 전 외무 장관
호세 아말피타니스포츠 저널리스트
에두아르도 P. 아르케티인류학자
에릭 칼카뇨사회학자
오를란도 라몬 아고스티군인1976년부터 1981년까지 아르헨티나를 통치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군사 정부 구성원
호세 그레고리오 벨그라노군인(대령)
마누엘 벨그라노군인, 정치인아르헨티나 국기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프리메라 훈타 구성원
레이날도 비그노네군인, 정치인1982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 독재 대통령
안토니오 도밍고 부시군인(장군)
오스발도 카차토레군인(준장)국가 재건 과정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 역임
마누엘 카나베리스군인(중위)
앙헬 카나베리군인(중령)
레오폴도 갈티에리군인(장군), 정치인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 장군이자 대통령
마리오 바를레타정치인급진 시민 연합
파비오 비안칼라니정치인정의당
델리아 비수티정치인연대와 평등
안토니오 본파티정치인사회당
앙헬 볼렌기정치인페론주의
후안 아틸리오 브라무글리아정치인페론주의
테오도로 브론치니정치인사회당
호르헤 부스티정치인정의당
후안 마누엘 카페라타정치인국민 자치당
안토니오 카피에로정치인정의당
엑토르 호세 캄포라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엑토르 카나베리정치인국민 자치당
페드로 카나베리정치인급진 시민 연합, 전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회장
단테 카푸토정치인유엔 총회 의장
루이스 카푸토정치인경제부 장관
라몬 J. 카르카노정치인국민 자치당
후안 호세 카스텔리정치인제1차 훈타 멤버
도밍고 카발로정치인정의당
레나토 카를로스 세르살레 디 체리사노외교관주영 아르헨티나 대사
알프레도 키아라디아외교관전 주미 대사
우고 코카로정치인정의당
아르투로 콜롬비정치인급진 시민 연합
리카르도 콜롬비정치인급진 시민 연합
루시아 코르파치정치인정의당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아르투로 프론디지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아르투로 움베르토 일리아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라울 알베르토 라스티리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에두아르도 로나르디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세르히오 마사정치인경제부 장관
가브리엘라 미체티정치인아르헨티나 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정치인아르헨티나 현 대통령
카를로스 페예그리니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다니엘 시올리정치인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귀도 디 텔라사업가, 학자, 외교관
로베르토 에두아르도 비올라정치인아르헨티나 대통령
마누엘 알베르티성직자(사제)1810년 프리메라 훈타 일원
엔리케 안젤레리성직자(주교)
카를로스 아스피로스 코스타성직자(수사)
교황 프란치스코성직자(교황)피에몬테 출신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로 출생
로물로 안토니오 브라스키성직자(주교)
카를로스 아르만도 부스토스성직자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
안토니오 카지아노성직자(추기경)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토마스 카나베리성직자(사제)
레오나르도 카스텔라니성직자(사제)
산티아고 코펠로성직자(추기경)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안토니오 콰라치노성직자(추기경)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4. 2. 스포츠

193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루이스 몬티라이문도 오르시를 기용했다. 두 선수 모두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이었다. 루이스 몬티1930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결승에 진출했고, 라이문도 오르시와 함께 193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102]

오마르 시보리, 움베르토 마스키오, 안토니오 발렌틴 안젤리요는 1957년 남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였다. 이들은 이탈리아 시민권을 취득하여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뛰었다.[102]

마우로 카모라네시는 1873년 마르케 지역의 포텐차 피체나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증조부 덕분에 이탈리아 시민권을 얻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일원이었다.[103]


4. 3. 예술 및 문화

아르헨티나 문화는 이탈리아, 특히 남부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53] 19세기 말, 아르헨티나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신생 국가였기 때문에 유럽, 특히 이탈리아로부터의 대규모 이민은 국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22]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주로 중하류 계층 출신이었으며,[13] 아르헨티나에는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잊혀진 전통들이 여전히 남아있다.[22]

2012년 5월 23일에 개관한 예술 발전소(Usina del Arte). 부에노스아이레스 라 보카에 있는 1916년에 원래 이탈리아-아르헨티나 전기 회사(CIAE) 시설에 지어졌다.


이탈리아 건축가 조반니 키오냐는 트렌토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 와 이탈리아-아르헨티나 전기 회사(CIAE)에 고용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00개 이상의 발전소 및 관련 구조물을 건설했다. 이 건물들은 르네상스 건축의 피렌체 네오 르네상스 양식을 특징으로 한다.[89][90]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소설 ''사랑의 학교''에 수록된 ''아페닌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는 어머니를 찾아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13세 소년의 여정을 다룬다.[91] 1965년 영화 ''일 가우초''는 아르헨티나에서 촬영되었으며, ''Un italiano en la Argentina''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인")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92][93] 이바노 포사티의 ''Italiani d'Argentina''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코 구치니의 ''Argentina''는 이탈리아를 떠난 이민자들의 그리움을 노래한다.

아르헨티나 음악에서 탱고 음악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큰 영향을 받았다. 많은 초기 탱고 음악가들이 이탈리아계였으며, 탱고 가사에도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삶이 반영되었다.[94]

  • 주요 예술가:
  • 세사르 펠리(César Pelli): 세계적인 건축가
  • 루치오 폰타나: 화가, 조각가
  • 안토니오 베르니: 화가
  • 에르네스토 사바토: 작가, 화가
  • 아스토르 피아졸라: 탱고 작곡가, 반도네온 연주자
  • 구스타보 세라티: 싱어송라이터
  • 인디오 솔라리: 음악가
  • 오메로 만지: 탱고 작사가
  • 레온 기에코: 가수
  • 루이스 알베르토 스피네타: 가수, 작곡가
  • 다니엘라 아나이 베시아: 가수, 배우, 모델
  • 퀴리노 크리스티아니: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
  • 후안 호세 캄파넬라: 영화 감독
  • 리카르도 다린: 배우
  • 티타 메렐로: 배우
  • 발레리아 마자: 슈퍼모델
  • 수사나 칼란델리: 시인
  • 마누엘 푸이그: 작가


구스타보 세라티


카를로스 알베르토 솔라리


오메로 만치오네


루카스 데마레


티타 메렐로


발레리아 마자


루치오 폰타나


수사나 칼란델리

5.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관련 단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준인의 이탈리아 협회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 협회는 문화 기관, 스포츠 센터, 사회 단체, 참전 용사 단체 등 다양한 유형을 포함한다.[20] 1858년 7월 18일 53명의 이탈리아인에 의해 설립된 이탈리아 상호부조 및 교육 협회 "Unione y Benevolenza"는 남아메리카 최초의 이탈리아 기관이 되었다.[95] 1866년에는 이미 이탈리아어 수업이 열렸다.[20]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연맹 연합은 1912년에 설립되어 이탈리아-아르헨티나 협회의 모든 연맹을 통합한다.[96] 단테 알리기에리 협회는 이탈리아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는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기관으로, 아르헨티나에 126개의 지부를 두고 있으며,[97]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탈리아 밖에서 가장 중요한 지부이다.[20]

이탈리아 해외 위원회는 모든 영사 관할 구역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이탈리아 국가 기관이며, 아르헨티나에도 여러 곳이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영사 당국과 아르헨티나 당국 앞에서 이탈리아 공동체를 대표한다.[98]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이탈리아 학교(Scuola Italiana Cristoforo Colombo)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에는 다음과 같은 이탈리아 국제 학교가 있다:[99]

  •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이탈리아 학교(Scuola Italiana Cristoforo Colombo) (부에노스아이레스)
  •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학교(Istituto Scolastico "Scuola Edmondo De Amicis") (부에노스아이레스, 로사리오)
  • 단테 알리기에리 학교(Escuela Dante Alighieri|Scuola "Dante Alighieri") (코르도바, 로사리오)
  • 이탈리카 문화 연구소(Istituto di Cultura Italica) (라플라타)
  • XXI 아프릴레 이탈리아 학교 협회(Associazione Scuole Italiane "XXI Aprile") (멘도사)
  • 알레산드로 만초니 학교 이탈리아 문화 센터(Centro Culturale Italiano Scuole Alessandro Manzoni) (올리보스 및 빌라 아델리나)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어 언론은 기본적으로 다음 두 개의 간행물로 구성되어 있다.

  • ''이탈리아의 메아리(L'Eco d'Italia)''("이탈리아의 메아리"): 남아메리카의 이탈리아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이탈리아어 아르헨티나 주간 잡지.[100]
  • ''이탈리아인(L'Italiano)'' ("이탈리아인"): 이탈리아어 아르헨티나 일간 신문.[101]

참조

[1] 웹사이트 Datos sociodemográficos por país de nacimiento https://estadisticas[...] 2023-11-15
[2] 웹사이트 Historias de inmigrantes italianos en Argentina http://infouniversid[...] infouniversidades.siu.edu.ar 2011-11-14
[3] 웹사이트 Argentina – Language and religion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3-02-17
[4] 웹사이트 A Brief History of Italian Immigration in Argentina https://bridgetoarge[...] 2024-02-23
[5] 웹사이트 Immigrati italiani in Argentina per regione (1880–1929) http://www.adsic.it/[...] 2022-02-15
[6] 웹사이트 O.N.I. – Department of Education of Argentina http://www.oni.escue[...] 2023-02-16
[7] 웹사이트 Immigrant Pantry https://bridgetoarge[...] 2024-02-23
[8] 서적 Immigrants in the Lands of Promise: Italians in Buenos Aires and New York City, 1870 to 1914 Cornell University Press
[9] 웹사이트 Arberesh – Comunità Albanesi d'Italia https://www.albaniav[...] 2023-02-11
[10] 웹사이트 Buenos Aires http://www.emigrati.[...] 2023-02-06
[11] 웹사이트 Colectividad Italiana http://www.oni.escue[...] 2011-09-19
[12] 웹사이트 La Argentina y los europeos sin Europa http://www.zingerlin[...] 2014-06-18
[13] 서적 Homogeneidad y nación: con un estudio de caso: Argentina, siglos XIX y XX https://books.google[...] Editorial CSIC – CSIC Press 2023-02-09
[14] 서적 Historias de los Italianos en Argentina Editorial Biblos
[15] 서적 Italy today: facing the challenges of the new millennium Peter Lang Publishing
[16] 웹사이트 Il Giorno del Ricordo https://www.rainews.[...] 2021-10-16
[17] 웹사이트 Ministero dell'Interno http://infoaire.inte[...] 2018-01-14
[18] 웹사이트 Buenos Aires: Rayuela de Cortázar http://www.abc.es/he[...] 2009-03-15
[19] 웹사이트 El aporte de la inmigración italiana en Argentina http://edant.clarin.[...] 2008-08-14
[20] 웹사이트 Observatorio de colectividades: Italiana http://www.buenosair[...] 2023-02-03
[21] 웹사이트 Un retorno postergado: los descendientes de italianos en Argentina buscan el camino de regreso a Europa http://www.altreital[...] 2023-02-03
[22] 웹사이트 Historias de inmigrantes italianos en Argentina http://argentinainve[...] 2011-11-14
[23] 웹사이트 Más de 600 000 ítaloargentinos comienzan a votar en crucial referendo para Renzi http://www.ambito.co[...] 2023-02-08
[24] 웹사이트 La Argentina exportará legisladores a Italia http://www.lanacion.[...] 2023-02-08
[25] 웹사이트 Decreto ministeriale 26 gennaio 2016, n. – Ripartizione del numero dei cittadini italiani residenti nelle ripartizioni della circoscrizione Estero alla data del 31 dicembre 2015 http://www.normattiv[...] 2023-02-08
[26] 웹사이트 Olimpiadas Nacionales de Contenidos Educativos en Internet – Instituto Nacional de Educación Tecnológica http://www.oni.escue[...] 2008-11-13
[27] 서적 Historia de América Latina y del Caribe (1825–2001) LOM Ediciones
[28] 웹사이트 Emigrazione calabrese ed italiana in Argentina http://www.emigrati.[...] 2023-02-11
[29] 웹사이트 Constitución Nacional Nacional – Artículo 25 https://leyes-ar.com[...] 2023-02-11
[30] 웹사이트 Censos digitalizados (ver por año) http://www.deie.mend[...] 2023-02-07
[31] 웹사이트 Población extranjera e italiana en nuestro país según los resultados censales http://www.oni.escue[...] 2023-02-07
[32] 웹사이트 Historia de la inmigración italiana en América del sur http://www.renatabue[...] 2020-05-06
[33] 서적 The Italian Emigration of Our Times https://books.google[...] 2023-02-09
[34] 웹사이트 Federaciones Regionales http://www.feditalia[...] Feditalia.org.ar 2010-04-25
[35] 웹사이트 A integração dos imigrantes italianos no Brasil, na Argentina e nos Estados Unidos http://www.novosestu[...] Novos Estudos 2016-12-30
[36] 웹사이트 Rupturas y continuidades en la experiencia migratoria: inmigrantes italianos de la segunda posguerra en Mendoza https://alhim.revues[...] Amérique latine Histoire et Mémoire. Les Cahiers (ALHIM) 2023-02-07
[37] 서적 Fazer a América: a imigração em massa para a América Latina https://books.google[...] EdUSP 2023-02-09
[38] 웹사이트 Nacionalismo gauchesco ante el inmigrado italiano: el anti-italianismo del gaucho Martín Fierro (Causas socioculturales y modalidades estilísticas) http://www.cervantes[...] 2023-02-08
[39] 웹사이트 Los tanos laburantes http://www.lr21.com.[...] 2023-02-08
[40] 웹사이트 Immigrazione Italiana nell'America del Sud (Argentina, Uruguay e Brasile) http://www.immigrazi[...] 2023-02-16
[41] 간행물 Migration from Southern Italy to Argentina: Calabrians and Sicilians (1880–1930)
[42] 웹사이트 Emigrantes italianos hacia la Argentina por grandes regiones https://web.archive.[...] 2015-06-13
[43] 웹사이트 Appunti sul viaggio in Argentina https://www.jemi.it/[...] 2023-02-11
[44] 웹사이트 Distribución de los italianos en Argentina en 1980 https://web.archive.[...] 2014-09-27
[45] 웹사이트 Italianos en Rosario http://www.tau.ac.il[...] 2023-02-08
[46] 웹사이트 Inmigración italiana en Argentina – Compilado de libros y documentos históricos http://www.alfinal.c[...] 2023-02-09
[47] 웹사이트 Italianos en La Plata https://web.archive.[...] 2023-02-08
[48] 웹사이트 Italiani alla fine del mondo – Ushuaia http://www.lastorias[...] 2016-12-31
[49] 웹사이트 L'emigrazione Italiana in Argentina http://www.emigrati.[...] 2023-02-09
[50] 웹사이트 Cuadro P6. Total del país. Población total nacida en el extranjero por lugar de nacimiento, según sexo y grupos de edad http://www.indec.gov[...] 2016-12-26
[51] 웹사이트 Censo 2010 – Población total nacida en el extranjero por lugar de nacimiento, según sexo y grupo de edad (ver por provincias) http://www.indec.gov[...] 2016-12-26
[52] 문서 Los Mitos de la Historia Argentina Ed. Planeta
[53] 서적 Migration from Southern Italy to Argentina: Calabrians and Sicilians (1880–1930), Cacopardo et al. (1990) Studi Emigr
[54] 웹사이트 Argentina http://www.ethnologu[...] 2015-03-24
[55] 웹사이트 Las relaciones entre la Argentina e Italia http://www.argentina[...] 2023-02-15
[56] 간행물 Cambridge Journals Online – Bilingualism: Language and Cognition – Abstract – Convergence and intonation: historical evidence from Buenos Aires Spanish http://journals.camb[...] 2004-08
[57] 웹사이트 Convergence and intonation: historical evidence from Buenos Aires Spanish http://journals.camb[...] 2023-02-17
[58] 웹사이트 Napolitanos y porteños, unidos por el acento http://www.oni.escue[...] 2023-02-16
[59] 웹사이트 Historia del Lunfardo, con reseñas en periódicos del siglo XIX http://www.agenciael[...] 2014-10-13
[60] 웹사이트 Lunfardo http://lema.rae.es/d[...] 2014-10-13
[61] 뉴스 '"El porteñísimo lunfardo se renueva con palabras del rock y la cumbia"' Clarín 2011-08-21
[62] 웹사이트 Se a Genova c'è la fugassa, a Buenos Aires c'è... la fugazzeta https://www.genovato[...] 2023-01-28
[63] 웹사이트 Nápoles en Boedo: el rincón donde las pastas se cocinan desde hace 90 años http://www.lanacion.[...] 2023-02-13
[64] 웹사이트 Al uso nostro http://www.todotango[...] 2023-02-13
[65] 웹사이트 Los Sorrentinos y sus posibles orígenes https://renatabueno.[...] 2023-01-22
[66] 웹사이트 Raviolis Capresi crujientes a la salsa Pomodoro Receta de josevillalta https://cookpad.com/[...] 2023-01-22
[67] 웹사이트 La ricetta dei Ravioli Capresi: come assaggiare la bellezza dell'isola con il palato https://www.ristoraz[...] 2023-01-23
[68] 웹사이트 Sorrentinos: la historia detrás del origen marplatense https://mardelplata.[...] 2023-01-22
[69] 웹사이트 Sorrentinos de Jamón y Queso (Round Ravioli Stuffed with Ham and Cheese) https://hispanickitc[...] 2018-03-31
[70] 웹사이트 Aregentinian Pasta: Recipes, Restauratnts and Wine Pairings https://therealargen[...] 2011-10-14
[71] 서적 Don't Fry for Me Argentina https://books.google[...] Lulu.com 2023-02-13
[72] 웹사이트 Qué es polenta en argentina https://aleph.org.mx[...] 2023-02-16
[73] 웹사이트 Un plato "polenta" para afrontar el frío http://www.unoentrer[...] 2015-07-03
[74] 웹사이트 Una cultura que se fusionó con las costumbres argentinas http://www.lanacion.[...] 2023-02-13
[75] 웹사이트 Día de la Milanesa: los secretos detrás del imprescindible plato de la cocina porteña https://www.infobae.[...] Infobae 2018-05-03
[76] 웹사이트 Día de la milanesa: cómo se creó uno de los platos favoritos de los argentinos https://www.clarin.c[...] 2015-05-03
[77] 웹사이트 Los argentinos festejan el Día de la Milanesa https://www.lanacion[...] 2017-05-03
[78] 웹사이트 Hoy es el Día de la Milanesa, uno de los platos más típicos y populares de Argentina https://www.eltribun[...] 2020-05-03
[79]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Cheese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80] 웹사이트 Tradicionales sabores toscanos, pero amasados en la Argentina http://www.lanacion.[...] 2009-08-03
[81] 웹사이트 Helado Artesanal : Asesoramiento y Cursos de fabricacion helado artesanal. Franquicias https://web.archive.[...] 2015-03-24
[82] 웹사이트 La cocina italiana en Argentina http://www.argentina[...] 2016-12-30
[83] 웹사이트 ¿Por qué los argentinos comen ñoquis el 29 de cada mes y qué tiene que ver eso con los empleados públicos? https://www.bbc.com/[...] 2021-07-19
[84] 웹사이트 Ñoquis el 29 https://www.latercer[...] 2012-05-03
[85] 웹사이트 El ñoquis de cada 29 https://www.ultimaho[...] 2015-11-29
[86] 웹사이트 Los ñoquis del 29 http://www.alimentac[...] 2023-02-14
[87] 웹사이트 Ñoquis del 29: origen de una tradición milenaria https://www.infobae.[...] 2004-07-29
[88] 웹사이트 Por qué se celebra hoy el Día del Inmigrante Italiano https://web.archive.[...] 2023-02-03
[89] 웹사이트 La otra Usina, la que sí da luz http://www.clarin.co[...] 2014-09-01
[90] 웹사이트 Edificios de la Ítalo http://www.ibr.com.a[...] 2023-02-04
[91] 웹사이트 Texto íntegro del relato original de Edmundo de Amicis.
[92] 서적 Cine argentino: modernidad y vanguardias, 1957/1983 Fondo Nacional de las Artes, 2005
[93] 서적 Un diccionario de films argentinos (1930–1995) Editorial Corregidor
[94] 웹사이트 La inmigración italiana y el tango http://www.todotango[...] 2023-02-04
[95] 웹사이트 "L'archivio dimenticato dell'Unione e Benevolenza di Buenos Aires: un tesoro per lo studio dell'associazionismo italiano in Argentina" https://revistas.unc[...] 2023-02-04
[96] 웹사이트 Federaciones Regionales https://web.archive.[...] 2014-10-13
[97] 웹사이트 Le sedi della Società Dante Alighieri divise per paese http://www.ladante.i[...]
[98] 웹사이트 Com.It.Es. http://maierosario.c[...] 2017-01-03
[99] 웹사이트 Scuole Paritarie Italiane All'estero https://web.archive.[...]
[100] 웹사이트 "L'eco d'Italia cambia Direttore" https://www.italiani[...] 2023-02-11
[101] 웹사이트 "Giornali italiani all'estero, L'Italiano sarà il quarto quotidiano d'Argentina" https://www.italiach[...] 2023-02-11
[102] 서적 Moving With the Ball: the migration of professional footballers Berg
[103] 웹사이트 Potenza Picena, il paese dei tarocchi. Ma i passaporti sono tutti in regola http://www.ilrestode[...] 2009-02-2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