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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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수의 무덤은 예수의 시신이 묻혔다고 여겨지는 장소를 의미하며, 기독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은 후 무덤에 매장되었고 부활 후 승천했다. 현재 예루살렘에는 성분묘 교회와 정원 무덤 등 여러 장소가 예수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각기 다른 기독교 종파에서 관리하거나 신성시한다. 이 외에도 탈피오트 무덤, 로자 발, 신고촌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예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존재하며, 예수의 생존 및 이주설과 관련된 주장도 제기된다. 예수의 유해를 둘러싼 이야기는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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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무덤 | |
|---|---|
| 위치 정보 | |
| 기본 정보 | |
| 명칭 | 예수의 무덤 |
| 다른 이름 | 성묘 무덤 정원 탈피오트 무덤 |
| 종교적 의미 | |
| 기독교 | 예수 매장 장소 부활 장소 (일부 기독교 신앙) |
| 위치 | 예루살렘 (전통적인 위치) 신고무라 (일본 전승) |
| 관련 성경 구절 | 마태오 복음서 27:57-61, 28:1-10 마르코 복음서 15:42-47, 16:1-8 루가 복음서 23:50-56, 24:1-12 요한 복음서 19:38-42, 20:1-18 |
| 무덤 위치 논쟁 | |
| 전통적인 위치 | 성묘 교회 (예루살렘) |
| 다른 위치 주장 | 무덤 정원 (예루살렘) 탈피오트 무덤 (예루살렘) 신고무라 (일본) |
| 성묘 교회 정보 | |
| 위치 | 예루살렘 |
| 기원 | 4세기 |
| 중요도 | 기독교의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 |
| 관리 | 다양한 기독교 교파 (공동 관리) |
| 일본의 예수 무덤 전설 | |
| 위치 | 신고무라 (일본) |
| 내용 |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피하고 일본으로 도망쳤다는 전설. 일본에서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고 106세까지 살았다고 함. 신고무라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 |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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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서 및 정통 기독교
예루살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라고 믿어지는 곳이 두 곳 있다. 전승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 헬레나가 326년 경 예루살렘을 방문해 당시 비너스 신전이 있던 땅을 무덤으로 비정했다. 이 신전을 무너뜨리고 지은 것이 현재 정교회, 비칼케돈파, 가톨릭교회 등이 공동 관리하는 성분묘 교회이다.
그러나 '헤브루인들에게 보낸 편지'(13:12)의 기록 등으로 처형장이 성벽 밖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나와, 성공회 등은 성벽 밖에 있는 '원의 무덤(Garden Tomb)'을 예수의 무덤으로 믿고 있다.
이 두 곳 모두 그리스도의 유해는 없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어 매장되었지만 부활하여 40일 후에 하늘로 승천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매장된 장소는 존재하지만, 유해는 지상에 남아 있지 않다.[1] 가톨릭교회에서는 중세에 그리스도의 성유물 숭배가 활발히 행해졌다. 예를 들어 성십자가로 여겨지는 물질은 빠른 시기부터 각지의 교회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사망하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어진다.
2. 1. 성서의 기록
『요한의 복음서』(공동번역 19:41-42)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 아직 아무도 장사 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그 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거기에 모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23] 성서상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예수는 골고타 언덕에서 처형된 후 3일 후에 부활할 때까지 형장 근처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24]2. 2. 정통 기독교의 관점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후 매장되었지만 부활하여 40일 후에 하늘로 승천했다고 여겨진다.[1] 따라서 매장된 장소는 존재하지만, 유해는 지상에 남아 있지 않다.[1] 정교회, 비칼케돈파, 가톨릭교회 등이 공동 관리하는 성분묘 교회는 예수의 매장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지로 여겨진다.[1]3. 예수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장소들
역사적으로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되는 여러 장소들이 존재한다.
- 성묘 교회: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위치한 교회로, 4세기부터 십자가형 장소인 갈보리와 예수가 묻혔다가 부활한 무덤이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3][5] 2016년에는 예수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석회암 석판을 덮고 있던 대리석 덮개가 복원 및 청소를 위해 일시적으로 제거되기도 했다.[6]
- 정원 무덤: 1867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암석 무덤으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이곳을 예수의 무덤으로 믿는다. 그러나 고고학자 가브리엘 바르카이는 이 무덤이 기원전 8~7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9]
- 탈피오트 무덤: 1980년 예루살렘 동부 동탈피오트에서 발견된 암굴 무덤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비문이 새겨진 납골함이 발견되어 논쟁이 일었다.[10] 학자들은 이 무덤의 예수가 나사렛 예수와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11]
- 로자 발: 인도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에 있는 사당으로, 현지인들은 유자사프라는 현자의 무덤으로 알고 있다.[12][13][14][15][16] 그러나 아흐마디야 무슬림 공동체는 이곳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17]
- 신고: 일본 아오모리현에 있는 마을로, "예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예수의 동생 이스키리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예수는 일본으로 건너와 106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19][20][21][22]
3. 1. 성묘 교회 (예루살렘)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기독교 구역에 있는 성묘 교회는 4세기부터 기독교에서 가장 신성한 두 곳, 즉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장소인 갈보리(또는 골고다)와, 예수가 묻히고 부활했다고 믿는 예수의 빈 무덤이 있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3][5]성묘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으로 믿어진다.[24] 이 장소가 예수의 묘지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삼은 4세기 이후의 일이다.[25] 유대 전쟁 때 일어난 70년의 예루살렘 공방전 이후,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130년에는 하드리아누스가 이곳에 새로운 도시인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를 건설했다. 유피테르와 베누스 신전을 건설하기 위한 토대로서, 시내에 있던 암굴 무덤은 메워졌다.[26][27]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지지하기 시작하여 기독교를 공인했다. 예루살렘 주교였던 Macarius of Jerusalem|마카리우스영어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황제에게 그리스도의 묘지를 발굴할 허가를 요청했고,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를 허락했다. 이 지점이 예수의 묘지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문헌학적·고고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지만, 에우세비우스의 『Onomasticon (Eusebius)|오노마스티콘영어』에 따르면, 골고다 언덕의 대략적인 위치는 4세기 당시 잘 알려져 있었고, 그리스도의 무덤 위치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짐작이 가능했을 수 있다.[25] 에우세비우스와 마카리우스에 의해, 묘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3개의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가 실제로 사람을 치유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형에 사용된 성 십자가로 여겨졌고, 로마인들 또한 이 장소가 그리스도의 묘지임을 확신했다.[28][29] 326년경, 이 장소에 세워져 있던 신전은 철거되었고, 그 지하에서 묘지가 발견되었다. 마카리우스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인정했다.[30][31][32][33] 묘지의 발견 후, 즉시 성묘 교회의 건설이 이루어졌다.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쳤지만, 성묘 교회는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 중 하나가 되었다.[25]
2016년 10월 26일, 예수가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눕혀졌다고 여겨지는 원래의 석회암 슬래브를 보호하는 대리석 덮개가 복원 및 청소를 위해 임시로 제거되었다.[6]
현재 정교회, 비카르케돈파, 가톨릭교회 등이 공동 관리한다.
3. 2. 정원 무덤 (예루살렘)
정원 무덤은 1867년에 발굴된 예루살렘의 암석 무덤으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이곳을 예수의 무덤으로 여긴다. 이 무덤은 이스라엘 고고학자 가브리엘 바르카이에 의해 기원전 8~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었다.[9]

성묘 교회가 성벽 안에 있다는 점이 성서의 묘사와 다르다는 것을 근거로, 다마스쿠스 문 북쪽에 위치한 원의 무덤을 그리스도의 묘소로 비정하는 의견도 있었다.[24] 성서학자인 에드워드 로빈슨은 1841년에 간행한 『팔레스타인의 성서학적 연구』에서 성묘 교회가 실제 그리스도의 묘소라고 볼 근거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대체지를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십자가형이 야파 혹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근처에서 행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34] 독일의 신학자 오토 테니우스는 1842년, 로빈슨의 주장에 따라 다마스쿠스 문 북쪽에 있는 바위산이 골고다 언덕이라고 주장했다.[35] 미국의 실업가이자 유니온 신학교의 창설자 중 한 명인 피셔 하우도 같은 결론을 내렸고,[36][37][38] 영국 육군 공병 중위 클로드 르니에 콘더도 이 장소가 골고다임을 주장했다.[34][39]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영국 육군 군인 찰스 고든도 이 주장을 지지했다.[42][40]
1867년, 골고다 언덕으로 추정된 곳 근처에서 현지 농부가 묘소 유구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후에 "원의 무덤"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74년,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현지 상황을 과학 잡지에 기고했던 콘라드 쉬크가 서양에 이 발견을 알렸다. 1883년, 고든은 콘더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조사했고, 이 묘소를 그리스도의 묘소로 특정했다.[40] 1892년에는 영국의 기독교 관계자들이 이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했다. 캔터베리 대주교와 솔즈베리 주교 등이 지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41] 1984년에는 ''The Garden Tomb Association''가 이 부지를 매입했다.[43]
그러나 묘지의 양식이 기원전 8세기경의 것이라는 점, 성묘 교회의 입지도 로마 제국 시대에는 성벽 바깥에 있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원의 무덤이 그리스도의 묘소일 가능성은 대체로 배제되고 있다.[24][42] 원의 무덤을 관리하는 ''The Garden Tomb Association'' 또한 "여기가 실제로 구세주가 묻힌 묘지인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계신 구세주를 만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43]
3. 3. 탈피오트 무덤 (예루살렘)
탈피오트 무덤은 1980년 예루살렘 동부 동탈피오트 지역에서 발견된 암굴 무덤이다.[10] 무덤 안에는 10개의 납골함이 있었고, 그 중 6개에는 금석학적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중 하나는 "예슈아 바르 요세프"("요셉의 아들 예수")로 해석될 수 있지만, 비문이 부분적으로 해독 불가능하여 번역과 해석에 대해 논쟁이 있다.[10]학자들은 탈피오트의 예수(이것이 실제로 그의 이름이라면)가 나사렛 예수와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11] 탈피오트의 예수에게는 유다라는 아들이 있었고(그 옆에 묻혔다), 무덤은 부유한 유대인 가족의 것으로 보이지만, 예수는 낮은 계급의 갈릴리 가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다.[11]
1996년에 발굴 조사 보고서가 정리되었지만, 널리 주목받지 못했다. 2004년에 영화 감독이자 저널리스트인 심차 야코보비치가 재조사를 하고, 제임스 캐머런이 조사에 참여하면서 미디어에 다루어지게 되었다.[45]
3. 4. 로자 발 (인도 카슈미르)
인도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에 있는 로자 발은 현지인들에게 유자사프라는 현자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12][13][14][15][16] "로자"는 무덤을, "발"은 장소를 뜻한다.[47][48][49][50][51] 그러나 아흐마디야 무슬림 공동체는 이곳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논쟁거리이다.[17] 아흐마디야 운동의 창시자인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는 1899년에 이곳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54]
오늘날 아흐마디들은 이 견해를 유지하고 있지만,[53] 사당의 지역 수니파 관리인들은 이를 거부하며 "지구상 어디에든 예수가 묻혀 있다는 이론은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말했다.[18] 묘를 관리하는 이슬람교 수니파의 현지 주민들은 이 묘가 예수의 무덤이라는 설은 관광을 위해 조작된 거짓이라고 말한다.[52][53]
뉴욕에 거주하는 작가인 수잔 올슨은 유해에 대한 DNA 검사를 시도했지만, 묘의 관리자는 이 시도를 "이슬람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잠무 카슈미르 주 경찰에 호소했고, 올슨은 주에서 강제 퇴거당했다.[52] 2010년, 이 묘에 대한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되었다.[53]
3. 5. 신고촌 (일본 아오모리현)
1935년 아오모리현 헤라이 촌(현재 산노헤군 신고촌)을 방문한 타케우치 키요마로는 타케우치 문서를 근거로 '십래총'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61] 타케우치 문서에 따르면, 예수는 고르고다의 언덕에서 처형되지 않았고 남동생 이스키리[62]가 대신 죽었으며, 예수는 일본으로 건너와 죽었다고 한다.[61] 그러나 타케우치 문서는 많은 연구자로부터 위서로 단정되고 있다.

이후 '고대사서 연구회'는 헤라이마을의 촌명이 헤브라이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고,[63] 카와모리타 에이지는 현지 전승 노래인 나냐드야라가 야훼를 기리는 헤브라이어 노래라는 서신을 보냈다.[64] 또한, 이 마을 옛집의 가문은 도라지문과 비슷한 오각형이며, 유대교의 상징인 육각성(다윗의 별)과 아주 비슷하다고 하여 이스라엘이 없어진 10씨족이나 예수와의 관계를 추정하기도 한다.[65] 헤라이 초등학교 교장은 다윗의 별과 같은 형태의 롱목을 사용하며, 아이의 이마에 건강을 기원하며 먹으로 검은 십자가를 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65]
도쿄대학 조사에 따르면, 아키타현에서 코카소이드로 추정되는 EU 타입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는데,[66] 이는 일유동조론의 증거가 될 수 있지만, 학술적 근거는 부족하다.
야마네 키쿠는 저서 '빛은 동방에서'[67]에서 토와다코 논두렁의 토와리 산(헤라이 산)에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했다.[68]
신고 마을에는 예수가 마지막으로 안식을 취한 장소로 추정되는 "예수의 무덤"이 있고, 예수의 마지막 후손인 사와구치 가문이 살고 있다.[19] 사와구치 가문에 따르면, 예수는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고 동생 이스키리[20]가 대신 죽었으며, 예수는 시베리아를 거쳐 무쓰국으로 도망쳐 토라이 토라 다이텐쿠라는 이름으로 쌀 농사를 지으며 106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21][22]
"예수의 무덤"은 1935년 황조황태신궁천진교 교주 다케우치 기요마로 등에 의해 "발견"되었다.[56] 토리야 하잔은 일본 초고대 문명의 존재를 믿고 도라이촌(현 신고촌)이 고대 신도였다고 결론 내렸다. 다케우치 등은 도라이촌에 있던 묘가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56] 이 설은 역사적 맥락이 없는 주장이었지만, 전쟁 전과 전쟁 중에는 다케우치 신봉자들을 중심으로 일정 지지자를 모았다. 1970년대 오컬트 붐 이후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매년 6월 "예수 축제"가 열린다.[56]
4. 기타 전승 및 주장
예수는 십자가형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다. 정통 기독교 신앙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하여 승천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이단으로 간주된다.[56]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인도의 카슈미르, 프랑스 남부, 일본 아오모리현 신고 마을 등을 예수의 마지막 행선지로 언급한다.
- 인도 카슈미르: 카슈미르에는 '유스 아사프'라는 이름이 새겨진 무덤이 있으며, 이 무덤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슬람교계 신종교 아흐마디야는 예수가 인도를 방문했고 카슈미르에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12][13][14][15][16]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는 ''Masīh Hindustān Meiń'' (Jesus in India영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카슈미르 지역 수니파 관리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며 강하게 부인한다.[18]
- 일본 신고 마을: 일본 아오모리현 신고 마을에는 "예수의 무덤"(キリストの墓|Kirisuto no haka일본어)이 있다.[19] 이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고 동생 이스키리가 대신 죽었으며, 예수는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와 106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21][22] 이 무덤은 1935년 황조황태신궁천진교 교주 다케우치 기요마로 등에 의해 "발견"되었다.[56]
그러나 이러한 예수 생존 및 이주설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며,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다.
4. 1. 남프랑스 렌르샤토

프랑스의 작가 제라르 드 세드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렌 르 샤토에 수수께끼의 보물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저서를 발표했다. 니콜라 푸생의 유명한 그림인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에 그려진 풍경과 묘비와 흡사한 것이 렌 르 샤토 근처에 실제로 존재했다.[59] 1970년대 세드의 저작 이후 이 지역은 보물을 노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는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오는 사람도 있었기에, 결국 이 묘비는 소유자가 철거해 버렸다.
영국의 텔레비전 작가 헨리 링컨 등은 이를 추적하여 BBC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방영했을 뿐만 아니라, 『렌 르 샤토의 수수께끼』를 저술했다. 묘비의 비문에는 "ET IN ARCADIA EGO"라고 적혀 있다. 이 비문은 푸생에 앞서 1621년-1623년의 과르치노의 그림에도 있으며, "나 또한 아르카디아에 있다" 등으로 해석된다(→니콜라 푸생). 링컨 등은 이것이 애너그램이며, "I TEGO ARCANA DEI"(물러가라! 나는 신의 비밀을 숨겼다)라고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신의 비밀"로서 링컨 등은 예수의 혈통을 상정하고, 시온 수도회가 그것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예수의 무덤이 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리처드 앤드루스와 폴 셸렌버거도 이를 추적하여 문제의 그림은 예수의 무덤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근처 산중에 그 위치를 추정했다.
이 지역은 옛 기독교 이단 카타리파의 거점이었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카타리파는 13세기 전반에 알비 십자군에 의해 괴멸되었지만, 그들이 그 비밀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4. 2. 예수의 생존 및 이주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른 땅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다. 정통 기독교 신앙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하여 승천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이단으로 간주된다.[56]예수의 생존 및 이주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도의 카슈미르 지방, 프랑스 남부, 일본 아오모리현 신고 마을 등을 예수의 마지막 행선지로 언급한다.
- 인도 카슈미르: 카슈미르에는 '유스 아사프'라는 이름이 새겨진 무덤이 있으며, 이 무덤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슬람교계 신종교 아후마디야는 예수가 인도를 방문했고 카슈미르에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12][13][14][15][16]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는 ''Masīh Hindustān Meiń'' (Jesus in India영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카슈미르 지역 수니파 관리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며 강하게 부인한다.[18]
- 프랑스 남부: 니콜라 푸생의 그림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에 묘사된 묘석의 비문을 아나그램으로 해석하여 'I TEGO ARCANA DEI'(떠나라 나는 신의 비밀을 숨겼다)라는 문구를 도출하고, 이를 예수의 혈맥과 관련된 비밀로 해석하는 주장이 있다. 이 지역은 과거 기독교 이단 카타리파의 거점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59]
- 일본 신고 마을: 일본 아오모리현 신고 마을에는 "예수의 무덤"(キリストの墓|Kirisuto no haka일본어)이 있으며, 이곳이 예수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19] 이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고 동생 이스키리가 대신 죽었으며, 예수는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와 106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21][22] 이 무덤은 1935년 황조황태신궁천진교 교주 다케우치 기요마로 등에 의해 "발견"되었다.[56]
그러나 이러한 예수 생존 및 이주설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며,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배치되는 주장이다.
5. 예수의 유해를 둘러싼 작품
1983년 미국의 작가 리처드 벤 사피아는 1968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책형의 흔적이 있는 인골에서 힌트를 얻어 소설 ''The Body''를 발표했다.[69] 소설 속에서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유골에는 아람어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힌 점토판이 걸려 있었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골이라면 부활과 승천 교리가 뒤집힐 것을 우려한 바티칸과 이스라엘,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적 의도가 얽히는 내용이다.[69] 이 줄거리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에도 영향을 주었다.[69] ''The Body''는 2000년에 미국과 이스라엘 합작으로 영화화되었다.
미국의 다니엘 이스터먼의 소설 '무덤의 결사'(1992)도 1968년의 발견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이며, 가톨릭 교회의 어두운 역사와 바티칸 내부의 권력 투쟁을 그리고 있다.[69]
참조
[1]
웹사이트
Exclusive: Age of Jesus Christ's Purported Tomb Revealed
https://web.archive.[...]
2017-11-28
[2]
웹사이트
The Little-Known Legend of Jesus in Japan
https://www.smithson[...]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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