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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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병언은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기업 활동과 사진작가 활동을 했다. 1970년대 삼우무역을 인수하여 세모 그룹을 설립, 해운업 등에 진출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로 파산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졌으며,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2014년 도피 중 순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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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병언은 1941년 일제강점기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광복 후 대한민국 대구에 정착하여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뛰어난 손재주와 몰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20살에 성경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깨달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성광고등학교 졸업 후,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던 중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성경학교를 수료하고, 1962년 권신찬 목사와 선교 사역을 함께 했다. 그는 권신찬 목사의 딸과 결혼했다. 1972년 극동방송 부국장 자리에 올랐으나, 1976년 신학적 비판으로 계약이 해지되었다. 1981년 권신찬은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정식 교단으로 발족했지만, 유병언은 평신도복음선교회의 지위를 고집했다.

1976년 삼우무역을 인수하며 기업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하여 건강식품, 선박제조, 자동차부품, 건설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1986년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했지만, 1990년 마포대교에서 유람선 침몰 사고로 직원 1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1991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횡령배임죄로 징역을 살았다. 1995년 세모해운을 설립하여 대한민국 최대 연안여객선업체로 성장시켰으나, 1997년 부도 처리됐다. 이후 기업 활동을 중단하고 대한민국에서 행방이 묘연했다.

"아해"(Ahae)라는 이름으로 사진작가 활동을 하며,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프라하 국립 미술관, 베르사유 궁전 등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배임 혐의 등으로 지명 수배되었고,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1. 어린 시절

유병언은 1941년 2월 11일 일제강점기 일본 교토에서 한국인 부부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에 정착하였다. 그는 열두 살 즈음, 한국의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을 묘사한 한 시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시조에서 처음으로 어린아이라는 뜻의 옛말인 ‘아해’라는 단어를 접하고 훗날 자신의 예명으로 삼았다. 학창 시절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지 몰두하는 성격과 함께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는 평을 들었고, 이러한 손재주가 훗날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살 되던 해 성경에서 기독교신앙을 깨우침으로써 큰 전환점을 맞이하였고, 그 후 그의 예술적, 환경적, 기업가적인 노력에는 그의 신앙이 줄곧 밑거름이 되었다.

2.2. 기업 활동

유병언은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경찰은 박순자라는 여성이 약 89(약 8.7)을 사기 혐의로 수사했다. 1987년 8월 29일, 박순자와 그녀의 세 자녀를 포함한 32명의 종교 신도들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집단 자살로 종결했다. 1991년 7월 10일, 이 사건은 재수사되었고, 유병언은 1992년에 교회 신도들로부터 12(약 1.15)을 모금하여 그의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직원 중 한 명과 공모한 혐의로 "종교의 탈을 쓴 상습적인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고 4년의 징역형을 살았다. 2014년 11월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방검찰청은 5월에 유병언과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후 유병언은 한강 유람선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를 경영했다. 1990년대에는 세모 그룹을 설립, 한때 조선 및 건설, 유람선, 해운 등에 진출할 정도로 규모를 확대했다. 그러나 한강 유람선 사고로 경영난에 빠져 1997년에 부도를 내고 파산했다. 1999년청해진해운을 설립하여 실질적 오너가 되었다.

국외에서는 "한국의 억만장자 사진 작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캘린더로 만들어 관련 회사에 사게 하는 등 활동을 했다. 사진 작가로서는 "아해"(Ahae)라는 변명을 사용하며, 베르사유 궁전 등 사용을 위해 거액의 기부를 하기도 했다.

2.2.1. 삼우무역 인수와 세모그룹 창립

1976년 봉제완구 제조 및 수출업체인 삼우무역(三友貿易,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하여 기업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유병언은 1979년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 건강식품, 선박제조, 자동차부품, 건설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세모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구약성경 출애굽기유대인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뒤집었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세모측은, 안정감을 주는 모든 도형의 기초인 삼각형을 의미한다고 밝혔고, 실제로 세모의 로고는 여러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6년에는 선박 사업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하여 주목을 받았다. 1990년 선착장에 정박중이던 세모 유람선 2척이 태풍으로 떠내려온 원광 유람선과 충돌, 표류하다가 마포대교 교각을 들이받고 침몰하여 유람선을 정박하던 세모 직원 1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기도 하였다.

1991년 5월에는 한강유람선 사고의 책임으로 배상을 감당하지 못하여 한강 유람선 사업에서 철수한 원광해운 유람선 2척을 인수하여 한강 유람선을 독점 운항하게 되었다. 1995년에는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분사시켜 자회사 세모해운을 설립하고 서해안과 남해안 20여개 항로에 총 27척의 여객선과 화객선을 운항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연안여객선업체로 성장시켰으나 이후 무리한 투자 후유증으로 경영난을 겪다가 1997년 부도 처리됐다. 이후 유병언은 대외적으로 기업 활동을 중단하였고,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유병언은 목사로 재직하던 중 1976년, 부도난 섬유 회사 삼우무역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1978년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이 회사를 장난감 제조 및 수출 회사로 전환했다. 1979년, 지주 회사인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하면서 해운업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해운, 조선, 국내 여객선 사업, 전자, 부동산, 화장품, 페인트, 봉제 완구, 컴퓨터 및 다양한 다른 사업 분야로 확장되었다. 세모는 1988년 하계 올림픽이 열리기 2년 전인 1986년, 서울의 한강에서 여객선 운항을 시작했다.

2.2.2. 세모그룹 부도 이후

1990년까지 세모(Semo Corp.)는 1,800명의 직원을 고용했지만, 여객선 사업은 해상 사고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에는 세모 직원 14명이 한강에서 유람선이 다른 배와 충돌하면서 사망했다. 회사는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았다. 세모는 1994년까지 30척의 선박을 운영하면서 최대 여객선 운영 업체로 성장했으며, 한때 3,000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했다.

세모 그룹은 일련의 대대적인 스캔들 이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속에서 3000 (약 294) 이상의 부채를 안고 파산을 신청했으며, 사업 다각화가 현금 흐름 부족을 초래하여 부채가 증가했다고 파산 보호 신청서에서 밝혔고, 청산되었다.

세모의 파산 이후, 유병언 일가는 다른 회사들의 이름으로 여객선 사업을 계속 운영했으며, 그중 하나가 결국 청해진해운이 되었고, 인천과 제주를 잇는 여객선 사업의 독점 사업자가 되었다.

청해진해운 주식회사(Ltd.)는 1999년 2월 24일에 설립되었는데, 이는 법원이 파산한 세모의 구조 조정을 승인하기 하루 전이었으며, 세모해운이 보유한 선박과 자산을 인수하여 세모의 해운 사업을 합병하는 핵심 기업이 되었고, 부채는 탕감되었다.

세모 그룹의 계열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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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비고
주식회사 세모
아이원아이홀딩스청해진해운의 지주회사
천해지조선업체. 청해진해운 지분 39.4% 보유
청해진해운
문진미디어
아해 (전석케미칼)아해프레스프랑스
트라이곤코리아
이찌고 징글벨랜드
천초밭영농조합법인
놀문제이 쇼핑
다판다
SLPLUS
국제영상
온지구
온나라
셈리
몽테크리스토 카페
다이아 앤 골드
드보브 에 갈레 코리아
달마에나가

2.3. 사진작가 활동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지주 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 계열사 명단에 아해(AHAE)라는 이름의 도료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었고, 아이원아이홀딩스 대주주인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가 아해 국제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프레스'의 대표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아해'라는 인물이 유병언과 동일인물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었고, 이는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병언은 아해(Ahae, 아해한국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로 자신을 전시하고 홍보했다.

1991년 4년간 투옥되며 감옥의 창문 너머로 새들이 가장 굵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슬기롭게 둥지를 튼 모습을 보았고, 2009년 도심을 벗어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창문 밖의 풍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보게 된 다양한 풍경들을 사진에 담았고, 'Through My Window'(내 창을 통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매일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연을 330만 장의 사진에 담았다. 촬영 장소는 유병언이 거주했던 서울 남쪽 안성시 동쪽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속 공동체 "금수원"(Geumsuwon, 금수원한국어)이었다.

"내 창을 통해"(Through My Window)는 2011년 4월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밴더빌트 홀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이후 순회 전시 형식으로 유럽에서 프라하 국립 미술관, 런던의 클래런스 하우스 정원, 랭커스터 하우스, 큐 왕립 식물원, 모스크바의 Vremena Goda 갤러리, 피렌체의 알리나리 국립 사진 박물관, 베네치아의 마가지니 델 살레(Magazzini del Sale)에서 전시되었다.

2012년 6월부터 8월까지 "내 창을 통해"(De ma fenêtre)는 파리 튈르리 정원에 세워진 4층 맞춤형 전시관에서 전시되었는데, 이는 행정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부속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를 위해서 유병언은 110만 유로(약 1600)를 기부했고 베르사유 궁전 분수 재단장 사업비 140만 유로(약 2000)을 부담한 것이 밝혀졌다.


2013년 6월 25일부터 9월 9일까지 베르사유 궁전의 오랑제리 홀에서 열린 "특별한 창"(Fenêtre sur l'extraordinaire) 전시에서 아해는 베르사유 정원#정원의 보스케의 테아트르 도(Bosquet du Théâtre d'Eau) (워터 시어터 그로브) (fr)의 유일한 후원자였으며, 1400(약 1900)를 기부했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 등 유럽 각지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면서 런던 교향악단을 초청하는 등 주목받았으나, 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는 전시 성사를 위해서가 아닌, 전시 성사 후 감사 표시의 기부금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2.4. 종교 활동

유병언은 1961년부터 복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사업가이자 발명가로 활동했다. 유병언은 미국과 영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설립한 기쁜소식선교회 성경 학교에 입학했지만, 퇴학당했다. 1962년, 그는 장인인 권신찬 목사(1923-1996)와 함께 대한예수교침례회(구원파)를 설립했다. 이 교회는 1992년에 보수적인 기독교 교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생전에 유병언은 "인류가 곧 멸망한다"며 종말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는 목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이끄는 종교 단체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들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3. 세월호 침몰 사고와 유병언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고 이후 대한민국 최악의 해상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했다.

사고 수사 과정에서 유병언은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매월 10의 급여와 자문료를 받으며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검찰은 유병언과 그의 장남 유대균을 소환 조사하려 했으나, 이들은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경기도 안성시 소재 기독교복음침례회 연수원인 금수원에 잠적했다가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금수원에 진입하기 전에 빠져나왔다.

이에 검찰은 유병언과 유대균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공개 수배하고, 총 80의 현상금을 걸었다. 이후 현상금은 대한민국 형사범 사상 최고액인 600(유병언 500, 유대균 100)으로 인상되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의 대한민국 도입 및 증축 과정에서 유병언이 개인 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복원성 문제를 보고받자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김한식 사장은 '오하마나호나 세월호 중 하나를 팔고 화객선을 구입하자'는 의견을 보고했고, 유 전 회장은 '선령이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했을 뿐, 세월호 매각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 별장 근처에서 발견된 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됨에 따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3.1.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논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유병언이며,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유병언 몰이에 가세하였으나, 이는 결국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고,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실소유주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 전 회장은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청해진해운 뿐만 아니라 유병언 전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알려진 주식, 재산들도 재판을 통해 '이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되었다.

이에 따라 구상권 청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유병언 전 회장의 경우 사망한 채 발견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났으며, 2019년 2월 최근 대법원도 유대균 씨에 대하여 정부측 구상권 청구에 대하여 상고 기각 판결하였다. 이를 의식했는지 세월호 실소유주라고 보도했던 언론사에서도 정정보도를 하는 등 최근에는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이라는 표현 대신 세모그룹 전 회장 유병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세모 그룹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속에서 3000 (약 294) 이상의 부채를 안고 파산을 신청했으며, 사업 다각화가 현금 흐름 부족을 초래하여 부채가 증가했다고 파산 보호 신청서에서 밝혔고, 청산되었다.

세모의 파산 이후, 유병언 일가는 다른 회사들의 이름으로 여객선 사업을 계속 운영했으며, 그중 하나가 결국 청해진해운이 되었고, 인천과 제주를 잇는 여객선 사업의 독점 사업자가 되었다.

청해진해운 주식회사(Ltd.)는 1999년 2월 24일에 설립되었는데, 이는 법원이 파산한 세모의 구조 조정을 승인하기 하루 전이었으며, 세모해운이 보유한 선박과 자산을 인수하여 세모의 해운 사업을 합병하는 핵심 기업이 되었고, 부채는 탕감되었다.

3.2. 횡령·배임 등 범죄 혐의

유병언은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매월 1,000만 원의 급여와 자문료를 받으며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검찰은 유병언과 그의 장남 유대균을 소환 조사하려 했으나, 이들은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금수원에 잠적했다가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금수원에 진입하기 전에 빠져나왔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청해진해운 회장)에 대해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발부받았고, 총 8,000만 원의 현상금을 걸고 공개 수배하였다. 이후 현상금은 대한민국 형사범 사상 최고액인 6억 원(유병언 5억, 유대균 1억)으로 인상되었다.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의 대한민국 도입 및 증축 과정에서 유병언이 개인 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복원성 문제를 보고받자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김한식 사장은 '오하마나호나 세월호 중 하나를 팔고 화객선을 구입하자'는 의견을 보고했고, 유 전 회장은 '선령이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했을 뿐, 세월호 매각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됨에 따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추징보전명령이 내려진 유 전 회장의 동결 자산도 추징하기 어려워졌다. 국회에서는 ‘유병언법’으로 불리는 ‘범죄 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입법을 시도했지만, 이 법이 통과되어도 유 전 회장 일가가 관여한 법인 자산 대부분이 금융권 담보대출 등으로 묶여 있어, 정부가 추징할 수 있는 금액은 4,000억~6,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구조·수습·인양 비용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유병언은 사망 전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소유주" 또는 "사실상 소유주"로 널리 묘사되었으며, 청해진해운의 전 회장이었다. 그러나 유병언의 변호사 손병기는 유병언이 "청해진해운 또는 그 자회사와 재정적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고, 유병언의 미국 홍보 담당자인 아해프레스(Ahae Press Inc.)는 "[유병언]은 청해진해운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지분을 전혀 소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무 서류를 통해 유병언이 해운 회사에 지분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유병언은 청해진해운을 부분적으로 소유한 일가의 수장이었으며, 복잡한 상호 출자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두 아들 유대균(유대균한국어; 1970년경 출생)과 차남 유혁기는 투자 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I-One-I Holdings)의 과반수 지분과 13개의 비상장 자회사를 통해 해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 자회사들은 소유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서로를 소유하는 형태로, 검찰은 이를 피라미드 형태라고 묘사했으며, 궁극적으로 유병언의 두 아들과 그의 친구 7명이 지배하고 있다. 재벌 기업 분석 웹사이트인 재벌닷컴의 편집장 정선섭은 "자녀나 측근을 통해 이런 식으로 그림자 경영을 하는 것은 재벌 기업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천지방검찰청 수사팀은 청해진해운 본사, 계열사 20여 곳, 그리고 서울 용산구에 있는 기독교복음침례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종교 단체 신도들의 자금이 청해진해운과 유병언의 사업 운영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의심했다. 검찰은 유병언의 종교 단체 신도들이 설립하고 운영한 100개 이상의 유령 회사가 유병언과 그의 두 아들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최소 1000(~97.1)을 지급하고, 유병언이 찍은 사진을 구매한 사실을 밝혀냈다. 유병언의 종교 단체는 여객선 운영사의 계열사들과의 국외 거래를 부인했다. 검찰은 유병언이 2010년 4월 종교 신자들에게 한 강연의 동영상을 확보했는데, 이 동영상에서 유병언은 타인 명의로 재산을 등기했음을 인정했다.

유대균과 유혁기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만약 법적 책임이 있다면, 소유주들은 피해자 보상에 도움이 되도록 재산과 자산을 기꺼이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병언의 장녀 유섬나(유섬나한국어; 1966년 출생)는 검찰에 여러 차례 소환되었으나, 검찰의 수사를 피해 다녔다. 그녀는 뉴욕 파크 애비뉴와 서울에 사무실을 둔 실내 디자인 및 컨설팅 회사 모래알 디자인을 운영했다. 이 회사는 세모의 여러 계열사, 드보브 & 갈레, 헤마토센트릭 생명 연구소, 그리고 내클리어의 디자인 작업을 수행했으며, 유병언의 사진 전시회를 후원했다. 경찰은 가족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해외 계좌로 관리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이 회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당국은 유섬나가 소환에 불응하자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유섬나는 2013년 2월부터 임시 거주 비자로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모래알 디자인의 대표로 일하면서 2003년부터 다판다를 포함한 계열사에서 8(7.8)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터폴 적색 수배가 발부되었고, 대한민국 외교부는 유섬나에게 여권 반납을 명령했다. 한편 대한민국 법무부는 잠재적인 인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현지 수사관을 프랑스로 파견했다. 프랑스 법 집행 당국은 파리 아파트에서 국제 체포 영장에 따라 유섬나를 체포했다. 이 아파트는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2.5(244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프랑스에서 송환 재판을 거쳐 유섬나를 송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판사 앞에 출두했으며, 판사는 보석을 불허했다. 유섬나는 프랑스 변호사 패트릭 메종뇌브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주장했다. 항소 법원은 도주 위험을 이유로 유섬나의 보석 요청을 기각했다. 인도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석방해달라는 새로운 요청은 파리 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녀는 프레네스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프랑스 대법원 또는 유럽 연합의 사법 당국에 인도 사건을 제기할 예정이었으며, 이로 인해 그녀의 송환이 최대 1년까지 지연될 수 있었다.

유섬나에 대한 인도 명령에 대한 항소가 프랑스 최고 행정 법원에서 기각되었으며, 그녀는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한국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한국 관계자들에게 체포되었다.

유병언의 아들들이 지배하고, 청해진해운의 주요 주주(39.4%)인 선박 블록 제작업체 ㈜천해지는 회생 절차 신청서를 창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천해지는 주 채권자인 한국산업은행에 348(약 34.19)의 미결제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여객선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비용을 4031(약 397.8)으로 계산하고, 유병언과 청해진해운이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보유한 모든 재산에 대해 희생자 배상금을 충당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임원 4명, 그리고 세월호에 탑승했던 승무원 8명이 소유한 자산에 대해 압류 명령을 내렸다.

검찰에 따르면, 도피 중이던 유병언은 5월에 은신처로 삼았던 전라남도의 한 부동산 인근에 약 6m2의 토지를 매입했다. 그는 2(약 24달러)을 지불했으며, 순천 인근에서 휴게소와 식당을 운영하며 유병언의 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종교 단체 부부의 명의로 등기했다. 인천지방법원은 유병언과 그의 가족이 소유한 자산 중 새로 취득한 부동산, 서울 강남구 내 10개 상가(가치 85, 약 8.4), 유병언의 아들 혁기 씨 소유의 아파트(가치 15, 약 1.48), 다른 아들 대균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압수한 카메라(가치 2200, 약 2달러)를 추가로 임시 압류하는 결정을 내렸다.

;유대균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은 청해진해운의 일상적인 운영에 관여했다. 그는 세월호의 운영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포함한 유병언 가족 사업의 4개 계열사의 최대 주주였다. 검찰은 유대균이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계열사로부터 매달 급여를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는 이들 회사로부터 수십억 원의 "컨설팅 수수료"를 챙기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대균은 또한 세월호의 자매 여객선에 "오하나마"라는 이름을 등록했다. 유대균은 세월호 침몰에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부패 혐의와 불법 행위로 수배되었다.

유대균은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으며, 인천국제공항에서 목격되었다고 보도되었지만, 비행기에 탑승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천지방검찰청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은 유대균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지만, 수사관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국외 도주 우려로 지명 수배되었다. 법원은 검찰과 국세청이 제안한 200(약 19) 상당의 부동산 자산에 대한 압류를 승인했다. 압류 대상에는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의 토지, 그리고 강남구의 사업장 2곳이 포함되었다. 모든 부동산은 유대균의 명의로 등록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당국은 유병언과 유대균을 도피자로 규정하고, 유병언 검거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5000(약 4달러), 유대균 검거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3000(약 2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현상금은 유병언에 대해 5(약 48달러), 아들에 대해 1(약 9달러)으로 인상되었는데, 이는 수사 당국이 대한민국에서 제공한 현상금으로는 최고액이었다.

;유혁기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는 청해진해운의 일상적인 관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기는 아이원아이홀딩스 지분 외에도, 페인트 제조 회사인 아해코프의 약 10% 지분과 아해프레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의 아해프레스, 파리의 아해프레스 프랑스, 런던의 아해프레스 UK의 CEO로서, 아버지의 재능 있는 사진작가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혁기는 소환 통보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했다. 인터폴 적색 수배가 발부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유혁기는 한국 밖에서는 Keith H. Yoo로 알려져 있으며, 세월호 침몰 당시 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에 있었다. 그는 프랑스로 가려 했지만, 예약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고 한다. 혁기와 그의 아내는 맨해튼과 파리 개선문 근처에 최소 3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당시 추정 가치는 약 6.2(약 63)였다.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부의 수사국에 가족 사업의 형제자매 또는 관련자의 명의로 된 부동산 및 예금을 추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3.3. 수배 및 도피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 과정에서, 유병언이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 직함으로 기재되어 있고 매월 1,000만 원의 급여와 자문료를 받으며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검찰은 유병언과 장남 유대균을 소환 조사하려 했으나, 이들은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경기도 안성시 금수원에 잠적했다가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금수원에 진입하기 전에 빠져나왔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청해진해운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총 8,000만 원의 현상금을 걸어 공개 수배하였다. 이후 제보를 유도하기 위해 현상금 액수를 6억 원(유병언 5억, 유대균 1억)으로 인상하였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의 도입 및 증축 과정에서 유병언이 개인 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복원성 문제를 보고받자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김한식 사장은 '오하마나호나 세월호 중 하나를 팔고 화객선을 구입하자'는 의견을 보고했고, 유 전 회장은 '선령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했을 뿐, 세월호 매각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됨에 따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추징보전명령이 내려진 유 전 회장의 동결 자산도 추징하기 어려워졌다. 국회에서는 '유병언법' 제정을 시도했지만, 법 통과 후에도 정부가 추징할 수 있는 금액은 구조·수습·인양 비용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5년 1월 문진미디어가 본사 빌딩을 매각했지만,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실소유주라는 증거가 없어 매각 대금을 추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천지검은 익명의 인사가 대한민국 주재 모 대사관에 유 전 회장의 정치적 망명을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외교부를 통해 각국 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받아주지 말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2014년 8월 19일, 검찰은 전화 발신자가 구원파와 관계없는 사람의 장난 전화였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병언 등을 상대로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며 피해자 보상을 진행했다. 법무부는 유병언과 이준석 등의 재산에 대해 40315000000KRW의 가압류를 신청했다. 그러나 구상권 청구를 위해서는 유 전 회장의 법적 책임을 입증해야 하고, 동결된 재산 대부분이 차명 재산이라는 의혹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며 상당 부분이 교단 재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해프레스 전무이자 기독교 미디어 그룹 공동 이사인 마이클 햄은 유병언이 청해진해운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병언의 변호사는 유병언이 1997년 세모 파산 이후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유병언이 세월호 소유주이자 회장이라는 주장과 달리, 한국 언론중재위원회는 그가 1997년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선박 회사에 대한 소유권이나 경영 관여가 없음을 확인했다. 수사관들은 유병언이 회사의 리더임을 시사하는 증거(직원 목록, 급여 명세서 등)를 제시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확보했다.

세월호는 유병언(아해)의 사진 전시관을 위해 개조되었으며, 청해진해운 직원은 유병언의 지시 하에 확장을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5월 20일, 선박의 과적재와 개조가 사고 당시 선박의 안정성을 저하시켰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유병언은 세월호 침몰 이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유병언, 유대균 등 60명 이상의 출국을 금지했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아이원아이홀딩스를 대리하는 변호사 손병기는 소유주들이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유병언과 청해진해운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약속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총 손해는 2(약 1.9)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유병언과 가족의 자산 가치는 240(약 235)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병언 본인 소유 129.1(약 126.7), 장녀 유섬나 소유 49.2(약 48.3), 장남 유대균 소유 5.6(약 5.5), 차남 유혁기 소유 55.9(약 54.9) 등이다.

손병기는 유병언의 자산 총액이 240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유병언은 10(약 9.8)의 전 재산을 기부할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병언이 주장한 재산과 수사관들이 밝혀낸 것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손병기는 오해였다며 10은 "수백억" 원을 의미하며, 유병언은 규모에 상관없이 "전체" 자산을 기부할 의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손병기는 5월 15일 가족 변호사직을 사임했다.

대한예수교침례회 신도는 유병언과 두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 간 거래를 추적하기 위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유병언과 가족은 대한예수교침례회에 약 27(약 26) 상당의 부동산을 양도했다.

5월 13일, 인천지방검찰청은 유병언에게 출두를 소환했지만, 그는 소환에 불응했고, 금수원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유병언의 자녀와 핵심 용의자도 소환에 불응했다. 유병언은 5월 20일 법원 심리에 출석하지 않았다. 5월 22일 인천지방법원은 체포 영장을 발부했고, 당국은 유병언 체포에 50(48800USD)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5월 25일, 현상금은 500(488000USD)으로 인상되었다.

검찰은 5월 24일, 유병언 은신을 돕는 자는 최대 3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5월 25일, 유병언의 종교 단체 회원 4명이 체포되었다. 5월 26일, 유병언의 종교 단체는 유병언이 금수원으로 돌아왔을 수 있다고 밝혔다가, 나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발표하며, "10만 명의 신도들이 유병언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언의 측근 이재옥도 5월 26일 체포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유병언과 가족이 "법을 조롱하고 국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며 신속한 체포를 지시했다. 경찰은 유병언 수색 인력을 24,000명에서 50,000명으로 늘렸다.

"신 엄마"로 불리는 신명희는 유병언 도피를 기획한 혐의로 수배를 받다가 6월 13일 자수했다.

유 씨를 대리하는 익명의 인물이 5월 말 서울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연락하여 망명 가능성을 문의했으나, 대사관은 거절했다. 현지 언론은 유 씨의 중개인이 필리핀, 체코, 캐나다 대사관에도 망명 문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유병언의 장인 오갑렬은 유병언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6월 19일 체포되었다. 오갑렬은 유병언을 종교 단체에서 차로 데리고 나갔다고 진술했다. 오갑렬은 체코 주재 한국 대사를 지냈으며, 유병언의 사진 전시회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갑렬은 유병언을 대신해 프랑스 대사관에 연락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오갑렬은 유병언의 가족과 추종자들이 자금을 지원하고 당국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오갑렬과 아내는 6월 26일 석방되었으며, 유병언의 자수를 돕겠다고 밝혔다.

유병언의 아내 권윤자는 6월 전국 지명수배 명단에 올랐다. 그녀는 대구의 방문판매 회사 대표였다. 권씨는 6월 21일 체포되어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았는데, 그 액수는 1(979850USD)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6월 23일 체포 영장을 청구했고, 6월 24일 영장이 발부되었다. 7월 14일 검찰은 권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2014년 6월 25일, 유병언의 "오른팔" 이석환이 체포되었다.

6월 27일,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침몰 관련 비용을 403.1(약 397.8)으로 계산하고, 유병언과 청해진해운이 보유한 재산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7월 4일 자산 압류 명령을 내렸다.

검찰에 따르면, 유병언은 5월 은신처 인근에 약 60000m2의 토지를 매입했다. 그는 250(약 247000USD)을 지불했으며, 종교 단체 부부 명의로 등기했다. 7월 2일, 인천지방법원은 유병언과 가족 자산을 추가 임시 압류했다.

;유대균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은 청해진해운 운영에 관여했다. 그는 아이원아이홀딩스 등 4개 계열사의 최대 주주였다. 검찰은 유대균이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계열사로부터 매달 급여를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는 "컨설팅 수수료"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대균은 세월호의 자매 여객선 이름을 등록했다.

유대균은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지만, 탑승하지 않았다. 그는 검찰에 출두하지 않았다. 검찰은 5월 13일 체포 영장을 발부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지명 수배되었다. 법원은 5월 20일 20(약 19) 상당의 부동산 자산 압류를 승인했다. 5월 22일, 당국은 유병언과 유대균을 도피자로 규정하고 현상금을 내걸었다. 5월 25일, 현상금은 유병언 500(약 488000USD), 유대균 100(약 97600USD)으로 인상되었다.

;유혁기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는 청해진해운 관리에 관여했다. 그는 아해코프, 아해프레스 지분을 소유했다. 그는 뉴욕, 파리, 런던 아해프레스 CEO로서 아버지의 사진 전시회를 기획했다. 혁기는 5월 8일 소환 통보를 받았지만 무시했다. 5월 23일, 인터폴 적색 수배가 발부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유혁기는 미국 영주권자로 뉴욕에 있었다. 그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혁기와 아내는 맨해튼과 파리에 아파트를 소유했으며, 가치는 약 6.2(약 6.3)였다.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부에 부동산 및 예금 추적을 요청했다.

3.4. 시신 발견 및 사망

2014년 6월 12일 전남 순천 별장 근처에서 노숙자로 추정되는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 유병언으로 밝혀졌다. 발견 당시 시신은 겨울용 점퍼를 입고 벙거지를 쓴 채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으며, 반백골화가 80%가량 진행된 상태였다.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정확한 사망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해당 시신이 훨씬 이전에 발견되었고, 이후 기자와 경찰이 유병언이라고 주장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2014년 7월 22일, 시신의 DNA 조사 및 오른쪽 검지 지문 1점 채취 결과 유병언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7월 25일, 신체 크기, 절단된 손가락, 충치 치료 등을 분석하여 시신이 유병언임을 확인했다. 이로써 유병언은 도피 생활 중 사망한 것으로 결론났다. 다만, 시신 부패가 심하고 내부 장기가 훼손되어 사망 시점이나 사인 판정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유병언의 시신은 2014년 6월에 순천시의 한 매실밭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유병언은 "고급 이탈리아 재킷"을 입고 있었고, 시신 주변에는 "그가 쓴 책, 유병언 가족 회사에서 제조한 상어 간유 건강 보조제의 빈 병, 그리고 몇 개의 빈 술병"이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병언의 사망 원인에 대해 시신의 부패가 너무 심해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알코올, 독극물 또는 외부 폭력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경찰청은 초동 수사 미흡 책임을 물어 순천경찰서 지휘부를 문책했다. 그러나 유병언 변사 사건 부실 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이성한 전 경찰청장이 한국전력 상임 이사로 선임되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다.

유병언의 사망으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추징보전명령이 내려진 유병언의 동결 자산도 추징하기 어려워졌다. 국회에서는 '유병언법' 제정을 시도했지만, 법 통과 후에도 정부가 추징할 수 있는 금액은 구조·수습·인양 비용에 크게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장례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총본산 금수원에서 2014년 8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치러졌다. 8월 31일, 추모 예배와 발인식 후 운구 행렬은 금수원 내부를 둘러보고 장지인 청량산으로 향했다. 구원파 측은 유병언의 장인 권신찬 목사의 묘가 있는 청량산을 장지로 결정했다. 유병언의 시신은 8월 31일 오후 2시경 청량산에 매장되었다.

3.5. 장례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총본산 금수원에서 2014년 8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유병언의 장례가 치러졌다. 2014년 8월 30일, 장례 첫날에는 신도 2천여 명이 금수원에서 조문하고 숙식을 해결했으며, 2014년 8월 31일에는 2천여 명이 추가로 금수원을 찾아 발인 전 추모예배에 총 4천여 명(경찰 추산)이 참석하였다.

2014년 8월 31일 오전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대강당에서 추모예배와 발인식이 진행된 후, 운구행렬은 유병언의 작업실 등 금수원 내부를 둘러보고 장지로 향했다. 구원파 측은 유병언의 장인 권신찬 목사의 묘가 있는 청량산을 장지로 결정하였다. 운구행렬이 대강당에서 청량산까지 700여 미터를 이동할 때 신도들이 2미터 간격으로 늘어서 유병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2014년 8월 31일 오후 2시경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 금수원 뒤편 청량산에 유병언의 시신을 매장하여 2일장을 마쳤다.

4. 논란과 의혹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탁명환 등은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구원파 배후설을 제기했으나, 1987년, 1989년, 1991년 세 차례의 검찰 수사 끝에 모두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유병언은 두 달 가까이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오다가 2014년 6월 12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국과수는 DNA 검사 결과를 통해 유병언의 시신임을 확인했다.

유병언의 장녀 유섬나한국어(1966년 출생)는 검찰 수사를 피해 프랑스에 머물다가 2017년 6월 7일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2014년 언론중재위원회는 유병언 가족과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보도에 대해 제기한 16,117건의 중재 신청을 접수했다. 이 중 96.19%(15,503건)가 5인 위원회 중재로 받아들여졌다. 대부분의 정정 보도 신청은 유병언이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 금수원(교회 위치)은 유병언의 소유, 이준석 선장과 세월호 승무원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오대양과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 등의 언론 보도와 관련되었다.

4.1.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관련 논란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탁명환 등은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구원파 배후설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그러나 1987년, 1989년, 1991년 세 차례의 검찰 수사 결과 모두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다.

경찰은 오대양 대표 박순자가 약 220명으로부터 89 (약 870달러)을 사기 혐의로 수사했다. 오대양은 과거 기독교복음침례회여호와의 증인에 출석했던 박순자가 설립한 회사였다. 유병언은 이 단체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1987년 8월 29일, 박순자와 그녀의 세 자녀를 포함한 32명의 신도들이 손발이 묶인 채 입이 막힌 상태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집단 자살로 추정했고, 검찰은 유병언의 연루를 의심했으나 기소하지 않았다.

1991년 7월 10일, 박순자의 전 신자 6명이 자수하면서 사건이 재수사되었고, 오대양과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 간의 금전 거래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거래는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며, 오대양 설립 전 박씨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 간의 정상적인 물품 대금 송금이었다. 유병언은 체포되었고, 1992년 교회 신도들로부터 12 (약 115달러)을 모금하여 그의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직원과 공모한 혐의로 "종교의 탈을 쓴 상습적인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고 4년 징역형을 살았다.

2014년 11월, 인천지방검찰청은 유병언과 오대양 사건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확인했다.

유병언은 생전에 "인류가 곧 멸망한다"며 종말론을 설파했으며, 1991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현금을 사용해 신도를 빼갔다"는 혐의(상습 사기)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4.2. 시신 발견 관련 의혹

2014년 6월 12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발견된 남성 변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되었다. 국과수는 이 주검의 DNA를 유 전 회장 친형의 DNA와 비교한 결과, 유 전 회장의 DNA가 맞는 것으로 통보했다. 시신은 발견 당시 겨울용 점퍼에 벙거지를 쓴 채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고, 반백골화가 80%가량 진행된 상태였다. 타살 혐의점은 없었으나, 정확한 사망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2014년 7월 22일 DNA 조사 및 시신의 오른쪽 검지 지문 1점을 채취하여 검색한 결과 유병언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7월 25일 신체 크기, 절단된 손가락, 충치 치료 등의 분석을 통해 해당 시신이 유병언임을 확인하였다고 발표했다. 다만 시신 부패가 심하고 내부 장기가 훼손되어 사망 시점이나 사인 판정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부 경찰 및 지역 주민들은 해당 시신이 유병언이 아닌 인근을 배회하던 노숙인일 가능성을 제기하였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측은 시신의 유전자를 채취, 분석한 결과 안성 금수원 및 순천 송치재 별장에서 채취된 유병언의 유전자와 완벽하게 일치하며 그의 형 유병일의 유전자와도 일치점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변사체의 유전자 감식과 지문 확인을 통해 해당 시신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것임을 최종 확인했다.

시신이 짧은 시간만에 심하게 부패될 수 있느냐는 의혹에 대해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시신의 평소 건강 상태나 지병, 장기의 훼손, 외부적인 습도나 온도, 그리고 특히 상처 유무에 따라서 다르다”며 “상처가 있을 경우에는 피 때문에 동물이나 곤충들이 더 많이 몰려들게 되고 부패를 가속화 시켜 세균 번식도 많아지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다“라고 지적하였다. 이윤성 서울대학교 법의학과 교수도 "야생동물이 부패 자체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시체 훼손에 많이 관여하며, 야생동물이 피부를 훼손하면 거기에 균이나 파리 등등이 개입하기가 훨씬 쉬워져 부패가 더 빨리 진행이 된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가능함을 시사하였다.

경찰청은 유병언의 시신 발견 초기 초동수사를 미흡하게 한 책임을 물어 순천경찰서 지휘부들에 대한 문책에 들어갔다. 그러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사건 부실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이성한 전 경찰청장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국전력의 상임 이사로 선임되며,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4.3. 실소유주 논란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병언이 청해진해운 조직도에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청해진해운으로부터 매월 10의 급여와 자문료를 지급받아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검찰청은 유병언과 그의 장남 유대균을 소환하여 이에 관련한 사실을 조사하고자 하였으나 이들은 세 차례의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경기도 안성시 소재 기독교복음침례회 연수원인 금수원 안에 잠적했다가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가 금수원에 진입하기 이전에 빠져나왔다.

이에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했던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의혹을 받고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청해진해운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를 하여 유병언과 유대균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총 80의 현상금을 걸고 이들 부자를 공개 수배하였다. 이후 제보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형사범 사상 최고의 현상금 액수인 600(유병언 500, 유대균 100)으로 인상하였다.

한편,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는 수사를 통해 세월호의 대한민국 도입 및 증축 과정에서 유병언이 자신의 개인 전시실을 만들기 위하여 무리한 증축을 지시하고, 복원성 문제를 보고받자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추후 김한식 사장이 당시 '오하마나호나 세월호 중 하나를 팔고 화객선을 구입하자는 의견'을 보고하여, 이에 유 전 회장이 '선령이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먼저 매각하라'고 지시했을 뿐, 세월호 매각 의견을 일축하거나 반대한 바는 없었다고 한다.

이후,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사체가 유병언으로 확인됨에 따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면서 추징보전명령이 내려진 유 전회장의 동결 자산도 추징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국회에서는 이른바 ‘유병언법’으로 불리는 ‘범죄 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의 입법을 시도했지만 이 법이 통과돼도 천해지와 기독교복음침례회, 청해진해운 등 유 전 회장 일가가 관여한 법인 자산 대부분이 금융권 담보대출 등으로 묶여 있어 경매를 통해 자산을 매각하더라도 정부가 추징할 수 있는 금액은 400~600 규모로 추산되는 구조·수습·인양 비용에 턱없이 못 미칠 것이란 전망이 있는 가운데 2015년 1월 세월호 운항선사 청해진 해운의 관계사로 알려진 문진미디어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 빌딩을 최근 1494168에 매각했지만 검찰은 유 전 회장이 문진미디어의 실소유주란 증거가 없어 빌딩 매각 대금을 추징해 세월호 사고 배상 등에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유병언이며,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유병언 몰이에 가세하였으나 이는 결국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고,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실소유주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 전 회장은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청해진해운 뿐만 아니라 유병언 전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알려진 주식, 재산들도 재판을 통해 '이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결되었다.

이에 따라 구상권 청구도 난항을 겪고 있다. 유병언 전 회장의 경우 사망한 채 발견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났으며, 2019년 2월 최근 대법원도 유대균 씨에 대하여 정부측 구상권 청구에 대하여 상고 기각 판결하였다. 이를 의식했는지 세월호 실소유주라고 보도했던 언론사에서도 정정보도를 하는 등 최근에는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이라는 표현 대신 세모그룹 전 회장 유병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유대균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은 청해진해운의 일상적인 운영에 관여했다. 그는 세월호의 운영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를 포함한 유병언 가족 사업의 4개 계열사의 최대 주주였다. 검찰은 유대균이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계열사로부터 매달 급여를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는 이들 회사로부터 수십억 원의 "컨설팅 수수료"를 챙기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대균은 또한 세월호의 자매 여객선에 "오하나마"라는 이름을 등록했다. 유대균은 세월호 침몰에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부패 혐의와 불법 행위로 수배되었다.

유대균은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으며, 4월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목격되었다고 보도되었지만, 비행기에 탑승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천지방검찰청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은 5월 13일 유대균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지만, 수사관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국외 도주 우려로 지명 수배되었다. 법원은 5월 20일 검찰과 국세청이 제안한 20(약 19) 상당의 부동산 자산에 대한 압류를 승인했다. 압류 대상에는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의 토지, 그리고 강남구의 사업장 2곳이 포함되었다. 모든 부동산은 유대균의 명의로 등록되어 있었다. 5월 22일, 대한민국 당국은 유병언과 유대균을 도피자로 규정하고, 유병언 검거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50(약 48800USD), 유대균 검거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30(약 29300USD)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5월 25일, 현상금은 유병언에 대해 500(약 488000USD), 아들에 대해 100(약 97600USD)으로 인상되었는데, 이는 수사 당국이 대한민국에서 제공한 현상금으로는 최고액이었다.

;유혁기

유병언의 차남 유혁기는 청해진해운의 일상적인 관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혁기는 아이원아이홀딩스 지분 외에도, 페인트 제조 회사인 아해코프의 약 10% 지분과 아해프레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의 아해프레스, 파리의 아해프레스 프랑스, 런던의 아해프레스 UK의 CEO로서, 아버지의 재능 있는 사진작가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유혁기는 5월 8일까지 소환 통보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했다. 5월 23일, 인터폴 적색 수배가 발부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유혁기는 한국 밖에서는 Keith H. Yoo로 알려져 있으며, 세월호 침몰 당시 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에 있었다. 그는 프랑스로 가려 했지만, 예약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혁기와 그의 아내는 맨해튼과 파리 개선문 근처에 최소 3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당시 추정 가치는 약 6.2(약 6.3)였다. 검찰은 미국 국토안보부의 수사국에 가족 사업의 형제자매 또는 관련자의 명의로 된 부동산 및 예금을 추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5. 유병언 사후

유병언의 사망이 확인된 후, 2014년 7월 25일 장남 유대균과 보디가드가 체포되었고, 29일에는 운전기사가 검찰청에 자수했다。 인천 지방검찰청은 유병언이 사용하던 벤틀리 아르나지를 압수했다법원은 2014년 11월 6일 장남 유대균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차남 유혁기는 2020년까지 한국 국외에 잠적해 있었지만, 경영하던 회사에서 55.9을 횡령한 혐의로 미국 뉴욕주에서 체포되어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유병언의 시체를 발견한 매실밭 소유주는 국가를 상대로 포상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발견 당시 원고가 신원불명의 변사체로 신고했고 시체를 유병언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포상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5.1. 유병언 일가 재산 환수 문제

정부가 유병언을 포함한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을 상대로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가압류 신청은 명목상 국가가 세월호 참사로 썼거나 앞으로 들어갈 비용에 대한 구상권 청구의 첫 단계다. 소송으로 받아내게 될 유병언 일가 등의 재산 중 상당액은 세월호 피해자의 몫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6월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20일 유병언과 세월호 선장 이준석 등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면서 피보전채권액을 40315으로 설정했다. 정부가 이들에게 받아낼 채권이 그만큼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희생자 구조·수습, 가족들에 대한 지원비용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지출 일체와 인양작업을 비롯해 앞으로 들어갈 예상비용, 정부가 우선 부담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까지 포함됐다. 그동안 이런 비용은 5∼6천억원으로 추산되어 왔다. 그러나 구상권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유 전 회장의 법적 책임을 정부가 입증해야 하고, 정부가 동결한 유 전 회장의 재산의 대부분이 차명 재산이라 의심을 받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상당 부분이 교단 재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병언 사망이 확인된 후, 7월 25일, 장남 유대균과 보디가드가 체포되었고, 29일, 운전기사가 검찰청에 자수했다。 유병언이 사용하던 벤틀리 알나지도 인천 지방검찰청에 의해 압수되었다。 2014년 11월 6일, 법원은 장남 유대균에게 징역 3년의 판결을 선고했다.

차남 유혁기는 2020년까지 한국 국외에 잠적해 있었지만, 경영하던 회사에서 55.9을 횡령한 혐의로 미국 뉴욕주에서 체포되어, 그대로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유병언의 시체를 발견한 매실밭 소유주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포상금 지급 소송과 관련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발견 당시 원고는 신원불명의 변사체로 신고했으며, 시체를 유병언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포상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6. 가족 관계

유병언은 1966년 권신찬의 딸인 권윤자(권윤자한국어)와 결혼하여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다. 장녀는 유섬나(유섬나한국어 또는 Ennette Yoo, 1966년 출생), 차녀는 유상나(유상나한국어, 1968년경 출생), 장남은 유대균(유대균한국어, 1970년경 출생), 차남은 유혁기(유혁기한국어, 1972년 출생)이다.

유병언의 동생 유병호(유병호한국어, 1953년경 출생)는 가수 박진영의 장인으로, 2014년 6월 22일 대구 자택에서 체포되었고, 6월 24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유병호는 청해진해운의 자매 회사에서 최소 1(약 1)을 횡령하고, 가족 관련 회사로부터 3(약 2.8)을 빌린 혐의를 받으며, 종교 단체 회원들로 하여금 대신 1.5(약 1.4)을 갚게 하는 한편, 관련 회사는 1.5(약 1.4)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7.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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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출판 연도출판사비고
God so Loved I영어2004년Evangelical Media Group
God so Loved II영어2004년Evangelical Media Group
The Anchor of the Soul영어2004년Evangelical Media Group
While Reading Through John's Gospel 1영어2008년Evangelical Media Group
While Reading Through John's Gospel 2영어2008년Evangelical Media Group
내 창을 통해: 아해의 사진2011년Ahae Press, Incorporated밀란 크니작 등 공저
De ma fenêtre: Jardin des Tuileries — musée du Louvre프랑스어2012년에디시옹 아술린
너무 단순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완벽: 아해에 관한 책2012년KANT밀란 크니작 등 공저
아해, 베르사유 궁전: 특별함에 대한 창2013년에디시옹 아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