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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플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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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터플루크는 1963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했던 동독의 국영 항공사이다. 1955년 도이체 루프트한자로 시작했으나 서독의 루프트한자와의 상표권 분쟁으로 인해 인터플루크로 변경되었다. 쇤펠트 공항을 거점으로 소련제 항공기를 운용했으며,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노선을 운항했다. 1980년대 말 서방제 항공기를 도입했으나, 독일 통일 이후 1991년 영업을 종료하고 해산되었다. 인터플루크는 상업 비행, 농업 비행, 공항 운영, 항공 교통 관제, 항공 측량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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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플루크
기본 정보
항공사인터플루크
인터플루크 로고
인터플루크 로고
IATA 코드IF
ICAO 코드IFL
콜사인INTERFLUG
설립일1958년 9월 18일
해체일1991년 4월 30일
허브 공항베를린 쇠네펠트 공항
본사쇠네펠트, 브란덴부르크, 독일 민주 공화국
기타
언어독일어
공식 명칭Interflug Gesellschaft für internationalen Flugverkehr m.b.H. (인터플루크 국제 항공 운송 유한책임회사)

2. 역사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은 분단되었고, 1945년까지 독일의 국책 항공사 역할을 했던 도이체 루프트 한자는 연합군에 의해 항공기가 압수되고 청산되었다. 1954년 서독 회사가 '루프트한자' 상표를 획득했고, 1955년 동독은 동독 루프트한자를 설립하여 국책 항공사로 운영했다. 그러나 동독 루프트한자가 '루프트한자'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서독과의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1958년 9월 18일 인터플루크가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전세 항공편 운항을 통해 동독 항공 산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1963년 동독 루프트한자는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공식 청산되었고, 이후 인터플루크가 동독의 국책 항공사가 되었다.[1][2]

쇤펠트 공항의 일류신 Il-14 (1961년)


인터플루크는 동베를린 쇤펠트 공항을 거점으로 일류신 Il-62나 투폴레프 Tu-134와 같은 소련제 항공기를 사용하여 영업했다.

국영 항공사였던 인터플루크는 국가방위위원회의 통제를 받았으며, 약 8,000명의 직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인터플루크 조종사 대부분은 예비 장교 신분으로, 국민인민군 소속이자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 당원이었다. 유사시 항공기는 군사적 목적으로 징발될 수 있었다.[3] 1978년 클라우스 헨케스가 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그는 이전 동독 공군 장군 출신이었다.[4]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슈타지의 승인이 필요했다. 슈타지는 지원자의 '정치적 신뢰성'을 평가하여 간첩 행위나 서방 국가로의 망명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항공사 직원과의 교류는 정직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며, 각 비행에는 승무원에게 정치 강연을 하는 정치 장교가 배정되었다.[4]

1970년대 에너지 위기와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인터플루크는 점차 국내 노선망을 해체했다. 동베를린에서 에르푸르트로 죄수를 수송하는 마지막 정기 국내선은 1980년 4월에 운항되었다.[7]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사회주의 통일당의 일당 독재 붕괴, 그리고 이듬해 1990년 동서독 통일로 인터플루크는 그 존재 의의를 잃게 되었다. 인터플루크는 DHC-8 등 소형 항공기를 이용하여 지역 항공사로 존속하려 했으나, 1991년 4월 3일 영업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인터플루크의 취항 노선 및 승무원 등은 서독 측 루프트한자 독일 항공에 인계되었고, 소련제 항공기는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에, 에어버스기와 Tu-154의 일부는 독일 공군에 양도되었다.

2. 1. 설립 배경 (1945-1963)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은 분단되었고, 1945년까지 독일의 국책 항공사 역할을 했던 도이체 루프트 한자는 연합군에 의해 항공기가 압수되고 청산되었다. 1954년 서독 회사가 '루프트한자' 상표를 획득했고, 1955년 동독은 동독 루프트한자를 설립하여 국책 항공사로 운영했다. 그러나 동독 루프트한자가 '루프트한자'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서독과의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1958년 9월 18일 인터플루크가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전세 항공편 운항을 통해 동독 항공 산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1963년 동독 루프트한자는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공식 청산되었고, 이후 인터플루크가 동독의 국책 항공사가 되었다.

인터플루크는 동베를린 쇤펠트 공항을 거점으로 일류신 Il-62나 투폴레프 Tu-134와 같은 소련제 항공기를 사용하여 영업했다.

2. 1. 1. 동독 루프트한자 설립과 상표권 분쟁

1945년까지 도이체 루프트 한자가 독일의 국책 항공사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그에 따른 연합군 점령 하의 독일 이후, 국내 모든 항공기가 압수되고 항공사가 청산되었다. 1954년, 서독 회사가 '루프트한자' 상표를 획득했다. 1955년, 동독 루프트한자가 경쟁 관계에 있는 동독 국책 항공사로 설립되었다. 동독 항공사가 '루프트한자'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그 결과, 인터플루크는 1958년 9월 18일에 "백업" 회사로 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전세 항공편을 운항하여 동독 항공 산업을 보완할 의도였다. 1963년, 동독 루프트한자는 공식적으로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청산되었고(이 조치는 '루프트한자' 명칭 사용 중단을 막았다.) 직원, 항공기, 노선 네트워크도 인터플루크로 이전되었고, 이후 인터플루크가 동독의 국책 항공사가 되었다.[1][2]

처음 동독은 1955년에 재건한 국영 항공 부문을 Deutsche Lufthansade (도이체 루프트한자)라고 명명하고,[48] 서독루프트한자 독일 항공과 같은 학 로고 마크를 그린 Il-14를 사용하여 국내선 및 동유럽 국가로의 국제선을 운행했다. 그러나 같은 이름의 항공 회사가 이미 존재했던 서독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를 받아들여 1963년에 국영 항공 회사 부문을 인터플루크로 이관하고, 동독의 루프트한자 항공은 해산되었으며, 인터플루크가 동독의 국책 항공사가 되었다.

2. 2. 동독 국영 항공사 (1963-1989)

국영 항공사였던 인터플루크는 국가방위위원회의 통제를 받았으며, 약 8,000명의 직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인터플루크 조종사 대부분은 예비 장교 신분으로, 국민인민군 소속이자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 당원이었다. 유사시 항공기는 군사적 목적으로 징발될 수 있었다.[3] 1978년 클라우스 헨케스가 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그는 이전 동독 공군 장군 출신이었다.[4]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슈타지의 승인이 필요했다. 슈타지는 지원자의 '정치적 신뢰성'을 평가하여 간첩 행위나 서방 국가로의 망명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항공사 직원과의 교류는 정직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며, 각 비행에는 승무원에게 정치 강연을 하는 정치 장교가 배정되었다.[4]

2. 2. 1. 소련제 항공기 도입과 노선망 확장

1960년대에 인터플루크는 노선망과 소련제 항공기 수를 크게 늘렸다. 일류신 Il-18 터보프롭 항공기는 이 기간 동안 인터플루크의 단거리 비행의 주력기가 되었다. 인터플루크는 동독에서 제작된 초기 제트 여객기바데 152의 주요 운영사로 예정되어 있었으나,[5] 개발은 시제기 단계를 넘지 못하고 1961년에 중단되었다. 1969년에는 인터플루크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투폴레프 Tu-134가 도입되어 유럽 노선에 투입되었다. 1971년에는 장거리 기종인 Il-62가 도입되었다. 같은 해 인터플루크 승객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 인터플루크는 쿠바아바나, 싱가포르, 기니코나크리와 같은 곳까지 운항했다.[6]

2. 2. 2. 1970년대 에너지 위기와 국내선 축소

1970년대 에너지 위기와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인터플루크는 점차 국내 노선망을 해체했다. 동베를린에서 에르푸르트로 죄수를 수송하는 마지막 정기 국내선은 1980년 4월에 운항되었다.[7]

2. 3. 독일 통일과 해산 (1989-1991)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사회주의 통일당의 일당 독재 붕괴, 그리고 이듬해 1990년 동서독 통일로 인터플루크는 그 존재 의의를 잃게 되었다.

2. 3. 1. 서방제 항공기 도입과 한계

1989년 여름, 인터플루크는 에어버스 A310 3기를 도입했다. 그러나 그 해 가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사회주의 통일당의 일당 독재가 무너지고, 1990년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인터플루크는 존재 의의를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터플루크는 DHC-8 등 소형 항공기를 이용하여 지역 항공사로 존속하려 했으나, 1991년 4월 3일 영업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2. 3. 2. 청산과 자산 처리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사회주의 통일당의 일당 독재가 붕괴되었고, 이듬해인 1990년 동서독 통일로 인터플루크는 존재 의의를 잃었다. 인터플루크는 DHC-8 등의 소형기를 사용한 지역 항공사로 연명을 꾀했지만, 1991년 4월 3일 영업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인터플루크의 취항 노선 및 승무원 등은 서독 측 루프트한자 독일 항공에 인계되었고, 소련제 항공기는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에, 에어버스기와 Tu-154의 일부는 독일 공군에 양도되었다.

3. 사업 내용

인터플루크는 중국민용항공국과 같이 항공사로서의 기능과 항공 행정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민간 항공 사업을 다음 5개 부문으로 운영했다.[49]


  • 상업 비행 부문 (여객 서비스)
  • 농업 비행 부문 (농약 살포 등)
  • 공항 부문 (공항 운영, 지상 조업 등)
  • ATC 부문 (항공 교통 관제)
  • 항공 측량 부문 (항공 사진 촬영 등)


1960년대 여객 서비스가 크게 증가했으며, 1970년대 1970년대 에너지 위기로 국내 노선망이 점차 해체되기도 했다. 농업 비행 부문은 농약 살포 등을 지원했고, 공항 부문은 공항 운영과 지상 조업을 담당했다. 항공 교통 관제와 항공 사진 촬영 등의 서비스도 제공했다.

3. 1. 상업 비행 (여객 서비스)

1960년대에 인터플루크의 노선망과 소련제 항공기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일리우신 Il-18 터보프롭 항공기는 그 기간 동안 인터플루크의 단거리 비행의 주력기가 되었다. 이 회사는 동독에서 제작된 초기 제트 여객기바데 152의 주요 운영사로 예정되었으나[5], 개발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지 못하고 1961년에 중단되었다. 1969년, 인터플루크가 운영하는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투폴레프 Tu-134가 도입되어 유럽 노선에 투입되었다. 장거리 Il-62는 1971년에 항공기에 추가되었다. 같은 해 인터플루크 승객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 인터플루크는 절정에 쿠바아바나, 싱가포르, 기니코나크리와 같은 목적지로 운항했다.[6]

1970년대 에너지 위기와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인터플루크는 점차 국내 노선망을 해체했다. 동베를린에서 에르푸르트로 죄수를 수송하는 마지막 정기 국내선은 1980년 4월에 운항되었다.[7]

3. 2. 농업 비행

인터플루크는 5개의 민간 항공 사업 부문 중 하나로 농업 비행 부문을 운영했다.[49] 농업 비행 부문은 농약 살포 등의 활동을 지원했다.

3. 3. 공항 운영 및 지상 조업

인터플루크는 민간 항공 사업을 운영한 5개 부문[49] 중 하나로, 공항 운영 및 지상 조업 등을 담당하였다.

3. 4. 항공 교통 관제

인터플루크는 민간 항공 사업 부문 중 하나로 항공 교통 관제(ATC) 부문을 운영했다.[49]

3. 5. 항공 측량

항공 사진 촬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였다.[49]

4. 취항지

인터플루크는 1963년부터 1991년까지 동독의 국영 항공사로, 주로 동유럽소련 지역을 운항했지만, 쿠바, 중국, 아프리카 사회주의 국가,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노선을 확장했다. 서유럽 국가로도 제한적인 운항을 했다.

인터플루크는 국제 항공 운송 협회(IATA)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렴한 항공권 가격을 제공했고, 특히 서독 국민을 대상으로 지중해흑해 휴양지로 가는 전세 항공편을 운항했다. 서베를린에서 쇤펠트 공항까지 승객 수송을 위해 전용 국경 검문소와 셔틀 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인터플루크의 저렴한 항공권은 서베를린 테겔 공항의 휴가 항공편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터키 항공과 협력하여 터키 ''가스트아르바이터''를 위한 전용 항공편을 제공했고, KLM과 제휴하여 동베를린-암스테르담 노선을 공동 운항하기도 했다.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 기간 동안에는 루프트한자와 함께 서독-라이프치히 간 특별 항공편 운항 허가를 받았다. 1989년에는 라이프치히-뒤셀도르프 노선, 1990년에는 드레스덴-함부르크, 드레스덴-쾰른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다음은 인터플루크가 운항했던 서유럽 국가 목록이다.



1987년 인터플루크 시간표에는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 기간 동안 뮌헨,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뒤셀도르프서독 여러 도시로 가는 전세편 운행 정보가 있었다.

4. 1. 동유럽 및 소련

1963년부터 1991년까지 동독의 국영 항공사였던 인터플루크는 동유럽 및 소련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정기 여객 항공편을 운항했다. 다음은 인터플루크의 동유럽 및 소련 노선 목록이다.



인터플루크는 주로 동유럽이나 소련권 국가들을 연결하는 국제선을 운항했으며, 그 외에도 쿠바, 중화인민공화국, 아프리카의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취항했다.

4. 2.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인터플루크는 주로 동유럽이나 소련권 국가로 운항했으며, 그 외에도 쿠바, 중화인민공화국, 베트남아시아아프리카사회주의 국가에도 취항했다. 1980년대 말에는 동남아시아에도 노선을 확장했다.[4][9]

1963년부터 1991년까지 인터플루크가 운항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정기 여객 항공편은 다음과 같다.


4. 3. 서유럽 (제한적 운항)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사이의 국경 통과 지점을 보여주는 지도. ''Waltersdorfer Chaussee'' 검문소는 서독 국민이 인근 쇤펠트 공항을 오갈 때만 사용할 수 있었다.


동독 국영 기업인 인터플루크는 동독 마르크경화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외화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터플루크는 회사 존속 기간 대부분 국제 항공 운송 협회(IATA)의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유럽 항공사의 항공권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었다.[27] 1970년대부터 지중해흑해 휴양지로의 전세 항공편 운항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중 다수는 서독 국민을 위해 특별히 마련되었다 (동독 국민에게는 여행 제한이 적용되었다). 그 무렵부터 인터플루크는 서유럽의 여러 목적지로 가는 운송권을 확보했다.[6] 이 모든 항공편은 인터플루크와 판매 계약을 체결한 서베를린과 서독의 여행사에서 예약할 수 있었다. 서베를린에서 쇤펠트 공항까지 승객을 쉽게 이동시키기 위해 ''Waltersdorfer Chaussee''에 전용 국경 검문소를 개설했으며, 베스텐트 지역의 중앙 버스 터미널에서 정기 셔틀 버스를 운행했다.[27]

1980년대 초, 인터플루크의 저렴한 항공권 가격으로 인해 서베를린 테겔 공항의 휴가 항공편이 심각하게 감소했다. 테겔에 허브를 둔 팬 아메리칸 항공의 조종사들은 항공사가 인터플루크와 경쟁할 수 있도록 무급으로 그리스행 항공편을 운항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27]

인터플루크는 터키 항공과 협약을 체결하여 두 항공사가 터키 ''가스트아르바이터''를 위한 전용 항공편을 서독과 서베를린 간에 독점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4] 1980년대에 인터플루크는 KLM과 제휴하여 동베를린 - 암스테르담 노선을 공동 운항했다. 주 6회 운항 중 2회는 KLM의 포커 F28 펠로우십으로, 4회는 인터플루크의 Tu-134 및 Il-62로 운항했다. 두 항공사 모두 독일 내 국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KLM 항공편은 덴마크를 경유했고, 인터플루크는 체코슬로바키아 상공을 통과하는 남쪽 경로를 이용했다.[28]

매년 열리는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 기간 동안, 당시에는 철의 장막 양측의 사업가와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만남의 장소로 여겨졌으며, 루프트한자와 인터플루크는 라이프치히와 서독 간 항공편 운항에 대한 특별 허가를 받았다. 1986년, 루프트한자와 인터플루크는 철의 장막을 넘어 연중 내내 운항하는 정기적인 독일 내 항공편에 대한 공동 운송권을 신청했지만, 서방 연합국에 의해 처음에는 거부되었다(베를린을 오가는 항공편에 대한 독점적인 시장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가능성이 큼).[29] 1989년 8월에야 비로소 허가가 이루어졌다. 인터플루크는 라이프치히 - 뒤셀도르프 노선 운항을 시작할 수 있었고, 루프트한자는 프랑크푸르트 - 라이프치히 구간 운항을 시작했다.[3] 1990년, 인터플루크는 드레스덴에서 함부르크쾰른으로 가는 항공편을 추가했다.[26]

1987년판 시간표에는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가 개최될 때 뮌헨,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등의 서독 여러 도시로의 전세편이 운행될 예정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5. 운용 기종

인터플루크는 상업 비행에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를 투입했다. 도입 초기에는 Aero Ae-45와 같은 소형 항공기를 운용했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 일리우신 Il-14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객 운송을 시작했다.[2][11][30] 1960년대에는 안토노프 An-24, 일리우신 Il-18 등 소련제 항공기를 주력으로 운용했으며, 1970년대에는 투폴레프 Tu-134, 일리우신 Il-62와 같은 제트 여객기를 도입하여 유럽 노선 및 장거리 노선에 투입했다.

1980년대 말 동서독 통일 직전에는 에어버스 A310, 대시 8-100과 같은 서방제 항공기를 인수하여 단기간 운행하기도 했다. 특히 에어버스 A310 3대는 독일 통일 이후 독일 공군에 인도되어 고위 정치인들의 VIP 수송에 사용되었다.[18]

인터플루크 운용 기종[2][11][30]
항공기도입퇴역
Aero Ae-4519561961
에어버스 A31019891991
안토노프 An-219571962
안토노프 An-2419661975
대시 8-10019901991
Let 410UVP1991
일리우신 Il-1419551967
일리우신 Il-1819611991
일리우신 Il-6219701991
투폴레프 Tu-13419691991
투폴레프 Tu-154M1991


5. 1. 소련제 항공기

1960년대에 인터플루크의 노선망과 소련제 항공기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일리우신 Il-18 터보프롭 항공기는 그 기간 동안 인터플루크의 단거리 비행의 주력기가 되었다.[5] 인터플루크는 동독에서 제작된 초기 제트 여객기바데 152의 주요 운영사로 예정되어 있었으나,[5] 개발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지 못하고 1961년에 중단되었다. 1969년, 인터플루크가 운영하는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투폴레프 Tu-134가 도입되어 유럽 노선에 투입되었다. 장거리 Il-62는 1971년에 항공기에 추가되었다.[6]

인터플루크는 수년에 걸쳐 다음과 같은 기종을 상업 비행에 투입했다:[2][11][30]

항공기도입퇴역
안토노프 An-219571962
안토노프 An-2419661975
Let 410UVP1991
일리우신 Il-1419551967
일리우신 Il-1819611991
일리우신 Il-6219701991
투폴레프 Tu-13419691991



과거 인터플루크에서 운용했던 보존된 일리우신 Il-14의 내부 모습 (2008년).

5. 2. 서방제 항공기

인터플루크는 보유한 항공기의 거의 전부가 소련제였다. 1980년대 말 동서독 통일 직전에 에어버스 A310과 DHC-8과 같은 서방 기재를 인수하여 단기간 운행했다.[2][11][30] Tu-154는 인수한 후 해산까지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거의 운행되지 못하고 끝났다.

항공기도입퇴역
에어버스 A3101989년1991년
대시 8-1001990년1991년



인터플루크가 1988년에 구매한 에어버스 A310 3대는 ''트루한트안슈탈트(Treuhandanstalt)''에 의해 독일 연방 공화국에 인도되었고, 독일 공군의 일원이 되어 독일 대통령이나 독일 총리와 같은 고위 정치인들의 VIP 수송에 사용되었다.[18]

5. 3. 바데 152 (개발 실패)

1960년대에 인터플루크는 동독에서 자체 제작한 초기 제트 여객기바데 152를 주요 운영사로 예정하고 있었다.[5] 그러나 바데 152의 개발은 시제기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1961년에 중단되었다.[5]

6. 사건 및 사고

1972년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추락 사고와 인터플루크 102편 이륙 실패 사고 외에도 인터플루크는 여러 사건 및 사고를 겪었다.


  • 1963년 12월 7일, 인터플루크 일리우신 Il-14(등록번호 DM-SBL)가 전기 고장으로 쾨니히스브뤼크 근처에 동체 착륙했으나, 탑승자 33명 전원 생존했다.[37]
  • 1964년 7월 26일, 안토노프 An-2(등록번호 DM-SKS)가 마그데부르크 인근에서 추락하여 탑승자 2명 전원이 사망했다.[31]
  • 1975년 9월 1일, 인터플루크 1107편: 서독 슈투트가르트에서 라이프치히/할레 공항으로 향하던 인터플루크 투폴레프 Tu-134(등록번호 DM-SCD)가 착륙 중 추락, 탑승자 34명 중 27명이 사망했다. 조종사들이 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활공 경로 아래로 하강, 안테나 기둥과 충돌했다.[33]
  • 1977년 11월 22일, 모스크바 발 인터플루크 투폴레프 Tu-134(등록번호 DM-SCM)가 쇠네펠트 공항 착륙 사고로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다. 승객 74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자동 조종 장치 오작동으로 인한 과도한 강하율로 활주로에 추락했다.[38]
  • 1979년 3월 26일, 1979년 인터플루크 일리우신 Il-18 추락 사고: 화물기로 개조된 인터플루크 일리우신 Il-18(등록번호 DM-STL)이 앙골라 루안다 공항 이륙 중 엔진 고장으로 활주로를 벗어나 파괴, 화염에 휩싸여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34][35]
  • 1991년 2월 11일, 인터플루크 베를린-모스크바 정기편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착륙 복행 사고 발생. 에어버스 A310(등록번호 D-AOAC) 기장이 비행 컴퓨터 설정에 동의하지 않아 반대 제어 입력으로 총 4번의 실속 발생. 조종사들은 제어권 회복 후 착륙했다.[39]


인터플루크 항공기 납치 시도 사건도 여러 건 있었다.

  • 1970년 3월 10일, 동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로 향하던 인터플루크 항공편에서 납치 시도가 발생했다. 에크하르트와 크리스텔 베하게 부부는 권총으로 무장하고 조종사에게 안토노프 An-24기를 몰고 서독하노버로 가 철의 장막을 탈출할 것을 요구했다.[41] 조종사는 연료 부족을 이유로 서베를린의 템펠호프 공항으로 가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쇠네펠트 공항으로 돌아갔고, 이에 베하게 부부는 자살했다.[42]
  • 1980년 1월 30일, 에르푸르트에서 동베를린으로 향하던 인터플루크 항공편에서도 유사한 납치 시도가 실패했다.[43]
  • 1980년 12월 20일, 동베를린에서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인터플루크 302편이 폭탄 위협을 받았다. 비행 중 투폴레프 Tu-134기에 폭탄이 숨겨져 있으며, 고도 600m 이하로 하강하면 폭발할 것이라는 내용의 손으로 쓴 메모가 발견되었다. 승무원은 해발 718m에 위치한 체코슬로바키아의 포프라트로 우회했다. 착륙 후 승객 중 누구의 것도 아닌 배낭이 발견되었으나,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44]

6. 1.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추락 사고 (1972)

1972년 8월 14일 발생한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항공 참사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많은 156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였다.[6][32] (사고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였으며, 전일본공수 58편 추락 사고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인터플루크 소속 일리우신 Il-62(등록번호 DM-SEA) 여객기가 쇠네펠트 공항 근처에서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이 항공기는 인터플루크가 운용한 최초의 Il-62였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 중 하나였다. 베를린-부르가스 비행 중, 화물칸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기체 후방이 파손되면서 승강타에 문제가 발생했다. 승무원은 공항으로 회항을 시도했으나, 항공기는 통제 불능 상태로 추락했다.

6. 2. 인터플루크 102편 이륙 실패 사고 (1989)

1989년 6월 17일, 모스크바로 향하던 인터플루크 102편 (등록번호 DDR-SEW) 일리우신 Il-62 여객기가 동베를린 쇠네펠트 공항에서 이륙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이 사고는 정비 중에 잠금 탭이 제자리에 남겨져 조종면이 고정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륙 중단 지시를 받았을 때, 항공 기술자는 실수로 엔진을 껐다.[36]

이 사고로 항공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화재가 발생했으며, 탑승자 103명 중 21명(승무원 10명 전원 생존)과 지상에 있던 1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일은 1953년 동독 봉기 기념일이었고, 당시 동독의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보타주 의혹이 제기되어 생존자들에 대한 의료 지원이 지연되기도 했다.[36]

6. 3. 기타 사건 및 사고


  • 1964년 7월 26일, 안토노프 An-2(등록번호 DM-SKS)가 마그데부르크 인근에서 추락하여 탑승자 2명 전원이 사망했다.[31]
  • 1972년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항공 참사(1972년 8월 14일): 당시 독일에서 가장 많은 156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였다. 인터플루크 일리우신 Il-62(등록번호 DM-SEA)가 쇠네펠트 공항 인근에서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베를린-부르가스 비행 중, 화물칸 화재로 기체 후방 일부가 파괴되어 승강타에 문제가 발생, 승무원은 공항으로 회항을 시도했으나 항공기는 통제 불능 상태로 하강했다.[6][32]
  • 1975년 9월 1일, 인터플루크 1107편: 인터플루크 투폴레프 Tu-134(등록번호 DM-SCD)가 라이프치히/할레 공항 착륙 중 추락, 탑승자 34명 중 27명이 사망했다. 서독 슈투트가르트에서 라이프치히로 향하던 중, 조종사들이 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활공 경로 아래로 하강, 안테나 기둥과 충돌했다.[33]
  • 1979년 3월 26일, 1979년 인터플루크 일리우신 Il-18 추락 사고: 화물기로 개조된 인터플루크 일리우신 Il-18(등록번호 DM-STL)이 앙골라 루안다 공항 이륙 중 엔진 고장으로 활주로를 벗어나 파괴, 화염에 휩싸여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34][35]
  • 1989년 6월 17일, 인터플루크 102편: 일리우신 Il-62(등록번호 DDR-SEW)가 쇠네펠트 공항 이륙 시도 중 활주로를 벗어나 화재 발생, 탑승자 103명 중 21명, 지상 1명 사망. 정비 중 잠금 탭이 제자리에 남아 조종면이 고정되었고, 역추진 지시 때 항공 기술자가 실수로 엔진을 껐다.[36]
  • 1963년 12월 7일, 인터플루크 일류신 Il-14(등록번호 DM-SBL)가 전기 고장으로 쾨니히스브뤼크 근처에 동체 착륙, 탑승자 33명 전원 생존.[37]
  • 1977년 11월 22일, 모스크바 발 인터플루크 투폴레프 Tu-134(등록번호 DM-SCM)가 쇠네펠트 공항 착륙 사고로 수리 불가능한 손상. 승객 74명 탑승, 자동 조종 장치 오작동으로 인한 과도한 강하율로 활주로에 추락.[38]
  • 1991년 2월 11일, 인터플루크 베를린-모스크바 정기편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착륙 복행 사고. 에어버스 A310(등록번호 D-AOAC) 기장이 비행 컴퓨터 설정에 동의하지 않아, 반대 제어 입력으로 총 4번의 실속 발생. 조종사들은 제어권 회복 후 착륙.[39]

6. 4. 납치 시도

1970년 3월 10일, 동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로 향하던 인터플루크 항공편에서 납치 시도가 발생했다. 에크하르트와 크리스텔 베하게 부부는 권총으로 무장하고 조종사에게 안토노프 An-24기를 몰고 서독하노버로 가 철의 장막을 탈출할 것을 요구했다.[41] 조종사는 연료 부족을 이유로 서베를린의 템펠호프 공항으로 가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쇠네펠트 공항으로 돌아갔고, 이에 베하게 부부는 자살했다.[42]

1980년 1월 30일, 에르푸르트에서 동베를린으로 향하던 인터플루크 항공편에서도 유사한 납치 시도가 실패했다.[43]

1980년 12월 20일, 동베를린에서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인터플루크 302편이 폭탄 위협을 받았다. 비행 중 투폴레프 Tu-134기에 폭탄이 숨겨져 있으며, 고도 600m 이하로 하강하면 폭발할 것이라는 내용의 손으로 쓴 메모가 발견되었다. 승무원은 해발 718m에 위치한 체코슬로바키아의 포프라트로 우회했다. 착륙 후 승객 중 누구의 것도 아닌 배낭이 발견되었으나,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44]

7. 대중문화 속 인터플루크

동독 텔레비전 시리즈 ''트레프푼크 플루크하펜''(Treffpunkt Flughafen)은 1985년에서 1986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8개의 에피소드에서 인터플루크의 가상 일리우신 Il-62 승무원과 해외에서 그들이 겪는 (종종 부정적인) 경험과 모험을 다루었는데, 이는 일반적인 동독 시민이 감당할 수 없거나 여행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3][45]

8. 인터콘도르 (InterCondor)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후, 인터플루크는 콘도르 플루크디엔스트와 함께 인터콘도르라는 이름의 합작 투자 항공사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인터콘도르의 항공기 기종은 보잉 757로만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0년 인터플루크의 청산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다.[1]

참조

[1] 서적 Das große Buch der Interflug Das Neue
[2] 서적 Das große Buch der DDR-Luftfahrt GeraMond
[3] 간행물 50 Jahre Interflug: Was von der DDR-Staatsfluggesellschaft blieb https://www.faz.net/[...] 2013-09-19
[4] 간행물 50 Jahre Interflug: Linientreu http://www.tagesspie[...] 2013-09-19
[5] 간행물 East Germany and the BB.152 http://www.flightglo[...] 2013-09-19
[6] 간행물 Stotterndes Geheul http://wissen.spiege[...] 1972-08-21
[7] 간행물 Idyllische Ruhe http://wissen.spiege[...] 2013-09-19
[8] 간행물 Zwei Airbus-Jets für die DDR http://wissen.spiege[...] 2013-09-19
[9] 간행물 Sehr, sehr hoher Preis http://wissen.spiege[...] 2013-09-19
[10] 간행물 Airbus Sale to East https://www.nytimes.[...] 2013-09-19
[11] 웹사이트 Interflug fleet details http://www.airfleets[...] airfleets.net 2013-09-19
[12] 간행물 Lufthansa Buying Stake in Interflug https://query.nytime[...] 2013-09-19
[13] 간행물 East German Airline Closed https://www.nytimes.[...] 2013-09-19
[14] 간행물 Airline is Pursuing 2 Hubs on Continent https://www.nytimes.[...] 2013-09-19
[15] 간행물 East German Air Move https://www.nytimes.[...] 2013-09-19
[16] 간행물 Mit einer Tupolew ging die Interflug-Ära zu Bruch https://www.welt.de/[...] 2013-09-19
[17] 간행물 Küken nach Teheran http://www.spiegel.d[...] 2013-09-19
[18] 웹사이트 German Air Force fleet details http://www.airfleets[...] airfleets.net 2013-09-19
[19] 웹사이트 Übersichtstabelle zum Verbleib aller Maschinen http://www.if-interf[...] if-interflug.de 2013-09-19
[20] 웹사이트 International timetable http://www.timetable[...] Deutsche Lufthansa 1963-04-01
[21] 웹사이트 Leipzig Fair timetable http://www.timetable[...] Interflug 1967-03-03
[22] 웹사이트 1991 routemap http://www.timetable[...] Interflug 2013-09-19
[23] 웹사이트 Archive: INTERFLUG W77/78 network https://www.routeson[...] 2020-07-26
[24] 웹사이트 Airlines and Aircraft Serving Berlin-Schönefeld Effective July 1, 1983 http://www.departedf[...] departedflights.com 2013-09-19
[25] 웹사이트 Timetable: 1 April-31 October 1964 http://www.timetable[...] Interflug 2013-09-19
[26] 간행물 Travel Advisory: Two Germanys Expand Ties https://www.nytimes.[...] 2013-09-19
[27] 간행물 Volkseigener Köder http://wissen.spiege[...] 2013-09-19
[28] 간행물 Dumm Da http://wissen.spiege[...] 2013-09-19
[29] 간행물 Wirklich absurd http://wissen.spiege[...] 2013-09-19
[30] 웹사이트 Profile for: Interflug http://www.aerotrans[...] Aero Transport Data Bank 2013-09-19
[31]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of Interflug's 1964 Antonov crash http://aviation-safe[...] 2013-09-19
[32]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of the Königs Wusterhausen disaster http://aviation-safe[...] 2013-09-19
[33]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of the 1975 Interflug crash http://aviation-safe[...] 2013-09-19
[34] 웹사이트 1979 crash at the Aviation Safety Network http://aviation-safe[...]
[35]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of the 1979 Interflug crash http://aviation-safe[...] 2013-09-19
[36]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of the 1989 Interflug crash http://aviation-safe[...] 2013-09-19
[37] ASN accident DM-SBL
[38]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of the 1977 Interflug crash http://aviation-safe[...] 2013-09-19
[39] 웹사이트 Description of Interflug's 1991 Airbus incident http://aviation-safe[...] 2013-09-19
[40] 웹사이트 Black Box, Episode 1: Blaming the Pilot https://www.youtube.[...] 2013-09-19
[41] 웹사이트 Description of the 1970 Interflug hijacking http://aviation-safe[...] 2013-09-19
[42] 웹사이트 berliner-mauer-gedenkstaette.de Berlin Wall Memorial: Christel and Eckhard Wehage http://www.berliner-[...] 2014-03-01
[43] 웹사이트 Description of the 1980 Interflug hijacking http://aviation-safe[...] 2013-09-19
[44] 간행물 Bombe bei Interflug http://wissen.spiege[...] 1981-01-12
[45] 웹사이트 Treffpunkt Flughafen http://www.mdr.de/da[...] Mitteldeutscher Rundfunk 2013-09-19
[46] 웹사이트 ARD report commemorating the landing of an Interflug Il-62 in a field https://www.youtube.[...] 2013-09-19
[47] 문서 直訳すると「国際航空輸送会社」
[48] 문서 月刊エアライン 2006年6月号 106〜107ページ 『歴史を創ったエアライン』第6回より。 2006-06
[49] 문서 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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