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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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선불교는 고려 시대 지눌에 의해 시작되어,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왔다. 통일신라 시대에 전래된 선불교는 구산문을 통해 발전했으며, 고려 시대 지눌의 개혁 운동으로 조계종이 성립되어 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억압 속에서도 기화와 휴정 등 고승들이 불교를 지키고 발전시켰으며, 임진왜란 시기에는 의병 활동을 통해 민족 수호에 기여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서양 사상의 유입으로 불교계에 변화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정화 운동을 통해 불교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와의 경쟁 속에서 현대 한국 선불교가 발전했으며, 숭산 스님 등에 의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전파되어 세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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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선불교 - 구산문
구산문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형성된 아홉 개의 주요 선종 산문으로, 도의의 가지산문을 효시로 하여 여러 산문이 성립되었고, 고려 후기 지눌에 의해 조계종으로 이어졌다. - 한국의 선불교 - 한국불교태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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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선불교 | |
|---|---|
| 한국의 선불교 | |
![]() | |
| 개요 | |
| 유형 | 선종 |
| 종교 | 불교 |
| 기원 | 중국 선종 |
| 영향 | 한국 불교 |
| 역사 | |
| 설립자 | 도의국사 |
| 형성 시기 | 9세기 초 |
| 주요 특징 | |
| 수행 방법 | 참선 |
| 핵심 가르침 | 언어와 문자를 초월한 깨달음 추구 마음의 본성 직시 |
| 주요 종파 | |
| 종파 | 조계종 태고종 |
| 한국 선불교의 맥 | |
| 구산선문 | 가지산문 실상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성주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수미산문 조계산문 |
| 관련 인물 | |
| 주요 인물 | 혜능 마조 도일 서산대사 경허 성우 만공 월면 탄허 택성 성철 |
| 관련 개념 | |
| 관련 개념 | 화두 간화선 묵조선 |
| 같이 보기 | |
| 관련 항목 | 선 (불교)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태고종 구산선문 불교 한국의 불교 |
2. 역사

한국 선불교는 역사적으로 부침을 겪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고려 시대에는 지눌이 왕으로부터 국사(國師)로 임명되고 송나라의 선불교를 소개하며 큰 영향을 미쳤고,[17] 보우가 법맥을 전수하여 그 전통이 이어졌다.[18]
조선 시대에는 유교 중심 정책으로 불교가 억압받았으나,[19] 휴정은 선불교의 관점에서 저술 활동을 하고 법맥을 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휴정과 유정이 승병을 이끌고 활약하기도 했다.[19]
일제 강점기에는 승려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등[20] 불교 탄압이 있었지만, 경허와 만공 같은 선승들이 법맥을 지켜냈다.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는 말이 진제선사와 송담 스님을 대표적인 인물로 칭하며 널리 알려졌고, 숭산, 대원 등 다른 승려들도 한국 선불교의 맥을 잇고 있다.[21]
2. 1. 삼국 시대 (기원전 57년 ~ 668년)
(해당 섹션에 대한 내용이 원본 소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2. 2. 통일신라 (668년 ~ 935년)
통일신라 시대는 중국 당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선불교가 한반도에 처음 전래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당나라에서 선법을 배운 승려들이 귀국하여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신라 불교계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선불교는 점차 신라 사회에 확산되었고, 특히 9세기 이후에는 여러 선문(禪門)이 개창되면서 한국 선불교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여러 산문(山門)들은 이후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정립되어 한국 선불교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 통일신라 시대 선불교의 전래와 구산문의 성립 과정은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2. 1. 선불교의 한국 전파
선불교는 통일신라(668년 ~ 935년) 시대에 전해졌다.[22] 신라의 승려인 법랑(法朗, 생몰년 미상)은 당나라에서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인 도신(道信, 580년 ~ 651년)으로부터 불교의 교리를 배웠고 한국에 처음으로 선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게 된다.[22] 또한 법랑은 신행(愼行, 704년 ~ 779년)에게 선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했는데 신행은 중국 선종의 동산법문(東山法門)에 속했던 승려인 신수(神秀, 생년 미상 ~ 706년)의 후계자인 보적(普寂, 651년 ~ 739년)으로부터 불교의 교리를 배웠다. 선불교는 9세기 초반에 도의(道義, 생년 미상 ~ 825년)에 의해 더욱 대중화되었다.2. 2. 2. 구산문
선(禪)은 통일 신라(668–935) 시대에 한국으로 전해졌다.[7] 넷째 조사 대의 도신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범랑(法朗)이 처음으로 선의 가르침을 한국에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범랑은 자신의 가르침을 신행(神行)에게 전했는데, 신행 또한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의 동산법문(東山法門)을 이끈 신수의 제자인 보지(普寂, 651–739)에게서 배웠다. 9세기 초, 도의(道義)에 의해 선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선불교는 점차 신라로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는 주로 화엄종과 유가행파를 공부하던 신라 승려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마조도일(馬祖道一)과 그의 제자들이 속한 홍주종(洪州宗) 및 임제종 등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조도일의 제자들 중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신라로 돌아와 각자 산사(山寺)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파를 열고 뛰어난 제자들을 길러냈다.
처음에 이 문파들의 수는 아홉 개로 정착되었는데, 이 시기의 선불교를 구산문(九山門)이라고 부른다. 이 아홉 개의 문파 중 여덟 개는 마조도일 혹은 그의 뛰어난 제자 중 한 명과의 법맥(法脈)을 통해 세워진 마조도일 계열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조동종(曹洞宗)에서 유래한 이엄(利嚴)이 세운 수미산문(須彌山門)이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지장(地藏)과 백장회해(百丈懷海)에게서 배운 도의(道義)는 한국 선불교의 첫 문을 연 인물로 여겨진다. 그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을 창건했다. 구산문은 826년에 조계종(曹溪宗)이라는 이름을 채택했으며, 구산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084년부터 나타난다.
2. 3. 고려 시대 (918년 ~ 1392년)
고려 시대의 승려인 지눌은 한국 불교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왕에 의해 국사(國師)로 임명된 최초의 승려였으며, 송나라의 선불교 전통을 소개하는 저술 활동을 했다.[17] 지눌은 당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던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노력했으며, 그의 활동은 이후 한국 선불교 발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지눌 이후 보우는 중국에서 배운 불법을 고려에 전하여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8] 고려 시대 선불교는 지눌의 개혁 노력과 보우의 법맥 전수 등을 통해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다.
2. 3. 1. 교종과의 갈등
11세기에 이르러 선불교는 고려에 자리를 잡았다. 선불교는 기존의 교종 계열 종파들, 즉 오교(계율종, 법상종, 법성종, 열반종, 원융종)와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특히 경전 공부를 중시했던 교종과 달리, 선불교는 참선과 같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했다.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명상 수행을 중시하는 새로운 선종과 '배움' 또는 '학문'을 의미하는 '교(敎)'라는 용어로 불리던 기존 교종 종파들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고려 불교계 내에서는 선종과 교종 사이의 상호 이해와 화해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2. 3. 2. 지눌의 개혁 운동
고려 시대 선불교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불교 개혁 운동을 펼친 승려 지눌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 고려의 승가는 외형적인 문제와 교리상의 내부 문제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불교는 점을 치거나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기도와 의례를 행하는 등 세속적인 경향에 치우쳐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세속화와 부패는 불순한 동기를 가진 승려와 비구니를 늘어나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따라 불교의 정화와 부흥, 질적 향상은 당시 불교 지도자들의 중요한 과제였다.지눌은 "삼매와 반야 결사"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운동을 한국 선불교 내에서 일으키고자 했다. 이 운동의 목표는 깊은 산 속에 규율을 지키며 청정한 수행에 힘쓰는 수행자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에 송광사를 창건하여 청정 수행의 새로운 중심지를 마련함으로써 이 목표를 이루었다.
지눌의 저술은 선(禪) 사상과 수행 방법론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재구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교리 공부(교학)와 선 수행(참선) 모두를 동등하게 중요하게 여겼다. 오랫동안 선불교 내에서 논쟁이 되어왔고 지눌이 특히 주목했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수행과 깨달음에 있어 '점진적인' 방법과 '단박에 깨닫는'(돈오) 방법 사이의 관계였다. 지눌은 이 문제에 대한 중국 불교의 여러 논의, 특히 규봉종밀과 대혜종고의 견해를 참고하여 "단박에 깨달은 후 점진적으로 수행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가르침(보조선, 普照禪)을 비교적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했다. 또한 지눌은 대혜종고의 화두(話頭, 觀話|관화중국어, "핵심적인 구절을 참구하는 것") 수행법을 받아들여 자신의 수행 체계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형태의 명상법은 오늘날 한국 선불교에서 가르치는 주요한 수행 방법 중 하나이다.
지눌이 제시한 선(禪)과 교(敎) 사이의 갈등에 대한 철학적 해법은 이후 한국 불교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2. 3. 3. 혜심
지눌의 제자이자 후계자인 진각 혜심(慧諶)은 화두(話頭, "말머리" 또는 "핵심 구절") 수행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는 1226년에 1,125개의 공안을 모아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편찬했다. 혜심은 남성 수행자들에게는 화두 수행을 적극 권장하였으나, 여성 불교 수행자의 경우 염불이나 경전 독송에 머무르도록 하였다.2. 3. 4. 조계종의 성립
고려 시대의 승려인 지눌은 당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던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노력했으며, 그의 영향 아래 선종 계열의 조계종이 한국 불교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17] 이러한 지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이후 보우는 중국에서 임제종의 가르침을 배워 돌아와 여러 선종 문파로 나뉘어 있던 구산선문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18] 이는 조계종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눌과 보우 이후에도 혜근, 기화, 휴정과 같은 뛰어난 승려들이 배출되어, 지눌이 세운 한국 명상 불교의 기본적인 틀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2. 4. 조선 시대 (1392년 ~ 1897년)
조선 왕조 시기에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중시하면서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었다.[19]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불교의 명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고려 말 보우(太古 普愚)가 고려에 전한 선불교의 법맥은 조선 시대를 거치며 계승되었다.[18]조선 시대 선불교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휴정을 들 수 있다. 그는 불교가 탄압받는 현실 속에서도 선불교의 관점에서 유교, 도교와 함께 당대 주요 사상을 다루는 저술 활동을 하였고, 선불교의 법맥을 이어나갔다.[19]
특히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임진왜란 시기에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불교계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휴정은 제자 유정과 함께 승려들을 모아 의병 부대(승병)를 조직하여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며, 외교 활동에도 참여하여 나라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19]
2. 4. 1. 숭유억불 정책과 불교 탄압
조선 왕조는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했다.[23][8] 이 정책은 조선 왕조 5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강화되었으며, 불교는 지속적인 탄압을 받았다.[23][8]조선 시대 동안 불교에 가해진 주요 억압 조치는 다음과 같다.
- 사찰 수 감소: 전국의 사찰 수가 수백 곳에서 단 36곳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23][8]
- 승려 자격 제한: 승가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의 수, 사찰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 그리고 출가할 수 있는 나이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졌다.[23][8]
- 사회 활동 제약: 승려와 비구니들은 산 속 사찰에 머물도록 강요받아 사실상 사회와 격리되었으며,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23][8]
- 의례 및 포교 금지: 불교식 장례 의식이나 승려들의 탁발(걸식) 행위 또한 금지되었다.[23][8]
이러한 탄압 속에서 조선 불교는 선(禪)과 교(敎) 양종으로 통합되었다가, 결국 선종이라는 단일 종파로 더욱 축소되는 과정을 겪었다.[23][8]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승려 기화는 불교의 입장을 변호하고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중요한 저술인 《현정론》(顯正論)을 남겼다. 그는 이전 철학자들의 논의를 이어받아 체용(體用) 이론과 화엄(華嚴) 사상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개념을 적용하여 불교의 가르침을 설명했다.[23][8]
때로는 억압적인 정책이 일시적으로 완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문정왕후는 불심이 깊어 승려 보우를 깊이 존경하여 그를 선종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등 불교 부흥을 시도했다.[23][8]
2. 4. 2. 기화의 《현정론》
조선 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500년 동안 점진적으로 억압받던 시기였다.[8][23] 신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지배층 아래 불교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사찰의 수는 수백 개에서 36개로 급감했으며, 승가 구성원의 수, 사찰 소유 토지 면적, 승려가 될 수 있는 나이 등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졌다. 심지어 승려들은 도시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불교식 장례나 탁발(동냥) 행위조차 불법으로 간주되었다.[8][23]이러한 극심한 탄압 속에서 조선 초기의 승려 기화(己和, 1376~1433)는 불교의 입장을 변호하고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중요한 저서인 《현정론》(顯正論)을 저술했다.[8][23] 기화는 《현정론》에서 이전 시대 불교 철학자들의 논의를 계승하여 체용(體用) 사상과 화엄(華嚴)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 교리를 설명했다. 특히 그는 현실 세계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깊은 연관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화를 이룬다는 화엄 사상의 핵심 개념인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논리를 적용하여 유교 중심 사회의 불교 비판에 대응하고자 했다.[8][23]
2. 4. 3. 휴정과 임진왜란
조선 왕조 시대에는 유교 이념의 영향으로 불교가 억압받았다.[19]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승려 휴정은 선불교의 관점에서 당시 조선의 주요 사상인 유교, 도교, 불교에 대한 이해를 담은 글을 남겼으며, 불교의 법맥을 이어나갔다.[19]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임진왜란 시기에 휴정은 제자 유정과 함께 승려들을 모아 의병(의승병)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19] 승려들이 조직한 의병 부대는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워 중요한 전과를 올렸으며, 이들의 활약은 침략군을 격퇴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휴정은 불교 교리 연구와 수행의 통일을 이루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신라의 원효, 고려의 지눌, 그리고 조선 전기의 기화와 같은 선승들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조선 시대 불교 부흥의 중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한국 선불교의 주요 법맥 대부분은 휴정의 네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 언기(彦機), 태능(太能), 일선(一禪)을 통해 그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제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휴정을 도와 함께 활약한 인물들이다.
2. 4. 4. 조선 후기 불교
서산대사 시대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약 3세기 동안 조선의 불교는 큰 변화 없이 명맥을 이어갔다. 이 시기 조선 후기 불교는 화엄 사상 연구의 부흥을 경험했으며, 정토교 신앙 또한 다시 활발해지는 모습을 보였다.2. 5. 대한제국 (1897년 ~ 1910년)과 일제강점기 (1910년 ~ 1945년)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어 광무개혁을 통한 근대화를 시도하였으나,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병합되면서 국권을 상실하였다. 이 격동의 시기 동안 한국 불교계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일부 승려들은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 사상을 접하기도 했으며, 이는 전통적인 불교계 내부에 영향을 미쳤다.[24]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불교는 일본의 통제 정책 아래 놓이게 되었다. 특히 승려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등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 문화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20]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경허나 만공과 같은 선승들은 선불교의 법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였다.
2. 5. 1. 근대화와 불교계의 변화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광무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일본에 강제 병합되면서 막을 내렸다.이 시기 한국의 승려들은 불교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일본 학자들을 통해 서양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한국 불교계에 소개하였다. 이러한 서구 사상의 유입은 한국 불교 내에서 전통적인 수행 중심의 승려와 학문 연구 중심의 학자 사이에 분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24]
2. 5. 2. 일제의 불교 정책
대한제국이 1910년 일본 제국에 병합된 후, 한국 불교는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일제는 한국 불교 통제 정책의 하나로 승려들에게 강제로 결혼을 강요했다. 이러한 정책은 약 40년간 지속되었으며,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독신 수행 문화를 훼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20]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경허나 만공과 같은 선승들은 선불교의 법맥을 지키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2. 6. 해방 이후 (1945년 ~ 현재)
일제 강점기 동안 많은 승려들이 강제로 혼인을 해야 했으며, 이는 해방 이후 불교 정화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40년간 지속되었다.[20] 이러한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경허나 만공과 같은 승려들은 선불교의 법맥을 지켜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반도는 남북 분단이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격동 속에서 한국의 선불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한국 선불교는 중요한 정신적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는 말은 남쪽의 진제선사와 북쪽의 송담 스님을 일컬으며 현대 한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숭산 스님, 대원 스님 등이 현대 한국 선불교의 맥을 잇는 중요한 인물로 언급된다.[21] 현대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선불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2. 6. 1. 분단과 한국전쟁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한반도를 지배하던 일본 제국이 패망한 이후, 유엔은 한반도에 대한 신탁 통치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38선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은 소련이, 남쪽 지역은 미국의 미군정이 각각 관리하게 되었다. 냉전이라는 국제 정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분할 관리는 결국 1948년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라는 두 개의 분단된 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2. 6. 2. 현대 한국의 선불교
20세기 중반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서양에서 전래된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불교와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24][9]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종교 활동이 억압받았다.[25][10]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선(禪)불교는 다수의 주요 사찰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동국대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에서도 불교학의 중요한 일부로 다루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종파는 선불교 계열의 대한불교조계종이다.
1980년대 한국 불교계에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논쟁이 있었다.[24][9] 이는 전통적으로 지눌 이래 한국 선불교의 주된 입장이었던 돈오점수(頓悟漸修, 단박에 깨닫고 점차 수행함)와, 현대 한국 선의 대표적 인물인 성철 스님이 혜능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새롭게 강조한 돈오돈수(頓悟頓修,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수행함) 사이의 견해 차이였다.[26][11] 이 논쟁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의 후대 종정들은 성철 스님의 입장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2. 6. 3. 돈오점수 논쟁
1980년대에 한국 불교계에서는 깨달음의 방식에 대한 돈오(頓悟) 대 점수(漸修) 논쟁이 일어났다.[9] 고려 시대의 승려 지눌 이래로 한국의 선불교는 "돈오점수(頓悟漸修)", 즉 '단번에 깨닫고 점진적으로 수행한다'는 표어를 중심으로 수행과 학문 연구를 통합해왔다. 그러나 현대 한국 선불교의 주요 인물인 성철은 중국 당나라의 승려 혜능에게서 비롯된 "돈오돈수(頓悟頓修)", 즉 '단번에 깨닫고 단번에 수행을 완성한다'는 표어를 부활시켰다.[11] 조계종의 마지막 세 명의 종정은 성철의 입장을 따라 이 논쟁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3. 한국 선불교의 특징
한국 선불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고려 시대의 승려 지눌은 한국의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송나라의 선불교 전통을 보여주는 책을 집필하고 국왕에 의해 국사(國師, 국가의 스승)이자 조언자로 임명된 최초의 승려였다.[17] 이러한 선불교 전통은 태고국사 보우(太古國師 普愚)가 그의 불법을 고려에 전한 이후에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18]
조선 왕조는 유교 이념 때문에 불교를 탄압했다. 그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휴정은 선불교의 관점에서 조선의 3대 종교인 선불교, 유교, 도교에 관한 글을 집필했고 법의 전승을 이어 받았다. 1592년부터 1598년 사이에 일어난 임진왜란 시기 동안 휴정과 유정은 승려들로 구성된 의병대를 지휘하고 외교에 참여했다.[19]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 대부분의 승려들은 강제로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화 행위까지 약 40년 동안 지속되었다.[20] 그 시기 동안에 경허나 만공과 같은 승려들은 법의 전승을 살려두었다.
21세기에는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 남쪽으로는 진제, 북쪽으로는 송담)은 한국의 선불교 전통에서 잘 알려진 구절이다. 그 외의 승려로는 숭산, 대원이 있다.[21]
3. 1. 수행과 교학의 조화
고려 시대 선불교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불교 개혁 운동을 전개한 승려인 지눌이었다.[17] 지눌이 활동하던 시기, 고려의 승가는 외형적인 치장과 내적인 교리 문제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불교는 점을 치거나 세속적인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와 의례에 치중하는 등 세속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세속화는 자격 미달인 사람들이 승려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불교의 정화와 부흥, 질적 향상은 당시 불교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과제였다.지눌은 한국 선불교 내에서 "삼매와 반야 결사"라고 불리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 운동의 목표는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규율을 지키며 청정한 수행에 힘쓰는 수행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에 송광사를 창건하여 순수한 수행의 새로운 중심지를 마련함으로써 이 목표를 이루었다.
지눌의 사상은 선(禪) 수행과 교학(敎學) 연구 방법론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재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는 교리 공부와 선 수행 모두를 동등하게 중시했다.[17] 당시 선불교 내에서는 오랫동안 수행과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점진적인' 방식과 '단박에 깨닫는'(돈오) 방식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논쟁거리였는데, 지눌은 이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규봉종밀과 대혜종고 등 중국 불교의 여러 논의를 참고하여, '단박에 깨달은 뒤 점진적으로 수행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가르침, 즉 보조선(普照禪)을 체계화했다.
또한 지눌은 대혜종고의 화두(話頭)(觀話|관화중국어, "중요한 구절 관찰") 수행법을 자신의 수행 체계에 받아들였다. 이 간화선(看話禪)은 오늘날 한국 선불교에서 가르치는 주요 명상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지눌이 제시한 선(禪)과 교(敎)의 조화에 대한 철학적 해답은 한국 불교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3. 2. 민주적인 특징
스튜어트 락스는 한국의 선불교가 일본의 선불교보다 스승의 역할에 덜 강조점을 두며, 상대적으로 덜 위계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일본 선불교에서 로시(老師)에 해당하는 한국 선불교의 '방장'(方丈)은 10년의 임기 제한이 있는 선출직이며, 투표를 통해 해임될 수도 있다. 락스는 이러한 한국의 모델이 미국의 선 센터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본식의 위계적인 스승 중심 구조와 그에 따른 이상화 경향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았다.[12]로버트 버스웰에 따르면, 한국 선불교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서양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만큼 공식적이거나 제한적이지 않다. 소수의 승려만이 특정 스승 한 명과 깊은 개인적 관계를 맺으며, 승려들은 특정 스승보다는 동료 참선 수행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교 사상과 수행은 특정 스승 개인에게서 분리되어 유지되며, 승려들은 여러 스승에게 배우지만 어느 한 사람의 가르침만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13]
4. 한국 선불교의 세계화
한국의 선불교는 20세기 후반부터 여러 승려들의 노력을 통해 세계 각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숭산은 한국 선불교를 미국 등 서구 사회에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비던스 선원을 설립했으며, 그가 창설한 관음선원은 현재 전 세계 6개 대륙에 100개가 넘는 선원을 운영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삼우는 1971년 캐나다 토론토에 선불교 사원을 세우고, 이후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도 사원을 설립하며 북미 지역에서 한국 선불교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20세기 초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의 법맥을 이은 만공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깨달음을 통한 평화를 위해 법맥을 세계에 전파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뜻을 이어 제자 혜암과 그 법손들이 미국 등지에 한국 선불교를 전파했으며, 포화는 1994년 여러 선 센터를 아우르는 세계 선불교 연합(World Zen Fellowship)을 창설하기도 했다.[28]
4. 1. 미국의 한국 선불교
한국의 선불교는 숭산에 의해 미국에 전파되었다. 그는 서울의 사찰 주지였으며, 홍콩과 일본에서 생활한 후 1972년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로 미국으로 이주했다.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서 한 재미교포 승객이 그에게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세탁소에서 일자리를 제안했고, 그곳은 숭산의 관음선원 본부가 되었다. 프로비던스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학생들을 모았고 프로비던스 선원을 창건했다. 관음선원은 6개 대륙에 100개 이상의 선원을 두고 있다.
또 다른 한국 선승인 삼우는 1971년 캐나다 토론토에 선불교 사찰을 설립했다. 그는 자비로운 지혜를 위한 불교 협회의 대표이며, 이 협회는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 시카고, 멕시코 멕시코시티, 뉴욕에 사찰을 두고 있다.
20세기 초, 경허 선사는 한국 선불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그의 제자인 만공 선사는 깨달음을 통한 평화를 장려하기 위해 계보 법맥을 전 세계로 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그의 법 제자인 혜암[14]은 계보 법맥을 미국으로 가져왔다. 혜암의 법 제자인 묘봉은 서선 아카데미를 1976년에 설립했고, 그의 한국인 제자인 포화 스님은 1994년에 포토맥 선가, 종가 선회, 볼티모어 선원 등 미국 내 여러 선불교 센터를 포함하는 세계 선불교 연합을 창건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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