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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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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철도는 1889년 철도 모형 귀국 이후 고종의 노력으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며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가 등장했고, 이후 경부선, 경의선 등이 건설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 X자형 간선 철도망 구축을 목표로 호남선, 경원선 등이 건설되었으며, 사철 건설 및 국유화가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남북 분단으로 철도가 분할되었고,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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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도

2. 역사

2. 1. 개화기 (1889년 ~ 1910년)

1889년 주미대리공사인 이하영이 서양의 철도 모형을 가지고 귀국하며 철도 부설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이에 철도의 효용성을 느낀 고종은 철도의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이때 정부는 사설 회사에 운영권을 주는 방식으로 건설하고자 하였다. 1896년 미국인 모스가 경인선의 부설을 추진했으나, 일본이 1899년에 이를 인수하여 같은 해 9월 18일에 경인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노량진 - 인천 구간을 개통했다. 바로 이 경인선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철도이다. 이후 일본 외의 외세 또는 한국인을 시켜 철도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대부분 일본이 인수해 개통했다.

1898년에는 미국이 추진했던 경부선의 부설권 또한 일제가 인수하여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세우고, 1901년 미국의 건설 장비를 사들여 착공했다. 1903년에 경부철도주식회사에 기존의 경인철도주식회사를 합병한 뒤, 1905년 1월에 개통하였다. 삼랑진-마산 구간인 마산선박기종의 영남지선철도회사에서 부설권을 얻었다가 일제가 경부철도주식회사로 매수해, 1905년에 군용철도로 개통하였다. 경의선은 프랑스 회사가 부설권을 얻었다가 한국인에게 넘어갔다가 일본이 러일 전쟁 때 부설하여 1906년에 완공하였다. 한편 1899년에 일종의 도시철도로서 서울전차가 개통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일본에 매각되었다.

2. 2. 일제강점기 (1910년 ~ 1945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고, 일제는 한반도를 X자로 종단하는 간선 철도를 계획하였다. 호남선은 서울-목포 간 경목선으로 계획되어 프랑스가 운영권을 요구하다가 한국인이 설치한 회사에 권리를 주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취소되어 1911년에 최초로 착공해 1914년에 완전 개통했다.[3] 경원선은 서울-원산-경흥(웅기)의 선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하여 한국인 박기종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착공했다가 자금이 없어 포기했고,[4] 일본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1910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완전 개통했다. 앞서 건설된 경부선경의선에 더하여 호남선경원선이 완공됨으로써 주요 간선이 완성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물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추가로 철도 노선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위 4개의 노선을 짓느라 재정적 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민간 자본이 사철을 건설한 뒤 이를 매수해 국유화하는 방법을 이용하려고 했다. 총독부는 1912년에 '조선경편철도령'을 발표하여 경편 철도의 건설을 명문화하였으며, 2년 뒤 사철 업체에 대한 보조금을 마련하되 총독부에서 사전 답사를 통해 지정한 '예정노선' 대로 건설한 경우에 우선적으로 지급하였는데, 최초에 해당 회사의 주가총액의 6%까지였던 보조율은 1918년과 그 이듬해에 각 7%·8%로 인상되었다.[5] 1920년에는 조선경편철도령이 조선사설철도령으로 개편되었으며, 이듬해 조선사설철도보조법의 등장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명문화되었다.[6]

1910년부터 한반도의 국유 철도를 운영하던 조선총독부 철도국1917년에 폐지되고, 국유 철도 운영이 남만주철도에 위탁되었다. 1923년에는 조선중앙철도·남조선철도·서선식산철도·조선삼림철도·조선산업철도·양강척림철도의 6개 회사가 합병해 조선철도로 발족하였다.

1925년에 남만주철도의 위탁 경영이 해제되었다. 1927년에 12년 동안 3억 2천만 엔을 들여 한반도 전체에 국유 철도망을 건설할 목적으로 '조선 철도 12년 계획'이 입안되는데, 이에 따라 총독부는 필요한 노선을 건설하고 이미 사철 회사가 운영중인 노선은 매수하여 국유화하기로 하였다.[7] 이때 조선철도경동선(慶東線)·경남선·전남선, 전북철도의 전북선, 개천철도의 개천선, 도문철도의 도문선이 매수되었다.[8]

위의 계획에 따라 1935년동해남부선을, 1936년부터 1942년까지 경경선을 건설하였다. 1944년경부선이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 복선화되었는데, 해방 전까지 이를 제외한 철도는 모두 단선이었다.

한편, 일본의 자본이 유입되며 사철은 지속적으로 건설되었다.

이중 수려·수인선은 1942년에 조선철도에 양도되어 경동선(京東線)으로 통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군수 물자 조달을 위해 일부 철도를 철거하고 다른 노선에 부설했다. 이때 금강산선, 안성선 안성-장호원, 경북선 예천-안동 등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노선은 공사를 계속 진행하였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당시 건설하던 동해중부선이나 영동선영주-철암 구간 등은 공사가 중단되었다.

2. 2. 1. 주요 간선 철도 건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일본에 편입되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고, 일제는 한반도를 X자로 종단하는 간선 철도를 계획하였다. 호남선은 서울-목포 간 경목선으로 계획되어 프랑스가 운영권을 요구하다가 한국인이 설치한 회사에 권리를 주었으나, 일본의 압력으로 취소되어 1911년에 최초로 착공해 1914년에 완전 개통했다.[3] 경원선은 서울-원산-경흥(웅기)의 선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하여 한국인 박기종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착공했다가 자금이 없어 포기했고,[4] 일본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1910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완전 개통했다. 앞서 건설된 경부선경의선에 더하여 호남선경원선이 완공됨으로써 주요 간선이 완성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물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추가로 철도 노선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위 4개의 노선을 짓느라 재정적 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민간 자본이 사철을 건설한 뒤 이를 매수해 국유화하는 방법을 이용하려고 했다. 총독부는 1912년에 '조선경편철도령'을 발표하여 경편 철도의 건설을 명문화하였으며, 2년 뒤 사철 업체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였다.[5] 1920년에는 조선경편철도령이 조선사설철도령으로 개편되었으며, 이듬해 조선사설철도보조법의 등장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명문화되었다.[6]

1927년에는 12년 동안 3억 2천만 엔을 들여 한반도 전체에 국유 철도망을 건설할 목적으로 '조선 철도 12년 계획'이 입안되는데, 이에 따라 총독부는 필요한 노선을 건설하고 이미 사철 회사가 운영중인 노선은 매수하여 국유화하기로 하였다.[7]

위의 계획에 따라 1935년동해남부선을, 1936년부터 1942년까지 경경선을 건설하였다. 1944년경부선이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 복선화되었는데, 해방 전까지 이를 제외한 철도는 모두 단선이었다.

2. 2. 2. 사설 철도 건설

조선총독부는 철도 건설 재정 여력 부족으로 민간 자본을 활용한 사철 건설 후 매수 방식을 택했다. 1912년 '조선경편철도령'으로 경편 철도 건설을 명문화하고, 사철 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율은 1918년과 그 이듬해에 각 7%·8%로 인상되었다.[5] 1920년에는 조선경편철도령이 조선사설철도령으로 개편되었으며, 이듬해 조선사설철도보조법으로 보조금 지급이 명문화되었다.[6]

여러 사설 철도 회사들이 철도를 건설했다.

1923년에는 조선중앙철도·남조선철도·서선식산철도·조선삼림철도·조선산업철도·양강척림철도의 6개 회사가 합병해 조선철도로 발족하였다. 1927년 '조선 철도 12년 계획'에 따라 총독부는 사철 회사가 운영중인 노선을 매수하여 국유화하기로 하였다.[7] 이때 조선철도경동선(慶東線)·경남선·전남선, 전북철도의 전북선, 개천철도의 개천선, 도문철도의 도문선이 매수되었다[8].

이후에도 사설 철도는 계속 건설되었다.

1942년 수려·수인선은 조선철도에 양도되어 경동선(京東線)으로 통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군수 물자 조달을 위해 금강산선, 안성선 안성-장호원, 경북선 예천-안동 등이 폐지되었다.

2. 3. 해방 이후 (1945년 ~ 현재)

1945년 8·15 해방 이후 철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어, 8월 24~26일 즈음에 남북간의 철도 연결 운행이 북측(당시는 소군정)에 의해 중단되었다.[10] 당시에 분단된 노선으로는 경의선, 경원선, 토해선[11]이 있다. 1946년에는 미군정이 정한 법률에 의해 사철인 충북선,경춘선,안성선,장항선,수려선,수인선이 국유화되었다.

북측은 협궤노선의 개궤에 착수하여 개천선표준궤로 개궤하였다. 남측은 영암선을 건설하여 당시 영동지방에 떨어져있던 철암선, 삼척선과 간선철도 중앙선의 연결 공사에 착수했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후 50년대에 완공했다. 한국 전쟁의 결과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을 관통하는 철도 구간이 아예 파괴되어 아예 선로 자체가 끊기게 되었다. 남측과 북측은 자국의 철도의 미싱링크를 연결하는 공사를 착수하여 남측은 충북선, 경전선을 연결하고 태백선등의 간설을 신설하였다. 북측은 청진과 나진을 바로 연결하는 평라선을 건설하고 평부선과 강원선을 잇는 청년이천선등이 건설되고 평덕선만포선을 연결하는 철도 등을 건설하였다.

2. 3. 1.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분단으로 끊어진 남북의 철도를 다시 연결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자 하는 사업이다.

2000년 6.15 남북 정상 회담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2003년에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공사가 시작되었고, 2007년에는 문산-개성 간 경의선 열차 시험 운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후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인해 사업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통해 남북 철도 연결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 선언을 통해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후 남북은 철도 공동 조사 및 착공식 등을 진행했지만,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사업 추진은 지연되고 있다.

남북 철도 연결은 단순한 교통망 연결을 넘어, 한반도 평화와 경제 협력,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공동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특히 끊어진 경의선동해선의 복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 및 통일의 초석이 될수 있을것으로 기대된다.

참조

[1] 뉴스 http://newslibrary.n[...]
[2] 뉴스 http://news.naver.co[...]
[3] 뉴스 1914년 호남선 철도 개통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11-01-10
[4] 뉴스 여명의 개척자들 박기종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4-03-24
[5] 서적 한국 철도의 역사와 발전 II BG북갤러리 2013
[6] 서적 한국 철도의 역사와 발전 II BG북갤러리 2013
[7] 서적 한국 철도의 역사와 발전 II BG북갤러리 2013
[8] 문서 경남선은 [[마산선]]과 통합해 [[경전선|경전남부선]]으로, [[전남선]]과 [[전북선]]은 [[경전북부선]]으로, [[경동선]](慶東線)은 [[대구선]]과 [[동해남부선]] 및 [[경경선]] 일부 구간으로 편입·개칭되었다.
[9] 문서 앞서 [[1923년]]에 [[조선철도]]에 통합된 남조선철도와는 다른 업체이다.
[10] 뉴스 "[광복 5년사 쟁점 재조명]<1부>⑪美-蘇의 ‘포고문 1호’"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4-11-01
[11] 문서 토해선은 [[개성]]의 당시 [[토성역]]과 [[해주]]의 [[해주역]]을 잇던 철도였다. 1945년 남북 분단 당시, 개성은 남측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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