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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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야 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가야 각 지역에 조성된 고분군을 아우르는 유적이다. 초기에는 목관묘가, 이후 목곽묘, 석곽묘 순으로 묘제가 변화하며 가야 사회의 발전과 계층 분화를 보여준다. 특히 5세기에는 고총이 등장하고, 대가야가 가야를 주도하며 왕릉급 고총이 축조되기도 했으나, 562년 신라에 정복되면서 가야 고분군 조성이 중단되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등 7개의 고분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 (iii)을 충족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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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고분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위치 | 대한민국 |
등재 기준 | (iii) |
지정 번호 | 1666 |
등재 연도 | 2023년 |
상세 정보 | |
설명 | 가야의 고분군 |
구성 | 고령 지산동 고분군 |
면적 | 189 ha (완충 지대 967.84 ha) |
구성 고분군 | |
명칭 | |
한국어 | 가야 고분군 |
영어 | Gaya Tumuli |
프랑스어 | Tumuli de Gaya |
2. 가야 고분군의 역사
가야 고분군은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 연맹의 영역 내에 있으며, 과거 정치적 중심지 부근의 높은 곳에 위치한다. 각 고분군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축조된 묘들이 밀집되어 있다. 고분군의 지리적 분포, 경관의 특징, 매장 방식(묘제), 토기 등의 부장품을 통해, 각국이 문화적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평등하게 존재했던 가야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2]
한국에는 780곳 이상, 수십만 기에 달하는 가야 관련 고분군이 존재한다. 중앙 집권화된 국가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공존했던 가야 각국은 각 지역에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했다. 이 고분군은 기원 전후 시기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 고분 안의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물은 가야의 국제 관계를 반영한다.[4]
2023년 9월 제45회 세계 유산 위원회는 가야 고분군을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인정하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여 한국의 16번째 세계 유산으로 등재했다.[3]
가야 고분군은 1~2세기의 형성기, 3~4세기의 발전기, 5세기의 확장기, 6세기의 쇠퇴기로 구분된다.
2. 1. 형성기 (1~2세기)
1~2세기는 가야의 성립에 따른 가야고분군의 형성기로, 이 시기의 묘제는 목관묘이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묘는 입지에 구별이 없고, 고분군의 역내에 혼재되어 있지만, 상위 지배층의 묘 목관의 하부에는 부장품을 놓기 위한 별도의 공간을 설치하기도 했다.[4]2. 2. 발전기 (3~4세기)
3~4세기는 왕과 지배층의 고분으로 이루어진 중심 고분군이 출현하는 시기로, 이 시기의 묘제는 목곽묘이다. 가야의 왕묘는 구릉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는 특징을 가지며, 목곽묘 내부에는 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물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유물이 부장되었다. 이는 생전의 부를 과시하고, 사후의 안락을 기원하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고분의 입지, 규모와 부장품을 통해, 엄격한 신분 질서에 기초한 가야 사회의 계층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이며,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량의 철제 무기, 철기와 대외 교역품은 금관가야가 이 시기 가야의 주도 세력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4]2. 3. 확장기 (5세기)
5세기는 가야 각지에 정체가 성장하고, 중심 고분군이 넓어지는 시기로, 이 시기의 묘제는 석곽묘이다. 특히 이 시기는 고분군의 축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흙과 돌을 활용하여 봉분을 높이 쌓아올린 "고총"이 출현했다. 왕과 상위 지배층의 묘인 고총은,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다. 이 시기의 왕과 지배층의 묘에는, 장신구나 무기류 등의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품이 부장품이 되고, 다수의 순장자를 각종 생활 용품과 함께 매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소형 묘에는 유물이 적고, 순장자가 확인되지 않는다. 고분의 입지와 규모, 부장품을 통해, 가야 사회의 계층 분화가 가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4]5세기 후반이 되면,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는 또 다른 왕릉 묘역이 축조되고, 40명 이상의 순장자가 매장된 고총도 출현했다. 왕릉급 고총의 출현으로, 대가야가 가야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왕릉급 고총의 축조와 묘역의 분리 현상은, 가야가 고대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에 정복되면서, 가야가 멸망하고, 가야고분군의 축조도 멈추었다.[4]
2. 4. 쇠퇴기 (6세기)
5세기는 가야 각지에 정체가 성장하고, 중심 고분군이 넓어지는 시기로, 이 시기의 묘제는 석곽묘이다. 특히 이 시기는 고분군의 축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흙과 돌을 활용하여 봉분을 높이 쌓아올린 "고총"이 출현했다. 왕과 상위 지배층의 묘인 고총은,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다. 이 시기의 왕과 지배층의 묘에는, 장신구나 무기류 등의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품이 부장품이 되고, 다수의 순장자를 각종 생활 용품과 함께 매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소형 묘에는 유물이 적고, 순장자가 확인되지 않는다. 고분의 입지와 규모, 부장품을 통해, 가야 사회의 계층 분화가 가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4]。5세기 후반이 되면,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는 또 다른 왕릉 묘역이 축조되고, 40명 이상의 순장자가 매장된 고총도 출현했다. 왕릉급 고총의 출현으로, 대가야가 가야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왕릉급 고총의 축조와 묘역의 분리 현상은, 가야가 고대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에 정복되면서, 가야가 멸망하고, 가야고분군의 축조도 멈추었다[4]。
3. 가야 고분군의 특징
가야 고분군은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 연맹의 독특한 정치 체제와 사회 구조, 그리고 활발했던 대외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780곳이 넘는 가야 관련 고분군 중에서도 7곳의 고분군은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인정받아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3]
가야는 중앙 집권화된 국가 체제를 구축하지 않고, 각 지역별로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했다. 이 고분들은 기원 전후 시기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4]
3. 1. 독자적인 정치 체제
가야 고분군은 서기 1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가야라는 국가 연맹의 영역 내에 있으며, 모두 과거의 정치적 중심지에 가까운 높은 곳에 위치한다. 각 고분군의 역내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축조된 밀집된 묘가 있으며, 고분군의 지리적 분포, 경관의 특징, 매장의 종류(묘제), 토기 등의 부장품을 통해, 각국이 문화적인 공통점을 공유하면서, 정치가 서로 독립하여 평등하게 존재했던 가야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형식의 묘의 도입 및 고분의 공간 계층의 강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가야의 사회 구조 변용을 반영하고 있다.[2]3. 2. 사회 계층 분화
3~4세기는 왕과 지배층의 고분으로 이루어진 중심 고분군이 출현하는 시기로, 이 시기의 묘제는 목곽묘한국어이다. 가야의 왕묘는 구릉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는 특징을 가지며, 목곽묘 내부에는 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물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유물이 부장되는데, 이는 생전의 부를 과시하고, 사후의 안락을 기원하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고분의 입지, 규모와 부장품을 통해, 엄격한 신분 질서에 기초한 가야 사회의 계층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이며,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량의 철제 무기, 철기와 대외 교역품은 금관가야한국어가 이 시기 가야의 주도 세력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4]5세기는 가야 각지에 정체가 성장하고, 중심 고분군이 넓어지는 시기로, 이 시기의 묘제는 석곽묘이다. 특히 이 시기는 고분군의 축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흙과 돌을 활용하여 봉분한국어을 높이 쌓아올린 "고총"이 출현했다. 왕과 상위 지배층의 묘인 고총은,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다. 이 시기의 왕과 지배층의 묘에는, 장신구나 무기류 등의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품이 부장품이 되고, 다수의 순장자를 각종 생활 용품과 함께 매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소형 묘에는 유물이 적고, 순장자가 확인되지 않는다. 고분의 입지와 규모, 부장품을 통해, 가야 사회의 계층 분화가 가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4]
3. 3. 대외 교류
가야 고분군 안에는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물이 있으며, 이는 가야의 국제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4]。3~4세기 가야의 왕묘는 구릉 정상부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는 특징을 가지며, 목곽묘 내부에는 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물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유물이 부장되었다[4]。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량의 철제 무기, 철기와 대외 교역품은 금관가야가 이 시기 가야의 주도 세력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4]。4. 구성 유산
가야고분군은 경상남도의 김해시, 함안군, 합천군, 고성군, 창녕군과 경상북도 고령군,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7개의 고분군이다.
ID[5] | 명칭 | 그림 | 소재지[6] | 면적 | 완충 지대 면적 | 해설・특징[7] |
---|---|---|---|---|---|---|
1666-001 | 김해 대성동 고분군 | ![]() | 경상남도 김해시 | 3.06ha | 52.17ha | 금관가야의 지배층 묘 |
1666-002 | 함안 말이산 고분군 | ![]() | 경상남도 함안군 | 40.28ha | 211.63ha |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의 묘 |
1666-003 | 합천 옥전 고분군 | -- | 경상남도 합천군 | 14.47ha | 115.54ha | 2천 개 이상의 보석이 출토 |
1666-004 | 고령 지산동 고분군 | ![]() | 경상북도 고령군 | 84.41ha | 256.44ha | 대가야의 지배층 묘 |
1666-005 | 고성 송학동 고분군 | 경상남도 고성군 | 3.16ha | 49.39ha | 소가야의 왕과 지배층의 묘 | |
1666-006 |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 ![]()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 9.52ha | 98.74ha | 가야와 백제의 흔적이 함께 나타나는 고분군 |
1666-007 |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 경상남도 창녕군 | 34.1ha | 183.93ha |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층의 묘 |
4. 1.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김해)
금관가야의 지배층 묘로,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하고 있다. 유네스코 ID는 1666-001이다. 면적은 3.06ha이며, 완충 지대 면적은 52.17ha이다. 좌표는 이다.[5][6][7]
4. 2.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함안)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의 묘이다.[7] 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40.28ha이고, 완충 지대 면적은 211.63ha이다. 좌표는 이다.[6]
4. 3. [[합천 옥전 고분군]] (경남 합천)
합천 옥전 고분군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가야 시대의 고분군이다. 2천 개 이상의 보석이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7] 면적은 14.47ha, 완충 지대 면적은 115.54ha이다. 좌표는 이다.[5][6]
4. 4.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북 고령)
대가야의 지배층 묘이다.[7]
UNESCO ID | 한국어 명칭 | 영어 명칭 | 위치 | 사진 |
---|---|---|---|---|
1666-004 | 고령 지산동 고분군 | Jisan-dong Tumuli | 고령군, 경상북도 |
ID[5] | 명칭 | 그림 | 소재지[6] | 면적 | 완충 지대 면적 | 해설・특징[7] |
---|---|---|---|---|---|---|
1666-004 | 고령 지산동 고분군 | ![]() | 경상북도 고령군 | 84.41ha | 256.44ha | 대가야의 지배층 묘 |
4. 5.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소가야의 왕과 지배층의 묘로, 경상남도 고성군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3.16ha이며, 완충 지대 면적은 49.39ha이다. 좌표는 이다.
4. 6.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전북 남원)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가야와 백제의 흔적이 함께 나타나는 고분군이다.[7]
ID[5] | 명칭 | 그림 | 소재지[6] | 면적 | 완충 지대 면적 | 좌표 |
---|---|---|---|---|---|---|
1666-006 |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 9.52ha | 98.74ha |
4. 7.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창녕)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층의 묘로 경상남도 창녕군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34.1ha이고, 완충 지대 면적은 183.93ha이다. 좌표는 이다.[5][6][7]
5. 세계유산 등재
가야 고분군은 2023년 9월 제45회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 "동아시아의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인정되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 한국의 16번째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3]
5. 1. 등재 기준
가야 고분군은 문화유산의 세계유산으로서 다음의 등록 기준을 충족한다고 여겨진다.-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하거나 특출한 증거.
5. 2. 등재 의의
가야고분군은 1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가야라는 국가 연맹의 영역 내에 있으며, 모두 과거의 정치적 중심지에 가까운 높은 곳에 위치한다. 각 고분군의 역내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축조된 밀집된 묘가 있으며, 고분군의 지리적 분포, 경관의 특징, 매장의 종류(묘제), 토기 등의 부장품을 통해, 각국이 문화적인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독립된 평등한 정치 체제를 유지했던 가야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형식의 묘 도입 및 고분의 공간 계층 강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가야 사회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2]이 7곳의 고분군은 고대 가야 지역의 대표적인 고분군이지만, 한국에 있는 가야 관련 고분군은 총 780곳 이상이며, 고분의 수는 수십만 기에 달한다. 중앙 집권화된 국가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공존했던 가야 각국은 각 지역에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했다. 이 고분군은 기원 전후 시기부터 마지막 가야 국가인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 또한 고분 안에 있는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물은 가야의 국제 관계도 반영하고 있다.[4]
2023년 9월 제45회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는 "동아시아의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인정되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 한국에서 16번째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3]
참조
[1]
웹사이트
Gaya Tumuli
https://whc.unesco.o[...]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2023-09-18
[2]
웹사이트
Gaya Tumuli
https://whc.unesco.o[...]
2023-12-20
[3]
웹사이트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됐다…16번째 지정
https://www.yonhapne[...]
2023-09-20
[4]
웹사이트
한국의 세계유산 - 가야고분군
https://www.heritage[...]
2023-12-20
[5]
웹사이트
Gaya Tumuli - maps
https://whc.unesco.o[...]
2023-12-20
[6]
웹사이트
세계유산위, 가야고분군 동아시아 문명 다양성 가치 인정
https://newspim.com/[...]
2023-09-17
[7]
웹사이트
세계유산 가치 인정받은 '가야고분군' 7곳 특징과 주요 유물은
https://www.yna.co.k[...]
2023-05-11
[8]
웹인용
유네스코 등재유산 > 세계유산 > 한국의 세계유산 > 가야고분군
https://www.heritage[...]
2023-09-18
[9]
웹인용
Gaya Tumuli - Maps
https://whc.unesco.o[...]
2023-09-01
[10]
뉴스
"[그래픽]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https://www.yna.co.k[...]
2023-09-17
[11]
뉴스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됐다…16번째 지정
https://www.yonhapne[...]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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