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근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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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근대 건축물은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양한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1888년 대불호텔을 시작으로, 서울 구 러시아 공사관, 약현성당 등 서양식 건축물이 도입되었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독립문,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이 건립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청, 부산역, 조선은행 본관 등이 일제의 식민 통치와 수탈의 상징으로 세워졌다. 1920년대에는 서울역, 경성부청,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1930년대에는 전남도청 본관, 신세계백화점 등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현재까지 보존되어 역사적 가치를 지니며 활용되고 있다.
개항 이후 조선에는 서양식 건축 기술과 양식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외국 공사관, 성당, 호텔 등 서양인들의 활동과 관련된 건물들이 먼저 지어졌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서구 열강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서양식 건축 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이는 개화기에 시작된 서양식 건축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 결과였다.
2. 조선 시대
2. 1. 주요 건축물
3. 대한제국 시대
대표적인 종교 건축물로는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E. G. Costefra)가 설계한 고딕 양식의 명동성당(1898년 완공)과 로베르(A. P. Robertfra) 신부가 설계한 계산성당(1902년 완공), 그리고 일본인 건축가 요시자와 도모타로(吉澤友太郞jpn)가 설계한 정동교회(1898년 완공) 등이 있다. 궁궐 건축에서도 서양식 요소가 받아들여져 덕수궁 안에 정관헌(1900년 완공)과 중명전(1901년 완공)이 들어섰으며, 특히 영국인 건축가 하딩(J. R. Hardingeng)이 설계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전(1909년 완공)은 이 시기 서양식 궁정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정부 기관 건물 역시 서양식으로 지어졌는데, 탁지부 건축소에서 설계한 대한의원(1907년 완공)과 광통관(1909년 완공)이 대표적이다. 외교 공관 건물로는 구 벨기에 영사관(1905년 완공) 등이 세워졌다. 이 외에도 목포의 구 목포 일본영사관(1900년 완공), 인천광역시 중구의 공화춘(1905년 완공, 현 짜장면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서양식 또는 절충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던 부산 우편국(1910년 완공)처럼 현재는 사라진 건물도 있다. 이처럼 대한제국 시대는 전통 건축과 함께 다양한 서양 건축 양식이 공존하며 근대적인 도시 경관을 형성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
3. 1. 주요 건축물
준공년 | 건물명 | 설계자 | 양식 | 소재 | 문화재 | 비고 |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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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 독립문 | - | - | 서울 서대문구 | 사적 | 서재필, 윤치호 등이 중심이 되어 모금 운동을 벌여 건설됨. | ![]() |
1898년 | 명동성당 | E. G. Coste|코스트fra | 고딕 | 서울 중구 | 사적 | ![]() | |
1898년 | 정동교회 | 吉澤友太郞|요시자와 도모타로jpn | 고딕 | 서울 중구 | 사적 | ||
1900년 | 목포 일본영사관 | - | - | 목포시 | 사적 | 일제강점기 침략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짐. | |
1900년 | 정관헌 | - | - | 서울 중구 | 사적 |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외교 사절을 접견하던 곳. | |
1901년 | 중명전 | - | - | 서울 중구 | 사적 |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극의 현장. | ![]() |
1902년 | 계산성당 | A. P. Robert|로베르fra | 고딕 | 대구 중구 | 사적 | ![]() | |
1905년 | 벨기에 영사관 | 小屋|고다마jpn | 고전주의 | 서울 관악구 | 사적 | ![]() | |
1907년 | 대한의원 | 탁지부 건축소 | 고전주의 | 서울 종로구 | 사적 | ![]() | |
1909년 | 광통관 | 탁지부 건축소 | - | 서울 중구 | 서울시 기념물 | ![]() | |
1909년 | 석조전 | J. R. Harding|하딩eng | 신고전주의 | 서울 중구 | 사적 | ![]() |
4.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한반도에 서양식 건축 양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일본의 영향 아래 근대 건축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이다. 이 시기 건축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라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통치 목적의 관공서, 금융기관, 교통 시설 건설이 두드러졌다. 동시에 근대 교육의 확산과 도시 발전에 따라 학교, 병원, 백화점, 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초기(1910년대)에는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식민 통치 기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등 경제 수탈을 위한 시설들이 주로 건설되었다. 일본인 건축가들이 설계를 주도하며 신고전주의, 르네상스 등 서양의 역사주의 양식을 차용해 권위적인 외관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조선은행 본점, 진해우체국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건축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경성역, 경성부청, 조선총독부 청사와 같은 대규모 관공서 건축이 계속되었고, 연세대학교의 스팀슨관,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중앙고등학교 교사, 고려대학교 본관 등 근대 교육 시설들이 캠퍼스 형태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같은 종교 건축물, 미쓰코시 백화점, 명치좌와 같은 상업 및 문화 시설도 등장하여 도시 경관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 시기에는 박길룡, 박동진과 같은 한국인 건축가들도 활동을 시작했으며, 건축 양식도 고딕, 로마네스크, 아르데코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1940년대는 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건축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건물(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다산관) 등이 이 시기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축물 중 상당수는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여겨져 해방 이후 철거되거나 용도가 변경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경복궁 앞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민족 정기 회복 차원에서 1995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이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는 건물들도 많다. 이들 건축물은 한국 근대사의 아픔과 변화를 증언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4. 1. 1910년대
(辰野金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