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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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오스의 종교는 불교가 가장 우세하며, 타이 민속 종교, 기독교, 이슬람교, 바하이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불교는 8세기부터 라오스에 전래되어 14세기경에 널리 퍼졌으며, 상좌부 불교가 주류를 이룬다. 타이 민속 종교는 라오스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다신교적 성격을 띤다. 기독교는 소수 종교이나, 개신교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라오스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정부의 통제와 간섭, 특히 소수 종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201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불교도가 가장 많고, 무종교, 기독교 순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민속 종교 신자의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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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종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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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종교 (2015년 퓨 연구센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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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 66.0 |
타이 민속 종교 | 30.7 |
기독교 | 1.5 |
그 외 종교/미언 | 1.8 |
종교 자유 | |
보고서 | 국제 종교 자유 보고서 2007 |
출처 | 미 국무부 |
2. 역사
라오스의 종교 역사에서 불교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8세기경 몽족 승려들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으며, 14세기 란쌍 왕국 시기에 상좌부 불교가 널리 퍼지며 주요 종교로 자리 잡았다.[5] 라오스의 역대 왕들은 불교 발전에 중요한 후원자 역할을 수행했다.[5]
20세기 중반 이후,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불교는 큰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 말부터 파테트라오는 민중에게 영향력이 큰 승가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시도했으며, 이는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6] 1975년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수립 이후, 공산주의 정부는 불교를 통제하려 했고,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의 양립 가능성을 선전하면서도 실제로는 종교 활동을 억압하고 승가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7] 이 시기 많은 승려들이 환속하거나 해외로 망명했으며, 불교 활동은 전반적으로 위축되었다.[7]
그러나 1979년 이후 정부의 정책 변화와 1980년대 말 경제 개혁의 영향으로 불교는 점차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7][8] 사원에 대한 기부가 늘고 각종 불교 축제와 의례가 다시 활성화되었으며, 승려 수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8]
2. 1. 초기 불교 전래와 발전

라오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8세기경으로, 몽족 출신의 불교 승려들을 통해 이루어졌다.[5] 이후 14세기 란쌍 왕국 시대에 이르러 상좌부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5] 라오스의 역대 왕들 중 다수는 불교의 중요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5]
라오스 남부에는 크메르 제국 시대의 불교 유적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왓푸 사원이다. 이 사원은 본래 힌두교의 신 시바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으나, 이후 불교 사원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2. 2. 공산주의 정권과 종교 탄압
1950년대 말부터 파테트라오는 라오스 민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승가(불교 공동체)를 이용하기 위해 승려들을 좌익 사상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했다.[6] 당시 왕실 정부는 승가를 행정 체계 아래 두고 개발 사업 등에 참여시키려 했지만, 여러 면에서 파테트라오의 접근이 더 성공적이었다.[6] 정치학자 마틴 스튜어트폭스는 이러한 성공의 원인으로 라오스 지배층이 왕실, 행정부, 승가를 효과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6] 또한 귀족에 대한 민중의 불만, 승가 내부의 분열, 종교 교육의 질적 저하, 서구 세력에 대한 반감 등이 겹치면서 많은 승려들이 파테트라오의 주장에 동조하게 되었다.[6] 승가의 정치화는 그 위상을 떨어뜨렸지만, 파테트라오는 이를 통해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혔고, 이는 1975년 공산 정권 수립의 밑거름이 되었다.[7]1975년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이 수립된 후, 새 정부는 불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7] 정부는 정치 세미나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와 불교 모두 평등을 추구하고 고통을 끝내려는 목표를 가졌기에 근본적으로 양립 가능하다고 선전했다.[7] 하지만 실제로는 종교 활동에 대한 지출을 '낭비'로 규정하며 억제했고, 일부 승려들은 정치 재교육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설교가 금지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7]
정부는 승려들의 사유재산 포기가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과 가깝다고 주장했지만,[7] 불교의 분리와 비물질주의 원칙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개발 논리와 명백히 충돌했다. 또한 공덕을 쌓기 위한 신자들의 종교적 기부는 국가 재원을 낭비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7] 결국 정부는 표면적으로 불교에 관용을 베푸는 듯하면서도, 승려들에게 당의 선전을 강요하고 전통적인 마을 활동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승가의 권위와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켰다.[7]
이러한 정치적 압박 속에서 많은 승려들이 환속(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속세로 돌아감)하거나 태국으로 망명했다.[7] 일부 친(親)파테트라오 성향의 승려들은 정부가 새로 만든 '라오스 불교 연합'에 참여하여 기존의 종교 위계질서를 대체했다.[7] 승려로 출가하는 남성과 소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많은 사원(왓)들이 비게 되었다.[7] 지역 정치 간부들의 감시 속에서 주민들은 불이익을 우려하여 종교 의식 참여를 꺼리게 되었다.[7]
라오스 불교의 쇠퇴는 1979년경 정점에 달했으나, 이후 정부가 전략적으로 자유화 정책을 펴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7] 승려의 수는 점차 증가했지만, 1993년까지도 여전히 비엔티안을 비롯한 메콩강 유역 도시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7] 불교 학교들은 유지되었지만, 커리큘럼에는 상당한 정치적 내용이 포함되었다.[7] 당 간부들도 불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가까운 친척이 사망했을 때 일시적으로 출가하는 것이 허용되었다.[7] 그러나 승가의 종교적 수준이나 규율 준수는 1975년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8]
1980년대 말부터는 정치적 완화와 더불어 경제 개혁의 영향으로 사원에 대한 기부와 불교 축제 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8] 마을 축제는 더욱 화려해졌고, 한때 3일로 제한되었던 탓루앙 축제도 일주일간 열리게 되었다.[8] 마을 단위의 출가도 늘어났으며, 승려가 주관하는 가정의례 역시 다시 활성화되었다.[8]
2. 3. 개혁 개방과 종교 정책 변화
라오스 불교의 쇠퇴는 1979년경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이때부터 전략적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었다.[7] 이 시기 이후 승려 수가 점차 증가했지만, 1993년 기준으로 비엔티안과 메콩강 유역 도시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7] 이들 도시의 불교 학교는 유지되었으나, 커리큘럼에는 상당한 정치적 내용이 포함되었다.[7] 당의 관료들도 불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심지어 가까운 친척이 사망했을 경우 공덕을 쌓기 위해 승려로 서품을 받기도 했다.[7] 그러나 승가의 종교적 이해 수준이나 정통성은 1975년 이전과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아, 당시 많은 이들로부터 시대에 뒤떨어지고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8]1980년대 말부터는 정치적 완화와 더불어 경제 개혁의 영향으로 와트에 대한 기부와 불교 축제 참여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8] 마을 및 교외 지역의 축제들이 더욱 화려해졌고, 1986년까지 3일로 제한되었던 탓루앙 축제 및 장터도 일주일간 열리게 되었다.[8] 마을 수준에서의 서품(승려가 되는 의식) 역시 증가하였으며,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던 가정 축원 행사도 다시 활성화되었다.[8]
3. 주요 종교
라오스에서 가장 널리 믿어지는 종교는 상좌부 불교이다. 전국적으로 약 5천 개의 사원(왓)이 있으며, 이들은 종교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한다.[3] 많은 라오스 남성들은 일생의 일부를 사원에서 사미로 보내는 경험을 한다.[3] 라오스 불교는 비엔티안에 본부를 둔 교단의 감독 하에 있으며, 라오스 양식의 스투파인 탓루앙은 국가적으로 신성시되는 불교 기념물이다.[3][6]
불교 외에도 타이 민속 종교(정령 신앙), 기독교, 이슬람교, 바하이교 등 다양한 소수 종교가 존재한다. 특히 저지 라오스인보다는 고지 라오스인과 구릉지 라오스인 사이에서 민속 종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난다. 기독교는 주로 로마 가톨릭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라오스 복음교회 등 소수 종파를 중심으로 신자가 있으며, 이슬람교와 바하이교 신자도 소수 존재한다.[3]
3. 1. 불교
불교는 라오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종교로, 대부분 상좌부 불교를 따른다.[3][9] 라오스 불교는 8세기경 몽족 출신 승려들에 의해 처음 전파되었으며, 14세기 무렵 널리 퍼지게 되었다.[5] 역사적으로 라오스의 여러 왕들은 불교의 중요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5]
20세기 중반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불교는 큰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 말부터 파테트라오는 승가(승려 집단)를 좌익 사상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했으며, 이는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6] 이는 당시 왕실 정부가 승가를 효과적으로 통합하지 못하고, 귀족 계층에 대한 불만이 높았으며, 승가 내부 분열과 교육 수준 저하, 서구 세력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6] 이러한 승가의 정치화는 일부 신자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비쳤으나, 결과적으로 파테트라오의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히고 1975년 정권 교체에 영향을 미쳤다.[7]
1975년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수립 이후, 새로운 정부는 불교에 대한 통제를 시도했다. 정부는 마르크스주의와 불교가 평등을 추구하고 고통을 끝내려는 공동 목표를 가지므로 양립 가능하다고 선전했지만,[7] 실제로는 종교 활동에 대한 지출을 '낭비'로 규정하고 일부 승려를 재교육하거나 설교를 금지하는 등 통제를 강화했다.[7] 승려의 사유재산 포기는 공산주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불교의 비물질주의적 가르침은 경제 개발 목표와 충돌했고, 공덕을 쌓기 위한 기부는 국가 재원 낭비로 여겨졌다.[7] 정부는 승려들에게 당의 선전을 강요하고 전통적인 마을 활동에서 배제함으로써 승가의 권위를 약화시키려 했다.[7]
이 시기 많은 승려들이 승가를 떠나거나 태국으로 망명했으며, 서임을 받는 사람의 수가 급감하고 많은 사원이 비게 되었다. 종교 의식 참여도 줄어들었다.[7] 그러나 1979년경부터 시작된 정부의 점진적인 자유화 정책과 1980년대 말 경제 개혁은 불교의 회복을 가져왔다.[7][8] 승려 수가 다시 증가하고, 사원에 대한 기부와 축제 참여가 활발해졌다.[8]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불교 기념물인 탓루앙의 축제 기간도 다시 늘어났다.[6][8]
오늘날 라오스에는 약 5천 개의 사원이 있으며, 이는 종교적 중심지일 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3] 라오스 불교는 공식적으로 1975년 이후 마하 니카야 종파로 통합되었지만, 담마유니카 니카야 종파 역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3]
3. 1. 1. 불교와 사회

상좌부 불교는 라오스에서 가장 널리 퍼진 종교이며, 약 5천여 개의 사원(왓)은 종교 활동의 중심일 뿐 아니라, 특히 농촌 지역에서 공동체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한다.[3] 라오스 저지대 마을에서는 종교적 관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으며, 대부분의 불교 신자 남성들은 일생의 일부, 때로는 며칠이라도 사원에서 사미로 지내는 경험을 한다.[3]
라오스에는 약 22,000명의 승려가 있으며, 이 중 약 9,000명은 사원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고승이다.[3] 또한 약 450명의 비구니가 있는데, 이들은 주로 배우자가 없는 노년 여성들로 전국 사원에 거주한다.[3] 라오스 불교 교단은 비엔티안에 본부인 '호 탐마사팟'(Ho Thammasaphat)을 두고 있으며, 승왕의 감독 아래 운영된다.[3] 라오스 불교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주변 국가들처럼 상좌부 불교에 속한다.[9][5]
라오스 양식의 스투파인 탓루앙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불교 기념물로, 매년 11월 국경일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6]
저지대 라오스인에게 왓(사원)은 학교와 더불어 마을 생활의 두 중심축 중 하나이다.[6] 왓은 마을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각종 행사와 축제가 열리는 공간을 제공한다.[6] 과거 세속적인 학교가 설립되기 전에는 마을 소년들이 왓의 승려들에게 기초 교육을 받았다. 거의 모든 저지대 마을에는 최소 하나, 때로는 두 개의 왓이 있다.[6] 왓은 기본적으로 승려와 비구들이 머무는 거처(비하라)와 불상을 모신 본당을 갖추고 있으며, 본당은 기도 장소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회의 장소로도 사용된다.[6] 왓의 건물은 마을 주민들의 재정 능력과 기여에 따라 단순한 목재나 대나무 구조에서부터, 화려한 벽화와 전설 속 나가(Naga)의 형상을 본뜬 기와로 장식된 크고 웅장한 벽돌 및 콘크리트 건물까지 다양하다.[6] 왓의 재정 및 운영은 존경받는 마을 연장자들로 구성된 행정 위원회가 담당한다.[6]
불교 행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기념되지는 않지만, 장례식은 중요한 의례로 여겨진다.[6] 장례식은 가정 형편에 따라 화려하게 치러지기도 하지만, 농촌에서는 비교적 소박하게 진행된다.[6] 고인의 시신은 며칠간 집 안 관에 안치되며, 이 기간 동안 승려들이 방문하여 기도를 올리고, 조문객들은 유족에게 예를 표하며 음식과 음료를 나눈다.[6] 이후 시신은 장례 장소로 옮겨져 승려들의 기도 속에 화장된다.[6] 유해는 왓 경내의 작은 성소에 안치된다.[6]
1975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마하 니카야 종파로 통합되었으나, 명상과 규율을 강조하는 담마유니카 니카야 종파 역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비엔티안의 일부 사원에서 그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3]
비엔티안에는 대승 불교 사원 네 곳이 있는데, 두 곳은 베트남인 공동체, 다른 두 곳은 중국인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다.[3] 베트남, 중국, 인도 등지의 승려들은 자유롭게 이 사원들을 방문하여 종교 활동을 한다.[3] 다른 도시 지역에도 최소 네 곳의 큰 대승 불교 사원이 있으며, 베트남 및 중국 국경 인근 지역에는 소규모 대승 불교 사원들이 존재한다.[3]
3. 2. 타이 민속 종교
타이 민속 종교(ສາສນາຜີ|sasna philo, "영혼들의 종교")는 라오스 인구의 약 30.7%[10]가 믿는 토착 민족 종교들을 아우르는 용어이다.[11][12] 이 종교는 주로 정령 숭배, 조상 숭배, 샤머니즘 등이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 저지 라오스인보다는 고지 라오스인과 구릉지 라오스인 집단에서 주로 신봉된다.라오스인들의 삶에는 '피'(phi)라고 불리는 영혼에 대한 믿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13] 이 '피'는 자연 만물이나 특정 장소에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며, 사람들의 건강, 질병, 공동체 관계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된다.[13] 이러한 영혼 신앙은 불교와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일부 사원에서는 악령을 쫓는 능력을 지닌 승려를 존경하거나, 사원 구내에 영혼을 위한 작은 집(영혼의 집)을 마련하기도 한다.[13]
많은 저지 라오스인들은 사람이 32개의 영혼, 즉 '콴'(khwan)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믿는다.[13] 몸에서 '콴'의 일부가 떠나가면 병에 걸린다고 생각하며, 이때 '수콴'(soukhwan) 또는 '바키'(baci)라고 불리는 의식을 행한다.[13] 이 의식은 떠나간 영혼들을 다시 불러 모아 건강과 번영,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참가자의 팔에 면사를 묶어 '콴'이 몸에 머물도록 하는 절차가 포함된다.[13] '수콴' 의식은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손님맞이, 여행 전후, 결혼식, 작명식 등 다양한 상황에서 행해진다.[14]
라오스인들은 사고나 폭력으로 죽은 이들의 '콴'은 환생하지 못하고 악령('피 페투', phi phetu)이 된다고 믿기도 하며,[15] 숲의 정령 등 다양한 종류의 '피'를 경외한다.[15] 이러한 정령들에게는 닭고기나 쌀술 등을 제물로 바쳐 호의를 구하고 도움을 얻으려 한다.[15] 각 마을에는 공동체를 지키는 수호 정령('피 반', phi ban)이 있다고 믿으며, 매년 제사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15] 이 제사는 마을의 정령 전문가가 주관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사회적 의미도 지닌다.[15] 과거에는 농사철 시작 전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 흔했으나, 1960년대 말 라오스 공산 정부의 통제 하에 억압받기도 했다.[15]
타이 민속 종교는 라오스 내 여러 민족 집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 고지대와 구릉지대 민족들에게는 조상 숭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15] 크무족, 라메트족, 몽족 등 각 민족은 고유한 정령 신앙과 의례를 가지고 있다.
3. 2. 1. 민족별 민속 종교
타이 민속 종교(ສາສນາຜີ|sasna philo, "영혼들의 종교")는 라오스 인구의 30.7%[10]가 따르는 민족 종교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11][12] 이 종교는 범신론적 다신교이며, 샤먼 계층과 관련이 있다. 이 범주에는 라오스인 및 그 외 타이카다이인, 크무족, 몬크메르인의 전통뿐만 아니라, 몽몐인 (몽족 신앙, 야오족 도교), 티베트버마인, 그 외 라오스 내 여러 민족 집단의 종교들이 포함된다.[12] 라오스인 중에서는 저지 라오스인과 라오 룸[11] 등은 대부분 불교를 믿지만, 고지 라오스인, 구릉지 라오스인 등은 대부분 민속 종교를 따른다.저지 라오스인과 일부 고지 라오스인 사이에서 불교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애니미즘 신앙은 라오스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13] '피'(phi, 영혼)에 대한 믿음은 많은 라오스인들의 자연 및 공동체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질병이나 불행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13] 영혼 신앙은 불교와 융합되어 나타나는데, 특히 마을 단위에서 두드러진다. 일부 승려들은 병자나 특정 장소에서 악령을 퇴치하는 능력으로 존경받기도 한다.[13] 많은 사원(왓) 구내에는 작은 영혼의 집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는 선한 영혼의 성소인 '피 쿤 왓'(phi khoun wat)과 관련이 있다.[13]
'피'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다양하다.[13] 일부는 땅, 하늘, 불, 물과 같은 자연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13] 많은 저지 라오스인들은 자신들이 32개의 영혼인 '콴'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는다.[13] 질병은 이 콴 중 일부가 몸을 떠날 때 발생한다고 여겨지며, '바키'(baci)라고도 알려진 '수콴'(soukhwan)이라는 의식을 통해 이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의식은 32개의 모든 콴을 불러들여 참가자들에게 건강, 번영, 안녕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다.[13] 의식 중에는 콴들이 참가자에게 머물도록 팔에 면사를 묶는다.[13] 수콴 의식은 보통 질병 치료, 기운 회복, 손님 환영, 장기간 여행 전후에 열리며, 저지 라오스인의 결혼식이나 신생아 이름 짓기 행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14]
많은 라오스인들은 사고나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 또는 유년기에 사망한 사람의 콴은 환생하지 못하고 악령('피 페투', phi phetu)이 된다고 믿는다.[15] 애니미즘 신봉자들은 숲 속 야생 동물의 영혼도 두려워한다.[15] 가정, 강, 숲 등 특정 장소와 관련된 다른 영혼들은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지만, 제물을 바쳐 호의를 얻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15] 과거에는 농사철 시작 전에 쌀의 정령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 흔했으나,[15] 1960년대 말 라오스 공산 정부가 지역을 장악하면서 이러한 의식은 억압받기 시작했다.[15] 이 풍습은 1980년대 중반경에는 비엔티안 주변 지역을 포함하여 상당 부분 사라졌다.[15]
피와 관련된 의식에는 주로 닭고기와 쌀로 만든 술을 제물로 바친다.[15] 피가 제물의 영적인 부분을 취하면, 남은 음식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15] 이러한 의식은 보통 정령의 호의를 구하는 가장이나 개인이 주관한다.[15] 여러 마을에서는 정령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겨지는 노인에게 결혼식, 특별 행사, 집안 제사 등에 좋은 날짜를 택해달라고 요청한다.[15] 저지대 마을들은 각기 마을의 수호 정령('피 반', phi ban)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으며, 매년 이 정령에게 공물을 바쳐 마을의 지속적인 번영을 기원한다.[15] 마을의 정령 전문가가 이 주요 행사를 주관하며, 과거에는 물소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포함되기도 했고, 행사 당일에는 외부인의 마을 출입을 금지하기도 한다.[15] '토 항 피 반'(To Hang phi ban, 마을 정령을 배부르게 하는 행위)은 마을의 경계를 재확인하고 주민들의 공동 이익을 다지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한다.[15]
대부분의 고지 라오스인과 구릉지 라오스인 집단은 정령 신앙을 따르며, 이들에게는 조상 숭배 풍습 또한 중요하다. 각 집단은 고유한 풍습과 신앙을 지니고 있다.[15] 주요 민족별 신앙은 다음과 같다.
- 크무족: 정령을 '흐로이'(hrooy)라고 부르며, 이는 저지 라오스인의 '피'와 유사하다. 정령의 집이 특히 중요하며, 야생 정령은 피하거나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15]
- 라메트족: 크무족과 유사한 신앙을 가지며, 각 마을에는 마을 정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정령술사('세미아', xemia)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15] 세미아는 마을 주민들의 주택 관리와 새 주택 건설도 주관한다.[16] 세미아가 사망하면,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마을의 기혼자들에 의해 후계자로 선출된다.[17] 아들이 없으면 사위 중 한 명이 선택된다.[17] 조상신('음브롱 나', mbrong n'a)은 집안 전체의 안녕을 돌보기 때문에 라메트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17] 이들은 집 안에 살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활동하지 않는다.[17] 조상신은 물소를 좋아한다고 여겨져, 희생 의식에서 사용된 물소의 뼈나 뿔을 조상 제단이나 집안 박공 아래에 걸어둔다.[17] 조상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의 행동에 관한 여러 금기 사항이 지켜진다.[17]
- 몽족: 다양한 종류의 정령('넵', neeb)을 믿으며, 이들은 집안, 자연, 조상 등과 관련이 있다.[17] 모든 집에는 최소한 벽면에 작은 제단을 두며, 이곳은 집안이나 가족과 관련된 모든 의례의 중심지가 된다.[17] 몽족의 신년 행사에서는 가정 및 조상신의 보호를 강조한다.[17] 문의 정령은 가정의 안녕에 중요하며, 매년 열리는 다른 행사와 희생 제의의 대상이 된다.[17] 다른 라오스 민족들처럼 질병은 종종 정령의 소행으로 여겨지며, 정령 술사(샤먼)를 불러 치료 의식을 행한다.[17] 일반적인 사제 또는 가장(가정 내 의식과 점술 주관)과 샤먼(특별한 치료 의식 주관)이라는 두 가지 역할이 있다.[17] 몽족 신앙에 따르면, 정령들은 하늘에 머물며 샤먼은 마법의 말을 타고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정령들과 접촉한다.[17] 때때로 질병은 누군가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샤먼은 이를 따라잡아 본래의 육신으로 되돌려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17] 이 의식 동안 샤먼은 제단 앞 나무 벤치(말을 상징)에 앉아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주문을 외우며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다. 몸을 떨거나 벤치 위에서 움직이며 하늘로 오르는 과정을 흉내 낸다.[17] 주문을 통해 샤먼은 영혼을 찾고, 치료나 가정의 안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정령들과 협상한다.[17] 몽족 샤먼은 보통 심각하거나 오랜 질병을 겪은 후 정령들에게 선택받은 사람으로 여겨진다.[17] 이 질병은 다른 샤먼에 의해 처음에는 정령에 의한 질병이나 죽음의 징조로 진단받는다.[17] 남녀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샤먼으로 선택될 수 있다.[18] 질병에서 회복한 후, 새롭게 선택된 샤먼은 선임 샤먼 밑에서 2~3년간 수련 기간을 거치며 샤먼 의식의 주문, 기술, 방법뿐만 아니라 행운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모든 정령의 이름과 속성을 배운다.[19] 이 전통은 구전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통일된 방식이나 의식보다는 선임 샤먼에 따라 일반적인 체계 내에서 다양성을 보인다.[19]
3. 3. 기독교

기독교는 라오스에서 소수 종교이다.[3] 라오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독교 종파는 로마 가톨릭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라오스 복음교회 세 곳뿐이다.[3]
라오스에는 약 45,000명의 로마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이들 중 다수는 베트남인이다. 주로 라오스 중부와 남부 지역의 메콩강을 따라 형성된 주요 도시와 그 주변에 모여 산다.[3] 가톨릭은 신자가 많은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활동이 상당히 억제되고 있다.[3] 예를 들어, 루앙프라방의 교회 자산은 1975년 이후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고, 현재 그곳에는 담당 사제가 없다.[3] 타케크에는 비공식적인 로마 가톨릭 교육소가 있어 소수의 사제를 양성하고 있다.[3]
개신교는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성장하여 현재 약 400개의 교구가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3] 관계자들은 개신교 신자 수를 최대 100,000명으로 추산한다.[3] 개신교 신자 대부분은 몽크메르족 계열의 소수 민족이며, 특히 북쪽 지방의 크무족과 중부 지방의 브루족 사이에서 신자가 많다.[3] 또한 몽족과 야오족 공동체 내에서도 개신교 신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3] 도시 지역에서는 저지대에 사는 라오스인들 사이에서도 개신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3]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는 수도 비엔티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지만, 전국 각지에 소규모 교구들이 흩어져 있다.[3] 라오스 정부 산하의 라오스 민족 건설 전선(LFNC)은 개신교 중 라오스 복음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다른 비가톨릭 종파들에게는 이 두 공인된 종파를 통해서만 활동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3]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도는 1,000명이 조금 넘으며, 비엔티안을 비롯해 보케오주, 볼리캄사이, 참파사크주, 루앙프라방, 시앙쿠앙주 등지에 교구를 두고 있다.[3] 이 외에도 감리교회, 여호와의 증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회, 루터교회, 몰몬교, 침례교 등 여러 기독교 종파들이 라오스에 신자를 두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해 자유로운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3] 이들 미인정 종파는 공식적인 신자 운영이 불가능하다.[3]
3. 4. 기타 종교
라오스에는 약 400명의 이슬람교 신자가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동남아시아 및 캄보디아 출신의 외국인 영주권자들이다.[3] 비엔티안에는 운영 중인 모스크 두 곳이 있다.[3]바하이교는 대략 8,000명의 신자와 네 곳의 사원을 가지고 있다. 사원은 비엔티안에 두 곳, 비엔티안주에 한 곳, 사반나케트에 한 곳이 있다.[3] 또한 소수의 바하이교 신자가 캄무안주와 팍세에도 거주하고 있다.[3]
소수의 유교와 도교 신자들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3]
과거 라오스가 크메르 제국의 일부였던 시기의 영향으로 힌두교 사원 유적이 일부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루앙프라방 왕국에는 국가신토가 도입되기도 했다.
4. 종교와 정치
라오스에서 종교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정부는 종교 활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3] 라오스 헌법은 명목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와 간섭이 존재하여 종교 활동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3]
정부는 특정 종교 단체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관리하며, 특히 라오스 민족건설전선(LFNC)과 같은 기구를 통해 종교 활동을 감독한다.[3]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종교 단체나 소수 종교의 경우, 활동에 제약을 받거나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3] 특히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일부 개신교 종파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3] 이러한 정부의 통제 정책은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를 제약하며, 일부 종교 공동체와의 긴장 관계를 야기하기도 한다.[3]
4. 1. 종교의 자유
라오스 헌법은 명목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부의 상당한 통제와 간섭이 존재한다.[3] 특히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소수 종교의 경우 활동에 제약을 받으며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가 보고된다.[3]
정부는 로마 가톨릭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라오스 복음교회 등 세 개의 기독교 종파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3] 약 45,000명으로 추산되는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중부와 남부의 도시 지역에 거주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신앙 활동을 하지만[3], 북부 지역에서는 활동이 상당히 억제되고 있다.[3] 실제로 루앙프라방에서는 1975년 이후 가톨릭 교회 자산이 압수되었고, 현재까지 담당 사제가 파견되지 못하고 있다.[3]
개신교의 경우, 약 400개의 교구가 운영되고 있으며 신자 수는 최대 10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3] 특히 북부의 크무족이나 중부의 브루족 등 소수민족 사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3] 그러나 라오스 국가건설전선(LFNC)은 라오스 복음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만을 인정하며, 다른 개신교 종파들은 이 두 교회를 통해서만 활동하도록 요구하고 있다.[3]
감리교회, 여호와의 증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회, 루터교회, 몰몬교, 침례교 등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여러 기독교 종파들은 라오스 내에 신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이다.[3] 이는 정부가 종교 활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4. 2. 정부의 종교 통제
라오스 정부는 특정 종교 단체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종교 활동을 관리한다. 현재 공인된 기독교 종파는 로마 가톨릭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라오스 복음교회 세 곳이다.[3]
라오스 민족건설전선 (LFNC)는 라오스 복음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외의 다른 개신교 종파들에 대해서는, 이 두 공인된 종파를 통해서만 운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3] 이는 정부가 종교 단체를 통제하려는 일면을 보여준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경우,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공개적인 종교 활동이 가능하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활동이 상당히 억제되고 있다.[3] 실제로 1975년 이후 루앙프라방의 교회 자산이 압수되었고, 해당 지역에는 더 이상 담당 사제가 배치되지 않고 있다.[3]
라오스 내에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기독교 종파들도 다수 존재한다. 감리교회, 여호와의 증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회, 루터교회, 몰몬교, 침례교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들 종파는 공식적인 신자 운영이나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이다.[3]
4. 3. 종교 간 갈등
라오스 내에서 종교 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드문 편이지만, 특정 종교의 활동에 대한 제약이나 빠른 성장으로 인한 긴장 관계는 존재한다.[3]특히 개신교는 지난 수십 년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약 400개의 개신교 교구가 국토 전역에서 활동 중이며, 신자 수는 많게는 10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3] 개신교는 주로 소수민족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데, 북쪽 지방의 크무족과 중부 지방의 브루족이 대표적이며, 몽족과 야오족 공동체 내에서도 신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3] 도심 지역에서는 저지대 라오스인들 사이에서도 개신교가 확산하는 추세이다.[3] 그러나 라오스 정부 산하의 라오스 조국건설전선(LFNC)은 라오스 복음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두 개신교 종파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다른 비가톨릭 종파들은 이 두 교회를 통해 활동하도록 요구하고 있다.[3] 제칠일안식일교회 신도는 1,000명이 조금 넘으며, 비엔티안뿐만 아니라 보케오주, 볼리캄사이, 참파사크주, 루앙프라방, 시앙쿠앙주 등에도 교구를 두고 있다.[3] 감리교회, 여호와의 증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회, 루터교회, 몰몬교, 침례교 등 다른 기독교 종파들은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해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3]
한편, 가톨릭의 경우, 약 45,000명의 신자가 있으며 주로 베트남계이고 메콩강 유역의 주요 도시와 근교에 분포한다.[3] 가톨릭은 인구가 많은 중부와 남부에서 비교적 공공연하게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3] 북부 지역에서는 활동이 상당히 억제되어 있다.[3] 일례로 루앙프라방의 가톨릭 교회 자산은 1975년 이후 압수되었고, 현재 그곳에는 담당 사제가 없다.[3] 타케크에 비공식 로마 가톨릭 교육소가 있어 소수의 사제를 양성하고 있다.[3]
5. 인구 통계
201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라오스인의 64.7 퍼센트가 불교도이고, 1.7 퍼센트가 기독교인, 31.4 퍼센트가 "종교가 없다"라고 답했으며 (이 분류는 다른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정령 신앙자들을 포함한다), 나머지 2.1 퍼센트는 그 외의 종교 및 질문에 답하지 않은 자들이다.[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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