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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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묘지는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한 유해를 안치하는 시설로, 역사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중세 시대에는 전염병 문제로 도시 외곽으로 이전되었으며,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인구 증가와 위생 문제로 인해 매장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묘지는 가족 묘지, 공원 묘지, 잔디 묘지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뉘며, 관리 주체와 형태, 위치에 따라 분류된다. 묘지 관리에는 토지 부족, 비용 문제, 기념물 관리의 어려움 등이 있으며, 묘지 재사용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묘지는 미신과 전설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국가별로 다양한 문화와 관습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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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영어로 묘지를 뜻하는 'cemetery'는 그리스어 단어인 'κοιμητήριον|코이미테리온el'(잠자는 곳)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죽은 자들이 영원한 잠에 들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1] 묘지는 서유럽 국가에서 고인의 장례 마지막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은 문화나 종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장례는 교회의 통제 아래 주로 교회 부지 안에서 이루어졌다. 유럽 대륙에서는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대규모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썩어 없어지면 파내어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묘소 측면 벽, 교회 벽 뒤편, 바닥 아래 등에 안치했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 도시 성벽 내부에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전염병을 일으켜 공중 위생상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몇몇 묘지는 인구 밀집 지역인 도시 중심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8세기 후반, 파리의 큰 묘지에서 파낸 유골은 지하 묘지 안 납골당으로 옮겨졌고, 묘지는 도시 중심부에서 금지되었다.
19세기 초부터 교회나 교회 부속 묘지와 무관한 묘지 관리 회사나 공동 묘지가 등장했다. 특히 전망이 좋고 공원과 같은 묘원 형태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묘지 해방 운동은 이미 1740년경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공간적으로 풍경이 되는 양식의 묘지의 초기 사례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이다. 이는 교회에 의해 통제되는 묘지가 아닌 국가의 묘지라는 이상을 구현한 것으로,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그 스타일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민간 사업자에 의해 개발된 묘지에도 채택되었다.
2. 1. 구석기 시대
모로코의 타포랄트 동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일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최소 34명의 이베로모루시안인들의 안식처였으며, 이들 대부분은 15,100년에서 1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2. 2.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의 묘지는 때때로 "묘역"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고대 및 선사 시대 문화에 대한 주요 정보원 중 하나이며, 수많은 고고학적 문화가 매장 관습에 의해 정의된다. 예를 들어 유럽 청동기 시대의 골장 문화가 있다.[1]2. 3. 중세 시대
중세 전기 동안, 무덤을 다시 열고 그 안에 담긴 시체나 유물을 조작하는 것은 널리 퍼진 현상이었으며 서유럽과 중앙 유럽의 중세 초기 묘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6] 부장품이 있거나 최근에 매장된 무덤을 다시 여는 일은 유럽의 열식 묘지 양식의 부장품이 있는 매장, 특히 서기 5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광범위하게 발생했는데, 이는 오늘날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베네룩스 3국, 프랑스, 그리고 남동 잉글랜드 지역을 포함했다.[6]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의 장례는 교회의 통제하에, 주로 교회의 부지 안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그 관습은 시대와 함께 변화해 왔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시신은 부패할 때까지 통상 그대로 대규모 묘지 안에 매장되었다. 시신이 썩어 없어지면 파내어 납골당에 안치했다. 그렇지 않으면 묘소 측면의 아치를 그리는 벽을 따라 늘어놓거나 교회의 벽 뒤편 또는 바닥의 두꺼운 석판 아래에 안치했다.
그 후 중세 시대에 도시의 성벽 내부에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전염병의 만연으로 이어져 공중 위생상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몇몇 묘지는 인구 밀집 지역인 도시 중심부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예를 들어 18세기 후반, 파리의 큰 묘지에서 파낸 유골은 파리의 지하 묘지 안 납골당으로 옮겨졌고, 묘지는 도시 중심부에서는 일절 금지되었다.
2. 4. 초기 기독교 시대
대략 서기 7세기부터 유럽에서 매장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통제를 받았고, 축성된 교회 부지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보통 집단 매장되었다. 그런 다음 뼈는 발굴되어 묘지 아케이드 경계 벽을 따라 또는 교회 내부의 바닥 슬래브 아래와 벽 뒤에 있는 납골당에 보관되었다.[1]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엄청난 부를 가진 사람, 중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 귀족의 일원이었거나 기타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해당 예배 장소 내부 또는 아래의 개별 지하 묘지에 그들의 이름, 사망 날짜 및 기타 약력을 표시하여 매장되었다. 유럽에서는 종종 그들의 문장 묘사가 동반되었다.[1]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묘지에 매장되었는데 이 또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나뉘었다. 석공의 작업을 감당할 수 있는 조문객들은 이름, 출생 및 사망 날짜, 때로는 기타 약력이 새겨진 묘비를 설치했다. 묘비에 새겨진 글과 상징이 많을수록 더 비쌌다. 묘비를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은 매장 장소에 나무로 만든 종교적 상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은 비나 눈 속에서 빨리 부식되었다. 일부 가족은 대장장이를 고용하여 금속으로 만든 큰 십자가를 매장 장소에 놓았다.[1]
2. 5. 근대
19세기 초, 산업 혁명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전염병이 발생하며 묘지 공간이 부족해지자,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묘지 매장을 법으로 금지했다. 대신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매장 장소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묘지들은 지방 자치 단체나 법인이 운영하여 교회와 교회 묘지로부터 독립되었다.어떤 경우에는 해골을 묘지에서 발굴하여 납골당이나 카타콤으로 옮기기도 했다. 18세기 파리에서는 도시 전역의 묘지에서 발굴된 약 6백만 명의 유골이 파리 카타콤으로 옮겨졌다.[7]
초기 조경식 묘지의 예로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가 있다.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주권 국가가 교회 대신 묘지를 통제한다는 개념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기업이나 합자 회사가 묘지를 개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방 자치 묘지나 사기업에 의해 설립된 묘지는 도시 외곽에 조경된 매장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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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분리주의자와 공중 보건 문제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 1819년 노리치에 모든 종교적 배경을 위한 노리치 로사리 묘지가 개장되었다. 산업 혁명으로 인구가 증가한 맨체스터(1821)와 리버풀(1825) 같은 도시 근처에도 비슷한 사립 비종교 묘지가 설립되었다. 각 묘지는 의회법을 통해 승인받았고, 자본은 합자 회사 설립으로 조달되었다.
19세기 첫 50년 동안 런던의 인구는 100만 명에서 23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작은 교구 묘지는 과밀해지고, 부패하는 물질이 수원을 오염시켜 전염병을 일으켰다. 1831년 콜레라 유행으로 영국에서만 5만 2천 명이 사망하면서 매장 능력에 큰 압박이 가해졌다. 인간 부패로 인한 가스 흡입의 위험성도 제기되었다.
1832년 영국 의회는 대규모 지방 자치 묘지 설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런던 외곽에 건설을 장려했다. 같은 법안으로 런던 내부의 모든 교회 묘지는 폐쇄되었다. 1832년 켄살 그린 묘지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런던 주변에 7개의 대형 묘지(런던의 매그니피센트 세븐)가 설립되었다.[8]
도시 계획가이자 작가인 존 클라우디우스 라우던은 최초의 전문 묘지 설계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저서 ''묘지 설계, 식재 및 관리에 관하여''(1843)는 당시 설계자와 건축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라우던은 배스 애비 묘지, 캠브리지 히스톤 로드 묘지, 사우스햄튼 올드 묘지를 설계했다.[9]
1852년의 대도시 매장법은 전국적인 정부 자금 지원 지방 자치 묘지 시스템을 법제화하여, 19세기 후반 매장 시설이 크게 확장되었다.[10]
미국에서 전원 묘지는 공원 이전 시대에 레크리에이션 지역이 되어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11][12]
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의 장례는 교회의 통제하에 주로 교회 부지 안에서 행해졌다. 유럽 대륙에서는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썩어 없어지면 파내어 납골당에 안치했다. 묘소 측면 벽이나 교회 벽 뒤, 바닥 아래에 안치되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 도시 성벽 내부에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전염병으로 이어져 공중 위생상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몇몇 묘지는 도시 중심부에서 멀어져 갔다. 18세기 후반, 파리의 큰 묘지에서 파낸 유골은 지하 묘지 안 납골당으로 옮겨졌고, 묘지는 도시 중심부에서 금지되었다.
교회나 교회 부속 묘지와 무관한 묘지 관리 회사나 공동 묘지는 19세기 초부터 나타났다. 전망이 좋고 공원과 같은 묘원 형태도 이때부터 탄생했다. 묘지 해방 운동은 1740년경부터 나타났다.
공간적으로 풍경이 되는 양식의 묘지의 초기 사례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이다. 이는 국가의 묘지라는 이상을 체현한 것으로,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민간 사업자가 개발한 묘지에도 이 스타일이 채택되었다. 공동 묘지나 민간 업자에 의한 묘지로의 이행은 도시 밖 매장을 위한 토지 개발과 함께 진행되었다.
묘지는 엄숙한 경의를 표하는 장소이며, 종교 시설이 부속되기도 한다. 화장장이 병설되기도 한다. 묘 도굴이나 종교 시설 절도는 무거운 죄로 여겨진다.
묘지의 양식은 국가에 따라 다르다. 미국이나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넓은 장소에 묘비가 늘어서 있다. 러시아에서는 가족 묘소 안에 묘비가 놓인다.
도시부의 묘지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묘지가 비좁아져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되면, 새로운 묘를 만들기 어렵다. 묘지를 역사적 기념물로 보존할지, 무연고 묘를 정리하여 공간을 비울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일본에서는 납골당이나 빌딩형 묘지를 채택하기도 한다.[45][46][47] 남미의 브라질에서는 묘지를 고층 빌딩화한 예도 있다.
2. 6. 현대
현대에 들어 공동 묘지나 민간 업자에 의한 묘지로의 이행은 도시 밖에서의 매장을 위한 토지 개발과 함께 진행되었다.묘지는 일반적으로 엄숙한 경의를 가지고 바라보는 장소이지만, 종종 예배당과 같은 종교 시설도 부속되었다. 때로는 화장장이 병설되기도 한다. 묘의 도굴이나 그러한 종교 시설로의 절도는 무거운 죄로 여겨진다.
묘지의 양식은 국가에 따라 상당히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새로운 묘지는 넓은 장소에 수많은 묘비가 땅에 늘어서 있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작게 둘러싸인 가족 묘소 안에 묘비가 놓인다. 하지만 이러한 풍습은 미국에서도 그 초창기 시대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던 듯하며, 오래된 묘지에 가면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도시부의 묘지에서는, 특히 역사가 있는 오래된 도시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묘지 자체가 비좁아지고, 공간적으로 포화 상태가 되어 새로운 묘를 만들 수 없는 경우이다. 이것은, 이 묘지 자체를 더 이상 역사적 기념물로 간주하고,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만 할 것인지, 아니면 낡은 무연고 묘를 파내어 하나로 정리하여 공간을 비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국가에 따라, 풍속 관습에 따라 대처 방식이 양극단으로 나뉜다. 일본에서는 납골당이나 빌딩형 묘지 등의 건물 내에 납골하고, 카드 등으로 이용자 대조하여 골호를 운반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곳도 있다[45][46][47]. 남미의 브라질에서는, 묘지 자체를 고층 빌딩화했다는 예도 있다.
3. 묘지의 종류
묘지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이 사용된다. 많은 묘지에는 다양한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구역이 있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관행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 '''공원묘지''': 부지 내에 수목 등을 심고, 산책로와 분수 등을 설치하여 공원처럼 정비한 묘지이다.[48] 정원묘지라고도 불린다.
- '''화단 묘지''': 묘역 주변에 꽃을 심거나,[49] 다채로운 화초와 생울타리가 심어진 "가드닝 묘원"을 조성하거나,[50] 묘석 주변을 꽃이나 식재로 장식할 수 있는 묘지이다.[51] 조약돌을 넣는 경우도 많다.[51]
- '''벽묘지''': 자연석이나 콘크리트의 긴 벽면을 설치하고, 구획마다 석탑과 같은 기능을 부여하여 그 지하에 납골실을 설치한 것이다.[48]
- '''실내 입체 묘지''': 5층에서 6층 건물 내부에 묘지 구획을 마련하여 분양하는 형태의 묘지이다.[48]
- '''사이버 묘지''': 주로 컴퓨터나 휴대 전화 화면에 표시되는 묘, 유영, 계명, 생전 사진 등을 대상으로 참배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실제 묘지를 방문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경우를 위한 서비스이지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52]
3. 1. 관리 주체에 따른 분류
'''사찰 묘지'''[48]는 사찰이 관리하는 묘지이다. 구입 시 해당 사찰의 신도가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찰 근교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찰의 영대 공양을 기대할 수 있고, 법요를 의뢰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공영 묘지'''는 도도부현이나 시정촌 등의 지방 자치 단체(또는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위탁받은 공익 법인)가 관리·운영하는 묘지이다.[48] 지방 자치 단체마다 이용 조건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용 대상은 한 번도 매장된 적이 없는 유골이 있는 자로서, 해당 지방 자치 단체에 본적 또는 현 주소가 있는 자가 된다. 종교나 종파에 따른 제한은 없다.
'''민영 묘지'''는 공익 법인 또는 사찰 경내 이외의 종교 법인이 관리·운영하는 묘지이다.[48] 묘지·영원의 운영은 영속성·공공성이 요구되며, 비영리 사업일 필요가 있으므로 영리 법인에 의한 경영은 허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업 주체의 명의를 공익 법인·종교 법인으로 하고, 영리 법인인 석재점 등이 실제 개발·판매를 행하는 경우도 많다. 종지나 종파에 의한 제한이 없고, 생전의 묘지 건립이 가능하다는 등, 묘지를 구입하기 위한 자격이나 조건이 적다.
일본에서는 촌락 묘지, 개인 묘지의 신설은 현재 허가되지 않으므로, 허가된 공영 묘지, 사찰 묘지, 민영 묘지에 매장하게 된다.
3. 2. 형태에 따른 분류
묘지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이 사용된다. 많은 묘지에는 다양한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구역이 있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관행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을 반영한다.'''기념 묘지'''는 대리석, 화강암 또는 유사한 재료로 만들어진 묘비 또는 기타 기념물이 지면 위로 수직으로 솟아 있는 전통적인 묘지 스타일이다(일반적으로 약 50cm이지만 일부는 2m 이상 높이일 수 있음). 종종 전체 무덤은 슬래브로 덮여 있으며, 일반적으로 콘크리트로 되어 있지만, 대리석이나 화강암과 같은 더 비싼 재료일 수도 있고, 콘크리트, 주철 또는 목재로 만들어진 울타리로 경계가 정해져 있을 수 있다. 여러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매장되는 경우(수직 또는 수평) 슬래브 또는 경계가 여러 무덤을 포함할 수 있다.
기념 묘지는 무작위로 수집된 기념물과 묘비로 인해 보기에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묘비 유지 관리는 가족 구성원의 책임이므로(영구 관리 및 유지 관리 기금이 없는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묘비가 잊혀지고 낡아지고 손상된다. 묘지 당국에게 기념 묘지는 유지 관리가 어렵다. 묘지는 종종 무덤 사이에 풀밭이 있지만, 무덤의 레이아웃으로 인해 묘지에서 잔디 깎는 기계와 같은 현대 장비를 사용하기가 어렵다. 종종 잔디 관리는 더 노동 집약적인(따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으로 수행해야 한다.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예초기와 같은 장치가 묘지 유지 관리에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장치는 기념물과 묘비를 손상시킬 수 있다. 묘지 당국은 묘비의 악화된 상태에 대해 비판을 받는 것을 싫어하며, 묘비 유지 관리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일반적으로 묘비의 악화 원인 중 하나가 묘지 자체의 유지 관리 관행이라고 무시한다.
일반적으로 잔디 묘지는 주변에 나무와 정원이 있는 잔디밭에 여러 개의 묘지가 있는 형태로 구성된다. 아돌프 슈트라우흐는 1855년 신시내티에서 이 스타일을 도입했다.[17]
가족 구성원의 미적 매력이 잔디 묘지 개발의 주요 동인이었지만, 묘지 당국은 처음에는 더 쉬운 관리를 기대하며 이 새로운 스타일의 묘지를 열렬히 환영했다. 잔디 묘지 부지를 완전히 평평하게 선택(또는 정지)하면 대형 효율적인 잔디깎이 기계(예: 탑승형 잔디깎이 또는 잔디 트랙터)를 사용할 수 있다. 비석(수평으로 땅에 설치됨)은 칼날 아래에 위치하며 칼날에 의해 손상되지 않는다. 실제로, 가족들은 종종 처음에는 잔디 묘지의 깔끔한 외관에 매료되지만, 꽃(때로는 화병)을 놓고 점점 더 많은 다른 물품(예: 어린이 묘지의 작은 장난감)을 놓는 일반적인 관행은 묘지에 어느 정도 지저분함을 다시 도입하고 대형 잔디깎이 기계를 사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묘지 당국은 잔디 묘지에 놓을 수 있는 물건의 성격과 유형에 대한 제한을 점점 더 많이 부과하고 금지된 물건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지만, 슬픔에 잠긴 가족들은 종종 이러한 제한을 준수하려 하지 않으며, 물건이 제거되면 매우 화를 낸다. 잔디 묘지의 또 다른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잔디가 과도하게 자라는 것이다. 잔디가 자라서 비석을 덮을 수 있으며, 더 이상 묘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다. 지상 포복경(런너)으로 번식하는 잔디는 매우 빠르게 비석을 덮을 수 있다. 지하 근경으로 번식하는 잔디는 비석을 쉽게 덮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잔디 보 묘지는 최근에 개발된 형태로, 잔디 묘지의 많은 장점을 유지하면서 잔디 묘지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다. 낮게(10~15cm) 솟아 있는 콘크리트 슬래브(보)가 묘지 전체에 걸쳐 설치된다. 기념 명판 (일반적으로 잔디 묘지와 유사한 크기와 재료로 표준화됨)은 각 묘지 옆의 이 보 위에 놓인다. 잔디 묘지와 마찬가지로 잔디가 묘지 자체를 덮는다. 보 사이의 공간은 더 큰 잔디 깎는 기계로 쉽게 잔디를 깎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잔디 깎는 기계의 칼날은 보의 상단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고, 잔디 깎는 기계가 보 위로 지나가지 않으므로 칼날이 명판을 손상시킬 수 없다. 보 위에 있는 명판은 잔디에 쉽게 덮이지 않으며, 명판 사이의 공간을 통해 가족들은 잔디 깎는 기계가 닿지 않는 곳에 꽃과 기타 물건을 놓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촌락 묘지, 개인 묘지의 신설은 현재 허가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경우에는 허가된 공영 묘지, 사찰 묘지, 민영 묘지에 매장하게 된다.
- 잔디가 깔린 묘지로, 서양에서 일반적인 형태이다.[48]
- 부지 내에 수목 등을 심고, 산책로와 분수 등을 설치하여 공원처럼 정비한 묘지[48]
- 공원묘지의 다른 명칭. 정원묘지라고도 불린다.[48]
- 묘역 주변에 꽃이 식재된 타입의 묘지[49], 다채로운 화초와 생울타리가 심어진 "가드닝 묘원"[50], 묘석 주변을 꽃이나 식재로 장식할 수 있는 타입의 묘지[51] ('''화단 묘지'''라고도 불리며, 식재나 조약돌을 넣는 경우가 많다.[51])등은 최근 증가 추세에 있으며, 아름다움과 묘원의 밝은 분위기 때문에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 벽묘지: 자연석이나 콘크리트의 긴 벽면을 설치하고, 구획마다 석탑과 같은 기능을 부여하여 그 지하에 납골실을 설치한 것[48]
- 납골당
- 공동 납골당
- 실내 입체 묘지: 5층에서 6층 건물 내부에 묘지 구획을 마련하여 분양하는 형태의 묘지[48]
- 주로 컴퓨터나 휴대 전화 화면에 표시되는 묘, 유영, 계명, 생전 사진 등을 대상으로 참배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실제 묘지를 방문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경우가 있어 이러한 경우를 위한 서비스이지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52]
3. 3. 위치에 따른 분류
도심 묘지는 마을, 읍, 또는 도시 내부에 위치한 매장지이다. 초기 도심 묘지는 교회 묘지였으며, 묘지가 빠르게 꽉 차면서 묘비의 배치가 무질서해졌다. 새로운 매장지가 도심 지역에 설립되면서, 매장 구획은 교회 묘지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대체하기 위해 격자 형태로 배치되기도 했다.[14] 도심 묘지는 도시를 문명적이고 조화로운 곳으로 묘사하려는 시민적 발전의 일환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조경된 형태로 발전했다.[14]도심 묘지는 미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위생적인 공간(부패하는 시체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곳)이었다. 시신은 일반적으로 천으로 감싸서 매장했는데, 관, 묘실, 지상 묘소는 부패 과정을 방해했기 때문이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사용된 도심 묘지는 종종 매우 비위생적이었다. 시신 보관소와 묘소는 종종 들어가기 전에 통풍이 필요했는데, 부패하는 시신이 너무 많은 산소를 소모해서 촛불조차 켜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14] 시신이 깊이 묻혀 있을 때조차 부패하는 시신의 악취는 도심 묘지와 인접한 지역에서 압도적이었다.[14]
많은 도심 묘지는 동일한 묘에 여러 시신을 매장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여러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인접한 건물 개발로 인해 쉽게 확장할 수 없는 도심 묘지의 제한된 크기의 결과이다. 도심 묘지에서 새로운 매장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묘지 상단에 흙을 추가하기도 했다.
전원 묘지 또는 정원 묘지[14]는 공원과 같은 환경에서 조경을 활용하는 매장지 스타일이다. 1800년대 초에 기존의 교회 묘지는 과밀해지고 위생이 악화되어 무덤이 서로 겹쳐 쌓이거나 비워져 새로운 매장에 재사용되었다.[14]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초의 "정원" 묘지인 페르 라셰즈 묘지가 파리에 1804년 문을 열었다.[14] 이 묘지들은 대개 도시 외곽(토지가 풍부하고 저렴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전원 묘지"라고 불렸다.[14]
정원/전원 묘지는 반드시 도시 외곽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도시 내에서 부지를 찾을 수 있는 경우, 묘지는 정원과 같은 품질을 부여하기 위해 벽으로 둘러싸였다. 이러한 묘지는 종종 종파적이지 않았으며 예배당과 함께 위치하지 않았다. 영국식 풍경 정원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14] 매력적인 공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최초의 정원/전원 묘지는 1831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처에 매사추세츠 원예 협회에서 설립한 마운트 오번 묘지였다.[14]
정원/전원 묘지를 짓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인해 부유층만이 그곳에 매장될 수 있었다.[14] 그 결과, 정원/전원 묘지에는 종종 지상 기념물과 기념관, 영묘, 그리고 납골당이 있다.
3. 4. 기타 묘지
'''자연 묘지''', '''생태 묘지''', '''친환경 묘지''' 또는 '''보존 묘지'''는 자연 장례를 위한 구역으로 지정된 새로운 스타일의 묘지이다. 자연 장례는 시신이 빠르게 부패하여 전통적인 매장의 환경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연 환경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친환경 매장 인증은 자연 장례 관행 수준을 반영하여 묘지를 하이브리드, 자연 또는 보존 묘지로 지정한다.[18]일부 과학자들은 자연 장례가 멸종 위기에 처한 서식지, 생태계 및 종을 보존하도록 설계된 경우 매우 효율적인 토지 이용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연 장례의 빠른 부패가 전통적인 매장에 비해 묘지를 빠르게 재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묘지 부지 재사용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자연 묘지는 "자연으로 돌아감"이라는 의도와 초기 재사용 가능성에 따라, 묘비와 같은 전통적인 묘지 표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한 GPS 기록 또는 나무, 덤불, 바위의 배치가 묘의 위치를 표시한다.
크로스 본스는 런던의 매춘부들을 위한 매장지이다. 넵튠 기념 해양 묘지는 키 비스케인 근처의 수중 납골당이다.[22]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묘지와 장례식장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또한, Find a Grave, Canadian Headstones, Interment.net과 같은 온라인 "묘지"도 등장했다.
4. 묘지 문화와 관습
화장이 매장보다 증가하면서 많은 묘지에서 ''콜럼바륨 벽''이 흔히 보인다. 화장된 유해는 가족이 납골단지에 보관하거나 의미 있는 장소에 뿌릴 수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고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 명판을 허용하지 않으며, 친구와 가족이 애도하거나 방문할 장소를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묘지에서는 사각형 틈새 배열이 있는 벽을 제공하며, 각 틈새는 한 사람의 화장된 유해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다. 콜럼바륨 벽은 묘지에서 공간 효율적인 토지 사용이며, 틈새는 매장 부지보다 저렴한 대안이다. 작은 명판(약 15cm x 10cm)은 각 틈새 앞면에 부착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틈새 가격에 포함된다. 명판에 적힌 글씨는 명판 크기가 작기 때문에 비교적 작아야 하므로, 콜럼바륨 벽의 디자인은 방문객이 명판을 읽을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제약된다. 따라서 틈새는 일반적으로 지상 1미터에서 2미터 사이에 배치되어 성인이 명판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일부 콜럼바륨 벽은 지면 가까이 틈새가 있지만, 허리를 많이 숙이지 않고서는 명판을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특히 노인들이 어렵거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 일반적으로 가족들에게 인기가 없다.
무덤과 마찬가지로 틈새는 묘지 당국에서 지정할 수도 있고, 가족이 사용 가능한 비어있는 틈새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을 위해 인접한 틈새의 사용을 예약하기 위해 구매(또는 보증금 지불)하는 것이 보통 가능하다. 인접한 틈새(수직 또는 수평)를 사용하면 관련된 모든 틈새를 가로지르는 더 큰 명판을 사용할 수 있어 글쓰기 공간이 더 넓어진다. 무덤과 마찬가지로 종교별 또는 참전 용사를 위한 별도의 콜럼바륨 벽이 있을 수 있다. 잔디 묘지와 마찬가지로 원래 예상은 사람들이 명판 벽의 깔끔한 단순성을 선호할 것이었지만, 꽃을 남겨두는 관행은 매우 뿌리 깊다. 조문객들은 콜럼바륨 벽 위 또는 바닥에, 가족 구성원의 명판에 최대한 가깝게 꽃(및 기타 물건)을 둔다. 어떤 경우에는 명판 아래에 철사나 끈을 끼워 넣어 꽃이나 작은 꽃다발을 명판 자체에 놓거나, 그 목적으로 클립을 명판에 붙일 수 있다. 새로운 디자인의 콜럼바륨 벽은 이러한 꽃을 남겨두려는 욕구를 고려하여 각 명판 옆에 금속 클립이나 루프를 통합하여 일반적으로 단일 꽃줄기 또는 작은 꽃다발을 잡도록 설계되었다. 꽃이 썩으면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유지 관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서방 국가 및 다른 많은 국가들에서, 묘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흔히 잘린 꽃을 놓아두며, 특히 주요 명절, 생일 또는 관련 기념일에 그렇게 한다. 묘지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대개 몇 주 후에 이 꽃들을 치운다. 일부 회사들은 묘에 항상 생화가 장식되도록 영구적인 꽃 서비스를 제공한다.[25] 꽃은 또한 묘석 바로 앞에 심어지는 경우도 흔하며, 이 경우 장미가 매우 흔히 사용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식의 날이라고 불리는 특정 시기에 꽃을 놓는다.
유대교 묘지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은 방문객들은 종종 묘비 위에 작은 돌을 올려놓는다. 묘지에서 기도를 올리고, 방문객이 떠날 때 돌을 남겨둔다. 이것은 존경을 표하는 행위이며, 일반적으로 유대인 묘지에는 꽃을 놓지 않는다. 꽃은 덧없이 시들지만, 돌을 사용하는 상징성은 사랑, 존경, 기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관습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나는데, 그 경우에는 유대인 묘지가 아니다.
전쟁 묘지에는 일반적으로 중앙에 추모 양귀비가 부착된 작은 나무 추모 십자가가 놓인다. 이 십자가에는 종종 메시지가 적혀 있다. 좀 더 공식적인 방문에서는 양귀비 화환을 놓기도 한다. 유대인 전쟁 묘지에는 때때로 나무 다윗의 별이 표시된다.
망자를 기리기 위해 묘지에 불타는 묘지 촛불을 놓는 것은 폴란드와 같은 가톨릭교회 국가에서 매우 일반적인 전통이다. 주로 위령의 날에 행해진다. 전통적인 묘지 촛불은 폴란드어로 "znicz"라고 불린다.[26] 묘지 촛불과 유사한 관습은 동방 정교회 기독교 국가와 루터교 기독교 북유럽 국가에서도 사용된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아이들의 무덤을 어린 시절의 상징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풍선, 계절별 장식, 종교적 조각상 등이 포함된다.[27]
영어로 묘지를 뜻하는 cemeter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κοιμητήριονel(코이미테리온, 잠자는 곳)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묘지가 사자가 영원한 잠에 들어있는 장소임을 암시한다. 묘지는 서유럽 국가에서 고인의 장례 마지막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 또는 제례는 문화, 신앙, 종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문화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묘지는 보통 예배 장소( 교회, 예배당)에 직접 인접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영어로 graveyard(묘소)는 대개 churchyard(교회 뜰)에 설치되어 있다.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 북부에서는 kirkyaird라고 부른다. churchyard는 원래 문자 그대로 교회의 앞마당이었으며, 곧바로 묘소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성(last name)이 덴마크어로 "묘지"를 의미한다고 종종 오해받는 것도 그 예인데, 실제로는 교회에 부속된 주변의 농목지(-gaard, 영어의 garden의 원어인 "울타리"와 비슷하다)를 의미한다.
5. 현대 묘지 관리
오늘날 묘지 관리는 단순히 매장 부지 할당, 묘지 굴착 및 채우기, 조경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유족들이 관리하던 묘비와 같은 묘지 기념물은 현대에 들어 묘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포함되어 표준화되는 추세이다.
묘지 당국은 묘를 파는 관리인을 고용한다. '묘지기'라는 용어가 흔히 쓰이지만, 현대에는 묘지 부지와 시설 관리까지 포함하는 '관리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숙련된 인력을 고용하여 묘를 준비하는 것은 정확한 위치와 깊이로 묘를 파고, 유족의 부담을 덜어주며, 방문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묘지 준비는 장례 참석자 도착 전에 시작되며, 매장은 조문객이 떠난 후 이루어진다. 굴착 및 매립 비용 절감을 위해 백호와 같은 기계 장비가 사용되지만, 여전히 수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묘지 깊이 규정이 있다. 표면에서 가장 높은 뚜껑까지 최소 깊이는 약 91.44cm이고, 관 사이 간격은 약 15.24cm이다. 관 높이는 평균 약 38.10cm이다.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은 약 60.96cm의 흙만 덮으면 된다. 관은 콘크리트실에 넣으면 더 얕게 매장할 수 있다.[28] 1977년 이전에는 이중 묘는 약 2.44m, 단일 묘는 약 1.83m 깊이로 팠지만, 현재 단일 묘는 약 137.16cm 깊이로 파기 때문에 오래된 묘지에 새로운 묘를 팔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한다.
묘지 내 매장 기록은 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매장 기록에는 매장된 사람의 이름, 매장 날짜, 묘지 내 위치 등이 포함되며, 족보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묘비 사진 등 세부 정보를 담은 'ANC 익스플로러'라는 등록부가 있다.[31]
묘지 관리자는 묘지 배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매장 기록부에 위치를 기록한다. 묘지는 지도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여 토지 이용 관리와 방문객의 묘지 찾기를 돕는다.
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는 교회가 장례를 통제하고 교회 부지 내에서 매장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시신을 묘지에 매장하고 부패하면 파내어 납골당에 안치했다. 중세 시대 도시 성벽 내 매장은 전염병으로 이어져 공중 위생 문제를 야기했고, 묘지는 도시 외곽으로 이전되었다. 18세기 후반 파리의 묘지 유골은 지하 묘지로 옮겨졌고, 도시 중심부 묘지는 금지되었다.
교회와 무관한 묘지 관리 회사나 공동 묘지는 19세기 초부터 나타났다. 공원과 같은 묘원 형태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묘지 해방 운동은 1740년경부터 나타났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는 국가 묘지 이상을 체현한 초기 사례로,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민간 사업자가 개발한 묘지에도 이 스타일이 채택되었다. 공동 묘지나 민간 업자로의 이행은 도시 밖 매장 토지 개발과 함께 진행되었다.
묘지는 엄숙한 장소이며, 종종 예배당과 같은 종교 시설이 부속되거나 화장장이 병설되기도 한다. 묘 도굴이나 종교 시설 절도는 무거운 죄로 여겨진다.
묘지 양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넓은 장소에 묘비가 늘어서 있지만, 러시아는 가족 묘소 안에 묘비를 놓는다.
도시 묘지, 특히 오래된 도시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묘지가 비좁아져 새로운 묘를 만들 수 없는 경우, 역사적 기념물로 보존할지, 무연고 묘를 정리하여 공간을 확보할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국가와 풍속, 관습에 따라 대처 방식이 달라진다. 일본은 납골당이나 빌딩형 묘지를 이용하기도 한다.[45][46][47] 남미 브라질에서는 묘지를 고층 빌딩화한 사례도 있다.
5. 1. 묘지 관리의 어려움
묘지 관리 당국은 묘지 관리에 있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한다.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전통적으로 매장 시 일시불로 결제하지만, 묘지 당국은 수십 년에 걸쳐 묘지 유지 관리에 비용을 들이게 된다. 많은 묘지 당국은 축적된 자금이 장기적인 유지 관리 비용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지 관리 자금 부족은 세 가지 주요 선택지로 이어진다. 새로운 매장에 대해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청구하거나, 다른 종류의 공적 보조금을 받거나, 유지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새로운 매장 공간이 없는 묘지의 경우 선택지는 더욱 제한된다. 보조금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매우 다양하다. 지역 묘지에 가족이 묻힌 사람들은 묘지 유지 관리가 소홀해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공적 보조금을 옹호하지만, 묘지와 개인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사립 묘지에 대한 공적 보조금이 세금의 부적절한 사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자가 유지 관리에 사용될 수 있도록 영구적으로 일정 금액의 돈을 별도로 마련하여 투자하도록 요구한다.[41]
또 다른 문제는 제한된 토지 면적이다. 많은 대도시에서 넓다고 여겨졌던 오래된 묘지는 새로운 매장 공간이 부족해지고, 묘지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묘지를 만들 수 있는 토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묘지는 일반적으로 넓은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도시 외곽에 설립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가족과 같은 묘지에 묻히기를 원하며, 가족과의 연대감이 없는 새로운 묘지에 묻히는 데 관심이 없어 기존 묘지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찾아야 하는 압력이 발생한다.
세 번째 문제는 기념물과 묘비의 유지 관리 문제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가족의 책임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홀해지기 쉽다. 파손 행위나 묘지 유지 관리 관행으로 인한 부패와 손상은 기념물과 묘비를 위험하게 만들거나 보기 흉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에 일부 가족은 묘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방문하여 꽃, 식물 및 기타 장식품을 남겨두어 자체적인 유지 관리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역사가 있는 오래된 도시의 묘지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묘지가 비좁아지고 포화 상태가 되어 새로운 묘를 만들 수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 묘지를 역사적 기념물로 간주하여 그대로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낡은 무연고 묘를 정리하여 공간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국가와 풍속, 관습에 따라 대처 방식이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납골당이나 빌딩형 묘지 등의 건물 내에 납골하고, 카드 등으로 이용자를 확인하여 골호를 운반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곳도 있다.[45][46][47]
5. 2. 묘지 재사용 문제
묘지 재사용 문제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이미 매장된 묘지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큰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당국이 묘지가 오래되어 인골이 남아 있지 않다고 선언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묘지, 특히 가족 묘지의 재사용을 묘지 훼손으로 간주한다. 또한, 사용된 묘지를 재사용하려면 기념물과 묘비를 제거해야 하는데, 이는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물론 가족들은 원할 경우 기념물과 묘비를 가져갈 수 있다.[33]반면, 묘지 당국은 많은 오래된 묘지가 잊혀지고 방문객이 없어 묘지를 재사용해도 아무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이나 발언권이 강한 후손들이 재사용에 반대하며 공개 캠페인을 벌이는 묘지도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실용적인 전략은 오래된 묘지 재사용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가족들에게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이다. 반대가 없는 경우에만 재사용을 진행하여 "잊혀진" 묘지를 재사용할 수 있다. 때때로 묘지 당국은 묘지 재사용을 피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는 종종 정치적으로 역효과를 낳는다.[33]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과 관련하여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묘지 구획을 처음 구매한 사람이 사망했을 수 있으며, 수십 년 후 살아있는 가족 구성원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과도한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묘지 재사용 제안에 대한 공고는 이러한 관행에 반대할 수 있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가족 구성원에게 전달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가족이 모르는 사이에 재사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33]
일부 묘지에서는 재사용의 필요성을 예상하고 묘지 부지에 대한 제한된 임대 조건을 포함했으며, 대부분의 새로운 묘지는 오래된 묘지가 겪는 문제를 보고 이러한 관행을 따른다. 유럽에서는 규정된 매장 기간이 끝나면 뼈를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3]
그러나 묘지가 묘지를 재사용할 법적 권한이 있더라도, 강한 여론은 종종 당국이 재사용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또한, 묘지에 제한된 임대 조항이 있더라도 자금 부족으로 인해 원래 계획보다 더 일찍 재사용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33]
재사용을 고려하는 또 다른 유형은 수년 전에 구매했지만 사용되지 않은 빈 묘지이다. 원칙적으로 그러한 묘지를 "재사용"하는 것이 더 쉽고 훼손에 대한 주장이 있을 수 없지만, 사전 구매로 얻은 매장 권리로 인해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임대 조항은 매장 후에만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묘지 당국은 이러한 매장 권리 소유자가 사망하여 아무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가족은 자신이 소유한 매장 권리를 알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이 사망하면 그 권리를 행사할 의향이 있다. 즉, 이러한 매장 권리 소유자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묘지 재사용을 복잡하게 만든다.[33]
역사적인 묘지가 완전 매장 용량에 도달함에 따라 화장된 유해를 위한 집단 추모와 같은 대체 추모 방식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문화권마다 묘지 파괴와 건설을 위한 토지 사용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일부 국가에서는 묘지 파괴를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다른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1세기 이상 묘지를 존중한다. 많은 경우 적절한 기간이 지나면 묘비가 제거되고 묘지였던 곳은 레크리에이션 공원이나 건설 현장으로 전환된다. 특히 남아메리카 도시에서는 묘지를 수용하기 위해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이 최근 추세이다.[34]
미국에서는 다른 이유로 토지가 필요한 경우 묘지를 이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남동부의 많은 묘지는 댐 건설로 인해 홍수가 발생할 지역에서 테네시 계곡 개발청에 의해 이전되었다.[35] 묘지는 교통 시설,[36][37] 공공 건물,[38] 또는 개인 개발[39]을 위해 토지를 재사용할 수 있도록 이전될 수도 있다. 묘지 이전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앨버타에서는 '묘지법'이 어떤 이유로든 묘지 이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표시된 묘지의 대량 발굴을 금지한다.[40] 이로 인해 캘거리 남쪽 절반에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도시 남쪽 끝과 시내를 연결하는 주요 남쪽 방향 도로가 1930년대에 설립된 묘지들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쪽으로 가는 경전철 노선은 도로 바로 아래에 건설해야 했다.[40]
싱가포르에서는 매장 기간이 15년으로 제한되어 묘지를 발굴한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인들 사이에서 매장보다 화장이 선호되고 있다.[41][42] 공동 묘지나 민간 업자의 묘지로 이전하는 것은 도시 밖에서 매장할 토지를 개발하는 것과 함께 진행되었다.
특히 역사가 있는 오래된 도시의 도시 지역 묘지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묘지 자체가 비좁아지고 공간적으로 포화 상태가 되어 새로운 묘를 만들 수 없는 경우이다. 이 묘지를 역사적 기념물로 간주하여 그대로 보존할 것인지, 아니면 낡은 무연고 묘를 파내어 하나로 정리하여 공간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국가 및 풍속, 관습에 따라 대처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납골당이나 빌딩형 묘지와 같이 건물 내에 납골하고 카드 등으로 이용자를 대조하여 골호를 운반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곳도 있다.[45][46][47] 남미 브라질에서는 묘지 자체를 고층 빌딩화한 사례도 있다.
6. 묘지와 미신

많은 국가에서 묘지는 미신과 전설적 특성을 모두 지닌 장소로 여겨진다. 대개 밤에 흑마술 의식이나 악마 숭배, 무덤 도굴(금니와 보석 선호), 짜릿한 성적 만남, 묘지 오라와 관련 없는 약물 및 알코올 남용과 같은 비밀스러운 사건에 제단으로 사용된다고 여겨진다.
웨이드 데이비스(인류학자)가 쓴 ''뱀과 무지개''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된 좀비 전설은 묘지 신화 중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묘지는 마녀와 마법사가 사악한 의식에 필요한 두개골과 뼈를 얻는 곳으로 여겨진다.[43]
아프로 브라질 도시 신화(예: 움반다)에는 묘지와 그 오라와 느슨하게 관련된 인물이 있다. 바로 제 필린트라이다(사실 제 필린트라는 묘지보다는 보헤미안과 밤 문화와 더 관련이 있으며, 지배적인 존재는 부두교의 바론 사메디와 유사한 ''엑수 카베이라'' 또는 ''엑수 세미테리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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群馬)駅前にずらり「バス停の墓場」 東武線の細谷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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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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