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국 (제1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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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합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가 맺은 삼국 동맹에 대항하여 형성된 국가 연합이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들의 복잡한 동맹 관계 속에서 프랑스, 러시아, 영국이 삼국 협상을 맺고,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세르비아 선전포고로 전쟁이 발발하면서 벨기에, 일본, 이탈리아, 미국 등이 연합국에 가담했다. 1917년 러시아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이탈하고 루마니아도 잠시 이탈했으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이 주요 연합국으로 남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했다. 연합국은 미국의 참전,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동맹국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을 바탕으로 승리하였으며, 전쟁 이후 파리 강화 회의를 통해 전후 처리를 진행하고 국제 연맹을 창설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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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제1차 세계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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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 | |
주요 연합국 | |
프랑스 제3공화국 | 프랑스 제3공화국 |
영국 | 영국 |
이탈리아 왕국 | 이탈리아 왕국 (1915년부터) |
러시아 제국 | 러시아 제국 (1917년까지) |
미국 | 미국 (1917년부터, 연합국 연합 세력으로 참전) |
일본 제국 | 일본 제국 |
연합국 및 공동 교전국 | |
1914년 |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령 인도 제국 뉴펀들랜드 자치령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연방 세르비아 왕국 벨기에 몬테네그로 왕국 룩셈부르크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아시리아인 자원병 쿠웨이트 이집트 술탄국 |
1915년 | 네지드 하사 토후국 아시르 토후국 그리스 임시 정부 (후에 그리스 왕국) |
1916년 | 포르투갈 제1공화국 루마니아 왕국 헤자즈 왕국 |
1917년 | 그리스 왕국 중화민국 (1912년-1949년) 라타나코신 왕국 브라질 제1공화국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 |
1918년 | 카스피 중앙 독재정권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 |
중앙 동맹국에 선전 포고했지만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은 국가 | |
중앙 동맹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지만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은 국가 | |
연합국에 동조했지만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 | |
중앙 동맹국에 대항하여 싸운 소비에트 국가 |
2. 연합국의 형성 배경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은 영광스러운 고립주의 정책을 유지하던 영국을 제외하고는 서로 대립하는 세력 블록으로 나뉘어 있었다. 영국은 1902년 영일 동맹, 1904년 프랑스와의 앙탕트 코르디알을 체결하며 변화를 보였다.[18] 1905년 모로코 위기에서 영국은 독일을 상대로 프랑스를 지지했다.
1905년-1915년 자유당 정부는 1907년 영러 협약을 통해 이러한 재편을 이어갔다. 이 협약들은 식민지 분쟁 해결에 중점을 두었지만, 협력의 길을 열어 영국이 독일 해군 확장에 대응하여 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게 했다.[19]
벨기에를 방어하는 것은 영국의 전략적 이익이었다.[20] 1839년 런던 조약 제7조에 따라 영국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해야 했고, 필요시 무력으로 보장했다.[21] 테오발트 폰 베트만 홀베크 총리는 이를 '쓰레기 종이'라고 일축했지만, 영국의 법률 담당자들은 이를 구속력 있는 법적 의무로 확인했고, 그 중요성은 독일에게도 알려져 있었다.[22]
1911년 아가디르 사건은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비밀 협상을 이끌었다. 영국 원정군이 프랑스에 상륙하고, 영국 해군은 북해, 영국 해협 및 북부 프랑스 방어를, 프랑스 해군은 지중해에 집중하기로 합의했다.[23]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프랑스를 지원할 의무가 있었지만, 이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14년 8월 1일, 자유당 정부와 지지자 대다수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기를 원했다.[24] H. H. 애스퀴스와 에드워드 그레이는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독일이 1839년 조약을 발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자유당의 단결을 유지할 최선이라고 판단했다.[25]
독일 최고 사령부는 벨기에 진입이 영국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단기간의 전쟁을 예상했고, 런던 주재 독일 대사는 아일랜드 문제로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6] 1914년 8월 3일, 독일은 벨기에의 무제한 통과를 요구했고, 거절되자 8월 4일 이른 아침에 침공했다.
벨기에 침공은 단순한 도덕적, 전략적 선택으로 보이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지지와 여론을 공고히 했다.[27] 벨기에는 1839년 조약에 따라 지원을 요청했고, 영국은 1914년 8월 4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28] 독일의 벨기에 중립 위반이 영국의 전쟁 참여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정부 선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29]
선전포고는 자동적으로 영국 제국의 모든 자치령, 식민지 및 보호령을 포함했으며, 이들은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식민청이 관리하는 크라운 식민지와 캐나다, 뉴펀들랜드,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의 자치 자치령이 있었다. 이들은 자체적인 국내 정책과 군사비를 통제했지만 외교 정책은 통제하지 못했다.
영국령 인도는 현대 인도, 파키스탄, 미얀마, 방글라데시를 포함하며, 식민청의 지배를 받았던 다른 식민지와 달리, 인도청 또는 영국에 충성하는 토후에 의해 직접 통치되었고, 페르시아 만에서 트루셜 주 및 오만과 같은 영국의 이익도 통제했다. 100만 명이 넘는 영국 인도군 병사들이 주로 프랑스와 중동에서 복무했다.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전체 제국의 외교, 정치 및 군사 전략은 런던의 영국 전시 내각에 의해 통제되었고, 1917년에는 자치령 대표가 포함된 제국 전시 내각으로 대체되었다.[30] 전시 내각 아래에는 제국 참모총장 또는 CIGS와 해군성이 있었다. 서부 전선의 더글러스 헤이그 또는 팔레스타인의 에드먼드 앨런비와 같은 전장 사령관은 CIGS에 보고했다.
인도군 다음으로 가장 큰 부대는 프랑스의 오스트레일리아 군단과 캐나다 군단이었으며, 1918년까지 존 모나쉬와 아서 커리의 지휘를 받았다.[31]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뉴펀들랜드 출신 부대는 프랑스, 갈리폴리, 독일 동아프리카 및 중동 등에서 복무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독일령 뉴기니를, 남아프리카군은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했다. 이는 전 보어인들에 의한 마리츠 반란을 초래했지만 진압되었다. 전쟁 후 뉴기니와 남서아프리카는 각각 1975년과 1990년까지 유지된 보호령이 되었다.
2. 1. 삼국 협상과 삼국 동맹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삼국 동맹에 대항하여 프랑스, 러시아, 영국이 러불 동맹, 영불 협상, 영러 협약을 상호 체결하여 삼국 협상을 형성하였다.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 동맹에 따라 영국 정부로부터 참전을 요청받아 협상 측 연합국에 가담하였다. 이탈리아는 1915년 미수복 이탈리아 반환이 런던 조약(런던 밀약)에서 약속되자 연합국으로 전향했다.
미국(미국 합중국)은 중립을 지켰으나, 연합국에 우호적인 대외 정책을 취하며 물자 조달 등으로 지원했다. 독일 해군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한 루시타니아호 사건 등으로 반독 감정이 고조된 가운데 짐머만 전보 사건이 발생, 1917년 연합국으로 참전했다. 러시아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되고, 10월 혁명 후 볼셰비키 정부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연합국에서 이탈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헤자즈 왕국, 아르메니아 공화국 등 독립 세력도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여 전후 독립을 인정받고 강화 조약에 참여했다.
전쟁 후 파리 강화 회의 등을 통해 미국을 제외한 국제 연맹 창설 등 세계 질서의 기본으로서 연합은 지속되었으나, 독일을 포함한 로카르노 조약 체제 성립으로 연합국 틀은 소멸했다.
2. 2.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연합국의 확장
1914년 7월 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세르비아의 동맹국인 몬테네그로는 8월 8일 전쟁에 참전하여 오스트리아의 해군 기지인 카타로를 공격했다.[5] 동시에 독일군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중립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진입했다. 벨기에는 95% 이상이 점령되었지만, 이제르 전선에서 방어선을 유지하여 동맹국으로 간주되었다.8월 7일에서 9일 사이에는 러시아군이 독일의 동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동갈리치아에 진입했다. 일본은 8월 23일 독일에, 8월 25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면서 연합국에 합류했다.[5] 일본군은 9월 2일 중국의 독일 조약항인 칭타오를 포위하고, 마리아나, 캐롤라인, 마셜 제도를 포함한 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를 점령했다.
삼국 동맹 회원국이었던 이탈리아는 중립을 유지하다가 1915년 5월 23일 연합국에 가입하여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했다. 이는 1915년 4월 런던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탈리아인이 거주하는 영토와 기타 양보를 받는 대가로 이루어졌다.[52]
1917년 4월 6일, 미국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국제 선박을 공격하여 미국의 중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84] 이와 동시에 독일이 미국 참전 시 멕시코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치머만 전보 사건도 미국의 참전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는 연합국에서 이탈하여 1918년 3월 3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로 중앙 연합국과 별도의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날짜 | 선전국 | 대상국 |
---|---|---|
1914년 | ||
7월 28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세르비아 왕국 |
8월 1일 | 독일 제국 | 러시아 제국 |
8월 3일 | 독일 제국 | 프랑스 |
8월 4일 | 독일 제국 | 벨기에 |
영국 | 독일 제국 | |
8월 6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러시아 제국 |
8월 23일 | 일본 제국 | 독일 제국 |
8월 25일 | 일본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1915년 | ||
5월 23일 | 이탈리아 왕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1917년 | ||
4월 6일 | 미국 | 독일 제국 |
3. 주요 연합국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주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여러 국가들이 연합국에 가담하거나 지원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붕괴되고, 소비에트 정부 (볼셰비키)는 12월 15일 휴전, 1918년 2월 9일 강화하였다.[95] 몬테네그로는 1918년 11월 세르비아와 왕조 통합을 결의하였으며, 강화 회의에 초청되었으나 전권을 파견하지 않았다.
3. 1. 영국
19세기 대부분 동안 영국은 영광스러운 고립주의 정책에 따라 공식적인 동맹 없이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유럽이 대립하는 세력 블록으로 나뉘면서 이 정책은 위험에 노출되었고, 1895년-1905년 보수당 정부는 1902년 영일동맹, 1904년 프랑스와의 앙탕트 코르디알을 협상했다.[18] 1905년-1915년 자유당 정부는 1907년 영러 협약으로 이러한 재편을 계속했다. 이러한 협정들은 식민지 분쟁 해결에 중점을 두었지만, 더 넓은 협력의 길을 열었고 영국이 독일 해군 확장에 대응하여 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게 했다.[19]
벨기에를 방어하는 것은 오랫동안 영국의 전략적 이익이었다. 벨기에를 장악하면 적이 영국의 무역을 위협하거나 봉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0] 1839년 런던 조약 제7조에 따라 영국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했으며, 필요한 경우 무력으로 보장했다.[21] 1911년 아가디르 사건은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비밀 협상을 이끌었다. 이 협상에서 독일과의 전쟁 발발 2주 이내에 10만 명의 영국 원정군이 프랑스에 상륙하고, 영국 해군은 북해, 영국 해협 및 북부 프랑스 방어를 담당하며, 프랑스 해군은 지중해에 집중하기로 합의했다.[23]
1914년 8월 4일, 독일의 벨기에 침공은 영국의 참전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독일 최고 사령부는 벨기에 진입이 영국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단기간의 전쟁을 예상했고, 런던 주재 독일 대사는 아일랜드 문제로 인해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6] 그러나 벨기에 침공은 전쟁에 대한 정치적, 여론적 지지를 공고히 했다.[27] 벨기에는 1839년 조약에 따라 지원을 요청했고,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28]
선전포고는 자동적으로 영국 제국의 모든 자치령, 식민지 및 보호령을 포함했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군인과 민간 노동자 제공 모두에서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식민청이 관리하는 크라운 식민지와 캐나다, 뉴펀들랜드,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및 남아프리카의 자치 자치령이 있었다. 이들은 자체적인 국내 정책과 군사비를 통제했지만 외교 정책은 통제하지 못했다.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전체 제국의 외교, 정치 및 군사 전략은 런던의 영국 전시 내각에 의해 통제되었고, 1917년에는 자치령 대표가 포함된 제국 전시 내각으로 대체되었다.[30] 전시 내각 아래에는 모든 제국 지상군을 책임지는 제국 참모총장 또는 CIGS와 해군을 담당하는 해군성이 있었다. 서부 전선의 더글러스 헤이그와 같은 전장 사령관은 CIGS에 보고했다.
인도군 다음으로 가장 큰 개별 부대는 프랑스의 오스트레일리아 군단과 캐나다 군단이었으며, 1918년까지 존 모나쉬와 아서 커리의 지휘를 받았다.[31]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뉴펀들랜드 출신의 부대는 프랑스, 갈리폴리, 독일 동아프리카 및 중동 등의 전장에서 복무했다.
주요 인물
3. 2. 프랑스
레이몽 푸앵카레는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했다. 르네 비비아니는 1914년 6월 13일부터 1915년 10월 29일까지,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1915년 10월 29일부터 1917년 3월 20일까지, 알렉상드르 리보는 1917년 3월 20일부터 1917년 9월 12일까지, 폴 팽르베는 1917년 9월 12일부터 1917년 11월 16일까지 프랑스 총리를 역임했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1917년 11월 16일부터 프랑스 총리를 역임했다.
조제프 조프르는 1914년 8월 3일부터 1916년 12월 13일까지 프랑스 육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로베르 니벨은 1916년 12월 13일부터 1917년 4월까지, 필리프 페탱은 1917년 4월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프랑스 육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페르디낭 포슈는 1918년 3월 26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했다.[95] 모리스 사라유는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아돌프 기유마는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살로니카 전선 연합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루이 프랑셰 데스페레는 1918년에 살로니카 전선 연합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밀란 라스티슬라프 슈테파니크는 프랑스 육군 장군이자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사령관이었다.
3. 3. 러시아
1873년부터 1887년까지 러시아는 삼황동맹을 통해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동맹을 맺었고, 이후 1887년부터 1890년까지는 재보험 조약을 통해 독일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간 발칸 반도에 대한 이해관계 충돌로 두 동맹은 모두 붕괴되었다. 프랑스는 이를 이용하여 1894년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맺었다. 1907년 영-러 협약은 아시아의 분쟁을 해결하고 프랑스와의 삼국 협상(이 단계에서는 대체로 비공식적이었다)을 수립할 수 있게 했다.[32][33] 1908년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했고,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추가적인 확장을 막기 위해 발칸 동맹을 결성했다.[34]
러시아의 산업 기반과 철도망은 1905년 이후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기저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러시아와 세르비아 사이에는 공식적인 동맹이 없었지만, 양국 간의 긴밀한 양자 관계는 러시아에게 독일 또한 상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던 붕괴 직전의 오스만 제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침공하자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사조노프는 이를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종식시키려는 오스트리아-독일의 음모로 간주했다.[35]
러시아는 자국 영토 외에도 동족인 슬라브인들의 수호자로 여겼으며, 7월 30일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독일은 8월 1일에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6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10월 말 오스만 제국의 군함이 오데사를 포격한 후, 협상국은 1914년 11월에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36]
1917년 3월 12일 제정 붕괴, 소비에트 정부(볼셰비키)가 12월 15일 휴전, 1918년 2월 9일 강화하였다.
3. 4. 일본
1868년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은 자원이 부족하고 기술이 낙후된 반봉건적인 농업 국가였다. 그러나 1914년까지 일본은 강력한 군대를 갖춘 현대 산업 국가로 변모했다.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일어난 청일 전쟁에서 중국을 격파하며 동아시아의 주요 강국으로 자리매김했고, 한국과 타이완(당시 포르모사)을 식민지로 삼았다.
러시아의 한국과 만주 팽창에 우려를 느낀 영국과 일본은 1902년 1월 30일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양국 중 한 곳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다른 한 곳은 중립을 유지하고, 두 곳 이상의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다른 한 곳이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중국에 이해관계를 가진 프랑스나 독일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개입할 경우, 일본이 영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44] 이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와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일본에게 주었고, 승리한 일본은 만주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극동의 동맹국인 일본 덕분에, 1904년부터 1910년까지 제1해군수장을 지낸 존 피셔(John Fisher, 1st Baron Fisher)는 독일 제국 해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해에 영국의 해군 자원을 재배치할 수 있었다. 1911년 동맹이 갱신되었고, 1914년 일본은 태평양 지역의 독일 영토를 할양받는 대가로 협상국에 가입했다. 이는 이 영토를 원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크게 불쾌하게 만들었다.
1914년 8월 7일, 영국은 공식적으로 중국에 있는 독일 해군 부대의 파괴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고, 일본은 8월 23일 독일에, 8월 25일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했다.[45] 1914년 9월 2일, 일본군은 칭다오 (당시 칭다오로 알려짐)의 독일 조차지에 대한 포위 작전을 시작했고, 11월 7일에 항복을 받아냈다. 일본 제국 해군은 동시에 마리아나 제도,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에 있는 독일 식민지를 점령했으며, 1917년에는 지중해에서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해군 함대가 파견되었다.
일본의 주요 관심사는 중국이었고, 1915년 1월 중국 정부에 21개조 요구라는 비밀 최후통첩이 제시되어 광범위한 경제적, 정치적 양보를 요구했다. 이 요구는 결국 수정되었지만, 그 결과 중국 내 반일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46] 게다가 다른 연합국들은 이제 일본을 파트너가 아닌 위협으로 여기게 되었고, 먼저 러시아, 그리고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한 후에는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다른 연합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일본은 칭다오와 산동성을 중국에 반환하지 않았다.
'''주요 인물'''
3. 5. 이탈리아
삼국 동맹은 정기적으로 갱신되었지만, 아드리아 해와 에게 해에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의 상충하는 목표로 인해 위태로워졌다.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은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는 이스트리아(트리에스테와 리에카 포함)와 트렌토를 '잃어버린 영토'라고 칭하며, 이 동맹을 매우 논란이 많은 것으로 만들었고, 그 조건은 1915년 만료될 때까지 비밀로 유지되었다.[47]오스트리아 편향적인 이탈리아 육군 참모총장인 알베르토 폴리오가 1914년 7월 1일에 사망하면서, 이탈리아의 지지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었다.[48] 이탈리아 총리 안토니오 살란드라는 동맹이 방어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과 이탈리아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배제는 이탈리아가 참전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49]
그의 신중함은 이해할 만했는데, 프랑스와 영국이 이탈리아 원자재의 대부분, 특히 석탄의 90%를 공급하거나 통제했기 때문이다.[49] 살란드라 총리는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는 과정을 '신성한 이기심'이라고 묘사했지만, 전쟁이 늦어도 1915년 중반 이전에 끝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이 결정은 점점 더 시급해졌다.[50] 삼국 동맹에 따른 이탈리아의 의무에 따라, 군대의 대부분은 프랑스와의 국경에 집중되었고, 10월에 폴리오의 후임인 루이지 카도르나 장군은 이 부대들을 오스트리아와의 북동부 국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51]
1915년 4월 런던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탈리아인이 거주하는 영토와 기타 양보를 받는 대가로 협상국에 가입하기로 합의했고, 그 대가로 1915년 5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1916년에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52] 1915년의 약속과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의 실제 결과 사이의 차이에 대한 이탈리아의 불만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부상에 강력한 요인이 될 것이다.[53]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직책 | 이름 |
---|---|
이탈리아 국왕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이탈리아 총리 (1916년 6월 18일까지) | 안토니오 살란드라 |
총리 (1916년 6월 18일 – 1917년 10월 29일) | 파올로 보셀리 |
총리 (1917년 10월 29일부터)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 |
이탈리아 왕립 육군 총사령관 | 루이지 카도르나 |
이탈리아 왕립 육군 참모총장 | 아르만도 디아스 |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 함대 사령관 (1914–17) | 루이지 아브루치 공작 |
이탈리아 왕립 해군 제독 | 파올로 타온 디 레벨 |
3. 6. 미국

미국은 1917년 4월,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국제 선박을 공격하여 미국의 중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다.[84] 이와 함께 독일이 미국 참전 시 멕시코가 약 70년 전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치머만 전보 사건도 참전 배경이 되었다. 미국은 전쟁에 참전했지만, "외교적 혼란"을 피하고자 프랑스와 영국의 공식 동맹국이 아닌 "연합국"으로 참전했다.[85] 오스만 제국과 불가리아는 미국과 관계를 단절했지만, 선전포고는 하지 않았으며,[8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국은 1917년 12월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미국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인물 | 직책 |
---|---|
우드로 윌슨 | 미국 대통령 겸 미군 최고사령관 |
뉴턴 디. 베이커 | 미국 전쟁장관 |
조지퍼스 다니엘스 | 미국 해군장관 |
존 퍼싱 | 소장/대장, 미국 원정군 사령관 |
윌리엄 심스 | 소제독/중장, 유럽 해역 미국 해군 사령관 |
메이슨 패트릭 | 준장, 미국 육군 항공대 사령관 |
4. 기타 연합국
다음은 주요 연합국 외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이다.
국가 | 참전 배경 및 역할 |
---|---|
세르비아 |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이후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침공하였으나, 1914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1915년 불가리아가 중앙 연합국에 가입하면서 세르비아 대부분이 점령당했다. 세르비아는 모든 참전국 중 가장 큰 비율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54][34][33][56] |
벨기에 | 1839년 런던 조약에 의해 중립이 보장되었으나, 1914년 독일이 침공하면서 전쟁에 휘말렸다. 벨기에군은 아이서 전선에서 방어선을 유지했다. 벨기에 콩고 병력은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영국군에 합류했다.[57][39][26][58][59] |
몬테네그로 | 세르비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발칸 전쟁에서 큰 이득을 얻지 못하고, 내부 분열을 겪고 있었다. 1914년 8월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1916년 1월 항복했다.[63][64][65][66] |
루마니아 | 주요 연합국과 동등한 지위를 조건으로 1916년 연합국에 가담했다. 루마니아는 4개 전선 중 3개 전선에서 싸웠으며, 12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했다. 자체적으로 박격포 모델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등 군수 산업 발전에 힘썼다. 1917년까지 연합국 편에서 계속 싸웠으나,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한 후 1918년 중앙 연합국과 조약을 체결했다.[70][71][72][73][74][75][76][77][78][80][81][82][83] |
그리스 | 발칸 전쟁 이후 정치적 분열을 겪었으며,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는 연합국을, 콘스탄티노스 1세는 중앙 세력을 지지했다. 1917년 베니젤로스가 이끄는 국가 정부가 연합국에 가입하여 마케도니아 전선에서 싸웠다.[60][61][62] |
포르투갈 | 포르투갈 원정군을 서부 전선에 파병하고, 남앙골라와 동아프리카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 |
태국 | 시암 원정군을 서부 전선에 파병했다. |
브라질 | 1917년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이유로 전쟁에 참전했다. 해군 부대를 파견하여 지브롤터의 영국 함대에 합류시켰고, 의료 지원단 파견 및 프랑스군과 영국 왕립 공군에 병력을 파견했다. |
- '''비국가 행위자'''
- 아르메니아 비정규군과 자원병: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오스만 제국과 싸웠다.
- 아시리아 자원군
- 폴란드 군단
-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의 무장 지원을 받았다.
5. 연합국의 승리와 전후 처리
알바니아 봉기 성공 이후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그리스 연합군은 오스만 제국의 유럽 영토 대부분을 점령했다.[55] 영토 분할을 둘러싼 분쟁은 제2차 발칸 전쟁으로 이어졌고, 불가리아는 패배했다. 부쿠레슈티 조약 결과 세르비아는 영토와 인구가 크게 증가했지만,[56] 적대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불가리아에 직면했다.
세르비아 관리들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관여는 논쟁거리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914년 7월 28일 세르비아를 침공했다. 세르비아는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격퇴했으나, 전쟁으로 지쳐 손실을 메우기 어려웠다. 1915년 불가리아가 중앙 동맹국에 가입하며 세르비아는 점령당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세르비아는 참전국 중 가장 큰 비율의 인명 피해를 보았다.[56]
6. 연합국의 동원 병력 및 사상자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 각국의 동원 병력, 군사 사망자, 전투 부상자, 총 사상자 및 동원 인원 대비 사상자 비율은 다음과 같다. 아래 표의 수치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군복을 입은 다양한 인원의 누적 수치(추정치)이며, 육군, 해군 및 보조군을 포함한다. 어느 특정 시점에서 각 군의 병력 규모는 훨씬 적었으며, 이 중 실제 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한 병력은 일부에 불과했다. 또한 이 수치는 각 국가의 참전 기간을 반영하지 않는다.
연합국 | 동원 인원 | 군사 사망자 | 전투 부상자 | 총 사상자 | 동원 인원 대비 사상자 비율 |
---|---|---|---|---|---|
오스트레일리아 | 412,953[96] | 61,928[96] | 152,171 | 214,099 | 52% |
벨기에 | 267,000[1] | 38,172[97] | 44,686 | 82,858 | 31% |
브라질 | 1,713[15] | 100[92] | 0 | 100 | 5.84% |
캐나다 | 628,964[98] | 64,944[98] | 149,732 | 214,676 | 34% |
프랑스 | 8,410,000[1] | 1,397,800[99] | 4,266,000 | 5,663,800 | 67% |
그리스 | 230,000[1] | 26,000[100] | 21,000 | 47,000 | 20% |
인도 | 1,440,437[10] | 74,187[101] | 69,214 | 143,401 | 10% |
이탈리아 | 5,615,000[1] | 651,010[102] | 953,886 | 1,604,896 | 29% |
일본 | 800,000[1] | 415[103] | 907 | 1,322 | <1% |
몬테네그로 | 50,000[1] | 3,000 | 10,000 | 13,000 | 26% |
네팔 | 200,000[94] | 30,670 | 21,009 | 49,823 | 25% |
뉴질랜드 | 128,525[11] | 18,050[104] | 41,317 | 59,367 | 46% |
포르투갈 | 100,000[1] | 7,222[105] | 13,751 | 20,973 | 21% |
루마니아 | 750,000[1] | 250,000[106] | 120,000 | 370,000 | 49% |
러시아 | 12,000,000[1] | 1,811,000[107] | 4,950,000 | 6,761,000 | 56% |
세르비아 | 707,343[1] | 275,000[108] | 133,148 | 408,148 | 58% |
시암 | 1,284[9] | 19 | 0 | 19 | 2% |
남아프리카 공화국 | 136,070[10] | 9,463[109] | 12,029 | 21,492 | 16% |
영국 | 6,211,922[1] | 886,342[110] | 1,665,749 | 2,552,091 | 41% |
미국 | 4,355,000[1] | 116,708[111] | 205,690 | 322,398 | 7% |
총계 | 42,244,409 | 5,741,389 | 12,925,833 | 18,744,547 | 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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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군 전사자 8,365명, 행방불명자 3,25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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