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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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사야서는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 시대의 예언자 이사야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구약성경의 책이다. 이사야서 전체가 이사야의 저작은 아니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역사적 상황, 문체, 내용의 차이를 근거로 여러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본다.
이사야서는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에 살았던 이사야라는 역사적 예언자를 뿌리로 두고 있지만, 그가 이사야서 전체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사야서의 저자에 대한 논쟁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제기된다.
이사야서는 에제키엘서, 스바니야서, 요엘서, 예레미야서 등 구약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처음에는 심판을 다루다가 이후에는 미래의 축복을 다루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6]
이사야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1-39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경고를, 40-66장은 바빌론 포로 이후의 위로와 회복, 종말에 대한 소망을 다룬다.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의 거룩함, 우상 숭배 비판, 하나님에 대한 신뢰, 사회 정의에 대한 강조이다. 이사야서는 신약성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어 기독교 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2. 배경과 저자
1775년 되덜라인(Johann Christoph Döderleinde)은 "이사야"(''Esaias'')라는 책에서 이사야서가 두 개의 다른 작품을 합쳐놓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아이히혼(J. G. Eichhorn)은 "구약 서론"에서 이사야서 40-66장은 이사야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베른하르트 둠(Bernhard Duhm)의 이사야서 주석(Das Buch Jesaja, 1872)은 이사야서에 대한 비평적 가설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둠은 이사야서를 원-이사야서 (Proto-Isaiah), 제2이사야(40-55장), 제3이사야(56-66장) 등으로 나누었는데, 제2이사야서는 기원전 538년 바빌론에 거주하던 추방자들 중 한 명인 무명의 예언자가, 제3이사야서는 추방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후 또 다른 무명의 예언자가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이사야서는 기원전 2세기 마카비 시대까지도 계속 수정되었다고 보았다.
베른하르트 둠의 삼분설은 어휘, 문체, 신학 사상의 차이를 근거로 한다. 특히 제2이사야서에는 심판 이후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3이사야서에서도 회복이 강조되지만, 심판을 선고하는 메시지도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둠이 원-이사야서라고 부른 1-39장에서도 회복의 메시지가 나타나며, 특히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는 메시지(이사야 13-14장)에서 추방당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분명하게 제시된다.(이사야 14:1)
둠의 주장은 현재 우리가 가진 구약 선지서들 중에서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책은 없는데, 이사야서처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예언서를 무명의 선지자가 기록했겠느냐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이사야서 후반부의 회복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 그 메시지를 기록했다면, 그것은 예언을 가장한 거짓 예언(vaticinia ex eventu)이 되는데, 이러한 거짓된 내용을 성경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사야서 후반부를 추방 이후의 저작이라 가정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고레스"라는 페르시아 대왕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사야 44:28, 45:1 등). 그래서 이사야 후반부는 키루스 대왕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역사 무대에 등장하여 이름을 떨치던 시기에 기록되었으리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에 대하여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키루스"라는 왕의 이름은 예언으로 알려졌을 수 있으며 (열왕기 상한국어 13:2에서 요시야란 이름이 태어나기 약 300년 전에 예언으로 선포되는 점을 참조), 이사야 후반부의 회복 메시지도 예수나 사도들이 가졌던 입장처럼 (마태오 복음서한국어 3:3, 4:14, 8:17, 사도행전한국어 8:30 등),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라고 확신한다.
사해 사본 발견을 통해 이사야서가 한 권의 두루마리로 통일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사야서의 통일성을 지지하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2. 1. 시대적 배경
이사야서가 기록되던 시기는 유다 왕국에게 힘든 시기였다.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의 동맹으로 유다가 침공당하고, 히즈키야 왕 때에는 아시리아의 산헤립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 공격당하여 유다 왕국의 존폐가 걸린 일도 있었다.
이사야서는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에 살았던 이사야라는 역사적 예언자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과 이 예언자가 이사야서 전체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40장부터 55장까지는 예루살렘이 이미 멸망했고 바빌론 유배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56장부터 66장까지는 백성들이 이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성전 재건이 이미 진행 중인 더 늦은 시점을 가정하고 있다. 39장 이후로 이사야라는 이름이 갑자기 사용되지 않으며, 40장 이후 문체와 신학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난다.
역사적 인물 이사야(이사야 벤 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 중후반 네 명의 유다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유다 왕국에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아시리아는 오늘날 이라크 북부에서 시작하여 지중해를 향해 서쪽으로 확장하여 기원전 734~732년 아람(현재 시리아)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722~721년 이스라엘 왕국(사마리아)을 멸망시킨 후, 기원전 701년 유다를 정복했다. 원 이사야서는 운문과 산문 구절로 나뉘며, 현재 유행하는 이론은 운문 구절이 기원전 8세기 원래 이사야의 예언을 나타내는 반면, 산문 부분은 100년 후 7세기 말 요시야 궁정에서 그의 본문에 대한 "설교"라는 것이다.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 정복과 엘리트 계층의 유배는 이 책의 형성에 있어 다음 단계를 알렸다. 제2이사야는 유배 중인 유대인들에게 귀환의 희망을 제공하며 자신을 호소한다. 이것은 키루스 대왕의 지휘 아래 페르시아의 급격한 부상 시기였다. 기원전 559년 그는 오늘날 이란 동부의 작은 봉신 왕국의 통치자였던 아버지를 계승하여 기원전 540년에는 지중해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제국을 통치했고, 기원전 539년에는 바빌론을 정복했다. 제2이사야의 바빌론 멸망 임박 예언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키루스의 찬양은 그의 예언을 기원전 550~539년, 아마도 이 기간 말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페르시아인들은 유대인들의 유배를 끝냈고, 기원전 515년까지 유배자들, 또는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그러나 귀환은 문제가 없지 않았다. 귀환자들은 나라에 남아 이제 땅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고, 수립되어야 할 정부 형태에 대한 추가적인 갈등이 있었다. 이 배경이 제3이사야의 맥락을 형성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반복적으로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신의 나라』에서 예언자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했다.[6] 아모스의 활동 후 약 10년 후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모스와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고 생각되는 것과는 달리,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궁정 예언자였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아모스나 호세아가 주로 출애굽 전승에 근거했던 것과는 달리, 이사야에서는 다윗 왕가와 시온(예루살렘)의 선택 전승이 중시된다. 남왕국에서는 거의 동시대에 미가서로 알려진 예언자 미가가 활동했다고 생각되지만, 미가는 예루살렘의 철저한 파괴까지 예언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사야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다는 것은 현실의 정치 권력에 접근할 가능성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며, 예언자 이사야는 히즈키야 왕의 즉위에 관여했다고 추측된다.
각 장은 반드시 연대순으로 편집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당연히 처음에 놓여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부르심 기사는 6장에 놓여 있다.2. 2. 저자 논쟁
기원전 8세기경에 살았던 이사야 예언자가 이사야서를 기록했다는 견해가 역사-비평적 신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교회의 전통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성서를 고문헌으로 이해하는 비평적 성서 읽기가 나타나면서, 이사야 외에 제2 이사야, 제3 이사야라는 학설, 즉 이사야 예언서의 저자를 복수로 보는 해석이 등장했다.
1775년 되덜라인(Johann Christoph Döderleinde)은 "이사야"(''Esaias'')라는 책에서 이사야서가 두 개의 다른 작품을 합쳐놓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아이히혼(J. G. Eichhorn)은 "구약 서론"에서 이사야서 40-66장은 이사야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베른하르트 둠의 이사야서 주석(Das Buch Jesaja, 1872)은 이사야서에 대한 비평적 가설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베른하르트 둠의 삼분설은 이사야서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비평 가설로, 어휘, 문체, 신학 사상의 차이를 근거로 한다.
이사야서가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에 살았던 이사야라는 역사적 예언자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 예언자가 이사야서 전체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사야서의 저술사는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 사회에서 저자에 대한 인식의 큰 차이를 반영한다. 고대인들은 기존 저작을 보완하면서 익명으로 남는 것을 부적절하게 여기지 않았다. 저자들은 익명이지만, 그들 모두 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이 책은 제사장 계통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을 수 있다.
역사적 인물 이사야(이사야 벤 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 중후반 네 명의 유다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유다 왕국에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아시리아는 서쪽으로 확장하여 아람(현재 시리아)과 이스라엘 왕국(사마리아)을 멸망시킨 후, 마침내 유다를 정복했다. 원 이사야서는 운문과 산문 구절로 나뉘며, 현재 유행하는 이론은 운문 구절이 기원전 8세기 원래 이사야의 예언을 나타내는 반면, 산문 부분은 100년 후 7세기 말 요시야 궁정에서 그의 본문에 대한 "설교"라는 것이다.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 정복과 엘리트 계층의 유배는 이 책의 형성에 있어 다음 단계를 알렸다. 제2이사야는 유배 중인 유대인들에게 귀환의 희망을 제공하며, 키루스 대왕 지휘 아래 페르시아의 급격한 부상 시기에 활동했다. 제2이사야의 바빌론 멸망의 임박한 예언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키루스의 찬양은 그의 예언을 기원전 550~539년, 아마도 이 기간 말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페르시아인들은 유대인들의 유배를 끝냈고, 기원전 515년까지 유배자들, 또는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그러나 귀환은 문제가 없지 않았다. 귀환자들은 나라에 남아 이제 땅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고, 수립되어야 할 정부 형태에 대한 추가적인 갈등이 있었다. 이 배경이 제3이사야의 맥락을 형성한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39장까지를 제1이사야, 40장 이하를 제2이사야, 56장 이하를 제3이사야로 보는 견해는 고등비평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의 입장이다. 한편, 사해 사본의 발견을 근거로, 『이사야서』가 한 권의 두루마리로 통일되어 있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후반부도 기원전 8세기 이사야의 저술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2. 2. 1. 베른하르트 둠의 삼분설
1775년 되덜라인(Johann Christoph Döderleinde)은 "이사야"(''Esaias'')라는 책에서 이사야서가 두 개의 다른 작품을 합쳐놓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아이히혼(J. G. Eichhorn)은 "구약 서론"에서 이사야서 40-66장은 이사야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베른하르트 둠(Bernhard Duhm)의 이사야서 주석(Das Buch Jesaja, 1872)은 이사야서에 대한 비평적 가설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둠은 이사야서를 원-이사야서 (Proto-Isaiah), 제2 이사야서 (40-55장), 제3 이사야서 (56-66장) 등으로 나누었는데, 제2 이사야서는 기원전 538년 바빌론에 거주하던 추방자들 중 한 명인 무명의 예언자가, 제3 이사야서는 추방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후 또 다른 무명의 예언자가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이사야서는 기원전 2세기 마카비 시대까지도 계속 수정되었다고 보았다.
베른하르트 둠의 삼분설은 어휘, 문체, 신학 사상의 차이를 근거로 한다. 특히 제2 이사야서에는 심판 이후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3 이사야서에서도 회복이 강조되지만, 심판을 선고하는 메시지도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둠이 원-이사야서라고 부른 1-39장에서도 회복의 메시지가 나타나며, 특히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는 메시지(이사야 13-14장)에서 추방당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분명하게 제시된다.(이사야 14:1 이하)
둠의 주장은 현재 우리가 가진 구약 선지서들 중에서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책은 없는데, 이사야서처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예언서를 무명의 선지자가 기록했겠느냐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이사야서 후반부의 회복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 그 메시지를 기록했다면, 그것은 예언을 가장한 거짓 예언(vaticinia ex eventu)이 되는데, 이러한 거짓된 내용을 성경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된다.[1]
1892년 베른하르트 둠은 56-66장을 세 번째 예언자에게 돌린다고 주장한 이후,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바벨론 포로 귀환 시기에 활동했다고 생각되는 예언자에 의한 ‘제2이사야서’(40-55장)와 더 후대의 예언자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제3이사야서’(56-66장)가 구분된다.[2]
2. 2. 2. 비평적 관점에 대한 반론
베른하르트 둠을 필두로 하는 비평가설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도전은 "현재 우리가 지닌 구약 선지서들 중에서 무명의 저작은 전무한데, 유독 이사야같이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예언서를 어떤 무명의 선지자가 기록했겠는가?"하는 점이다. 더구나 "이사야 후반부의 회복을 이미 체험한 어떤 이가 그 메시지를 기록했다면, 그것은 예언을 가장한 가짜 예언인데(vaticinia ex eventu), 그런 거짓된 것을 성경의 일부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도 설명해야 한다.
이사야서 후반부를 추방 이후의 저작이라 가정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고레스"라는 페르시아 대왕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사야 44:28, 45:1 등). 그래서 이사야 후반부는 키루스 대왕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역사 무대에 등장하여 이름을 떨치던 시기에 기록되었으리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에 대하여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키루스"라는 왕의 이름은 예언으로 알려졌을 수 있으며 (열왕기 상한국어 13:2에서 요시야란 이름이 태어나기 약 300년 전에 예언으로 선포되는 점을 참조), 이사야 후반부의 회복 메시지도 예수나 사도들이 가졌던 입장처럼 (마태오 복음서한국어 3:3, 4:14, 8:17, 사도행전한국어 8:30 등),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라고 확신한다.
3. 내용 및 구조
이사야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36-39장은 본문의 관심이 아시리아에 의한 위기로부터 포로 시대 및 그 이후 시대의 관심사들로 바뀌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6] 이 부분은 히즈키야 왕이 아시리아 포위 공격 중에 야훼께 충실했던 것을 회복된 공동체의 모범으로 보여준다.[6]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학계에서는 이사야서에 세 개의 별개의 예언 모음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합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이러한 인식은 도전을 받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은 이사야서를 두 부분으로 구성된 구조로 제시한다.[7]
이사야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세계 계획에서 차지하는 주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수세기의 역사를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단일한 시각으로 바라본다.[7]
3. 1. 전반부 (1-39장): 심판과 경고
이사야서의 첫 부분(1-39장)은 이스라엘에 임박한 심판을 다룬다(이사야 1-12장).[6] 예언자 이사야와 직접 관계되는 것은 이사야서의 첫 부분(1-39장)뿐인 듯하다. 이사야의 활동 초기에 대한 내용은 6장 1절부터 9장 7절까지에 나오고, 말기에 대해서는 22장, 28-32장, 36-39장(서기전 701년 예루살렘의 포위)에서 다룬다. 그 중간 시기에 속하는 것이 1-5장, 9장 8절부터 12장 6절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진술이다.[6]
1-12장은 이사야의 초기 시절 주로 유다에 대한 예언들을 포함한다.[6] 1장에는 아모스서에 있는 것과 같은 제물 의식 비판이 보인다. 2장에서는 인간의 교만과 전쟁[7]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의 오만은 이사야 예언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6장은 부르심 기사이다. 7-8장은 시리아-이스라엘 전쟁에 관한 것이다. (임마누엘 예언)
13-23장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 선언을 담고 있는데, 부분적으로만 이사야와 관련시킬 수 있다. 24-27장은 세상 끝에 관한 묵시문학적인 본문인데 그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28-33장은 이사야의 후기 사역에서 나온 예언들이다. 34-35장은 시온의 환상으로, 아마도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36-39장은 이사야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로, 일부는 열왕기에서 나온 것이다.[6]
36-38장에서는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에 의한 침략이 그려진다. 기원전 701년에 예루살렘은 간신히 함락을 면했지만, 이것이 시온 선택의 확증으로 여겨졌다고 생각된다. 동일한 사건에 관한 열왕기하 18-20장의 기록은 히즈키야가 공납을 부과받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사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6]
이사야서의 내용을 분해하면 다음과 같다.[6]
제목 | 장 | 내용 |
---|---|---|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말씀 | 1-12장 | 책망하시며 호출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예언을 시작한다. |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 | 13-23장 | 야훼를 교만한 열방을 파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
주 하나님의 열방에 대한 심판 | 24-27장 | |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말씀 | 28-39장 | 사악한 자에게 임할 일련의 화를 선포하면서 심판 주제를 계속해 나간다. |
바빌론 포로에 대한 위로의 말씀 | 40-55장 |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희망은 계속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종말에 대한 소망의 말씀 | 56-66장 |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
3. 2. 후반부 (40-66장): 위로와 회복
야훼 하나님이 유다 사람들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과 예루살렘이 재건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8] 56:9--59장은 1-39장에 나왔던 심판 메시지와 유사하며, 60-66장은 추방에서 돌아온 후의 영광을 노래한다.바빌론 포로에 대한 위로의 말씀(40-55장)은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희망이 계속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말에 대한 소망의 말씀(56-66장)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압제자(이제 아시리아가 아닌 바빌론)가 곧 멸망할 것이다. 34~35장은 야훼께서 구원받은 유배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실 것이라고 말한다. 40~54장은 우주의 창조주이신 야훼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 대왕을 약속된 메시아이자 성전 건축가로 지명하셨기 때문에 시온의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53장은 앞 구절에서 예언자가 말한 메시아가 될 고난받는 종을 예언한다. 55~66장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영원한 약속은 이제 이스라엘/유다 백성 전체에게 주어졌다. 이 책은 하나님의 계획의 마지막 단계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나라의 시온 순례와 야훼의 왕권 실현을 포함하여 의를 요구하며 끝맺는다.
'''제2 이사야'''/'''신 이사야'''(40~54장)는 40~48장과 49~54장으로 나뉘며, 첫 번째 부분은 이스라엘을 강조하고, 두 번째 부분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강조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강조하는 서론과 결론
- 예루살렘에 구원을 선포하는 전령이 있는 두 번째 서론과 결론
- 여러 구절을 나누는 찬송가
- 이방 나라들의 역할, 바벨론의 멸망,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고레스의 부상
- 예언자의 메시지를 개인화하는 네 개의 "종의 노래"
- 하나님의 능력과 그를 신뢰하도록 이스라엘을 초대하는 내용의 긴 시편
'''제3 이사야'''/'''말 이사야'''(55~66장)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몇 년 동안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이 한 예언들의 모음이다.
제2이사야의 주제는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이다. 이는 또 다른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페르시아 정복자 고레스를 그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루실 것이다.
제3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전, 안식일,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포로 귀환 이후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이 누구이고 그렇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당시의 질문들에 관한 것이다.
이사야 44장 6절에는 야훼 신앙의 일신교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진술이 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장 9-20절에서는 이것이 우상 제작과 숭배에 대한 풍자로 발전하여, 자신이 조각한 우상을 숭배하는 목수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야훼가 이전에 다른 신들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었지만, 제2이사야에서는 그가 세상의 유일한 신이 된다. 이러한 일신교 모델은 포로 귀환 이후 유대교의 특징이 되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기초가 되었다.
1892년 주석서에서 루터파 신학자 베른하르트 두움(Bernhard Duhm)은 56-66장을 세 번째 예언자에게 돌린다고 주장한 이후로, 바벨론 포로 귀환 시기에 활동했다고 생각되는 예언자에 의한 ‘제2이사야서’(40-55장)와 더 후대의 예언자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제3이사야서’(56-66장)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구분된다. 45장 15절에는 “숨겨진 하나님”(라틴어 번역에서는 Deus absconditus)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제2이사야서』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주님의 종”(42:1~4, 49:1~6, 50:4~9, 52:13~53:12)에 관한 네 곳이다. 『제2이사야서』에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베른하르트 둠에 의해 지적되었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8] “종”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 노래는 고난에 의미를 발견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종”의 대리 속죄적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으로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3. 3. 전환점 (36-39장)
36-39장은 본문의 관심이 아시리아에 의한 위기로부터 포로 시대 및 그 이후 시대의 관심사들로 바뀌는 전환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사야서의 구조는 에제키엘서, 스바니야서, 요엘서, 예레미야서와 매우 유사한데, 이 책들도 처음에는 심판을 다루다가 이후에는 미래의 축복을 다룬다. 36-39장은 히즈키야 왕이 아시리아 포위 공격 중에 야훼께 충실했던 것을 회복된 공동체의 모범으로 보여준다.[6]36-38장에서는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에 의한 침략이 그려진다. 기원전 701년에 예루살렘은 간신히 함락을 면했지만, 이것이 시온 선택의 확증으로 여겨졌다고 생각된다. 동일한 사건에 관한 『열왕기하』 18-20장의 기록은 히즈키야가 공납을 부과받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사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4. 주요 메시지
이사야서의 주요 메시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원이사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이방 민족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징벌과 정화를 거친 후, 거룩한 남은 자들이 시온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왕, 즉 메시아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2]
- 제2이사야: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 이는 출애굽과 유사한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 제3이사야: 성전, 안식일,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제2성전 시대에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3]
발터 브루게만(Walter Brueggemann)은 이사야서 전체를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이라고 표현했다.[4]
이사야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의 거룩: 이사야는 아모스나 미가와 달리,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정의의 근거를 찾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며, 정의와 의는 그분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이스라엘은 불의로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다.[1]
- 우상 숭배 비판: 이사야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강조하며, 다른 우상이나 경배 대상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른 신들보다 뛰어나지만, 스스로 우월함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온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이다. 이 메시지는 남은 자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무시하는 자들은 '야훼의 날'에 심판을 피할 수 없다.
- 하나님에 대한 신뢰: 이사야는 시리아-이스라엘 전쟁과 아시리아의 예루살렘 포위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이사야 7:9)는 말씀은 이사야의 핵심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예루살렘 신학으로 확립되었고, 이사야는 메시아 출현과 에덴 회복의 비전을 제시했다.[1]
- 사회 정의: 이사야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께 헛된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며 비판한다. 그는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6]
- 메시아 대망: 이사야는 하나님이 택하신 왕, 즉 메시아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사야서 44장 6절은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라는 일신교 신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44장 9-20절은 우상 숭배를 풍자하며, 나무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제2이사야에서는 야훼가 세상의 유일한 신이라는 사상이 더욱 강조되며,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중요한 신앙적 기반이 되었다.
제2이사야는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새로운 출애굽'을 예언한다. 이 주제는 40장 3-5절과 55장 12-13절에 나타나며, 과거 출애굽 사건과 연결되면서도 새로운 요소들을 포함한다.
- 과거 출애굽은 급하게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출애굽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52:12).
- 과거 출애굽에서는 광야를 지나야 했지만, 새로운 출애굽에서는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높아져 평탄한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이사야 40:4).
- 과거 출애굽에서는 물이 부족했지만, 새로운 출애굽에서는 하나님께서 광야를 샘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이사야 41:18).
이사야서에서 중요한 부분은 "고난받는 종의 노래"(이사야 42, 49, 50, 52장)이다. 하나님은 종에게 만민을 인도하라고 부르시지만, 종은 학대받고 희생당하며, 결국에는 상을 받는다. 제2성전 시대의 일부 경전에서는 종을 "많은 사람을 의로 인도할 지혜로운 자들"로 해석했지만, 에녹서 유사시편에서는 메시아적인 의미로 이해했다.
4. 1. 하나님의 거룩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사야의 핵심 요지가 "하나님의 거룩함"이라고 말한다.[1] 이사야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그리고 부패한 왕족과 재판관들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2] 그러나 아모스서와 미가서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그는 의의 근거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계약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찾았다.[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며, 정의와 의는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특성이고, 이스라엘은 불의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다.[4]4. 2. 우상 숭배 비판
이사야는 하나님을 통한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며, 이는 변함이 없다. 다른 우상이나 경배 대상은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른 신들보다 뛰어나지만, 스스로 우월함을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온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이다. 이 메시지는 남은 자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무시하는 자들은 '야웨의 날'에 심판을 피할 수 없다.4. 3. 하나님에 대한 신뢰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동맹으로 인한 남유다 침공, 아시리아의 예루살렘 포위와 같은 이스라엘의 존폐 위기에서도 이사야는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신뢰할 것을 강조하였다.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이사야 7:9)라는 말씀은 이사야 전체 메시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한다면, 예루살렘을 적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두 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에 어떤 적도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루살렘 신학이 확립되었다. 그리고 이사야는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영원한 평화가 있을 비전을 보여 주었으며, 메시아 출현의 꿈을 이스라엘에게 심어 주었다. 또한 에덴의 회복을 갖게 해 주었다.[1]이사야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세계 계획에서 차지하는 주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수세기의 역사를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단일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 원이사야(Proto-Isaiah)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림과 그 결과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적들에 의해 멸망할 것이지만, 백성과 나라, 예루살렘이 징벌과 정결을 거친 후, 거룩한 남은 자들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자리에 살며, 하나님이 택하신 왕(메시아)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 제이사야(Deutero-Isaiah)의 주제는 바벨론 포로에서의 이스라엘의 해방이다. 이는 또 다른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페르시아 정복자 고레스를 그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루실 것이다.
- 삼이사야(Trito-Isaiah)는 예루살렘, 성전, 안식일,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제2성전 시대(포로 귀환 이후)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이 누구이고 그렇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당시의 질문들에 관한 것이다.)
발터 브루게만(Walter Brueggemann)은 이러한 전체적인 서사를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이라고 묘사했다.
이사야 44장 6절에는 야훼 신앙의 일신교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진술이 담겨 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장 9-20절에서는 이것이 우상 제작과 숭배에 대한 풍자로 발전하여, 자신이 조각한 우상을 숭배하는 목수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야훼가 이전에 다른 신들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었지만, 제2이사야에서는 그가 세상의 유일한 신이 된다. 이러한 일신교 모델은 포로 귀환 이후 유대교의 특징이 되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기초가 되었다.
4. 4. 사회 정의
이사야는 예수를 구약성서에서 탄생과 대속적 수난을 예고한 분이라는 그리스도론의 성서적 근거로 인용되지만, 예언자 전통에 따라 사회적 정의(social-justice)를 주장한 사회적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예배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야훼의 심판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이며, 제련 작업으로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할 은이라고 부른다.[6]이사야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세계 계획에서 차지하는 주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수세기의 역사를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단일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 원(Proto)이사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림과 그 결과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적들에게 멸망당할 것이지만, 백성과 나라, 예루살렘이 징벌과 정결을 거친 후, 거룩한 남은 자들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자리에 살며, 하나님이 택하신 왕(메시아)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 제2(Deutero)이사야: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것을 주제로 한다. 이는 또 다른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페르시아 정복자 고레스를 그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루실 것이다.
- 제3(Trito)이사야: 예루살렘, 성전, 안식일,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제2성전 시대(포로 귀환 이후)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이 누구이고 그렇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당시의 질문들에 관한 것이다.
발터 브루게만(Walter Brueggemann)은 이러한 전체적인 서사를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이라고 묘사했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계획은 예루살렘을 자신이 나타나실 곳으로, 다윗(David)의 계보를 자신의 지상 대표자로 선택하신 데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의 예루살렘 공격(Assyrian siege of Jerusalem)에서 예루살렘이 구출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며, 정의와 의는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특성이고, 이스라엘은 불의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다. 이사야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그리고 부패한 왕족과 재판관들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아모스서와 미가서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그는 의의 근거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계약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찾는다.[6]
예언자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신의 나라』에서 예언자 아모스의 아들이라고 했다. 아모스의 활동 후 약 10년 후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아모스와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고 생각되는 것과는 달리,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는 남왕국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궁정 예언자였다고 생각된다. 아모스나 호세아가 주로 출애굽 전승에 근거했던 것과는 달리, 이사야에서는 다윗 왕가와 시온(예루살렘)의 선택 전승이 중시된다. 남왕국에서는 거의 동시대에 미가서로 알려진 예언자 미가가 활동했다고 생각되지만, 미가는 예루살렘의 철저한 파괴까지 예언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사야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다는 것은 현실 정치 권력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며, 예언자 이사야는 히즈키야 왕의 즉위에 관여했다고 추측된다.
각 장은 반드시 연대순으로 편집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처음에 놓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부르심 기사는 6장에 놓여 있다.
- 2장: 인간의 교만과 전쟁[7]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의 오만은 이사야 예언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 6장: 부르심 기사이다.
- 7-8장: 시리아-이스라엘 전쟁에 관한 것이다. (임마누엘 예언)
- 13-14장: 바빌로니아에 관한 예언이며, 아시리아 시대에 살았던 제1이사야의 예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므로 후대에 귀속된다.
- 24-27장: 묵시적이며, 바빌론 포로 이후에 귀속되는 경우가 많다.
- 34-35장: 제2이사야서와 유사한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 36-38장: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에 의한 침략이 그려진다. 기원전 701년에 예루살렘은 간신히 함락을 면했지만, 이것이 시온의 선택의 확증으로 여겨졌다고 생각된다. 동일한 사건에 관한 『열왕기하』 18-20장의 기록은 히즈키야가 공납을 부과받았다는 점에 언급하고 있지만, 이 『이사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4. 4. 1. 사회적 정의에 대한 이사야의 비판 (이사야 1:9-23)
이사야는 예수를 구약성서에서 탄생과 대속적 수난을 예고한 분이라는 그리스도론의 성서적 근거로 인용되지만, 예언자 전통에 따라 사회적 정의(social-justice)를 주장한 사회적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예배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야훼의 심판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요, 제련작업으로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할 은이라고 부른다.[6]:9.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될 뻔하였다.
:10.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느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1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14.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9.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21. 그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습니까? 그 안에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가득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이 판을 칩니다.
:22. 네가 만든 은은 불순물의 찌꺼기뿐이고, 네가 만든 가장 좋은 포도주에는 물이 섞여 있구나.
:23. 너의 지도자들은 주님께 반역하는 자들이요, 도둑의 짝이다. 모두들 뇌물이나 좋아하고, 보수나 계산하면서 쫓아다니고,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지 않고, 과부의 하소연쯤은 귓전으로 흘리는구나.
1장에는 『아모스서』에 있는 것과 같은 제물 의식 비판이 보인다.
פְּנֵ֣י יְהוָ֑ה כִּ֣י מָלְא֚וּ|페네 예호봐 키 말르우he
מִקֶּ֔דֶם וְעֹֽנְנִ֖ים כַּפְּלִשְׁתִּ֑ים וּבְיַלְדֵ֥י נָכְרִ֖ים יַשְׂפִּֽיקוּ|미케뎀 베오느님 카페리쉬팀 우브얄르데 나크림 야스피쿠he
וַתִּמָּלֵ֨א אַרְצֹ֜ו כֶּ֣סֶף וְזָהָ֗ב וְאֵ֥ין קֵ֙צֶה֙ לְאֹ֣צְרֹתָ֔יו וַתִּמָּלֵ֣א אַרְצֹ֔ו סוּסִ֑ים וְאֵ֥ין קֵ֖צֶה לְמַרְכְּבֹתָֽיו|바티말레 아르초 케세프 베자하브 베엔 케체 레오츠로타브 바티말레 아르초 수심 베엔 케체 레마르케보타브he[7]
4. 5. 메시아 대망
이사야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세계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시각으로 수 세기 역사를 바라본다.- 원이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려 이방의 적들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백성과 예루살렘은 징벌과 정결을 거친 후, 거룩한 남은 자들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자리에 살며, 하나님이 택하신 왕(메시아)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제2이사야는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것을 또 다른 출애굽으로 묘사한다. 페르시아 정복자 고레스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이 해방을 이룰 것이라고 예언한다.
- 제3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전, 안식일,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2성전 시대(포로 귀환 이후)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당시의 질문들을 다룬다.
발터 브루게만(Walter Brueggemann)은 이러한 전체적인 서사를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이라고 묘사했다.
이사야 44장 6절은 야훼 신앙의 일신교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진술인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를 담고 있다. 이사야 44장 9-20절은 우상 제작과 숭배에 대한 풍자로 발전하여, 자신이 조각한 우상을 숭배하는 목수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야훼가 이전에도 다른 신들보다 우월함을 보여주었지만, 제2이사야에서는 그가 세상의 유일한 신이 된다. 이러한 일신교 모델은 포로 귀환 이후 유대교의 특징이 되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기초가 되었다.
제2이사야의 중심 주제는 새로운 출애굽, 즉 바빌론에서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저자는 야훼의 인도를 받아 시온(유다)으로 의식적인 귀환을 상상한다. 이 주제는 이사야 2서의 시작과 끝(40:3–5, 55:12–13)에 위치하여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새로운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출애굽한 사건과 반복적으로 연결되지만, 새로운 요소들을 포함한다.
- 최초 출애굽 참여자들은 "급히" 떠났지만(출 12:11, 신 16:3), 이 새로운 출애굽 참여자들은 "급히 나가지 않을 것"이다(사 52:12).
- 최초 출애굽 당시 애굽과 가나안 사이의 땅은 "크고도 두려운 광야, 메마른 황무지"였지만(신 8:15), 이 새로운 출애굽에서 바빌론(메소포타미아)과 약속의 땅 사이의 땅은 낙원으로 변형되어 산들은 낮아지고 골짜기는 높아져 평평한 길이 생길 것이다(사 40:4).
- 최초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물을 부족하게 주셨지만, 새로운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샘으로 만들 것"이다(사 41:18).
이사야서는 제2성전 시대(기원전 515년경 ~ 기원후 70년)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였다. 이사야의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난 싹"은 솔로몬의 시편, 에녹서 유사시편, 바룩 2서, 에스드라 4서, 시빌라 예언서 세 번째 책을 포함한 다양한 종말론적 작품에서 언급되거나 인용되었으며, 이 모든 작품에서 메시아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는 성전에 좌정한 하나님의 환상을 묘사하는데, 이는 에녹서의 "감시자들의 책" 부분, 다니엘서 등의 작품에서 하나님의 환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종종 에스겔서의 유사한 환상과 결합되었다.
이사야서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부분은 이사야 42, 49, 50, 52장의 소위 "고난받는 종의 노래" 네 편이다. 이 노래에서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만민을 인도하라고 부르시는데, 종은 끔찍하게 학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벌을 받아들여 자신을 희생하며, 마침내 상을 받는다. 제2성전 시대의 일부 경전, 예를 들어 솔로몬의 지혜서와 다니엘서에서는 종을 "많은 사람을 의로 인도할" "지혜로운 자들"(다니엘 12:3)이라는 집단으로 확인하지만, 특히 에녹서 유사시편에서는 메시아적 의미로 이해했다.
45장 15절에는 “숨겨진 하나님”(라틴어 번역에서는 Deus absconditus)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제2이사야서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주님의 종”(42:1~4, 49:1~6, 50:4~9, 52:13~53:12)에 관한 네 곳이다. 제2이사야서에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베른하르트 둠에 의해 지적되었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8] “종”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 노래는 고난에 의미를 발견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종”의 대리 속죄적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으로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5. 이사야서의 해석 방법론
이사야서 해석은 역사비평적 접근법보다는 책의 현재 모습에서 메시지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 브리바드 차일즈의 정경비평이나 신 문학 비평의 영향으로, 내러티브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간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해졌다.[9]
이사야는 아하스와 히즈키야의 믿음을 대조하여, 진정한 믿음의 모델을 제시한다. 히즈키야는 위기 속에서 기도와 선지자의 권위에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신자들이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함을 보여준다.[9]
이사야 후반부의 이스라엘 귀환과 영광은 예언의 절정이며, 이는 '야웨의 종'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이 '종'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9]
- 집단설: 야웨의 종을 이스라엘 민족 전체 또는 특정 집단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사상에 기반한다. 야훼는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구원하고 언약을 맺어 그들의 주인이 되었기에, 야훼의 종은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어진 언약과 관련된다.[9]
- 개인설: 야웨의 종을 역사적 인물로 보는 견해이다. 둠은 율법 교사, 젤린은 스룹바벨, 여호야긴, 모세 등으로 보았고, 모빙켈은 선지자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젤린과 모빙켈은 이후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9]
그러나 신약성서는 야웨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로 명확히 제시한다(마르코 복음서 10:45, 사도행전 8:30 이하). 기독교 신학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본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레위기의 짐승 제사의 실체임을 보여준다.[9]
이사야가 예언한 이스라엘 회복은 바빌론 포로 귀환으로 부분 성취되었으나, 즈가리야와 같은 선지자도 회복을 미래 사건으로 보았다. 이는 이사야의 회복 메시지가 영적인 의미를 지니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에서 성취될 것임을 시사한다.[9]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사야서, 특히 65-66장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구원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이방인의 영입과 유대인의 남은 자 구원 원리를 강조하며, 이는 이사야서의 메시지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9]
6. 신약과의 관계
신약에서는 이사야서의 구절들이 백 개 이상 인용되고 있다. 요한복음서 12장 41절은 "주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가리켜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언급한다. 누가복음는 사도행전에서 필립보가 에티오피아의 내시에게 다가갈 때 그 내시가 이사야서 53장 7-8절을 읽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이사야서에 대한 신약의 인용은 열두 개의 장에서 나오는데, 일곱 개는 1-39장에서, 다섯 개는 40-66장에서 인용되었다.[2]
이사야서는 제2성전 시대(기원전 515년경 ~ 기원후 70년)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였다. 이사야의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난 싹"은 솔로몬의 시편, 에녹서 유사시편, 바룩 2서, 에스드라 4서, 시빌라 예언서 세 번째 책 등 다양한 종말론적 작품에서 언급되거나 인용되었으며, 이 모든 작품에서 메시아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는 성전에 좌정한 하나님의 환상을 묘사하는데, 이는 에녹서의 "감시자들의 책" 부분, 다니엘서 등의 작품에서 하나님의 환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종종 에스겔서의 유사한 환상과 결합되었다.
이사야서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부분은 이사야 42, 49, 50, 52장의 소위 "고난받는 종의 노래" 네 편이다. 이 노래들은 하나님이 그의 종에게 만민을 인도하라고 부르시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종은 끔찍하게 학대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벌을 받아들여 자신을 희생하며, 마침내 상을 받는다. 제2성전 시대의 일부 경전에서는 종을 "많은 사람을 의로 인도할" "지혜로운 자들"이라는 집단으로 확인하지만, 특히 에녹서 유사시편에서는 메시아적 의미로 이해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에녹의 메시아적 해석을 바탕으로 이사야 52:13-53:12(네 번째 노래)를 예수의 죽음과 승천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했다. 누가복음 4장 17-21절에 따르면 예수 자신도 이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사야서는 마리아(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헌신부터 반유대주의 논쟁, 중세 수난 이콘, 현대 기독교 페미니즘 및 해방 신학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사야서에 대한 존중은 매우 높아서 종종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불릴 정도였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다른 어떤 예언자보다 더 명확하게 말한 예언자로 여겨졌다. 이사야서의 영향력은 교회와 기독교를 넘어 영국 문학과 서구 문화 전반에 미쳤는데, 헨델의 메시아(Handel's ''Messiah'')의 가사에서부터 "칼을 쟁기로", "광야의 소리"와 같은 일상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사야서는 바울 서신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인용문 37개 중 27개를 제공하며,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마태복음 1장 23절의 동정녀 탄생 교리는 이사야 7장 14절(예언자가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침략군으로부터 유다를 구원할 것이라고 보증하는 구절)을 근거로 한다. 이사야 40장 3-5절의 바벨론 유배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새로 건설된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이미지는 네 복음서 모두에서 요한 세례자와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기독교인들은 고난받는 종에 대한 논의가 담긴 53장을 예수 그리스도(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놀라운 예언으로 지적한다.[2]
이사야서는 항상 히브리어 성경 사용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예수 자신도 이사야의 영향을 깊이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친숙한 많은 이사야 구절들은 이사야로부터 직접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와 초기 기독교 저자들의 사용으로 인해 인기를 얻었다. 이것은 특히 언어와 이미지에 있어 이사야에 크게 의존하는 요한계시록에 해당한다.
45장 15절에는 “숨겨진 하나님”(라틴어 번역에서는 Deus absconditus)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제2이사야서』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주님의 종(しもべ)”(42:1~4, 49:1~6, 50:4~9, 52:13~53:12)에 관한 네 곳이다. 『제2이사야서』에 “종(しもべ)의 노래”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베른하르트 둠에 의해 지적되었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8] “종(しもべ)”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 노래는 고난에 의미를 발견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종(しもべ)”의 대리 속죄적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으로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참조
[1]
웹사이트
New Catholic Bible: Footnote a at Isaiah 40:1
https://www.biblegat[...]
Catholic Book Publishing Corporation
2023-12-03
[2]
서적
The Gospel according to God: Rediscovering the Most Remarkable Chapter in the Old Testament
Crossway
[3]
서적
틴델 성서 주해
[4]
서적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5]
서적
기독교 강요
[6]
문서
열왕기, 역대기, 이사야서에 기록된 내용
[7]
문서
이사야서 2장 4절의 내용
[8]
문서
이사야서 42장 1-4절, 49장 1-6절, 50장 4-9절, 52장 13-53절
[9]
논문
구약신학논고
예수교 문서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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