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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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국립교향악단은 1946년 창단된 북한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으로, 여러 차례 독립과 통합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3관 편성을 기본으로 하며, 북한 전통 악기 연주자도 포함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모란봉극장에서의 정기 공연, 해외 순회 공연, 음반 발매 등이 있으며, 북한 창작곡과 서양 고전 음악을 함께 연주한다. 남북 음악 교류에도 참여하여, 1998년 남한 지휘자의 지휘 아래 '아리랑'을 연주하고, 2000년에는 서울에서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현재 수석 지휘자는 장룡식이며, 다양한 지휘자들이 객원 또는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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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립교향악단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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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이름 | 조선국립교향악단 |
영문 명칭 | State Symphony Orchestra of DPRK |
한자 표기 | 朝鮮國立交響樂團 |
로마자 표기 | Joseon Gukrip Gyohyang Akdan |
상세 정보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장르 | 오케스트라 |
활동 시작 시기 | 1980년 ~ 현재 |
수상 | 김일성훈장 |
2. 역사
조선국립교향악단은 1946년 8월 8일 '중앙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1947년 1월 단원을 보강하여 1948년 국립예술극장 산하 연주단체로 편입되었다. 초기에는 김순남의 '인민유격대' 등 여러 무대 작품 공연에 참가했다. 1956년 독자적인 단체로 독립하였으나, 1969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관현악단과 통합되어 영화음악 녹음을 위주로 활동했다. 1971년 피바다가극단 산하 연주 단체가 되었고, '아리랑환상곡', '내 고향의 정든 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들을 초연했다.[1]
1980년 다시 독립해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2년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했고,[1] 1986년 폴란드 순회 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 참가했다.[1] 1992년 일본 방문 공연,[1] 1998년 박범훈이 대한민국 지휘자로는 최초로 지휘하였다. 2000년 김일성훈장을 수상하였고,[1] 서울을 방문해 KBS 교향악단과의 합동 공연을 가졌다.[1] 2007년 수석 지휘자 장룡식 창작음악회가 열렸다. 2008년 뉴욕 필하모닉과 소규모 합동 연주를 가졌고,[1] 2013년 일본인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와 협연하였다.[1]
2. 1. 창단 초기 (1946년 ~ 1956년)
1946년 8월 8일 '중앙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1] 1947년 1월 단원을 보강하여 2관 편성으로 확대되었다.[1] 1948년 국립예술극장 산하 연주 단체로 편입되었고, 김순남의 '인민유격대'를 비롯한 여러 초기 오페라 공연에 참여했다.[1] 1956년 독자적인 단체로 독립하였다.2. 2. 독립 및 발전기 (1956년 ~ 1980년)
1956년, 조선국립교향악단은 '국립예술극장 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다.[1] 1969년에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단과 통합되어 영화음악 녹음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1] 1971년에는 피바다가극단 산하 연주 단체로 편입되어, '아리랑환상곡', '내 고향의 정든 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그네뛰는 처녀',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바이올린 협주곡 '사향가', 교향곡 '피바다' 등 북한의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들을 초연하였다.[1]2. 3. 재독립 및 현재 (1980년 ~ 현재)
1980년에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다시 독립하여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1982년에는 윤이상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그의 작품 '광주여 영원히!'를 북한에서 초연하였다.[1] 1986년에는 폴란드 순회 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 참가하여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다.[1]1992년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단독 공연을 가졌다.[1] 2000년에는 김일성훈장을 수훈하였으며,[1] 같은 해 8월 북한 예술 단체로는 최초로 서울을 방문하여 예술의전당과 kbs홀에서 공연하였다.[1] 또한 KBS 교향악단과 합동 공연도 가졌다.[1]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과 소규모 합동 연주를 가졌는데, 이는 미국 관현악단으로서는 최초의 북한 방문이었다.[1] 2013년에는 일본인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와 만수대예술단이 협연하여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였고, 이노우에 미치요시는 관현악 아리랑을 지휘하였다.[1]
3. 구성 및 형태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북한 내 유일한 서양식 대규모 관현악단이지만, 개량된 한국 전통 관악기 연주자, 기악 및 성악 독주자, 그리고 작곡가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주로 모란봉극장에서 연주한다.[1]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북한 작곡가의 관현악곡 및 실내악곡을 70%, 서양 작곡가의 작품을 30% 비중으로 연주한다. 폴란드 공연에서는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으며, 2006년 12월에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 연주회를 모란봉극장에서 개최했다.[1]
초대 상임 지휘자는 1969년부터 김병화가 맡았으나, 2011년에 퇴임하고 장룡식이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 김정균, 김호윤, 최광성, 허문영 등이 지휘를 맡았으며, 김일진, 한영상, 조정림, 이준무, 김홍재, 프란시스 트래비스 등은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현재 악장은 최기혁이다.[1]
3. 1. 조직 구성
조선국립교향악단은 기본적으로 3관 편성의 서양 관현악단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평양음악대학 등 교육 기관이나 다른 관현악단, 예술단과의 협력을 통해 4관 편성으로 확대하기도 한다. 저대, 단소, 장새납 등 북한에서 개량한 민족관악기(죽관악기) 연주자들도 정식 단원으로 편성되어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트럼펫과 트롬본 파트에 추가 인원이 배치되어 곡에 따라 대여섯 명씩 연주하기도 한다.지휘자 외에도 작곡가, 독주자, 독창자, 무대 연출가, 녹음/녹화 기사, 응급 의료진, 극장 관리자 등 공연 관련 인물들을 정식 단원으로 기용하여 종합적이고 집약적인 공연을 추구한다. 전체 단원은 160명 이상이며, 실제 관현악단 단원은 12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1]
초기에는 하프 연주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으로만 편성되었으나, 2000년 서울 공연 당시에는 여성 연주자가 하프 연주자 한 명뿐일 정도로 남성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고령화 등으로 은퇴하거나 은하수관현악단 등으로 재배치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현악 파트에 여성 단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1]
현재 수석 지휘자는 장룡식이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단장 겸 수석지휘자로 겸직하고 있으며, 채주혁, 허문영, 김정균이 부수석 지휘를 맡고 있다. 차석 지휘자는 방철진이며, 조광, 최광성, 한영상, 김일진, 조정림, 김용건, 김주혁, 리철웅, 리일찬 등이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1]
이외에도 김일진, 조정림, 최광성, 조광, 한영상 등 북한 내 지휘자들과 이준무 등 교포 지휘자, 김홍재, 정명훈 등 한국 지휘자, 프랜시스 트래비스, 이노우에 미치요시 등 외국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1]
3. 2. 악기 편성
기본적으로 3관 편성의 서양 관현악단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평양음악대학 등의 협조를 얻어 4관 편성으로 확대할 수 있다. 저대, 단소, 장새납 등 북한에서 개량한 민족악기(죽관악기) 연주자들도 정식으로 편성되어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트럼펫과 트롬본 파트에 추가 인원이 배치되어, 곡에 따라 대여섯 명씩 연주하기도 한다.[1]4. 주요 활동
조선국립교향악단은 광명음악사를 통해 2000년부터 북한 창작곡 위주의 음반을 발매해 왔으며, 현재까지 총 17종이 나왔다. 2005년에 나온 15~17집은 '외국음악집'으로,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등 서양 고전 음악을 담아 주목받았으며, 대한민국에서도 합법적으로 수입이 가능하다.
최근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북한 최초의 예술 단체라는 점과 김정일의 '음악정치'를 대표하는 악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4. 1. 주요 공연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여러 주요 공연을 통해 그 실력을 입증해왔다. 주요 공연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종류 | 내용 | 비고 |
---|---|---|
정기 연주회 | 모란봉극장에서 정기적으로 개최 | 상주 공연장 |
특별 연주회 |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연주회 등 특정 주제나 기념일을 위한 연주 | |
해외 순회 공연 | 폴란드, 일본, 중국, 소련, 동독 등 방문 공연 | 1986년 폴란드 순회 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 참가 1992년 일본 단독 공연 |
남북 합동 공연 | KBS 교향악단, 은하수 관현악단 등과 합동 공연 | 1998년 박범훈이 대한민국 지휘자 최초로 지휘 2000년 북한 예술 단체 최초로 서울 방문, 예술의전당 및 kbs홀 공연 2008년 뉴욕 필하모닉과 소규모 합동 연주[1] |
특히, 2007년에는 수석 지휘자 장룡식의 개인 창작음악회가 모란봉극장에서 열렸으며,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악작품 최초의 개인 창작음악회였다.[1] 2013년에는 일본인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와 만수대예술단이 협연하여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고, 이노우에 미치요시는 관현악 아리랑을 지휘했다.
4. 2. 음반 발매
광명음악사에서 2000년부터 북한 창작곡 위주의 독자적인 음반 시리즈를 발매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7종이 발매되었다. 2005년에 발매된 15-17집은 '외국음악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글린카,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 서양 고전 음악을 100% 연주한 음반으로 주목받고 있다.1980년대에는 카메라타 도쿄를 통해 윤이상의 관현악, 실내악, 합창 작품을 담은 CD 2개를 발매했다.
4. 3. 해외 활동
1986년 폴란드 순회 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현대 음악제에 참가했고,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1] 1989년에는 동베를린에서 열린 현대 음악제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올리비에 메시앙, 지크프리트 마투스 등의 작품을 연주했다. 1992년에는 일본을 방문해 단독 공연하였다.[1]2008년 2월 27일에는 미국 관현악단으로서는 최초로 북한 방문을 가진 뉴욕 필하모닉과 소규모 합동 연주를 가지기도 했다.[1] 모란봉 극장에서 열린 비공개 연주회에서 먼저 양 단체에서 4명씩 총 8명이 멘델스존의 팔중주를 연주했고, 이후 로린 마젤이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과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지휘했다.
5. 남북 관계 및 국제 교류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남북 관계 및 국제 교류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98년 대한민국 지휘자 박범훈이 '윤이상 통일 음악회'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했다.[1] 2000년 8월 북한 예술 단체로는 최초로 서울을 방문하여 공연했고, 2002년 KBS 교향악단과 평양에서 합동 공연을 했다.[1] 이 공연들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조수미, 장한나 등 남한 예술가들과 협연했다.[1]
1985년 일본 음악가 대표단 단장 단 이쿠마가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했고,[1] 1986년 폴란드 순회 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 참가하여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해 호평받았다. 1992년 일본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2008년 미국 관현악단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뉴욕 필하모닉과 소규모 합동 연주를 했고, 로린 마젤이 지휘했다.[1] 2013년 일본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와 협연하여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5. 1. 남북 음악 교류
1998년, 박범훈이 대한민국 지휘자로는 최초로 '윤이상 통일 음악회' 무대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하였다.[1] 2000년 8월, 북한 예술 단체로는 최초로 서울을 방문하여 예술의전당 및 kbs홀에서 각각 두 차례씩 단독 공연과 KBS 교향악단과의 합동 공연을 가졌다.[1] 2002년에는 KBS 교향악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다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동 공연을 가졌다.[1] 이 공연들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소프라노 조수미, 첼리스트 장한나 등 남한 예술가들과 처음으로 함께 연주했다.[1]5. 2. 국제 교류
1985년 4월, '제4회 봄의 친선 예술축전'에서 일본 음악가 대표단 단장 단 이쿠마가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했다.[1] 1986년 폴란드 순회 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 참가,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해 호평받았다. 1992년 일본에서 단독 공연을 가졌다. 1998년 대한민국 지휘자 박범훈이 '윤이상 통일 음악회'에서 이 악단을 지휘했다. 2008년 미국 관현악단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뉴욕 필하모닉과 소규모 합동 연주를 가졌다. 로린 마젤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과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지휘했다.[1] 2013년 일본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와 만수대예술단 협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고, 이노우에 미치요시는 관현악 아리랑을 지휘했다.6. 레퍼토리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연주곡 비율은 조선 관현악곡(북한 창작곡)이 약 70%, 서양 관현악곡이나 현대음악이 약 30% 정도이다.[1] 북한 작품들은 대부분 김정일이 음악 부문을 지도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의 곡들이 주로 연주된다.[1] 김정일은 완전 창작을 금지하고 기존 노래 선율을 최대한 살리는 편곡 방식의 작곡을 하도록 지도했다.[1]
자주 공연되는 곡들은 지휘자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들이 악보를 암기하여 연주하기도 한다.[1]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병화 지휘로 관현악 '아리랑'을 암보 연주하는 장면이 뉴스에 방영되었다.[1]
2000년대 들어 러시아 등 우방국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서양 곡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주체사상의 영향으로 북한 창작곡의 비율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는 연주하지 않았을 적성국의 작품까지 레퍼토리에 올리고 있어 변화를 꾀하는 모습도 보인다.[1]
6. 1. 북한 창작곡 (약 70%)
조선 관현악곡(북한 창작곡)의 연주 비율은 대략 70% 정도이다. 이 곡들은 대부분 김정일이 음악 부문을 지도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이다.[1] 김정일은 완전 창작을 금지하고 기존 노래 선율을 최대한 살리는 편곡 방식의 작곡을 하도록 지도했다.[1] 그래서 북한 관현악곡은 거의 모두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경음악단 등에서 작곡된 성악곡, 민요, 가요를 편곡한 2차 창작물이다.[1]조선국립교향악단은 1970년대에 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내 고향의 정든 집'', ''그네 타는 처녀'',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바이올린 협주곡 ''향수의 노래'' 및 교향곡 ''피바다''를 포함한 많은 북한의 유명 관현악 작품을 초연했다.
자주 공연되는 곡들은 지휘자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들이 악보를 암기하여 연주하기도 한다.[1] 김대중 15대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축하 공연에서 김병화 지휘로 관현악 '아리랑'을 암보 연주하는 장면이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1]
6. 2. 서양 고전 및 현대 음악 (약 30%)
연주곡의 비율은 대략 조선 관현악곡(북한 창작곡)이 70%, 그 외 서양 관현악곡이나 현대음악이 30% 정도이다. 2000년대 들어 주로 러시아 같은 우방국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서양 곡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주체사상의 영향력이 강대한 탓에 그 비율이 북한 창작곡을 압도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연주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적성국의 작곡/편곡 작품까지 레퍼토리에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여러모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다음은 북한에서 연주된 서양 명곡들의 영상이다. 이 중에는 조선국립교향악단 정식 발매 CD에 수록되어 있는 곡도 있다.[1]
위 두 동영상의 지휘는 아르헨티나계 이탈리아인인 루이스 라파엘 살로몬(Luis Rafael Salomon)이 맡았다. 홈페이지도 있는데, 'Videoclip'에서 더 많은 동영상을 볼 수 있다.[1]
위 두 동영상은 평양 모란봉극장을 방문한 일본의 중견 지휘자인 이노우에 미치요시가 지휘했으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은 북한의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인 정현희가 독주를 맡았다.[1]
2005년도에 발매된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명의 CD에 수록된 서양 명곡이다. 수석 지휘자가 지휘했다.[1]
- 러시아 명곡 묶음[1]
러시아 명곡들을 모아 편곡한 명곡 묶음이다. 우리에게 흔히 잘 알려진 게임 테트리스에 사용된 음악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발매 CD 수록 한정으로는 북한 서정가요인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가 한 곡 포함되어 있으나, 이 영상의 경우는 순수 러시아 명곡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영상의 지휘는 부수석 지휘자인 채주혁이 맡았다.[1]
- 베토벤 교향곡 9번[1]
이 영상은 관현악으로 편곡된 아리랑을 먼저 연주한 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공연한다. 지휘는 이노우에 미치요시가 맡았고, 합창은 만수대예술단이 맡았다.[1]
2005년에는 KMC를 통해 발매된 15번째 앨범으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을 녹음했다. "외국음악집 1"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앨범은 북한 최초의 서양 고전 음악 CD였으며, 국내에서 발매된 음반 중 가장 긴 재생 시간을 기록했다.
폴란드 공연 당시에는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주했다.
2006년 12월에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연주회를 모란봉 극장에서 개최했다.
6. 3. 민요 편곡
조선국립교향악단에서 연주된 민요 편곡본은 대부분 고음저대, 중음저대, 저대, 단소, 장새납이 포함된 죽관악기 및 꽹과리 등의 전통악기를 포함한 부분 배합관현악 편성을 취하고 있다.- 최성환 편곡의 아리랑 환상곡
북한에서 만들어진 관현악 곡 중에서 대한민국 및 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악단 등지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특히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로린 마젤이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공연하였고 이 곡을 직접 지휘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곡이다.
원래 이 곡은 원곡이 짧은 곡이지만 선율을 다양한 변주로 전개함으로써 그토록 광대한 규모의 악곡으로 만들 수 있는 편곡자의 기술에 감동했다고 일본의 중견 지휘자인 이노우에 미치요시가 밝혔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국악관현악이나 남한식 배합관현악이라고 칭하는 퓨전 국악으로 재 편곡하여 자주 연주하기도 한다.[2]
조선국립교향악단 해외 순방공연때에는 반드시 이 곡이 필수 레퍼토리로 들어가며, 북한을 방문해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외국인 지휘자 및 외국의 교향악단, 관현악단이 북한을 방문해 공연하는 경우 이 곡을 반드시 필수적으로 지휘해 주거나 연주해야만 한다.[2]
- 경상도 민요 옹헤야
신나라레코드에서 발매된 민요 삼천리에 수록된 연주곡이다. 꽹과리를 포함한 부분 배합관현악이 특징이다.
7. 지휘자 및 악장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북한 내 유일한 서양식 대규모 관현악단으로, 자체적으로 보유한 개량된 한국 전통 관악기 연주자, 기악 및 성악 독주자, 작곡가들과 함께 주로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공연한다.
역대 상임 지휘자로는 1969년부터 김병화가 있었으며, 이외에도 김정균, 김호윤, 최광성, 허문영 등이 지휘를 맡았다. 김일진, 한영상, 조정림, 이준무, 김홍재, 프란시스 트래비스 등은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김홍재, 정명훈 등 한국 지휘자들과 프랜시스 트래비스, 이노우에 미치요시 등 외국 지휘자들과도 공연한 기록이 있다. 2008년 5월에는 빈 유학 경험이 있는 김원균 평양음악대학 지휘과 교원 최주혁이 객원 지휘자로 취임했다. 2008년 7월, 김호윤이 윤이상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7. 1. 역대 수석 지휘자
- 1대 김기덕
- 2대 허재복
- 3대 김병화
- 4대 장룡식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의 단장 겸 수석지휘자를 겸직)[1]
7. 2. 현재 지휘자
현재 수석 지휘자는 장룡식이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단장 겸 수석지휘자로 겸직하고 있으며, 채주혁, 허문영, 김정균이 부수석 지휘를 맡고 있다. 차석 지휘자는 방철진이며, 조광, 최광성, 한영상, 김일진, 조정림, 김용건, 김주혁, 리철웅, 리일찬 등은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1]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빈 음악대학 지휘과 유학파 출신인 방철진과 채주혁이 자주 출연하고 있다.[1]
7. 3. 악장
현재 악장은 공석이다. 2000년도 조선국립교향악단 서울 공연에서 악장의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1] 과거 최기혁이 악장을 맡았었고,[2] 현재는 조기혁이 악장을 맡고 있다.8. 평가 및 의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민족 음악을 발전시키고 보존하는 데 기여했으며, 남북 화해와 협력, 국제 교류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1][2]
8. 1. 긍정적 측면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민족 음악 발전과 보존에 기여했다. 김순남 작곡의 한반도 최초 창작가극 ''인민의 사령관''을 공연했고, 1970년대에는 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고향의 집'', ''그네 타는 처녀'',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바이올린 협주곡 ''향수의 노래'' 및 교향곡 ''피바다'' 등 북한의 여러 관현악 작품을 초연했다.2000년에는 서울에서 공연을 진행, KBS교향악단과 두 차례 '통일' 공연을 개최하여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1998년에는 남한 지휘자 박범훈의 지휘 아래 '윤이상 통일 음악회'에서 ''아리랑''을 연주하였고, 2002년에는 평양에서 KBS교향악단과 다시 만나 합동 공연을 펼쳤다. 이 공연들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소프라노 조수미, 첼리스트 장한나 등 남한 예술가들과 처음으로 함께 연주하며 남북 간 문화적 이해를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
1982년에는 작곡가 윤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에서 처음으로 윤이상의 관현악 작품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하는 등 국제 교류를 통해 북한의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2]
참조
[1]
문서
임진강 (북한 관현악 모음집)
신나라레코드
[2]
문서
북한 정치 행사 및 외국곡 공연 시 아리랑 연주 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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