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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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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르쿠크는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다민족 도시로, 1927년 유전이 발견된 이후 석유 산업이 발전했다. 쿠르드인, 이라크 튀르크멘인, 아랍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며, 특히 쿠르드족은 키르쿠크를 쿠르디스탄 자치구에 편입하려 하지만, 아랍인과 투르크멘인의 반대로 인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고대부터 여러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20세기 초에는 튀르크멘인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석유 개발과 함께 인구 구성이 변화했다. 2014년에는 ISIL의 공격으로 쿠르드 자치 정부의 페슈메르가가 도시를 점령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라크 정규군이 재탈환했으며, 키르쿠크 유전에서 채굴된 원유는 주요 산업이며,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 등을 통해 수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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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쿠크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키르쿠크
유형도시
위치이라크 내 위치
좌표북위 35° 28' 0", 동경 44° 19' 0"
행정 구역
국가이라크
키르쿠크 주
키르쿠크 군
지리 정보
고도350m
인구 정보
총 인구1,075,000명 (2023년 추정)
기타 정보
시간대GMT +3

2. 역사

키르쿠크의 고대 명칭은 후리안어로 "아라파"였다.[12][13] 파르티아 제국 시대에는 "코르쿠라/코르쿠라"로 알려졌으며, 셀레우코스 제국 시대에는 "셀레우코스 가문의 요새"를 의미하는 "카르카 드 베트 슬로크"로 불렸다.[15][16] 키르쿠크 주변 지역은 "베트 가르마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뼈의 집"을 의미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다리우스 3세 사이의 전투에서 학살된 아케메네스 왕조의 뼈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18][19]

파르티아 제국사산 제국 시대에는 "가르마칸"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온기의 땅" 또는 "더운 땅"을 의미한다.[20] 7세기 이후 무슬림 저술가들은 이 도시를 "키르케니"(요새)라는 이름으로 불렀다.[21][22]

키르쿠크 유전은 1927년 바바 구르구르에서 발견되었고, 1934년 이라크 석유회사에 의해 생산이 시작되었다.

키르쿠크는 쿠르드인과 튀르크멘인이 주로 거주하는 다민족 도시였지만, 1980년대 사담 후세인아랍화 정책으로 인해 쿠르드인과 튀르크멘인은 교외로 강제 이주당했고, 도시 주민의 대부분은 수니파 아랍인 노동자가 되었다.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유엔의 “석유와 식량의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수출 원유의 최소 50%를 터키를 통해 수출하도록 의무화되었다. 키르쿠크-제이한 석유 파이프라인은 키르쿠크에서 터키의 지중해 연안 제이한까지 이어진다.

2. 1. 고대 역사

키르쿠크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거주 흔적이 샤니다르 동굴 유적에서 발견되었고,[23] 도시의 여러 텔에서는 우바이드 시대의 토기 파편들이 발굴되었다.[24]

2. 1. 1. 아카드 시대

고대 아르파카(Arrapkha)는 아카드 사르곤아카드 제국(기원전 2335–2154년)의 일부였으며, 아카드 나람신 통치 시대에 루루비의 습격을 받았다.

2. 1. 2. 구티 시대

기원전 2150년경 자그로스 산맥에 거주하던 고립어를 사용하는 구티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셈족과 수메르인들을 점령하면서 이 도시를 점령했다. 아랍카는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구티 왕국의 수도였다.[40]

2. 1. 3. 우르 제3왕조 시대

구티 사람들은 기원전 2115년경 네오수메르 제국에 의해 메소포타미아에서 쫓겨났다.[27][28]

2. 1. 4. 미탄니 시대

기원전 2천년 중반, 인도아리아계 미타니인들이 아나톨리아에서 고립어를 사용하는 후리인들을 지배 계급으로 삼고 후리-미타니 제국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1450년대에 그들은 아시리아를 공격하여 아슈르를 약탈하고 가수르와 아랍카(Arrapkha) 도시들을 지배하에 두었다.[29] 기원전 1450년부터 1393년까지 아시리아의 왕들은 미타니 왕국에 조공을 바쳤다.[29]

2. 1. 5. 아시리아 시대

중아시리아 제국(기원전 1365년~기원전 1020년)은 기원전 14세기 중반에 후리-미타니를 멸망시켰다. 아르파는 아시리아의 영토가 되었고, 후리 인구는 그 지역에서 쫓겨났다. 기원전 11세기와 10세기에 이 도시는 아시리아에서 중요한 도시로 부상하였고, 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11년~기원전 605년)이 멸망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30]

2. 2. 중세 및 근세

신아시리아 제국이 기원전 612년에서 599년 사이에 멸망한 후에도 키르쿠크는 아케메네스 제국 시대 아시리아, 아투라, 셀레우코스 시리아, 로마 속주 아시리아, 아수리스탄 등 여러 제국의 중요한 지역이었다. 파르티아사산 제국 시대에는 소규모 아시리아 국가 베트 가르마이의 수도이기도 했다.[31]

메디아 제국의 일부였다가 기원전 546년부터 332년까지 아케메네스 제국에 함락되어 아투라(아케메네스 제국 시대 아시리아) 주에 편입되었다.[32][33] 이후 마케도니아 제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50년부터 서기 224년까지 파르티아 제국에 속했다. 파르티아 시대에는 여러 소규모 신아시리아 왕국이 생겨났는데, "시리아어"로 비트 가르마이)라는 왕국의 수도가 아라파였다.[34] 이 시기에 동방 교회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발생했다. 서기 3세기 초 사산 제국은 이 왕국들을 멸망시키고 아라파를 아수리스탄에 편입시켰다.

341년, 조로아스터교도였던 샤푸르 2세는 아시리아 기독교인 학살을 명령했고, 이 박해로 아라파에서 약 1,150명이 순교했다.[35]

7세기, 아랍계 무슬림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키르쿠크는 10세기까지 이슬람 칼리파의 일부였다. 이후 1014년부터 1120년까지 하산와히드 쿠르드족과 안나지드 쿠르드족이 지배했고, 그 후 오랫동안 셀주크 투르크인들에게 점령당했다. 셀주크 제국 붕괴 후 다시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258년 몽골 제국에 점령당한 후 일 칸국의 일부가 되었다. 1336년 아르달란이 키르쿠크를 점령했고, 이후 카라 코윤루아크 코윤루 등 여러 투르크 연합의 지배를 받았다. 1514년 찰디란 전투 이후 키르쿠크는 소란 토후국의 지배를 받다가 1694년 바반에게 점령당했다. 1851년 오스만 제국이 직접 통치하게 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계속되었다.

2. 3. 영국 위임통치와 이라크 왕국

1933년 이라크 키르쿠크에서 촬영한 벤지온 이스라엘리 사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1918년 5월 7일 키르쿠크를 점령했다. 영국은 약 2주 후 도시를 버리고 돌아왔지만, 몇 달 후 무드로스 휴전 협정 이후 키르쿠크로 다시 돌아왔다. 키르쿠크는 이라크의 영국 위임 통치를 전복하고 수레이마니야에 자신의 영지를 세우려고 시도했던 쿠르드족 민족주의자 마흐무드 바르잔지가 일으킨 혼란을 피했다.

튀르키예와 영국 모두 모술 비라예트(당시 키르쿠크가 속해 있던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원했기에, 1923년 로잔 조약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모술 문제는 국제연맹으로 넘겨졌다. 위원회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현장을 방문했고, "브뤼셀 선" 남쪽 지역은 이라크에 속한다고 결정했다. 1926년 앙카라 조약에 따라 키르쿠크는 이라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키르쿠크 유전은 1927년 키르쿠크 인근 바바 구르구르에서 발견되어 1934년 이라크 석유회사에 의해 생산이 시작되었다.

2. 4. 이라크 공화국과 쿠르드족과의 갈등

1970년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 지도자 무스타파 바르자니와 1970년 3월 협정(Iraqi–Kurdish Autonomy Agreement of 1970)을 체결했지만, 석유가 풍부한 키르쿠크 주의 쿠르드 자치 지역 포함 여부는 새로운 인구 조사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44][45]

3월 협정에도 불구하고 키르쿠크의 지위 문제로 쿠르드족과 이라크 정부 간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1972년 바르자니 암살 시도가 두 차례 있었다. 1970년대 초 바르자니가 키르쿠크를 자치 지역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자, 이라크 바트당 정부는 키르쿠크의 아랍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아랍화 정책을 시행했고, 새로 이주한 아랍 가족들을 위한 정착촌 건설이 급증했다. 쿠르드족은 키르쿠크에서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었고, 아랍인에게만 매각할 수 있었다. 수리가 필요한 부동산을 개조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빈곤한 시아파 아랍 가족들은 키르쿠크로 이주하도록 지원을 받았지만, 쿠르드족은 이주 지원을 받지 못했다.[45]

1974년 3월, 바르자니의 쿠르드 민주당과 이라크 정부 간의 협상은 결렬되었고, 바르자니는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의 쿠르드 자치 선언을 거부했다. 이후 쿠르드족과 아랍인 사이의 분쟁은 제2차 이라크-쿠르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1975년 알제리 협정 이후 이란이 바르자니 세력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바트 정권이 아랍화 노력을 강화하면서 반란은 실패했다.[45][46]

1974년 바르자니의 반란이 진압된 후, 키르쿠크에 속했던 켐체말과 켈라르 지역은 술레이마니야에, 키프리는 디얄라 주에 편입되었다. 알자브와 같은 다른 아랍 인구 지역은 키르쿠크에 편입되었다.[47] 쿠르드족, 투르크멘족, 기독교 인구는 강제로 이주당했고 이라크 남부 출신의 시아파로 대체되었다. 1991년 이라크 봉기 이후에도 추방은 계속되었다. 쿠르드족 마을은 파괴되었고 수천 채의 새 주택이 건설되었는데, 이란-이라크 전쟁 중 사망한 이라크 군인의 친척들을 위한 주택 200채 이상도 포함되었다.[45] 1968년부터 2003년까지 20만 명에서 30만 명 사이의 사람들이 키르쿠크에서 강제 이주당했다.[48]

1972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석유회사(Iraqi Petroleum Company, IPC)를 국유화했다. 1973년 이라크와 합의에 도달한 후, IPC 회원들은 바스라 석유회사를 통해 이라크 남부의 일부 지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키르쿠크 유전을 포함한 이라크의 주요 유전들은 잃었다.[49]

1991년, 사담 후세인쿠웨이트를 침공했고, 미국이 걸프 전쟁에서 신속하게 패퇴시켰다. 이라크군의 패배 이후 이라크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는데, 3월 1일 남부 이라크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며칠 후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3월 24일까지 쿠르드족 페슈메르가는 키르쿠크를 장악했지만, 3월 28일 후세인의 군대가 탈환할 때까지 그 지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50]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기 시작했고, 북부에는 사실상 쿠르드 자치 지역이 등장했다. 아랍계 가족들은 쿠르드 지역에서 추방되어 이라크 정부가 여전히 통제하고 있던 키르쿠크로 이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세인 정부는 키르쿠크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아랍화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쿠르드족, 투르크멘족, 아시리아인들이 "민족 정체성 수정" 양식을 작성하고 아랍인으로 등록하도록 요구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린 라인 북쪽으로 강제 이주당했다.[45] 1991년 5월, 마수드 바르자니바그다드가 키르쿠크를 자치 지역의 수도로 양보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라크 정부가 쿠르드족에게 바트당 정부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자 분쟁은 다시 격렬한 충돌로 확대되었고, 1991년 10월 이라크군은 에르빌, 도후크, 술레이마니야를 포함한 북부 여러 쿠르드 주에서 철수했다.[51]

2. 5. 이라크 전쟁 이후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 군대는 이라크 침공을 주도하여 제2차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쿠르드족페슈메르가 전투원들은 키르쿠크 점령에 참여했다. 연합 임시 행정부(CPA) 해체 이후에도 페슈메르가는 활동을 허가받았지만, 결국 키르쿠크 등 쿠르드족 점령 지역에서 철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55]

2003년 5월 24일, L. 폴 브레머의 감독 하에 키르쿠크 시의회 선출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4개 주요 민족 집단 대표와 독립적인 사회 집단 대표들이 참여하여 30명으로 구성된 시의회가 구성되었다. 시의회는 민족별 블록과 무소속 블록으로 구성되었으며, 시장으로는 압둘 라흐만 무스타파, 부시장으로는 이스마일 아흐메드 라자브 알 하디디가 선출되었다.

2005년 6월 30일, 키르쿠크 주 의회가 선출되었다. 키르쿠크 형제애 명단(KBL)이 26석, 이라크 투르크멘 전선(ITF) 명단이 8석, 이라크 공화당 명단이 5석, 투르크멘 이슬람 연합 명단과 이라크 국가 집회 명단이 각각 1석을 차지했다.

키르쿠크는 싱자르에서 카나킨과 만달리까지 이어지는 이라크의 분쟁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52] 약 80년 동안 분쟁 지역이었다. 쿠르드족은 키르쿠크가 쿠르드 자치구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지만, 아랍인과 투르크멘인들은 반대했다.[53] 쿠르드족은 2005년 제정된 이라크 헌법 제140조를 통해 이 지역을 쿠르드 자치 정부(KRG)에 합병하려고 했다.[54][53] 바트당의 아랍화 정책을 되돌리고, 인구 조사와 국민투표를 통해 키르쿠크의 소속을 결정하려 했다.[52]

2010년 총선 이후 쿠르드족은 에르빌 협정에 서명하고 제140조 시행을 조건으로 누리 알 말리키를 지지했다.[55] 2011년 8월과 2013년 7월에는 키르쿠크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56][57]

키르쿠크 유전은 1927년 발견되어 1934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 사담 후세인아랍화 정책으로 쿠르드인과 튀르크멘인은 강제 이주당했고, 도시 주민 대부분은 수니파 아랍인 노동자가 되었다.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유엔의 “석유와 식량의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수출 원유의 최소 50%를 터키를 통해 수출하도록 의무화되었다. 키르쿠크-제이한 석유 파이프라인은 키르쿠크에서 출발하여 터키의 지중해 연안 제이한에 이르는 주요 석유 수출 루트 중 하나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페슈메르가는 키르쿠크를 해방시켰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쿠르드 중심 치안부대인 아사이시에 의한 아랍인에 대한 보복이 발생하여 국제기구 등이 민족 정화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쿠르드족은 키르쿠크를 쿠르디스탄 남부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쿠르디스탄 자치구에 편입하기 위한 주민 투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은 키르쿠크를 새로운 독립 쿠르드 국가의 수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 투표는 아랍인들의 반발로 실시되지 못했고, 석유 이권 문제와 함께 이라크의 심각한 종파·민족 갈등 문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구 정권 하에 이주한 아랍인에 한해 원래 살던 곳으로 귀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많은 아랍인들이 이에 응하고 있다. 키르쿠크에는 아르메니아인, 투르크멘인 등이 거주하고 있으며, 쿠르드인 인구는 증가하여 키르쿠크는 번영하고 있다.

2. 5. 1. ISIL 점령과 쿠르드 자치정부의 통제

2014년 6월 12일, ISIL이 이라크 북부 공세를 통해 티크리트와 시리아 인근 지역을 장악하자, 이라크군은 키르쿠크 주둔지를 철수했다. 이후 쿠르드 자치정부의 페슈메르가가 도시를 점령했다.[58][59] 같은 해 6월, ISIL모술을 점령하자,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 틈을 타 키르쿠크를 점령했다.[117]

2016년 10월 21일, IS는 모술 전투에서 이라크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키르쿠크를 공격했다(2016년 키르쿠크 공격). 목격자들은 도시 곳곳에서 여러 차례 폭발과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증언했으며, 대부분 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인근 디비스의 발전소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로 이란인들을 포함한 최소 11명의 작업자가 사망했다.[60] 공격은 10월 24일에 종식되었고, 74명의 IS 대원이 사망하고 다른 대원들(지휘관 포함)이 체포되었다.[61]

2019년 12월 27일, 키르쿠크 인근 이라크군 기지를 무장 세력이 로켓탄으로 공격하여 미국 민간인 1명이 사망하고, 미군 4명과 이라크 치안 부대 2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은 이 공격을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비난하고, 같은 달 헤즈볼라 거점 5곳에 F-15로 보복 폭격을 가했다.[118] 이 공격은 바그다드 국제공항 공격 사건의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119]

2. 5. 2. 이라크 중앙 정부의 재탈환

2017년 10월 16일, 이라크 정규군과 인민동원군(PMF)이 키르쿠크를 재탈환했다.[65] 페슈메르가는 전투 없이 키르쿠크에서 철수했다.[66][67][68]

3. 지리

자그로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다. 시내에는 티그리스 강의 지류인 카사 강(카사천|카사 강ar)이 흐른다.

3. 1. 기후

키르쿠크는 매우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당한 겨울을 특징으로 하는 덥고 건조한 반건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스텝 기후)를 경험한다. 눈은 드물지만 2004년 2월 22일[110]과 2008년 1월 10일부터 11일까지 내린 적이 있다.[111]

키르쿠크의 기후 (1976–2008)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평균 최고 기온 (°C)13.8°C15.7°C20.1°C26.3°C33.7°C39.8°C43.2°C42.8°C38.7°C31.4°C22.6°C15.8°C
평균 최저 기온 (°C)4.4°C5.7°C9°C13.8°C19.6°C24.5°C27.5°C27.1°C23.2°C18.1°C11.2°C6.3°C
월 강수량 (mm)68.3mm66.7mm57.3mm44.1mm13.4mm0.1mm0.2mm0mm0.7mm12.4mm39.1mm59mm
평균 강수일수1111119500005710
출처: WMO[1]



키르쿠크의 기후 (1991–2020)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최고 기온 기록 (°C)24°C26.7°C32.4°C40.3°C44.5°C48.1°C50°C50.6°C47°C42°C32°C30.6°C
평균 최고 기온 (°C)14.4°C16.4°C21°C27°C34.4°C40.7°C43.8°C43.6°C38.6°C31.6°C22.9°C16.6°C
평균 최저 기온 (°C)5.2°C6.4°C10.7°C14.9°C21.1°C26.4°C29.3°C28.9°C24.6°C19.5°C11.5°C6.7°C
최저 기온 기록 (°C)-4.7°C-4°C0.6°C4°C12°C18.2°C21.2°C21°C18°C10.5°C1°C-0.5°C
월 강수량 (mm)66.6mm54.7mm50.7mm37.8mm14mm0.1mm0.3mm0mm0.7mm14.9mm43.1mm54.9mm
평균 강수일수1111119500005710
평균 상대 습도 (%)72.467.158.051.235.725.323.625.329.340.559.069.4
출처 1: WMO (강수일수 1976–2008)[112] [113]
출처 2: Meteomanz (2009년 이후 최고 기온)[114]


4. 인구

19세기 후반 셈세딘 사미는 저서에서 키르쿠크 인구의 4분의 3은 쿠르드족이며, 나머지는 터키인, 아랍인, 유대인, 칼데아인이라고 언급했다.[70][71] 20세기 초 키르쿠크 인구는 주로 투르크멘족이었고, 터키어가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105][106][72]

1957년 인구 조사는 키르쿠크의 민족 구성에 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터키어를 사용하는 투르크멘족이 키르쿠크 시에서 다수였다. 쿠르드족은 주 전체에서 가장 많았다. 이후 주 경계가 변경되어 쿠르드족 다수 지역이 에르빌 주와 술레이마니야 주에 편입되었다.[73]

1977년과 1997년 인구 조사는 이라크 시민들이 아랍 또는 쿠르드 민족 집단 중 하나로만 표시하도록 강요받아 다른 소수 민족 수가 왜곡되어 신뢰하기 어렵다.[75] 아랍화 정책으로 많은 이라크 투르크멘족이 아랍인으로 신고하기도 했다.[75]

4. 1. 민족 구성

셈세딘 사미는 19세기 후반 저서 카무스 알-알람(Kâmûsü'l-A'lâm)에서 키르쿠크를 언급하며, 주민의 4분의 3은 쿠르드족이고 나머지는 터키인, 아랍인, 유대인 760명, 칼데아인 460명이라고 설명했다.[70][71] 20세기 초 키르쿠크의 인구는 주로 투르크멘족이었으며, 가정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언어는 터키어였다.[105][106][72]

1957년 인구 조사는 키르쿠크의 민족 구성에 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이다. 터키어를 사용하는 투르크멘족이 키르쿠크 시에서 다수를 차지한 반면, 쿠르드족은 주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이후 주 경계가 변경되고, 주 이름이 알-타아밈으로 변경되었으며, 쿠르드족이 다수인 일부 지역이 에르빌 주와 술레이마니야 주에 추가되었다.[73]

1957년 키르쿠크 시 자체 인구 조사 결과[74]
모국어인구비율
터키어 (투르크멘어)45,30637.6%
쿠르드어40,04733.3%
아랍어27,12722.5%
시리아어1,5091.3%
히브리어1010.1%
총계120,402



국제 위기 그룹은 1977년과 1997년 인구 조사가 정권 조작 의혹으로 인해 매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라크 시민들은 아랍 또는 쿠르드 민족 집단 중 하나에만 속한다고 표시하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에 다른 소수 민족의 수가 왜곡되었다.[75] 아랍화 정책으로 인해 많은 이라크 투르크멘족이 아랍인으로 자신을 선언했다.[75]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아시리아인들의 수는 계속 감소했으며,[85] 시청 공무원의 4%를 차지하는데, 이 비율은 도시 내 그들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86]

ISIS의 공격 이후, 키르쿠크의 아랍 난민들을 의심한 쿠르드 당국은 이라크의 ISIS와의 전쟁 중 이 지역으로 피난 온 수백 명의 아랍 가정을 추방했다. 난민들은 이재민 캠프나 원래 거주지로 보내졌다. 일부 이재민들은 자신들을 국내 실향민이 아닌 지역 주민으로 묘사했다.[76]

4. 1. 1. 아랍인

키르쿠크 시의 주요 아랍 대가족은 티크리트 가문(Tikriti)과 하디디 가문(حديديar)이었다. 티크리트 가문은 17세기에 티크리트에서 온 키르쿠크의 주요 아랍 가문이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키르쿠크에 정착한 다른 아랍 부족으로는 알우바이드 부족(آل عبيدar)과 알지부리 부족(آل جبورar)이 있다. 알우바이드 부족은 그 지역의 다른 아랍 부족들에게 쫓겨 모술 북서쪽에서 왔다. 그들은 오스만 제국 시대인 1805년에 키르쿠크의 하위자 지역에 정착했다.[77]

4. 1. 2. 아르메니아인

2017년 기준으로 약 30가구의 아르메니아인 가족이 키르쿠크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지역 사회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도 있다.[78][79]

4. 1. 3. 아시리아인

셀레우코스 제국 시대에 키르쿠크는 메소포타미아 상류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아시리아 원주민들이 거주했다. 2세기경 주교 투크리타(테오크리토스)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다.[80] 사산조 시대에는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고, 여러 주교들이 총대주교의 지위에 올랐다. 샤푸르 2세(309~379년) 통치 기간 동안 기독교인과 조로아스터교도 사이의 긴장으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심각한 박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페르시아 순교자 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445년 야즈데게르드 2세 치하에서 박해가 재개되어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했다. 이후 네스토리우스파가 등장하면서 다음 두 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의 상황은 크게 개선되었다.[81] 445년 야즈데게르드 2세 치하에서 다시 박해가 시작되어 수천 명이 학살당했으며, 전통에 따르면 그 수는 1만 2천 명에 달하고 총대주교 셰몬 바르 사바에도 포함된다.[82]

이 도시는 번영했던 베트 가르마이 교구(동시리아 교회 관할구)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1400년 티무르의 정복 전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키르쿠크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칼데아 가톨릭 교회를 따랐으며, 그 주교는 5세기에 건설된 대순교자 성당에 거주했다. 그러나 이 성당은 탄약고로 사용되었고 1918년 오스만 제국이 후퇴할 때 폭발되었다.[83]

석유 발견은 키르쿠크에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불러들였지만, 바트당의 아랍화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84]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그들의 수는 계속 감소했으며,[85] 시청 공무원의 4%를 차지하는데, 이 비율은 도시 내 그들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86]

키르쿠크의 아시리아인들은 터키어 방언을 사용하며, 칼데아 가톨릭 교회를 따른다. 특히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라크 투르크멘족으로부터 터키어를 채택한 성채 근처에 거주했다. 그들의 방언은 이라크 투르크멘 방언과 상호 이해 가능하다. 그들의 공식 찬송가, 찬사, 기도는 터키어로 되어 있다.[87] 그들의 성경은 1800년대에 쓰인 오스만 터키어로 되어 있으며, 지역 지도자들이 낭독한다.[88][89] 성채 기독교인들은 2015년에 약 3만 명에 달했던 로마 가톨릭 교회를 따르는 이라크 투르크멘 공동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키르쿠크를 포함한 투르크멘엘리 전역에 거주하는 반면, 성채 기독교인들은 이주 전에는 키르쿠크에만 거주했다.[90]

4. 1. 4. 유대인

키르쿠크에는 유대인들의 오랜 역사가 있다. 오스만 제국의 기록에 따르면 1560년 키르쿠크에는 유대인 가옥이 104채 있었고,[91] 1896년에는 760명의 유대인이 거주했다.[92]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특히 키르쿠크가 석유 중심지가 되면서 유대인 인구가 증가하여 1947년 인구 조사에서는 2,350명이 기록되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했다. 사회적 진보는 더뎠고,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일부 유대인 학생들이 중등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951년까지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떠났다.[93]

4. 1. 5. 쿠르드족

쿠르드족의 통제 아래 키르쿠크의 투르크멘족과 아랍족 주민들은 협박과 괴롭힘을 당했으며, 키르쿠크 내 쿠르드족 인구를 늘리고 키르쿠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집을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여러 휴먼 라이츠 워치 보고서는 투르크멘족과 아랍족 가족의 서류 압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며, 이로 인해 그들이 투표, 부동산 구매,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62][63] 키르쿠크의 투르크멘족 주민들은 쿠르드족 군대에 의해 구금되어 도시를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쿠르드 당국은 수백 명의 아랍 가족을 도시에서 추방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가옥을 철거했다.[62][63]

2006년 이후 유엔 보고서들은 쿠르드 당국과 페슈메르가 민병대가 키르쿠크와 기타 분쟁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경찰 활동을 했으며, 이 민병대가 투르크멘족과 아랍족을 납치하여 고문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64] 키르쿠크는 쿠르드자치정부가 자치 수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쿠르드자치정부가 키르쿠크 시와 주를 통제하지 않으며, 키르쿠크는 쿠르드 자치 구역에 속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구 조사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키르쿠크 인구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94][95][96]

1920년 세브르 조약에 따른 독립 쿠르디스탄의 조항


바반 가문은 18세기와 19세기에 현재 이라크 쿠르디스탄에 있는 샤라조르 주의 정치 생활을 지배했던 쿠르드족 가문이었다. 이 일족 중 처음으로 키르쿠크를 포함한 이 주와 그 수도를 장악한 사람은 술레이만 베그였다. 거의 완전한 자치권을 누린 바반 가문은 키르쿠크를 수도로 삼았다. 이때부터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키르쿠크를 자신의 수도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은 바반 가문이 18세기 후반에 왕조 창시자의 이름을 딴 술레이마니야라는 새로운 도시로 행정부를 옮긴 후에도 지속되었다.[97]

4. 1. 6. 투르크멘족

이라크 투르크멘인들은 키르쿠크를 자신들의 수도로 여기며, 마지막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구 조사 결과 키르쿠크 시에 투르크멘인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98][99]

키르쿠크 시에서 투르크멘인들은 티신, 무살라, 코리아, 바그다드로드, 사르크하야, 샤투르루, 베일러, 피르야디, 알마스, 아라파, 불락, 추쿠르, 이맘 아바스, 치릿 광장, 차이, 6월 1일, 베식타시 지역에 거주한다. 다른 지역에도 드문드문 분포되어 있다. 또한 키르쿠크의 샤투르루, 알마스, 아라파 지역에는 기독교 투르크멘인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르쿠크 주변에는 많은 투르크멘 마을이 있는데, 튀르칼란, 야이치, 차르다클리, 크즐야르, 퀴벰틀러, 불로바, 베시르 등이 있다.[100]

키르쿠크의 강변, 역사적인 주택, 골목길, 옛 묘지, 그리고 우세한 음악 양식은 역사적으로 투르크멘인들에게 속한다. 키르쿠크의 대부분 마을과 지역의 옛 이름뿐만 아니라 널리 퍼져있는 직업과 직종도 투르크멘 가족들에게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101]

투르크멘인들은 여러 투르크계 이주 물결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가장 초기의 이주는 우마이야와 압바스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군사 모집으로 이주해왔다.[102] 셀주크 시대에도 상당한 투르크멘 정착이 계속되었는데, 토그릴이 1055년 주로 오구즈 투르크로 구성된 군대와 함께 이라크에 진입했을 때였다. 키르쿠크는 63년 동안 셀주크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투르크계 이주 물결은 오스만 제국 통치(1535~1919) 4세기 동안 일어났는데, 당시 아나톨리아 출신의 터키 이주민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도록 장려받았다.[103]

1535년 오스만 술탄 술레이만 1세에 의한 이라크 정복 이후 키르쿠크는 확고하게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오스만 기록에는 "Gökyurt"(푸른 고향)로 불렸는데, "이는 당시 키르쿠크가 특히 투르크계 도시로 여겨졌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104] 오스만 시대에는 아나톨리아에서 키르쿠크로 터키 이주가 수 세기 동안 발생했는데, 처음에는 1535년 최초 정복 당시에 이어 1638년 술탄 무라드 4세의 군대와 함께 터키 가족들이 도착했고, 다른 이들은 다른 주목할 만한 오스만 인물들과 함께 나중에 왔다.[104] 이 가족들은 오스만 통치가 끝날 때까지 가장 높은 사회경제적 계층을 차지하고 가장 중요한 관료직을 맡았다.[104] 이 기간 동안 투르크멘인들은 키르쿠크 시와 그 주변 지역의 주요 인구였지만, 쿠르드족은 키르쿠크 농촌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했다.[39] 1910년대 후반 키르쿠크의 인구는 약 3만 명이었고, 투르크멘인들은 시 중심부에서 다수를 차지하며 이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생활을 지배했다.[105][106]

현재 이라크 투르크멘 정치인들은 키르쿠크 시의회 의석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투르크멘 지도자들은 그들이 도시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말한다.[107]

쿠르드족의 통제 하에 키르쿠크의 투르크멘족과 아랍족 주민들은 협박과 괴롭힘을 당했으며, 키르쿠크 내 쿠르드족 인구를 늘리고 키르쿠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집을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여러 휴먼 라이츠 워치 보고서는 투르크멘족과 아랍족 가족의 서류 압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며, 이로 인해 그들이 투표, 부동산 구매,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키르쿠크의 투르크멘족 주민들은 쿠르드족군에 의해 구금되어 도시를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쿠르드 당국은 수백 명의 아랍 가족을 도시에서 추방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가옥을 철거했다.[62][63]

2006년 이후 유엔 보고서들은 쿠르드 당국과 페슈머가 민병대가 키르쿠크와 기타 분쟁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경찰 활동을 했으며, 이 민병대가 투르크멘족과 아랍족을 납치하여 고문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64]

5. 경제

키르쿠크는 키르쿠크 유전을 비롯한 주변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주요 산업이며,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 키르쿠크-바니야스 송유관을 통해 수출된다.

농업과 목축업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밀, 보리, 과일 등이 재배되고 양모의 집산지 역할도 한다.

5. 1. 석유 산업

바바 구르구르


1927년, 외국 소유의 영국 주도 이라크 석유회사(IPC)를 위해 일하던 이라크와 미국인 시추공들이 키르쿠크 근처 바바 구르구르에서 거대한 유출을 발견했다. IPC는 1934년 키르쿠크 유전에서 수출을 시작했다. 회사는 본사를 투즈 호르마투에서 키르쿠크 외곽의 캠프로 이전했는데, 고대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라파라고 명명했다. 아라파는 오늘날까지 키르쿠크의 큰 지역으로 남아 있다. IPC는 도시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키르쿠크의 도시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이라크 당국과 협력하여 주택 및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36]

석유 산업의 존재는 키르쿠크의 인구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 1930년경에 시작된 키르쿠크 석유 개발은 일자리를 찾아 아랍인과 쿠르드인 모두를 도시로 끌어들였다. 이전에 주로 이라크 투르크멘족 도시였던 키르쿠크는 점차 독특한 투르크멘족의 특징을 잃어갔다.[44][37][38]

키르쿠크 유전은 1927년 키르쿠크 인근 바바 구르구르에서 발견되어 1934년 이라크 석유회사(Iraq Petroleum Company)에 의해 생산이 시작되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사담 후세인 시대의 열악한 유전지 관리 관행으로 인해 키르쿠크 유전이 심각하고 심지어 영구적으로 손상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약 의 과잉 중유가 재주입되었다는 추정치가 있다. 다른 문제로는 정유 잔류물과 가스 제거된 석유가 있다. 중유 재주입은 키르쿠크의 석유 점도를 높여 석유를 지하에서 꺼내는 것이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게 되었다.[42]

2003년 4월부터 2004년 12월 말까지 이라크 에너지 인프라, 특히 7,000km에 달하는 이라크의 파이프라인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 약 123건 있었다. 수십억 달러의 석유 수출 수입 손실과 수리 비용을 초래한 이러한 공격에 대응하여 미군은 이라크의 에너지 인프라, 특히 키르쿠크-세이한 석유 파이프라인을 보호하기 위해 실드 특수부대를 설치했다. 전쟁 자체 동안 이라크 유전에 거의 피해가 없었던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후의 약탈과 파괴 행위는 매우 파괴적이었으며 총 피해의 80%를 차지했을 것이다.[43]

1972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정부는 석유 수출 증대와 1961년 제80호 법을 둘러싼 오랜 분쟁 해결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이라크 석유회사(Iraqi Petroleum Company, IPC)를 국유화했다. 이라크 정부는 석유를 동구권 국가들과 IPC의 프랑스 파트너인 CFP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3년 이라크와 합의에 도달한 후, IPC 회원들은 바스라 석유회사를 통해 이라크 남부의 일부 지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키르쿠크 유전을 포함한 이라크의 주요 유전들은 잃었다.[49]

키르쿠크는 주로 쿠르드인과 튀르크멘인이 거주하는 다민족 도시로 알려져 있었지만, 1980년대 사담 후세인의 아랍화 정책에 따라 쿠르드인과 튀르크멘인은 교외의 마을로 강제 이주당했고, 도시 주민의 대부분은 수니파 아랍인 노동자가 되었다.

키르쿠크발 파이프라인은 터키를 거쳐 지중해의 세이한까지 이어지며,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석유 대 식량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 석유 수출의 두 가지 주요 경로 중 하나였다. 이는 석유 수출의 최소 50%가 터키를 통과해야 한다는 유엔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유엔의 “석유와 식량의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수출 원유의 최소 50%를 터키를 통해 수출하도록 의무화되었다. 이라크 원유 수출 루트의 주요 두 곳 중 하나인 키르쿠크-제이한 석유 파이프라인은 키르쿠크에서 출발하여 터키의 지중해 연안 제이한에 이른다.

키르쿠크 유전 등 주변 유전에서 채굴되는 원유가 주요 산업이며, 다음과 같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된다.

  •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
  • 키르쿠크-바니야스 송유관


5. 2. 기타 산업

키르쿠크 유전 등 주변 유전에서 채굴되는 원유가 주요 산업이다.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 키르쿠크-바니야스 송유관과 같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된다.

농업(밀, 보리, 과일 등)과 목축도 활발하며, 양모 집산지이기도 하다.

6. 교통



수도 바그다드와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7. 교육

University of Kirkuk|키르쿠크 대학교영어

8. 주요 시설

키르쿠크에는 다음과 같은 고대 건축 기념물이 있다.


  • 예언자 다니엘의 무덤
  • 키르쿠크 성채
  • 키르쿠크의 카이사리예
  • 키르쿠크의 키쉴라


칼라트 자르모와 요르간 테페의 고고학 유적지는 현대 도시 외곽에서 발견된다. 1997년에는 사담 후세인 정부가 "키르쿠크의 역사적인 성채와 그 안의 모스크와 고대 교회를 파괴했다"는 보고가 있었다.[108]

제1차 세계 대전(일부 이슬람 이전 아시리아 기독교 기념물이 파괴되었을 때)과 최근의 이라크 전쟁 중에 키르쿠크의 건축 유산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사이먼 젠킨스는 2007년 6월 "지난 한 달 동안만 키르쿠크와 남부 지역에서 18개의 고대 사당이 유실되었다"고 보도했다.[109]

9. 자매 도시

코냐 (튀르키예)[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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