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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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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만 문화는 16세기 일본에 유입된 유럽 문화를 지칭하며, 주로 포르투갈, 스페인 선교사 및 상인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가톨릭 포교와 함께 활판 인쇄술, 서양 의학, 천문학, 항해술 등 실용적인 지식을 전파했으며, 서양식 의복, 담배, 조총, 유화, 지구본 등의 물품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교류는 일본의 세계관 변화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며, '남만 병풍'과 같은 미술 작품을 남겼다. 활판 인쇄술의 도입으로 일본어 사전 편찬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국어학 연구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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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문화

2. 예수회 선교사의 유입과 초기 활동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들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일본에 도착했다. 1549년 가고시마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시작으로 많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펼쳤다.[6][7]

덴분 18년(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고시마를 방문한 후 히라도를 거쳐 야마구치에서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시계, 안경, 조총, 포도주, 오르골 등을 증정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포르투갈어로 '신부'를 뜻하는 '파드르'(padrept)를 따서 '바테렌'(バテレン일본어)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활판 인쇄술을 전파하고 로마자를 이용한 기독교 관련 서적 및 일본어 사전 등을 간행했는데, 이러한 출판물들을 '기리시탄판'(キリシタン版일본어)이라고 불렀다. '기리시탄'은 포르투갈어 '크리스탕'(cristãopt)에서 유래한 말이다.[6][7]

니에키 솔디 오르간티노는 에이로쿠 10년(1576년) 교토교회당인 남만사를 세웠고, 아즈치에는 신학교인 세미나리오를 건립했다. 또한 교회의 전례 음악으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렸다.

2. 1. 주요 선교사들의 활동

가스파르 빌렐라는 집단세례를 통해 '잠복 크리스천'의 기초를 마련했고,[6][7] 루이스 프로이스는 일본 포교사를 편년체로 정리했으며, 알렉산드로 발리냐노는 일본에 활판 인쇄술을 전해주었다.[6][7] 발리냐노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세미나리오와 콜레지오 (선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에서 신학, 철학, 라틴어, 음악, 회화 외에 천문학, 역학, 수학, 지리학, 항해술, 의학 (남만류 외과) 등 실용적인 지식을 일본에 전했다.

3. 남만 문화와 풍속의 영향

운순 카르타


남만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선교사들이 일본을 방문했고, 서민들 사이에서도 남만풍의 의복을 입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일신교의 교리와 유럽의 일부일처제 등 서양 윤리는 다신교범신론에 익숙했던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남만인과 남만 문화의 도래는 일본인들의 시야를 넓혔고, "인도·중국·일본" 중심의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의식, 의료, 음악 등 여러 면에서 남만 문화가 일본에 스며들었으며, 다도와 같은 일본 문화도 이국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남만 문화는 단명했지만, 카르타, 담배는 널리 보급되었고, , 카스텔라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현대 일본어에도 남아있다.[1]

3. 1. 유입된 서양 문물

조총(타네가시마)


조총(타네가시마), 유화, 동판화, 지구본, 기계 시계, 안경, 양악기(오르간, 클라비코드, 비올라) 등이 전래되었다.

콜럼버스 교환으로 신대륙 기원의 것도 전래되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담배가 전해지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흡연 습관이 퍼졌다.

3. 2.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



선교사들의 일본 방문과 남만 무역의 융성에 따라 서민들 사이에서도 남만풍의 의복을 입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또한, 일신교의 교리유럽에서의 일부일처제,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윤리 등은 다신교범신론에 익숙했던 당시 일본인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문물로는 철포 (조총), 유화, 동판화, 지구본, 기계 시계, 안경, 서양 악기 (오르간, 클라비코드, 비올라) 등이 전래되었다.

소위 "콜럼버스 교환"에 의해 신대륙 기원의 것도 전래되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담배가 전해지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흡연의 습관이 퍼졌다.

남만인, 남만 문화의 도래는 단순히 새로운 과학적 도구나 진기한 물품, 문물을 가져온 것뿐만 아니라, 기존 일본인들의 시야나 정신에 없었던 지역과의 조우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대 이래의 "인도·중국·일본"이라는 삼국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은 무너졌다.

의식, 의료 외에도 음악 등 여러 면에서 남만 문화는 의외로 당시 일본에 침투해 있었으며, 오늘날 가장 일본적인 문화 중 하나로 여겨지는 다도도 당시에는 다분히 이국적인 취미의 요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남만 문화 자체는 에도 막부무역·정보 통제 정책 (소위 "쇄국 정책") 때문에 단명으로 끝났지만, 카르타나 담배는 그 후에도 널리 보급되었고, , 카스텔라, 갓파, 콘페이토, 비누, 라샤, 주반, 메리야스 등의 포르투갈어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현대의 일본어에도 단어로 남아 있다.

4. 학문과 예술 분야의 발전

덴쇼 13년(1585년), 덴쇼견구사절은 아즈치성의 풍경을 그린 가노파의 병풍 그림을 로마 교황에게 헌상했다.[2] 이후 일본인의 손으로 "남만 병풍"도 그려졌는데, 가노 나이젠을 포함한 여러 화가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남만 병풍은 서양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의 화법으로 그려졌으며, 상인, 선교사, 흑인 노예, 호랑이, 아라비아 말, 서양 개, 코끼리 등이 묘사되었다.

루이스 데 알메이다는 분고국후나이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구료원과 고아원을 설립하여 남만 의학이 급속히 퍼지는 계기를 마련했다.[5] 알메이다는 이 병원에서 직접 서양식 외과 의료를 시행했고, 내과와 약은 의학·약학에 정통한 전직 승려 출신의 일본인 기리시탄이 담당했다. 한편, 선교사는 성수, 로사리오, 기도문 등을 이용한 신학적·주술적인 의료를 주로 담당했다.

예수회 선교사 알레산드로 발리냐노금속 활자를 사용한 활판 인쇄술과 인쇄기를 일본에 전래했다. 이를 통해 로마자로 된 기독교 문학 및 종교서 번역, 일본어 사전과 일본 고전 출판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기리시탄판이라 불렀다. 기리시탄판은 출판된 지역에 따라 아마쿠사판, 가츠사판, 나가사키판 등으로 나뉜다. 조앙 로드리게스가 1604년부터 1608년에 걸쳐 편찬한 나가사키판 『일본대문전』은 동국 방언 등을 수록한 귀중한 자료이다. 종교서로는 1592년 아마쿠사판 『도치리나·기리시탄』, 한자히라가나를 섞어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은 1599년 나가사키판 『갸·도·페카도루』, 『콘템츠스·문지』 등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보호를 받으며 포교 활동을 한 루이스 프로이스편년체 역사서인 『프로이스 일본사』를 저술했다.

4. 1. 서양 학문의 전래

덴분 18년(1549년) 기독교 포교를 위해 사쓰마국가고시마를 방문한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후, 가스파르 빌레라, 루이스 프로이스, 니에키 솔디 오르간티노,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루이스 데 알메이다, 가스파르 코엘료 (이상 예수회), 제로니모 데 제수스, 루이스 소테로 (이상 프란치스코회) 등 많은 가톨릭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펼쳤다.[1]

이들은 세미나리오와 콜레지오 (선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에서 신학, 철학, 라틴어, 음악, 회화 외에도 천문학, 역학, 수학, 지리학, 항해술, 의학 (남만류 외과) 등 실용적인 지식을 일본에 전파했다.[1] 또한 교회의 전례 음악으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렸다.[1]

4. 2. 남만 미술의 발전

덴쇼 13년(1585년) 덴쇼견구사절은 아즈치성 풍경을 그린 가노파 병풍 그림을 로마 교황에게 헌상했다.[2] 이후 일본인의 손으로 그려진 "남만 병풍"에는 가노파의 가노 나이젠의 작품을 포함하여 여러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남만 병풍은 서양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화법으로 그려졌으며, 상인, 선교사, 흑인 노예, 호랑이, 아라비아 말, 서양 개, 코끼리 등이 묘사되어 있다.

"세계 지도 병풍"이나 『태서왕후기마도』는 넓은 의미에서 "남만 병풍"에 속하지만, 일본인이 일본화 재료로 서양 풍속화를 모사한 작품으로는 『서양인주악도병풍』, 『사도 세계도』 등이 유명하다.

4. 3. 활판 인쇄술의 도입과 발전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에 의해 금속 활자를 사용한 활판 인쇄술이 전래되었고, 인쇄기도 수입되었다. 이를 통해 로마자에 의한 기독교 문학·종교서 번역, 일본어사전·일본고전출판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출판물들을 '기리시탄판'(キリシタン版일본어)이라고 부르며, 출판된 지역에 따라 아마쿠사판, 가츠사판, 나가사키판 등으로 불린다.[6][7]

1592년 아마쿠사판 『도치리나·기리시탄』, 1592년 아마쿠사판 『헤이케 이야기』, 1593년 아마쿠사판 『이솝 이야기』, 1603년 나가사키판 『일포사전』 등은 포르투갈식 로마 자모로 출판되어 당시 일본어의 음운을 충실하게 기록한 귀중한 자료로 국어학적 가치가 높다.

5. 사전 편찬

예수회무로마치 시대 일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사전들을 편찬했다. 대표적인 사전으로는 《나포일사전》, 《일포사서》, 《일본대문전》 등이 있다. 《일포사서》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일본인 신자들의 협력을 얻어 편찬했으며, 당시 일본인이 만든 사전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대문전》은 포르투갈인 주앙 호드리게스가 편찬했으며, 라틴어 문법과 사전의 틀에 맞추어 일본어의 문법, 경어법, 조사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8]

5. 1. 주요 사전

1595년 예수회 일본 지부에서 편찬한 《나포일사전》(羅葡日辭典)은 암브로조 칼레피노의 라틴어 사전을 바탕으로 포르투갈어와 일본어를 대역한 사전이다.[8] 1603년-1604년 사이에 간행된 《일포사서》(日葡辭書)는 무로마치 시대 언어 연구의 필수 문헌으로 꼽히며, 3만 개가 넘는 어휘가 수록되어 있다.[8] 1604년-1608년 주앙 호드리게스가 편찬한 《일본대문전》(日本大文典)은 일본어 문법 연구서이다.[8]

참조

[1] 서적 小塩(2010)pp.35-43
[2] 서적 家永(1982)pp.172-178
[3] 서적 芳賀(1979)pp.122-123
[4] 문서 「コロンブス交換」とは15世紀末葉以降とくに大航海時代に進展した、東半球と西半球の間の生物|動植物や文物、人、食物や病原体、銃・鉄器をはじめとする諸道具、思想・宗教等の広範囲にわたる交換を意味する言葉。用語はクリストファー・コロンブスの「新大陸」到達にちなむ。
[5] 문서 とくに鉄砲玉をぬきとるような外科手術は従来の日本の医術にはみられないものであった。
[6] 문서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일본의 외래어로는 메리야스, 카스테라, 빵 등이 있다.
[7] 서적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2018
[8] 서적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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