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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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모타로는 일본의 대표적인 설화로, 복숭아에서 태어난 소년 모모타로가 오니(도깨비)를 물리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모모타로는 늙은 부부의 아이가 되기 위해 하늘이 보낸 존재로, 오니가시마로 떠나 개, 원숭이, 꿩을 친구로 삼아 함께 귀신을 물리치고 보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이 이야기는 오카야마현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모모타로 설화는 에도 시대에 기록되기 시작하여, 메이지 시대에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이야기는 군국주의 시대에는 용기의 상징으로, 전후에는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묘사되는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모모타로는 일본의 문화적 상징으로, 팽창주의와 군국주의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모모타로산 노 우타'와 같은 노래로도 만들어져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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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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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모모타로 |
로마자 표기 | Momotarō |
일본어 표기 | 桃太郎 |
별칭 | 복숭아 동자 |
인물 정보 | |
성별 | 남성 |
출신 국가 | 일본 |
직업 | 없음 |
가족 | |
가족 관계 | 없음 |
이야기 속 정보 | |
등장 작품 | 일본의 민담, 전래 동화 |
무기 | 없음 |
특징 | 키비당고를 먹고 힘을 얻음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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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용
전설에 따르면 모모타로는 거대한 복숭아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에서 빨래하던 자식 없는 노파가 이 복숭아를 발견했고, 부부가 복숭아를 열자 안에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하늘이 자신을 부부의 자식으로 보냈다고 설명했고, 부부는 아이를 '모모타로'라 불렀다. '모모'는 복숭아, '타로'는 장남을 뜻한다.[76][77]
1753년 기록된 오래된 이야기에는, 노파가 떠내려온 복숭아를 먹고 젊음을 되찾는 내용이 있다. 남편은 젊어진 아내를 보고 놀랐지만, 아내는 복숭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남편도 복숭아를 먹고 젊어졌고, 부부는 사랑을 나눠 임신했다. 첫 아들의 이름은 '타로'라고 지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성적인 내용을 삭제하고 교과서에 실었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가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성적인 주제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복숭아는 성교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78]
몇 년 후, 모모타로는 오니를 퇴치하기 위해 오니가시마(鬼ヶ島)라는 섬으로 떠났다. 가는 길에 개, 원숭이, 꿩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함께 오니들의 요새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모모타로는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다.
모모타로 이야기는 오카야마와 관련이 깊으며, 오니가시마는 다카마쓰 근처 메기지마 섬으로 추정되기도 한다.[76][77]
모모타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모타로가 바구니나 다른 색깔의 복숭아에 담겨 떠내려왔다고 한다. 시코쿠와 주고쿠 지역에서는 원숭이와 게의 싸움 등장인물이 나오기도 한다.[78]
- 하위 섹션인 "줄거리", "이본(異本) 및 구전 설화"와 중복되는 내용, 특히 줄거리 요약 부분을 간결하게 수정했습니다.
- 오탈자 및 번역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2. 1. 줄거리
전설에 따르면 모모타로는 거대한 복숭아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에서 빨래하던 자식 없는 노파가 이 복숭아를 발견했고, 부부가 복숭아를 열자 안에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하늘이 자신을 부부의 자식으로 보냈다고 설명했고, 부부는 아이를 '모모타로'라 불렀다. '모모'는 복숭아, '타로'는 장남을 뜻한다.[76][77]
1753년 기록된 오래된 이야기에는, 노파가 떠내려온 복숭아를 먹고 젊음을 되찾는 내용이 있다. 남편은 젊어진 아내를 보고 놀랐지만, 아내는 복숭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남편도 복숭아를 먹고 젊어졌고, 부부는 사랑을 나눠 임신했다. 첫 아들의 이름은 '타로'라고 지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성적인 내용을 삭제하고 교과서에 실었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가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성적인 주제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복숭아는 성교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78]
몇 년 후, 모모타로는 오니를 퇴치하기 위해 오니가시마(鬼ヶ島)라는 섬으로 떠났다. 가는 길에 개, 원숭이, 꿩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함께 오니들의 요새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모모타로는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다.
모모타로 이야기는 오카야마와 관련이 깊으며, 오니가시마는 다카마쓰 근처 메기지마 섬으로 추정되기도 한다.[76][77]
모모타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모타로가 바구니나 다른 색깔의 복숭아에 담겨 떠내려왔다고 한다. 시코쿠와 주고쿠 지역에서는 원숭이와 게의 싸움 등장인물이 나오기도 한다.[78]
메이지 시대에 확립된 현재 일반적인 이야기 형태(표준 유형)는 다음과 같다.
모모타로는 큰 복숭아에서 태어났다. 아이가 없던 노부부가 강에서 떠내려오는 복숭아를 발견해 갈랐을 때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신이 자신을 아들로 보냈다고 했다. 부부는 '모모'(복숭아)와 '타로'(장남)를 합쳐 모모타로라고 이름 지었다.
모모타로는 오니(도깨비)를 퇴치하러 오니가시마로 갔다. 가는 길에 개, 원숭이, 꿩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기비당고를 나눠주며 도움을 받았다. 섬에서 모모타로와 친구들은 도깨비 요새에 침투하여 항복을 받았다. 모모타로는 약탈한 보물과 도깨비 두목을 데리고 귀환했다.[1]
에도 시대 초기부터 필사본과 인쇄본으로 전해졌으며, 에도 시대에는 모모타로가 복숭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복숭아를 먹고 젊어진 노부부에게서 태어났다는 내용이 많았다.
겐로쿠 시대(1688~1704) 이전의 가장 오래된 모모타로 이야기는 소실되었지만, 후대 자료를 통해 옛 전통을 추정할 수 있다.[2] 쿄호 8년(1723년) 인쇄된 소형 아카혼(赤本) 『모모타로』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 책이다.[3]
에도 시대 이야기책들은 현대 표준 버전과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세부 사항이 다르다. 모모타로는 기비당고 대신 토당고와 다른 간식을 받았고, 동물 친구 순서도 다르다.[4][5]
다카자와 바킨의 1811년 에세이에는 '복숭아에서 태어남' 유형이 나오지만, 에도 시대 이전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5]
시간이 지나면서 모모타로는 점점 어리게 그려졌다. 1735년경에는 30대 초반, 1800년경에는 25세 전후, 1867년에는 20세 전후로 묘사되었다. 모모타로의 나이는 15~16세로 설정된 경우가 많았다.[6][7][8]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는 메이지 시대에 모모타로 이야기를 자신의 민담집에 수록하고 교과서에도 기여했다.[9] 이와야는 모모타로를 쇼군으로 묘사하고, 오니를 청나라로 해석하기도 했다.[10]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모모타로는 교과서에 실렸으며, 전시 선전에도 활용되었다.
지역적인 변이도 있다. 빨간 상자와 흰 상자가 떠내려오는 유형, 三年寝太郎|산넨 네타로일본어 "잠꾸러기 소년" 특징을 보이는 유형 등이 있다.[16] 모모타로는 훌륭한 소년, 또는 게으른 사람으로 자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오카야마현은 모모타로와 관련이 깊지만, 이는 근대에 들어 형성된 것이다.[17] 오니가시마는 다카마쓰 근처 메기지마 섬과 연관되기도 한다.[18][19]
이누야마에는 桃太郎神社 (犬山市)|모모타로 신사|lt=모모타로 신사일본어가 있다.
모모타로 이야기는 권선징악 이야기로, 모모타로 측 시점에서 묘사된다.[26] 에도 시대 문학에서 모모타로가 가져오는 보물은 다양했지만, 20세기에는 "금은산호명주비단"이 상투적으로 사용되었다.[35]

2. 2. 이본(異本) 및 구전 설화
1753년에 쓰여진 아주 오래된 형태의 이야기에서는, 늙고 자식 없는 여인이 떠내려오는 거대한 복숭아를 집에 가지고 와서 먹었더니 젊었을 때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복숭아를 먹고 젊어진 노부부에게서 모모타로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회춘형"으로 분류되며, 현재 일반적인 복숭아에서 태어났다는 "과생형"과는 차이가 있다.[1] 겐로쿠 시대(元禄時代)경의 옛 이야기책들은 분실되었지만, 『사이한 모모타로 무카시가타리』(再板桃太郎昔話)(약 1777년)와 같은 후대의 자료들이 옛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2]쿄호 8년(1723년)에 인쇄된 소형 아카혼(赤本)인 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모모타로 이야기 책으로 간주된다.[3] 에도 시대의 이야기책들은 현대 표준 버전과 같은 일반적인 줄거리를 따르지만, 세부 사항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모모타로는 기비 당고(黍団子)가 아닌, 와 다른 간식을 받는다.[4] 또한, 노인이 나무를 패러 가는 것이 아니라 풀을 베러 가며, 세 동물 친구(꿩, 원숭이, 개)의 순서도 다르다.[5] 거의 모든 변형에서 세 동물 친구 모두 음식의 일부를 대가로 모모타로를 돕는 데 동의한다.
에도 시대 대부분의 책에서 복숭아 소년은 복숭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숭아를 먹고 젊어진 여자에게서 태어난다. "복숭아에서 태어남" 유형은 다카자와 바킨의 1811년 에세이 등에서 발견되는데, 에도 시대 이전의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5]
이 이야기는 구전 과정에서 지역적인 변이를 보인다.
어떤 변형에서는 빨간 상자와 흰 상자, 혹은 빨간 상자와 검은 상자가 강을 따라 떠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되며, 빨간 상자를 건져 올리자 모모타로가 그 안에 들어있다. 이러한 유형은 일본 북부 지역(도호쿠 지방(東北地方)과 호쿠리쿠 지방(北陸地方))에서 자주 발견된다.
또는 모모타로가 "잠꾸러기 소년" 이야기의 게으른 주인공의 특징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유형은 주로 시코쿠(四国)와 주고쿠 지방에서 수집되었다.[16]
모모타로의 성장 과정에 대한 변이도 있다. 노부부의 기대에 부응하여 훌륭한 소년으로 자란다는 이야기와, 강하지만 게으른 사람으로 자라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이야기로 나뉜다.
3. 역사적 배경
모모타로 이야기의 구전 형태는 무로마치 시대(1392~1573)에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지만, 에도 시대(1603~1867)가 되어서야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9]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모모타로 이야기는 겐로쿠 시대(1688~1704) 또는 그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2]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巌谷小波|이와야 사자나미일본어는 모모타로 이야기가 일본 국민들에게 친숙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민담집에 모모타로 이야기를 수록했고, 교과서에 실린 모모타로 이야기에도 크게 기여했다.[14] 1887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처음 수록되었고,[9] 이후 2판부터 5판까지 다시 수록되었는데, 1910년 2판 국어 독본은 그림책 작가 이와야 사자나미가 사실상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16]
이와야는 1894년에 이미 자신의 ''일본 민화''(일본 민담)에 모모타로 이야기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모모타로는 대일본(다이니혼)의 군인 또는 지휘관(쇼군)으로 묘사되며, 북동부에 사는 오니들을 진압하기 위한 응징 작전에 파견된다.[10] 이전에는 오니를 처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와야의 버전에서는 오니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일본 천황의 땅에서 "약탈"을 한 악한 존재로 명시되어 모모타로의 원정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19] 이 이야기가 1895년 청일 전쟁이 발발한 해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오니들은 청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11]
쇼와 초기, 히로히토 천황 즉위 후에도 모모타로는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계속 사용되었으며, 1933~1938년의 제4차 개정 국어 독본에서도 벚꽃 그림과 함께 실렸다.[14]
존 W. 도워는 저서 "무자비한 전쟁(War Without Mercy)"(1986)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전시 선전에서 모모타로가 사용된 것에 대해 논의하며, "모모타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5]
청일 전쟁(1894-1895) 때부터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서 적대국과 싸우는 모모타로의 묘사가 등장했다.[24] 이와야 사자나미는 1894년 모모타로 이야기를 수정하여 오니가 일본 북동쪽에 산다고 묘사했는데, 이는 당시 청나라를 가리키는 은유였다.[24] 러일 전쟁 기간 동안에는 러시아의 "북방 악마"를 나타내는 오니에 맞서 일본을 방어하는 모모타로를 묘사한 만화 그림이 배포되기도 했다.[2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서 모모타로는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었으며, 많은 전시 영화와 만화에 등장했다.[25] 모모타로는 일본 정부를 대표했고, 적국은 오니로 상징되었다.[25]
모모타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시코쿠와 주고쿠 지역에서는 원숭이와 게의 싸움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섞여, 모모타로가 벌, 게, 맷돌, 밤, 쇠똥과 함께 오니가시마로 가기도 한다.[78]
모모타로는 오카야마현 또는 오카야마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연관성은 근대에 들어서야 생겨났다.[17] 이야기 속의 오니가시마(鬼ヶ島)는 세토 내해의 다카마쓰 근처에 있는 메기지마 섬과 종종 연관된다.[18] 아이치현 이누야마에는 모모타로 신사가 있다.
오카야마현은 '모모타로 전설의 발상지 오카야마'라는 이름으로 문화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관련 지역으로 인정받아 일본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53] 오카야마를 발상지로 하는 주장의 3대 근거는 키비단고(吉備団子), 복숭아, 그리고 기비쓰히코노미코토의 온라(温羅) 토벌 전설이라고 한다.
다음은 모모타로와 관련된 장소를 나타내는 표이다.
3. 1. 문학적 발전
이 이야기의 구전 형태는 무로마치 시대(1392~1573)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에도 시대(1603~1867)가 되어서야 비로소 기록되었을 수 있다.[1]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모모타로 이야기는 겐로쿠 시대(1688~1704) 또는 그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2]겐로쿠 시대경의 옛 이야기책들(예: 『모모타로 무카시가타리』(桃太郎昔話))은 분실되었지만,[3] 재본인 『사이한 모모타로 무카시가타리』(再板桃太郎昔話)(약 1777년[4])과 같은 후대의 자료들이 옛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小池藤五郎|코이케 토고로일본어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가장 원시적인) 유형의 이야기책들에 속한다.[5] 재본의 늦은 출판 시기 때문에 때때로 기뵤시(주로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함) 또는 후기 유형의 쿠사조시(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더 많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함)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아카혼("적색 책") 또는 초기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6]
코이케는 후대의 것으로 간주한 두 번째 유형의 이야기책에는 교호 8년(1723년)에 인쇄된 소형 아카혼, もゝ太郎|모모타로일본어가 포함된다.[7] 이 소형 책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모모타로 이야기 책으로 간주된다.[8] 에도 시대의 이야기책들은 첫 번째 유형이든 두 번째 유형이든 일반적으로 현대 표준 버전과 같은 줄거리를 따르지만 세부 사항에서 특정한 차이점을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가들이 주인공 모모타로를 점점 더 어리게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주관적인 추정에 따르면, 모모타로는 약 1735년까지는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약 1800년까지는 25세 전후로 보였으며, 1867년 에도 시대 말까지는 20세 전후로 묘사되었다.[9]
모든 텍스트에서 나이가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가모 노리키요(1798~1861)의 雛迺宇計木|히나노 우케기일본어판에서는 모모타로가 원정을 떠날 당시 15세 6개월이었다고 한다.[10] 그리고 '모모타로 타카라노 쿠라이리'(약 1830~40년)에서는 모모타로의 나이가 16세였다.[11] 이와야 사자나미의 1894년 판에서도 모모타로는 악마섬으로 가기로 결심했을 때 비슷한 나이(15세)였다.[12]
나메카와 미치오 연구자 또한 모모타로가 점점 더 어리게 묘사되는 경향을 주목했고, 이 현상을 低年齢化傾向|테이넨레이카 케이코|"나이 감소 경향"일본어라고 불렀다.[13]
일본이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메이지 시대에 들어선 후, 巌谷小波|이와야 사자나미일본어는 모모타로 이야기가 어떻게 형성되고 일본 국민들에게 친숙해지는 데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사자나미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민담집에 모모타로 이야기를 수록했으며, 교과서에 실린 모모타로 이야기에도 크게 기여했다.
모모타로 이야기는 1887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처음 수록되었다.[14] 이후 초판 국어 독본 国語読本|코쿠고 토쿠혼일본어에서는 제외되었지만, 2판부터 5판까지 다시 수록되었다.[15] 일반적으로 1910년 2판 국어 독본은 1906년 문부성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된 그림책 작가 이와야 사자나미가 사실상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16]
이와야는 이미 자신의 '일본 민화'(일본 민담)에 모모타로 이야기(1894년)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모모타로는 대일본(다이니혼)의 군인 또는 지휘관(쇼군)으로 묘사되며, 북동부에 사는 오니들을 진압하기 위한 응징 작전에 파견된다.[17] 이전의 글들은 오니를 처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오니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야의 버전에서는 오니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일본 천황의 땅에서 "약탈"을 한 악한 존재로 명시적으로 언급되어(오자키 에이요도라 번역[18]), 모모타로의 원정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19] 이 이야기가 1895년 청일 전쟁이 발발한 해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 오니들은 청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20]
이야기로서의 성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원형(구전문학)의 발생은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서 에도 시대 초기경으로 여겨진다.[21] 이후, 에도 시대의 가소쌍지 적본, 이후 콩본이나 황표지 판의 『모모타로』, 『모모타로 옛이야기』 등의 출판에 의해 널리 퍼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적소본 『모모타로』(1723년 간행)로 여겨지지만,[22] 과거 연구되었던 원전에는 이보다 오래된 간에이 이전의 『모모타로 이야기』, 겐로쿠 무렵의 『모모타로 옛이야기』 등도 현존했었다.[23]
많은 에도 시대 원전을 수집·필사·비교 연구한 小池藤五郎|코이케 토고로일본어는 가장 오래된 여러 판본을 “제1계통본”(『桃太郎昔語』등[24])으로 규정했다. 제1계통본에서는 등장인물이 “토우단고(とう団子)”를 만들고 있으며, 거기에서 파생된 제2계통본(앞서 언급한 쿄호 간행 『もゝ太郎』등)이 되면서 이것이 “일본 제일의 기비단고(きびだんご)”로 변했다고 논하고 있다. 다른 차이점으로는 할아버지가 풀을 베러 가는지, 칡을 베러 가는지의 차이를 들고 있다. 여기에는 曲亭馬琴|쿄쿠테이 바킨일본어의 燕石雑志|엔세키잣시일본어 (1811년)와 즈이쵸엔사이슈(瑞鳥園齋守) 즉 賀茂規清|카모 노리키요일본어(1798-1861) 저 雛迺宇計木(히나노우케기)|히나노우케기일본어 등 많은 자료가 포함된다.[25]
바킨의 『동몽화적본사시(童蒙話赤本事始)』에서는 “모모타로”가 5대 옛이야기의 서두를 장식한다.[26] 코이케는 慈雲院命鑑玖誉의 『太郎物語』(1600년)을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으며,[27] 거기 있는 것과 같은 부부가 신불의 도움으로 아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오래된 원형이며, 다음으로 부부가 젊어져서 아이를 낳은 형태("회춘형"), 마지막으로 "복숭아에서 태어난 모모타로"("과생형")가 등장했다고 주장했다.[28]
근년의 연구에서는 "회춘형"이 "과생형"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의견도[29] 있지만, 동조하기에는 신중한 의견도 들을 수 있다.[30] 島津久基|시마즈 히사모토일본어는 "복숭아에서 태어난 모모타로"가 더 오래된 형태라고 주장하며, 코이케와 시마즈는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31] 다이쇼 말 무렵에는 기비 신궁의 건축 장식이 과실형 이야기의 초기 성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되었지만,[32] 코이케는 모모타로를 본뜬 작품이라는 증거가 없고, 신궁에서 모시는 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설이 옳다고 보았다(기비신궁에 자세히 설명).[33]
어디까지나 문헌 자료(草双紙)만으로 볼 때, "복숭아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보다 새로운 계통의 바킨 작 『엔세키잣시』(1811년)나 『동화장편』(1830년) 등의 작품에 나타난다고 한다.[34] 참고로, 式亭三馬|시키테이 산바일본어 작 『적본재흥모모타로』(1812년)에서는 복숭아가 두 개 떠내려와, 하나를 먹은 노부부는 젊어지고, 또 하나에서 모모타로가 태어나는데, 이것은 이 이본의 특징이다.[35]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에도 시대의 문헌(草双紙 등)에서는 복숭아를 먹고 젊어진 부부가 아이를 낳는 "회춘형" 모모타로가 주류였다. 예를 들어 적본 『모모타로옛이야기』(간행년 불명)에는, 젊어진 노파가 모모타로를 출산하는 삽화가 있다.[36] 메이지 시대가 가까워짐에 따라 복숭아에서 태어난 "과생형" 모모타로가 더 많이 보이게 되었다.[37]
1887년(메이지 20년)에 국정 교과서(『尋常小学読本』 제1권)에 채택될 당시 거의 현재의 "표준형" 줄거리의 모모타로 이야기가 실렸다.[38] 그러나 1904년 제1기 『尋常小学読本|신죠쇼가쿠토쿠혼일본어』에서는 모모타로가 일단 교재에서 제외되었다. 1910년 제2기 『尋常小学読本|신죠쇼가쿠토쿠혼일본어』에서 부활했지만, 이 무렵 동화 작가 岩谷小波|이와야 코하일본어가 문부성 촉탁이 되어 모모타로 집필에 크게 관여(사실상 집필자)했다고 여겨진다.[39] 코하는 1894년(메이지 27년)에 『일본 옛이야기』로 정리했는데, 이것도 그 후의 전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모모타로의 모습이 일장기 머리띠에 진바오리, 깃발을 든 모습이 된 것은 메이지 시대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전투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고, 동물들도 동행일 뿐 상하 관계는 없었다. 메이지의 국가 체제에 따라 주변국을 따른 용맹한 대일본제국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40]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 모모타로는 많은 국어 교과서를 비롯해 동요와 그림 교재 등으로 일본 국내에서 널리 이용되었다.[41]
그 후에도 이야기와 그림 모두 다양한 판본이 나왔고, 다른 창작물에도 매우 많이 각색되거나 수용되었다. 라쿠고의 桃太郎 (落語)|모모타로 (라쿠고)일본어도 그 한 예이다.
3. 2. 지역적 연고
모모타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모타로가 바구니, 하얀 복숭아, 또는 빨간 복숭아 안에 담겨 떠내려 왔다고 한다. 시코쿠와 주고쿠 지역에서는 원숭이와 게의 싸움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섞여, 모모타로가 벌, 게, 맷돌, 밤, 쇠똥과 함께 오니가시마로 가기도 한다.[78] 이러한 동물과 사물들은 오랫동안 영혼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졌다.빨간 상자와 흰 상자가 강을 따라 떠내려오는 유형, 빨간 상자와 검은 상자 유형, 상자 안에 복숭아가 들어 있는 유형 등은 일본 북부 지역(도호쿠 지방과 호쿠리쿠 지방)에서 주로 발견된다.
모모타로가 三年寝太郎|산넨 네타로일본어 ("잠꾸러기 소년") 이야기의 게으른 주인공처럼 묘사되는 유형도 있는데, 주로 시코쿠와 츄고쿠 지방에서 수집되었다.[16]
모모타로의 성장 과정도 다양한데, 훌륭한 소년으로 자라는 버전과 강하지만 게으른 사람으로 자라는 버전이 있다. 오늘날 모모타로는 친절함, 용감함, 힘, 부모에 대한 애정으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이며,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이상적인 모범으로 여겨진다.
모모타로는 오카야마현 또는 오카야마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연관성은 근대에 들어서야 생겨났다.[17] 난바 킨노스케(難波金之助)의 책 「모모타로의 실상(桃太郎の事実)」(1930년)이 출판되면서 오카야마가 모모타로의 기원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1941~1945) 이전에는 오카야마가 모모타로의 고향으로 알려진 다른 두 지역에 이어 세 번째 후보로 여겨졌다.
이야기 속의 오니가시마(鬼ヶ島)는 세토 내해의 다카마쓰 근처에 있는 메기지마 섬과 종종 연관된다.[18][19]
아이치현 이누야마에는 이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 桃太郎神社 (犬山市)|모모타로 신사일본어가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작사가 노구치 우죠(野口雨情)는 모모타로 전설을 암시하는 세 개의 "민요"를 이 지역을 위해 작곡했다.
모모타로와 관련된 장소는 전국에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오카야마현이 가장 유력한 지역으로 여겨지며,[52]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카야마현만이 '모모타로 전설의 발상지 오카야마'라는 이름으로 문화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관련 지역으로 인정받아 일본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53]
오카야마현은 작품 속의 '키비단고(きび団子)'와 발음이 같은 에도 시대의 현지 특산품 '키비단고(吉備団子)'를 연관시키는 등, 전현을 들여 유래지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현재는 모모타로 상 등도 존재한다. 오카야마를 발상지로 하는 주장의 3대 근거는 키비단고(吉備団子), 복숭아, 그리고 기비쓰히코노미코토의 온라(温羅) 토벌 전설이라고 한다.
'기비단고(きび団子)'가 '키비단고(黍団子)'와 통하는 것으로부터, 모모타로는 '기비국(吉備国)'(현재의 오카야마현)과 관련이 있다는 논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오래된 계통의 책에서는 '토단고(とう団子)' 등인 것이 지적되고 있으며 본래 그러한 관련성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상품으로 널리 알려진 키비단고(吉備団子)는 키비단고(きび団子)를 본떠 에도 말기에 판매된 것이다.
오카야마현 유래설로서, 제7대 고레이 천황의 황자 기비쓰히코노미코토의 온라(温羅) 토벌 전설에서 모모타로 설화의 원형을 찾는 설이 있다. 오카야마시의 기비쓰 신사의 연기물 등(옛날에는 16세기 말의 문헌)에 기록되는 전설이지만, 시대 설정은 제11대 스이닌 천황의 시대이며, 온라의 거성은 비추국(備中国) 오니노조로 되어 있으므로 모모타로가 토벌한 귀신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것은 학계가 아니라 민간의 설이며, 현지 오카야마시의 난바 키노스케(難波金之助)라는 조각가가 쇼와 초기(昭和初期)에 제창한 것을 시초로 한다.
고대 기비(吉備)는 야마토에 필적하는 세력을 자랑했다. 자주 야마토와 대항하여 굴복한 것이 '일본서기'와 '고사기'에서 알 수 있으며, 기비쓰히코노미코토와 온라의 싸움은 실은 야마토와 기비의 대립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기비쓰 신사 연기물에 따르면, 기비쓰히코노미코토는 이누카이타케루노미코토라는 부하가 있었다.
오카야마현의 지스이가와(血吸川)(사사가세가와의 지류)도 모모타로의 복숭아가 흘러내린 강, 또는 모모타로와의 싸움에서 부상당한 귀신의 피가 흘러내린 강이라고 온라 전설에 전해진다.
히코이사세리히코노미코토(기비쓰히코)의 고향인 나라현 시키군 타나하라마치에서는 모모타로 탄생의 땅으로서 구로다안토궁(로토궁(廬戸宮))을 관광 PR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다음은 모모타로 정상회담이나 일본 모모타로 회 연합회에 참가하는 자치단체와 그 관련 장소이다.
4. 현대적 의의 및 해석
모모타로는 오카야마현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연관성은 근대에 들어서야 생겨났다.[17] 예를 들어, 난바 킨노스케(難波金之助)의 저서 「모모타로의 실상(桃太郎の事実)」(1930년) 출판을 통해 모모타로의 기원이 오카야마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오카야마는 모모타로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다른 두 지역에 이어 세 번째 후보지로 간주되었다.[17]
이야기 속 오니가시마(鬼ヶ島)는 세토 내해의 메기지마 섬과 관련 짓기도 한다.[18][19] 아이치현 이누야마시에는 모모타로 신사가 있으며, 1920~30년대에 작사가 노구치 우죠는 이 지역을 위해 모모타로 전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영어로 번역되었다. "The Adventures of Little Peachling"은 1871년 A. B. 미트퍼드(A.B. Mitford)의 ''Tales of Old Japan''에 수록되었다.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는 1880년에 한 버전을 출판했는데, 후대의 영어 번역들이 그리피스의 어구와 관용구를 차용하고, 때로는 아예 그대로 베끼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pson) 목사의 번역본인 "Little Peachling"은 1885년 하세가와 타케지로(長谷川武次郎)의 ''일본 동화(Japanese Fairy Tale)''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 출판되었다. 1886년에는 고바야시 에이타쿠가 그림을 그린 다른 그림들을 사용한 두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
요이 테오도라 오자키는 자신의 ''일본 동화(Japanese Fairy Tales)''(1903)에 느슨하게 번역된 버전을 포함시켰다. 오자키의 재구성은 "사다나미 산진"(Sadanami sanjin)(즉, 巌谷小波|이와야 사자나미일본어)의 버전을 바탕으로 했다.[20]
청일 전쟁(1894-1895) 때부터 모모타로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서 적대국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와야 사자나미는 오니를 청나라를 가리키는 은유로 사용했다. 러일 전쟁 기간에는 러시아의 "북방 악마"를 오니로 묘사하고, 모모타로가 일본을 방어하는 만화 그림이 배포되었다.[2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모모타로는 일본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었으며, 많은 전시 영화와 만화에 등장했다. 모모타로는 일본 정부를, 연합국은 오니로 상징되었다.[25]
4. 1. 문화적 상징
모모타로는 메이지 시대에 교과서에 실리면서 이야기의 표준 유형이 정립되고 대중화되었다.[1] 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다양한 판본 중에는 모모타로가 복숭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복숭아를 먹고 젊어진 노부부에게서 태어났다는 '회춘형' 이야기도 있었다.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와야 사자나미는 모모타로 이야기를 자신의 민담집에 수록하고 교과서에 싣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87년, 모모타로 이야기는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처음 수록되었다.[9]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며 내용이 수정되었는데, 특히 이와야 사자나미는 모모타로를 일본 제국의 군인 또는 쇼군으로 묘사하고, 오니를 청나라를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하기도 했다.[10]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모모타로"는 국정 초등학교 교과서 제1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야기였다. 교사들은 모모타로 이야기가 자기 주장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인식했다.[12] 그러나 야마모토 유조와 같은 소설가는 오니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처벌받는다는 점을 비판하며, "외국인을 오니로 생각하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의했다.[13]
쇼와 시대 초기, 히로히토 천황 즉위 후에도 모모타로는 애국심 고취를 위해 교과서에 계속 사용되었다. 제4차 개정판(1933~1938)에서는 오니들이 스스로 보물을 내놓는 것으로 수정되어, 모모타로가 정당한 이유 없이 오니를 공격했다는 비난을 해결하고자 했다.[14]
존 W. 도워는 모모타로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전시 선전에 활용되었으며, 미국과 그 동맹국을 오니로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분석했다. 모모타로는 전쟁 이후 일본 교과서에서 사라졌다.[15]
오늘날 모모타로는 오카야마현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연관성은 근대에 들어서 형성된 것이다.[17] 이야기 속 오니가시마(鬼ヶ島)는 세토 내해의 메기지마 섬과 연관되기도 한다.[18][19] 아이치현 이누야마시에는 모모타로 신사가 있으며, 1920~30년대에 작사가 노구치 우죠는 이 지역을 위해 모모타로 전설을 암시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모모타로에 관한 인기 어린이 노래 ''모모타로상 노 우타''(모모타로의 노래)는 1911년에 처음 발표되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모모타로상 노 우타" | 桃太郎さんの歌일본어 | "모모타로의 노래" |
---|---|---|
모모타로상, 모모타로상 | 桃太郎さん、桃太郎さん일본어 | 모모타로, 모모타로 |
오코시니 츠케타 키비단고 | お腰につけたきびだんご일본어 | 허리에 찬 기장떡 |
히토츠 와타시니 쿠다사이나? | 一つ私に下さいな!일본어 | 하나 주시겠어요? |
야리마쇼, 야리마쇼 | やりましょう、やりましょう일본어 | 드릴게요, 드릴게요 |
코레카라 오니노 세이바츠니 | これから鬼の征伐に일본어 | 이제 오니를 토벌하는 여정에 |
츠이테 이쿠나라 야리마쇼! | ついて行くならやりましょう일본어 | 같이 간다면 드릴게요 |
청일 전쟁(1894-1895) 때부터 모모타로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서 적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와야 사자나미는 오니를 청나라를 가리키는 은유로 사용했다. 러일 전쟁 기간에는 러시아의 "북방 악마"를 오니로 묘사하고, 모모타로가 일본을 방어하는 만화 그림이 배포되었다.[2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모모타로는 일본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었으며, 많은 전시 영화와 만화에 등장했다. 모모타로는 일본 정부를, 연합국은 오니로 상징되었다.[25]
풍수 사상에 따르면, 오니는 북동쪽 “귀문(鬼門)”에서 온다고 여겨지며, 모모타로는 “이귀문(裏鬼門)”에 위치하는 동물들(원숭이, 닭, 개)을 거느리고 오니에 대항했다는 해석도 있다.
4. 2. 비판적 시각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와야 사자나미는 모모타로 이야기가 일본 국민들에게 친숙해지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자나미는 자신의 민담집에 모모타로 이야기를 수록하고,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에도 크게 기여했다.[9]모모타로 이야기는 1887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처음 수록되었다. 이후 2판부터 5판까지 다시 수록되었는데, 1910년 2판 국어 독본은 이와야 사자나미가 사실상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9]
이와야는 이미 자신의 ''일본 민화''(일본 민담)에 모모타로 이야기(1894년)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모모타로는 대일본의 군인 또는 지휘관(쇼군)으로 묘사되며, 북동부에 사는 오니들을 진압하기 위한 응징 작전에 파견된다.[10] 이전에는 오니를 처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와야의 버전에서는 오니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일본 천황의 땅에서 "약탈"을 한 악한 존재로 명시되어 모모타로의 원정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10] 이 이야기가 1895년 청일 전쟁이 발발한 해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 오니들은 청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11]
1917년, 교사들은 모모타로 이야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어, 자기 주장과 국가의 물질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밝혔다.[12] 소설가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 1925)는 오니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처벌받고 있으며, "외국인을 오니로 생각하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13]
쇼와 초기, 히로히토(裕仁) 천황이 즉위한 후에도 모모타로는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계속 사용되었다. 제4차 개정판(1933~1938)의 "모모타로"는 오니들이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물건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스스로 보물을 내놓는 것으로 수정되어, 모모타로가 정당한 이유 없이 오니를 공격했다는 비난을 해결했다.[14]
존 W. 도워(John W. Dower)는 그의 저서 "무자비한 전쟁(War Without Mercy)"(1986)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전시 선전에서 모모타로가 사용된 것에 대해 논의하면서 "모모타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5]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서 적대국과 싸우는 모모타로의 묘사는 청일 전쟁(1894-1895) 때부터 등장했다.[24] 이와야 사자나미는 1894년 모모타로 이야기를 수정하여 오니가 일본 북동쪽에 산다고 묘사했는데, 당시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는 청나라를 가리키는 은유였다.[24]
러일 전쟁 기간 동안 러시아의 "북방 악마"를 나타내는 오니에 맞서 일본을 방어하는 모모타로를 묘사한 만화 그림이 배포되었다.[24]
모모타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었으며, 많은 전시 영화와 만화에 등장했다.[25] 모모타로는 일본 정부를 대표했고, 적국은 오니로 상징되었다.[25]
후쿠자와 유키치는 자신의 자녀에게 매일 건네주던 가훈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귀신을 벌하는 모모타로는 옳지만, 귀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강탈한 모모타로는 “극악무도하다”고 비난했다.
현대에도 “사실은 오니가시마에 쳐들어간 모모타로 일행이 악당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법정 등에서 이루어지는 모의 재판의 사례나 토론의 의제로 채택되는 경우가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비롯한 여러 저명한 소설가들도 모모타로를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30]
전전에는 군국주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용기의 비유로 이야기되었다. 이 경우 모모타로는 적국이라는 귀신을 토벌하는 아이로서 슬로건에 이용되었고, 많은 선전 작품에 등장했다. 모모타로는 자주 국민의 모범으로 묘사되어 왔다.[28]
다자이 오사무는 전쟁 중에 집필한 『오토기조시』에서 모모타로를 다시 만들 생각이었지만, 완벽하게 강한 모모타로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여 집필을 단념했다고 적고 있다.[60]
4. 3. 다양한 해석
모모타로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회춘형 vs 과생형: 에도 시대에는 복숭아를 먹고 젊어진 노부부에게서 모모타로가 태어났다는 '회춘형' 이야기가 많았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복숭아에서 태어난 '과생형'이 일반적인 유형이 되었다.[1]
- 복숭아의 상징성: 복숭아는 서왕모 전설이나 일본 신화의 이자나기 이야기처럼, 나쁜 기운을 쫓고 불로불사의 힘을 주는 영약으로 여겨졌다. 오쿠다 쓰기오는 복숭아가 희귀하고, 향기, 맛, 약효, 꽃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여성의 성기를 닮아 악귀를 물리치는 힘을 가진다고 해석했다.[57] 니시오카 히데오 등도 이러한 복숭아와 여성 생식기의 연관성을 연구했다.[58]
- 여성 상징: 복숭아 자체가 여성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할머니가 주운 것은 큰 복숭아가 아니라 젊은 여성이었고, 할머니는 이 여성에게서 아이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 중국 전승: 다테이시 텐타이는 중국에도 조핵아와 비슷한 전승이 있다고 언급했다.[59]
- 풍수 사상: 오니(鬼)는 풍수에서 북동쪽 '귀문(鬼門)'에서 온다고 여겨지며, 오니가 소뿔과 호랑이 가죽을 두른 것도 풍수 사상에 따른 해석이다. 모모타로가 원숭이, 닭, 개를 거느린 것은 '귀문'에 대항하는 '이귀문(裏鬼門)'의 동물들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곡정마금(曲亭馬琴) ).
- 청일전쟁 비유: 이와야 사자나미의 『일본옛이야기』판 “모모타로”(1894년)에는 오니가시마(鬼ヶ島)가 일본의 동북쪽에 있다는 설명이 있는데, 이는 청일전쟁 발발과 겹쳐 모모타로를 일본군, 오니를 청나라로 비유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고유 신앙: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는 모모타로 이야기를 잇슨보시, 우리코히메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탄생·성장을 하는 "작은 아이" 이야기의 하나로 분석하고, 이계의 존재와 물가의 관련성을 통해 스쿠나히코나 신화와 연결지었다.
- 영웅 신화: 비정상적인 출생을 한 신의 자식이 공동체에서 배제되면서도 이국으로 향하는 "영웅 신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30] 야나기타 구니오는 고대 로마의 미트라교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고 언급했다.
- 문화인류학적 관점: 이시다 에이이치로는 모모타로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보고, "수계의 작은 아이"와 "수계의 모자 신"의 존재를 연결하여 남쪽 섬들과 태평양 주변 민족들의 전설을 연구했다. 도요타마히메형 전승이나 뇨고섬형 설화 등 유라시아 대륙, 구석기 시대 문화와의 관련성을 찾고, 원시 모신과 그 자식 신과 관련된 영묘한 아이의 비정상적 출생 이야기 신화를 상정했다.
- 신화학적 관점: 다카기 도시는 모모타로를 "영웅 전설적 동화"로 보고, 복숭아가 사기를 쫓는 영물이며 장생불로의 선과라고 해석했다.[30]
- 성년식: 세키 케이고는 오니가시마 정벌을 통과 의례인 성년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았다.[28]
- 후쿠자와 유키치: 후쿠자와 유키치는 모모타로가 오니의 보물을 강탈한 것은 "극악무도하다"고 비난했다.
- 모의 재판: 현대에는 모모타로 일행이 악당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모의 재판이나 토론의 의제로 채택되기도 한다.
- 문학적 소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자키 고요, 마사오카 시키, 기타하라 하쿠슈, 기쿠치 간 등 많은 소설가들이 모모타로를 소재로 작품을 썼다.[30]
- 국민적 영웅: 전전에는 군국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용기의 비유로 이야기되었고, 모모타로의 바다독수리,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 등 선전 작품에 등장했다. 다이쇼 시대의 아동중심주의에서는 동심의 아이, 프롤레타리아주의에서는 계급의 아이, 전시에는 효행, 정의, 인자, 상무, 명랑 등의 덕을 구현한 국민적 영웅, 전후에는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묘사되는 등, 모모타로는 자주 국민의 모범으로 묘사되었다.[28]
-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는 오토기조시에서 모모타로를 다시 쓰려 했으나, 완벽하게 강한 모모타로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집필을 단념했다.[60]
5. 모모타로 노래
桃太郎さんの歌|모모타로산 노 우타|모모타로씨의 노래일본어는 1911년 처음 출판된 동요이다.[23] 작사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작곡은 오카노 테이이치(岡野貞一)가 맡았다.
"모모타로산 노 우타" | 桃太郎さんの歌일본어 | "모모타로의 노래" |
---|---|---|
모모타로상, 모모타로상 | 桃太郎さん、桃太郎さん일본어 | 모모타로, 모모타로 |
오코시니 츠케타 키비단고 | お腰につけたきびだんご일본어 | 허리에 찬 기장떡 |
히토츠 와타시니 쿠다사이나? | 一つ私に下さいな!일본어 | 하나 주시겠어요? |
야리마쇼, 야리마쇼 | やりましょう、やりましょう일본어 | 드릴게요, 드릴게요 |
코레카라 오니노 세이바츠니 | これから鬼の征伐に일본어 | 이제 오니를 토벌하는 여정에 |
츠이테 이쿠나라 야리마쇼! | ついて行くならやりましょう일본어 | 같이 간다면 드릴게요 |
이 노래는 문부성가요 중 하나이며, 1911년 『尋常소학교가요』에 등장했다.[39]
가사의 후반부는 잔혹성이 거론되어 삭제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와 비슷한 동요로 테루테루보즈가 있다.[40][41]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타나베 토모사부로 작사, 노쇼 벤지로 작곡의 「모모타로」도 있으며, 1900년 『유년창가』에 등장했다.[3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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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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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鬼むかし 昔話の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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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ェブサイト
駅長のおすすめ情報 大月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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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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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鬼むかし 昔話の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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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馬氏系図家譜正統』の記録「年数久遠而勉職位階生卒不詳」を考える ~「仲宗根豊見親 目黒盛五代の孫」への問題提起と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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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ェブサイト
台灣影城之桃太郎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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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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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屏東後堆客家民間故事
[51]
書籍
台湾桃竹苗地区民間故事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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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太郎伝説」の生まれたまち おかやま 〜古代吉備の遺産が誘う鬼退治の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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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uide.trave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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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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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カラー沖縄の民話と伝説
月刊沖縄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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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こかで鬼の話
人文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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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における性神の史的研究
[59]
論文
口承三国志の研究 関索と鮑三娘を例と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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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ジタルテキスト
お伽草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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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ジタルテキスト
鬼桃太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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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よちよち文藝部
文藝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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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HBOY(桃太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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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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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えば遠く~モモタロー・ノー・リターン誕生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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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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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HUMANITY THE MUSICAL ~モモタロウと愉快な仲間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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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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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ウイフルーツから桃太郎!?親子で楽しめるエクストリーム絵本 「ありえない日本昔話“桃?太郎”」公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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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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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ァッションリーダーにレスラー風の桃太郎!? 『ありえない日本昔話“桃?太郎”』web公開開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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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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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浅葱「桃太郎伝記 〜我武者羅〜」MV Full 公開!!!(英訳入り Youtube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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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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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ジタルアーカイブ
桃太郎元服姿 2巻 古典籍資料 市場通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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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ャキーン! - キッズワールド NHK Eテレ こどもポータ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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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ャキーン! - キッズワールド NHK Eテレ こどもポータ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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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曜日のカンパネラ、“桃太郎”のミュージック・ビデオを公開
https://rockinon.com[...]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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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曜日のカンパネラ、ツアー、ワンマンに向けてMV「桃太郎」を遂に解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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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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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参院選】素朴なぎもん「桃太郎」ってなに?実は常識ひっくり返した新戦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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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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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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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i-ga-shima(or Megi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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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ijima & Ogi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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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太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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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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