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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해군 공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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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1801년 존 애덤스 대통령의 해군 조선소 설립 계획에 따라 설립된 미국의 역사적인 조선소이다. 남북 전쟁 시기 대규모 확장을 거쳐 1966년 해체될 때까지 전함, 잠수함, 국기 등을 생산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민간 기업과 상업 활동 구역으로 재개발되었으며, 드라이 도크, 건물 92, 건물 77 등 주요 시설과 함께 국립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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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해군 공창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1918년에 촬영된 항공 사진
1918년에 촬영된 항공 사진
위치뉴욕 시브루클린
유형조선소
건설 시작1801년
사용 기간1806년–1966년
관할미국 해군
역사적 지정
등재2014년 5월 22일
면적91.11 헥타르
지리 정보

2. 역사

1801년 미국 연방 정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남북 전쟁 시기에는 약 6,000명을 고용하며 확장되었고, 미국 최초의 철갑함인 모니터 함의 장갑이 이곳에서 설치되었다. 1890년에는 미국-스페인 전쟁의 도화선이 된 메인 함이 진수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공창의 역할은 절정에 달해, 최대 70,000명이 근무했다. 이 시기 전함 노스캐롤라이나 함, 아이오와 함, 미주리 함 등 주요 함선들이 건조되었고, 수많은 함선의 수리와 개조가 이루어졌다. 전쟁 후인 1952년에는 항공모함 앤티텀 함이 이곳에서 경사 갑판(angled deck)을 갖춘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동안 선박 건조와 수리에 널리 사용된 석면으로 인해 퇴직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가 불거졌고, 관련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1966년 미국 해군은 공창 운영을 중단하고 부지를 뉴욕 시에 매각했다. 이후 민간 기업과 상업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되어,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 개발 공사(Brooklyn Navy Yard Development Corporation, BNYDC)가 관리 및 운영을 맡게 되었다. 현재는 20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하여 3,5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는 산업 단지로 운영되고 있으며, 2013년 11월 10일에는 레이디 가가의 앨범 발매 기념 행사가 열리는 등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376] 뉴욕 시 소유의 부두 3곳은 GMD Shipyard가 운영하며 선박 수리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 1. 부지

브루클린 해군 공창 부지는 원래 갯벌간석지였으며, 카나르시 인디언들이 정착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이 이 지역을 식민지화했고, 1637년 네덜란드 정착민 요리스 얀센 라펠리에는 현재의 월어바웃 만 주변의 136ha 토지를 인디언들로부터 매입했다.[3][4] 이 부지는 나중에 그의 농장이 되었지만, 라펠리에 자신은 약 1655년까지 이곳에 거주하지 않았다.[5] 라펠리에는 벨기에 출신의 왈론이었으며, 그의 농장 주변 지역은 "Waal-boght" 또는 "Waal-bocht"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대략 "왈론의 만"으로 번역되며, 여기서 월어바웃 만의 이름이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3][6] 라펠리에 가문과 그 후손들은 그 후 최소 1세기 동안 농장을 소유했으며, 주로 배수된 갯벌과 간석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1710년까지 부지에 맷돌과 연못을 건설했다.[3] 이 연못은 19세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4][8] 렘센 가문은 라펠리에의 마지막 후손으로서 농장을 소유했으며, 19세기 중반까지 인근 토지를 소유했다.[7]

미국 독립 전쟁 동안 영국군은 만에 정박한 감옥선에 미국 전쟁 포로들을 수용했다. 많은 포로들이 사망하여 인근 땅의 참호에 묻혔다.[7][8][9] 1783년까지 약 12,000명의 포로가 사망했다고 하며, 그해 나머지 포로들이 풀려났다. 인근 포트 그린에 있는 감옥선 순교자 기념비는 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10][11] 1781년, 조선업자 존 잭슨과 그의 형제 두 명이 라펠리에 가문의 부동산을 나누어 소유했다. 잭슨은 월어바웃 지역을 건설하고, 부지에 조선 시설을 설립했다.[12][13] 잭슨이 이 부지에서 처음 건조한 배는 1790년대 후반에 건조한 상선 ''캔턴''이었다.[13][19][14]

2. 2. 설립과 초기

1800년 잭슨 가문이 소유 부지를 매물로 내놓자, 미국 연방 정부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13] 1801년 2월 7일, 연방 정부는 중개인 프랜시스 차일즈를 통해 존 잭슨으로부터 낡은 부두와 40acre의 토지를 4만달러에 매입했다.[13][15][16][17] 차일즈는 16일 뒤 이 부지를 연방 정부에 넘겼다.[12] 이는 당시 대통령 존 애덤스가 미국 내 해군 조선소들을 설립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13] 이 부지는 로어 맨해튼과 뉴욕 항에 가까워 군사 방어 시설 설치에 이상적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 방어 시설이 들어서지는 않았다.[18]

애덤스의 후임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군사력 증강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 부지는 수년간 활용되지 못했다.[19]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1806년 초대 사령관 조나단 손이 부임하면서 미국 해군의 활발한 조선소로 운영되기 시작했다.[13][20][21] 공창이 완전히 개발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으며, 초기 개발은 주로 현재 공창 부지의 서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22] 비슷한 시기에 A 구역으로 알려진 연방 양식의 사령관 주택이 공창 북서쪽 모퉁이에 건설되었다.[23][24] 1810년, 연방 정부는 뉴욕 주로부터 추가로 131acre의 토지를 매입했다.[16][25] 이 토지의 상당 부분은 만조 시 물에 잠기는 지역이었다.[25] 1812년 전쟁 동안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100척 이상의 선박을 수리하고 개조했지만, 아직 선박 건조에는 사용되지 않았다.[25][26][134]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최초의 전열함은 헨리 엑포드가 설계한 목조 선박인 ''USS 오하이오''였다. 이 배는 1817년에 기공되어 1820년 5월 30일에 진수되었다.[27][28][134] 해군 신병을 수용하는 수용선으로 사용된 첫 번째 배는 로버트 풀턴의 증기 프리깃 ''USS 풀턴''이었다. ''풀턴'' 함은 원래 ''데모로고스''라는 이름으로 뉴욕 항 방어를 위한 부유 포대로 설계되었으나, 증기선이 이 목적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자 풀턴이 1815년 사망한 후 ''풀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8] 이후 ''풀턴'' 함은 해군 공창 해안가에 정박하여 수용선으로 사용되다가 1829년 6월 4일 폭발로 파괴되었다.[9][29]

1820년대까지 해군 공창에는 사령관의 집, 해병대 막사 건물, 여러 개의 작은 건물, 그리고 공창 북서쪽 모퉁이의 선박 창고 등이 있었다. 이 중 사령관의 집만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이다.[30] 1824년 해군은 사라 쉥크로부터 약 25acre 또는 33acre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여 브루클린 해군 병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31][30][32] 같은 해, 공창은 "일등" 공창으로 격상되었다.[33][30] 병원은 1838년에 문을 열었다.[287]

해군 공창은 지역 사회에도 기여했다. 1835년 12월 16일 뉴욕 대화재 당시, 공창 소속 미국 해병대와 수병들이 화재 진압을 도왔다. 이들은 현재 금융 지구의 많은 부분을 삼킨 화재의 확산을 막기 위해 건물을 폭파하여 방화선을 구축했다. ''롱아일랜드 스타''지는 "레이놀즈 중위 휘하의 해군 공창 해병대와 믹스 대위 휘하의 수병들이 가장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34] 마찬가지로, 1845년 7월 19일 로어 맨해튼에서 발생한 또 다른 대화재 때에도 "허드슨 대위 휘하의 해군 공창 수병과 해병대 파견대가 현장에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신병 수용선으로 쓰이던 USS 노스 캐롤라이나도 해안 경비를 위해 수병들을 보트로 파견했다."[35] 해군 공창은 또한 건물 폭파와 방화선 구축에 필요한 자재를 지원했다.[36]

매튜 C. 페리 제독은 1831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 부임했으며, 1841년부터 1843년까지 사령관으로 재임했다.[293] 페리는 1833년 공창 내에 미국 해군 리세움 설립을 도왔다.[293][37] 초대 회장은 찰스 G. 리지리였다.[37] 리세움은 벽돌 건물에 자리 잡고 여러 잡지를 발행하며 전 세계의 문서 박물관을 운영했다. 회원으로는 초급 장교, 중위, 사관 생도 및 여러 미국 대통령이 포함되었다.[37] 리세움은 1889년 해산되었고, 소장 문서와 유물은 메릴랜드의 미국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37] 건물은 철거되었다.[293] 또한, 페리는 1837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미국 해군 최초의 증기 군함 ''풀턴 II''의 건조를 감독했으며, 나중에 초대 함장이 되었다.[38][293] 페리는 드라이 도크 A의 건설에도 참여했지만, 1843년에 브루클린 해군 공창 사령관직을 사임했다.[293]

10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1835년 3월 26일자 브루클린 해군 공창 기술자들의 서명된 청원서, "해군 부대 작업의 하루 노동 시간이 10시간을 넘지 않도록" 요청한다.

2. 3. 19세기 중반과 남북 전쟁

공창 최북단의 월어바웃 수로


1860년, 미국 남북 전쟁 직전에 많은 유럽 이민자들이 브루클린으로 이주하면서 브루클린은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1898년까지 뉴욕 시의 일부는 아니었다).[298]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해군 공창은 24시간 교대로 일하는 숙련된 기술자 수천 명을 고용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1861년 전쟁이 시작될 때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는 3,700명의 노동자가 있었고, 1863년 1월에는 3,933명으로 늘어났으며,[47] 1865년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6,200명까지 증가했다.[48][49]

남북 전쟁 기간 동안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북군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4척의 대형 선박을 직접 건조했으며, 남부 연합 해군에 대한 해상 봉쇄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416척의 상선을 군함으로 개조했다. 이 중 몬티첼로 함은 단 24시간 만에 개조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49][134] 1861년 4월 링컨 대통령의 "75,000 자원병" 모집 선언 이후 3개월 동안, 해군 공창은 선박에 무기를 탑재하거나 기존 무기를 개조하는 작업으로 매우 분주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몇 주 동안 노동자들은 밤낮없이, 심지어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보도했다.[50] 남북 전쟁을 위해 해군 공창에서 특별히 건조된 첫 번째 선박은 1861년 11월 20일에 진수된 스크류 증기 슬루프 오나이다 함이었다.[49] 이 배는 1862년 잭슨 요새와 세인트 필립 요새 해전, 1864년 모빌 만 해전 등 중요한 전투에 참전했다.[51] 또한, 그린포인트, 브루클린의 컨티넨탈 아이언 웍스에서 건조된 유명한 철갑함 모니터 함이 장갑을 장착하고 1862년 2월 25일 취역한 곳도 브루클린 해군 공창이었다.[49][52] 모니터 함은 그해 햄프턴 로드 해전에서 남부 연합의 버지니아 함(원래 메리맥 함)과 역사적인 해전을 벌였다.[49][53] 이 외에도 전쟁 기간 동안 애디론댁 함, 타이콘데로가 함, 섐록 함, 매키노 함, 피오리아 함, 툴라호마 함, 모미 함, 나이액 함, 왐파노아그 함, 미안토노모 함 등이 건조되었다.[49][29]

해군 공창은 북군의 해상 봉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남부 연합 지지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공창의 저장 시설에 불을 지르려는 음모를 꾸몄으나,[54][56] 북군 해군이 이를 사전에 감지하고 해군과 브루클린 시 경찰을 동원해 경계를 강화함으로써 실제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55][56]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 정박 중인 플로리다 함


1866년 남북 전쟁이 끝난 후,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고용 인원은 1,200명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지만, 전쟁 중에 시작된 선박 건조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57][62] 그러나 전쟁 기간 동안 조선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해군이 사용하던 기존 기술은 구식이 되었고, 해군 내 부패 문제 등 여러 어려움이 겹치면서 공창은 1866년부터 1872년까지 새로운 선박 건조를 시작하지 못했다.[58] 이 시기에는 1868년에 진수된 케노샤 함과 같이[59] 전쟁 전에 계획되었거나 건조 중이던 일부 선박만 완성되었다. 1870년대 초반부터는 목선보다 빠르고 조종이 쉬운 철제 증기선 건조가 시작되었고, 이를 위해 철판 작업장이 건설되었다.[60][58] 1876년에 진수된 트렌턴 함은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마지막 목조 범선이었다.[61][58] 19세기 후반에 조선소를 영구적으로 폐쇄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326]

한편, 연방 정부 소속이었던 해군 공창 노동자들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고용 보호 조치를 받았다. 1867년 법률은 해군 공창 직원의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보장했고, 1872년 법률은 노동자, 기계공, 작업자의 노동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제한했다.[58]

1880년대 말, 미국 해군이 함대 확장을 시작하면서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조선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더 큰 규모의 전함과 어뢰정, 잠수함 등이 건조되었으며, 이들 선박에는 현대적인 무기, 추진 시스템, 항법 장비, 장갑 등이 탑재되었다.[58] 새로운 대형 선박 건조를 위해 선대(shipway) 시설도 개선되었다. 1820년대부터 사용되던 목재 선대와 선박 건조소는 1880년대에 화강암 거더로 교체되어 더 튼튼해졌다.[63]

해군은 또한 두 개의 건조 독(dry dock)을 추가로 건설했지만, 두 시설 모두 곧 문제에 부딪혔다.[63][326] 원래 목재로 지어졌던 건조 독 2는 1887년에 완공되었으나 부실 시공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63][64] 결국 1899년 7월 심한 폭풍으로 붕괴되어[64][65] 1901년에 석조로 재건되었다.[63] 건조 독 2와 유사한 디자인의 목재 독이었던 건조 독 3은 1893년 착공하여 1897년에 완공되었으나,[63][66] 길이가 설계보다 짧고 깊이도 부족한 것으로 밝혀져 보수 공사를 거쳐야 했다.[326] 이 두 목재 건조 독은 40년 동안 단 한 번의 재건만 필요했던 기존의 석조 건조 독 1과 달리 막대한 유지 보수 비용을 발생시켰다.[67] 두 건조 독은 현재까지 남아있지만 사용되지는 않는다.[45] 늘어난 건조 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1890년대에는 대형 기계 공장, 행정 건물, 패턴(모형 제작) 건물 등 여러 부속 건물도 건설되었다.[63]

1914년 대통령기를 제작하는 쿼터우먼 메리 앤 우즈와 깃발 제작자들


이 시기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다른 미국 해군 조선소들에 비해 조선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69] 19세기 후반에 건조된 가장 주목할 만한 선박 중 하나는 새로운 선대인 빌딩 웨이 1에서 건조된 메인 함이다. 메인 함은 1888년에 기공되어 1895년에 진수되었으며, 1898년 쿠바의 아바나 항에서 의문의 폭발로 침몰하여 미국-스페인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68][29][63] 또한 1892년에 기공되어 1894년에 취역한 신시내티 함은 신시내티급 순양함의 첫 번째 함선이었다.[69]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는 대량의 국기, 해군기, 캔버스 화약 자루 등을 제작해야 했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하던 바느질 작업이었지만, 숙련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공창은 여성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1890년대 후반에는 새로 고용된 깃발 제작자 상당수가 여성이었으며, 이들 중 다수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었다. 깃발 제작자들은 하루 최대 14시간씩 일하며 선박 한 척당 30개에서 40개의 깃발을 만들어야 했다.[70] 이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인 메리 앤 우즈(Mary Ann Woods)는 1882년에 재봉사 깃발 제작자 1급으로 고용되어 1898년에는 "사령관 깃발 제작자(Quarterwoman)"로 승진하기도 했다.[72][73]

2. 4. 20세기 초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1898년 브루클린이 뉴욕 시에 편입된 후, 윌리엄스버그 브리지와 맨해튼 브리지 건설, 최초의 뉴욕 지하철 노선 개통 등 급속한 발전을 겪었다. 이 노선은 인터보로 래피드 트랜짓 컴퍼니(IRT)가 건설했다.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맨해튼 브리지와 가까워 맨해튼 주민들의 접근성이 향상되었고, 주로 엘리스 섬을 통해 막 도착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74] 이 시기 해군 공창을 뉴저지주 코뮤니파로 이전하거나 폐쇄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74][17]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승리 이후, 해군 차관보를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해군력 증강에 힘썼다.[74] 그는 16척의 함선으로 구성된 대백색함대의 세계 일주를 지시했으며,[76] 이 함대의 기함인 코네티컷급 전함 USS 코네티컷(BB-18)은 1903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기공되어 1904년 진수되었다.[75][76][77] '코네티컷'함 건조를 위해 1903년 빌딩 웨이 1이 재건되었고, 1917년에는 빌딩 웨이 1을 확장하면서 빌딩 웨이 2가 건설되었다. 이 두 선대(shipway)는 합쳐서 '코네티컷 빌딩 웨이'라고 불렸다.[76] 이 선대들은 대형 함포를 갖춘 신형 전함인 드레드노트급 함선 건조에 사용되었다.[76]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주요 함선 (20세기 초 ~ 제2차 세계 대전)
함선명함종기공진수취역/완공
USS 코네티컷(BB-18)전함1903년1904년-
USS 플로리다(BB-30)전함-1910년-
USS 뉴욕(BB-34)전함-1912년-
USS 애리조나(BB-39)전함-1915년-
USS 뉴멕시코(BB-40)전함-1917년-
USS 테네시(BB-43)전함-1919년-
USS 펜서콜라(CA-24)중순양함-1929년1930년
USS 뉴올리언스(CA-32)중순양함1931년--
USS 브루클린(CL-40)경순양함1935년--
USS 노스캐롤라이나(BB-55)전함1937년1940년1941년
USS 아이오와(BB-61)전함1939년-1942년
USS 미주리(BB-63)전함-1944년-
USS 베닝턴(CV-20)항공모함1942년--
USS 프랭클린 D. 루스벨트(CV-42)항공모함1944년--



이 시기 해안가 시설도 재건되었다. 길이 약 218.54m까지 수용 가능한 벽돌 및 콘크리트 구조의 드라이 도크 4가 1900년 계획되어 1905년부터 1913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건설 과정에서 연약 지반 문제로 노동자 20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부상당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83] 5개 민간 건설업체가 포기한 후 연방 정부가 직접 나서 완공했으며, 이 때문에 "후두(hoodoo, 불운을 가져오는 것)" 도크라는 별명이 붙었다.[83][84] 드라이 도크 4 건설과 함께 기존의 목재 드라이 도크 3을 길이 약 203.61m에서 약 243.84m로 확장하는 방안도 제안되었다.[85] 또한 급여 담당관실, 건설 및 수리 작업장/창고, 해군 공창 철도 시스템을 위한 기관차 차고 등도 건설되었다.[83] 1914년까지 해군 공창의 부지 면적은 114acre에 달했다.[33]

제1차 세계 대전이 1914년 발발했지만 미국은 1917년 4월 6일에야 참전했다. 미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전후하여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노동력은 1년 만에 6,000명에서 18,000명으로 급증했으며, 공창 부지 외부에 임시 캠프가 세워졌다. 전쟁 준비를 위해 사보타주 방지용 신분증이 발급되었고, 자유 채권 판매 집회가 열렸다.[86] 미국 해군 장관 조세퍼스 대니얼스는 더 많은 조선 활동을 위해 공창을 서쪽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87] 중요하지 않은 활동은 브루클린 선셋 파크의 부시 터미널로 이전되었다. 미국의 참전에 발맞춰 기관차 차고, 보급 창고, 보트 창고, 구조 작업장, 경공업 작업장, 부두 C, 기계 웨이 2 등 여러 건물이 새로 건설되었다. 이들 시설 대부분은 공창 내 철도 시스템을 통해 4개의 드라이 도크 및 2개의 선대와 연결되었다.[86] 1918년 말까지 미국 정부는 해군 공창에 총 4000만달러를 투자했다.[17]

SC-1급 잠수함 추적기가 1917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고 있다
1917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고 있는 SC-1급 잠수함 추적기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브루클린, 보스턴 해군 공창, 찰스턴 해군 조선소, 노퍽 해군 조선소, 포츠머스 해군 공창, 필라델피아 해군 공창 등 6개 해군 조선소는 각기 다른 유형의 선박 건조를 전문화했다.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SC-1급 잠수함 추적기 제작을 전문으로 하여 18개월 만에 49척을 생산했다.[88]

전쟁이 끝난 후, 1919년 USS 테네시(BB-43) 완공을 마지막으로 1929년 USS 펜서콜라(CA-24)가 완성될 때까지 10년 동안 새로운 함선 건조가 없었다.[93][134][88] 1920년,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인 '사우스다코타'와 '인디애나'의 건조가 시작되었으나,[331]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1921-1922) 체결로 전함, 순양전함, 항공모함 건조가 제한되면서 두 함선의 건조는 1922년 2월 중단되었고 결국 스크랩 처리되었다.[92][90][89][91] 이로 인해 1921년부터 대규모 해고가 시작되어 그해 12월까지 10,00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89] 의회가 다른 선박 건조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1929년까지 남은 노동자들은 주로 드라이 도크에서 선박 수리 업무를 담당했다.[92]

워싱턴 조약 이후 건조가 승인된 8척의 "조약 함선" 중 하나인 USS 펜서콜라(CA-24)는 1929년 4월 진수되었으며,[93][94] 이듬해에 완공되어 취역했다.[95][96] '펜서콜라' 완공 시기는 대공황 시작과 맞물려, 4,000명의 인력은 즉시 1/4로 줄었다.[92][96] 런던 해군 군축 조약 서명 지연과 워싱턴 조약 2년 연장으로 다음 함선인 USS 뉴올리언스(CA-32) 기공은 1931년에야 이루어졌다.[96] 하지만 공창은 정기적인 선박 유지 보수를 위해 계속 운영되었다.[96]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당선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조선 활동 재개로 이어졌다.[92] 브루클린급 선도함인 USS 브루클린(CL-40)이 1935년 3월 공창에서 기공되었다.[97] 1935년 말까지 10척의 순양함이 건조되고 있었다.[98] 1937년 전함 USS 노스캐롤라이나(BB-55)의 기공을 위해 드라이 도크 4가 약간 연장되었다.[99]

새로운 건조 작업에는 추가 노동력이 필요했다.[98] 1935년까지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는 4,000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급여를 잘 받았으며, 주 5일 근무에 6일 치의 급여를 받았고, 민간인들은 근속 연수에 따라 상당한 퇴직금을 받았다.[100]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1936년 중반까지 8,200명을 고용했는데, 이 중 6,500명은 선박 건조에 종사했고 1,700명은 공공사업진흥국(WPA) 프로그램을 통해 고용되었다.[101] 1938년까지 공창은 약 10,000명을 고용했으며, 이 중 1/3은 WPA에서 급여를 받았다.[98] 당시 주변 지역은 1939년 공공사업진흥국(WPA)의 ''뉴욕시 가이드''에 묘사된 바와 같이 여러 술집과 낡은 집들로 황폐해져 있었다. 추가 작업이 이 지역의 재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98][102] WPA 노동자들은 쓰레기 소각장, 차고, 석탄 공장 사무실, 방파제를 세웠고, 또한 해군 공창의 도로를 포장하고 새로운 철도 트랙을 깔았다.[98]

1945년 해군 공창


제2차 세계 대전을 준비하면서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대대적으로 재건되었다. 해군 공창은 1.5acre만큼 서쪽으로 확장되어 총 면적이 356acre가 되었으며, 19세기 중반의 거리 격자 일부가 새로운 개발을 위해 제거되었다. 이러한 구조에는 약 243.84m x 약 30.48m 크기의 단층 포탑 및 조립 공장 건설, 코네티컷 빌딩 웨이 확장, 드라이 도크 4번 연장 등이 포함되었다.[99] 1939년까지 공창에는 약 8.05km 이상의 포장 도로, 길이 약 99.36m에서 약 213.36m에 이르는 4개의 드라이 도크, 2개의 강철 선로, 구난 작업용 6개의 폰툰 및 원통형 부유물, 해병대 막사, 발전소, 대형 라디오 방송국, 철도 지선, 주조소, 기계 공장, 창고 등이 있었다.[102] 새로운 건설에는 광범위한 매립 작업이 수반되었으며, 일부에서는 수 세기 된 유물이 발견되었다.[99] 한 예로, 남북 전쟁 시대의 감옥 군기지(brig)가 지하 8피트에서 발견되었고,[103] 또 다른 예에서는 노동자들이 감옥선 순교자 중 한 명의 유해로 추정되는 해골을 발굴했다.[99]

1940년 6월 USS 노스캐롤라이나(BB-55) 진수
1940년 6월 USS 노스캐롤라이나(BB-55) 진수


브루클린과 필라델피아의 해군 조선소는 전함 건조를 위해 지정되었다.[104]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제2차 세계 대전 시대의 첫 번째 전함은 USS 노스캐롤라이나(BB-55)였으며,[109] 1937년에 건조를 시작하여[105] 1941년 4월에 취역했다.[106] 두 번째 전함 USS 아이오와(BB-61)는 1939년에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를 시작하여[107] 1942년에 완성되었다.[68]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건조된 세 번째 전함은 USS 미주리(BB-63)였으며,[109] 1944년에 진수되어[108]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 장소였다.[68] 전함이 완성된 후, 두 척의 항공모함 주문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1942년 12월에 기공된 USS 베닝턴(CV-20)이고, 다른 하나는 1944년에 기공된 USS 프랭클린 D. 루스벨트(CV-42)였다.[129]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결국 "3척의 전함, 2척의 부유 작업장, 8척의 전차 상륙함, 수많은 바지선과 라이터"를 건조했다. 또한 250척의 선박을 전투에 대비하도록 장비했으며 5,000척의 선박을 수리했다.[104]

전함 건조를 수용하기 위해 드라이 도크 5번과 6번이 건설되었다. 해군은 1890년대에 뉴욕시에 판매되어 월어바웃 마켓(Wallabout Market)을 조성했던 25acre의 토지를 재매입했다. 원래 계획은 베이욘에 드라이 도크를 건설하는 것이었지만, 탄약창과의 근접성 때문에 그 위치는 적합하지 않았고, 1941년에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 드라이 도크 건설이 승인되었다. 도크는 길이 약 457.20m, 폭 약 60.96m, 깊이 약 18.29m로 계획되었으며, 당시에는 그만큼 큰 전함이 없었다.[109] 도크는 결국 길이 약 325.22m로 건설되었으며, 이는 다른 드라이 도크보다 더 긴 길이였다.[104][124] 1941년에 건설 계약이 체결되었다. 시장과 콥 도크(#Cob Dock)를 포함한 여러 구조물이 철거되었다. 또한 시장으로 이어지는 월어바웃 베이슨(Wallabout Basin)의 지류가 매립되었고 약 약 1758476.17m3의 실트가 수역에서 준설되었다.[110] 부지 동쪽에 있는 인접한 켄트 애비뉴 수역도 매립되었다.[124] 그 후 13,000개의 말뚝이 수역의 모래 바닥에 박혔고 시간당 약 267.59m3의 속도로 200개의 콘크리트 거푸집이 타설되었다.[110] 드라이 도크 5번은 1942년까지 완공되었다.[110] 이 작업에는 부두 J와 K의 건설뿐만 아니라 1943년에 추가된 부두 G에 약 317514.75kg 해머헤드 크레인의 건설도 포함되었다.[110][124]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진주만 공격 직후인 1941년 12월에 18,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111]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고용 인원이 증가했다.[104] 1942년 6월까지 4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고용되었다.[112]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24시간 연중무휴 운영을 시작했고, 8시간 3교대 근무가 시행되었다. 조선 외에도 공창의 노동자들은 군인과 병사를 위한 유니폼, 깃발, 포장된 식량 및 전투 물품을 만들었다.[104] 제2차 세계 대전의 절정기 동안 공창은 75,000명의 직원을 고용했고 월 1500만달러의 급여를 지급했다.[119][113][114] 공창은 수십 척의 선박을 건조하고 수백 척을 교체하는 대규모 생산량 때문에 "The Can-Do Shipyard(할 수 있는 조선소)"라는 별명을 얻었다.[2]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 해군은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 매년 우수성을 인정하는 "E" 상을 수여했다.[119]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해군 공창은 이전에 무장 부대에 합류한 백인 남성이 차지했던 직책에 여성과 소수 민족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고용하기 시작했다.[115] 여성들은 주로 선박, 항공기, 무기, 통신 장비, 소형 무기 및 고무 제품을 제작했다.[115]

2. 5. 해체와 민간 전환

1963년, 미국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비용 절감을 목표로 불필요한 군사 시설, 특히 해군 조선소의 폐쇄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64년 5월, 국방부는 포트 제이와 브루클린 육군 터미널과 더불어 뉴욕 해군 조선소(1945년 11월 연방 정부 명령으로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공식 개명됨[129][130][131])의 폐쇄를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142] 이에 노동자들은 워싱턴 D.C.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조선소 폐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143] 폐쇄가 예상되면서 새로운 선박 건조 계약은 민간 조선업체로 넘어갔다.[144] 1964년 10월, 노동자들과 지역 정치인들의 로비 활동 끝에 조선소는 몇 건의 선박 건조 계약을 따냈으나, 당시 직원 수는 9,100명으로 감소 추세였다.[145] 그러나 바로 다음 달, 맥나마라는 뉴욕 해군 조선소가 폐쇄될 약 100개의 군사 시설 중 하나라고 공식 발표했다.[146][147][148]

폐쇄 발표 당시 조선소에는 10,600명의 민간인 직원과 100명의 군인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연간 급여는 약 9000만달러에 달했다. 폐쇄를 통해 연간 약 1810.0000000000002만달러의 비용 절감이 예상되었다.[146] 많은 직원들은 해당 분야에서 특별히 훈련받은 조선공들이었다.[151] 이들은 마지막까지 해군 측에 폐쇄 결정을 철회하도록 설득하려 했으나,[149] 1965년 1월, 당국은 폐쇄 예정일을 1966년 6월 30일로 확정하고 남은 9,500명의 노동자에 대한 해고 절차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143][150] 그해 중반에는 노동자 수가 7,000명으로 줄어들었다.[137]

클린턴 애비뉴 게이트


1965년 8월, 해군은 뉴욕 해군 조선소에서 마지막 선박인 오스틴급 상륙수송선거함 USS 덜루스(LPD-6)를 진수했고,[155] 마지막 해군 선박은 1965년 12월에 취역했다.[156] 뉴욕 해군 조선소의 공식 폐쇄 행사는 1966년 6월 25일에 열렸으며,[157] 해군은 6월 30일에 조선소를 최종 해체했다.[143][184] 폐쇄 후 많은 노동자들은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등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143]

폐쇄 발표 이후, 조선소 부지의 대체 활용 방안이 여러 차례 제안되었으나 실현된 것은 없었다. 1965년 초부터 제조업체들이 부지 임대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고,[151] 컬럼비아 대학교의 세이모어 멜먼 교수는 조선소를 상업 조선소로 전환하여 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상세 계획을 제시했다.[152] 로버트 F. 와그너 주니어 시장 행정부는 자동차 공장 유치를 시도했으며,[153] 연방 교도소 건설 계획도 거론되었다.[154]

1966년 2월, 연방 정부는 브루클린 해군 공창을 산업 단지로 전환하는 데 약 1000만달러의 지원 자격이 있다고 발표했다.[158] 뉴욕주의 초당적 의회 대표단이 지원 확보를 위해 연방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고,[159] 곧이어 뉴욕 시는 공창을 매입하여 산업 단지로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다.[160] 이는 일부 연방 기관들이 부지 사용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되었다.[161] 1966년 7월, 시는 공창 매입 절차에 착수했다.[162][163][164]

린든 B. 존슨 행정부는 처음에는 시에 공창을 매각하는 것을 꺼렸고, 5500만달러의 매각가를 제시했으나 시는 더 낮은 가격을 요구했다.[165] 1967년 5월, 양측은 2400만달러의 매각 가격에 합의했다.[166] 1969년 출범한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매각에 더 우호적이어서 기존 합의 가격보다 100만달러 이상 낮은 가격을 제안했고,[167] 그해 2월 공창 소유권이 시로 이전되었다.[168] 최종 의회 합의는 1969년 11월에 이루어졌고,[169][170] 다음 달 시는 2250만달러에 공창을 매입하는 공식 계약을 체결했다.[171] 시 정부는 1970년 6월 첫 선금을 지불했다.[172]

2008년 사진 속 라이어슨 애비뉴 게이트의 기지 주택


1966년, 시를 대신해 조선소를 운영할 비영리 단체로 킹스 상공업 공사(Commerce Labor Industry Corporation of Kings, CLICK)가 설립되었다.[143][190] CLICK는 10년 안에 3만에서 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브루클린 경제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173][198][174] 첫 임대 계약은 시의 소유권 이전 전인 1968년 5월에 체결되었고,[175] 1969년 초에는 4개 회사에서 300명이 근무하며 더 많은 기업들이 입주 중이었다.[68] 입주 기업들은 제조업,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143][176]

시의 공창 매입 완료 후 CLICK에 운영권이 부여되었으나,[177] 곧 시와의 관리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190] CLICK 임원들이 기업 유치보다 지역 주민 고용에 치중한다는 의혹과 함께,[194] 1971년 《뉴욕 타임스》는 CLICK가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약속된 일자리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177] 결국 1971년 12월, CLICK와 시는 새로운 관리 계약을 체결하고,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통합적이고 사업적인 조직"을 지향하는 37명의 초당파 이사진으로 경영진을 전면 개편했다.[178]

1968년 설립된 시트레인 라인스 소유의 시트레인 조선소(Seatrain Shipbuilding)는[179] 1969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과 임대 계약을 맺었다.[180] 계약 조건에는 지역 노동자 우선 고용 조항이 포함되었고,[181] 시트레인은 공창의 최대 임차인 중 하나로 성장하여 1973년에는 대부분 브루클린 거주민인 2,70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182] 시트레인은 모회사를 위해 5척의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과 7척의 컨테이너선 건조를 계획했으나, 최종적으로는 4척의 VLCC(공창에서 건조된 가장 큰 선박들), 8척의 바지선, 1척의 쇄빙 바지선을 건조했다.[179] 첫 선박인 터보 유조선 '브루클린'은 1973년에 진수되었다.[182][183][184] 한편, 코스탈 드라이 독 앤 리페어(Coastal Dry Dock and Repair Corp.)는 1972년 CLICK로부터 3개의 소형 드라이 독과 여러 건물을 임대하여 미 해군 선박의 수리 및 개조 사업을 시작했다.[185][186]

그러나 1973년 석유 위기의 여파로 시트레인은 1974년 3,000명의 직원을 일시 해고하며 공창의 고용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187] 이후 시트레인은 조선 사업에서 점차 손을 떼기 시작했다.[193][184] 공창에서 건조된 마지막 선박은 시트레인의 VLCC '베이 리지'였으며,[188] 이 선박은 '쿠이토'로 개명되어 현재 앙골라 해안 쿠이토 유전에서 쉐브론을 위해 운영 중이다.[189]

4번 드라이 도크 근처에서 본 모습


공창 내 고용은 1978년에 정점을 찍었다. 당시 CLICK는 38개 임차인에게 3.5e6sqft의 공간을 임대했고, 이들은 총 5,50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조선소에는 약 51096.67m2의 공간이 더 있었지만 당시 사용 가능한 공간은 약 557.42m2에 불과했다.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전체 점유율은 1972년 50%에서 97%로 증가했다.[190] 하지만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부패 및 갈취 혐의가 끊이지 않았고, 공창에 접근하기 어려운 대형 컨테이너선의 등장은 잠재적 임차인들을 컨테이너 시설 투자가 활발했던 뉴저지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결과적으로 초기에 약속했던 3만~4만 개의 일자리는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191]

시트레인은 1978년 여러 차례의 파업과 유조선 수요 감소로 1350만달러의 재정 손실을 입었고,[181] 1979년 1월 갑작스럽게 폐쇄되었다. 1,300명 이상의 직원이 해고되었고, 남은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해 150명만 남았다.[192][193] 이로 인해 공창의 고용 인원은 3,970명으로 급감했다.[194] 시트레인 폐쇄 후 코스탈 드라이 독이 최대 임차인이 되어 600명에서 1,000명의 직원을 상시 고용했다.[191]

1980년 7월, 뉴욕 시 감사원장 해리슨 J. 골딘은 공창 운영 감사 보고서를 통해 CLICK 직원의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지출로 인해 공창이 "사기, 부실 관리 및 낭비의 조합"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결론 내렸다.[194] 보고서 발표 후 CLICK 이사는 사임 압력을 받았고,[195] 후속 보고서에서는 계약 관리 부실과 시의 임대료 미수취 문제도 지적되었다.[196][197] 공창 고용 인원은 계속 감소하여 1980년 10월에는 2,900명에 불과했고, 이 중 거의 절반이 코스탈 드라이 독 직원이었다. 가장 낙관적인 전망조차 재개발 정점 시 1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198] 지역 주민들은 일자리 창출 부족과 CLICK의 투명성 부재(회의 참석 금지 등)에 불만을 표했고, 공창 내 기업들이 과도하게 높은 구직 기준을 적용하여 주민들의 취업을 막는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199] 결국 CLICK는 1981년 비영리 단체인 브루클린 해군 공창 개발 공사(Brooklyn Navy Yard Development Corporation, BNYDC)로 대체되었다.[206]

코스탈 드라이 독은 1986년 5월 파산 신청을 했고,[185][186] 이듬해 폐쇄되었다.[185][186] 이로 인해 공창 수입은 절반 이상 감소했다.[186] 1987년까지 BNYDC는 6개의 드라이 독과 건물을 조선 또는 선박 수리 회사에 임대하려는 시도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83개 임차인과 2,600명의 직원을 유지하며 연간 총 270만달러의 수입을 창출했다.[185] 다른 선박 수리 회사인 브루클린 선박 수리(Brooklyn Ship Repair)가 임대 잠정 계약을 맺었으나[200] 1988년에 철회했다.[201] 반면, 1986년 시의 구제 금융 이후 BNYDC는 처음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201]

=== 소각로 건설 논란 ===

1967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 부지에 쓰레기 소각로 건설이 제안되었다. 시는 이 시설이 쓰레기 소각으로 열과 전기를 생산하여 유틸리티 회사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Consolidated Edison)에 공급하는 열병합 발전소 역할을 겸하도록 계획했다.[202] 이는 스태튼아일랜드의 프레시 킬스 매립지(Fresh Kills Landfill)와 브루클린 동부 파운틴 애비뉴 매립지(Fountain Avenue Landfill)의 부담을 줄이고 시 전력 생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203] 1976년, 에이브러햄 비임 시장은 소각로와 발전소를 결합한 시설 건설을 제안했고,[204] 그해 말 약 2.26억달러 규모의 건설 계약이 체결되었다.[205] 영구 시설 건설 전 임시방편으로, 공창 입주자들에게 증기를 공급하는 "임시" 열병합 발전소가 1982년 말 가동을 시작했다.[206]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인근 윌리엄스버그, 브루클린(Williamsburg)의 라틴계 및 하시딕 유대인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207] 에드 코치 시장은 1982년, 제안된 발전소의 건강 영향이 지역 사회에 해로울 것이라는 감사원장 골딘의 반대에 따라 두 차례 계약 제안을 철회했다.[208]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4년 12월, 뉴욕시 추정 위원회(New York City Board of Estimate)는 근소한 차이로 소각로 설치를 승인했다. 이는 향후 시에 건설될 5개 부지 중 하나였다.[209] 하지만 뉴욕주는 시의 재활용 계획 부재를 이유로 수년간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210]

제안된 소각로는 1989년 뉴욕 시장 선거(New York City mayoral election, 1989)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소각로에 반대하는 윌리엄스버그의 하시딕 유대인 공동체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211] 결국 선거에서 승리한 데이비드 딘킨스는 캠페인 기간 동안 소각로 계획 보류 입장을 밝혔었다.[212] 주는 1989년, 시가 공장 배출 재 방출 저감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건설 허가를 거부했다.[213]

딘킨스는 당선 후 소각로 건설에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행보를 보였고,[214][219] 1993년 주는 이전 결정을 번복하고 허가를 발급했다.[215] 그 무렵 시장으로 선출된 루돌프 줄리아니는 소각로 건설에 반대하며 재활용 계획 시행을 선호했다.[219] 1995년, 줄리아니 행정부는 시가 새로운 고형 폐기물 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동안 소각로 건설을 3년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216] 그해 11월, 지역 사회 구성원들은 건설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217][218] 소각로 예정 부지에 대한 추가 조사 결과, 유해 화학 물질 농도가 너무 높아 해당 부지가 수퍼펀드(Superfund) 환경 정화 대상지로 지정될 정도임이 밝혀졌다.[219] 결국 다음 해 시는 소각로 건설 계획을 완전히 폐기하고, 대신 재활용 프로그램 확장과 프레시 킬스 매립지 폐쇄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220]

2. 6. 산업 재개발

1966년 미국 해군이 조병창 운영을 중단하고 부지를 뉴욕 시에 매각하면서,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민간 제조업과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 전환되기 시작했다.[221] 다만, 1993년까지 일부 해군 분견대가 공창에 남아 있었다.[222] 한편, 20세기 동안 선박 건조 및 수리에 널리 사용된 석면으로 인해 건강 문제를 겪은 수천 명 이상의 퇴직 노동자들이 미국 해군에 석면 제품을 공급한 기업들을 상대로 다수의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도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맨해튼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공창 내 소규모 사업체 수가 크게 증가했다. 1990년에는 22개 업체가 약 8175.47m2 면적의 임대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인 1991년에는 임대 가능한 공간의 97%가 채워져 총 180개 임차인이 3,500명의 직원을 고용하게 되었다.[223] 이러한 해군 공창과 브루클린 육군 터미널의 재개발 움직임은 브루클린 해안가 전체의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224] 그러나 지역 사회의 반대로 의료 폐기물 처리 공장 건설 계획은 무산되기도 했다.[225]

1995년, 연방 대기 청정법 기준을 충족하는 미국 최초의 새로운 코제너레이션 플랜트 건설이 시작되었다.[226] 빌딩 41에 들어선 이 신규 시설[335]은 기존의 임시 시설과 노후된 오일 보일러 플랜트를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226] 1996년 완공되어 ConEdison이 운영을 맡았다.[227] 같은 해, 브루클린 해군 공창 개발 공사(BNYDC)는 공창의 잠재적 용도 연구를 위해 73.9만달러를 지원받았다. 당시 지역 사회 지도자들은 공창 부지에 주택 건설을 지지하는 한편, 제안된 쓰레기 소각로 건설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228] 1997년부터 뉴욕시는 해군 공창을 시의 자본 예산에 포함시켜 유지 보수를 직접 담당하기 시작했다.[222]

1999년 4월,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영화사 미라맥스가 공창 내 영화 스튜디오 건설 가능성을 발표하며 주목받았으나,[229] 구체적인 계획 부족으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후 뉴욕시는 새로운 개발 파트너로 더글러스 C. 스타이너를 선정했고, 그는 같은 해 10월 BNYDC와 70년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230][231] 이 과정에서 주변 지역 하레디 유대인 공동체 일부 지도자들이 영화 산업이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232] 여러 과정을 거쳐 약 1.18억달러가 투입된 스타이너 스튜디오는 마침내 2004년 문을 열었다.[233][234][235]

드라이 도크 옆 창고


2000년대 초, 뉴욕시는 기술 기업 유치를 목표로 '디지털 뉴욕'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브루클린 해군 공창을 포함한 7개 지역을 '기술 지구'로 지정했지만, 초기에는 공창으로 이전을 희망하는 기업이 없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237] 2004년, 당시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시 주도로 공창 서쪽 부지에 제조업, 소매업, 산업용으로 활용될 약 52025.70m2 규모의 공간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개발에는 투자자 부담 7100만달러와 시의 인프라 개선 비용 6000만달러가 투입될 예정이었다.[238] 계획에는 공창을 둘러싼 벽 일부 철거, Sands Street의 옛 정문 복원, 뉴욕시 경찰국(NYPD) 견인 차량 보관소 이전 등도 포함되었다.[222]

뉴욕시는 2006년부터 본격적인 부지 확장에 나섰다.[239] 개조 과정에서는 공창 기록 보관소에 소장된, 일부는 2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32,000개의 청사진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240] 2007년 기준으로 공창에는 40개 건물에 230개 이상의 사업체가 입주해 약 5,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블룸버그 행정부는 이미 개조 공사에 3000만달러를 투입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확장을 위해 추가로 1.8억달러 투입을 제안했다. 당시 공창은 최근 5년간 99%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과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241]

2009년까지 소매 및 제조업 공간 약 12만m2를 추가하고 1,5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2.5억달러를 투입하는 추가 개발 계획이 발표되었다.[242] 이 계획에는 역사적 건물이 밀집한 '어드미럴스 로우'(Admiral's Row) 구역을 철거하고 슈퍼마켓과 산업 타워를 건설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역사 보존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243] 2010년까지 공창과 관련하여 약 40개의 보존 프로젝트가 제안되었으며, 공창에는 정규직 기록 보관 담당자가 배치되어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244]

재개발 이후에도 공창은 다양한 문화 행사 장소로 활용되었다. 2013년 11월 10일에는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새 앨범 발매 기념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고,[376] 2015년에는 예술가 베티나 비테빈이 해군 공창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군인이었을 때… 한때 젊었네" 시리즈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236]

현재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200개 이상의 민간 기업이 입주하여 3,5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는 활기찬 산업 및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 개발 공사(BNYDC)가 전체적인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뉴욕시 소유의 부두 3곳은 시트 레인 쉽빌딩 & 코스탈 드라이 도크 & 리페어(GMD Shipyard)가 운영하며, 길이는 약 106.68m에서 약 271.27m, 수심은 7m에서 12m에 이르는 10개의 선석과 관련 시설을 갖추고 있다.

2. 7. 2010년대 이후

2018년에 개발된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구조물인 Dock 72 (2018년 모습)는 완공 후 WeWork 사무실이 들어섰다.


2011년, 브루클린 해군 공창 개발 공사(Brooklyn Navy Yard Development Corporation, BNYDC)는 공창을 개발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계획에는 그린 제조 센터, 77동, 제독관 구역(Admiral's Row), 그리고 브루클린 해군 병원을 개조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245] 같은 해 11월, 해군 공창의 역사와 미래를 다루는 박물관인 브루클린 해군 공창 센터(BLDG 92)가 플러싱 애비뉴(Flushing Avenue)에 문을 열었다.[246][247]

2013년 11월 10일에는 팝 가수 레이디 가가의 새 앨범 발매 기념 행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376]

2015년까지 330개 이상의 사업체가 공창에 자리 잡았으며, 총 7,000명 정도를 고용했다.[113] 브루클린 그레인지(Brooklyn Grange) 농장은 3동 건물 위에 약 6038.70m2 규모의 상업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고,[248] 스테이너 스튜디오(Steiner Studios)는 할리우드 외 지역에서 미국 최대의 제작 스튜디오 중 하나로 성장했다.[249] 많은 예술가들도 이곳에 공간을 임대하여 '브루클린 해군 공창 예술(Brooklyn Navy Yard Arts)'이라는 협회를 설립했다. 브랜딩 에이전시 'CO OP Brand Co'는 이 지역의 브랜드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고용되었다.[250] 제독관 구역의 재개발은 2015년에 승인되었으며, 계획에 따라 구역 대부분이 철거 및 재개발될 예정이었다.[251]

이전 128동 내부에 약 23225.76m2 규모로 조성된 그린 제조 센터는 2016년에 완공되었다.[252] 2016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 선거 기간 중에는 힐러리 클린턴버니 샌더스가 268동인 듀갈 그린하우스(Duggal Greenhouse)에서 토론회를 열었다.[259] 클린턴은 이후 민주당 후보 지명을 받은 뒤 해군 공창에서 승리 축하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260]

약 62709.55m2 규모의 오피스 빌딩인 Dock 72는 2017년 10월에 완공되었으며, 코워킹 스페이스 기업 WeWork의 사무실이 입주했다.[253] 1Msqft 규모의 18층 건물인 77동은 1.43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개조 공사를 마쳤고,[113] 2017년 11월에 재개장했다.[254]

제독관 구역 부지에 들어서는 제조 단지인 399 샌즈 스트리트(Sands Street)의 건설은 2018년 6월에 시작되었으며, 2021년 개장을 목표로 했다.[255] 인접한 Wegmans 슈퍼마켓은 399 샌즈의 주차장 일부와 함께 2019년에 문을 열었다.[256][257] 제독관 구역 재개발은 약 33445.09m2의 경공업 및 사무 공간과 약 15329.00m2의 소매 공간을 포함하게 된다.[258]

2018년 1월, 브루클린 해군 공창 개발 공사는 예상 비용 25억달러에 달하는 업데이트된 마스터 플랜을 발표했다.[261][262] 이 계획에 따라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는 추가로 5.1Msqft의 공간이 더해지며, 대부분은 제조 공간이지만 각 신규 건물에는 사무용 공간도 일부 할당될 예정이다.[263] 새로운 기술 허브의 일부로 건설될 이 공간은 13,000명의 추가 근로자를 수용할 수 있으며, 공창 내 제조 및 사무 공간의 규모를 거의 두 배로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261] 2018년 가을, 개발 공사와 건축 회사 WXY는 마스터 플랜에 대한 추가 세부 정보를 공개했다. 계획에는 여러 수직 제조 건물이 포함되며, 공창 내 다양한 지역이 주변 지역 사회와 통합되도록 재개발될 것이다. 개발은 네이비 스트리트(Navy Street)와 플러싱 및 켄트 애비뉴(Kent Avenue)에 있는 세 개의 부지에 집중될 예정이다.[264][265] 같은 해 12월, 개발 공사는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마지막 미개발 부두를 개조하기 위한 제안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266]

현재 뉴욕 시가 소유한 3개의 부두가 있으며, 이는 시트 레인 쉽빌딩 앤 코스탈 드라이 도크 앤 리페어 회사에 의해 관리, 운영되고 있다. 이 부두들은 길이가 약 106.68m에서 약 271.27m에 이르는 10개의 선석과 7m에서 12m 깊이의 갑판을 갖추고 있다.

3. 주요 시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광범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내부에는 총 8km에 달하는 포장도로가 있었고, 99m에서 213m 길이에 이르는 4개의 드라이 도크, 2개의 강철 선박용 운하, 인양 작업을 위한 6개의 폰툰과 원통형 플로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선박 건조 및 수리를 위한 병사, 자체 발전소, 대규모 통신소, 철도 박차 주조 공장, 기계 공장, 다수의 창고 등이 운영되었다.

공창에는 서쪽부터 동쪽으로 C, D, G, J, K로 이름 붙여진 5개의 부두가 있으며, 이를 통해 총 10개의 선창이 제공된다. 부두의 길이는 약 106.68m에서 약 271.27m까지 다양하며, 갑판 높이는 약 3.05m, 부두 옆 수심은 약 7.62m에서 약 12.19m에 이른다.[270] 또한, 서쪽에서 동쪽 순서로 1, 4, 2, 3, 5, 6번으로 번호가 매겨진 총 6개의 건선거가 설치되어 있다.[270][271] 현재 이 건선거들은 GMD 조선소에서 운영 중이다.[45]

지리적으로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롱아일랜드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스트 강 남동쪽 해안의 월러바웃 만을 둘러싸고 있다.[274] 공창 내부의 도로는 사적으로 관리되어 공식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으며, 전체 부지의 공식 주소는 63 Flushing Avenue이다.[15] 외부에서는 Sands Street와 Navy Street, Cumberland Street와 Flushing Avenue, Clinton Avenue와 Flushing Avenue, Kent Avenue와 Clymer Street에 위치한 게이트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271] 공창 전체는 벽돌 벽으로 둘러싸여 서쪽의 패러것 하우스 및 비니거 힐, 남쪽의 포트 그린, 동쪽의 윌리엄스버그와 같은 주변 지역과 구분된다.[222]

3. 1. 드라이 도크

1825년 엔지니어 로이미 볼드윈 주니어는 공창에 드라이 도크를 건설하기 위한 설계를 의뢰받았고, 1826년 발표된 그의 계획은 브루클린 해군 공창을 위한 가로 구획 시스템을 만들었다.[30] 보스턴 해군 공창과 노퍽 해군 조선소에도 드라이 도크가 설계되었으나,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도크 건설은 자금 부족으로 다른 두 곳의 드라이 도크가 완공된 1836년까지 연기되었다. 실제 건설은 1841년에 시작되어 1851년에 완공되었다.[44][45][17]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이스트 강을 따라 공창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6개의 드라이 도크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이 도크 1번이 1851년 가장 먼저 완공되었고,[45][311] 이후 드라이 도크 2번(1901년), 드라이 도크 3번(1897년),[63] 드라이 도크 4번(1913년),[83] 그리고 드라이 도크 5번과 6번(1943년)이 차례로 건설되었다.[110][305] 현재는 드라이 도크 1, 5, 6번만이 사용 중이다.[45]

도크 번호도크의 재료길이깊이완공일출처
1화강암96.95m29.89m7.77m1851[305]
2콘크리트139.93m34.1m7.34m1901
3나무와 콘크리트186.82m45.97m9.04m1897
4콘크리트 & 벽돌, 화강암 기술 및 코핑220.45m42.52m10.8m1913
5철근 콘크리트332.8m45.7m12.5m1943
6철근 콘크리트332.8m45.7m12.5m1943



물에 잠긴 상태의 드라이 독 4

드라이 도크 1드라이 도크 1은 브루클린 해군 공창 북동쪽 월라바웃 만에 위치하며,[20][306] 1851년에 완공되었다.[45][311] 이는 보스턴 해군 공창과 노퍽 해군 조선소의 드라이 도크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드라이 도크이며,[307] 해군 공창 내에서는 가장 작은 규모이다.[311] 뉴욕 시 최초의 영구적인 드라이 도크로, 건설 비용은 1841년 당시 200만달러였다.[317] 드라이 도크 1은 남북 전쟁 중 햄프턴 로드 해전에 참전했던 모니터 함(USS ''Monitor'')과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신 케이블을 부설한 USS 나이아가라(USS ''Niagara'')와 같은 역사적인 선박들을 수리하는 데 사용되었다.[311][308]

드라이 도크 1의 구조물은 메인 주와 코네티컷 주에서 가져온 17584m3화강암과 뉴욕 주의 보조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311][312] 석조 바닥의 너비는 9.1m이며, 바닥은 측면과 육지 쪽(남서쪽) 끝을 향해 거꾸로 된 아치 모양으로 곡선을 이룬다. 중앙 부분은 대부분 평평하며 0.3m 깊이의 홈이 파여 있다. 측면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312] 바다 쪽 끝에는 경첩 없이 떠서 열리는 게이트가 있다.[308] 1871년 "하퍼스 매거진" 기사에 따르면, 드라이 도크 1의 용량은 약 229.99999999999997만L이며, 2시간 10분 안에 물을 뺄 수 있었다. 당시 드라이 독의 너비는 20.1m, 깊이는 11m였고, 만조 시 독이 가득 찼을 때 수심은 7.9m였다.[309] 1918년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은 드라이 독의 주요 공간 크기를 바닥 길이 87.2m, 너비 10.7m, 상단 길이 112.8m, 너비 29.9m로 묘사했다. 이 드라이 독을 위해 건설된 펌프 엔진은 한때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17]

드라이 독 건설을 위한 측량은 1826년에 시작되었으나 자금은 1836년에야 확보되었다.[317] 건설은 1841년에 시작되었지만 자금 부족으로 1년 만에 중단되었다.[44][17] 이 시기에는 맨해튼에 새로 개통된 크로톤 수도교 근처에 다른 드라이 독을 건설할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44] 1844년 건설이 재개되었을 때, 프로젝트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유사와 지하 샘이 발견되었고, 결함 있는 가물막이 설계로 인해 월라바웃 만의 물이 굴착 현장을 두 번이나 침수시켰다.[317][310] 가물막이 문제는 가장 바깥쪽 가물막이에 자갈로 만든 깊은 기초를 설치하여 해결했다.[310][311] 샘 문제는 말뚝, 널빤지, 마른 시멘트 혼합물을 사용하고 그 위를 벽돌과 로마 모르타르 층으로 덮어 처리했다.[311][312] 유사는 22.9m 깊이까지 존재했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만에 6,500개 이상의 나무 말뚝을 박았는데, 이때 미국 역사상 최초로 증기 파일 드라이버가 사용되었다. 말뚝 주변 공간은 콘크리트로 채워졌다.[311][312][17] 1847년 나무 말뚝 작업이 완료된 후, 석공 손튼 맥네스 니벤이 드라이 독의 석조 구조물 설치를 감독했다.[311][312]

1849년 프로젝트를 이끌던 윌리엄 J. 맥알파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해고되고 찰스 B. 스튜어트가 남은 작업을 맡았다.[311][312] 드라이 도크 1은 1850년에 첫 번째 선박인 USS 데일(USS ''Dale'')을 수용하여 수리 작업을 시작했다.[311] 드라이 독은 이듬해인 1851년에 최종 완공되었다.[45] 드라이 독 1은 설계상 광범위한 유지 보수가 필요하지 않았지만,[311] 1887년부터 1888년 사이에 앞부분의 석조 공사가 보수되었다.[67][64] 드라이 도크 1은 1975년 뉴욕시 지정 랜드마크로 지정되었다.[44][313]

3. 2. 건물 92 (브루클린 해군 공창 센터)

1857년에 지어져 토머스 유스틱 월터가 설계한 최초의 92동은 전 미국 해병대 사령관의 관사였다.[311] 이 건물은 약 882.58m2의 바닥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3층 높이에 벽돌 외관, 힙 루프, 그리고 각 면에 3개의 창문 베이를 갖추고 있다.[297] 92동은 플러싱 애비뉴를 따라 위치한 3.5acre 규모의 미국 해병대 막사 부지의 유일한 잔존 건물이다. 이 부지는 1848년에 매입한 토지에 건설되었으며, 해병 장교 숙소, 막사(구 91동), 정문, 그리고 중앙 퍼레이드 그라운드를 포함했다.[311] 이 건물들은 모두 그리스 부흥 양식으로 지어졌다. 92동은 과거에 거의 동일한 93동이 있었으나, 창고를 짓기 위해 1941년에 철거되었다.[298]

92동 박물관. 1857년에 지어진 건물은 오른쪽에 위치한 붉은 벽돌 건물이며, 2011년에 지어진 별관은 그 뒤와 왼쪽에 위치한 금속 별관이다.


전 미국 해병대 사령관의 관사는 현재 조선소 박물관인 브루클린 해군 공창 센터의 일부가 되었다.[306] 92동은 2011년 바이어 블린더 벨에 의해 2500만달러를 들여 개조 및 확장되었다.[299][300] 브루클린 해군 공창 센터는 2011년 11월 브루클린 해군 공창 개발 공사(Brooklyn Navy Yard Development Corporation)의 프로그램으로 개관했다.[300][301] 이 센터는 전시, 일반 투어, 교육 프로그램, 기록 보관 자료, 그리고 인력 개발 서비스를 제공한다.[302] 박물관의 주요 전시는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역사와 미국 산업, 기술, 혁신, 제조업, 그리고 국가 및 뉴욕시의 노동, 정치, 교육, 도시 및 환경 계획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한다. 또한 이 건물은 시설 내의 새로운 사업에 대한 전시와 비디오를 상영한다.[300][301] 브루클린 해군 공창 박물관 계획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박물관은 원래 다른 건물에 위치할 예정이었다.[303]

이 센터는 레이저 컷 금속 외관을 갖춘 약 2276.12m2 규모의 별관을 포함한다.[297] 이 별관은 3층 로비를 통해 원래 건물과 연결된다.[304] 로비에는 상륙 강습함 ''오스틴''(1964)에서 가져온 약 10205.82kg 무게의 강철 닻이 있다.[300]

3. 3. 건물 77

건물 77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조지 T. 바셋의 설계에 따라 건설된 16층 구조물이다.[125] 이 구조물은 약 88443.69m2의 바닥 면적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기초는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케이슨으로 지지되며, 이는 지하 약 45.72m까지 내려간다.[335] 11층까지는 약 63.50cm 두께의 벽과 창문이 없는 구조로 건설되었으며, 21acre의 저장 공간을 포함했다.[338][335] 이 층들은 탄약을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335] 2017년 건물 개조 공사에서 이 층에 창문이 설치되었다.[254]

1940년 중반, 터너 건설(Turner Construction)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비용 가산 고정 수수료 계약으로 이 건물을 짓는 데 고용되었다.[336][125] 건물의 기초는 1941년 6월에 건설되었으며,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대략 3일마다 한 개 층이 완성되었다. 이 구조물은 1941년 9월까지 400만달러의 비용으로 완공되었다.[337][338] 이 구조물은 원래 조선소 본부뿐만 아니라 사무실, 저장 공간, 실험실 및 도서관과 같은 다른 공간을 포함했다.[125] 건물 77은 2017년 바이어 블린더 벨(Beyer Blinder Belle)에 의해 개조되었으며,[339][254] 현재는 경공업 시설과 상업 임차인을 수용하고 있다.[113][340]

3. 4. 기타 주요 시설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는 서쪽부터 동쪽으로 C, D, G, J, K로 표시된 5개의 부두가 있으며, 총 10개의 선창이 있다. 부두의 길이는 약 106.68m 에서 약 271.27m이고, 갑판 높이는 약 3.05m이며, 부두 옆의 깊이는 약 7.62m 에서 약 12.19m이다.[270]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성기에는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 9개의 부두와 약 5027.68m의 정박 공간이 있었다.[267] 부두 옆에는 NYC 페리 시스템의 모항이 있다.[268][269]

해군 공창에는 또한 서쪽에서 동쪽으로 1, 4, 2, 3, 5, 6번으로 번호가 매겨진 6개의 건선거가 있다.[270][271] 현재 이 건선거는 GMD 조선소에서 운영하고 있다.[45] 적어도 1920년대부터 연방 프로젝트에서 Throggs Neck에서 해군 공창까지 약 10.67m의 수로 깊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쪽 입구에서 약 약 3.22km 떨어진 곳에서 상부 만의 깊은 수역까지 약 12.19m로 유지하고 있다.[272] 19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로의 깊이는 이전에 Throggs Neck에서 Upper New York Bay까지 약 12.19m로 유지되었고, 수로의 폭은 Throggs Neck에서 브루클린 해군 공창까지 약 167.64m 에서 약 304.80m였으며, 그 다음 상부 만의 깊은 수역까지 약 304.80m였다.[273]

'''브루클린 해군 병원'''

브루클린 해군 병원은 1825년, 처음에는 메인 해군 기지와 인접하지 않은 부지에 설립되었다.[15] 1838년에 본관이 완공되었고, 이후 1840년에 건설된 두 개의 영구적인 별관을 포함하여 여러 동으로 확장되었으며, 이 건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287][32][288] 2층짜리 외과 의사 관사가 1863년에 건설되었다.[289][288] 20세기 초에는 의료 보급 창고, 목재 창고, 숙소 건물 등 더 많은 구조물이 추가되었다.[289] 병원은 또한 1831년부터 1910년까지 묘지를 운영했으며, 묘지는 매장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290] 1948년에 병원은 폐쇄되었고, 대부분의 기능은 다른 시설로 이전되었다.[291][292][293]

2012년, 스타이너 스튜디오는 해군 기지에 있는 기존 캠퍼스의 부속 시설로, 이전 병원 부지에 미디어 캠퍼스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294][20] 병원 묘지 부지에 공원인 해군 묘지 조경이 2016년 5월에 개장했다.[295][296] 당시 스타이너 스튜디오는 2017년부터 병원 건물을 복원할 계획이었으며, 복원은 거의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295]

'''목재 창고 (16번 건물)'''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목재 창고(16번 건물)는 1833년부터 1853년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1806년 사령관의 집과 1838년 해군 병원 건물에 이어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315] 이 건물은 브루클린 해군 공창 서쪽에 위치한 박공 지붕을 가진 벽돌 건물로, 네이비 스트리트와 인접해 있다.[314] 목재 창고에는 쌍둥이 건물인 15번 건물이 있었는데, 15번 건물은 바로 북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재는 철거되었다. 16번 건물은 원래 약 18.29m x 약 91.44m 규모였으며, 15번 건물은 약 18.29m x 약 121.92m 규모였다. 두 건물 모두 인근 제재소 연못에서 경화된 후 조선용 목재를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다.[315] 1837년 문서에 따르면 미국 해군은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 최대 4개의 벽돌 목재 창고 건설에 약 9만달러를 할당했다.[316]

남북 전쟁 이후 목재 창고는 목재 보관에 사용되었지만, 해군 공창에서 건조되는 목조 선박의 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19세기 후반에는 해군 공창 장교들이 거주했던 주택 단지인 제독의 거리가 목재 창고 주변에 건설되었다. 노동 진흥청의 개조 공사의 일환으로 1937년에 15번 건물의 일부가 철거되었다.[315] 1940년대에는 16번 건물이 경찰서 및 목재 보관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차고로도 사용되었다. 1963년 16번 건물 개조 공사로 건물의 일부가 철거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경찰관을 위한 개인 아이스 링크로 개조되었다.[317] 15번 건물의 나머지 부분은 아마도 1979년 이후에 철거되었고, 16번 건물은 이 즈음에 버려졌다.[315]

2010년까지 16번 건물은 재개발을 제안받았지만, 심하게 노후되었다.[318] 2011년 초, 국방부 기술자들은 개조 비용이 4000만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이유로 구조물 철거를 권고했다.[319] 목재 창고의 개조 공사는 2018년에 시작되었다.[320] 더글러스 C. 스테이너(Douglas C. Steiner)는 제독의 거리 부지를 재개발하면서 2018년 1월에 16번 건물이 레스토랑과 같은 음식 관련 용도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258]

'''Sands Street 게이트'''

Sands Street 게이트


브루클린 해군 공창 서쪽 경계에 있는 Sands Street의 게이트는 20세기 초 이 해군 공창의 주요 입구였다. 이 게이트는 성 모양의 1층 중세 스타일의 게이트하우스로, 받침대, 포탑 및 꼭대기에 독수리가 있는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69][321] 이 입구는 Admiral's Row 근처의 Sands Street와 Navy Street 교차로에 위치해 있으며, 그곳에 있던 두 개의 목재 창고에 둘러싸여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건설된 게이트 위의 나무 보도는 한때 두 창고를 연결했다.[69] 게이트하우스는 2층과 3층의 추가(이후 철거)와 포탑 제거를 포함하여 수년에 걸쳐 개조되었다.[321] 한때 Sands Street 게이트에는 실패한 수동 크랭크 잠수함 설계인 ''Intelligent Whale''과 1856년 광둥 전투에서 사망한 12명의 미국 해군을 위한 기념비적인 샤프트가 포함된 트로피 공원이 있었다.[102]

Sands Street 게이트는 인근 York Street의 다른 게이트를 대체했으며,[325] 건설 비용은 2만달러[321] 또는 2.4만달러였다.[69] 1893년에 처음 제안된 대로 게이트하우스는 뾰족 지붕, 치상 및 화려한 외관을 갖춘 4층 구조여야 했다.[322][323] 그러나 다른 제안이 너무 비싸서 게이트하우스는 현재 디자인으로 축소되었다.[321] 사업 손실을 우려한 York Street의 술집 주인들은 Sands Street 게이트 건설에 반대했지만,[323] 소용없었다.[321]

이 게이트는 1895년에 건설을 시작하여,[324] 1년 후 개장했다.[325][326] 새로운 Sands Street 게이트는 Flushing Avenue의 전차 노선에 더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York Street 게이트 주변의 더럽고 "악취 나는" 지역을 피할 수 있었다.[325][69] 게이트 개장 1년 후, ''Brooklyn Daily Eagle''은 Sands Street 게이트 주변이 "열정적인 해군 공창 방문객인 브루클린의 젊은 여성들에게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언급했다.[327] 술집이 곧 이 게이트 주변에 문을 열었고,[321] 1924년까지 해군은 이 입구 사용이 금지되었다.[328] 미국-스페인 전쟁을 시작으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해군 지원자들은 해군에 입대하기 위해 Sands Street 게이트 밖에서 줄을 섰다.[321][69] 해군 공창이 폐쇄된 후, Sands Street 게이트는 뉴욕시 경찰(NYPD)의 브루클린 견인 시설 입구가 되었고, 2004년까지 이 게이트를 개조할 계획이 있었다.[222] 게이트하우스는 2012년에 원래 상태로 복원되었으며,[321] 2015년부터 킹스 카운티 증류소의 시음실로 사용되고 있다.[329]

'''보급 창고 (3번 건물)'''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11층 보급 창고(3번 건물)는 92번 건물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공창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터너 건설(Turner Construction)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했으며, 1층의 기단부(base (architecture))와 11층의 다락방을 포함하고, 그 사이에 9층이 있다. 평평한 금속 캐노피로 덮인 하역 플랫폼이 건물 기단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다양한 지점에 하역장 입구가 있다. 또한 건물 서쪽과 북쪽에는 철도 측선이 있었다.[330] 기단부 위에 있는 9개 층에는 넓은 직사각형 창문 열이 "창문칸(Bay (architecture))"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창문칸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구분되며, 각 창문 아래에는 콘크리트 창대(sill)가 있다. 10층과 11층 상단에는 처마 장식이 있다. 11층의 각 창문칸에는 삼중 창문이 있으며, 계단 및 엘리베이터 벌크헤드 구조와 채광창이 있다.[330] 이 구조물은 처음 건설되었을 때 약 66146.96m2의 바닥 면적을 포함했다.[331]

미국 연방 정부는 우연한 기회에 터너 건설에 의뢰했는데, 이는 정부 관계자들이 독일제 총기 제조 보고를 받고 터너의 공장을 급습했을 때 터너가 대신 엔진 기초를 제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88] 3번 건물 건설 계약은 1917년 4월에 체결되었다.[332] 계약 체결 4일 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11층으로의 수정은 건설 과정 중간에 이루어졌다.[331] 공사는 주당 1개 층의 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자재 운송이 가능했던 해군 공창의 철도 시스템이 근접해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구조물은 9월까지 120만달러의 비용으로 완공되었고, 해군은 1917년 10월 1일에 구조물로 이동했다.[331][333] 다락방에는 사령관, 공창장 및 관리자의 사무실이 있었다.[331] 3번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무선 및 레이더 실험실을 갖추었으며, 5번 및 77번 건물로 이어지는 보행교가 건설되었지만, 두 보행교 모두 이후 철거되었다.[330] 현재 3번 건물 지붕에는 옥상 농장이 설치되어 브루클린 그레인지(Brooklyn Grange)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 건물은 다양한 산업 및 상업 임차인이 사용하고 있다.[334]

'''77번 건물'''

77번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조지 T. 바셋의 설계에 따라 건설된 16층 구조물이다.[125] 이 구조물은 약 88443.69m2의 바닥 면적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기초는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케이슨으로 지지되며, 이는 지하 약 45.72m까지 내려간다.[335] 11층까지는 약 63.50cm 두께의 벽과 창문이 없는 구조로 건설되었으며, 21acre의 저장 공간을 포함했다.[338][335] 이 층들은 탄약을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335] 2017년 건물 개조 공사에서 이 층에 창문이 설치되었다.[254]

1940년 중반, 터너 건설(Turner Construction)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비용 가산 고정 수수료 계약으로 이 건물을 짓는 데 고용되었다.[336][125] 건물의 기초는 1941년 6월에 건설되었으며,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대략 3일마다 한 개 층이 완성되었다. 이 구조물은 1941년 9월까지 400만달러의 비용으로 완공되었다.[337][338] 이 구조물은 원래 조선소 본부뿐만 아니라 사무실, 저장 공간, 실험실 및 도서관과 같은 다른 공간을 포함했다.[125] 77번 건물은 2017년 바이어 블린더 벨(Beyer Blinder Belle)에 의해 개조되었으며,[339][254] 현재는 경공업 시설과 상업 임차인을 수용하고 있다.[113][340]

'''기타 주요 건물'''

건물 번호건축 연도위치주요 특징 및 용도현재 상태
A 관저1807년비니거 힐, 어드미럴스 로연방 양식 구조물, 사령관 관저. 찰스 벌핀치가 설계했다는 설이 있으나 증거 없음.[13][341]-
1동 (구 291동)약 1941–1942년-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자 출력 테스트에 사용된 재료 시험 연구소. 지붕에 라디오 타워 존재.[335]해군에서 사용 후 1994년 폐쇄, 현재 스타이너 스튜디오에서 사용.[342]
5동1920년3동 북쪽[271]6층 벽돌 직사각형 구조물 (펜트하우스 포함). 경공업 공장, 전기/병기 시설, 라디오 방송국, 연구소 등으로 사용.[343]-
41동1942년모리스 애비뉴와 4번가/5번가 사이[271]기존 발전소를 대체한 발전소.[335]1995년 열병합 발전소로 개조.[344]
128동약 1899–1900년커머랜드 스트리트 입구 근처, 모리스 애비뉴와 6번가[271]1층 L자형 강철/조적조/유리 구조물 (높은 박공 모니터 지붕). 이전 기계 및 조립 공장.[345]그린 제조 센터 및 뉴랩 (기술 허브) 입주.[346]
132동1905년워링턴 애비뉴와 4번가[271]이전 증기 엔진 수리 공장.[114]현재 경공업 시설 입주.[114]
280동1942년커머랜드 스트리트 입구 근처, 모리스 애비뉴와 6번가[271]8층 직사각형 구조물. 이전 병기 기계 공장.[347]-
293동약 1970년대6번 건선거 북동쪽, 공창 북동쪽[271]약 304.80m x 약 30.48m 박공 지붕 구조물. 공급 및 유통 센터. 시트레인 조선소 페인트 시설 예정이었으나 무산.[347]포레스트 시티 랫너 (풀스택 모듈러)의 모듈러 아파트 제조 시설로 개조.[348] 2016년 대규모 태양광 지붕 설치 (1.1e6kWh 생산 가능).[349]



'''제독의 거리'''

제독의 거리는 다양한 건축 양식 (그리스 부흥, 이탈리아풍, 프랑스 제국 양식)의 10채의 주택을 특징으로 했다. 1864년에서 1901년 사이에 지어진 이 주택들은 해군 공창의 고위 장교들의 거주지였다.[353] 이 부지에는 목재 창고, 열병식 광장, 테니스 코트, 각 주택에 부착된 차고도 있었다.[350] 제독의 거리는 1966년 해군 공창이 해체되면서 버려졌고,[353] 대부분의 주택은 2016년에 철거되었다.[365]

'''코브 독 (Cob Dock)'''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는 코브 독(Cob Dock)이라는 인공 섬도 있었다. 원래는 월라바웃 만에 있는 갯벌이었으며, 출항하는 배에서 버려진 밸러스트(선박 평형수)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코브 독은 배가 정박하기 편리한 장소가 되었으며,[56] 한때 해군에서 사용하던 최초의 전서구 무리도 사용했다.[351] 코브 독은 섬 남쪽 절반을 둘러싸고 서쪽과 동쪽 끝에서 월라바웃 만과 연결되는 1.5m 에서 6m 깊이의 수로인 월라바웃 채널에 의해 본토 해군 공창과 분리되었다.[352] 남북전쟁 당시 섬 주변에 구조물인 격자 구조물이 건설되었고, 섬 중앙에는 선박 선창이 건설되었으며, 더 많은 배가 정박할 수 있도록 월라바웃 채널의 깊이가 더 낮게 준설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섬 북쪽 끝은 무기 저장고로 사용되었고, 남쪽 끝은 공원과 훈련장이 되었다.[56] 페리가 처음에는 코브 독과 나머지 해군 공창 사이를 운행했지만,[56] 1900년까지 월라바웃 채널을 가로지르는 제방으로 대체되었다.[352] 코브 독의 남쪽 구역은 더 큰 배를 수용하기 위해 1910년대 초에 철거되었다.[353][354] 섬의 나머지 부분은 1942년에 건설된 건선거 5번과 6번을 수용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철거되었다.[353]

'''월라바웃 마켓'''

브루클린 해군 공창 동쪽 끝에 위치했던 시에서 운영하는 식품 시장인 월라바웃 마켓은 19세기 후반에 개발되었다.[355] 미 해군성은 1877년 브루클린시에 10ha의 해안 토지를 임대하여 시에서 시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고,[355][356] 해군은 1884년에 시장 운영 허가를 받았다.[23] 브루클린 시 정부는 1890년에 월라바웃 마켓의 소유권을 얻었고, 시장은 나중에 뉴욕시의 운영 하에 들어갔다.[355][23] 시장은 뉴욕 항구와 매우 가까워 상품을 쉽게 수입하고 수출할 수 있었지만, 땅은 진흙 투성이였고 이 지역은 경찰 단속을 피하는 폭력 조직이 자주 출몰했다. 월라바웃 마켓에는 도로, 목조 건물, 하수도 시스템이 설치되었다.[355] 1890년대 후반까지 시장에는 부두와 델라웨어 래커왜나 앤드 웨스턴 철도 및 펜실베이니아 철도를 위한 부유식 착

4. 랜드마크 지정

사령관 숙소


2014년, 공창 전체는 미국 국립 사적지(NRHP)에 역사 지구로 등재되었다.[358] 일부 특정 건물에는 별도의 랜드마크 지위가 부여되었다. 사령관 숙소(Quarters A) 건물은 국립 역사 랜드마크로 지정되었고,[359] 드라이 독 1,[44] 해군 공창 병원 건물(R95),[360] 그리고 브루클린 해군 병원 내 외과 의사 관사(R1)는 뉴욕 시 지정 랜드마크이다.[361]

한편, '애드미럴스 로우'(Admiral's Row)는 2008년 미국 방위군이 의뢰한 보고서에서 전체 구역이 NRHP 등재 자격 기준을 충족한다는 제안이 있었으나,[362] 2010년경 건물이 심하게 노후되어 붕괴 위험에 처하면서 랜드마크 보존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일었다.[363] 결국 시는 애드미럴스 로우 재개발 계획을 승인했고,[251][364] 2016년에는 이곳의 역사적인 주택 10채 중 9채가 철거되어 Wegmans 슈퍼마켓과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365]

브루클린 다리에 설치된 청동 표지판에는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역사를 기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표지판에는 공창에서 건조된 주요 선박인 ''메인'', ''미주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조된 선박인 ''덜루스''가 언급되어 있다.[366]

5. 대중문화 속 브루클린 조병창

슈타이너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영화를 제외하고, 다음 영화, TV 프로그램, 비디오 게임, 책 및 문화 행사가 브루클린 해군 공창을 배경으로 하거나 기록되었다.


  • 프랭크 시나트라가 출연한 영화 ''뉴욕의 항구'' (1949)에 등장한다.[368]
  • 1986년 영화 ''로봇 홀로코스트''의 일부가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촬영되었다.[369]
  • 이 조선소는 2000년 비디오 게임 ''Deus Ex''에 등장하며, 주인공이 기지에 정박한 화물선을 침몰시켜야 하는 플레이 가능한 레벨로 등장한다.[370]
  •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2008년 비디오 게임 ''톰 클랜시의 엔드워''에 플레이 가능한 전장으로 등장한다. 이 게임에서 이 공창은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을 이동식 해상 기지로 개조하고 있다.[371]
  • 해리 후디니를 주제로 한 과제가 ''어메이징 레이스 21'' (2012)의 마지막 구간에서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수행되었다.[372]
  • 가수 레이디 가가가 그녀의 앨범 ''아트팝''을 위해 주최한 프로모션 콘서트 아트레이브는 2013년 11월 10일과 11일 브루클린 해군 공창의 듀갈 온실에서 열렸다.[374]
  • 브루클린 해군 공창은 제니퍼 이간의 2017년 소설 ''맨해튼 비치''(Scribner)에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주인공 안나 케리건은 부품 검사관으로 해군 공창에서 일하며, 이후 이 공창의 최초의 여성 잠수부가 된다.[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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