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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중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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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구중심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태양과 다른 천체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천문학적 모델이다. 이 모델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기원전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1500년 이상 서양 천문학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등장하면서 도전을 받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 관측과 케플러, 뉴턴의 연구를 통해 지동설이 점차 우세해졌으며, 21세기에는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지동설을 인정했다. 현대에도 일부 종교적 신념이나 상대성 이론의 관점에서 지구중심설이 언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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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중심설
개요
이름천동설
영어 명칭Geocentric model (지오센트릭 모델)
다른 명칭Ptolemaic system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Geocentrism (지구 중심설)
설명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관점
역사
기원기원전 310년 ~ 230년 경
주요 인물아리스토텔레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특징
주요 내용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
태양, 달, 별,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천구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쇠퇴
쇠퇴 시점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등장 이후 점진적으로 쇠퇴
대체 이론지동설
같이 보기
관련 개념천문학
지동설
천구
주전원
기타
영향고대와 중세 시대의 우주관에 큰 영향을 미침

2. 역사

프톨레마이오스가 2세기에 체계화한 천동설은 지동설과 대비되는 학설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8] '지구중심설'이라고도 불리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지 여부와 지구가 움직이는지 여부는 엄밀히 다른 개념이므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모델(Geocentric model)'의 번역어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에서는 '지심설'(地心說)이라고 한다. 천동설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사회에서 널리 공인된 세계관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우독소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지만, 에크판토스는 지구가 자전한다고 주장했고, 필롤라오스는 지구와 태양 모두 우주의 중심이 아니지만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 주위를 지구가 공전한다고 주장했다.

히파르코스의 논제를 바탕으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체계화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천체는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천구는 딱딱한 구체이며, 항성은 천구에 붙어있거나 천구에 뚫린 미세한 구멍으로 천구 밖의 빛이 새어나와 보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행성과 항성은 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며, 모든 변화는 지구 사이에서만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천동설은 단순한 천문학적 계산 방법이 아니라 당시의 철학과 사상을 반영했다. 신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둔 것은 인간이 사는 특별한 천체이기 때문이며, 지구는 모든 천체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였던 중세 기독교 신학에 부합하여 천동설을 공식적인 우주관으로 간주했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에서는 지구 주위를 , 태양, 목성 등의 행성이 있는 하늘이 동심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당시에는 관측 사실과 정합성에서도 지동설보다 천동설이 우위에 있었다. 지동설이 사실이라면 항성의 연주시차가 관측되어야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관측이 불가능했다.

고대부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우주론은 세계 여러 곳에 존재했다. 인도의 수미산설이나 중국의 혼천설처럼 지상 위에 펼쳐진 천계를 상정한 것도 적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제1권 3장에 그러한 우주론이 소개되어 있다.[25] 하지만 이러한 우주론은 관측되는 출몰 현상을 재현할 수 없고, 천체의 궤도도 부자연스럽게 된다.

천동설은 구형의 하늘이 지평선 아래까지 이어져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고 하며, 지구는 하늘과 마찬가지로 구형이라고 여겨졌다. 『알마게스트』는 이 이론이 천체의 일주 운동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25] 또한 천동설에서는 항성이 붙어 있는 항성천을 상정하는데, 이는 항성들이 전체적으로 연동하여 움직이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태양은 항성천과 연동하여 움직이지만, 동시에 고유의 운동도 더해졌다. 그리고 항성천 위를 황도(황도를 따라 좁고 띠 모양의 부분)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1년에 한 바퀴 돈다. 달과 행성도 또한 황도대 안에서 각각 고유의 운동을 한다.

천구 개념은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지구를 둘러싸는 황도대가 설정된 데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에우독소스는 동심원설에 기반한 천동설 이론을 만들었다.[26]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서는 간결한 이론으로 주요 데이터를 충분한 정확도로 설명할 수 있었다.[28]

천동설적인 우주론에서 하늘이 지구를 감싸고 지구는 구체라는 주장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은 이러한 질문들을 다루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우독소스의 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우주론을 만들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이전 어느 시기에 그리스의 수리 천문학은 인도에 전해졌고, 기원 4세기 무렵부터 기존의 요소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인도식 천문학이 탄생한다.[29]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우주론은 전해지지 않았고, 원운동을 실제로 존재하는 구의 회전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인도 천문학은 서쪽으로 전해져, 세베루스 세보크트는 인도 천문학을 "그리스 천문학보다 뛰어난 천문학"이라고 언급했다.[32] 그 후 인도 천문학은 독자적인 우여곡절을 거쳐 15세기-16세기 케랄라 학파의 니라칸타에서 티코 브라헤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33]

중세 아랍권의 천문학은 우선 인도의 영향이 짙은 페르시아 천문학에서 출발한다.[34] 이후에는 『알마게스트』가 주가 되지만, 인도적인 요소도 받아들여진다.

현대적 관점에서 천동설적인 수리 천문학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 천체 사이의 거리를 결정하는 단서가 매우 적었다.

#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지구 중심으로 보면 태양 궤도(황도)에서의 어긋남(황위)이 복잡하게 진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 지구 중심 관점에서는 내행성과 외행성의 운동 모양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이러한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주요 문제였던 태양, 달, 행성의 황도 좌표에 대해서는 중세의 관측 정확도 범위 내에서 충분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에서는 천체의 운동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등속 회전만을 인정했다. 그래서 『알마게스트』의 현상 설명 능력을 가지면서도 원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는 철학자들도 크게 관여했다. 우주의 구조론은 심령론(영혼론, 심리학)이나 형이상학과도 관련지어졌다.

천체의 배치 등 간단한 우주론은 일반 지식인들의 관심도 높았고,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한 책도 있었으며, 백과사전에도 간단한 우주론이 소개되었다.[38]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은 것은 인간이 사는 특별한 천체이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14세기에 발표된 단테의 『신곡』 천국편에서도 지구 주위를 달, 태양, 목성 등 각 유성천이 동심원상으로 에워싸고, 그 위에 항성천, 원동천 및 지고천이 구상되어 있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의 여러 모순을 계기로 지동설을 제시한다. 티코 브라헤나 갈릴레오의 관측 정확도 향상과 새로운 사실 발견, 케플러 등에 의한 이론 혁신으로 지동설은 확고한 지위를 쌓아간다. 뉴턴 등의 노력으로 뉴턴 역학과 그것에 기반한 태양계 이론이 만들어졌다.

2. 1. 고대 사회의 우주관

고대 사회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하늘이 지구를 덮고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우주의 중심에 수미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고, 그 주위를 여러 세계가 둘러싸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 모델 그림. 왼쪽은 여름, 오른쪽은 겨울을 나타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6세기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가 원기둥 모양이며 우주의 중심에 떠 있다고 주장했다.[8] 그는 태양, 달,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도는 보이지 않는 바퀴의 구멍이라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구형이지만 우주의 중심은 아니라고 믿었으며, 지구가 보이지 않는 불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구형이며, 별과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다.[8]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가 에테르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투명한 구에 부착되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설명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별들의 위치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다.[8] 실제로 별들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기술로는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었다. 금성의 밝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도 지구 중심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여겨졌다.[8]

중국에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혼천설이 발전했다. 혼천설은 평평한 땅을 둥근 하늘이 덮고 있다는 생각으로, 고대 그리스의 지구 중심설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천체의 운동을 주로 하늘 표면의 움직임으로 설명했고, 3차원적인 운동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정교한 수리천문학이 발달하여 고대 그리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는 에도 시대 초기에 『건곤변설』[118]과 수입된 중국 서적 『천경혹문』[119][120]에 의해 지구 중심적인 서양의 우주론이 알려지게 되었다.

2. 2. 고대 그리스의 천동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에우독소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여러 층으로 겹쳐진 천구가 지구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했다.[8]

가장 바깥쪽 천구에는 항성이 새겨져 있었고, 하늘의 북극을 축으로 약 하루에 한 번 동쪽에서 서쪽으로 회전하여 일주운동이 일어났다. 태양이 있는 천구는 항성구와 반대 방향으로 1년에 걸쳐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하여 연주운동이 일어났다. 태양의 회전축은 항성구의 회전축과 기울어져 있어서 1년 동안 남중고도가 변하고 계절이 바뀌었다.

항성구와 태양 사이에는 행성이 운행하는 천구를 두었다. 지구에서 보면 행성별자리 사이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항성구에 대한 행성구의 상대 운동으로 설명되었지만, 행성은 천구에서 속도를 바꾸거나 일정 기간 역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행을 설명하기 위해 행성 하나의 운행에 회전 방향과 속도가 다른 여러 개의 천구를 사용했다. 이 천구들은 모두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구형이었기 때문에 지구에서 각 행성까지의 거리는 변하지 않았다. 에우독소스의 동심천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포함되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아폴로니우스와 기원전 2세기 히파르코스는 행성이 단순히 원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 위에 있는 작은 원 위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이 작은 원을 주전원, 큰 원을 대원(Deferent)이라고 불렀다. 두 가지 이상의 원운동이 합쳐져 행성의 진행 방향과 속도가 변하는 것으로 보였고, 이는 행성의 접근에 의한 밝기 변화, 순행과 역행의 속도 차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주전원을 도입하면서 이심원동시심(Equant)을 도입하여 체계화했다. 항성구의 중심은 지구였지만, 행성 대원의 중심은 이와 다른 곳에 있었다. 대원의 중심이 항성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대원을 이심원이라 불렀다. 주전원의 중심은 이심원에서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지 않았지만, 동시심에서 보면 일정한 회전 속도로 움직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기본 요소. 주전원과 이심원, 그리고 등속점을 가진 주전원 위의 행성을 보여준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지구에서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에 해당하는 이심원의 지름을 어떻게 정하든, 보는 방향이 같으면 주전원을 만들 수 있었다. 각 행성의 주전원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지구에서 ,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순서로 배치하고, 그 바깥을 항성구가 둘러쌌다. 이 우주관은 에우독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천구를 확장한 형태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났으며, 지구를 중심으로 가정하여 행성과 태양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정도였다.

2. 3. 중세 시대의 천동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중세 이슬람 세계와 유럽에 전해져 약 1500년간 지배적인 우주관으로 자리 잡았다.[8]

6세기 인도의 아리아바타는 태양 중심의 지동설에 근거한 것으로 추측되는 계산을 남겼다. 그의 저작은 8세기에 아랍어로, 13세기에는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8세기 아바스 왕조가 건설한 바그다드헬레니즘 문명과 문화가 계승되어 인도 문명과 만나는 이슬람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9세기 무렵 시리아 지방에서 활약한 알바타니(Al Battani)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계승, 발전시켰다.

14세기 우마이야 왕조다마스쿠스에 있던 이븐 알 샤티르(Ibn Al Shatir)는 천동설의 입장에서 동시심을 제거하여 코페르니쿠스와 유사한 체계를 생각했다.

2. 4. 지동설의 등장과 천동설의 쇠퇴

16세기 유럽에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창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한다는 획기적인 내용이었지만, 원운동을 전제로 하여 기존의 천동설과 마찬가지로 주전원이 필요했다. 당시의 관측 정밀도로는 연주시차를 관측할 수 없었던 것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였다.[8]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계승하여 에라스무스 라인홀드가 『프로이센 항성목록』을 작성했지만, 주전원의 수를 늘려 계산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17세기튀코 브라헤는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돌고, 다른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도는 우주 모델을 구상했다. 튀코의 태양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발전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티코의 태양계.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중심으로, 다른 행성들을 거느린 태양이 회전한다.


16세기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창한 뒤에도 천동설을 위협하는 사건은 계속되었다. 신성이 관측되어 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튀코 브라헤는 혜성을 관측하여 달보다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각 행성이 태양을 지나는 궤도면 위에서 타원 궤도를 그리며 운동한다는 케플러의 법칙을 발견하여, 이전의 이론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행성 운동 모델을 제시했다. 케플러의 이론에 기초한 루돌프 표의 정확성은 매우 높았다.

아이작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지지하는 관성의 개념을 포함한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천체 운동을 설명하고, 지동설을 확고한 과학적 이론으로 확립하였다.

2. 5. 한국의 천동설 수용과 극복

조선은 성리학적 우주관에 따라 천동설이 지배적이었다. 조선 후기 서학이 유입되면서 지동설이 소개되었고, 일부 실학자들은 지동설을 적극 수용하였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자전하며 우주가 무한하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펼쳤다.

3.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체계

이심원 중심(X)은 지구 중심과 다르다. 이심원 회전은 동시심(●)에서 볼 때 회전속도가 일정하도록 움직인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지구에서 행성까지 평균 거리에 상당하는 이심원 지름을 어떻게 잡든, 보는 방향이 같으면 주전원을 만들 수 있다. 각 행성 주전원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지구에서 ,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순서로 배치하고, 그 바깥을 항성구가 둘러싼다. 이는 에우독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천구 확장 형태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당시 매우 뛰어났으며, 지구 중심 가정 하에 행성 및 태양 운동을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없을 정도였다. 태양계 행성 운동이 모두 타원이 아닌 원운동이었다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행성 운행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행성은 태양을 초점 중 하나로 하는 타원운동을 하므로, 이후 천동설은 타원운동을 원운동으로 설명하기 위해 발전했다.

4. 천동설의 문제점과 한계

천동설은 행성의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원 같은 복잡한 기하학적 모델을 도입해야 했다.[8] 이는 당시의 수학적 방법으로는 충분히 정확한 모델을 개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균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지만, 이는 또 다른 복잡성을 야기했다.[8]

천동설은 천체 사이의 거리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각 천체의 궤도를 지구를 중심으로 임의의 비율로 확대하거나 축소해도 관측 결과와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관측 기술의 한계와 맞물려 천체 간 거리 추정에 문제를 야기했다.[35]

또한, 천동설은 행성의 밝기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금성의 밝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상은 지구 중심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는 금성이 지구와의 거리가 거의 일정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동설과 더 잘 부합하는 관측 결과였다.[8]

천동설은 당시 관측 사실과의 정합성에서도 지동설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항성의 연주시차가 관측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만약 지구가 실제로 움직인다면, 별들의 위치가 일 년 동안 변해야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이를 관측할 수 없었다. 이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었지만, 실제로는 별들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 연주시차가 극히 작았기 때문이었다.[8]

천동설에서는 내행성과 외행성의 운동 양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논리적 근거가 부족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비롯한 여러 천동설 체계에서는 내행성과 외행성을 다루는 이론적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36]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일부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주전원, 이심원, 균점 등은 지구 중심의 등속 원운동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알마게스트의 현상 설명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원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론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37]

5. 현대 사회와 천동설

현대 과학 기술 문명에서 지구중심설은 완전히 부정된 이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종교적인 믿음, 특히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지구중심설을 믿는 경우가 발견된다. 이들은 여호수아서 10장 12절에서 태양과 달이 하늘에 멈췄다는 구절이나, 시편 93편 1절에서 "세상은 굳건히 서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구절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8] 2006년 ''갈릴레오는 틀렸다(Galileo Was Wrong)''라는 책을 저술한 로버트 숭게니스(Robert Sungenis)가 이러한 주장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8]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창조론자 단체들은 이러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며, 성경이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15] 요한 바오로 2세는 1992년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연설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이는 "비극적인 상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성경이 물리적 세계의 세부 사항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이성을 통해 이해해야 할 영역이 따로 있음을 강조했다.[8]

프톨레마이오스는 태양계가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지구중심설에 대한 믿음이 일부 남아있다. 2014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보고에 따르면, 설문 조사에 참여한 미국인의 26%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2011년 러시아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2%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8]

정통 유대교 일부 지도자들 역시 성경 구절과 마이모니데스의 해석을 근거로 지구중심설을 옹호한다.[8]

현대 사회에서 "해가 뜬다" 또는 "해가 진다"와 같은 표현은 여전히 지구중심설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참조

[1] 논문 Configuring the Universe: Aporetic, Problem Solving, and Kinematic Modeling as Themes of Arabic Astronomy
[2] 서적 The Cambridge Concise History of Astronom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03-18
[3] 논문 Cosmology and Religion in Islam 1973
[4] 서적 An Introduction to Islamic Cosmological Doctrines SUNY Press 1993-01-01
[5] 서적 Religion, Learning and Science in the 'Abbasid Period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11-02
[6] 웹사이트 Nicolaus Copernicus http://setis.library[...] 2004
[7] 백과사전 Al-Bitruji Al-Ishbili, Abu Ishaq http://www.encyclope[...] Charles Scribner's Sons
[8] 서적 Science in the Ancient World: An Encyclopedia ABC-CLIO 2004
[9] 문서 Line 1067 onwards
[10] 웹사이트 Galileo and the Telescope http://www.atnf.csir[...] 2014-10-17
[11] 서적 Between Copernicus and Galileo: Christoph Clavius and the Collapse of Ptolemaic Cosmolog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12] 서적 The Evolution of Physics https://archive.org/[...] Simon & Schuster 1938
[13] 서적 Nicolaus Copernicus: An Essay On His Life and Work Harper and Row 1973
[14] 서적 Nicolaus Copernicus: An Essay On His Life and Work Heineman Educational Books Ltd. 1973
[15] 웹사이트 Astronomy and the Bible: Selected questions and answers excerpted from the book http://www.answersin[...] Answers in Genesis 2013-12-01
[16] 웹사이트 Decree of Approval for the Work "Elements of Astronomy" by Giuseppe Settele, in support of the Heliocentric System | Inters.org https://inters.org/a[...]
[17] 서적 Galileo: For Copernicanism and For the Church University of Notre Dame 1996
[18] 문서 Zohar, Book 3 (Vayikra), Page 10, folio: a.
[19] 웹사이트 Ptolemaic Astronomy in the Middle Ages https://www.princeto[...]
[20] 서적 Encyclopaedia of the History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Non-Western Cultures
[21] 웹사이트 How Islamic scholarship birthed modern astronomy https://astronomy.co[...] 2017-02-14
[22] 웹사이트 Fauz e Mubeen Dar Radd e Harkat e Zamin http://www.alahazrat[...] 2014-04-16
[23] 논문 Recounting the Orbs https://brill.com/vi[...] 2020
[24] 논문 From Geocentrism to Allocentrism: Teaching the Phases of the Moon in a Digital Full-Dome Planetarium 2016
[25] 문서 Toomer, pp.38-
[26] 문서 Neugebauer, O.,(1983), pp. 305-310. Eudoxus of Cnidus https://mathshistory[...]
[27] 문서 バビロニア天文学のギリシア天文学への影響に関しては、Jones A., The Adaptation of Babylonian Methods in Greek Numerical Astronomy (1991) Isis ,82:3, 440-453. Encyclopedia Britanica (web version)
[28] 웹사이트 『アルマゲスト』のモデルは国立円問題の解説 https://eco.mtk.nao.[...]
[29] 문서 インドの幾何学的な天文学のギリシア起源説
[30] 문서
[31] 논문 インドの天文学と宇宙論 2004-03-31
[32] 서적 Tenmongaku no tanjō : Isurāmu bunka no yakuwari https://www.worldcat[...] Iwanamishoten 2010
[33] 문서
[34] 서적 天文学の誕生-イスラーム文化の役割 岩波書店 2010
[35] 문서 この『アルマゲスト』の問題点については
[36] 문서 ニーラカンタ以前のインドの諸体系では、内惑星と外惑星の理論ははっきりと分かれていた。プトレマイオス流の理論においても、金星の黄経の理論は外惑星と一見同じ形式にはなっているが、詳細を見ると違いがある。また、黄緯の理論は、外惑星と完全にことなり、水星の理論は他の惑星と完全に異なり、月と同一である。『アルマゲスト』の惑星理論については、Neugebauer, O., 1975。また、https://eco.mtk.nao.ac.jp/koyomi/wiki/A5A2A5EBA5DEA5B2A5B9A5C8.html にも概説がある。 https://eco.mtk.nao.[...]
[37] 문서 Hasse, Dag Nikolaus, 2015
[38] 문서 [[アルフラガヌス|ファルガーニー]]『天の運動と天文知識の集成』や[[イブン・ハイサム]]『天体の配置』は、アラビア語圏、ヘブライ語圏、そしてラテン語圏で広く読まれた。
[39] 웹사이트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20
[40] 논문 The first Copernican was Copernicus: the difference between Pre-Copernican and Copernican heliocentrism https://doi.org/10.1[...] 2018
[41] 서적 Biographical Encyclopedia of Astronomers https://doi.org/10.1[...] Springer 2014
[42] 웹사이트 History of Astronomy, Ancient Greek, the motion of planets
[43] 문서 Neugebauer, O., (1983), p. 305
[44] 문서 中世欧州の同心球体説については、以下の文献の特にp.84から。Shank, M.H., Regiomontanus and Astronomical Contraversy in the Background of Copernicus: in Feldhay, R., Regap, F. J.Ed., 2017, pp. 79-109 、
[45] 논문 ARISTOTLE'S UNMOVED MOVERS 1946
[46] 문서 Paul Lettinck, 1999
[47] 문서 全般的には、Paul Lettinck, 1999, Chap. II を参照。天の川についてはEckart, A. (2018). THE EARLY GREAT DEBATE: A COMMENT ON IBN AL-HAYTHAM‘S WORK ON THE LOCATION OF THE MILKY WAY WITH RESPECT TO THE EARTH. Arabic Sciences and Philosophy, 28(1), 1-30. doi:10.1017/S0957423917000078, 月の模様については、鈴木孝典, 月の模様に関するアラビアの論考 : イブン・アル=ハイサムの『月の模様について』, 東海大学紀要. 開発工学部 創刊号, 27-44, 1992-03-30
[48] 문서 ただし、[[イブン・スィーナー]]は記録を残している。Neuhäuser R, Ehrig‐Eggert C, Kunitzsch P. An Arabic report about supernova SN 1006 by Ibn Sına (Avicenna). Astrono. Nachr./AN. 2017; 338: 19– 25. https://doi.org/10.1002/asna.201613200 を参照。また、医師で占星術に造詣の深かった、Ali ibn Radiwan は詳しい記述を残している。https://muslimheritage.com/ibn-ridhwan-observ-supernova-1006/ https://muslimherita[...]
[49] 문서 「重さの学」については、ROZHANSKAYA, M., Statics :in Rashed, R., ed., Encyclopedia of the History of Arabic Science, vol. 2., Routledge, 1996, pp.274- , Abtouy,M., The Aristotelian foundations of arabic mechanics: from ninth to the twelfth century: in Cees Leijenhorst, Christoph Lüthy, and Hans Thijssen ed., The Dynamics of Aristotelian Natural Philosophy from Antiquity to the Seventeenth Century. Leiden, The Netherlands: Brill, 2002, pp.109-140, Danilo Capecchi, History of Virtual Work Laws, Springer Milan 2012, Chapter3-4
[50] 문서 「重さ」の概念の場所依存性については、ROZHANSKAYA, M。、1996, pp.278-281 および Abattouy, M., 2002。梃の原理や重心と世界の中心との関係は、Abattouy, M., 2002, p.132からの数項を参照。
[51] 문서 『アルマゲスト』のこの問題および、コペルニクスに与えた影響については、Neugebauer, 1983, pp.504-505など。実は『[[アルマゲスト]]』よりも後に書かれた『惑星仮説』の黄緯の理論は簡潔で精度も高かった。1620年(すなわち、[[ティコ・ブラーエ]]の精密なデータの知られた後)にオックスフォード大学の天文学者John Bainbridgeが『惑星仮説』の写本を校訂したとき、「黄緯の理論に関しては、何の変更も加えないことが望ましい」と述べたという(Swerdlow, N.M. 2005, p.67)。だが、この『惑星仮説』の理論は後世ほとんど注目されず、中世の天文学者は『[[アルマゲスト]]』の複雑な理論に悩まされる (Mozaffari, S.M. ,2016)。
[52] 문서 [[アリスタルコス]]やヒッパルコスによる。
[53] 논문 Theory and Observation in Islamic Astronomy: The Work of IBN AL-SHĀTIR of Damascus 1987
[54] 문서 金環食についての古代および中世の議論については、Mozaffari, S. (2014).
[55] 웹사이트 Proclus https://plato.stanfo[...]
[56] 논문 The Teaching of the Almagest in Late Antiquity 1994
[57] 문서 Pingree, 1994, p.76
[58] 문서 Pingree, 1994
[59] 논문 Greek Astronomy and the Medieval Arabic Tradition: The Medieval Islamic Astronomers Were Not Merely Translators. They May Also Have Played a Key Role in the Copernican Revolution 2002
[60] 문서 Lindberg, D., & Shank, M. (2013), p.234 およびp.309
[61] 문서 Polfker, 2009, p.110
[62] 문서 矢野, 2004, pp.10-14
[63] 문서 Ramasubramanian, 1998, p.15.
[64] 문서 様々な学派については、矢野道雄、インド天文学、世界百科事典第二版、平凡社。、Polfker, (2009), pp.70-72. 7世紀の前半には、[[ブラフマグプタ]]が『ブラフマ・スプタ・シッダーンタ』でアーリヤバタの学派に対抗する。また、8世紀ごろには著者不明の『スールヤ・シッダーンタ』が現行の形になり、新たな学派が生まれた。これら3つの学派は、12世紀の始めのバースカラ二世のころまでは活発な活動を続ける
[65] 문서 インド天文学における観測の役割については、例えば Polfker, (2009), 4.6.1節。また、大橋由紀夫『インドの伝統天文学-特に観測天文学史について』天文月報 91(8), 358-364, 1998
[66] 논문 The Equant in India: The Mathematical Basis of Ancient Indian Planetary Models 2005
[67] 문서 Ramasubramanian, 1998, Sec. 3.
[68] 문서 この理論は、太陽中心説との良好な対応関係があることが指摘されている。かつてvan der Waerdenが「『アーリヤバティーヤ』の理論は、今は失われたギリシアの太陽中心説的な理論が元になっている」との仮説を提示したことがあったが、あまり支持者はいない。Duke, D. 2005, 注4,p.564.
[69] 논문 Wābkanawīʼs prediction and calculations of the annular solar eclipse of 30 January 1283 2013
[70] 논문 インドの伝統天文学 -特に観測天文学史について(III) 1998-10
[71] 논문 2015
[72] 논문 Nilakantha’s planetary models 2009
[73] 논문 2015
[74] 서적 The Alfonsine Tables of Toledo Springer 2003
[75] 논문 The Orbital Elements of Venus in Medieval Islamic Astronomy: Interaction Between Traditions and the Accuracy of Observations 2019
[76] 웹사이트 Biruni https://islamsci.mcg[...]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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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서적 General Survey Of Arabic Astronomy Routledge 1966
[79] 서적 The development of Arabic science in Andalusia Routledge 1996
[80] 논문 Zarqālī: Abū Isḥāq Ibrāhīm ibn Yaḥyā al‐Naqqāsh al‐Tujībī al‐Zarqālī https://islamsci.mcg[...] Springer 2007
[81] 논문 Ibn Muҁādh: Abū ҁAbd Allāh Muḥammad ibn Muҁādh al‐Jayyānī https://islamsci.mcg[...] Springer 2007
[82] 문서 이슬람교 등의 종교의 교리에서는 특히 정확한 일시의 결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83] 논문 太陽の遠地点移動の発見 1998-03-30
[84] 논문 A forgotten solar model https://doi.org/10.1[...] 2016-05-01
[85] 논문 2014
[86] 서적 アリストテレス自然学に対するビールーニーの疑問 東海大学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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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논문 THE EARLY GREAT DEBATE: A COMMENT ON IBN AL-HAYTHAM‘S WORK ON THE LOCATION OF THE MILKY WAY WITH RESPECT TO THE EARTH 2018
[89] 논문 月の模様に関するアラビアの論考 : イブン・アル=ハイサムの『月の模様について』 1992-03-30
[90] 논문 From Tūn to Toruń: The Twists and Turns of the Ṭūsī-Couple 2017
[91] 논문 AVERROES’ CRITIQUE OF PTOLEMY AND ITS RECEPTION BY JOHN OF JANDUN AND AGOSTINO NIFO www.jstor.org/stable[...] Leuven University Pres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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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논문 From Tūn to Toruń: The Twists and Turns of the Ṭūsī-Couple 2017
[94] 논문 2014
[95] 논문 Theory and Observation in Islamic Astronomy: The Work of IBN AL-SHĀTIR of Damascus 1987
[96] 논문 The Planetary Theory of Ibn Al-Shatir: Latitudes of the Planets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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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논문 Tdotuūsī and Copernicus: The Earth's Motion in Context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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