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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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퓨림은 유대교 축제로, 유대인 여인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에게 유대인 학살 음모를 알리고 민족을 구한 이야기를 기념한다. 에스더기에 기록된 이 축제는 아다르월 14일에 지켜지며, 에스더서를 낭독하고, 음식 선물을 교환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잔치를 벌이는 등의 의식을 행한다. 퓨림은 종교적 의무와 함께 민족적 유대감을 강조하며, 역사적으로 지역 공동체의 구원을 기념하는 다양한 관습과 의례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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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유대인의 현녀 에스더의 고사에서 유래한 축제이다. 성경 메길라의 한 책인 "에스더기"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고, 유대인의 다수는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 각지로 강제 이주되었다 (바빌론 유수). 그 후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에스더기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고관이었던 하만은 유대인 학살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유대인을 지키려는 신의 뜻을 받은 에스더 및 모르데카이에 의해 저지되었다. 유대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부터 적대 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날은 후에 축일이 되었고, 연회를 열어 이 고사를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2. 1. 푸림 이야기
에스더기는 9년에 걸쳐 진행되며,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이 군대와 메디아, 왕국의 127개 지방의 사트라프와 공주들을 위해 6개월 동안 연회를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연회는 수산(수사)의 주민, 부자와 빈자를 위한 7일간의 연회, 그리고 와스디 왕비가 왕실 뜰의 정자에서 조직한 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연회로 마무리된다.이 연회에서 아하수에로는 술에 취해, 신하들의 권유로 아내 와스디에게 왕관을 쓰고 귀족들과 백성들 앞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도록 명령한다. 와스디가 거절하자 손님들 앞에서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왕비의 자리에서 그녀를 강등하도록 했다. 아하수에로는 그런 다음 제국 전역의 모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도록 명령하여 와스디를 대신할 새로운 왕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사촌 모르드개와 산헤드린의 일원인 모르드개에게 입양된 에스더이다. 그녀는 왕의 눈에 호감을 얻어 그의 새로운 아내가 된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말한 대로 자신의 출신이나 유대인임을 밝히지 않았다. 텍스트에 사용된 단어 선택을 바탕으로 일부 랍비 주석가들은 그녀가 실제로 모르드개의 아내였다고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드개는 두 궁정 경비병인 빅탄과 테레스가 아하수에로를 죽이려는 음모를 발견한다. 그들은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고, 모르드개가 왕에게 봉사한 내용은 궁정의 일일 기록에 기록되었다.[17]
아하수에로는 하만을 총독으로 임명한다. 궁궐 문에 앉아 있던 모르드개는 그에게 절을 거부하여 하만의 미움을 산다.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게 된 하만은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제국 내 모든 유대인 소수 민족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아하수에로의 허락과 이 계획을 실행할 자금을 얻은 그는 제비뽑기()를 하여 이 일을 할 날짜를 선택한다. 즉, 아다르월 14일이다. 모르드개는 이 계획을 알게 되자 자루옷과 재를 뒤집어쓰고 애도하며 공개적으로 울부짖고 통곡했으며, 수산과 아하수에로 제국의 다른 지역의 다른 많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참회와 단식을 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요청으로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왕에게 간청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사흘 동안 금식하고 기도할 것이며 모르드개에게 페르시아의 모든 유대인들이 그녀와 함께 사흘 동안 금식하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다. 에스더는 "만약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선언하며 왕에게 간다.[18]
아하수에로는 에스더의 요청으로 연회를 열고, 에스더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유대인이며 하만이 자신을 포함한 그녀의 백성을 전멸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아하수에로는 격노하여 하만이 모르드개를 위해 준비했던 교수대에 하만을 매달라고 명령했다. 유대인에 대한 이전의 포고령은 무효화될 수 없었으므로 왕은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원하는 대로 또 다른 포고령을 작성하도록 허용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치명적인 위험을 제기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선제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포고했다.
그 결과, 아다르월 13일에 수산에서 500명의 공격자와 하만의 아들들 10명이 죽었다. 제국 전역에서 유대 민족의 적 75,000명이 죽었다.[20] 14일에는 수산에서 300명이 더 죽었다. 전리품은 전혀 빼앗기지 않았다.[21]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에 이어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하고, 유대 민족이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연례 행사를 제정했다.[22]
유대인의 현녀 에스더의 고사에서 유래한 축제이다. 성경 메길라의 한 책인 "에스더기"에 기록되어 있다.
2. 2. 성경 및 랍비 자료
퓨림의 기원과 관련된 주요 자료는 에스더기로, 히브리 성경의 24권 중 마지막으로 대회의 현자들이 정경으로 인정한 책이다. 이 책은 기원전 4세기로 추정되며[23], 탈무드에 따르면 모르드개가 쓴 원본을 대회가 수정했다.[24]미슈나의 메길라 (서기 200년경)에는 퓨림과 관련된 법률이 기록되어 있다. 토세프타 (같은 시기에 편집됨)와 게마라 (예루살렘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로 각각 서기 400년경과 600년경 편집됨)[25]에는 바스디 왕비가 벨사살의 딸이었다는 사실과 에스더가 왕족의 후손이었다는 요세푸스의 기록과 일치하는 세부 사항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에스더에 대한 간략한 언급은 Hullinhe (Bavli Hullinhe 139b)에 있으며, 하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산헤드린he (산헤드린he 61b)에서 논의된다.
에스더 라바는 두 부분으로 나뉜 미드라시 텍스트이다. 서기 500년경에 작성된 첫 번째 부분은 히브리어 에스더기의 처음 두 장에 대한 해석적 주석을 제공하며 타르굼 세니he의 자료를 제공했다. 두 번째 부분은 서기 11세기까지 편집되었을 수 있으며, 에스더기의 나머지 장에 대한 주석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요시폰he에서 발견되는 추가적인 맥락적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26]
유대인의 현녀 에스더의 고사에서 유래한 축제이다. 성경 메길라의 한 책인 "에스더기"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고, 유대인의 다수는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 각지로 강제 이주되었다 (바빌론 유수). 그 후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에스더기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고관이었던 하만은 유대인 학살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유대인을 지키려는 신의 뜻을 받은 에스더 및 모르데카이에 의해 저지되었다. 유대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부터 적대 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날은 후에 축일이 되었고, 연회를 열어 이 고사를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2. 3. 역사적 관점
1세기 CE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퓨림의 기원을 설명하며, 히브리어 에스더기를 따르지만 그리스어 버전의 추가 자료를 참고하여 아하수에로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로 비정했다.[27] 요세푸스는 페르시아의 유대인 박해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가 세운 사당에서 숭배를 강요받았다고 기록했다.[27][28]10세기 CE 유대교 역사 편찬물인 요십폰은 4장에서 퓨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성경 이야기를 따르며 그리스어 버전과 요세푸스의 추가적인 전통을 포함하지만, 편지의 세부 사항은 제외한다. 메디아의 다리우스를 키루스의 삼촌이자 장인으로 식별하는 등 유대교와 페르시아 역사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29]
이슬람 역사가 무함마드 이븐 자리르 알-타바리는 ''예언자와 왕들의 역사''에서 사건에 대한 간략한 페르시아 기록을 제공한다.[30] 알-타바리는 유대교와 기독교 자료를 바탕으로 "에스더"에 대한 원래의 페르시아 형태인 "아스투리야"와 같은 추가 세부 사항을 제공한다.[31] 그는 사건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통치 기간으로 보지만,[32]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와 혼동하고, 아하수에로를 공동 통치자의 이름으로 추정한다.[31] 마수디의 ''황금 초원''에도 간략한 페르시아 기록이 있다.[33] 그는 페르시아 왕 바흐만(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과 결혼하여 자신의 백성을 구원한 유대인 여성을 언급하며,[32][34][35] 아하수에로에 대한 이 식별을 입증한다. 페르도우시는 ''샤나메''에서 바흐만 왕이 쿠마이와 결혼했다고 언급한다.[36]
현대 성경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아하수에로를 크세르크세스 1세와 동일시한다.[37] 1890년대 이후, 여러 학자들은 퓨림이 유헤메리즘화된 바빌로니아 또는 페르시아의 신화나 축제에서 유래했다고 제안했지만,[38][39]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가설을 믿기 어렵다고 본다.[40]
유대인의 현녀 에스더의 고사에서 유래한 축제이며, 성경 메길라의 한 책인 "에스더기"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고,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를 겪었다. 그 후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에스더기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고관이었던 하만은 유대인 학살을 계획했으나, 에스더 및 모르데카이에 의해 저지되었다. 유대인들은 왕으로부터 적대 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날은 축일이 되었다.
3. 푸림의 의식과 관습
퓨림은 종교적인 성격보다는 민족적인 성격이 강하며, 그 지위는 토라에 의해 성스러운 날로 정해진 날들과는 다른 수준이다. 할렐은 낭송되지 않는다.[41] 따라서 일부 권위에 따르면, 푸림에는 특정한 상황에서 상거래와 육체 노동도 허용된다.[42] 특별 기도( – "기적을 위하여")는 저녁, 아침, 오후 기도 시간에 아미다 기도에 삽입되며, 또한 ("식후 은혜")에도 포함된다.
이 날의 네 가지 주요 미츠봇 (의무)는 다음과 같다:[43]
# 저녁과 다음 날 아침, 보통 회당에서 에스더기를 대중 앞에서 읽는 것을 듣는 것()
# 친구에게 음식 선물을 보내는 것()
#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
# 축제 식사를 하는 것()
마지막 세 가지 의무는 푸림의 낮 동안에만 적용된다.[43]


==== 메길라 읽기 ====
퓨림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정해진 첫 번째 종교 의식은 회당에서 에스더서("메길라")를 읽는 것이다. 이는 모르드개가 회원으로 알려진 대 회의 현자들에게서 유래된 규정이며, 탈무드(메길라 2a)에 기록되어 있다.[44] 원래 이 규정은 아다르 14일에만 준수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이후 랍비 여호수아 벤 레비(3세기 CE)는 퓨림 전날 저녁에도 메길라를 읽도록 규정했다.[44] 또한 그는 여성들도 메길라를 읽는 자리에 참석하도록 의무화했는데, 이는 여성들 또한 기적의 일부였기 때문이다.[44] 주석에서는 여성들이 기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 이유는 유대인들의 기적적인 구원이 여왕 에스더라는 여성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라슈밤).[44] 두 번째 이유는 여성들 또한 대량 학살 조치에 위협을 받았고, 따라서 기적의 동등한 수혜자였다는 것이다 (토사포트).[44]
탈무드는 메길라를 읽기 전에 세 번의 축복을, 읽은 후 한 번의 축복을 규정했다. 탈무드는 다른 조항들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읽는 사람은 하만의 열 아들의 이름을[45] 숨 쉬지 않고 한 번에 발음하여 그들의 동시적인 죽음을 나타내야 한다. 중세 시대에 시작된 또 다른 관습은 회중이 읽는 사람과 함께 에스더 2:5, 에스더 8:15–16, 에스더 10:3절을 큰 소리로 암송하는 것인데, 이는 모르데카이의 기원과 그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46]
메길라는 칸틸레이션(전통적인 창가)으로 읽는데, 이는 토라를 관습적으로 읽을 때 사용되는 것과는 다르다. 전통적인 칸틸레이션 외에도, 메길라에는 다른 창법으로 불리는 여러 구절 또는 짧은 구절이 있는데, 이는 애가서를 읽을 때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창법이다. 이 구절들은 특히 슬프거나, 유대인들이 망명해 있는 것을 언급한다. 메길라를 읽는 사람이 이 구절들에 대해 애가서의 선율로 전환하면, 듣는 사람의 슬픔을 고조시킨다.[47]
일부 지역에서는 메길라가 창법으로 불리지 않고, ("서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 때문에 편지처럼 읽힌다.[48] 게오님 시대의 초기 중세 시대부터, 메길라를 읽기 전에 전체를 펼쳐 서신의 모습을 보이게 하는 관습도 있었다. 할라카(유대 율법)에 따르면, 메길라는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언어로 읽을 수 있다.[49]
미쉬나 (메길라 30b)에 따르면,[50] 하만의 조상인 아말렉에 의한 유대인 공격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야 한다.
==== 메길라 읽기 전후 축복 ====
퓨림의 메길라 읽기 전, 밤과 아침에 다시, 메길라를 읽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 축복을 낭송하며, 각 축복이 끝날 때마다 회중은 "아멘"으로 응답한다.[51] 아침에 메길라를 읽을 때, 회중은 세 번째 축복이 메길라 읽기뿐만 아니라 그날의 다른 의식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51]
메길라 낭독 후, 낭독을 들은 회중 각 구성원은 다음 축복을 낭송한다.[51] 이 축복은 미니안이 메길라 낭독에 참석했을 경우에만 낭송된다:[51]
밤 메길라 낭독 후 다음 두 단락을 낭송한다:[51]
첫 번째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각 글자로 시작하는 두운시이며 "민족들의 꾀를 좌절시키고, 간교한 자들의 계획을 무효화한 자 (... 아셰르 헤니아/... אשר הניאhe)"로 시작하여 "악인이 우리에게 맞섰을 때 (... 베쿰 알레누/... בקום עלינוhe), 아말렉의 방탕한 사악한 가지..."로 시작하여 "야곱의 장미 (쇼샤나트 야아코브/ששנת יעקבhe)가 기뻐하며 기뻐했는데, 그들이 함께 모르드개를 왕실의 파란색으로 입은 것을 보았을 때. 당신은 그들의 영원한 구원이셨고 (테슈아탐 하예타 라네차흐/תשועתם הייתה לנצחhe), 모든 세대에 걸친 그들의 희망이셨습니다."로 끝난다.
두 번째는 밤에 낭송되지만, 아침 메길라 낭독 후에는 이것만 낭송된다.
쇼샤나트 야아코브 차할라 베삼하 비르오탐 야하드 테헬레트 모르데하이. 테슈아탐 하이타 라네차흐 베티크바탐 베콜 도르 바도르./שושנת יעקב צהלה ושמחה בראותם יחד תכלת מרדכי. תשועתם היית לנצח ותקותם בכל דור ודורhe
밤과 아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