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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역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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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대 역사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유대 예술과 역사를 주제로 한다. 1985년 설립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1998년 개관했으며, 마레 지구에 있는 생-아니앙 호텔을 사용한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에서 이스라엘 건국까지의 유대 역사를 다루며, 중세 시대 프랑스 유대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유대인, 하누카, 암스테르담 유대인, 예루살렘 순례, 동유럽 유대인, 세파르딕 유대인, 프랑스 혁명 이후 유대인 해방, 드레퓌스 사건, 유럽의 지적·정치적 운동, 20세기 유대인 예술 등을 전시한다. 또한, 현대 미술 전시와 프로 마흐제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파리 시와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 공립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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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역사 미술관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일반 정보
이름유대 예술 역사 박물관
원어 이름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 (프랑스어)
유형유대인 박물관
미술관
역사 박물관
역사적인 장소
위치 정보
위치파리 3구, 71 rue du Temple 75003 Paris,
대중 교통랑뷔토
오텔 드 빌
개관 및 운영 정보
개관1998년
관장폴 살모나
웹사이트유대 예술 역사 박물관 공식 웹사이트
이미지 정보
생테냥 저택 안뜰에 있는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동상
드레퓌스 대위의 동상 (생테냥 저택)
발음

2. 역사

1985년, 클로드-제라르 마르쿠스, 빅토르 클라그스발트, 알랭 에를랑드-브란덴부르크는 파리에 유대 예술 및 역사 박물관 설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계획은 파리 시와 문화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당시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이 지지했다.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는 파리에 중요한 유대교 박물관을 세우고, 중세 국립 박물관에서 이관된 국가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파리에는 뤼 데 소울(Rue des Saules)에 소규모 유대교 박물관이 있었다.

1988년부터 로렌스 시갈이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당시 파리 시장 자크 시라크는 박물관 부지로 마레 지구의 역사적인 건물인 생-아니앙 호텔을 제공했다. 마레 지구는 18세기 말부터 동유럽북아프리카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이 정착해 온 오랜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지였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카르나발레 박물관, 피카소 박물관, 쇼아 기념관 등이 위치한 문화 중심지라는 점이 부지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박물관은 1998년에 공식 개관했다.[1]

건물 내부는 건축가 카트린 비조아르와 프랑수아 팽이 재설계하여 영구 소장품 전시 공간 외에도 미디어 라이브러리, 강당, 서점, 교육 워크숍 공간 등을 마련했다. 박물관은 개관 이후 임시 전시, 교육 활동, 연구 공간 제공 등을 통해 역동적인 문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소장품은 시대와 주제에 따라 여러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주요 주제로는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유대 역사,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유대인, 하누카 축제, 암스테르담 유대인 공동체(디아스포라), 예루살렘 순례, 동유럽 유대인, 유대교 의례와 전통, 중동 및 마그레브 국가 유대인, 프랑스 내 유대인 해방 과정, 드레퓌스 사건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시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의 유대인 연구 및 정치 운동, 20세기 유대인 예술가 등이 포함된다.

2. 1. 설립 배경

1985년, 클로드-제라르 마르쿠스, 빅토르 클라그스발트, 알랭 에를랑드-브란덴부르크는 파리에 유대 예술 및 역사 박물관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파리 시와 문화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이 이를 지지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유대교를 주제로 하는 중요한 박물관을 파리에 세우는 것이고, 둘째는 중세 국립 박물관(현 클뤼니 미술관)에서 넘겨받은 국가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파리에는 뤼 데 소울(Rue des Saules) 거리에 유대교 관련 박물관이 있었지만 규모는 작았다.

1988년부터 로렌스 시갈이 프로젝트 책임을 맡았다.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박물관 부지로 마레 지구에 위치한 생-아니앙 호텔을 제공했다. 이 건물은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1942년 프랑스 비시 정부가 유대인을 탄압할 당시, 이곳에 살던 여러 주민이 체포되어 추방되었고, 그중 13명의 유대인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레 지구에 박물관을 세우기로 한 결정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한 것이었다. 18세기 말부터 많은 유대인이 마레 지구에 정착했으며, 처음에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이후 탈식민지화 시기에는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오늘날 마레 지구는 많이 변모하여 전통 상점 대신 세련된 디자이너 부티크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카르나발레 박물관, 피카소 박물관, 쇼아 기념관(홀로코스트 기념관) 등이 위치한 중요한 문화 중심지이다.

마침내 1998년, 유대 예술 및 역사 박물관(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뮈제 다르 에 디스투아르 뒤 주다이슴프랑스어, mahJ)이 문을 열었다.[1]

2. 2. 생-아니앙 호텔

생테니앙 관(Hôtel de Saint-Aignanfra)은 리슐리외 추기경과 마자랭 추기경을 섬긴 외교관 다보 백작(Comte d'Avauxfra)을 위해 왕실 건축가 피에르 르 뮈에(Pierre Le Muetfra, 1591-1669)가 설계하였다. 그는 마자랭 관의 설계자로도 알려져 있다. 건물은 안뜰과 거리에 면한 동(棟)을 갖춘 고전주의 양식으로 1644년에 착공하여 1650년에 완공되었다.[36] 이후 생테니앙 공작(Duc de Saint-Aignanfra)이 이 관을 구입하여 거주하였다.[36]

그러나 18세기 들어 새로운 주거 지역으로 포부르 생제르맹(Faubourg Saint-Germainfra)이 인기를 끌면서, 마레 지구의 귀족 저택 대부분은 버려지고 매각되어 공장, 학교, 저소득층 주택 등으로 사용되었다.[36] 프랑스 혁명 시기를 거치며 생테니앙 관은 1800년부터 1823년까지 관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36] 이후에는 분양되어 상층이 증축되고 장식이 추가되었으며, 콘크리트로 중간층이 만들어지는 등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르 뮈에 시대의 우아한 대회랑과 계단은 사라졌다.[36]

1910년경에는 조르주 오스만의 파리 개조 계획에서는 벗어났으나, 다양한 장인들이 거주하는 공동 주택이 되었고 건물은 점차 노후화되었다. 당시 난방에 석탄을 사용했던 탓인지 벽이 검게 변하는 등 외관도 크게 달라졌다.[36]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비시 프랑스 정부의 유대인 단속 과정에서 이곳에 거주하던 여러 주민이 체포되어 추방당했으며, 이들 중 13명의 유대인 거주자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다.[1]

황폐해져 가던 마레 지구는 1959년 샤를 드골 정부에서 앙드레 말로가 문화 담당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후 변화를 맞았다. 1962년 제정된 이른바 "말로 법"(Loi Malrauxfra)은 역사 문화유산 및 해당 지구 보존을 강조했다.[36] 이에 따라 마레 지구는 1964년부터 1967년 사이에 전체가 보존 지구로 지정되었고, 생테니앙 관을 포함한 주변 건물의 외관 세척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부적합한 건물은 철거되기도 했다.[36]

1988년,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유대 역사 미술관 부지로 생테니앙 관을 제공했다.[1] 이후 1980년대부터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본격적인 수리 및 개축 작업이 시작되었다. 역사 기념물 주임 건축가 베르나르 퐁케르니(Bernard Fonquerniefra), 고전 건축 전문가 클로드 미뇨(Claude Mignotfra), 건축가 카트린 비주아르(Catherine Bizouardfra)와 프랑수아 팽(François Pinfra) 등이 주도하여 복원 및 개조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17세기 귀족 저택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36] 박물관은 1998년에 개관했다.[1]

2. 3. 소장품 형성 과정

박물관의 영구 소장품은 세 가지 주요 출처에서 모였다.

첫 번째는 파리 유대 미술관( Musée d’Art Juif|fra )으로, 이곳의 소장품이 유대 역사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주로 유럽 종교 유물, 러시아 및 독일 유대인 예술가와 파리 학파 예술가들의 그래픽 작품, 나치에 의해 파괴된 유럽 시나고그의 건축 모형으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출처는 파리의 클뤼니 박물관( Musée national du Moyen Âge|fra )이다. 이 컬렉션은 19세기 프랑스 유대인인 이삭 스트라우스에 의해 구축되었다.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가구, 의례용품, 히브리어 필사본을 포함하여 149점의 종교 유물을 수집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성스러운 아치, 결혼 반지, 채색된 케투봇(결혼 계약서) 등이 그의 컬렉션에 있는 유물의 예시이다. 스트라우스는 유대교 유물 최초의 수집가로 여겨진다. 그의 컬렉션 일부는 1878년 만국 박람회 동안 전시되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컬렉션은 1890년 나다니엘 드 로스차일드 남작 부인에게 인수되었다. 그녀는 이후 이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했고, 이는 클뤼니 박물관 소장품이 되었다.[2] 1894년 피에르-사라진 거리에서 발견된 66점의 희귀한 중세 장례비는 클뤼니 박물관에서 장기 대여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출처는 퐁피두 센터( Centre Georges Pompidou|fra ),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fra ), 루브르 박물관( Musée du Louvre|fra ), 국립 아프리카 및 오세아니아 예술 박물관( Musée national des Arts d'Afrique et d'Océanie|fra )과 같은 박물관의 장기 대여품이다. 박물관의 컬렉션은 파리 공의회( Consistory|fra )와 프라하 유대인 박물관, 프랑스 유대교 재단( Fondation du Judaïsme français|fra )의 기증으로 더욱 풍성해졌다.[3] 박물관은 또한 대규모 사진 컬렉션을 인수했다. 이 컬렉션은 주로 과거와 현재의 유대인 공동체, 역사적 사건, 유대교 건축 유산에 대한 1,500점 이상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다.

3. 주요 전시 및 소장품

영구 소장품은 각 전시실마다 특정 시대의 역사적 관점, 유대교의 특정 영역에 대한 주제, 그리고 특정 장소라는 세 가지 차원을 결합하여 구성되어 있다.[12] 이를 통해 유럽과 북아프리카 유대인 공동체의 의례, 신념, 예술, 물질 문화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프랑스 유대인의 상황은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세파르딤 유대인이 공존하고 두 전통이 섞인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닌다.

푸림 축제 자선함, 스페인, 1319년


소장품은 테마별로 다음과 같은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3. 1. 중세 시대 프랑스 유대인

''중세 묘석,'' 파리, 13세기, 석회암, 파리 국립 중세 박물관 장기 대여


중세 시대 프랑스 유대교는 11세기의 저명한 랍비라시와 같은 사상가들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풍요로운 문화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유대인 공동체는 여러 차례 박해를 겪었으며, 1306년에는 필리프 4세에 의해 프랑스에서 추방되었고, 1394년에는 샤를 6세에 의해 완전히 추방되었다.[21][22]

이 시기를 다루는 전시실의 핵심 유물은 1849년에 발견된 13세기 파리 유대인 묘지의 묘석 컬렉션이다. 이 묘석들은 프랑스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고고학 유물 세트라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모든 묘석에는 히브리어 비문이 새겨져 있어, 중세 시대 파리에서의 유대인 존재를 증명하는 동시에 유대인 공동체의 귀중한 역사적 문서 역할을 한다.[8]

묘석 외에도, 가장 안쪽 전시 케이스에는 귀중한 필사본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유대인이 프랑스에서 추방되기 전 시기의 희귀한 의례용품 4점(예: 하누키야 촛대)이 전시되어 중세 유대교 생활의 깊이를 보여준다. 방문객들은 전시를 통해 당시 유대인 공동체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지식이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공유되었는지, 그리고 유대인이 기독교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21][22]

3. 2.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유대인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이탈리아는 통일 국가가 아니었기에 유대인의 삶과 존재는 지역마다 달랐다. 이 전시 공간은 모데나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며, 이탈리아 유대교 세계의 희귀 유물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성궤, 아론 하코데시,'' 모데나, 1472년, 조각 및 상감 나무, x x , 파리 국립 중세 박물관 장기 대여


특히 1472년 모데나 회당의 성궤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현존하는 유일한 15세기 아슈케나짐 성궤로, 요새화된 탑 형태를 연상시키는 구조와 디자인이 특징이다. 성궤에 새겨진 "주님의 이름은 의로운 자가 피난처를 찾는 튼튼한 망루와 같습니다."[11]라는 비문은 이러한 특징을 더욱 강조한다. 이 성궤는 르네상스 시대 상감 세공 예술에 뛰어났던 이탈리아 예술가 로렌조 카노치와 크리스토포로 카노치 형제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회당 가구를 만들기 위해 명망 높은 예술가들에게 의뢰했음을 보여준다. (잠언 30:10)

성궤 외에도 토라 같은 장식 필사본, 제례용 은세공품과 자수 등 다양한 회당 가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이 유물들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예술의 정교함을 드러낸다.

유대인의 생애 주기(출생, 할례, 바르 미츠바(성인식), 결혼)와 관련된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은으로 만든 물건, 보석, 필사본 등을 통해 당시 풍습을 엿볼 수 있으며, 채색된 결혼 계약서(케투보트)가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다.

또한, 18세기 베네치아 유대교 생활의 종교적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도 볼 수 있다. 베로나 출신 화가 마르코 마르코라(1740-1793)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은 탄생, 할례, 바르 미츠바, 결혼 등 당시 유대교 의식을 보여준다. 알레산드로 마냐스코(1667-1749)의 1720년 걸작 '유대인의 장례'는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그려졌는데, 극적인 표현과 고뇌에 찬 분위기 속에서도 세부 묘사를 통해 유대교 관습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현실감을 유지한다. 마냐스코는 유대교 관련 주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회당을 묘사한 그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3. 3. 하누카

하누카 기념일을 위한 방 전체가 마련되어 있다. 이 방에는 다양한 기원과 시대의 하누키야(Hanukkiyot)를 포함한 특별한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이 파노라마는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과 지배적인 문화에의 정착에 대한 은유"로 여겨진다.[13] 유대교의 빛의 축제인 '하누카'의 제구만을 모아 놓은 이 전시실의 하누키야 컬렉션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예멘, 튀니지, 이스라엘 등 다양한 국가에서 수집되었으며, 이는 디아스포라 역사의 일면을 보여준다.[24]

3. 4. 암스테르담: 두 디아스포라의 만남

이 전시실은 유대인과 다른 민족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다. 17세기와 18세기 네덜란드 판화 소장품에는 1492년 스페인 유대인 추방령 이후 스페인 유대인의 방랑을 묘사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1711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프랑스 판화가 베르나르 피카르(1673-1733)의 "세계 모든 민족의 의례와 종교 관습"이라는 아름다운 연작은 1496년부터 1497년에 걸쳐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 암스테르담, 런던, 보르도의 공동체에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는 공동체 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진열장에는 인쇄술의 걸작인 희귀한 책들을 통해 히브리어 인쇄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3. 5. 예루살렘으로의 순례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 중 하나는 19세기 오스트리아 또는 독일 남부에서 제작되어 초막절에 사용된 초막(סוכה|수카heb)을 복원한 것이다.[26][9]

''초막절을 위한 초막,'' 수카, 오스트리아 또는 남부 독일, 19세기 후반, 채색된 소나무, x


이 잘 보존된 초막의 내부 패널에는 오스트리아나 독일 마을 풍경, 십계명의 첫 구절, 그리고 예루살렘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9][26] 이 초막은 다른 의례용품 및 텍스트와 함께 유월절, 칠칠절(샤부오트), 초막절(수코트) 등 3대 순례 축제를 보여주며, 유대교 의식에서 예루살렘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위치를 강조한다.[26]

3. 6. 아슈케나지 유대인 (동유럽)

아슈케나짐 유대인(동유럽 국가에 정착한 유대인)에 초점을 맞춘 전시실에는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시나고그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시나고그는 나치 독일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모형들은 사라진 세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27]

''유대인 묘지'', 사무엘 히르젠베르크(1892)


유대계 폴란드 화가 사무엘 히르젠베르크(1865-1908)의 『유대인 묘지』(1892년)는 19세기 말 폴란드러시아에서 벌어진 포그롬으로 인해 유대인 공동체가 겪었던 어려운 생활 환경과 고통을 섬뜩하게 묘사한다.

''아버지'', 마르크 샤갈(1911)


슈테틀(동유럽의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의 생활을 그린 마르크 샤갈(1887-1985)의 그림 두 점은 당시 유대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진열장에는 안식일, 기도, 전례를 주제로 한 전시물들이 있으며, 이를 통해 19세기 종교 연구와 사상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볼 수 있다.[27] 아들의 할례 시 사용된 리넨 띠인 마포트의 특별한 컬렉션도 전시되어 있다. 마포트는 프랑스 동부에서만 사용되었다.

3. 7. 세파르딕 유대인

프랑스 유대인의 상황은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세파르딕 유대인이 공존하고 두 전통이 섞인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세파르딕 컬렉션은 아슈케나지 컬렉션에서 다루는 주제와 유사한 내용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두 전통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세파르딕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은 지역별로 다양한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컬렉션에 포함된 다채로운 직물, 회당에서 사용된 은제품, 일반 가정용품, 대중 예술 작품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컬렉션은 마그레브, 오스만 제국, 중동 지역 유대인들의 풍부한 전통과 가족 의식, 그리고 화려한 의상을 보여주는 광범위한 민족지학적 유물을 포함하고 있다.[29]

특히, '''Kswa el Kbirah'''는 "베르베리스카"라고도 불리는 모로코 서부 해안 도시의 전통적인 신부 드레스이다. 스커트, 보디스, 자수 볼레로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디자인에는 스페인 문화의 영향이 나타난다. 많은 모로코 가정에서는 이 의례복을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물려주었다. 탈식민지화 이후 프랑스에 정착한 모로코 유대인 가족들이 이러한 의상 여러 벌을 박물관에 기증했다.[10]

''의례복'', Kswa el Kbirah, 모로코 테투안, 19세기 후반, 실크 벨벳, 금색 브레이드, 프린트 패턴 안감, x


은제 토라 케이스와 토라 두루마리, 오스만 제국, 1860년


컬렉션에는 결혼 관련 민족 의상 외에도 회당의 금은 세공품, 오리엔탈리즘 회화와 판화, 오래된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삶과 문화를 보여준다. 또한, 부유층의 화려한 문화와 대조적으로 가난한 서민들의 일상용품과 그들의 생활을 묘사한 인쇄물 등도 함께 전시되어 세파르딕 유대인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한다.[29]

3. 8. 유대인 해방: 프랑스 모델

프랑스에서 유대인 해방의 시대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되었으며, 1790년과 1791년에 걸쳐 유대인은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 섹션은 19세기 프랑스 유대교의 변화와 사회 통합 과정을 조망한다. 특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원 아래 프랑스 유대교 공동체를 조직하기 위해 설립된 종무원(1808년)과 1905년 국가의 세속주의 확립 등 유대인의 현대 사회 통합에 있어 중요한 계기들을 다룬다. 이러한 역사적 순간들은 알퐁스 레비, 에두아르 브랜든, 에두아르 모이즈, 사무엘 히르젠베르크, 마우리치 고틀리브, 마우리치 민코프스키 등 프랑스와 유럽 예술가들이 유대교적 주제를 그린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유대교 미술이 단순히 종교 의례나 전통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마침내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당시 많은 유대인 예술가들은 보자르의 전통을 따르는 데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 사회에서 유대인들의 지위 상승은 배우 라셸, 정치인 아돌프 크레미외, 금융가 페레이르 형제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 분야 저명인사들의 초상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14] 아돌프 크레미외는 유대인의 지위 개선을 위한 법령 제정에도 기여했다.[30]

이 섹션에는 또한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손자녀들이 기증한 드레퓌스 재단의 기록 보관소 덕분이다.[15]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육군의 유대인 대위였던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잘못 기소되었다가 수년 후에야 무죄 판결을 받은 일이다. 박물관이 소장한 관련 기록 보관소는 3,000점 이상의 필사본, 편지, 사진, 가보, 공식 문서 등으로 구성되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3. 9. 드레퓌스 사건

이 섹션에는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손자녀들이 기증한 특별한 기록 보관소인 드레퓌스 재단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15]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주요 사건으로, 프랑스 육군의 유대인 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잘못 기소되었다가 수년 후에야 무죄 판결을 받은 일이다.

박물관의 드레퓌스 관련 기록 보관소는 3,000점이 넘는 필사본, 편지, 사진, 가보 및 공식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15] 이는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가장 큰 규모의 문서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소장 자료에는 알프레드 드레퓌스와 그의 아내가 주고받은 편지, 재판 관련 법적 문서 및 사진, 드레퓌스가 투옥 중 작성한 글, 개인적인 가족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드레퓌스 대위의 가족이 기증한 사건 관련 사료 2,700부가 전시 중이다.[32]

이 특별한 기록 보관소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들은 박물관 영구 소장품의 일부로서 특별 구역에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 도서관에는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300권 이상의 출판물이 소장되어 있다. 2006년에는 드레퓌스 사건에 관한 온라인 플랫폼[15] '퐁 드레퓌스(Fonds Dreyfus)' 웹페이지를 개설하여, 드레퓌스 대위의 손자녀들이 기증한 3,000점 이상의 문서, 편지, 사진 및 역사 기록 보관소 자료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박물관 안뜰 중앙에는 프랑스 예술가 루이 'TIM' 미텔베르그(Louis ‘TIM’ Mitelberg)가 1986년에 제작한 조각상의 복제품이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은 높이 2.4m이며, 부러진 칼을 들고 있는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3. 10. 유럽의 지적, 정치적 운동

이 섹션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 유대인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지적, 정치적 활동을 다룬다. 프랑스독일에서의 유대학 발전과 초기 유대사 연구자들의 활동이 소개된다.

주요 내용으로는 시온주의의 등장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유대 민족 운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와 함께 히브리어 부활 운동이 일어나 언어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또한, 이디시어는 문학과 문화를 중심으로 번성했으며, 관련 극장과 신문도 활발히 운영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지에서 총유대 노동자 동맹(분트)와 같은 노동자 운동이 조직되어 유대인 사회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 건국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3. 11. 20세기 유대인 예술

이 섹션은 20세기 초 독일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 문화 부흥을 조명하는 종이 작품과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는 당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유대인 유산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예를 들어, 마르크 샤갈의 '유대인 묘지' 묘사는 작가가 최근 조부의 무덤을 발견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언자 에스겔의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 백성들아, 너희를 무덤에서 일으키리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리라." (에스겔 37:12)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7] 박물관은 이러한 중요하면서도 때로는 잊힌 예술가들의 형식적, 양식적 특징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시된 작품들은 유대교 테마를 중심으로 민속, 장식 모티프, 성경 주제, 서예 등을 다룬다.

특히 20세기 초 파리파에 속했던 유대인 예술가들의 세계 미술에 대한 기여를 집중 조명한다. 여기에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 쥘 파생(1885-1930), 차임 수틴(1893-1943), 미셸 키코인(1892-1968), 모이즈 키슬링(1891-1953), 자크 립시츠(1891-1973), 차나 오를로프(1888-1968) 등이 포함된다.[16][34] 이들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현대 사회와의 관계는 유대 미술이 더 이상 종교적인 주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16]

박물관은 또한 조각가 자크 립시츠와 관련된 1,000건 이상의 문서 아카이브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17] 여기에는 많은 사진과 원고가 포함되어 있다.

안뜰 벽면에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설치 미술 작품 '1939년 생테냥 관의 주민'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나치 독일의 침공 직전인 1939년까지 이 건물(생테냥 관)에 살았던 가난한 장인들, 그중 다수가 유대인이었던 80명의 이름을 기록하여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게 한다.[35]

3. 12. 1939년 파리의 유대인

박물관은 20세기 초 파리로 이주하여 생을 마감한 동유럽,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들의 삶을 추적한다. 이들의 행적은 생-아니앙 호텔로 이어진다. 박물관은 파리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삶을 기록한 여정을 제공하며, 마레 지구의 유대인 생활, 공동체 조직, 그리고 이들이 강제 이주되기 전 사라진 공동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대 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박물관 내부의 작은 안뜰에 설치 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1939년 생-아니앙 호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까지 생-아니앙 호텔에 살았던 유대인을 포함한 가난한 장인 등 평범한 거주자 80명의 이름을 기록하여, 전쟁 전 이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드러낸다.[35]

''1939년 생-아니앙 호텔 사람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98)

4. 현대 미술 전시 및 활동

유대 역사 미술관은 임시 전시회를 개최하여 현대 유대 미술을 장려한다. 예를 들어, 2016년 11월에는 현대 이스라엘 예술가 시갈리트 란다우의 임시 설치 작품인 ''미클라트''(피난처)가 박물관 안뜰에 전시되었다. 박물관은 또한 이스라엘 예술가 모셰 니니오의 작품 두 점, ''유리(들)''과 ''모르겐''을 선보였다. 과거 박물관은 소피 칼, 고틀립,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미셸 네자르, 미차 울만과 같은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5. 기타

(내용 없음)

5. 1. 프로 마흐제 재단 (Foundation Pro mahJ)

프로 마흐제 재단은 2003년에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특히 전시회 및 출판물에 대한 재정 지원과 소장품 확충을 통해 유대 역사 미술관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화가 Michel Kikoïne|미셸 키코인프랑스어의 딸인 Claire Maratier|클레르 마라티에프랑스어(1915–2013)가 설립을 주도했다. 재단은 박물관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부금과 유산을 받으며, 기부자들을 위한 특별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또한 2년마다 현대 미술가에게 마라티에 상을 수여한다.

5. 2. 지위

유대 역사 미술관은 비영리 단체이다. 이 미술관은 파리 시와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공립 박물관이다. 이사회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19]

구분인원
문화부 대표5명
파리 시 대표5명
유대교 기관 대표6명
프로 마흐(Pro mahJ) 재단 선출4명


참조

[1] 서적 Museum Guide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 2003
[2] 서적 Guide du patrimoine juif parisien éditions Parigramme 2003
[3] 웹사이트 Fondation du Judaïsme Francais - Fondation du Judaïsme Francais http://www.fondation[...]
[4] 웹사이트 Statuts https://www.mahj.org[...] 2015-11-03
[5] 간행물 Museum of Jewish art and history Connaissance des arts 2016
[6] 논문 Le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 De l'origine à l'aboutissement Ecole du Louvre 1999
[7] 간행물 Museum of Jewish art and history Connaissance des arts 2016
[8] 간행물 Museum of Jewish art and history Connaissance des arts 2016
[9] 서적 Museum Guide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isme 2003
[10] 서적 Museum Guide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isme 2003
[11] 서적 Museum Guide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isme 2003
[12] 논문 Le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 De l'origine à l'aboutissement Ecole du Louvre 1999
[13] 간행물 Un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ïsme à Paris
[14] 서적 The Jews of France. A History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15] 웹사이트 Fonds Alfred Dreyfus https://www.mahj.org[...] 2015-11-03
[16] 서적 Guide du patrimoine juif parisien éditions Parigramme 2003
[17] 웹사이트 Collections en ligne https://www.mahj.org[...]
[18] 뉴스 Ouverture du musée d'art et d'histoire du judaisme Journal Communauté Nouvelle 1998-12
[19] 웹사이트 La fondation Pro mahJ https://www.mahj.org[...] 2015-11-03
[20] 뉴스 Musée https://www.mahj.org[...] 2018-08-05
[21] 뉴스 2. De l’Antiquité au Moyen Âge https://www.mahj.org[...] 2016-07-29
[22] 뉴스 ユダヤ芸術歴史博物館コレクション展 http://www.shift.jp.[...] 2018-08-05
[23] 뉴스 3. Les juifs en Italie de la Renaissance au XVIIIe siècle https://www.mahj.org[...] 2016-07-29
[24] 뉴스 4. Hanoukkah : la fête des Lumières https://www.mahj.org[...] 2016-08-02
[25] 뉴스 5. Amsterdam : la rencontre de deux diasporas https://www.mahj.org[...] 2016-08-02
[26] 뉴스 6. L’an prochain à Jérusalem https://www.mahj.org[...] 2016-08-02
[27] 뉴스 7. Les juifs en Europe orientale https://www.mahj.org[...] 2016-08-02
[28] 뉴스 8. Rites et traditions https://www.mahj.org[...] 2016-08-02
[29] 뉴스 9. Les juifs au Levant et au Maghreb https://www.mahj.org[...] 2016-08-26
[30] 뉴스 解放」後のアルザス・ユダヤ人社会 ―バ・ラン県の事例を中心に―(近代フランスにおけるユダヤ人社会 ―アルザス・ユダヤ人の分析を中心に―)川﨑亜紀子 2009-04
[31] 뉴스 10. L’Émancipation : le modèle français https://www.mahj.org[...] 2016-08-29
[32] 뉴스 11. De l’affaire Dreyfus à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https://www.mahj.org[...] 2016-08-29
[33] 뉴스 12. Mouvements intellectuels et politiques juifs en Europe à la fin du XIXe et au début du XXe siècle https://www.mahj.org[...] 2016-08-29
[34] 뉴스 13. Présences juives dans l’art du XXe siècle https://www.mahj.org[...] 2016-08-29
[35] 뉴스 Les Habitants de l’hôtel de Saint-Aignan en 1939 https://www.mahj.org[...] 2016-12-12
[36] 논문 유대 예술 역사 박물관과 파리 마레 지구 http://id.nii.ac.jp/[...] 加計学園倉敷芸術科学大学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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