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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라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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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 라너는 20세기 독일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이다. 그는 예수회 소속으로, 철학과 신학을 연구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문가 고문으로 활동하며 교회의 교리적 발전에 기여했다. 라너는 '초월 신학'을 통해 인간의 하느님 경험을 설명하고,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을 제시하여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주요 저서로는 《신학과 교회 사전》, 《기독교 신앙의 기초》 등이 있으며, 그의 사상은 현대 가톨릭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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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라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레티치아 만치노 크레머의 카를 라너 초상화
레티치아 만치노 크레머의 라너 초상화
존칭 접두사성직자
이름카를 라너
존칭 접미사SJ
출생일1904년 3월 5일
출생지독일 제국 바덴 대공국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
사망일1984년 3월 30일
사망지오스트리아 티롤 인스부르크
소속예수회
교육
모교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인스부르크 대학교
철학적 배경
지역서양 철학
시대20세기 철학
학파/전통초월적 토마스주의
주요 관심사그리스도론
삼위일체
신앙
주요 사상무명의 그리스도인
경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
초자연적 실존
일상적 신비주의
하느님의 자기 소통
영향
영향을 준 인물마르틴 하이데거
토마스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이냐시오 데 로욜라
오리게네스
임마누엘 칸트
에리히 프지바라
조제프 마레샬
신토마스주의
영향을 받은 인물프랜시스 A. 설리번
요한 밥티스트 메츠
욘 소브리노
캐서린 태너
토마시 할리크
캐서린 라쿠냐
헤르베르트 포어그림러
칼 레만

2. 생애

190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22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철학신학뮌헨, 팔켄부르크(네덜란드), 프라이부르크, 인스부르크 등지에서 공부했으며, 1932년 뮌헨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1937년부터 인스부르크, 뮌헨, 뮌스터 대학교 등에서 신학 교수로 활동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신학 자문으로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침묵을 비판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고, 이는 가톨릭교회가 사회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19] 그는 "무명의 그리스도인" 개념 등을 통해 현대 가톨릭 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1971년 공식적으로 은퇴한 후에도 학문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으며, 198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별세하였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0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카를 라너와 루이제 라너(결혼 전 성씨 트레셔) 부부의 일곱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방 대학의 교수였고,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어 가정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형 위고 라너 역시 예수회원이었다. 카를 라너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인 1922년, 형 위고가 입회한 지 4년 만에 예수회 북독일 관구에 입회하여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초기(1922~24)에는 로욜라의 이냐시오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다음 단계(1924~27)에서는 가톨릭 스콜라 철학과 현대 독일 철학, 특히 이마누엘 칸트, 벨기에 예수회 신부 조제프 마레샬, 프랑스 예수회 신부 피에르 루셀로의 사상에 집중했다. 이들은 라너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마레샬과 루셀로는 칸트의 초월적 방법을 토미즘 인식론과 연결하는 통찰을 제공했다.

예수회 훈련의 일환으로 1927년부터 1929년까지 펠트키르히에서 수련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쳤다. 1929년에는 네덜란드 발켄부르흐 안 데르 휠에 있는 예수회 신학원에서 신학 연구를 시작하여 교부 신학, 영성 신학, 신비주의, 경건의 역사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쌓았다.

1932년 7월 26일 뮌헨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라반탈 계곡의 성 안드레에서 영신수련을 연구하고 수행하는 마지막 수련 단계(테르티움)를 거쳤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학 교수가 되기 위해 1934년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와 철학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칸트와 마레샬의 철학을 더 깊이 연구했다. 박사 학위 논문으로 아퀴나스의 인식론을 마레샬의 초월적 토미즘과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통해 해석한 《정신과 세계》(Geist in Welt|가이스트 인 벨트de)를 제출했다. 그러나 지도교수 마르틴 호네커는 이 논문이 하이데거 철학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고 가톨릭 신-스콜라주의 전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 논문은 훗날 1939년에 출판되었다.

1936년 인스브루크로 가서 신학 연구를 계속했으며, 그곳에서 대학 교수 자격 심사(하빌리타치온)를 통과했다. 1937년 7월, 인스브루크 대학교 신학부의 강사로 임명되었다.

2. 2. 학자로서의 활동

1924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철학신학뮌헨, 팔켄부르크(네덜란드), 프라이부르크, 인스부르크에서 공부했다. 1932년 뮌헨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1937년부터 인스브루크, 뮌헨, 뮌스터 대학교 등에서 신학자로 활동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신학 자문으로 활약하며 이브 콩가르 등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라너는 독일유럽로마 가톨릭교회교회의 안위를 우선시하여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침묵했던 과거를 비판하며, 교회의 사회역사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가 사회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다.[19]

라너의 저술은 방대한 양으로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는 10권 분량의 ''신학과 교회 사전''(Lexicon für Theologie und Kirchedeu), 6권 분량의 신학 백과사전인 ''사크라멘툼 문디''(Sacramentum Mundilat)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수많은 저서, 에세이, 논문을 남겼다. 그가 편집한 참고 문헌들도 그의 신학적 견해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4년 라너 인터뷰


라너 신학의 핵심은 모든 인간이 삶 속에서 의미를 찾거나 "초월적 경험"을 통해 잠재적으로 하느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원시 계시가 있기에 기독교 복음과 같은 특별한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6] 또한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신의 구원이 열려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타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그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가톨릭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 그의 사상은 미국 가톨릭 신학계에도 영향을 주었다.[7] 그의 저작이 다소 어렵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의 형인 휴고 라너가 은퇴 후 "동생의 글을 독일어로 번역하겠다"고 농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8]

1971년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학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1973년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상을 수상했다. 1984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사망했다.

2. 3. 은퇴 이후 및 죽음

1971년 은퇴한 이후에도 학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1973년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4년 3월 30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3. 주요 사상



카를 라너는 방대한 저술 활동으로 유명하며, 대표적으로 10권 분량의 ''신학과 교회 사전''(de), 6권의 신학 백과사전 ''사크라멘툼 문디''(la) 등이 있다. 그의 저술과 편집 작업은 그의 신학적 견해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너 신학의 근간은 모든 인간이 삶 속에서 겪는 초월적 경험을 통해 잠재적으로 하느님을 경험한다는 생각에 있다. 그는 이를 원시 계시라 보았고, 이것이 기독교 복음과 같은 특별한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6] 이러한 그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사상은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가톨릭 신학계에도 영향을 주었다.[7]

그는 인간 실존의 완성이 하느님의 자기 의사 전달(자기 통교)을 받아들이는 데 있으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자기 통교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았다. 라너는 은총을 하느님의 자기 통교 자체와 동일시했다.

또한 라너는 반종교개혁 시대의 경직된 명제 중심 신학을 비판하며, 신에 대한 언어는 궁극적으로 신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 경험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비가 항상 존재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12][13] 라너 자신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가장 중요한 사상적 기반으로 꼽았지만, 하이데거 역시 "나의 스승"이라 부르며 높이 평가했다.[14] 일부 학자들은 라너가 전통적인 존재의 유비 개념을 약화시켰다고 보기도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그의 사상이 요제프 마레샬과 같은 20세기 초 신토마스주의자들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고 분석한다.[6]

라너는 가톨릭 신앙을 현대적 감각으로 이해하고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노력했으며, 특히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타 종교인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하며 종교 간 이해의 폭을 넓히려 했다.

3. 1. 초월 신학

라너는 인간 실존의 완성이 하느님의 자기 통교를 수용하는 데 있으며, 인간은 실제로 이 신성한 자기 통교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은총을 하느님의 자기 통교와 동일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느님은 자신을 전달하고 싶어하며, 바로 그 자신이신 사랑을 쏟아내고 싶어하신다. 그것이 그의 실제 계획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따라서 그의 실제 세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것은 이 한 가지를 위해 존재한다. 무한한 사랑의 영원한 기적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사랑할 수 있는 피조물을 만드신다. 그분은 인간을 만드신다. 그분은 인간을, 그 자신이신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즉 언제나 놀라운 경이, 예상치 못한, 요구받지 않은 선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알 수 있도록 창조하신다 [...] 따라서 이 두 번째 측면에서 하느님은 사랑이 자유롭고 요구받지 않게 쏟아질 뿐만 아니라, 진정한 파트너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이 요구받지 않은 사건과 그에게 빚진 것이 아닌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해야 한다. 그는 진정한 인간이다.[9]


라너 신학의 기초는 모든 인간이 유한한 주체로서 지식이나 자유에 제한을 받는 모든 경험에서 잠재적("비주제적")인 하느님 인식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지식과 자유의 "가능성의 조건"이므로, 라너는 이 경험을 "초월적"이라고 묘사하기 위해 칸트의 용어를 차용했다.[3] 이러한 초월적 경험 요소는 마레샬의 초월적 토미즘과 유사성을 보인다.

라너의 "하느님에 대한 자연 지식"—"특별" 계시 이전에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하느님에게는 라너가 "절대적 신비"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점근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명시적 증명들은 결국 인간 본질 자체를 구성하는 초월적 필연성, 즉 신비를 향한 불가피한 지향성을 가리킬 뿐이다.

카를 라너는 종종 "신(God)"이라는 용어 대신 "신비(mystery)"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그는 절대 존재로서의 신을 절대 신비와 동일시한다. 최선의 경우에도 철학은 신에게 단지 점근적으로 접근할 뿐이며, 이는 신을 아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점근적 접근과 신비 자체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가?

라너의 신학에서 절대 신비는 자기 통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계시가 신비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불가해성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킨다. 자기 자신의 신비에 대한 경험은 사람들을 절대 신비, "언제나 더 큰 신비"로 이끈다. 천국에서조차 신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 남을 것이다.

3. 2. 익명의 그리스도인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복음을 직접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카를 라너의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종종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서인 ''인류의 빛''(Lumen gentium)과 연관 지어 설명되기도 한다. ''인류의 빛''은 "자신의 잘못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은총에 감동하여 양심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알고 행하려는 사람들도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18] 라너는 공의회 이전부터 이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공의회 이후 더욱 강조하였다. 그는 비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계시를 직접 듣지 못했더라도, 그들의 기본적인 삶의 방향과 근본적인 선택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보았다.

라너의 "초월적 기독론"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장시킨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가 비그리스도인에게까지 미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역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라너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총이 다른 종교무신론인본주의 안에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이들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라너에 따르면, 다른 종교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을 통해 나타난다. 비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절대적 구원자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탐구하는' 기억"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세 가지 태도는 다음과 같다.

# 이웃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세

#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태도

이러한 태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예수의 삶에서 온전히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행동하고 응답하는 것이라고 라너는 설명했다.

프라이부르크 출신의 라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브 콩가르 등과 함께 신학 자문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가톨릭 교회가 현대 사회와 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리고 항상 인간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며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은 이러한 그의 신학적 노력의 대표적인 예로, 타 종교 신자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3. 3. 삼위일체론

라너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인 《삼위일체》에서 그의 삼위일체론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책에서 "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때때로 '라너의 규칙'이라고 불린다. 이는 하느님이 자신의 실제 모습(내재적 삼위일체) 그대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관계 맺으신다는 것(경륜적 삼위일체)을 의미한다.

라너는 이러한 주장이 양태론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하느님이 실제로 삼위일체가 아니라면, 삼위일체로서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양태론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르겐 몰트만과 같은 일부 신학자들은 라너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3. 4. 성체성사 (Transfinalization)

라너는 실체론을 비판하며 전례의 목적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성변화를 설명하는 용어로 'transfinalization'(목적 변화)을 제안했다. 신학자 존 홀든(John Haldon)은 'transfinalization'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에 대한 관점으로, 축성 기도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목적이나 최종성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적 사랑의 신비를 통해 신자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요소로서 새로운 기능을 수행한다고 여겨진다.[10]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Mysterium fidei''에서 라너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transfinalization'이라는 용어를 한 차례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 [...]전체가 놀랍게 변화하는 것에 대해 트리엔트 공의회가 말한 것을 언급하지 않고 성변화의 신비를 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 마치 그것들이 "전의미(transignification)" 또는 그들이 부르는 "transfinalization"과 같은 것 이상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홀든은 ''Mysterium fidei''에서 교황 바오로 6세가 "transfinalization" 개념을 사실상 "정죄"했으며, 이는 "그 당시 이미 유행했던 성체 현존에 대한 주요 오류"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고 지적한다.

3. 5. 기독론

라너에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성육신-은총'(Incarnation-grace)의 공존성이다. 이는 하느님이 자신을 전달했다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설명하는 용어로, 하느님의 자기 의사 전달은 은총이 하느님과 다른 어떤 '실체'가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라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하느님 자기 의사 전달의 중심으로 보며, 은총이 계시의 객관적 실재(육화된 말씀)와 주관적 원리(내적 말씀과 성령) 모두의 구성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객관적 중재가 주관적으로 '항상 이미' 주어진 것의 명시적 "주제화"라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초월적 지평 '내부'에서 초자연적 실존을 통해 '항상 이미' 제공되는 것(은총)이 역사 '외부'에서 범주적으로 표현되어 절정에 이른 현현이다.[11]

라너는 예수주의에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그것이 기독교의 이나 교회와 별개로 예수의 삶 모방에만 좁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칼케돈 공의회(서기 451년)가 제시한 고전적 기독론 공식("한 분이신 동일한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신성과 인성 모두 완전하며 ... [어떠한] 혼합이나 변화, 분열 또는 분리 없이 ... 한 인격 안에서 연합")에 대해, "세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대적 사고방식" 내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인간 역사 전체와 그리스도의 사건을 결합할 가능성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개별성으로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고전적 공식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15] 더욱이, 칼케돈 공식은 더 이상 종교적 경험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 '본성' 및 '위격적 연합'과 같은 철학적 개념을 채택한다는 점도 지적했다.[16]

기독론의 다양한 기독론적 입장과 그 이름을 설명하는 기독론 흐름도


따라서 라너는 그리스도의 사건과 인격을 인간의 본질적 구조와 관련하여 해석하는 초월 기독론을 도입하여, 모든 인간 경험의 본질적 조건, 즉 특정한 종류의 경험을 초월하는 조건들을 성찰한다. 먼저 세상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내에서 라너의 기독론에 대한 기본적인 통찰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기독교 신앙이 세상의 모든 것이 동일한 기원, 즉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물들 사이에 "내적 유사성과 공통성"이 존재하며, 이것이 단일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통성은 영과 물질의 통일체 형태인 인간에게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과 물질은 인간 안에서만 그 진정한 본질과 통일성을 경험할 수 있다. 라너는 이 자아를 인식하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인 하느님을 향해 항상 지향하는 단일한 인격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신비를 주체가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처분하는 것에서만 인격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이 과정을 진정으로 수행할 수 있다. 반대로, 물질은 인간이 세상의 다른 대상들로부터 소외되게 하고 시간과 공간에서 다른 영적 존재들과의 즉각적인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영과 물질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대립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관계는 "영을 향해 발전하는 물질의 내재적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에서 영으로의 이러한 변화는 자기 초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절대적인 충만함의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은 인류가 물질의 자기 초월의 가장 최근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한다.[17]

라너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은 코스모스가 자신의 목표이자 정점인 영적 피조물 안에서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직접적인 자기 의사 전달을 받을 때 최종적인 완성을 이룬다고 단언한다. 라너는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에 자신을 전달하시는 것이 세상의 최종 목표이며, 자기 초월의 과정이 세상을 이미 이 자기 의사 전달과 세상의 수용을 향하도록 이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리고 세상의 이 모든 자기 초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라너는 이것이 영적인 주체들 간의 상호 소통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바로 그 과정의 통일성을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기 의사 전달은 그것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자유가 있고 다른 존재들과 상호 소통하는 우주적 주체들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주체들이 자유롭게 그것을 받아들일 때만 일어나며, 그때서야 "그것은 그들의 상호 소통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고", 그런 다음 "자유를 향한 부름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의미에서 '공통'의 역사를 형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너는 "하나님의 자기 의사 전달은 '영구적인 시작'을 가져야 하며, 이 시작 안에서 그것이 일어났다는 보장, 즉 이 신성한 자기 의사 전달을 수용하는 자유로운 결정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보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계획 안에서 구세주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기 의사 전달의 시작, 즉 모든 사람을 위한 이 자기 의사 전달이 돌이킬 수 없이 일어났고 승리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시작"을 의미하는 역사적 인물을 지칭한다. 따라서 성자는 하느님의 자기 의사 전달과 그 사람의 수용이 만나는 내적 순간에 일어나며, 이 연합은 은총의 부여와 함께 모든 영적 피조물에게 열려 있다. 이 사건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유형성"을 가져야 한다.

만약 카를 라너의 초월적 기독론을 고찰한다면, 이는 "초월적으로 필요한 것과 구체적이고 우연적인 역사적인 것 사이의 인간 실존 안에서 '상호' 조건화와 매개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두 요소 사이의 일종의 관계로, "초월적인 요소는 항상 역사적 자아 안에서 역사적 요소의 내재적 조건"인 동시에 "자유롭게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요소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실존을 공동 결정한다"는 것이다. 초월적 기독론은 "인간이 항상 불가피하게 갖는 경험"이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인 하느님을 향하여 자신과 세상의 대상들을 자유롭게 초월하도록 창조되었다; 인간 상황의 제약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성의 완전한 의미와 세상 만물의 통일이 하느님의 자기 헌신에 의해 충족될 것이라고 희망하게 한다. 더욱이, 하느님의 자기 전달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희망은 "인간 실존 안에서의 초월성과 역사성의 통일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매개"되어야 한다: 인간의 희망은 역사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의 구원을 찾으며, 이는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게 되며, '종말론적' 의미에서 종말"이 된다. 이 시점에서 라너는 인간 구원의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절대적 의미에서의 충족"이거나 "역사 안에서의 역사적 사건"이다. 하느님의 자기 헌신적인 사랑에 의한 인간 구원의 사건은 인간 인격의 사건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은 한 사람이 그의 사랑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죽음 속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며, 죽음 속에서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때에만 역사 안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너는 구원자의 특성이 모범적이고 절대적임을 분명히 확언한다: 하느님과 세상 양쪽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과 역사의 통일성을 고려할 때, 그러한 "개별적" 운명은 세상 전체에 "모범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이러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 바로 "절대적 구원자"이다.

라너는 자신의 초월적 기독론이 묘사하는 구세주가 칼케돈의 고전적인 기독론적 공식이 제시한 구세주와 다르지 않다고 믿으며,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주장하기 위해 '실체적 연합'의 개념을 사용했다. 따라서 그는 이어서 '실체적 연합'의 의미를 명확히 설명한다. 문제는 "인간"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이다. 라너는 "사람이 되셨다"는 구절을, 하느님의 고유한 개별적인 인간 '본성'을 취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자기 비움, 그의 됨, 하나님의 케노시스와 생성"을 강조한다. 하느님은 "창조함으로써 취하시고" 또한 "취함으로써 창조하신다". 즉, 자신을 비움으로써 창조하시며, 따라서, 물론 그분 자신이 비움 안에 계신다. 그분은 인간 실존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시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창조하신다. 하느님의 비움으로써 창조하시는 행위는 절대자로서의 하느님의 능력과 자유, 그리고 성경에 표현된 하느님의 자기 헌신적인 사랑에 속한다. 그러므로 라너가 하느님은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 ''스스로'' ''다른 어떤 것'' 안에서 변화를 겪으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교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이다. "그분은 불변성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어떤 존재가 되실 수 있다. 즉, 그분 자신, 시간 안에 있는 그분이다."

라너에 따르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즉 하느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이 신비를 향한 인간의 지향성은, 인간이 자유롭게 이해할 수 없는 그분에 의해 붙잡히기로 선택할 때만 완전히 파악될 수 있다. 즉, 하느님이 자신의 자기 의사 전달을 되돌릴 수 없는 제안과 함께 인간 본성을 하느님의 고유한 실존으로 취하시고, 사람이 '자유롭게'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과 연합하여 인류가 본질에 의해 항상 향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 즉 기독교 신앙이 주장하는 나자렛 예수의 인격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는 신-인(God-Man)에 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너는 하느님의 성육신을 "인간 실존의 본질을 실현하는 유일하고 가장 높은 사례"로 본다.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신-인(God-Man)을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라너는 나자렛 예수의 삶과 죽음의 역사를 고찰하는 역사적 접근 방식을 기독론에 적용하며, 먼저 두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1)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2) 개인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언어화하거나 표현하는 정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부활 이전 예수의 자기 이해는 역사적인 의미에서 그의 인격과 구원적 중요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모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그의 자기 이해가 그리스도론적 신앙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확립하기 위해 라너는 두 가지 사항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예수가 자신을 "종말론적 예언자,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구원자"로 여겼다는 것, 둘째, 예수의 부활이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기 의사 전달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몇 가지 역사적 요소, 즉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급진적 개혁가"로서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에는 하느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적, 종교적 소외자들과 연대하는 그의 과감한 행동, "회심의 촉구"로서의 그의 본질적인 설교, 제자들을 모으는 것, 다른 사람들의 회심에 대한 그의 희망, "그의 사명에 대한 충실함의 불가피한 결과"로서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받아들인 점 등이 있다.

라너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분리할 수 없는 단일 사건의 두 측면이라고 말하며, 비록 부활이 예수의 죽음처럼 시간과 장소 속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말한다. 성경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 예수의 '영'을 그들 가운데서 체험하게 되고, "독특한 사실"로서 제자들의 부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만남을 제공한다. 부활은 시간적 영역으로의 삶의 복귀가 아니라, 예수께서 부활 전 생애 동안 옹호하고 설교했던 모든 것에 대한 성부 하느님의 인장이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절대적인 구원자로서 하나님께 의해 옹호되셨다": 그것은 "자유로운 순종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생명을 완전히 내어드린 이 죽음이 부활을 통해서만 성취되고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구체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활 안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원인"으로 이해되며 우리의 구원으로 가는 문을 연다. "우리는 우리 중 한 사람인 이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그의 구원 의지를 세상에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며 돌이킬 수 없게 나타내셨다." 이런 의미에서 나자렛 예수는 절대적인 구원자이신 하나님-사람이 되신다.

3. 6. 인간학

라너는 인간 실존의 완성이 하느님의 자기 의사 전달을 수용하는 데 있으며, 인간은 실제로 이 신성한 자기 의사 전달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은총을 하느님의 자기 의사 전달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느님은 자신을 전달하고 싶어하며, 바로 그 자신이신 사랑을 쏟아내고 싶어하신다. 그것이 그의 실제 계획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따라서 그의 실제 세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것은 이 한 가지를 위해 존재한다. 무한한 사랑의 영원한 기적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사랑할 수 있는 피조물을 만드신다. 그분은 인간을 만드신다. 그분은 인간을, 그 자신이신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즉 언제나 놀라운 경이, 예상치 못한, 요구받지 않은 선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알 수 있도록 창조하신다 [...] 따라서 이 두 번째 측면에서 하느님은 사랑이 자유롭고 요구받지 않게 쏟아질 뿐만 아니라, 진정한 파트너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이 요구받지 않은 사건과 그에게 빚진 것이 아닌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해야 한다. 그는 진정한 인간이다.[9]


라너는 은총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제시했는데, 이는 은총이 '초자연적 실존'(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차용한 개념) 속에서 인간 본성의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은총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구성 요소로 인식된다. 이러한 이유로 라너는 은총과 무관한 인간의 존재 상태인 '순수한 자연 상태'(''natura pura'')의 가능성을 부정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는 현실과 맞지 않는 반사실적인 가정이다.

4. 영향

카를 라너는 동시대의 많은 신학자들처럼 반종교개혁 시대의 특징인 명제적 신학, 즉 교리를 명제 형태로 제시하고 증명하려는 접근 방식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는 신에 관한 진술이 항상 신비로운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존재에 대한 언어는 항상 존재하지만 우리의 의식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 비유적으로 적용될 뿐이다.[12][13]

라너 자신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자신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았지만, 동시에 철학자 하이데거를 "나의 스승"이라고 부르며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 실제로 라너의 말년에는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라너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기도 했다.[14]

라너의 사상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 사이에서 다소 엇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라너가 전통적인 '존재의 유비' 개념을 상당히 약화시켰다고 평가하며, 그의 신에 대한 언어 사용이 대부분 동음이의적(equivocal) 방식에 가깝다고 본다. 이는 라너와 다른 토마스주의 전통의 신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점으로 지적된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라너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하이데거가 아니라, 20세기 초 요제프 마레샬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신토마스주의 학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6]

라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학 자문가로서 이브 콩가르와 같은 다른 중요한 신학자들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가톨릭 교회의 현대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이해하고, 항상 인간의 실존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신학적 문제들을 해석하고자 했다. 특히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양심에 따라 선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의 구원이 열려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타 종교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종교 간 대화와 이해 증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5. 비판

라너는 예수주의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했다. 그는 예수주의가 기독교이나 교회주의와는 별개로, 모방을 위해 예수의 삶에만 좁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6. 저서

라너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10권으로 된 백과사전인 Lexicon für Theologie und Kirchede(신학과 교회 사전)과 6권으로 된 신학 백과사전인 Sacramentum Mundila(사크라멘툼 문디)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 에세이, 논문 등이 있다. 라너는 직접 저술한 책 외에도 여러 참고 문헌을 편집했는데, 이 작업 역시 그의 신학적 견해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애 말년에 집필한 《신앙의 기초》(Grundkurs des Glaubensde)는 그의 저작 중 가장 체계적이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로 에세이 모음 형식으로 출간되었다. 일부 저작이 난해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의 형제 휴고 라너가 은퇴 후 "동생의 저서를 ... 독일어로 번역"하겠다고 농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8]
주요 저서 목록


  • 한국어 번역*
  •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톨릭출판사)
  • 《영성신학논총》(가톨릭출판사)
  • 《누가 너의 형제냐》(분도출판사)
  •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분도출판사)
  • 《침묵속의 만남》(광주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말씀의 청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원서 및 영역*
  • Schriften zur Theologiede (신학 저술, 16권, 1954–1984)
  • Homanisation영어 (호미니제이션, 1965)
  • Geist in Welt: Zur Metaphysik der endlichen Erkenntnis bei Thomas von Aquinde (세계 속의 영, 1939, 1957 개정). 영역본: Spirit in the World영어 (1968)
  • Hörer des Wortes: Zur Grundlegung einer Religionsphilosophiede (말씀의 청취자, 1941). 영역본: Hearers of the Word영어 (1969)
  • The Trinity영어 (삼위일체론, 1970 영역)
  • Grundkurs des Glaubens: Einführung in den Begriff des Christentumsde (기독교 신앙의 기초: 기독교 사상 입문, 1976). 영역본: Foundations of Christian Faith: An Introduction to the Idea of Christianity영어 (1978)
  • I Remember영어 (나는 기억한다, 1985)
  • Faith in a Wintry Season: Conversations and Interviews with Karl Rahner in the Last Years of His Life영어 (쌀쌀한 계절의 믿음: 칼 라너의 생애 마지막 해의 대화 및 인터뷰, 1990)
  • Content of Faith: The Best of Karl Rahner's Theological Writings영어 (신앙의 내용: 칼 라너의 신학 저술 중 최고, 1993)

참조

[1] 논문 Karl Rahner, Vatican II, and the Shape of the Church 2017-03-00
[2] 문서 Theological Investigations
[3] 웹사이트 Karl Rahner: A Brief Biography http://karlrahnersoc[...] Karl Rahner Society 2017-10-22
[4] 웹사이트 Chronology http://karlrahnersoc[...] Karl Rahner Society 2017-10-22
[5] 논문 Foundations of Christian Faith: An Introduction to the Idea of Christianity 1979-07-00
[6] 웹사이트 Karl Rahner (Boston Collaborative Encyclopedia of Western Theology) http://people.bu.edu[...] 2017-12-16
[7] 서적 Katholische Theologie in den USA https://books.google[...] Verlag Herder GmbH 2024-01-22
[8] 웹사이트 Theologies: Karl Rahner on Theology and Anthropology http://marikablogs.b[...] 2017-12-16
[9] 서적 Theological investigations Karl Rahner 1950-00-00
[10] 웹사이트 Defending the Faith http://www.therealpr[...] Real Presence Eucharistic Education and Adoration Association 2017-10-22
[11] 서적 Foundations of Christian Faith Crossroad 1978-00-00
[12] 서적 The Forgotten Jesuit of Catholic Modernism: George Tyrrell's Prophetic Theology, Chapter 9, Section 1 https://books.google[...] Fortress Press 2017-12-01
[13] 서적 Fully Human in Christ: The Incarnation as the End of Christian Ethics https://books.google[...]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6-11-08
[14] 뉴스 The Dream of Karl Rahner https://www.nybooks.[...] 1982-02-04
[15] 참고자료
[16] 참고자료
[17] 참고자료
[18] 웹사이트 Lumen gentium, 16 https://www.vatican.[...] 2017-12-16
[19] 간행물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한 권두대담 200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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