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베트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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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베트남 관계는 양국 간의 외교, 경제, 문화, 사회적 관계를 포괄한다. 고려 시대부터 교류가 있었으며, 특히 13세기 초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고려에 귀화하여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신을 통해 교류가 있었고,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대한민국이 베트남 공화국과 수교하고 참전하여 많은 사상자와 민간인 피해를 낳았다. 1992년 수교 이후 경제적 관계가 급속히 발전하여, 대한민국은 베트남의 주요 투자국이자 무역 파트너가 되었으며, 문화 교류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같은 논란은 여전히 양국 관계의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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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베트남 관계 | |
|---|---|
| 지도 정보 | |
| 기본 정보 | |
| 국가 | 대한민국 베트남  | 
| 관계 현황 | |
| 수교 | 1992년 12월 22일 | 
| 관계 수준 |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2023년 격상) | 
| 주한 대한민국 대사관 | 서울특별시 | 
|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 | 하노이 | 
| 정치 | |
| 주요 협력 분야 | 경제 문화 인적 교류  | 
| 경제 | |
| 교역 규모 | 대한민국 3위 무역 대상국 (2023년, 2년 연속) | 
| 주요 투자 국가 | 베트남은 대한민국의 주요 투자 대상국임 | 
| 문화 교류 | |
| 주요 내용 | 문화 교류 활발 인적 교류 증가  | 
| 기타 | |
| 관련 정보 | 북한-베트남 관계 역사적인 한-베트남 관계  | 
2. 역사
고대 시대에 한국과 베트남은 중화권에 속해 있었고, 같은 유교 윤리 철학을 공유했다. 신라의 관리였던 최치원(857-?)은 "교지(Jiaozhi)의 경계"와 안남 도호부에 대해 기록했다.[4] 양국 사절들은 베이징에서 만났을 때 정기적으로 비공식적인 만남을 가졌다.[4]
13세기 초 고려 고종 시대에 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고려로 피난 와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서거정, 이수광 등의 학자들이 베트남 사신들과 교류했다.
1956년 대한민국은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과 수교하였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을 파병하여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등이 참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5,000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퐁니·퐁넛 학살 등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 범죄를 일으켰다.
1992년 대한민국은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2. 1. 고려 시대
13세기 초 고려 고종(1213년~1259년) 치세에 베트남 리 왕조(1009년~1225년)의 왕자 이용상(李龍祥)이 고려로 피난 와 귀화하여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92] 이용상은 황해도 금천군 지역에 해당하는 화산군(花山君)이라는 봉작을 받고 고려 사회에 기여하였다. 그는 고려의 몽골 침략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쩐 왕조가 들어서면서 리 왕조가 멸망하고, 쩐 투 도가 이씨 가문을 학살하자 리 왕조의 생존자들은 고려로 도망쳤다.1308년 쩐 왕조의 학자인 막정지(Mạc Đĩnh Chi, 莫挺之)가 원나라 대도(大都)에서 고려 사신과 만나 우정을 나누었고, 고려 사신의 권유로 고려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2. 2. 조선 시대
1460년 조선의 학자 서거정은 명나라 통주관(通州館)에서 후 레 왕조의 사신 양여곡(Lương Như Hộc, 梁如鵠)과 50여 일 동안 함께 지내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시로 속정을 나누었다.[93]1597년 명나라에 진위사(陳慰使)로 파견된 이수광은 후 레 왕조의 풍극관(馮克寬, Phùng Khắc Khoan)과 옥화관에서 50일 동안 함께 머물렀다. 이들은 한자로 필담을 나누며 양국의 역사와 문화 풍속을 이야기하고 시를 주고받았다. 귀국 후 풍극관은 조선 관리와 유생들에게 이수광의 시를 소개했다.[94]
2. 3.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베트남 공화국 관계)
1956년 대한민국은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과 수교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남베트남과 자유 진영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기도 하였으며, 여전히 고엽제 피해 등 후유증을 안고 있다.[95] 대한민국군 베트남전 참전은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6년 4월까지 4차에 걸쳐 박정희 정부 하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민국 군을 파병한 사건을 말한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파병하였고 육군 맹호부대와 해병 청룡부대가 파병되었고, 1966년에는 "브라운 각서"의 조인으로 백마부대가 추가 파병되어 베트남전 참전 8년간 총 31만 2천853명(최대 5만 명)의 병력이 파견되었다.[95]
대한민국군 32만명이 파병되어 5천명이 전사하고 31만명이 생존 귀국하였으며, 고엽제(2만여 명의 피해) 및 화공약품 후유증으로 귀국 후 병사자가 다수 발생하였다.[95] 이 파병기간 도중 대한민국 해병대 제2해병사단 (청룡부대)에 의한 퐁니·퐁넛 학살등의 민간인 학살들이 있었다.
월남전 참전의 대가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자금을 지원받았고,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비용으로 일부 충당되었다.[95] 베트남 전쟁 파병은 한국 경제의 활로를 트고 군을 현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베트남 파병이 국군의 목숨을 담보로 한 미국의 용병일 뿐이었다는 비판도 있다.[95]
2001년,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국이 베트남 전쟁 중 의도치 않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또한 베트남의 개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10]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에 대해 모호하게 사과했지만, 베트남 언론과 한국 언론은 이를 공식 사과로 보지 않아 이 문제를 최소화했다.[15]
2023년, 대한민국 법원은 전쟁 중 한국군의 잔혹 행위의 베트남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생존 피해자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보상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통해 잔혹 행위에 대한 이전의 부인을 반복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나중에 이 결정에 대한 항소를 발표했다. 이는 베트남 외무부 대변인이 한국의 반복적인 부인을 "극도로 유감스럽다"고 말하면서 베트남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17]
2. 4.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의 수교 이후
1992년 4월 2일 연락대표부 상호개설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1992년 8월 17일 주 베트남 연락대표부 공식업무가 개시되었으며, 1992년 12월 22일에 외교 관계가 (재)수립되었다.[98] 현재 하노이에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으며 호찌민 시에는 총영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1993년 포 반 키엣 수상이 방한하였으며, 1996년에는 김영삼 대통령, 1998년 김대중 대통령,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유감 발언을 하였으며, 2001년 8월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는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공식 사과하였다.[99] 이에 대한민국의 베트남참전전우회에서는 "망언"이라고 반발하였으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경솔한 말이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의 인권단체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범죄라는 과거사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한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에 대한 규명과 범국민적 사과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하여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0월 10일 오후 한·베트남 정상회담에 이어 판 반 카이 총리와 농득마인 당서기장을 잇따라 만나 경제협력 증진과 양국 관계에 대해 환담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카이 총리는 이날 베트남 투자 여건 개선, 자원, 에너지,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 등 경제 협력을 증대하는 방안에 대해 주로 협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어 베트남 공산당사를 방문해 농득마인 당서기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양국의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한 당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100]3. 정치·외교 관계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1992년 공식 수교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교류해 왔다. 1958년 3월 1일 서울특별시에 주한 베트남 공화국 대사관이 공사관에서 승격되어 개설되었다가, 1975년 5월 17일 사이공 함락으로 폐쇄되었다.[105][106][107][103] 이후 1992년 양국 수교 후 주한 베트남 대사관이 다시 설치되었다.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 왔다. 특히, 정상회담과 고위급 인사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양국 간 협력 관계가 강화되었다.
주한 베트남 대사는 다음과 같다.[118]
베트남은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3. 1.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 및 역대 대사
주월남 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은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현 호찌민시)에 1958년 4월 1일 공사관에서 승격되었다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폐쇄되었다.[101][102][103] 1992년 12월 22일 하노이에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었고, 호찌민시에 주호찌민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대수 | 이름 | 임기 | 
|---|---|---|
| 제1대 | 최덕신 | 1956년 5월 ~ 1961년 10월 | 
| 제2대 | 박동진 | 1961년 11월 ~ 1962년 8월 | 
| 제3대 | 신상철 | 1962년 10월 ~ 1970년 12월 | 
| 제4대 | 유양수 | 1971년 2월 ~ 1974년 3월 | 
| 제5대 | 김영관 | 1974년 3월 ~ 1975년 4월 | 
| 대수 | 이름 | 임기 | 
|---|---|---|
| 제1대 | 박노수 | 1992년 10월 3일 ~ 1994년 8월 | 
| 제2대 | 김봉규 | 1994년 9월 23일 ~ 1997년 1월 | 
| 제3대 | 조원일 | 1997년 3월 7일 ~ 2000년 2월 | 
| 제4대 | 백낙환 | 2000년 3월 31일 ~ 2003년 2월 | 
| 제5대 | 유태현 | 2003년 3월 17일 ~ 2005년 5월 | 
| 제6대 | 김의기 | 2005년 5월 31일 ~ 2007년 9월 | 
| 제7대 | 임홍재 | 2007년 9월 17일 ~ 2010년 3월 | 
| 제8대 | 박석환 | 2010년 3월 ~ 2011년 4월 | 
| 제9대 | 하찬호 | 2011년 6월 1일[104] ~ 2013년 6월 | 
| 제10대 | 전대주 | 2013년 6월 ~ 2016년 5월 | 
| 제11대 | 이혁 | 2016년 5월 ~ 2018년 4월 | 
| 제12대 | 김도현 | 2018년 5월 ~ 2019년 5월 | 
| 제13대 | 박노완 | 2019년 10월 ~ 2022년 10월 | 
| 제14대 | 오영주 | 2022년 10월 ~ 2023년 7월 | 
| 제15대 | 최영삼 | 2023년 7월 ~ | 
3. 2. 주한 베트남 대사관 및 역대 대사
1958년 3월 1일 주한 베트남 공화국 대사관이 서울특별시에 공사관에서 승격되어 개설되었다가, 1975년 5월 17일 사이공 함락으로 폐쇄되었다.[105][106][107][103] 이후 1992년 양국 수교 후 주한 베트남 대사관이 다시 설치되었다.|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
| 제1대 | Dương Văn Đức|즈엉반득vi | 1956년 6월 ~ 1957년 7월 | 공사 | 
| rowspan=2| | 阮貴英|응우옌꾸이아인중국어 | 1957년 8월 ~ 1958년 3월 | 임시대리공사 | 
| 1958년 3월 ~ 1964년 1월 | 임시대리대사 | ||
| 吳孫達|응오똔닷중국어 | 1964년 2월 ~ 1966년 2월 | 임시대리대사, 참사관 | |
| 제1대 | 1966년 2월 ~ 1967년 6월 | ||
| 제2대 | Đỗ Cao Trí|도까오찌vi | 1967년 7월 ~ 1968년 7월 | |
| 당응옥지에우(Đặng Ngọc Diêu) | 1968년 7월 ~ 1969년 5월 | 임시대리대사[115][117], 공사[116][117] | |
| 제3대 | Phạm Xuân Chiểu|팜쑤언찌에우vi | 1969년 5월 ~ 1975년 5월 | 
;베트남 측
- 서울 (대사관)
 
4. 경제 관계
1992년 외교 관계 정상화 이후 대한민국은 베트남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자 투자국으로 부상했다.[1] 1996년, 대한민국은 베트남과 연간 13억달러 규모의 무역을 기록하며 베트남의 세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가 되었고, 타이완, 일본, 홍콩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외국인 투자국(총 19.87억달러)이 되었다.[1]
2006년에는 약 4억 달러를 신규 투자했으며, 약 1,000개의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운영했다.[19] 2021년 기준으로는 약 9,000개의 대한민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운영 중이며, 이는 베트남 전체 외국인 직접 투자(FDI) 자본의 18.5%를 차지한다.[22]
2010년 중반부터 한국의 베트남 직접 투자는 급증하여, 2000년 7000만달러에서 2020년 26억달러로 증가했다.[41] 2020년 한국 기업의 직접 투자액은 39억달러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38] 2019년, 베트남은 한국에게 수출 대상국 3위, 수입 대상국 5위였다.[39] 2015년 12월 20일에는 베트남-대한민국 자유 무역 협정(FTA)이 발효되었다.[40]
주요 투자 기업은 다음과 같다.
| 기업명 | 주요 사업 분야 | 베트남 진출 시기 | 비고 | 
|---|---|---|---|
| 삼성 | 전자제품 제조 | 1996년 | 베트남 전역 6개 공장 운영, 수십만 명 고용, 2020년 기준 베트남 국내총생산의 25% 차지[22] | 
| LG전자 | 전자제품 제조 | 베트남 3개 공장 운영[22] | |
| 롯데 그룹 |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 1996년 | 롯데 마트, 롯데 시네마, 롯데리아, 롯데 센터 등 운영[22] | 
| CJ 그룹 | 엔터테인먼트, 식품, 바이오, 물류 등 | 2004년 | CJ CGV, CJ ENM, CJ 제일제당, CJ대한통운 등 운영 | 
JETRO에 따르면,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약 2,000개인 반면, 한국 기업은 약 8,000개이다. 베트남에 체류하는 한국인은 20만 명 이상으로, 일본인(2만 2,000명)보다 훨씬 많다.
5. 문화 교류
안산시 원곡동 안산역 건너편에서 시작해 원곡본동사무소에 이르는 300~400m의 "국경 없는 마을"에는 4개의 베트남 음식점이 있다.[120]
6. 사회
Xã hộivi
202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는 약 20만 명의 베트남인이 체류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다. 2009년에는 약 10만 명이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었다.[23][24] 대한민국 남성과 국제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의 비율은 2015년 이후 가장 높으며, 매년 5,000명 정도이다.[42]
2009년 기준으로, 베트남에는 약 10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23][24]
6. 1. 재한 베트남인
대한민국에는 2020년 기준으로 약 20만 명의 베트남인이 체류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이다. 2009년에는 약 10만 명이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었다.[23][24]결혼 이민도 많은데, 대한민국 남성과 국제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의 비율이 2015년 이후 가장 높으며, 매년 5,000명 정도이다.[42]
6. 2. 재베트남 한인
2009년 기준으로, 베트남에는 약 10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23][24]7. 교통
(IATA)
(ICAO)
이름
아시아나항공(2개): 호찌민, 하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