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입양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한국인 입양아는 한국에서 태어나 다른 국가로 입양된 사람을 지칭한다. 한국 전쟁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해외 입양이 급증했으며, 1953년 첫 해외 입양이 이루어진 이후 홀트아동복지회와 같은 기관을 통해 제도화되었다. 초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컸으나, 최근에는 미혼모의 자녀나 장애 아동의 입양이 주를 이룬다. 해외 입양은 1980년대 이후 감소 추세였으나, 2000년대 이후 국내 입양을 장려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한국인 입양아는 정체성 혼란, 차별과 편견, 친부모 찾기의 어려움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며,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정책 변화를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입양 - 정인이 사건
2020년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가 사망한 사건으로, 세 차례의 아동 학대 의심 신고에도 경찰의 미흡한 대응과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 사인으로 밝혀져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아동 학대 방지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인 입양아 | |
---|---|
개요 | |
![]() | |
역사 | |
시작 | 1953년 |
주요 사건 | 1953년: 첫 4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으로 입양됨 1961년: 첫 번째 특별 입양법 통과 1970년: 북한, 대한민국의 입양 산업 비판 시작 1975년: 박정희 대통령, 1985년까지 해외 입양 종식 발표 1981년: 해외 입양 완전 자유화 재개 1988년: 대한민국에서 하계 올림픽 개최 1997년: IMF 위기 2011년: 입양인에게 시민권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시민권법 시행 |
통계 | |
입양 건수별 색상 구분 | 짙은 색은 더 많은 입양을 의미함 |
참고 자료 |
2. 역사
조선 시대에도 입양은 존재했으나, 주로 가문의 대를 잇거나 자녀를 키우기 어려운 경우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대규모 해외 입양은 한국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23]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 고아가 발생했고, 이들을 위한 구호 및 지원 과정에서 해외 입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첫 해외 입양은 1953년에 기록되었으며, 초기에는 주로 미국으로 보내졌다.
1955년 해리 홀트와 버사 홀트 부부가 설립한 홀트아동복지회는 한국 아동의 해외 입양을 제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5][6][23] 초기 입양은 전쟁 고아나 주한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안 아동들이 많았으나, 점차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친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동들의 해외 입양도 증가했다. 입양 대상 국가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을 넘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서유럽으로 확대되었다.[23] 이로 인해 한국은 한동안 국제 사회에서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 아동의 대규모 해외 입양 문제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는 한국 사회 내에서 국가적 성찰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해외 입양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고 입양 중단 목표 시한과 할당량을 설정하기도 했으나, 실질적인 감축 효과는 미미하여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10]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와 정부, 재외 한인 사회는 해외 입양 문제와 입양인의 삶에 점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성장하여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들의 경험은 한국 사회가 외면했던 역사의 한 단면을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8개국 출신의 성인 입양인 29명을 만나 한국이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양육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국가적 책임을 인정했다.[8][9]
이후 한국 언론에서도 해외 입양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으며, 입양인의 법적 지위 개선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991년 개봉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의 삶을 조명하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해외 입양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10] 또한 2004년 방영된 KBS 2TV 월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역시 해외 입양 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한편, 해외 입양을 둘러싼 복잡한 시각도 존재했다. 일부에서는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에 따라 외국인 양부모가 입양 아동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으며,[11][12][13][14] 북한은 1970년대부터 한국의 해외 입양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삼아 "아동 매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23][15]
2. 1. 조선 시대
조선 시대의 입양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업동이'라고 불리는 경우로, 자식을 키울 형편이 안 되는 부모가 자식이 없는 집 앞에 아기를 몰래 두고 가면 그 집에서 아이를 거두어 키우는 방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보다 공식적인 입양으로, 주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집안의 장손에게 아들이 없을 경우, 가까운 친척인 조카를 아들로 삼아(입양하여) 가계를 계승하게 했다.2. 2. 한국 전쟁과 해외 입양의 시작
한국 전쟁 이후 해외 입양이 본격화되었으며, 첫 해외 입양은 1953년에 이루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 고아가 발생했고, 이들 중 일부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초기 입양아 중 상당수는 아버지가 미군 병사인 아메라시안이었다. 1988년 ''더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한국 전쟁 이후 10년 동안 한국인 입양아의 대부분은 아메라시안이었으나, 현재는 전체 입양아 중 1% 미만을 차지한다.[23] 앨버트 C. 고(Albert C. Gaw)의 1993년 연구에 따르면, 1955년에서 1966년 사이에 미국으로 입양된 6,293명의 한국 아동 중 약 46%가 백인과 한국인 혼혈, 41%가 한국인, 나머지는 흑인과 한국인 혼혈이었다.[3] 초기 입양된 혼혈 아동들의 부모는 종종 미군과 한국 여성이었고, 이들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6]국제 입양의 시작에 대해 연구한 아리사 오(Arissa Oh)는 당시 한국 사회에 존재했던 민족 순혈주의 의식이 혼혈 아동들을 사회 밖으로 내보내려는 경향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며, "원래 국제 입양은 이러한 인종 기반의 배제 방식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4]
한국에서의 해외 입양은 1955년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한 해리 홀트와 버사 홀트 부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5][6] 해리 홀트는 한국 아동들의 실상을 접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에 미국 의회에 특별 법안 통과를 요청하여 8명의 전쟁 고아를 직접 입양했다.[7][23] 이 소식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에 힘입어 홀트 부부는 한국 아동을 위한 가정을 찾아주는 미국 기반의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하게 되었다.[6] 홀트 아동복지회 설립 이후, 서구의 여러 종교 단체와 사회복지 기관들도 한국 아동들을 미국과 유럽의 가정에 연결하는 절차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입양 대상 국가가 확장되었다. 스웨덴으로 초기 한국 아동들이 보내졌으며, 이후 홀트아동복지회는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로 입양을 확대했다.[23]
한편, 1970년대에 들어 북한은 대남 선전의 일환으로 한국의 대규모 해외 입양을 비판하며, 한국이 아동을 '판매'한다고 비난했다.[23][15] 당시 보건사회부 관계자는 북한의 이러한 선전을 차단하기 위해 해외 입양 규모를 줄이려 시도하기도 했다.[23] 북한의 관영 매체인 ''평양 타임스''는 "남조선 괴뢰들이 수만 명의 굶주린 아이들을 '입양아'라는 이름으로 외국 약탈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다"고 보도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15] 북한은 자국 아동의 해외 입양은 허용하지 않았다.[23]
2. 3. 1980년대 이후의 변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는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 문제를 세계적인 관심사로 만들었고, 이는 한국 사회에 국가적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당시 정치인들은 "아동 수출"을 막겠다고 공언하며 국제 입양의 종료 예정일과 할당량을 설정했지만, 실제로는 할당량이 여러 차례 초과되었고 종료 예정일 역시 계속 연장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10]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 그리고 해외 한인 사회 모두 한국 입양아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는 이른바 '잃어버린 아이들'의 귀환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매년 많은 수의 성인 한국 입양아들이 관광객 등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들의 존재는 한국 사회가 외면했던 역사의 한 단면을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은 1998년 10월, 8개국 출신의 성인 한국 입양아 29명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한국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국가적 무능함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입양인들을 위로했다.[8]
대통령이 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만남입니다. 여러분을 보니 그렇게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엄청난 후회감에 압도됩니다. 수년 동안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 캐나다 및 많은 유럽 국가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키울 수 없어 외국에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픕니다.
— 김대중, 1998년 29명의 한국 입양아에게 사과 (출처: Yngvesson (2010)[9])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 이후 한국 언론은 국제 입양 관련 문제를 이전보다 더 자주 다루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한국 입양아들은 입양된 국가의 시민권을 취득하여 한국 국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따라서 이전에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거주하려면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으며, 이는 입양인들에게 자신이 "진짜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1999년 5월, 한국에 거주하는 입양인들은 법적 인정과 사회적 수용을 요구하며 서명 운동을 벌였다(Schuhmacher, 1999). 2009년 기준으로 한국(주로 서울)에 장기 거주하는 한국 입양아는 약 500명으로 추산되며, 국제 입양이 198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 (G.O.A.'L)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1년 이상 장기 체류하는 입양인들은 주로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다.
한국 입양아 문제를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중요한 계기는 1991년에 개봉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었다. 스웨덴에서 성장한 한국 입양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한국인들이 국제 입양 문제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10]
한편, 국제 입양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 내부의 복잡한 시각도 존재했다. 1997년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는 일부 한국인들이 외국 가정의 입양 동기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혈연 중심적인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11][12][13][14]
국제 입양 문제는 남북 관계의 맥락에서도 다루어졌다. 1988년 ''더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1970년대 북한은 한국의 대규모 해외 입양을 대남 선전의 소재로 활용하며 한국이 아동을 '판매'한다고 비난했다. 당시 보건사회부 관계자는 북한의 이러한 선전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 입양 규모를 줄이려 했다고 언급했다. 해당 기사는 북한의 경우 외국 부부에게 자국 아동의 입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였다.[23] 친북 성향의 잡지 ''조선신보'' 역시 이러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다루면서 북한 내에서는 한국이 '세계 제1의 아동 수출국'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되었다.[15] 북한의 관영 신문인 ''평양 타임스''는 "배신자들인 남한 정권이 수만 명의 굶주린 아이들을 '입양아'라는 이름으로 외국 약탈자들에게 팔아넘기는 데 익숙하다"며 노골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15]
3. 원인
한국인 해외 입양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이다. 초기에는 한국 전쟁 이후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 고아 발생이 주된 원인이었다.[23] 특히 전쟁 직후에는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안 아동들의 입양이 많았는데,[23][3][6] 이는 당시 사회의 혼란과 함께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었다.[4] 이러한 배경 속에서 홀트 부부와 같은 인물 및 단체들의 활동으로 해외 입양이 본격화되었다.[5][6][7][23]
한국 경제가 성장한 이후에도 해외 입양이 지속된 데에는 뿌리 깊은 사회 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강한 혈연 중심주의와 유교적 가치관은 비혈연 아동의 국내 입양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고,[23]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은 이들이 아이를 직접 키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다.[23][18][19]
여기에 제도적 문제도 겹쳤다. 미혼모를 위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은 부족했고,[23] 입양 기관들은 국내보다 해외 입양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과거 정부가 해외 입양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23] 사회 복지 부담을 덜었다는 지적도 있으며, 전반적인 사회 복지 시스템의 미비 역시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22]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하고,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과 같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성찰이 이루어지면서[10] 해외 입양 문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식 사과[8][9] 등 국가적 차원의 반성도 있었지만, 여전히 복합적인 원인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3. 1. 경제적 어려움
초기 해외 입양의 주된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해외 입양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한국은 높은 해외 입양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특수성 때문이다.현재 해외 입양이 계속되는 주요 원인으로는 혈연 중심적인 가족 관계와 유교적 도덕관이 지적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핏줄이 아닌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불임인 경우에도 시험관 아기 시술 등 의학적 방법을 통해 친자녀를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최근 미혼모의 증가도 해외 입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유교적 가치관이 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혼모와 그 자녀는 사회적으로 큰 수치를 겪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임신 중절을 하거나 출산 후 아이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키우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지원 부족이다. 더불어 입양 중개 기관들이 국내 입양보다 해외 입양을 통해 더 많은 중개 수수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입양을 선호한다는 제도적 문제점도 제기된다.
과거에는 정부 차원에서 해외 입양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기도 했다. 1988년 The Progressiv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아동을 해외 가정에 입양 보내는 과정에서 연간 1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 기사는 해외 입양이 정부의 고아 양육 비용 절감, 고아 문제 해결 부담 감소, 인구 조절 효과라는 부가적인 이점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23]
일부에서는 한국 입양 기관들이 구축한 시스템이 건강한 아이들을 꾸준히 해외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0] 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측은 입양 기관들이 보호받지 못하거나 시설에 맡겨질 위기에 처한 영아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의 입양 기관들은 임신한 여성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고 지원하며, 일부 기관은 자체 산부인과 병원을 통해 출산을 돕기도 한다. 네 곳의 주요 입양 기관 모두 아동 양육 시설을 운영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며, 위탁모에게는 영아를 돌보는 대가로 매달 수당과 함께 음식, 의류 등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다. 또한, 기관들은 입양 보내는 모든 여성의 출산 및 의료 비용을 부담한다.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입양 한 건당 비용은 약 1.5만달러로 추산되며, 이 비용은 대부분 입양 부모가 부담한다. 이를 통해 연간 약 2,300건의 한국 아동 국제 입양과 관련된 위탁 관리, 의료 지원 및 기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약 3500만달러의 자금이 조성되었다.[21]
2010년 저서에서 킴 라스무센은 한국의 높은 해외 입양률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한 투자 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OECD 30개국의 사회 복지 지출이 GDP의 평균 20.6%인 반면, 한국은 GDP의 6.9%만을 지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라스무센은 단순히 국내 입양을 장려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한국 정부가 사회 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22]
3. 2. 사회 문화적 요인
초기 해외입양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발생했지만, 한국 경제가 안정된 이후에도 해외 입양 건수가 높은 것은 한국 사회의 특수한 문화적 요인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 4위의 고아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가장 큰 원인으로는 혈연 중심적인 가족 관계와 유교적 도덕관이 지적된다.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혈통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것을 꺼리며, 불임인 경우에도 시험관 아기 시술 등 의학적 방법을 통해 자신의 핏줄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에는 미혼모 자녀의 급격한 증가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교적 도덕관에 따라 미혼모와 그 자녀는 사회적으로 큰 수치로 여겨져, 임신한 아이를 낙태하거나 태어나더라도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편견과 부족한 제도적 지원 때문이다. 또한, 입양 중개 기관들이 국내 입양보다 해외 입양 시 더 많은 중개료를 받을 수 있어 해외 입양을 선호한다는 제도적 문제도 제기된다.
한국 전쟁 이후 초기 10년간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대부분은 미군 병사와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안이었다. 1988년 ''더 프로그레시브''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입양아 중 아메라시안 비율은 1% 미만으로 줄었지만, 초기에는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23] 앨버트 C. 고(Albert C. Goheng)의 1993년 연구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66년 사이에 미국으로 입양된 6,293명의 한국 아동 중 약 46%가 백인-한국인 혼혈, 41%가 완전한 한국인, 나머지는 흑인 및 한국 혼혈이었다.[3] 이들 초기 혼혈 입양아들의 가족은 대부분 가난했으며, 부모는 미군과 한국 여성이었다.[6] 국제 입양 전문가 아리사 오(Arissa Oheng)는 "한국인들은 인종적 순수성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 아이들을 없애고 싶어 했다. 원래 국제 입양은 이러한 인종 기반의 '대피소'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4]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해외 입양은 1955년 해리 홀트와 버사 홀트 부부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5][6] 한국 아동들의 참상에 마음 아파했던 해리 홀트는[7] 미국 의회를 설득해 특별 법안을 통과시킨 후 8명의 전쟁 고아를 입양했다.[23] 이 사건이 전국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홀트 부부는 한국 아동을 위한 가정을 찾아주는 미국 기반의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했다.[6] 이후 서구의 종교 단체들과 다른 협회들도 한국 아동들을 미국과 유럽 가정에 보내는 절차를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유럽 각국으로 입양이 확대되었다.
한국 사회의 부계 중심적 혈연 문화는 입양 문제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혈통 가족의 중요성 때문에 한국인들은 혈연 관계가 아닌 고아를 입양하기를 꺼린다.[23] 이러한 문화는 미혼모와 그 자녀를 사회적으로 낙인찍고 차별하는 주요 원인이 되며, 미혼모는 직업을 구하거나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23] 인류학자 수지 리 게이지(Sue-Je Lee Gageeng)의 2007년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한국성'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순수한" 한국 혈통을 통해 자녀에게 전달된다고 인식된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못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아를 외모 등 혈통적 특징을 근거로 한국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과 성관계를 가진 한국 여성은 '완전한 한국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16] 엘리제 프레빈(Elise Prebineng)의 2012년 연구에서는 한국인 입양아가 친가족과 재회할 때 생모(모계)보다는 생부(부계) 쪽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쉽다고 나타났다. 이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강력한 "부계 친족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보여준다.[17] 미혼모와 입양아는 부계 혈통 문화를 거스르고 "혈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을 받으며[18],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결혼, 직업, 교육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19] 한편, 한국 가정에서 여자아이를 주로 입양하는 경향은 조상 제사를 혈통 아들이 지내야 한다는 관념과 상속 문제를 피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26]
경제적인 측면에서, 1988년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해외 입양을 통해 연간 1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정부가 고아 돌봄 비용을 절감하고, 고아 문제 해결의 부담을 덜며, 인구 조절 효과까지 얻는 부수적인 이익을 창출했다.[23] 입양 기관들은 건강한 아이들을 꾸준히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비판도 받는다.[20] 이들 기관은 임신 여성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일부는 자체 산부인과 병원 운영), 아동 양육 시설을 지원하며, 위탁모에게 매달 수당과 물품을 제공한다. 또한 출산모의 출산 및 의료 비용을 부담한다. 2011년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보고서에 따르면, 입양 한 건당 비용은 약 15000USD로 추산되며, 이는 주로 입양 부모가 지불한다. 이를 통해 연간 약 2,300건의 국제 입양 관련 비용(위탁 관리, 의료 등)을 충당하며 약 3500만달러의 수입이 발생했다.[21]
사회 복지 시스템의 미비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킴 라스무센(Kim Rasmusseneng)은 2010년 저서에서 한국의 높은 해외 입양률의 "근본 원인"이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한 지출 부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의 사회 복지 지출은 GDP의 6.9%로, OECD 30개국 평균인 20.6%에 크게 못 미쳤다. 라스무센은 국내 입양 장려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 복지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22]
한편, 아이를 입양 보내는 출산모들은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1988년 한 고아원 원장의 조사에 따르면, 출산모의 90%는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어 했지만, 사회적 압력과 고아원의 권유로 결국 10%만이 직접 양육을 선택했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공장 또는 사무직 여성이었으며, 아이를 입양 보낸 후 큰 죄책감을 느꼈다.[23] 당시 대한민국 주재 미국 대사관의 INS 직원은 입양 기관 소셜 워커들이 출산모에게 아이를 입양 보내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고 증언하며, 높은 입양 건수를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인도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고 얼마나 사업적인 측면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23][24]
3. 3. 제도적 요인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기 어려운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제도적 지원의 미비이다. 또한, 입양 중개 기관들이 국내 입양보다 해외 입양을 통해 더 많은 중개료를 얻을 수 있는 구조 때문에 해외 입양이 선호된다는 제도적 관점의 비판도 존재한다.[23]1988년 The Progressiv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해외 입양을 통해 연간 1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사는 해외 입양이 정부 입장에서 고아 양육 비용 절감, 관련 문제 처리 부담 감소, 그리고 인구 감소 효과라는 부가적인 이점들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23]
일부 연구자들은 한국의 입양 기관들이 건강한 아동을 꾸준히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0] 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측은 입양 기관들이 다른 대안이 없거나 시설에 수용될 위기에 처한 영아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입양 기관들은 임신한 여성을 위한 시설(네 곳 중 세 곳은 자체 운영, 한 곳은 자체 산부인과 병원 운영)을 지원하고, 아동 양육 및 보조금 지급, 위탁모 운영(수당 지급 및 물품 무료 제공), 고아원 지원 등을 통해 입양 과정을 관리한다. 또한 입양 보내는 여성의 출산 및 의료 비용을 부담한다(Rothschild, 1988; Schwekendiek, 2012).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입양 한 건당 비용은 약 15000USD로 추산되며, 이는 주로 입양 부모가 부담한다. 이를 통해 연간 약 2,300건의 한국 아동 국제 입양 관련 위탁 관리, 의료, 기타 비용을 충당하며 약 3500만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1]
킴 라스무센은 2010년 저서에서 한국의 높은 해외 입양률의 "근본 원인"으로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한 지출 부족을 지적했다. 당시 한국은 GDP의 6.9%를 사회 복지 혜택에 지출한 반면, 다른 OECD 30개국의 평균은 20.6%였다. 라스무센은 국내 입양 장려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우며, 사회 복지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2]
정부는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 1997년경 한국인 부부가 한국 아동을 입양할 경우 주택, 의료, 교육 보조금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양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러한 보조금 활용률은 낮았다.[11]
2013년 CNN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입양아 출신인 제인 정 트렌카 등은 입양특례법 개정에 참여했다. 개정된 법은 친생모가 입양 동의 전 7일간 아동과 함께 지내도록 하고, 동의 확인 후 입양 절차 진행, 출생 등록 의무화, 입양 동의 후 최대 6개월간 철회 가능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한국입양홍보회(MPAK) 설립자인 스티브 최 모리슨은 한국의 체면 중시 문화 때문에 친생모들이 출생 기록 공개를 꺼려 결혼 등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우려하며, 출생 등록 의무화가 오히려 아동 유기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38]
실제로 워싱턴 국제 법률 저널의 2015년 기사는 2012년 8월 5일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아동 유기가 증가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 법이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39]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국내 입양된 아동이 법적으로 입양 부모의 친생 자녀로 기록되도록 규정했다.[40] 하지만 NPR의 2014년 보도는 이러한 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입양을 혈연과 동일하게 여기는 인식의 변화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18]
4. 사회적 관심과 변화
한국 경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국내 아동의 해외 입양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스웨덴 입양인 신수진 씨의 삶을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개봉은 입양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언론 보도가 늘고, 연예인들의 위탁모 체험 프로그램이나 윤석화, 차인표·신애라 부부(2006년 공개 입양) 등 유명인들의 입양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회적 관심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심 증대에 비해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출산 장려 정책은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미혼모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 강화와 같이 해외 입양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은 미흡한 실정이다.
한편, 해외 입양인이 친생부모를 찾는 과정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잔 브링크의 경우, 친부모를 만났지만 이후 여러 갈등을 겪으며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친생부모 찾기가 때로는 새로운 정서적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4. 1. 언론 보도와 대중의 인식 변화
한국 경제가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국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왜 외국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북한은 한국의 해외 입양을 비난하는 선전을 펼쳤는데, 당시 보건사회부 관계자는 북한의 선전을 막기 위해 해외 입양 수를 줄이려 했다는 언급도 있었다.[23]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는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 문제를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시켰고, 이는 한국 사회 내에서 국가적 수치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인들은 소위 "아동 수출"을 막겠다고 공언하며 국제 입양의 단계적 축소 및 종료 시점을 설정했지만, 실제로는 입양 할당량이 여러 차례 초과되고 종료 시점도 연기되는 등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10] 북한은 이를 이용하여 한국이 세계 제1의 아동 수출국이라는 선전을 강화했으며,[15] 북한의 관영 매체인 ''평양 타임스''는 남한이 아이들을 외국에 팔아넘긴다고 비난하기도 했다.[15]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을 거치며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그리고 해외 한인 사회 모두 한국 입양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매년 관광 등의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성인 입양인들의 존재는 한국 사회가 외면하고 싶었던 입양의 역사를 마주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8]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91년, 스웨덴으로 입양된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개봉되면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국제 입양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켰고, 많은 한국인이 이 문제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10] 이를 기점으로 각종 언론 매체들이 입양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입양 전 아동을 임시로 돌보는 위탁모 체험 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며, 연극 배우 윤석화가 아이를 입양하고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배우 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딸을 공개 입양하면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다만 수잔 브링크의 사례는 친부모를 만난 이후에도 여러 갈등을 겪으며 관계가 단절되는 등, 친생부모 찾기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8개국 출신의 성인 한국 입양아 29명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과거 한국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정했다.[8]
> 대통령이 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만남입니다. 여러분을 보니 그렇게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엄청난 후회감에 압도됩니다. 수년 동안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 캐나다 및 많은 유럽 국가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키울 수 없어 외국에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픕니다.
> -- 김대중 대통령, 1998년 29명의 한국 입양아에게[9]
이후 한국 언론은 국제 입양 관련 문제들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입양인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대부분 입양된 국가의 시민권을 취득하여 한국 국적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거주하기 위해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이는 입양인들에게 자신이 "진짜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1999년 5월, 한국에 거주하던 입양인들은 법적 지위 인정과 사회적 수용을 요구하며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9년 당시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입양인은 약 50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이 수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 (G.O.A.'L)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으로 돌아와 1년 이상 장기 체류하는 입양인들은 주로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연령대이다.
한편, 1997년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는 일부 한국인들이 외국 가정의 입양 동기를 순수하지 않게 보거나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혈연 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편견에서 비롯된 시각으로 분석된다.[11][12][13][14] 이러한 사회적 인식 문제와 더불어, 정부의 제도적 지원 부족 또한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이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 강화와 같이 해외 입양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다.
4. 2. 정부 정책의 변화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이는 한국 사회에 국가적 수치심으로 다가왔다. 정치인들은 "아동 수출"을 막겠다고 공언하며 국제 입양의 단계적 축소와 종료 목표 시한을 설정했다. 그러나 입양 할당량은 여러 차례 초과되었고, 종료 예정일 역시 계속 연장되었다.[10]1970년대부터 북한은 한국의 대규모 해외 입양을 '아동 판매' 행위로 비난하며 체제 선전에 이용했다.[23] 평양 타임스는 "남한의 배신자들이 수만 명의 굶주린 아이들을 '입양아'라는 이름으로 외국 약탈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15] 이러한 북한의 공세에 대응하여 보건사회부는 해외 입양아 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23]
본격적인 정책 변화는 1987년 해외 입양 쿼터제 도입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매년 해외 입양 허용 아동 수를 3~5%씩 줄여 1997년에는 2,057명까지 감소시켰으며, 2015년까지 해외 입양을 완전히 중단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1998년 외환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유기 아동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일시적으로 입양 제한 조치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을 거치며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 전반에서 한국 입양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1991년 스웨덴으로 입양된 수잔 브링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개봉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었다.[10] 이후 연예인들의 위탁모 체험 프로그램 방영, 윤석화의 입양 경험 출간,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공개 입양 등 유명인들의 참여가 이어지며 입양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로 8개국 출신의 성인 입양인 29명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과거 한국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8]
대통령이 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만남입니다. 여러분을 보니 그렇게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엄청난 후회감에 압도됩니다. 수년 동안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 캐나다 및 많은 유럽 국가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키울 수 없어 외국에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픕니다.[9]
— 김대중, 1998년 29명의 한국 입양아에게 사과 (출처: Yngvesson (2010))
이후 한국 언론은 국제 입양 관련 문제들을 비교적 꾸준히 다루기 시작했다. 한편, 대부분의 해외 입양인들은 입양된 국가의 시민권을 취득하여 한국 국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거나 거주하려면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이는 입양인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99년 5월, 한국에 거주하는 입양인들은 법적 지위 인정과 사회적 수용을 요구하며 서명 운동을 벌였다. 2009년 기준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입양인 수는 약 500명으로 추산되며, 이들은 주로 20대 초반 또는 30대 초반이다.
2009년, 정부는 K-Care 설립 및 국내 입양 장려법 제정을 통해 국제 입양을 억제하고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 확대와 같이 해외 입양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다.
5. 문제점 및 과제
대한민국의 고아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대학 진학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저임금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많다.[18] 지난 60년간 한국 고아의 약 85%는 입양되지 못하고 보육원에서 성장했으며, 국내 입양률은 4%에 불과했다.[26] 대부분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입양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25]
정부는 '아기 수출국'이라는 국제적 비판을 의식하고 한국 문화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야 한다는 명분 아래 해외 입양을 줄이고 국내 입양을 늘리려 노력해왔다.[25] 그러나 해외 입양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면서 국내 보육원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27] 국내 입양은 2007년 이후 잠시 증가했으나[32] 2013년 입양 부모 자격 요건 강화와 신생아 강제 등록법 시행 이후 다시 감소하며 아동 유기 증가의 우려를 낳았다.[33]
미혼모에 대한 강한 사회적 낙인은 아이를 포기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34][35] 미혼모에 대한 정부 지원은 부족하고 조건이 까다로운 반면, 국내 입양 가정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34] 서울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는 익명 유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아이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박탈하며, 국제 입양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장기간 시설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28][29]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해서는 비밀 입양 관행을 없애고 사회 전반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입양아를 존중하고 부정적인 표현을 삼가며, 입양 허용 연령 기준 완화 등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36] 배우 신애라, 차인표 부부의 공개 입양은 국내 입양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37]
경제 대국이자 OECD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많은 아동을 해외 입양 보내고 있다. 1980년대에는 출생아의 약 1%가 해외로 입양되었으며, 출산율이 크게 감소한 현재에도 매년 상당수의 아동이 해외로 보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입양 과정에서는 부모 동의 없는 유괴나 입양, 서류 위조 등 정부 기관을 포함한 조직적인 불법 행위가 만연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133] 이는 서구 국가의 아동 수요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입양 기관이 아동 1인당 높은 수수료를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133] 또한 입양은 대한민국과 다른 국가 간의 "국제적 우호 증진"을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135][136][137]
입양된 아동 중 일부는 입양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하거나[134],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해 추방당하는 등[77][78][79][112]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심지어 양부모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126][127][128] 해외 입양인들은 일반 인구에 비해 정신질환, 약물 남용, 자살 시도 등의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46][134] 한국인 입양아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도 편견에 직면하며, 국내 입양된 아동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보고되었다.[18]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혼모 지원 강화,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및 제도 보완, 입양 과정의 투명성 확보, 입양인에 대한 심리적·사회적 지원 강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5. 1. 입양인의 정체성 혼란
한국 문화는 혈연 관계를 중시하는 부계 사회이다.[23] 이러한 혈통 중심 문화는 한국인들이 입양 부모의 혈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인 고아를 입양하기를 꺼리게 만들었다.[23] 또한, 한국의 부계 문화는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이어져, 이들이 직업을 구하거나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23][18][19]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미혼모 본인뿐 아니라 자녀와 가족 전체에게 영향을 미쳐 결혼, 직업, 교육 전망을 저해할 수 있다.[19] 한국인 입양아 역시 "혈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을 받기도 한다.[18]한국의 부계 혈통 문화에서 한국성(Koreaness)은 부모, 특히 아버지가 "순수한" 한국인 혈통을 가졌을 때 자녀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여겨진다.[16] 이러한 혈통과 인종에 기반한 정체성 개념 때문에, 한국 내 한국인들은 비록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아를 외모를 근거로 한국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16] 그러나 외모가 유일한 기준은 아니며, 예를 들어 외국인과 관계를 가진 한국 여성은 "완전한" 한국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16]
국제적으로 입양된 많은 한국 아동들은 백인 상류층 또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53] 초기 입양 기관과 사회복지사들은 입양 아동이 새로운 문화에 동화되도록 권장했는데, 이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출신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53] 당시 사회복지사들은 입양아가 출신 나라와의 관계를 맺으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49] 이로 인해 많은 한국인 입양아들은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다른 아이들을 알지 못한 채 자랐다.[53]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양 부모가 입양 자녀의 출생 국가 문화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문화를 소개하려는 노력으로 변화했다.[49] 사회 서비스 기관들은 부모가 입양 자녀의 출신 국가 문화에 대해 배우도록 장려하기 시작했다.[53] 입양 부모가 자녀에게 출생 국가의 전통과 음식을 접하게 하는 일반적인 방법 중 하나는 "문화 캠프" 참여였다.[49] 미국의 백인 부모들은 입양한 한국 자녀를 한국 식당에 데려가거나 한국 문화 캠프에 참여시키는 등 한국 문화에 사회화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한국 민족 정체성이나 미국 내 인종적 소수자로서의 위치에 대해 대화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48]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의 C. N. Le 강사는 백인 가정에서 자란 비백인 입양아들이 암묵적으로 자신을 백인이라고 생각하도록 길러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회화 방식과 사회 전체의 시선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백인 가정이 입양 자녀와 인종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며, 단순히 문화를 소개하거나 인종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사회적 단절은 입양아들에게 "혼란, 상황에 대한 분노, 그리고 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52]
미국 심리학회의 2005년 연구는 평균 27.8세의 한국인 입양아(3세~9세 사이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를 대상으로 인종 간 효과를 조사했다. 이 연구에서 한국인 입양아와 프랑스인들은 일본인 얼굴보다 백인 얼굴을 더 잘 인식했지만, 최근 프랑스로 이주한 한국인 이민자들은 백인 얼굴보다 일본인 얼굴을 더 잘 인식했다. 이는 인종 간 효과가 3세 이후의 경험을 통해 특정 유형의 얼굴에 대한 친숙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며, 성장 환경이 정체성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50]
국제적으로 입양된 많은 한국인 입양아들이 백인 지역 사회에서 성장한 결과, 일부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다른 아시아인들을 피하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낯설음이나 불편함 때문일 수 있다.[55] 이들은 때때로 가족이나 또래처럼 백인이 되고 싶어 하고 백인 사회에 강하게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한국인이나 한국 문화를 접하는 것이 일부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53] 반면, 인종적 또는 문화적으로 다양한 지역 사회에서 자란 다른 한국인 입양아들은 한국 커뮤니티와 유대감을 형성하며 성장했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한국적인 측면을 더 강하게 동일시하기도 한다.[55] [56]
2016년 한인 입양아 1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일부 입양아들이 양부모를 "진짜" 부모로, 다른 일부는 친부모를 "진짜" 부모로 여기는 등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보여주었다.[43]
1999년 에반 B. 도날드슨 입양 연구소에서 167명의 성인 한국인 입양아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는 이들이 대한민국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가 입양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에 대한 분노, 대한민국 보육원에 있는 고아들에 대한 우려와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한국 내에서 고아 입양이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국내 입양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포함되었다.[99]
한편, 2002년 의학 저널 ''랜싯''에 발표된 스웨덴의 국제 입양아(대부분 한국, 콜롬비아, 인도 출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스웨덴 태생 비입양아에 비해 자살 사망 위험 3.6배, 자살 시도 위험 3.6배, 정신질환 입원 위험 3.2배, 약물 남용 위험 5.2배, 알코올 남용 위험 2.6배, 범죄 위험 1.6배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이는 입양 경험과 정체성 혼란 등이 정신 건강 및 사회 적응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시사한다.[46]
5. 2. 차별과 편견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는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 문제를 세계적인 관심사로 만들었고, 이는 한국에게 국가적 수치심의 원인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아동 수출"을 막겠다고 약속하며 국제 입양의 종료 예정일과 할당량을 설정했지만, 할당량은 계속 초과되었고 종료 예정일은 여러 차례 연장되었다.[10]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그리고 재외 한인 사회는 한국 입양아들의 상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가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귀환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년 관광객으로 한국을 찾는 수많은 성인 한국 입양아들은 한국 사회가 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8개국 출신의 성인 한국 입양아 29명을 만나, 한국이 그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8]
> 대통령이 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만남입니다. 여러분을 보니 그렇게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여러분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엄청난 후회감에 압도됩니다. 수년 동안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 캐나다 및 많은 유럽 국가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키울 수 없어 외국에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픕니다.[9]
> — 김대중, 1998년 29명의 한국 입양아에게 사과 (Yngvesson, 2010 인용)
이후 한국 언론은 국제 입양 문제를 비교적 자주 다루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한국 입양아는 입양된 국가의 시민권을 취득하여 한국 국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과거에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거주하려면 다른 외국인처럼 비자를 받아야 했다. 이는 그들이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1999년 5월, 한국에 거주하는 입양아들은 법적 인정과 수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주로 서울)에 장기 체류하는 한국 입양아는 약 500명으로 추산되며, 이 숫자는 앞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 입양인 연대(G.O.A.'L)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 귀환자(1년 이상 체류)는 주로 20대 초반 또는 30대 초반이다.
한국 입양아 문제가 한국 사회 담론의 일부가 되는 데 기여한 요인 중 하나는 1991년 스웨덴에서 자란 한국 입양아의 삶을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켰고, 많은 한국인이 이 문제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10]
1997년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기사에 따르면, 일부 한국인들은 외국 입양 가정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한국 고아를 입양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사랑할 수 없다는 한국 사회의 통념 때문이었다.[11][12][13][14]
북한은 1970년대부터 대남 선전의 일환으로 한국의 대규모 해외 입양을 비판하며, 한국이 아동을 '판매'한다고 비난했다. 당시 대한민국 보건사회부 관계자는 북한의 선전을 막기 위해 해외 입양 수를 줄이려 했다고 알려졌다. 북한은 자국 아동의 해외 입양을 허용하지 않는다.[23] 1988년 친북 성향 잡지 ''월간 조선''의 연재 기사로 인해 북한 내에서는 한국이 세계 제1의 아동 수출국이라는 인식이 퍼졌다.[15] 북한 신문 ''평양 타임스''는 남한이 "수천, 수만 명의 낡고 굶주린 아이들을 '입양아'라는 이름으로 외국 약탈자들에게 팔아넘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15]
한국 문화는 혈연 관계를 중시하는 부계 사회이다. 이러한 혈통 중심 문화 때문에 한국인들은 혈연 관계가 아닌 고아를 입양하기를 꺼린다. 또한, 이 문화는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이어져 미혼모가 직업을 구하거나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23] 인류학자 수지 리 게이지(Sue-Je Lee Gage)에 따르면, 한국의 부계 혈통 문화에서 한국성은 부모, 특히 아버지가 "순수한" 한국인 혈통을 가질 때 자녀에게 전달된다고 여겨진다. 한국 가족의 족보는 혈통의 순수성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혈통과 인종 중심의 정체성 개념 때문에,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못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아를 외모 때문에 한국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외모가 유일한 기준은 아니며, 예를 들어 외국인과 관계를 가진 한국 여성은 "완전한" 한국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16] 인류학자 엘리제 프레빈(Elise Prebin)은 한국인 입양아의 친가족 재회가 생모(모계)보다는 생부(부계) 쪽과 이루어질 때 관계를 유지하기 더 쉽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부계 친족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17]
NPR의 2014년 기사에 따르면, 미혼모는 한국의 부계 혈통 문화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을 받으며, 한국인 입양아 역시 "혈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을 받는다.[18] 2015년 뉴스 기사에서도 대한민국에서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강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결혼, 직업, 교육 전망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19] 또한, ''The Economist''는 한국인들이 조상 제사를 주로 혈통 아들이 지내고 상속 문제를 피하기 위해 주로 여자아이를 입양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했다.[26]
한국인 입양아들은 입양된 국가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어려움에 직면한다. 1999년 에반 B. 도날드슨 입양 연구소(The Evan B. Donaldson Adoption Institute)의 조사에 따르면, 성인 한국인 입양아 167명 중 대다수(70%)가 성장 과정에서 인종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응답했으며, 28%는 입양아라는 신분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백인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며 소외감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차별 경험은 일부 입양아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들기도 했다.[99]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아가 인종 때문에 차별을 겪는 사례도 있다. 킴 라스무센(Kim Rasmussen)은 2010년 저서에서, 미국에서 온 한국인 입양아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직에 지원했으나 인종 때문에 거절당한 사례를 소개했다.[22] 그는 학생들이 백인에게 영어를 배우기를 원한다는 학부모들의 요구 때문에 거절당했다는 설명을 들었다.[22] 2015년 스트레이츠 타임스 기사에서 네덜란드 가정에 입양된 시몬 휘츠(Simone Huits)는 작은 네덜란드 마을에서 자란 경험에 대해 "아이들은 제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저를 만지고 싶어했어요. 무섭고 감당하기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57]
언어 장벽 또한 큰 어려움이다. 1999년 연구에서 응답자의 72%가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한국 방문 경험이 부정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로 한국어 능력 부족이 자주 언급되었다.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무례한 대우를 받았다는 경험담도 있었다. 많은 입양아가 한국 방문 중 이방인처럼 느꼈다고 답했다.[99] 2007년 한국 입양 관련 서적에서는, 한국어를 못하고 한국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 입양아들이 한국 이민자 자녀가 많은 학군에서 이민자 가정 자녀들과 어울리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고 언급했다.[58]
국제 입양은 입양아의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2년 ''랜싯''에 발표된 스웨덴 연구에 따르면, 국제 입양아(주로 한국, 콜롬비아, 인도 출신)는 스웨덴 태생 아동에 비해 자살 사망 위험 3.6배, 자살 시도 위험 3.6배, 정신 질환 입원 위험 3.2배, 약물 남용 위험 5.2배, 알코올 남용 위험 2.6배, 범죄 위험 1.6배 더 높았다.[46]
백인 가정에서 자란 많은 한국인 입양아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사회학과 강사 C. N. Le는 이들이 암묵적으로 자신을 백인이라고 생각하도록 길러지지만, 현실에서는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화 방식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Le는 또한 대부분의 백인 입양 가정이 자녀와 인종적 소수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고 지적하며, 단순히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거나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Le는 이러한 양육 방식과 미국 사회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입양아에게 '혼란, 상황에 대한 분노, 그리고 화'를 야기한다고 말했다.[52] 초기에는 입양 기관들이 동화를 권장했지만, 최근에는 입양 부모가 자녀의 출신 국가 문화에 대해 배우도록 장려하는 추세이다.[53][54]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 지역에서 성장한 많은 국제 입양 한국인들은 아시아 문화에 대한 낯설음이나 불편함 때문에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다른 아시아인들을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53] 반면, 인종적 또는 문화적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입양아들은 한국 커뮤니티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한국적 정체성을 더 강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55][56]
2012년 청소년 연구 저널에 발표된 미국 내 한국인 입양아 연구에 따르면, 백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한국 문화를 접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한국 식당 방문, 문화 캠프 참여 등). 이는 민족 정체성이나 미국 내 인종적 소수자로서의 현실에 대해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48] 과거에는 사회복지사가 양부모에게 아이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며 한국과의 관계를 맺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입양 부모들이 자녀의 출신 문화를 소개하려 노력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49]
일부 입양아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도 편견에 직면한다. 2014년 NPR 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 내에는 한국인 입양아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며, 국내 입양된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18] 또한, 사라 Y. 박은 박사 학위 논문에서 켄달(2005)과 김(2007)을 인용하여, 한국 여성 입양아들이 '한국에서 입양되지 않았다면 성매매를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고 지적했다.[45]
입양 과정의 문제나 입양 후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한다. 한국의 베이비 박스는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아이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박탈한다는 비판이 있다.[28] 베이비 박스에 유기된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포기된 것이 아니므로 국제 입양이 불가능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고아원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29]
입양 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추방당하거나, 양부모에게 학대당하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다. 2017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1983년 8세 때 필라델피아 부부에게 입양된 필립 클레이의 사연을 보도했다. 미국 시민권이 없고 범죄 기록이 있던 클레이는 2012년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5년간 클레이는 한국어 습득과 다른 입양아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7년 일산에서 투신하여 자살했다. 2016년 WUSA 9는 한국인 입양아 마독 현수 오캘러한의 사건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 살이었던 오캘러한은 입양 3개월 만에 양아버지 브라이언 오캘러한에게 살해당했다. 양아버지의 변호사는 해병대 참전 용사인 의뢰인이 PTSD로 인해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 입양아 애널리 이는 양아버지의 형량이 가석방 가능성을 포함해 너무 가볍다고 비판했다. 한국인 입양아 커뮤니티는 오캘러한의 묘에 제대로 된 묘비가 없는 것에 분노하여 묘비 설치를 제안했으나, 양어머니 측에서 시신을 이장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를 받아들였다.[126] 2016년 DCW 50은 브라이언 오캘러한이 약 5년 후 가석방 가능한 12년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127] 2016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존 데벨리우스 순회 판사는 양아버지의 PTSD가 사건의 요인임을 인정하며, 계획적인 살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128]
5. 3. 친부모 찾기의 어려움
해외 입양인들에게 친부모를 찾는 여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복잡한 과정이다.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던 수잔 브링크는 친부모를 만났으나 여러 갈등 끝에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친부모 찾기가 반드시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새로운 상처를 남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10]친부모 찾기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입양 기록의 부재 또는 부정확성이다. 과거 입양 과정에서 서류가 위조되거나[133], 부모의 동의 없이 입양이 이루어진 경우[114][118][133]가 많아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특히 베이비 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경우, 공식적인 포기 절차를 거치지 않아 기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아이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박탈한다는 비판도 있다.[28][29] 또한,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입양 기관의 정보 비공개 방침[114][117]도 친부모 찾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친부모를 찾으려는 입양인들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한국입양서비스(KAS)는 1950년대 이후의 국제 입양 관련 문서 수만 건을 디지털화하여 입양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30][31] 과거 덕적도 성가정 보육원과 부평구 성 빈센트 홈을 운영했던 서재송 부부가 보관하던 1,073건의 입양 기록도 2016년 KAS와 보건복지부에 의해 스캔되었다.[31]
친부모 찾기의 결과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입양 기록이 온전하여 비교적 순조롭게 친부모를 찾고 관계를 회복하는 경우(호정 오데나르데[104]), DNA 검사를 통해 극적으로 가족을 찾는 경우(신디 번스[106], 경은 데이비슨[113])도 있다. 하지만 친부모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락이 끊기거나(경은 데이비슨[113]), 입양 과정의 숨겨진 진실(친할머니가 몰래 입양 보냄 등)을 알게 되어 가족 간에 복잡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에이미 데이비스[114], 섀넌 헤이트[118])도 적지 않다. 입양 기관의 정보 차단으로 인해 뒤늦게 친모가 자신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례(레이네 포스터볼드[117])도 있다.
결국 친부모를 찾지 못하거나(조이 알레시[102]), 스스로 친부모 찾기를 포기하는 입양인(시반 알모즈[103])도 있으며,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니키 사-은 쉴드크라우트[129])도 있다. 1999년 에반 B. 도널드슨 입양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성인 입양인들이 생모가 자신을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고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99]
과거 대한민국 정부가 아동 입양을 외교적 수단이나 '국제적 우호 증진'의 명목으로 활용하고[135][136][137], 서류 위조 등 불법적인 과정에 개입[133]했다는 점은 친부모 찾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2023년에는 입양인 피터 묄러(Peter Moller)가 이끄는 단체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루어진 불법 입양에 대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73][74][75][76] 이처럼 친부모 찾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의 과거사와 구조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는 복잡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5. 4. 미혼모 지원 부족
미혼모 자녀의 증가는 대한민국의 해외 입양이 지속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23]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특수한 문화적, 제도적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혈연 중심적 가족 관계와 유교적 도덕관은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강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23]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미혼모는 사회 규범을 거스르는 존재로 여겨지며, 이는 미혼모 본인뿐 아니라 그 자녀, 심지어 가족 전체의 사회적 평판, 결혼, 직업, 교육 기회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18][19] 이러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미혼모들은 낙태를 선택하거나, 출산하더라도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23]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기 어려운 또 다른 핵심적인 이유는 제도적 지원의 부족이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한 지출은 GDP의 6.9%에 불과하여, OECD 평균인 20.6%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는 해외 입양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22] 미혼모가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은 월 7만원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반면, 국내 입양 가정에 제공되는 세금 공제 혜택은 월 15만원으로 조건 없이 지원된다.[34] 미혼모와 이혼모를 위한 시설은 전국에 33개가 있지만, 대부분 고아원이나 입양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입양 기관의 운영 방식 또한 해외 입양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입양 기관들이 국내 입양보다 해외 입양을 통해 더 많은 수수료(약 15000USD 추정[21])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입양을 선호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23] 실제로 한 고아원 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설문 조사 결과 미혼모의 90%가 자녀를 직접 키우고 싶어 했으나, 입양 기관의 권유 후에는 단 10%만이 직접 양육을 결정했다고 한다.[23] 입양 기관 소속 사회복지사들이 미혼모에게 입양을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23][24]
2012년 8월 시행된 특별입양법은 친모의 숙려 기간 보장, 출생 등록 의무화 등을 통해 입양 절차를 개선하려는 의도였으나, 오히려 아동 유기를 증가시켰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출생 기록이 남는 것을 두려워한 미혼모들이 등록 대신 유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38][39]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미흡한 제도적 지원은 미혼모가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는 높은 해외 입양률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 해외 입양인 현황
대한민국의 해외 입양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상당수의 한국인이 미국, 유럽 등 여러 국가로 입양되었다. 이들 해외 입양인은 성장하여 각자의 거주 국가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주요 입양 대상 국가는 미국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에는 상당수의 한국인 입양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경우 한인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서로 교류하기 위해 다양한 입양인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문화 교류, 정체성 탐색 지원, 때로는 입양 정책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한, 입양 아동과 가족들을 위한 문화 캠프 등도 운영되고 있다.
입양인 중에서는 예술, 문학, 영화, 정치,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적으로 알려진 인물들도 다수 존재한다.
6. 1. 주요 입양 국가
미국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한국인 입양아가 보내진 국가이다. 1988년 당시 미국 내에는 입양을 원하는 부부가 200만 쌍에 달했지만, 국내에서 입양이 가능한 건강한 아동은 2만 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국내 아동 부족 현상은 미국 부부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으며, 특히 한국 아동 입양이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23] 2010년 추산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인 입양아는 전체 한인 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97]2009년 미국 영사국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국 아동을 입양하려는 미국 부부는 25세에서 44세 사이, 부부 간 나이 차이 15세 이하, 결혼 3년 이상, 미국 전국 평균 소득 이상, 자녀 5명 이하 등의 특정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입양 수수료는 약 9500USD에서 10000USD 사이였으며, 신청 후 아동이 미국에 도착하기까지는 1년에서 4년이 소요되었다. 건강한 아동의 경우 약 3년,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동의 경우 약 1년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41]
미국 내 한국 입양아는 주로 입양 기관이 위치한 지역 근처에 많이 거주하는 경향을 보였다.[97]
유럽 국가들 역시 주요 입양 대상국이었다. 1960년대 중반, 스웨덴으로 첫 한국 아동 입양이 사회복지협회를 통해 이루어졌고, 같은 시기 홀트아동복지회는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입양을 확대했다.[23]
특히 스웨덴의 경우, 1960년대 복지 국가 정책 강화로 미혼모 지원이 확대되면서 국내 입양 아동 수가 감소했다. 이에 따라 자녀 입양을 원하던 스웨덴 가족들이 해외, 특히 이미 입양 사례가 있었던 한국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42]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인 입양아가 많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에는 입양아 지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 및 한국의 서울 등이 포함된다.[97]
지역 | 도시 |
---|---|
유럽 | 스톡홀름 (스웨덴) |
코펜하겐 (덴마크) | |
오슬로 (노르웨이) | |
파리 (프랑스) | |
브뤼셀 (벨기에) |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
미국 | 뉴욕 |
로스앤젤레스 | |
샌프란시스코 | |
미니애폴리스 | |
시애틀 | |
포틀랜드 | |
시카고 | |
보스턴 |
6. 2. 입양인 단체
입양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캠프와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입양인 캠프'''
- 홀트 입양아 캠프: 홀트 인터내셔널에서 운영하는 캠프로, 인종간 입양아 및 국제 입양아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소속감 부족이나 고립감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매일 약 1시간 동안 정체성, 입양, 인종 문제에 대한 그룹 토론이 진행된다.[65] 캠프는 미국 오리건주 코벳, 위스콘신주 윌리엄스 베이, 네브래스카주 애슐랜드, 뉴저지주 서섹스 등에서 열린다.[59][60][61][62]
- 무궁화 캠프: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 위치한 한국인 입양아를 위한 한국 문화 캠프이다. 1995년 '호도리 캠프'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1996년 '무궁화 캠프'로 변경되었다. 한국인 입양아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66]
- Korean Adoption Means Pride (KAMP): 아이오와주 데이턴에 위치하며, 한국인 입양아와 그 가족들을 위한 캠프이다. 참가자들에게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며, 한국 요리, 한국 무용, 한국어, 태권도, 한국 미술 공예 등 다양한 문화 수업을 진행한다.[64]
- 헤리티지 캠프 포 어댑티브 패밀리 (Heritage Camps for Adoptive Families, HCAF): 1991년에 설립되었으며, 다양한 배경의 입양인 그룹을 위한 9개의 캠프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하나인 코리안 헤리티지 캠프 (Korean Heritage Camp, KHC)는 매년 콜로라도주 프레이저의 스노우 마운틴 랜치에서 열린다. 입양인과 그 가족들이 모여 입양 문제와 한국 문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67][68]
'''입양인 협회 및 단체'''
성인 한국인 입양아를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자발적 협회는 1986년 11월 19일 스웨덴에서 설립된 Adopterade Koreaners Förening|아돕테라데 코레아네르스 푀레닝swe이었다.[80] 이후 국제적인 교류도 활발해져, 1995년에는 독일에서 첫 번째 한국인 입양아 컨퍼런스가 열렸고, 1999년에는 미국과 대한민국에서도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10]
2010년에 출간된 연구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 한국인 입양아의 약 10%가 관련 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97] 주요 한국인 입양아 협회는 다음과 같다.
이름 | 지역 | 설립일 | 웹사이트 |
---|---|---|---|
국제 한국 입양아 협회 (IKAA) | 국제 | 2004[81] | [http://www.ikaa.org/ website] |
입양 한국인 협회 (AKF) | 스웨덴 | 1986[82] | [http://www.akf.nu/ website] |
AKConnection | 미네소타, 미국 | 2000[83] | [http://www.akconnection.com/ website] |
Also-Known-As, Inc. | 뉴욕, 미국 | 1996[84] | [http://www.alsoknownas.org/ website] |
Arierang | 네덜란드 | 1991[85] | [http://www.arierang.nl/ website] |
워싱턴 아시아계 성인 입양아 협회 (AAA/W) | 워싱턴, 미국 | 1996[86] | [http://www.aaawashington.org/ website] |
Korea Klubben | 덴마크 | 1990[87] | [http://www.koreaklubben.dk/ website] |
Racines Coréennes | 프랑스 | 1995[88] | [http://www.racinescoreennes.org/ website] |
한국 입양아 협회-샌프란시스코 (AKA-SF)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 [http://www.aka-sf.org/ website] | |
해외 입양인 연대(GOAL) | 대한민국 | 1997[89] | [https://www.goal.or.kr/ website] |
보스턴 한국 입양아 (BKAD) | 매사추세츠, 미국 | [http://www.bkadoptee.org/ website] | |
Dongari | 스위스 | 1994[90] | [http://www.dongari.ch/ website] |
한국계 캐나다 아동 협회 (KCCA) | 캐나다 | 1991[91] | [http://www.kccato.com/ website] |
한국계 미국인 입양인 입양 가족 네트워크 (KAAN) | 미국 | 1998[92] | [http://www.kaanet.org/ website] |
일부 입양인 단체는 입양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 및 권익 옹호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2015년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트루스 앤 리컨실리에이션 포 더 어댑션 커뮤니티 오브 코리아 (TRACK)'는 한국 입양인들로 구성된 로비 단체로, 해외 입양 중단 운동을 벌였다.[33] 또한 2016년 연구에서는 '입양인 연대 한국 (ASK)' 역시 국제 입양 종식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 입양인 단체로 언급되었다.[93]
6. 3. 유명 해외 입양인
한국인 입양아 중 예술, 문학, 영화, 정치,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알려진 인물들이 있다.- 순이 프레빈: 영화 감독 우디 앨런과 결혼했다.
-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 장뱅상 플라세: 프랑스 상원 의원을 지냈다.
- 조아킴 손포르제: 프랑스의 언론인이다.
- 롭 레프스나이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하는 야구 선수이다.
- 토비 도슨: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로,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 필립 클레이: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나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했고, 범죄 기록으로 인해 한국으로 추방된 후 어려움을 겪다 2017년 자살했다.[107]
- 크리스틴 키시: 미국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탑 셰프'' 시즌 10에서 우승했다.
- 사만다 푸터먼과 아나이스 보르디에: 태어날 때 서로 다른 나라로 입양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온라인을 통해 재회한 쌍둥이 자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트윈스터스''로 만들어졌다.
- 니콜 빌더백: 미국의 배우이다.
- 제나 우시코비츠: 미국의 배우 겸 가수로, 뮤지컬 드라마 ''글리''에 출연했다.
- 베키타 프루잇: 모델 겸 배우이다.
- 폴 신: 미국 워싱턴주의 주 상원 의원을 지냈다.
- 다니엘 환 오스트라: 슬로바키아의 전 래퍼이다.
- 클레어 마셜: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신의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101]
- 마리사 브란트 (박윤정):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동했다.[105]
- 토마스 박 클레멘트: 의료기기 회사 '멕트라 랩스'를 설립했으며, 한국인 입양아와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의 가족 찾기를 돕기 위해 DNA 검사 키트를 기증하는 등 자선 활동을 펼쳤다.[108][109][110][111]
- 댄 매튜스: 얼터너티브 래퍼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 'aka Dan', 'aka SEOUL' 등에 출연했다.[125]
- 사라 존스: 화학 공학자 출신으로 여성 CEO이자 여성 기술 위원회 공동 설립자이며, 포용적인 업무 환경 조성을 돕는 컨설팅 회사 InclusionPro의 CEO이다.[119][120][121][122][123]
- 제인 정 트렌카: 작가이자 입양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132]
7. 관련 통계
한국 전쟁 이후 초기 10년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의 대부분은 미군 병사와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안이었다. 1988년 ''더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현재 입양된 한국인 중 아메라시안 비율은 1% 미만이지만 초기에는 상황이 달랐다.[23] 1955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6,293명의 한국 아동 중 약 46%가 백인-한국인 혼혈, 41%가 한국인, 나머지는 흑인 및 한국 혼혈이었다.[3] 초기 입양아들은 대부분 혼혈아였으며, 이들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6] 국제 입양 전문가인 아리사 오(Arissa Oheng)는 당시 한국 사회의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혼혈 아동들을 해외로 보내는 배경이 되었다고 지적했다.[4]
이유 | 비율 |
---|---|
출생 자녀처럼 입양한 자녀를 키우고 사랑하는 것이 어려움 | 32.1% |
가족은 혈연을 기반으로 해야 함 | 29.5% |
재정적 부담 | 11.9% |
입양에 대한 편견 | 11.4% |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94] |
수용 주/자치구 | 2001–2002 | 2002–2003 | 2003–2004 | 2004–2005 | 2005–2006 | 2006–2007 | 2007–2008 | 2008–2009 | 총계 |
---|---|---|---|---|---|---|---|---|---|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 | 4 | 5 | 5 | 3 | 3 | 2 | 0 | 1 | 23 |
뉴사우스웨일스 | 25 | 28 | 27 | 26 | 18 | 16 | 7 | 14 | 161 |
노던 준주 | 3 | 1 | 2 | 3 | 1 | 0 | 3 | 1 | 14 |
퀸즐랜드 | 15 | 16 | 18 | 19 | 15 | 9 | 9 | 7 | 108 |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 20 | 24 | 19 | 12 | 9 | 4 | 4 | 1 | 93 |
태즈메이니아 | 1 | 4 | 3 | 3 | 2 | 3 | 0 | 1 | 17 |
빅토리아 | 12 | 20 | 20 | 23 | 16 | 10 | 12 | 8 | 121 |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 12 | 10 | 14 | 10 | 5 | 4 | 5 | 2 | 62 |
총계 | 92 | 108 | 108 | 99 | 69 | 48 | 40 | 35 | 599 |
출처: 호주 국가 간 입양 네트워크[95] |
주요 국가 (1953–2008) | rowspan="18" | | 기타 국가 (1960–1995) | ||||
---|---|---|---|---|---|---|
국가 | 기간 | 입양아 수 | 국가 | 기간 | 입양아 수 | |
미국 | 1953–2008 | 109,242 | 뉴질랜드 | 1964–1984 | 559 | |
프랑스 | 1968–2008 | 11,165 | 일본 | 1962–1982 | 226 | |
스웨덴 | 1957–2005 | 9,051 | 오키나와 | 1970–1972 | 94 | |
덴마크 | 1965–2008 | 9,297 | 아일랜드 | 1968–1975 | 12 | |
노르웨이 | 1955–2008 | 6,295 | 폴란드 | 1970 | 7 | |
네덜란드 | 1969–2003 | 4,099 | 스페인 | 1968 | 5 | |
벨기에 | 1969–1995 | 3,697 | 중국 | 1967–1968 | 4 | |
호주 | 1969–2008 | 3,359 | 괌 | 1971–1972 | 3 | |
독일 | 1965–1996 | 2,352 | 인도 | 1960–1964 | 3 | |
캐나다 | 1967–2008 | 2,181 | 파라과이 | 1969 | 2 | |
스위스 | 1968–1997 | 1,111 | 에티오피아 | 1961 | 1 | |
룩셈부르크 | 1984–2008 | 561 | 핀란드 | 1984 | 1 | |
이탈리아 | 1965–2008 | 383 | 홍콩 | 1973 | 1 | |
영국 | 1958–1981 | 72 | 튀니지 | 1969 | 1 | |
rowspan="2" colspan="3" | | 터키 | 1969 | 1 | |||
기타 | 1956–1995 | 113 | ||||
주요 국가와 기타 국가를 합쳐 총 163,898명의 입양아가 있었다. | ||||||
출처: Hübinette (2005) 및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2009)[97] |
연도 | 총계 | rowspan="6" | | 미국 | 스웨덴 | 캐나다 | 노르웨이 | 호주 | 룩셈부르크 | 덴마크 | 프랑스 | 이탈리아 |
---|---|---|---|---|---|---|---|---|---|---|---|
2007 | 1,264 | 1,013 | 80 | 68 | 20 | 44 | 3 | 22 | 14 | - | |
2008 | 1,250 | 988 | 76 | 78 | 45 | 18 | 16 | 20 | 8 | 1 | |
2009 | 1,125 | 850 | 84 | 67 | 40 | 34 | 17 | 21 | 8 | 4 | |
2010 | 1,013 | 775 | 74 | 60 | 43 | 18 | 12 | 21 | 6 | 4 | |
2011.6 | 607 | 495 | 26 | 27 | 20 | 17 | 9 | 8 | 3 | 2 | |
출처: 보건복지부[96] |
연도 | 시설 수 | 아동 수 | 종사자 수 | ||
---|---|---|---|---|---|
총계 | 남 | 여 | |||
2006 | 1,030 | ||||
2007 | 276 | 1,368 | 745 | 623 | 623 |
2008 | 348 | 1,664 | 884 | 780 | 754 |
2009 | 397 | 1,993 | 1,076 | 917 | 849 |
2010 | 416 | 2,127 | 1,125 | 1,002 | 894 |
출처: 보건복지부[96] |
연도 | 성별 | ||
---|---|---|---|
총계 | 남 | 여 | |
2006 | 18,817 | 10,789 | 8,028 |
2007 | 18,426 | 10,563 | 7,863 |
2008 | 17,992 | 10,229 | 7,763 |
2009 | 17,586 | 10,105 | 7,481 |
2010 | 17,119 | 9,790 | 7,329 |
출처: 보건복지부[96] |
연도 | 입양된 한국인 | rowspan="9" | | 연도 | 입양된 한국인 | rowspan="9" | | 연도 | 입양된 한국인 |
---|---|---|---|---|---|---|---|
1999 | 1,994 | 2007 | 938 | 2015 | 318 | ||
2000 | 1,784 | 2008 | 1,064 | colspan="2" rowspan="7" | | |||
2001 | 1,862 | 2009 | 1,079 | ||||
2002 | 1,776 | 2010 | 865 | ||||
2003 | 1,793 | 2011 | 736 | ||||
2004 | 1,713 | 2012 | 627 | ||||
2005 | 1,628 | 2013 | 138 | ||||
2006 | 1,373 | 2014 | 370 | ||||
출처: 영사국[98] |
1999년부터 2015년까지 20,058명의 한국 아동이 미국 가정
8. 관련 작품
한국인 입양아들의 활동은 예술, 문학, 영화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다른 이유로 유명해진 한국인 입양아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우디 앨런과 결혼한 순이 프레빈, 배우 니콜 빌더백과 제나 우시코비츠, 모델 겸 배우 베키타 프루잇, 워싱턴 주 상원 의원을 지낸 폴 신, 전 슬로바키아 래퍼 다니엘 환 오스트라, 요리 프로그램 ''탑 셰프''(Top Chef) 시즌 10에 출연한 크리스틴 키시,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클레어 마셜,[101] 전 프랑스 장관 플뢰르 펠르랭, 그리고 프로 야구 선수 롭 레프스나이더 등이 있다.
입양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도 있다. 2015년 다큐멘터리 영화 ''트윈스터스''(Twinsters)는 태어날 때 헤어졌다가 온라인을 통해 재회하고 실제로 만난 한국인 입양아 사만다 푸터먼과 아나이스 보디에의 삶을 조명한다. 저스틴 전이 각본 및 감독을 맡은 영화 《블루 바이유》는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으나 양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해주지 않아 추방 위기에 놓인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는 혼혈 입양과 관련된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하며, 2000년 아동 시민권법과 같은 제도적 문제와도 연결된다.[138][139]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들은 한국 TV 드라마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대표적으로 2004년 방영된 KBS 2TV 월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있다.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입양아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예로는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등장인물 다니엘 피트나 《그녀의 사생활》의 등장인물 라이언 골드 등이 있다.
참조
[1]
간행물
The past and future of international adoption
https://www.brooking[...]
Brookings Institution
2015-06-29
[2]
웹사이트
'한 아이의 온 세상을 만드는 입양, 국가가 책임지고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https://www.korea.kr[...]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2021-05-14
[3]
서적
Culture, Ethnicity & Mental Illness
https://books.google[...]
American Psychiatric Press
1993
[4]
뉴스
How South Korea became the first country to start international adoptions
https://www.pri.org/[...]
Public Radio International
2015
[5]
웹사이트
Adoption History: Bertha and Harry Holt
http://pages.uoregon[...]
University of Oregon
[6]
PBS
Adoption History - First Person Plural - POV
https://www.pbs.org/[...]
PBS
2000
[7]
서적
The Oregon Companion: An Historical Gazetteer of The Useful, The Curious, and The Arcane
https://archive.org/[...]
Timber Press
[8]
문서
President Kim Dae Jung's Speech: October 23, 1998 at the Blue House
Chosen Child
1999-05
[9]
서적
Belonging in an Adopted World: Race, Identity, and Transnational Adoptio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0
[10]
웹사이트
Korea - adoptionens historia (Um & Yang 3/1999)
http://hem.passagen.[...]
2016-07-12
[11]
뉴스
South Korea struggles to free itself from adoption stigma
http://www.csmonitor[...]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1997
[12]
뉴스
Lies, love and deception: inside the cut-throat world of international adoption
https://www.telegrap[...]
2022-12-09
[13]
뉴스
South Korea launches investigation into suspicious adoptions of children to the West
https://www.telegrap[...]
2022-12-09
[14]
뉴스
South Korea's truth commission to investigate dozens of foreign adoptions
https://www.theguard[...]
2022-12-08
[15]
문서
North Korea and adoption
http://www.tobiashub[...]
[16]
문서
Pure Mixed Blood: The Multiple Identities of Amerasians in South Korea
https://books.google[...]
[17]
논문
Human Capital: Transnational Korean Adoptees and the Neoliberal Logic of Return
https://books.google[...]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2012
[18]
NPR
In Korea, Adoptees Fight To Change Culture That Sent Them Overseas
https://www.npr.org/[...]
NPR
2014
[19]
웹사이트
Unmarried Mothers in Korea
http://www.korea4exp[...]
Korea 4 Expats
[20]
웹사이트
Korea to Haiti: Lessons in Overseas Adoption Corruption
http://www.conducive[...]
Conducive Magazine
2010-04
[21]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Ending South Korea's Child Export Shame
http://www.ips-dc.or[...]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2011
[22]
문서
Editor's note
Journal of Korean Adoption Studies
2010
[23]
뉴스
Babies for Sale: South Koreans make them, Americans buy them
http://poundpuplegac[...]
The Progressive
1988
[24]
웹사이트
"[Newsmaker] Government neglect of single moms sends babies abroad despite S. Korea's low birth rate"
https://m.koreaheral[...]
The Korea Herald
2024-01-21
[25]
웹사이트
Domestic Adoption
http://www.korea4exp[...]
Korea 4 Expats
2015
[26]
뉴스
Why adoptions are so rare in South Korea
https://www.economis[...]
The Economist
2015
[27]
뉴스
Why are South Koreans reluctant to adopt children?
https://www.bbc.com/[...]
BBC News
2015
[28]
Youtube
South Korea adoption law: More harm than good?
https://www.youtube.[...]
[29]
SBS
"Opinion divided on the merits of South Korean pastor's 'baby box#REDIRECT "
http://www.sbs.com.a[...]
Special Broadcasting Service
2015
[30]
뉴스
Intercountry adoption must be last resort
http://www.koreahera[...]
The Korea Herald
2014
[31]
뉴스
"'They aren't my blood, but they're all my children"
http://english.hani.[...]
The Hankyoreh
2017
[32]
뉴스
South Korea's troubled export: babies for adoption
https://www.reuters.[...]
2007-05-25
[33]
뉴스
Pity the children
https://www.economis[...]
The Economist
2015
[34]
웹사이트
KUMFA – Korean Unwed Mothers Families' Association
http://kumfa.or.kr/?[...]
[35]
웹사이트
South Korea's Single Moms Struggle To Remove A Social Stigma
https://www.npr.org/[...]
[36]
웹사이트
An Adoptee's Perspective in Korean Adoption
http://www.mpak.com/[...]
2011-02-05
[37]
뉴스
Celebrity Couple Sets Example to Follow
http://english.chosu[...]
The Chosun Ilbo
2005-12-15
[38]
뉴스
Raised in America, activists lead fight to end S. Korean adoptions
http://www.cnn.com/2[...]
CNN
2013
[39]
간행물
Abandoned Babies: The Backlash of South Korea's Special Adoption Act
https://digital.lib.[...]
Washington International Law Journal
2015
[40]
웹사이트
History of Adoption in Korea
http://www.kadoption[...]
Korea Adoption Services
2016-11-07
[41]
웹사이트
SOUTH KOREA | Intercountry Adoption
http://adoption.stat[...]
Bureau of Consular Affairs
2012-10-23
[42]
웹사이트
Adoptions to Sweden
http://www.swedenabr[...]
Embassy of Sweden, Seoul
2016-10-29
[43]
간행물
Adoption and Identity Experiences Among Adult Transnational Adoptees: A Qualitative Study
http://www.tandfonli[...]
Adoption Quarterly
2016
[44]
뉴스
Babies remember their birth language – scientists
https://www.bbc.com/[...]
BBC News
2017
[45]
학위논문
Representations of Transracial Korean Adoption in Children's Literature
https://books.google[...]
Graduate College of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2009
[46]
간행물
Suicide, psychiatric illness, and social maladjustment in intercountry adoptees in Sweden: a cohort study
The Lancet
2002
[47]
뉴스
New Immigration Strategy: Koreans Send Children to America for Adoption
http://news.newameri[...]
New America Media
2006
[48]
간행물
Cultural Socialization in Families with Adopted Korean Adolescents: A Mixed-Method, Multi-Informant Study
Journal of Adolescent Research
2012
[49]
뉴스
Adoptees: Identity can be a long journey
http://archive.azcen[...]
The Seattle Times
2016-11-02
[50]
간행물
Reversibility of the Other-Race Effect in Face Recognition During Childhood
Psychological Science
2005
[51]
웹사이트
About Me & F.A.Q.s
http://www.asian-nat[...]
Asian Nation: Asian American History
2016-11-02
[52]
웹사이트
Adopted Asian Americans
http://www.asian-nat[...]
Asian Nation: Asian American History
2016-11-02
[53]
학위논문
Loss And Reclaimed Lives: Cultural Identity And Place In Korean-American Intercountry Adoptees
University Of Minnesota
1998-03
[54]
웹사이트
Beyond Culture Camp: Promoting Healthy Identity Formation in Adoption
The Donaldson Adoption Institute
[55]
문서
By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 Collection of Resources & Scrapbook of G.O.A.'L
[56]
웹사이트
'[LLG] Unseen inheritance: Trauma of transnational adoption ''trickles down'' to adoptees'' children'
https://m.koreaheral[...]
The Korea Herald
2024-05-12
[57]
뉴스
Giving voice to the children adopted out of South Korea
http://www.straitsti[...]
The Straits Times
2015
[58]
서적
'International Korean Adoption: A Fifty-Year History of Policy and Practice'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07
[59]
웹사이트
Oregon Camp"
http://www.holtinter[...]
Holt International
2017-04-23
[60]
웹사이트
Wisconsin Camp"
http://www.holtinter[...]
Holt International
2017-04-23
[61]
웹사이트
Nebraska Camp"
http://www.holtinter[...]
Holt International
2017-04-23
[62]
웹사이트
East Coast Camp"
http://www.holtinter[...]
Holt International
2017-04-23
[63]
웹사이트
Directions
http://www.koreancul[...]
Raleigh, NC Camp Moo Gung Hwa Korean Culture Camp
2017-04-23
[64]
웹사이트
K.A.M.P. 2017
http://iiakampretrea[...]
Iowans for International Adoption
2017-04-23
[65]
웹사이트
Adoptee Camp
http://www.holtinter[...]
Holt International
2017-04-23
[66]
웹사이트
About Us
http://www.koreancul[...]
Raleigh, NC Camp Moo Gung Hwa Korean Culture Camp
2017-04-23
[67]
웹사이트
About Us
https://www.heritage[...]
2019-02-23
[68]
웹사이트
Korean Heritage Camp
https://www.heritage[...]
2019-02-23
[69]
Youtube
Adoptees and the Politics of Belonging
https://www.youtube.[...]
The Korea Society
2013-07-29
[70]
웹사이트
Why a Generation of Adoptees Is Returning to South Korea
https://www.nytimes.[...]
2015-01-14
[71]
웹사이트
Homeland Divide: Korean adoptees are flocking to their birth country—changing the landscape of international adoptions
http://hyphenmagazin[...]
2016-11-02
[72]
웹사이트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 Dual Citizenship Campaign
http://goal.or.kr/en[...]
2016-07-12
[73]
뉴스
World's Largest 'Baby Exporter' Confronts Its Painful Past
https://www.nytimes.[...]
2023-09-17
[74]
웹사이트
"[INTERVIEW] Danish adoptees demand Korean gov't to probe dark past of exporting babies"
https://www.koreatim[...]
2022-10-06
[75]
뉴스
"'Korea is hiding our past': the adoptees searching for their families – and the truth"
https://www.theguard[...]
2023-09-28
[76]
뉴스
In Norway, a Proposed Ban on Foreign Adoptions Rattles All Sides of a Heated Debate
https://www.nytimes.[...]
2024-01-17
[77]
뉴스
After 37 years in US, Korean adoptee speaks out about imminent deportation
https://www.theguard[...]
2016-10-28
[78]
뉴스
These Korean Adoptees Grew Up Like Typical American Kids. Then They Learned They Weren't Citizens
https://www.thenatio[...]
2016-08-12
[79]
문서
Deportation a 'Death Sentence' to Adoptees After a Lifetime in the U.S.
[80]
웹사이트
AKF
https://web.archive.[...]
2016-11-01
[81]
웹사이트
History
https://web.archive.[...]
2016-11-01
[82]
웹사이트
IKF
https://web.archive.[...]
2016-11-01
[83]
웹사이트
Home
http://www.akconnect[...]
2016-10-31
[84]
웹사이트
Also-Known-As, Inc.
http://www.ikaa.org/[...]
2016-10-31
[85]
웹사이트
Arierang
https://web.archive.[...]
2016-11-01
[86]
웹사이트
Asian Adult Adoptees of Washington
http://www.ikaa.org/[...]
2016-10-31
[87]
웹사이트
Korea Klubben (DK)
https://web.archive.[...]
2016-11-01
[88]
웹사이트
Racines Coréennes
https://web.archive.[...]
2016-11-01
[89]
웹사이트
Timeline
https://web.archive.[...]
2016-10-31
[90]
웹사이트
Über uns: Porträt
http://www.dongari.c[...]
2016-10-31
[91]
웹사이트
About KCCA
https://web.archive.[...]
2016-10-02
[92]
웹사이트
From the Executive Director
https://web.archive.[...]
2016-11-04
[93]
서적
Birth Mothers and Transnational Adoption Practice in South Korea: Virtual Mothering
https://books.google[...]
Palgrave Macmillan
2017-03-13
[94]
웹사이트
South Korean Adoptions: Canary in the International Adoption Mine?
https://creatingafam[...]
2016-11-08
[95]
웹사이트
Australian InterCountry Adoption Network
http://www.aican.org[...]
2016-11-04
[96]
웹사이트
Expert discussion on the Hague Convention on Intercountry Adoption
http://www.mohw.go.k[...]
2016-10-28
[97]
서적
Adopted Territory: Transnational Korean Adoptees and the Politics of Belonging
https://books.google[...]
Duke University Press
2017-03-22
[98]
웹사이트
Statistics
https://travel.state[...]
2016-10-28
[99]
웹사이트
The Gathering of the First Generation of Adult Korean Adoptees: Adoptees' Perceptions of International Adoption
http://www.adoptioni[...]
2006-01-28
[100]
간행물
Survey of Attendees of the 2010 International Korean Adoptee Associations Gathering of Korean Adoptees, August 4, 2010, Seoul, South Korea
https://web.archive.[...]
2016-03-28
[101]
Youtube
My Tattoos - heyclaire
https://www.youtube.[...]
2012-12-13
[102]
뉴스
"{{bracket|Interview}} Adoptees from Korea left 'stateless', and searching for their roots"
http://english.hani.[...]
The Hankyoreh
2017-04-09
[103]
웹사이트
The Abandoned Baby that Became the CEO of First Hug
https://mobile.mako.[...]
Channel 12
[104]
뉴스
(Yonhap Interview) How art helps Korean adoptee connect, overcome traumatic experiences
http://english.yonha[...]
Yonhap
2017-03-25
[105]
뉴스
South Korea, Next Olympics Host, Went Shopping in North America to Build Its Hockey Teams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17-04-23
[106]
뉴스
A woman's lifelong quest to track down her biological mother
http://www.cbsnews.c[...]
CBS News
2016
[107]
뉴스
Adopted from Korea as a child, deported as an adult – Philly man takes his life
http://www.philly.co[...]
The Philadelphia Inquirer
2017
[108]
뉴스
Indiana man helping Korean adoptees find their roots
http://www.washingto[...]
The Washington Times
2015
[109]
뉴스
'What is important is that I survived': South Korean adoptee describes his journey to US
http://www.berkshire[...]
The Berkshire Eagle
2013
[110]
뉴스
For adopted Koreans, a DNA test can be a shortcut to birth families
http://www.seattleti[...]
The Seattle Times
2016
[111]
간행물
Korean adoptees are using DNA kits to get a glimpse of their ancestry
https://www.pri.org/[...]
Public Radio International
2015
[112]
뉴스
Judge deports man who was adopted as a child from South Korea 38 years ago
http://q13fox.com/20[...]
KCPQ
2016
[113]
뉴스
DNA test reunites Korean adoptee with birth mother
http://www.koreahera[...]
The Korea Herald
2016
[114]
뉴스
A journey of family, forgiveness: Duluth woman recounts search for birth parents in Korea
http://www.duluthnew[...]
Duluth News Tribune
2017
[115]
간행물
Voices of Adoption: Korean Adoptee Perspectives
https://www.pbs.org/[...]
PBS
2000
[116]
간행물
A Korean adoptee meets his birth mother and winds up moving in with her
https://www.pri.org/[...]
Public Radio International
2017
[117]
간행물
Voices of Adoption: Korean Adoptee Perspectives
https://www.pbs.org/[...]
PBS
2000
[118]
뉴스
In South Korea, quest to recast views of single motherhood
https://www.minnpost[...]
MinnPost
2014
[119]
뉴스
The Mystery of The Yoon Tattoo
https://todaysmama.c[...]
Today's Mama
2018
[120]
웹사이트
Sara Jones: My Story of Love and Loss as a Transracial Adoptee
https://go.ted.com/s[...]
[121]
웹사이트
Sara Jones Biography
https://www.iedceven[...]
[122]
뉴스
Sara Jones: 2019 CEO of the Year Honoree
https://www.utahbusi[...]
Utah Business Magazine
2018
[123]
웹사이트
Sara Jones: 2017 Distinguished Alumni
https://www.che.utah[...]
[124]
뉴스
Adoptee discovers that you can go home again
http://mengnews.join[...]
Korea JoongAng Daily
2017
[125]
뉴스
aka SEOUL: A Korean Adoptee Story
https://www.nbcnews.[...]
NBC News
2016
[126]
뉴스
Korean American adoptees furious at light sentence for toddler killer
http://www.wusa9.com[...]
WUSA 9
2016
[127]
뉴스
Korean adoption advocates call for change in adoption process
http://dcw50.com/201[...]
DCW 50
2016
[128]
뉴스
Former NSA official sentenced to 12 years in death of adopted son
https://www.washingt[...]
The Washington Post
2016
[129]
간행물
As Korean adoptees return, a complex relationship follows
http://www.scpr.org/[...]
89.3KPCC
2015
[130]
뉴스
Nohl fellows explore their transracial adoption stories through art
http://www.jsonline.[...]
Milwaukee Journal Sentinel
2017
[131]
뉴스
A voyage round my mother: the raw cabaret show about being abandoned and adopted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17
[132]
뉴스
Jane Jeong Trenka cautions adoptive parents in new book
https://www.minnpost[...]
MinnPost
2010
[133]
웹사이트
South Korea's adoption scandal unveils harrowing realities
https://koreapro.org[...]
joonha.park
2024-09-22
[134]
웹사이트
'Korea is hiding our past': the adoptees searching for their families – and the truth
https://amp.theguard[...]
2024-09-22
[135]
웹사이트
Western Nations Were Desperate for Korean Babies. Now Many Adoptees Believe They Were Stolen
https://www.pbs.org/[...]
2024-09-22
[136]
웹사이트
Investigating South Korea's sham adoptions
https://www.abc.net.[...]
2024-05-02
[137]
웹사이트
Did this happen to me also? Korean adoptees question their past and ask how to find their families
https://www.washingt[...]
.washingtonpost
[138]
웹사이트
With Cannes Darling 'Blue Bayou,' Justin Chon Asks What It Means to Be an American
https://www.gq.com/s[...]
2021-09-16
[139]
웹사이트
In Justin Chon's 'Blue Bayou,' one man's fictional immigration saga raises real-world political awareness
https://datebook.sfc[...]
Hannah Bae
2021-09-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