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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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빌은 "위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의 고대 수메르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현재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의 수도이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아시리아의 도시였으며, 페르시아, 그리스, 파르티아, 로마, 사산 제국 등 다양한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세 시대에는 여러 왕조와 투르크멘 국가의 통치를 거쳐 주요 교역로 역할을 했고,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중심지였다. 근현대에는 쿠르드 자치구의 중심 도시로 발전했으며,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치안이 개선되면서 외국 기업의 투자가 증가했다. 아르빌 성채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아르빌 국제공항은 이라크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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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빌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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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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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헤울레르 |
별칭 | 성채와 미나레트의 도시 |
위치 | 이라크 내 쿠르디스탄 지역 |
행정 구역 | |
국가 | 이라크 |
지역 | 쿠르디스탄 지역 |
주 | 에르빌 주 |
정부 | |
시장 | 오메드 코슈나우 |
지리 | |
해발 고도 | 390m |
면적 | 115km² |
육지 면적 | 113km² |
물 면적 | 2km² |
인구 | |
2018년 추정 인구 | 879,071명 |
인구 밀도 | 10434.78명/km² |
기타 정보 | |
우편 번호 | 44001 |
지역 번호 | 066 |
시간대 | AST |
웹사이트 | HawlerGov.org |
2. 어원
아르빌이라는 이름은 수메르의 성서에 “위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을 가진 우르빌룸(Urbilum) 혹은 우르벨룸(Urbelun)의 형태로 나온다. ''에르빌''은 도시의 오스만 터키어 이름 اربيل|에르빌ota의 로마자 표기법이며,[16] 공식 영어 번역에서 여전히 도시 이름으로 사용된다.[17] 현대 표준 아랍어 형태는 ''아르빌''(أربيل|아르빌ar)이다.[18] 고대에는 라틴어로 '''아르벨라'''(Arbela)로, 고대 그리스어로는 Ἄρβηλα|아르벨라grc로 알려졌으며, 이는 고대 페르시아어 ''Arbairā'' (𐎠𐎼𐎲𐎡𐎼𐎠𐏓|Arbairāpeo)에서 유래되었고, 다시 고대 아시리아어 ''Arbaʾilu''에서 유래되었으며,[19][20], 수메르어 ''Urbilum'' (𒌨𒉈𒈝𒆠|ur-bi₂-lumkisux)에서 유래되었다.[21]
아르빌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608년까지 아시리아의 도시였으며, 아시리아를 점령한 페르시아의 수도이기도 했다. 약 천년 뒤, 메디아의 왕 키야카레스는 다수의 고대 이란인들을 정착시켰다. 기원전 547년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가 아시리아를 점령했고 아케메네스 왕조의 속주를 건설했다. 메디아의 왕 프라오르테스가 주도한 반란은 다리우스 1세에 의해 평정되었으나, 이후에도 이란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보내 기원전 521년 여름 반란을 잠재웠다.
아르빌은 선(先) 수메르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해 온 곳이다.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주민의 민족 구성과 사용 언어가 다양하기 때문에 도시의 칭호 또한 역사적으로 사용된 것들을 포함하면 라틴 문자로 표기하여 ''Irbilum, Urbilum, Urbel, Arbail, Arbira, Arbela, Erbil/Arbil'' 등 여러 가지가 있다.
3. 역사
아르빌은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분쟁 지역이었다. 고대 시리아 왕국 아디아베네는 아르빌을 수도로 삼았다. 이들 귀족은 유대교로 개종했고, 곧 민중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하며 중세 시대까지 동방 시리아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세 시대에 아르빌은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부이드 왕조, 셀주크 제국의 통치를 받은 후 투르크멘 국가의 지배를 거쳐 일 칸국, 잘라이르 왕조, 카라코윤루, 아크코윤루의 지배를 받았다. 아르빌은 바그다드와 모술을 잇는 주요 교역로 역할을 했다.
1970년 이라크 정부와 협상 끝에 쿠르드 자치구 의회를 설립했으나, 1991년 걸프 전쟁 말기에 일어난 쿠르드인 봉기 이전까지는 사담 후세인이 사실상 지배했다. 1990년대 중반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과 쿠르디스탄 민주당 사이의 내전으로 인해 입법부는 기능을 멈추었다. 1996년 이라크의 도움을 받아 쿠르디스탄 민주당이 아르빌을 점령했고,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은 술라이마니야에 다른 쿠르드 정부를 세웠다. 쿠르디스탄 민주당은 1996년 3월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이 이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며, 외세의 공격을 우려하여 이라크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1997년 평화 협정 이후 아르빌의 쿠르드 의회는 재소집되었으나 실권은 없었다. 쿠르드 의회는 서부와 북부 지역만 통치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미국 특수 임무 부대가 아르빌 외곽 지역에 본부를 두었다. 2003년 4월 10일 아르빌 시민들은 바트당 정권 붕괴 이후 열광적인 축전을 벌였다. 대한민국 육군의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주둔했었다.
2006년, 서보헤미아 대학교의 카렐 노바체크는 소규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성채 유적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것이었지만, 언덕 서쪽 경사면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소수의 도편과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는 더 많은 유물,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 시대의 유물을 발견했다. 이 지역은 사람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에 제대로 발굴된 적이 없다. 2013년, 로마 대학교 라 사피엔차 연구팀은 성채 중심부에서 지표 투과 레이더 작업을 수행했다. 2014년부터는 현대 건물 붕괴로 발굴 기회가 생긴 성채 지역에서 이라크 주도의 발굴이 시작되었다. 또한 역사적인 항공 사진 촬영과 하층 도시 현장 조사가 시작되었다.[22][23][24]
아르빌 주변 평원에는 많은 유망한 고고학 유적지가 있는데, 특히 텔 바르타가 눈에 띈다. 2012년 아르빌 평원 고고학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 조사는 위성 이미지와 현장 작업을 결합하여 아르빌 주변 평원의 개발과 고고학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25] 텔 바르타는 초기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80헥타르에 달하는 매우 큰 유적지이다.[26][27]
3. 1. 고대
아르빌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608년까지 아시리아의 도시였으며, 아시리아를 점령한 페르시아의 수도이기도 했다. 중기 아시리아 제국(기원전 1365–1050년) 시대에 아르빌은 아시리아의 지배 구역 안에 있었다.[31]
약 천년 뒤, 메디아의 왕 키야카레스는 다수의 고대 이란인들을 정착시켰다. 기원전 547년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가 아시리아를 점령하고 아케메네스 왕조의 속주를 건설했다. 메디아의 왕 프라오르테스가 주도한 반란은 다리우스 1세에 의해 평정되었으나, 이후에도 이란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보내 기원전 521년 여름 반란을 잠재웠다.
아르빌은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분쟁 지역이었다. 고대 시리아 왕국 아디아베네는 아르빌을 수도로 삼았다. 이들 귀족은 유대교로 개종했고, 곧 민중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하며 중세 시대까지 동방 시리아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36]
3. 1. 1. 청동기 시대
아르빌이 위치한 지역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수메르의 지배를 받았다. 아카드 제국 (기원전 2335–2154년)이 부상하면서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아카드 셈족과 수메르인들이 하나의 통치 아래 통합되었다.[29] 구티움 왕국의 왕 에리두피지르는 기원전 2150년에 이 도시를 점령했다.[30]
아르빌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에블라 왕국의 문서에서 처음 등장한다. 기원전 2300년경, 에블라에서 온 사자가 아르빌(''Irbilum'')로 두 번 여행을 갔다는 기록이 있다. 우르 제3왕조의 우르 통치자 아마르-신은 기원전 1975년경 그의 통치 2년차에 ''우르빌룸''을 약탈했다. 우르 제3왕조가 멸망한 후 수 세기 동안 아르빌은 이 지역의 강자로 부상했다. 샴시-아다드 1세는 짧은 기간 동안 상 메소포타미아 왕국을 건설하면서 이곳을 정복했지만, 왕국이 멸망한 후 다시 독립했다.
2006년, 서보헤미아 대학교의 카렐 노바체크가 소규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성채 유적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것이었지만, 언덕 서쪽 경사면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소수의 도편과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는 더 많은 유물,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 시대의 유물을 발견했다. 이 지역은 사람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에 제대로 발굴된 적이 없다.
아르빌 주변의 광대한 평원에는 많은 유망한 고고학 유적지가 있는데, 특히 텔 바르타가 눈에 띈다. 2012년 아르빌 평원 고고학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 조사는 위성 이미지와 현장 작업을 결합하여 아르빌 주변 평원의 개발과 고고학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25] 텔 바르타는 초기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80헥타르에 달하는 매우 큰 유적지이다.[26][27]
3. 1. 2. 철기 시대
아르빌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608년까지 아시리아 도시였다. 아시리아를 점령한 페르시아의 수도이기도 했다. 중기 아시리아 제국(기원전 1365–1050년) 시대에 이르러 아르빌은 아시리아의 지배 구역 안에 있었다.[31]
이 지역은 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35–605년)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페르시아, 그리스, 파르티아, 로마, 사산 제국의 손을 거치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메디아(Medes) 시대에 키악사레스(Cyaxares)는 이란 민족(Iranian peoples)의 사르티아인(Sagartians) 부족 사람들을 아시리아 도시인 아르빌(Arbela)과 아라파(Arrapha)(현대 키르쿠크)에 정착시켰을 수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니네베를 점령하는 데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고전 작가들에 따르면,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 2세(Cyrus the Great)는 기원전 547년에 아시리아를 점령하고 고대 페르시아어로 ''아테라(Aθurā) (Athura)''라고 불리는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군사 보호령(또는 사트라피)으로 세웠으며, 바빌론을 수도로 삼았다.[31]
메디아인(Medes)과 그들과 함께 사르티아인(Sagarthians)은 기원전 522년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I)에게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 반란은 다음 해 타흐마스파다 장군이 이끄는 다리우스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사건들은 현재 이란 케르만샤 주(Kermanshah Province) 산에 있는 베히스툰 비문에 묘사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er the Great)가 다리우스 3세(Darius III of Persia)를 격파한 가우가멜라 전투는 기원전 331년에 에르빌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고 우르바노 몬티(Urbano Monti)의 세계 지도에 나와 있다.[32] 전투 후 다리우스는 그 도시로 도망쳤다. (다소 부정확하게, 이 대결은 때때로 "아르벨라 전투"로 알려지기도 한다.) 그 후 아르벨라는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3세의 사망 후, 아르벨라는 헬레니즘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의 일부가 되었다.
에르빌은 사산 제국(Sasanids) 시대에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의 분쟁 지역의 일부가 되었다. 파르티아 시대부터 초기 사산 제국 시대까지 에르빌은 아디아베네(Adiabene)(아시리아어 ''Ḥadyab'')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와 왕국은 유대교로 개종한 왕족, 특히 아디아베네의 헬레나 여왕(Helena of Adiabene)으로 유대교 역사에 알려져 있다.[33]
그곳의 주민들은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기독교로 점차 개종했으며, 피키다는 전통적으로 서기 104년경에 최초의 주교가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종교는 서기 10세기까지 이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34][35] 또한 유대교에서 개종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독교 공동체도 존재했다.[36] 에르빌(시리아어(Syriac): ܐܪܒܝܠsyc ''Arbel'')의 아디아베네 (동 시리아 교회 관구)(Adiabene (East Syriac ecclesiastical province))는 중세 시대 후반까지 동부 시리아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36]
3. 2. 중세
중세 시대에 아르빌은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부이드 왕조, 셀주크 제국의 통치를 받은 후 투르크멘 국가의 지배를 거쳐 일 칸국, 잘라이르 왕조, 카라코윤루, 아크코윤루의 지배를 받았다. 아르빌은 바그다드와 모술을 잇는 주요 교역로 역할을 했다.
아시리아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성경 (유대교 포함) 이름을 많이 채택했지만, 초기 주교 대부분은 동아람어 또는 유대교/성경적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도시 초기 기독교인 중 많은 수가 유대교에서 개종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다.[37] 이 도시는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교구 주교가 있는 곳이었으며, 많은 교회 교부들과 아람어로 된 유명 작가들이 나왔다.
페르시아의 이슬람 정복 이후, 아르빌이 속한 사산 제국의 지방은 해체되었고, 7세기 중반부터 이 지역에는 주로 아랍인과 투르크인을 포함한 무슬림의 유입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쿠르드족 부족은 Hadhabani였으며, 이 부족의 여러 구성원은 10세기 말부터 12세기까지 도시의 총독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는 젠기드 왕조에 정복당하고 총독직이 투르크계 Begtegenids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Gökböri였고, 그는 아이유브 왕조 시대에도 도시를 유지했다.[39][40] 야쿠트 알-하마위는 13세기 아르빌을 주로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묘사했다.[41]
13세기에 몽골이 근동을 침략했을 때, 1237년에 처음으로 아르빌을 공격했다. 그들은 하부 도시를 약탈했지만 칼리프 군대가 접근하자 퇴각해야 했고 요새 점령을 미뤄야 했다.[42] 1258년 바그다드의 멸망 이후 훌레구와 몽골에게 항복한 마지막 Begtegenid 통치자는 도시의 쿠르드족 수비대도 항복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몽골군은 아르빌로 돌아와 6개월간의 포위 끝에 요새를 점령했다.[43][44] 훌레구는 그 후 도시에 아시리아인 기독교인 총독을 임명했고, 시리아 정교회는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일칸국 전역에서 기독교인, 유대인 및 불교도에 대한 지속적인 박해가 Oïrat 아미르 나우루즈의 통치하에 1295년에 시작되었고, 이는 토착 기독교인 아시리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45] 1297년, 일칸 가잔은 박해를 중단시켰다.
일칸 올제이투의 통치 기간 동안 아시리아인 주민들은 박해를 피해 요새로 피신했다. 1310년 봄, 이 지역의 말렉 (총독)은 쿠르드족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점령하려 했다. 마르 야발라하 투르크계 주교가 임박한 재앙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1310년 7월 1일 일칸국 군대와 쿠르드족 부족의 포위 공격을 받아 요새는 함락되었고, 하부 도시의 많은 아시리아인 주민을 포함한 모든 수비대가 학살되었다.[46][47]
그러나 이 도시의 아시리아인 인구는 1397년 티무르 군대에 의한 도시 파괴 전까지 수적으로 상당한 규모를 유지했다.[48]
아르빌은 Ibn Khallikan과 Ibn al-Mustawfi와 같은 유명한 12세기와 13세기 쿠르드족 역사학자이자 작가들의 출생지였다.
3. 3. 근현대
아르빌은 산 아래 평원에 위치하지만, 대부분의 이라크 쿠르디스탄 주민들은 예로부터 쿠르드족의 전통적인 서식지인 험준하고 바위가 많은 지형에서 거주해 왔다.[49]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많은 난민들이 아르빌에 거주하고 있다. 2020년에는 2003년 이후 아르빌 대도시권에 45만 명의 난민이 정착했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계속 머물 것으로 예상되었다.[50]
미군의 이라크 점령 기간 동안 아르빌은 산발적인 공격을 받았다. 이드 알 아드하 축제 기간에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로 2004년 2월 117명이 사망했으며,[51] 안사르 알-수나가 책임을 주장했다.[51] 2005년 5월 자살 폭탄 테러로 경찰 모집 센터 밖에서 민간인 60명이 사망하고 1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52]
2005년 아르빌 국제공항이 개항했다.[53] 2013년 9월에는 5중 차량 폭탄 테러로 6명이 사망했다. 2015년 아시리아 동방 교회는 본부를 시카고에서 아르빌로 이전했다.
2021년 2월, 일련의 미사일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2년 3월에도 추가 미사일 공격이 발생했다.
아르빌은 아르빌 주의 주도이자,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이다. 2022년 추산 인구는 약 161만 명이다.
과거에는 아르벨라(Arbela)로 불렸으며,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격파한 가우가멜라 전투의 실제 주요 전장이었다. 기원 1세기에는 유대교를 수용한 아시리아인의 국가 아디아베네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2005년 연방제를 규정한 신헌법이 제정되었으며, 2006년 쿠르드 자치 정부가 정식으로 발족하면서 아르빌이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가 되었다.
아르빌 구시가지 중심에는 카라아트라고 불리는 오래된 요새(아르빌 성채)가 있다. 거기에서 방사선 형태로 도시가 뻗어 있으며, 동심원상으로 우회 도로가 통하고 있다. 구시가지와는 독립된 형태로,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간선 도로를 따라 신시가지가 발전하고 있으며, 고층 빌딩 건설 붐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다국적군과 쿠르드족을 겨냥한 아랍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빈번했으며, 2004년 2월 4일에는 109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2005년 5월 4일에도 자폭 테러가 발생하여 46명이 사망했다. 이후 자치구 3개 주의 치안은 대체로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었지만, 2007년 5월 9일에는 아르빌 내무성 앞에서 트럭에 설치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9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했다.[77]
현재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 정부, 주요 정당, 각국 영사관, 외국 기업 등 주요 조직의 거점 기능이 집중되어 있다. 시의 출입구에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시내 경비 체제도 쿠르드 자치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엄중하다.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 수니파 쿠르드인으로 종파 간 대립이 적어, 이라크 다른 지역에 비해 테러 발생이 제한적이고 정세가 비교적 안정되어 치안이 회복되었다. 일본 외무성의 이라크 여행 정보(위험 정보)에서도 아르빌 주변은 "여행 여부를 검토해 주십시오"로, 다른 지역("대피 권고" 또는 "여행 연기 권장")보다 위험 정보가 완화되어 있다.
2011년 7월 이케가미 아키라가 아르빌을 방문하여 부흥과 치안 개선 상황을 취재했다.[78]
2014년 ISIL의 무력 공격이 아르빌 근교에 미치면서 야포 공격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8일 미국군이 ISIL에 대해 공습을 개시, 근교의 야포를 함재기 2기로 격파했다.[79]
2015년 4월 17일 아르빌 주재 미국 영사관 밖에서 자동차 폭탄이 폭발, 3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다. ISIL이 이 사건의 범행을 인정했다.[80]
2021년 2월 미군 기지 근처에서 무력 공격으로 민간인 1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9월 11일 미군 주둔 공항 근처에서 폭발물을 실은 무인기 공격이 있었으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81]
3. 3. 1. 오스만 제국 시대
아르빌의 현대 도시는 오스만 요새가 있는 텔 위에 세워졌다. 중세 시대 동안 아르빌은 바그다드와 모술 사이의 주요 무역 중심지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외부 세계로 통하는 중요한 도로 연결망을 통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3. 3. 2. 이라크 왕국 및 공화국 시대
1970년 이라크 정부와 협상 끝에 쿠르드 자치구 의회를 설립했으나, 1991년 걸프 전쟁 말기에 일어난 쿠르드인 봉기 이전까지는 사담 후세인이 사실상 지배했다. 1990년대 중반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과 쿠르디스탄 민주당 사이의 싸움으로 인해 입법부는 기능을 멈추었다. 1996년 이라크의 도움을 받아 쿠르디스탄 민주당이 아르빌을 점령했다. 곧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은 술라이마니야에 다른 쿠르디스탄 정부를 세웠다. 쿠르디스탄 민주당은 1996년 3월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이 이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외세의 공격을 고려한 쿠르디스탄 민주당은 이라크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르빌의 쿠르드 의회는 1997년 평화 협정 이후 재소집되었으나 실권은 없었다. 쿠르드 의회는 서부와 북부 지역만 통치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미국 특수 임무 부대가 아르빌 외곽 지역에 본부를 두었다. 2003년 4월 10일 아르빌 시민들은 바트당 정권의 붕괴 이후 열광적인 축전을 벌였다.
대한민국 육군의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주둔했었다.
3. 3. 3. 쿠르드 자치구 시대
1970년 이라크 정부와 협상 끝에 쿠르드 자치구 의회가 설립되었으나, 1991년 걸프 전쟁 말기에 일어난 쿠르드인 봉기 이전까지는 사담 후세인이 사실상 지배했다.[49] 1990년대 중반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과 쿠르디스탄 민주당 사이의 싸움으로 입법부는 기능을 멈추었다. 1996년 이라크의 도움을 받아 쿠르디스탄 민주당이 아르빌을 점령했고, 곧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은 술라이마니야에 다른 쿠르디스탄 정부를 세웠다. 쿠르디스탄 민주당은 1996년 3월 쿠르디스탄 애국 동맹이 이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며, 외세의 공격을 고려하여 이라크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49]
1997년 평화 협정 이후 아르빌의 쿠르드 의회는 재소집되었으나 실권은 없었다. 쿠르드 의회는 서부와 북부 지역만 통치했다.[49]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미국 특수 임무 부대가 아르빌 외곽 지역에 본부를 두었다. 2003년 4월 10일 아르빌 시민들은 바트당 정권 붕괴 이후 열광적인 축전을 벌였다.[49]
대한민국 육군의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주둔했었다.
4. 지리 및 기후
아르빌은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지중해성 기후(Csa)에 속한다. 여름은 매우 덥고 건조하며,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강수량이 거의 없다. 겨울은 습하며, 특히 1월에 강수량이 가장 많다.[59] 2021년 12월 17일에는 폭우로 인한 홍수로 14명이 사망하기도 했다.[58]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최고 기온 기록 (°C) | 20°C | 27°C | 30°C | 34°C | 42°C | 44°C | 48°C | 49°C | 45°C | 39°C | 31°C | 24°C |
평균 최고 기온 (°C) | 12.4°C | 14.2°C | 18.1°C | 24°C | 31.5°C | 38.1°C | 42°C | 41.9°C | 37.9°C | 30.7°C | 21.2°C | 14.4°C |
평균 기온 (°C) | 7.4°C | 8.9°C | 12.4°C | 17.5°C | 24.1°C | 29.7°C | 33.4°C | 33.1°C | 29°C | 22.6°C | 15°C | 9.1°C |
평균 최저 기온 (°C) | 2.4°C | 3.6°C | 6.7°C | 11.1°C | 16.7°C | 21.4°C | 24.9°C | 24.4°C | 20.1°C | 14.5°C | 8.9°C | 3.9°C |
최저 기온 기록 (°C) | -4°C | -6°C | -1°C | 3°C | 6°C | 10°C | 13°C | 17°C | 11°C | 4°C | -2°C | -2°C |
강수량 (mm) | 111mm | 97mm | 89mm | 69mm | 26mm | 0mm | 0mm | 0mm | 0mm | 12mm | 56mm | 80mm |
평균 강수일수 | 9 | 9 | 10 | 9 | 4 | 1 | 0 | 0 | 1 | 3 | 6 | 10 |
평균 상대 습도 (%) | 75 | 70 | 65 | 59 | 42 | 29 | 25 | 28 | 31 | 44 | 61 | 76 |
평균 강설일수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4. 1. 지리
아르빌은 아르빌 주의 주도이자, 해당 주를 포함하는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이다. 2022년 기준 추산 인구는 약 161만 명이다.
과거에는 아르벨라(Arbela)로 불렸으며,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가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격파한 가우가멜라 전투의 실제 주요 전장이었다. 또한, 기원 1세기에는 유대교를 수용한 아시리아인의 국가 아디아베네 왕국의 수도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2005년 연방제를 규정한 신헌법이 제정되었으며, 2006년 쿠르드 자치 정부가 정식으로 발족하면서 아르빌이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가 되었다.
아르빌 구시가지 중심에는 카라아트라고 불리는 오래된 요새(아르빌 성채)가 있다. 거기에서 방사선 형태로 도시가 뻗어 있으며, 동심원상으로 우회 도로가 있다. 구시가지와는 독립된 형태로,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간선 도로를 따라 신시가지가 발전하고 있으며, 고층 빌딩 건설 붐이 이어지고 있다.
4. 2. 기후
아르빌은 길고 매우 더운 여름과 온화한 겨울이 특징인 지중해성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sa'')를 보인다. 여름은 건조하며,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강수량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 겨울은 일반적으로 비가 많이 오며 가끔 홍수가 발생하고, 1월이 가장 강수량이 많은 달이다.[59]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평균 최고 기온 (°C) | 12.4°C | 14.2°C | 18.1°C | 24°C | 31.5°C | 38.1°C | 42°C | 41.9°C | 37.9°C | 30.7°C | 21.2°C | 14.4°C |
평균 기온 (°C) | 7.4°C | 8.9°C | 12.4°C | 17.5°C | 24.1°C | 29.7°C | 33.4°C | 33.1°C | 29°C | 22.6°C | 15°C | 9.1°C |
평균 최저 기온 (°C) | 2.4°C | 3.6°C | 6.7°C | 11.1°C | 16.7°C | 21.4°C | 24.9°C | 24.4°C | 20.1°C | 14.5°C | 8.9°C | 3.9°C |
강수량 (mm) | 111mm | 97mm | 89mm | 69mm | 26mm | 0mm | 0mm | 0mm | 0mm | 12mm | 56mm | 80mm |
평균 강수일수 | 9 | 9 | 10 | 9 | 4 | 1 | 0 | 0 | 1 | 3 | 6 | 10 |
평균 상대 습도 (%) | 75 | 70 | 65 | 59 | 42 | 29 | 25 | 28 | 31 | 44 | 61 | 76 |
5. 경제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로, 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도시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쿠르드 자치 정부가 수립되면서, 아르빌은 외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졌다. 특히 수도 바그다드 등에 비해 치안이 안정되어 있어, 유럽, 미국, 터키 등 여러 나라의 기업들이 이라크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 2017년에는 시내에 일본 영사 사무소가 개설되었다.[75]
쿠르드 자치 정부는 이라크 중앙 정부와 별도로 독자적인 유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석유 자원 수출을 통해 얻는 자금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중동의 주요 상업 도시인 두바이의 에마르 프로퍼티스도 아르빌 개발에 참여하고 있어[76], "제2의 두바이"라고도 불린다.
6. 교통
에르빌 국제공항은 이라크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이다. 에르빌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는 버스가 있으며, 특히 터키와 이란으로 가는 노선이 있다. 2014년에는 새로운 버스 터미널이 문을 열었다.[56] 에르빌에는 도시를 둘러싼 6개의 순환 도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57] 과거 아르빌과 키르쿠크, 바그다드를 잇는 미터 궤간 철도가 있었으나 1988년 폐지되었고, 현재는 아르빌에서 모술, 자후를 거쳐 터키로 연결되는 철도 노선이 계획 중이다.
6. 1. 항공
에르빌 국제공항은 이라크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로, 바그다드 국제공항 등 여러 국내 목적지로 가는 직항편을 운항한다. 또한 네덜란드,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리아, 터키, 요르단 등 세계 여러 나라로 가는 국제선도 운항하며, 계절별 항공편도 가끔 운항한다. 2017년 9월 쿠르드 독립 투표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정부가 국제선 운항을 잠시 중단했으나, 2018년 3월 재개되었다.[54][55]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자치권을 인정받은 쿠르드 지역의 하늘길 관문이 된 아르빌 국제공항은 2005년 4,800m 길이의 활주로와 새 터미널 건물을 갖춘 신공항으로 개항했다. 최근 외국 기업의 진출이 늘면서 국제선 항공편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6. 2. 육상
아르빌 국제공항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자치권을 인정받은 쿠르드 지역의 하늘길 관문이 되었다. 2005년에는 4,800m에 달하는 활주로와 새로운 터미널 빌딩을 갖춘 신공항이 개항했다. 아르빌 국제공항은 이라크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로,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비롯한 여러 국내 목적지로 직항편을 제공한다. 또한 네덜란드,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리아, 터키, 요르단 등 전 세계 여러 국가로 국제선이 운항되며, 계절별 항공편도 운항된다. 2017년 9월 쿠르드 독립 투표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정부에 의해 국제 상업 항공편 운항이 잠시 중단되었으나, 2018년 3월에 재개되었다.[54][55]에르빌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또 다른 중요한 교통 수단은 버스이다. 특히 터키와 이란으로 연결되는 버스 서비스가 제공되며, 2014년에는 새로운 버스 터미널이 문을 열었다.[56]
과거에는 아르빌 - 키르쿠크 - 바그다드를 잇는 미터 궤간의 소형 철도가 존재했지만, 1988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아르빌에서 모술, 자후를 거쳐 터키로 이어지는 노선이 계획되어 있다.
7. 문화
아르빌의 주요 문화 시설로는 아르빌 성채와 여러 박물관 및 유적지가 있다.
2006년 서보헤미아 대학교의 카렐 노바체크는 아르빌 성채에 대한 소규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성채 유적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것이었지만, 언덕 서쪽 경사면 현장 조사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유물,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는 유물, 헬레니즘 시대,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 시대의 유물을 발견했다.[22]
아르빌 주변 평원에는 텔 바르타를 비롯한 많은 고고학 유적지가 있다. 2012년 아르빌 평원 고고학 조사가 시작되어 위성 이미지와 현장 작업을 통해 아르빌 주변 평원의 개발과 고고학을 밝히고 있다.[25] 텔 바르타는 초기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80ha에 달하는 매우 큰 유적지이다.[26]
- 36m 높이의 무자파리아 미나렛은 성채에서 여러 블록 떨어진 미나렛 공원에 있으며, 12세기 말 에르빌 주지사 무자파르 알딘 아부 사에드 알-카우카보리(괴크보리)가 살라딘에게 복종하고 그의 누이와 결혼했던 시기에 지어졌다. 2단으로 된 틈새 장식으로 장식된 팔각형 받침대를 가지고 있으며, 작은 발코니로 주요 기둥과 분리되어 있다. 인근에는 청록색 유약을 입힌 타일이 있는 또 다른 역사적인 미나렛이 있다.
- 사미 압둘 라흐만 공원
- 칼리치 아가 언덕은 문명 박물관 부지 내에 있으며, 성채에서 1km 떨어져 있다. 1996년 발굴에서 할라프, 우바이드 시대, 우루크 시대의 도구들이 발견되었다.[72]
- 메디아 고전 학교
아르빌의 주요 축구팀은 에르빌 축구 클럽이며, 프란소 하리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른다. 이 팀은 이라크 전국 리그에서 3번 우승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두 번 진출했지만 모두 패했다.[18]
7. 1. 아르빌 성채 (Citadel of Erbil)


아르빌 성채는 아르빌의 역사적 중심지에 있는 텔(언덕)이다. 주변 평원에서 25m에서 32m 높이로 솟아 있으며, 텔 위에 있는 건물들은 430x의 타원형 면적(102000sqm)에 걸쳐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해 온 도시로 여겨진다.[70] 성채 언덕의 가장 초기 점유 증거는 기원전 5천 년, 어쩌면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르 제3왕조 시대에 역사적 기록에 처음 등장했으며, 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10세기에서 7세기) 시대에 특히 중요성을 얻었다. 아리 콘 지구의 성채 서쪽에서는 신아시리아 제국 시대의 묘실이 발굴되었다.[72] 사산 왕조와 아바스 왕조 동안 아르빌은 시리아 기독교와 아시리아인들에게 중요한 중심지였다. 몽골 제국이 1258년에 성채를 점령한 후, 아르빌의 중요성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6년, 서보헤미아 대학교의 카렐 노바체크가 소규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성채 유적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것이었지만, 언덕 서쪽 경사면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유물,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는 유물, 헬레니즘 시대,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 시대의 유물을 발견했다.[22] 2013년, 로마 대학교 라 사피엔차의 팀이 성채 중심부에서 지표 투과 레이더 작업을 수행했다.[23] 2014년부터는 현대 건물의 붕괴로 발굴 기회가 생긴 성채 지역에서 이라크 주도의 발굴이 시작되었다.[24]
20세기 동안 도시 구조는 크게 바뀌었고, 그 결과 여러 집과 공공 건물이 파괴되었다. 2007년에는 아르빌 성채 재건을 감독하기 위해 아르빌 성채 재활성화 고등 위원회(HCECR)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에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 가족을 제외한 모든 주민이 성채에서 퇴거당했다. 그 이후로 다양한 국제팀이 현지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텔 주변에서 고고학 연구와 복원 작업을 수행했으며, 불안정한 벽과 기반 시설의 위험 때문에 많은 지역이 방문객에게 여전히 접근 금지되어 있다. 정부는 성채가 개조되면 50가구가 성채에 거주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현재 성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종교 구조는 물라 에펜디 모스크이다. 완전히 점유되었을 때 성채는 세 개의 구역(마할라)으로 나뉘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세라이, 타키야, 토프카나가 있었다. 세라이는 저명한 가문이 점유했고, 타키야 지구는 데르비시들의 집(타키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토프카나 지구에는 장인과 농부가 거주했다. 성채에서 방문할 수 있는 다른 명소로는 모스크 근처에 위치한 1775년에 지어진 목욕탕(''함맘'')과 섬유 박물관이 있다.[71] 아르빌 성채는 2014년 6월 21일에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7. 2. 박물관 및 유적지
서보헤미아 대학교의 카렐 노바체크는 2006년에 소규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성채 유적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것이었지만, 언덕 서쪽 경사면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소수의 도편과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는 더 많은 유물,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 시대의 유물을 발견했다.[22] 이 지역은 사람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에 제대로 발굴된 적이 없다.아르빌 주변의 광대한 평원에는 많은 고고학 유적지가 있는데, 특히 텔 바르타가 눈에 띈다. 2012년 아르빌 평원 고고학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 조사는 위성 이미지와 현장 작업을 결합하여 아르빌 주변 평원의 개발과 고고학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25] 텔 바르타는 초기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80ha에 달하는 매우 큰 유적지이다.[26]
- 36m 높이의 무자파리아 미나렛은 성채에서 여러 블록 떨어진 미나렛 공원에 위치해 있으며, 서기 12세기 말, 살라딘 치세 하의 에르빌 주지사 무자파르 알딘 아부 사에드 알-카우카보리(괴크보리)가 전쟁 없이 살라딘에게 복종하고 그의 누이와 결혼했던 시기에 지어졌다. 2단으로 된 틈새 장식으로 장식된 팔각형 받침대를 가지고 있으며, 작은 발코니로 주요 기둥과 분리되어 있다. 인근에는 청록색 유약을 입힌 타일이 있는 또 다른 역사적인 미나렛이 있다.
- 사미 압둘 라흐만 공원
- 칼리치 아가 언덕은 문명 박물관 부지 내에 있으며, 성채에서 1km 떨어져 있다. 1996년 발굴에서 할라프, 우바이드 시대, 우루크 시대의 도구들이 발견되었다.[72]
- 메디아 고전 학교
7. 3. 스포츠
에르빌 축구 클럽은 에르빌의 주요 축구팀으로, 에르빌 시의 전 주지사이자 암살된 아시리아 정치인 프란소 하리리의 이름을 딴 프란소 하리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른다. 이 팀은 이라크 전국 리그에서 3번 우승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두 번 진출했지만 모두 패했다.[1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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