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바이닝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토 바이닝거는 188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그는 여러 언어에 능통했으며, 빈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3년, 저서 《성과 성격》을 출판했으나, 같은 해 23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성과 성격》에서 그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하고, 유대인과 기독교를 대비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사상은 여성 혐오와 반유대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나치 정권에 의해 프로파간다에 이용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스트리아의 반유대주의 - 알로이스 브루너
알로이스 브루너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나치 친위대 장교로, 여러 국가에서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이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쟁 후 도피 생활을 하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오스트리아의 반유대주의 - 아리아인 조항
아리아인 조항은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정책으로, 유대인과 '비 아리아인'을 공적 생활에서 배제하기 위해 법률과 규정에 사용되었으며, 뉘른베르크법을 통해 차별이 심화되었고 사회적으로 큰 저항 없이 수용되었다. -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 - 카를 슈테른하임
카를 슈테른하임은 독일 제국 시기 부르주아 계층의 위선을 풍자하는 작품을 쓴 극작가이자 작가이며, 표현주의 문학 활동을 펼쳤으나 나치 정권에 의해 작품이 금지되었다. -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 - 카를 비트겐슈타인
카를 비트겐슈타인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철강 재벌로,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철도 레일 공급 계약으로 부를 축적하고, 이후 사업 확장을 통해 오스트리아 제국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예술 후원에도 힘썼다.
오토 바이닝거 | |
---|---|
기본 정보 | |
이름 | 오토 바이닝거 |
출생일 | 1880년 4월 3일 |
출생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
사망일 | 1903년 10월 4일 (23세) |
사망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
사망 원인 | 총기 자살 |
국적 | 오스트리아 |
학력 | |
교육 | 빈 대학교 (박사, 1902년) |
철학적 배경 | |
시대 | 20세기 철학 |
지역 | 서양 철학 |
학파/전통 | 이상주의 칸트 윤리학 |
관심사 | |
주요 관심사 | 철학 논리학 심리학 천재 젠더 종교 철학 |
사상 | |
주요 사상 | 모든 사람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논리와 윤리는 하나이다. 논리는 동일률 (A=A)과 연결되어 있다. |
영향 | |
영향 받은 인물 | 이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리하르트 바그너 예수 그리스도 체사레 롬브로소 플라톤 헨리크 입센 토머스 칼라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영향 | |
영향을 준 인물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카를 크라우스 프란츠 카프카 거트루드 스타인 로베르트 무질 아르놀트 쇤베르크 제임스 조이스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게오르크 트라클 엘리아스 카네티 토마스 베른하르트 율리우스 에볼라 란츠 폰 리벤펠스 조르조 데 키리코 에밀 시오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시부사와 다쓰히코 미시마 유키오 |
2. 생애
오토 바이닝거의 주저인 《성과 성격》( Geschlecht und Charakterdeu )은 1903년 출간된 책으로, 플라톤, 칸트,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한 철학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주로 여성 문제를 다루었다. 책 전반에 걸쳐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드러나지만, 바이닝거 자신은 이 내용이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오토 바이닝거는 1880년 4월 3일 비엔나에서 유대계 금세공업자 레오폴드 바이닝거와 그의 아내 아델하이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헝가리계 유대인 가계 출신이었다. 그는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였으며,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마친 후 1898년 7월 졸업하고 같은 해 10월 빈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철학과 심리학을 주 전공으로 삼았지만, 자연과학과 의학 강의도 수강하며 학문적 폭을 넓혔다. 바이닝거는 언어에도 능통하여 일찍이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를 익혔고, 나중에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스웨덴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는 수동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의 지식을 습득했다. 대학 시절, 그는 철학회 활동에 참여하며 당시 주변부 인물이었지만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던 리하르트 바그너의 사위 휴스턴 스튜어트 챔벌린 등의 강연을 듣기도 했다.
1901년 가을, 바이닝거는 자신의 연구 결과인 "에로스와 프시케: 생물심리학적 연구(Eros und Psyche. Eine biologisch-psychologische Studie)"를 출판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1902년에 이 연구를 그의 지도교수였던 프리드리히 요들과 라우렌츠 뮐너에게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만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는 그의 논문을 출판사에 추천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도교수들은 논문을 인정했고, 바이닝거는 1902년 7월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직후, 그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1902년 여름, 바이닝거는 독일 바이로이트로 여행하여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공연을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드레스덴, 코펜하겐을 거쳐 당시 크리스티아니아로 불렸던 오슬로에 도착하여 헨리크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를 무대에서 처음 관람했다. 비엔나로 돌아온 후, 바이닝거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으나 친구 아르투르 거버와의 긴 대화 끝에 실행을 미루었다.
1903년 6월, 수개월간의 집중적인 작업 끝에 그의 대표 저서인 《성과 성격: 근본적인 탐구(Sex and Character: A Fundamental Investigation)》가 비엔나의 브라움뮐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존 박사 학위 논문 내용에 "여성의 본질과 우주와의 관계", "유대교", "여성과 인류"라는 세 개의 중요한 장을 추가한 것이었다. 바이닝거는 이 책을 통해 "성(性) 관계를 새롭고 결정적인 시각으로 제시하려" 했다.
그러나 책은 그가 기대했던 만큼의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비판적인 반응도 있었다. 특히 라이프치히의 교수이자 《여성의 생리적 결함에 관하여》의 저자인 파울 율리우스 뫼비우스로부터 표절 혐의로 공격받기도 했다. 이에 깊은 실망과 우울증을 느낀 바이닝거는 이탈리아로 잠시 떠났다.
비엔나로 돌아온 그는 부모님과 마지막 5일을 보냈다. 1903년 10월 3일, 그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사망했던 슈바르츠슈파니어 거리 15번지의 방을 빌렸다. 그는 집주인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방해받지 않기를 요청하며 밤늦게까지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날 밤, 그는 아버지와 형 리하르트에게 자신이 자살할 것임을 알리는 두 통의 편지를 썼다.
1903년 10월 4일 아침, 바이닝거는 왼쪽 가슴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즉시 빈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그는 비엔나 마츨라인스도르프 개신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성과 성격》
이 책에서 바이닝거는 모든 인간이 남성적 특질과 여성적 특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 두 성격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남성성을 능동적이고 윤리-논리적인 것으로, 여성성을 수동적이고 비윤리-비논리적인 것으로 규정했다.[6] 이를 바탕으로 여성은 본질적으로 성(性)적인 기능에 종속되는 반면, 남성은 성을 초월하여 내면의 절대자(신)를 향한 추상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천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다.[7] 책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남성성과 관련된 천재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천재성이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 안에 잠재되어 있다고 보았다.[6]
다른 장에서는 '유대성'을 분석하는데, 바이닝거는 유대성이 여성성과 유사하게 비종교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영혼이나 선과 악의 구분이 없다고 주장하며 기독교와 대립시켰다.[6] 그는 1902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그 어느 때보다 여성적인 시대"이자 "가장 유대적인 시대"라고 비판하며 현대 사회의 퇴폐성을 지적했다.[6]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닝거 자신은 동성애 성향을 가졌으며 유대인이었다. 그가 분석하고 비판했던 '여성적인 것'과 '유대적인 것'의 특성을 스스로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그가 베토벤(바이닝거가 가장 위대한 천재로 꼽았던 인물)이 사망했던 집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의 극적인 죽음은 책의 판매를 촉진하고 저자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부 모방 자살을 낳기도 했다. 작가 스트린드베리는 이 책을 "모든 문제 중 가장 어려운 문제, 즉 여성 문제를 해결한 책"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3. 1. 남성성과 여성성
오토 바이닝거는 그의 주저 『성(性)과 성격』(Sex and Character)에서 플라톤, 칸트,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철학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여성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그는 모든 인간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요소를 혼합하여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려 시도했다.
바이닝거에 따르면, 남성적 측면은 능동적, 생산적, 의식적, 윤리적, 논리적인 반면, 여성적 측면은 수동적, 비생산적, 무의식적, 비윤리적, 비논리적이다.[6] 그는 이러한 구분에 기초하여 여성이 본질적으로 성(性)적 기능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여성의 삶은 성행위 자체(매춘부의 예)와 그 결과물(어머니의 예) 모두 성적 기능에 소모되며, 여성은 본질적으로 "중매쟁이" 역할에 머무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여성 해방은 레즈비언과 같이 소위 "남성적인 여성"에게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반대로 남성, 또는 인간 내면의 남성적인 측면의 의무는 성을 포기하고 내면에서 발견하는 절대자, 즉 하느님에 대한 추상적인 사랑을 추구하며 천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7]
책의 상당 부분은 천재의 본질에 할애되었다. 바이닝거는 천재성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다고 보았다.[6]
3. 2. 천재론
바이닝거는 남성성과 연관된 개념으로 천재성을 설명한다. 그는 천재란 수학이나 음악과 같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존재하고 의미를 가지는 보편적인 천재성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6] 즉, 특정 분야의 재능이 아닌, 보편적인 이해와 창조 능력으로서의 천재성을 강조한 것이다.
나아가 바이닝거는 이러한 보편적 천재성이 모든 사람의 내면에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보았다.[6] 그는 남성의 의무가 바로 이러한 내면의 천재성을 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을 포기하며 자신 안의 절대자, 즉 신에 대한 추상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7]
3. 3. 유대인과 기독교
바이닝거는 그의 저서 『성(性)과 성격』의 한 장에서 유대인의 성질('유대성')을 분석한다.[6] 그는 유대성이 여성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고, "가장 남성적인 유대인은 가장 덜 남성적인 아리아인보다 덜 남성적이다"라고 표현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대립시킨 것처럼 유대성과 기독교성을 대립시켰다.[6]
1902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던 바이닝거는 원형적인 유대인을 여성적이며 진정한 종교심, 진정한 개성(영혼), 선과 악에 대한 감각이 없는 존재로 분석했다. 그는 기독교를 "가장 높은 신앙의 최고 표현"으로 묘사한 반면, 유대교는 "극단적인 비겁함"[6] 또는 "비열함의 극치"라고 불렀다. 바이닝거는 유대성에는 영혼의 관념이나 선악의 구분이 없으며 뿌리 깊은 물질주의적 성향을 지닌다고 주장했다.[6]
그의 저서 『성(性)과 성격』의 "유대교"라는 장에서, 스스로 종종 "자기혐오적 유대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온 바이닝거는 유대교를 인종이나 민족, 신조가 아닌 '마음의 경향', '심리적 구성'으로 정의하며, 이는 모든 인류에게 가능하지만 유대인에게 가장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 하지만, 제가 유대교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저는 인종이나 민족, 혹은 인정받는 신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마음의 경향, 모든 인류에게 가능하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실제로 나타난 심리적 구성으로 생각합니다. … 그러므로 가장 극렬한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 자신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사실이 설명됩니다. (p. 303-4)
그는 유대인이 국가나 사회의 진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교류 대신 서로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 국가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유대인에게는 낯설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회의 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롭고 이해할 수 있는 자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처럼 유대인들은 서로 뭉치는 경향이 있지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교류하지는 않는다.
: 여성에게 진정한 존엄성이 없듯이, "신사"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유대인들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유대인은 타고난 예의범절에 실패한다. 이 예의범절은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대인 귀족은 없으며, 유대인 족보는 수천 년 동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놀랍다. (p. 307-8)
바이닝거에 따르면 유대인은 반도덕적이라기보다는 비도덕적(amoral)이며,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미덕과 악덕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한다.
: 유대인들의 결점은 종종 아리아인들에 의한 그 인종의 억압 탓으로 돌려졌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이 점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자기 비난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외부 환경은 그 인종 내부에 변화시키는 힘에 반응하는 타고난 경향이 없다면, 인종을 한 방향으로 형성하지 않는다. 전체 결과는 적어도 자연적인 성향만큼 변형적인 환경에서 나온다. …
: 유대인은 진정으로 반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윤리적 유형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비도덕적이며, 매우 좋지도 않고 매우 나쁘지도 않다. …
: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 유대인과 여성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아리아인 방식대로 미덕과 악덕 사이에서 선택하는 자유롭고 자치적인 개인으로서 살지 않는다. (p. 308-9)
바이닝거는 현대 사회의 쇠퇴를 비판하며 그 원인을 여성적(또는 그가 동일시한 "유대인적인") 성격 탓으로 돌렸다. 그는 현대의 시대정신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 여성적인 시대",[6] "가장 유대적인 시대"라고 비판하며 퇴폐성을 지적했다.
: 우리 시대는 가장 유대적인 시대일 뿐만 아니라 가장 여성적인 시대이기도 하다; 예술이 단지 자신의 기분을 위한 수건(sudarium)을 제공할 뿐이고, 인간의 예술적 충동을 동물의 놀이에서 유래시킨 시대; 가장 순진한 무정부주의의 시대, 국가와 법에 대한 감사가 없는 시대, 종(種) 윤리의 시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피상적인 역사 해석(역사적 유물론)의 시대; 자본주의의 시대,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시대, 역사, 삶, 과학, 모든 것이 경제와 기술에 불과하게 된 시대; 천재를 광기의 한 형태로 선언했지만, 더 이상 위대한 예술가나 위대한 철학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시대, 독창성이 가장 결여된 시대이지만, 가장 광적으로 독창성을 추구하는 시대; 처녀성의 개념을 데미비르주(demivierge) 숭배로 대체한 시대. "이 시대는 성교를 단순히 긍정하고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의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특징이 있다." 망각을 얻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로마인이나 그리스인이 바카날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의 음울함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4. 평가 및 영향
바이닝거의 저서 『성(性)과 성격』은 출간 직후부터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의 사상은 후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작가 스트린드베리는 이 책이 "여성 문제"라는 난제를 해결했다며 극찬했고,[2] 러시아 철학자 베르디아예프는 니체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저작이라고 평가했다.[3] 바이닝거가 베토벤이 사망했던 집에서 자살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여러 모방 자살을 낳기도 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시절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바이닝거를 "위대한 천재"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사상에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은 바이닝거의 "엄청난 실수"가 오히려 그의 위대함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바이닝거의 저술 중 여성과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내용은 나치 정권에 의해 프로파간다로 악용되었다.[8] 히틀러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겨지는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바이닝거를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유대인으로 언급했으며,[9] 히틀러 자신도 바이닝거를 "괜찮은 유대인"이었으나 자살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정작 바이닝거 자신은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었으며, 나치는 그의 저서를 공식적으로 규탄하기도 했다.[5]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바이닝거를 "자기혐오적 유대인"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10] 그의 유대인 정체성 자체가 불분명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바이닝거의 견해는 인간 평등과 과학적 사고가 중시되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여성과 유대인을 체계적인 철학을 동원하여 사회적으로 배제하려는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4. 1. 한국에서의 평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학창시절 그의 저서를 접하고 깊이 빠져들었으며, 이후로도 바이닝거를 "위대한 천재"라고 묘사하고는 했다.그러나 그의 사상은 나치 정권에 의해 악용되기도 했다. 나치는 바이닝거의 저서에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묘사만을 발췌하여 프로파간다에 사용했다.[8] 특히 히틀러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바이닝거를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유대인으로 언급하기도 했다.[9] 이러한 측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바이닝거를 "자기혐오적 유대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10]
5. 비판
바이닝거의 사상은 그의 주저 『성(性)과 성격』(Geschlecht und Charakterde)을 중심으로 여러 측면에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핵심적인 비판은 그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와 반유대주의적 관점에 집중된다.[6] 바이닝거는 여성을 본질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며 수동적이고 비윤리적인 존재로 규정하였고, 나아가 유대인의 특성인 '유대성'을 이러한 여성성과 동일시하며 강하게 비판했다.[6]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훗날 나치 정권이 여성과 유대인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박해하는 프로파간다에 일부 이용되기도 하였다.[8] 다만 바이닝거 자신은 생전에 인종주의 자체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편, 바이닝거 자신이 1902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반유대주의적 견해는 종종 '자기혐오적 유대인'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10] 그러나 앨런 야닉(Allan Janik)과 같은 일부 학자들은 바이닝거가 명확한 유대인 정체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이러한 평가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바이닝거의 주장은 심각한 성차별적 편견과 반유대주의적 사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5. 1. 여성 혐오
바이닝거는 그의 주저 『성과 성격』(독일어: Geschlecht und Charakterde)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이 책에서 플라톤, 칸트, 기독교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주로 여성 문제를 다루었으며,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6]바이닝거는 모든 인간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면서도, 두 성격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구분했다. 그는 남성성을 능동적이고 윤리적이며 논리적인 것으로, 여성성을 수동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비논리적인 것으로 규정했다.[6] 이러한 구분에 따라, 여성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기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삶은 매춘부와 같이 성행위 자체나 어머니와 같이 그 결과물에 몰두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본질적으로 "중매쟁이" 역할에 머무른다고 보았다.[7] 따라서 여성 해방은 레즈비언과 같이 소위 "남성적인 여성"에게만 가능하다고 한정했다. 반면, 남성은 성(性)적인 차원을 넘어 내면에서 신을 발견하고 천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7]
나아가 바이닝거는 유대인의 성질, 즉 '유대성'을 분석하며 이를 여성성과 동일시했다.[6] 그는 유대성이 여성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가장 남성적인 유대인은 가장 덜 남성적인 아리아인보다 덜 남성적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유대성을 기독교와 대립시키며, 유대성에는 영혼의 관념이나 선악의 구분이 없고 뿌리 깊은 물질주의적 성향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이 살던 현 시대를 "그 어느 때보다 여성적인 시대"이자 "가장 유대적인 시대"라고 규정하며 퇴폐성을 강하게 비판했다.[6]
흥미로운 점은 바이닝거 자신이 1902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으며, 스스로도 강하게 의식했듯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남자 동성애자 역시 심리적으로 여성형에 해당하므로 그가 비판하는 '여성'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러한 내적 모순은 그가 젊은 나이에 자살을 선택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바이닝거의 이러한 여성관은 출간 당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와 같은 일부 지식인들에게 "모든 문제 중 가장 어려운 문제, 즉 여성 문제를 해결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으나, 현대적 관점에서는 심각한 여성 혐오이자 반유대주의적 편견으로 평가받는다.
5. 2. 반유대주의
바이닝거는 그의 저서 성(性)과 성격의 한 장에서 유대인의 성질, 즉 '유대성'(Judentum|유덴툼de)을 분석했다.[6] 그는 유대성이 여성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가장 남성적인 유대인은 가장 덜 남성적인 아리아인보다 덜 남성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대성을 기독교성과 대립시키며, 유대성에는 영혼의 관념이나 선악의 구분이 없고 뿌리 깊은 물질주의적 성격을 지닌다고 비판했다.[6] 또한 현대 사회의 쇠퇴, 즉 시대정신의 퇴폐성을 비판하며 이를 "그 어느 때보다 여성적인 시대"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유대성과 여성성을 동일시하는 그의 관점을 반영한다.[6]1902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던 바이닝거는 유대인을 원형적으로 여성적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유대인은 진정한 종교심, 진정한 개성(영혼), 선악의 감각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독교를 "가장 높은 신앙의 최고 표현"으로 묘사한 반면, 유대교는 "극단적인 비겁함" 또는 "비열함의 극치"라고 평가했다. 바이닝거는 현대 사회의 쇠퇴 원인 상당 부분을 여성적(또는 그가 동일시한 "유대인적인") 성격 탓으로 돌렸으며,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여성성과 그가 "유대인스러움"이라고 칭한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성(性)과 성격』의 "유대교"라는 제목의 장에서, 스스로 종종 "자기혐오적 유대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온 바이닝거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지만, 제가 유대교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저는 인종이나 민족, 혹은 인정받는 신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마음의 경향, 모든 인류에게 가능하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실제로 나타난 심리적 구성으로 생각합니다. … 그러므로 가장 극렬한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 자신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사실이 설명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가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유대인에게는 낯설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회의 개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롭고 이해할 수 있는 자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처럼 유대인들은 서로 뭉치는 경향이 있지만,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교류하지는 않는다.
여성에게 진정한 존엄성이 없듯이, "신사"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유대인들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유대인은 타고난 예의범절에 실패한다. 이 예의범절은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대인 귀족은 없으며, 유대인 족보는 수천 년 동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놀랍다.
다음 단락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유대인들의 결점은 종종 아리아인들에 의한 그 인종의 억압 탓으로 돌려졌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이 점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자기 비난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외부 환경은 그 인종 내부에 변화시키는 힘에 반응하는 타고난 경향이 없다면, 인종을 한 방향으로 형성하지 않는다. 전체 결과는 적어도 자연적인 성향만큼 변형적인 환경에서 나온다. …
유대인은 진정으로 반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윤리적 유형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비도덕적이며, 매우 좋지도 않고 매우 나쁘지도 않다. …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유대인과 여성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아리아인 방식대로 미덕과 악덕 사이에서 선택하는 자유롭고 자치적인 개인으로서 살지 않는다.
이러한 바이닝거의 저술 일부는 나치가 여성과 유대인을 배척하는 데 이용되었지만, 바이닝거 자신은 나치즘과 동일시되는 인종적 관념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히틀러는 사적인 대화에서 그의 멘토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바이닝거에 대해 한 말을 회상하며 "나는 괜찮은 유대인을 한 명만 알았는데, 그가 유대인은 민족의 쇠퇴 위에 산다는 것을 깨달은 날 자살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바이닝거의 견해는 인간 평등과 과학적 사고가 중시되던 시대에, 여성과 유대인을 체계적인 철학에 근거하여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시도에서 중요한 단계로 여겨진다. 바바라 밀러 레인(Barbara Miller Lane)은 저서 「1933년 이전 나치 이데올로기」에서 디트리히 에카르트와 같은 나치 이데올로그들이 개별 유대인에 대한 비난에 대한 바이닝거의 경멸을 무시하고, 대신 여성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은 영혼이 없고 불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며, "아리아인"은 악의 근원인 내면의 "유대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한편, 앨런 야닉(Allan Janik)은 "빈 문화와 유대인 자기혐오 가설에 대한 비판"에서, "빈 유대 지식인의 전형적인 자기혐오의 화신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인 사상가"로 여겨지는 바이닝거에게조차 "유대인 자기혐오" 개념을 적용하는 것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야닉은 이러한 평판에 대한 책임을 피터 게이에게 돌리며, 바이닝거가 유대인 혈통이었지만 "그가 거부할 유대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유대인 자기혐오"와 같은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지 의심한다. 야닉의 견해로는, 게이는 유대인 정체성에서 종교의 역할을 오해하고 있으며, "세속화된 형태로 많은 은밀한 신학적 짐을 몰래 집어넣는 것 같다"는 결과로 "사회 과학으로 가장한 은밀한 형이상학"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5. 3. 자기혐오
나치 정권에서는 유대인에 관한 그의 부정적 표현을 프로파간다에 이용하기도 했다.[8] 특히 히틀러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겨지는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오토 바이닝거의 글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유일하게 훌륭한 유대인으로 꼽았다고 전해진다.[9]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바이닝거를 "자기혐오적 유대인"으로 평가한다.[10]그러나 앨런 재닉(Allan Janik)은 "빈 문화와 유대인 자기혐오 가설에 대한 비판"이라는 글에서 이러한 평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바이닝거가 "빈 유대 지식인의 전형적인 자기혐오의 화신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인 사상가"로 여겨지지만, 바이닝거에게 '유대인 자기혐오'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재닉은 바이닝거가 유대인 혈통이기는 했지만, "그가 거부할 유대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유대인 자기혐오'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재닉은 이러한 평판이 주로 피터 게이의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며, 게이가 유대인 정체성에서 종교의 역할을 오해하고 "세속화된 형태로 많은 은밀한 신학적 짐을 몰래 집어넣는 것 같다"고 비판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과학으로 가장한 은밀한 형이상학"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참조
[1]
서적
In the shadow of the mammoth : Italo Svevo and the emergence of modernism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02
[2]
간행물
Die Fackel
2021-06-00
[3]
웹사이트
Regarding a Certain Remarkable Book (O. Weininger: Sex and Character)
https://drive.google[...]
[4]
서적
Jews and Gender: Responses to Otto Weininger
Temple University Press
[5]
서적
Monologe im Führerhauptquartier. 1941-1944
Hamburg
1980
[6]
문서
윤리학과 논리학을 동일시
[7]
서적
Sex and Character: An Investigation Of Fundamental Principles
Indiana University Press
2005
[8]
서적
Jews and Gender: Responses to Otto Weininger
Temple University Press
[9]
뉴스
Another Tack: The Otto Weininger Syndrome
(URL 없음) # 기사 URL은 제[...]
The Jerusalem Post
2017-12-02
[10]
서적
Viennese Culture and the Jewish Self-Hatred Hypothesis: A Critique
Routledge & Kegan Paul
198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