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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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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미우리 신문은 1874년 창간된 일본의 유력 신문으로, 중도우파, 친미, 보수 성향을 보인다. 쇼리키 마쓰타로의 경영 인수 이후 혁신적인 정책과 일본 최초의 프로 야구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창단을 통해 발전했다. 1979년 와타나베 쓰네오의 논설위원장 취임 이후 보수적인 논조를 강화했으며, 현재는 도쿄, 오사카, 서부 본사를 두고 전국적으로 발행된다. 과거 김대중 납치 사건 보도로 서울 지국이 폐쇄되기도 했으며, 독도 영유권 관련 허위 보도 논란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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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신문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신문 이름요미우리 신문
요미우리 신문 로고
요미우리 신문 로고
유형일간 신문
형식블랭킷 (54.6 x 40.65 cm)
소유주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창간일1874년 11월 2일
정치 성향중도우파에서 우파, 보수주의 (일본), 온건 보수주의
본사오테마치, 지요다구, 도쿄, 일본
발행 부수7,044,225 부 (2021년)
웹사이트요미우리 신문 공식 웹사이트
신문사 정보
창간일 (도쿄)1874년 11월 2일
창간일 (오사카)1952년 11월 25일
창간일 (서부)1964년 9월 23일
언어일본어
발행 부수 (아침)약 580만 부
발행 부수 (저녁)약 142만 부
본사 위치 (도쿄)도쿄도지요다구오테마치 1-7-1
본사 위치 (오사카)오사카부오사카시기타구노자키초 5-9
본사 위치 (후쿠오카)후쿠오카현후쿠오카시주오구아카사카 1-16-5
대표자야마구치 도시카즈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사장)
인쇄 공장요미우리 인쇄 공장
그룹사요미우리 그룹 개요
공식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기타
가격 (아침)130 엔
가격 (저녁)50엔

2. 역사

1874년 니슈샤일본어 신문사가 소규모 일간 신문으로서 요미우리 신문을 창간하였다. 1880년대1890년대를 거치면서 오자키 고요 같은 작가의 작품들을 정기적으로 게재하여 문예지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에는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보다 열세에 있었다.

1924년 쇼리키 마쓰타로가 요미우리 신문의 경영권을 획득하면서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센세이셔널한 뉴스 보도, 라디오 프로그램 가이드 1개 면 전면 게재 등 혁신을 단행하였다. 또한 일본 최초의 프로 야구 팀(현재의 센트럴 리그 소속 요미우리 자이언츠)을 창단하여 신문 구독자 수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42년 전시 상황으로 인해 호치 신문과 합병하여 제호를 '요미우리 호치'로 변경했다.

1945년 10월, 전후 "민주화 그룹"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의 정책을 지지했던 쇼리키 마쓰타로의 해임을 요구했다. 쇼리키가 이 그룹의 주요 멤버 5명을 해고하자, 작가와 편집자들은 1945년 10월 27일 최초의 "생산 통제" 파업을 시작했다. 이 파업 방식은 전후 석탄, 철도 등 다른 산업에서 중요한 노조 전술이 되었다. 1945년 12월 쇼리키는 A급 전범 혐의로 스가모 감옥에 수감되었다. 요미우리 직원들은 1946년 6월 21일 경찰의 급습이 있을 때까지 경영진의 명령을 무시하고 신문 제작을 계속했다.[16] 쇼리키에 대한 혐의는 기각되었고 그는 1948년 석방되었다. 와세다 대학의 아리마 테쓰오 교수가 NARA에 보관된 기밀 해제 문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그는 CIA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데 동의했다.[17][18]

1953년 일본 최초로 텔레비전 단영국(NTV)을 설립했다. 요미우리 신문사는 아사히 신문마이니치 신문이 가진 모든 NTV 주식을 매입하면서 NTV가 완전히 요미우리 그룹 산하에 들어갔다.

1991년부터 2024년 사망 시까지 편집장을 역임한 와타나베 쓰네오의 지휘 아래 요미우리는 상당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19][20][21] 1994년 일일 발행 부수가 1,000만 부를 돌파했다.[20][21] 와타나베는 자신이 일본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자랑하기도 했다.[20] 2010년 기네스 세계 기록은 요미우리 신문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간 신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신문이자, 1,000만 부가 넘는 아침 신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유일한 신문으로 인정했다.[22]

2009년 월스트리트 저널과 편집, 인쇄, 배포 제휴를 맺고, 2009년 3월부터 저널 아시아판 주요 뉴스 헤드라인이 일본어로 요미우리 저녁판에 요약 게재되었다.

요미우리는 인생 안내라는 상담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을 지지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23] 2011년 5월, 간 나오토 총리가 중부전력에 하마오카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요청했을 때, 요미우리는 이를 "돌연한" 결정이라 비판하며 간 총리가 "요청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후 하마오카 원전의 위험성 기사를 게재하고 간 총리의 요청을 "기술적 타당성을 넘어선 정치적 판단"이라고 비판했다.[24] 다음 날, 한 원전에서 해수 유입 누출 사고 이후 응축기 내부 파이프 손상이 발견되었다.[25][26]

2012년 요미우리는 쓰쓰이 노부타카 농림수산성 장관이 중국 기업에 기밀 정보를 유출했다고 보도했다. 쓰쓰이는 요미우리 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2015년 330만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27]

2014년 11월, 아사히 신문위안부 시스템 보도를 비판한 후 '성노예'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28][29][30] 요미우리 신문은 2011년 사설에서 "위안부 강제 모집을 뒷받침하는 서면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아시아 여성 기금을 역사적 오해에 근거한 실패로 간주했다.[31] 뉴욕 타임즈는 "요미우리 신문이 '강제로'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위안부 논란을 수정한 것을 환영했다"고 보도했다.[32] 요미우리는 민주당 정부에 반대하고 비핵화를 "실현 가능한 선택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33]

2. 1. 창간과 초기 발전 (1874년 ~ 1924년)

1874년 11월 2일, 도쿄에서 닛슈샤(日就社)라는 소규모 신문사로 창간되었다.[44] 초대 사장은 기후현 출신의 코야스 준(子安峻)이었다.[44] 창간 당시에는 하루걸러 발행하는 격일간 신문이었으며, 한자에 가나를 덧붙여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획기적인 신문이었다. 그러나 창간호 발행 부수는 약 200부에 불과했고, 실제 판매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46]

1875년에는 일간지로 전환되었고, 연말에는 발행 부수가 1만 7000부를 달성했다.[46] 1891년 5월 15일에는 5000호를 달성했다.[45]

1897년 1월 1일에는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소설 『금색야차(金色夜叉)』 연재를 시작했다. 1914년에는 현재의 인생안내(人生案内)의 전신인 『신상상담(身の上相談)』 연재를 시작했다.

1917년 12월 1일, 회사명을 '닛슈샤(日就社)'에서 '요미우리 신문사(讀賣新聞社)'로 변경했다. 1919년 1월 5일에는 1만 5000호를 달성했다.[45]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으로 사옥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46] 이로 인해 1920년대 초 13만 부를 넘었던 발행 부수가 5만 부대로 급감했다.[46]

1924년 2월 25일, 경영난을 겪던 요미우리 신문은 전 경시청 경무부장이자 훗날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 되는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에게 인수되었다. 쇼리키 마쓰타로의 사장 취임은 이후 요미우리 신문 발전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2. 2. 쇼리키 마쓰타로 시대 (1924년 ~ 1945년)

1924년 쇼리키 마쓰타로가 요미우리 신문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쇼리키는 뉴스 보도를 강화하고, 라디오 프로그램 가이드 전체를 1개 면에 게재하는 등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했다.[16] 또한, 일본 최초의 프로 야구 팀(현재의 센트럴 리그 소속 요미우리 자이언츠)을 창단하여 신문 구독자 수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34년 12월 26일, 쇼리키 마쓰타로는 다이닛폰 도쿄 야구 클럽(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을 창설했다.

1942년 8월 5일, 전시 상황으로 인해 호치 신문사와 합병하여 제호를 '요미우리 호치(讀賣報知)'로 변경했다.

쇼리키 마쓰타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A급 전범(Class-A war criminal) 용의자로 체포되어 스가모 감옥(Sugamo Prison)에 수감되었다.[16] 그러나 1947년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되었다.[16] 와세다 대학(Waseda University)의 아리마 테쓰오(Tetsuo Arima)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NARA에 보관된 기밀 해제 문서에서 CIA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7][18]

2. 3. 전후 발전과 전국지 도약 (1945년 ~ 1970년대)

1946년 5월 1일, 제호를 '요미우리 신문(讀賣新聞)'으로 복귀했다.[45] 1949년 11월 26일 '석간 요미우리'를 창간하여 석간 발행을 재개했으나, 1951년 요미우리 본지에 통합되었다.[51]

1952년 11월 25일, 오사카시에서 '오사카 요미우리 신문'을 창간하며 간사이 지방에 진출, 전국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46] 1953년 8월 28일에는 일본 최초의 민영 방송국인 닛폰 TV 방송망(닛테레)이 본방송을 시작했다.[46]

1955년 1월 1일, 쇼리키 마쓰타로의 지시로 원자력 발전 도입을 위한 대규모 캠페인을 전개했다.[23] 1958년 조간 발행 부수가 300만 부를 돌파했다.[46]

1964년 9월 23일,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 '요미우리 신문 서부 본사'를 설립하여 규슈야마구치 지역에 진출했다. 1966년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비틀즈 일본 공연을 주최했다.

1974년 11월 2일, 창간 100주년을 맞이했다.

2. 4. 와타나베 쓰네오 시대와 현재 (1979년 ~ 현재)

1979년 와타나베 쓰네오(현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회장)가 논설 위원장에 취임했다.[19] 이후 와타나베 쓰네오의 지휘 아래 요미우리는 상당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19][20][21]

1994년 5월 일본 ABC 협회 보고에 의해, 조간 발행 부수가 1000만 부를 돌파했다(1001만 9985부).[46] 2010년 기네스 세계 기록은 요미우리 신문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간 신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신문이자, 1,000만 부가 넘는 아침 신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유일한 신문으로 인정했다.[22]

1999년 2월 1일 경영난에 빠진 추오코론샤를 인수하여, 추오코론신샤를 설립했다.

2002년 7월 1일 그룹 재편을 단행했다. 주식회사 요미우리 신문사를 주식회사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그룹 지주회사)와 주식회사 요미우리 신문 도쿄 본사로 나누었다. 주식회사 요미우리를 주식회사 요미우리 신문 서부 본사와 주식회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회사 분할했다. 중부 본사는 요미우리에서 요미우리 신문 도쿄 본사로 분할 승계(중부 지사로 강등)했다. 오사카 본사(주식회사 요미우리 신문 오사카 본사)도 주식 교환에 의해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의 완전 자회사가 되었다.

2009년 2월 27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편집, 인쇄, 판매에 관해 제휴를 발표하고,[57] 2009년 3월 2일부터 아시아판 주요 기사 제목이 일본어로 석간 2면에 게재되기 시작했다.[57]

2013년 4월 1일 영자 신문 "더 데일리 요미우리" 제호를 『재팬 뉴스』로 변경했다.

3. 논조 및 특징

요미우리 신문은 대체로 중도우파, 친미,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다.[43] 자유민주당(자민당) 지지, 개헌 지지,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009년 신문 통신 조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지 5개 신문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논조라고 여겨진다(5점을 중심으로 보수를 플러스, 혁신을 마이너스로 0-10점으로 스케일을 측정했을 때, 요미우리 신문 5.6, 산케이 신문 5.3, 닛케이 신문 5.2, 마이니치 신문 5.0, 아사히 신문 4.4).[43]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쇼리키 마쓰타로가 원자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이래 일관되게 추진을 주장하고 있다.[23] 1955년 1월 1일 쇼리키 마쓰타로의 지시로 원전 도입을 위한 대규모 캠페인을 전개했다. 2011년 5월,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가 안전 문제로 중부전력에 하마오카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할 것을 요청했을 때, 요미우리는 이 요청을 "돌연한" 결정이며 중부전력 주주들에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간 총리가 "요청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그 후 하마오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고 간 총리의 요청을 "기술적인 타당성을 넘어선 정치적 판단"이라고 비판했다.[24]

사회부의 탐사 보도 능력은 높이 평가받아 왔으나, 와타나베 쓰네오 시대 이후 보수화되면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1994년 11월 3일 당시 사장인 와타나베 쓰네오 밑에서 주요 매스컴으로서는 처음으로 "헌법 개정 시안"을 발표하여 개헌을 주장하며, 헌법에 대해 재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2011년 사설에서는 "정부와 군 당국이 위안부의 강제적이고 체계적인 모집에 관여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서면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전시 폭력 행위에 대한 보상을 위해 설립된 아시아 여성 기금을 역사적 오해에 근거한 실패로 간주했다고 보도했다.[31]

5대 전국지 중 유일하게 '인생 안내'라는 인생 상담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4. 대한민국과의 관계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요미우리 신문이 별책에서 북한 찬양 기사를 게재하고,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해 동아일보를 비하하는 논조를 보인 것을 문제 삼았다. 1977년에는 요미우리 신문 지국장의 평양 발언을 문제 삼아 서울 지국을 폐쇄하고 한국 내 배포를 금지했다. 1980년 1월 15일, 문교부는 요미우리 신문의 한국 내 배포와 서울 지국 재설립을 허용하였다.[74]

4. 1. 김대중 납치 사건 보도와 서울 지국 폐쇄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한국 중앙정보부(KCIA)의 개입을 특종 보도했다.[74]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신문 별책의 북한 찬양 기사,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보도(동아일보를 비하한 논조를 포함)[74], 1977년 지국장의 평양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요미우리 신문 서울 지국을 폐쇄하고 한국 내 배포를 금지했다. 1980년 1월 15일, 문교부는 요미우리 신문의 한국 내 배포와 서울 지국 재설립을 허용하였다.

4. 2. 독도 영유권 관련 보도 논란

2008년 7월 15일 일본 홋카이도 도야호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에게 독도의 영유권 주장에 관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을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으나, 양국 정부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178] 명확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자, 민주당과 시민단체를 비롯한 국민 1886명이 요미우리 신문의 허위보도에 대해 4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179] 대한민국 법원은 양국 정부가 부인한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도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했으나, 원고가 손해배상 청구권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다.[180]

4. 3. 기타

요미우리 신문은 과거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하기도 했으며, 재일 조선인의 북한 귀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74]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성노예' 표현 사용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62][63]

5. 조직 및 그룹

요미우리 신문 그룹은 지주회사인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를 중심으로 여러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주요 회사는 다음과 같다.

회사명설명
요미우리 신문 도쿄 본사홋카이도, 호쿠리쿠, 주부 지점 포함
요미우리 신문 오사카 본사
요미우리 신문 서부 본사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오코론 신샤



이 외에도 닛폰 TV, 요미우리 방송, 요미우리랜드 등이 요미우리 신문 그룹에 속해있다.[35]

6. 발행 부수

1994년, 요미우리 신문은 조간 발행 부수가 1,000만 부를 돌파했다.[46] 2010년에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간 신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신문이자, 1,000만 부가 넘는 아침 신문 발행 부수를 기록한 유일한 신문으로 인정받았다.[22]

2020년 요미우리 신문사의 조사에 따르면, 이바라키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도쿄도, 가나가와현, 시가현, 오사카부, 와카야마현, 야마구치현의 9개 도부현에서 현내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43] 관동뿐만 아니라, 아사히 신문마이니치 신문의 연고지였던 간사이 지역에서도 아사히·마이니치 신문보다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43] 그 외 25개 도부현에서는 현지 신문이나 다른 전국지에 이어 현내 점유율 2위를 기록, 대도시권뿐만 아니라 지방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43] 반면 도카이 지방에서는 나고야시에 본사를 둔 중일 신문 등 지역 신문과 아사히 신문 등에 밀려 비교적 점유율이 낮다.[43]

2021년 12월, 일본 ABC 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조간 발행 부수는 699.2만 부로, 700만 부 아래로 떨어졌다.

7. 출판물 및 자회사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최대 영어 신문 중 하나인 The Japan News(구 The Daily Yomiuri영어)[34]를 발행한다. 스포츠 전문 일간지인 호치 신문을 비롯하여 주간지, 월간지, 도서 등을 출판한다.

요미우리 신문 홀딩스는 주오코론신샤 출판사와 닛폰 TV 방송망을 소유하고 있으며, 아시아 뉴스 네트워크의 회원이기도 하다. 요미우리 신문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실상 재정 후원자이며, 매년 일본 판타지 소설 대상을 후원한다. 2006년 이후 일본에서 개최된 FIFA 클럽 월드컵의 후원사로 참여해 왔다.

1949년부터 1963년까지는 아방가르드 및 동시대 신예 예술가들을 배출한 비심사제 연례 미술 전시회인 요미우리 독립 전을 후원했다.

8. 논란 및 비판

요미우리 신문은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해 왔다.

2009년 신문 통신 조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지 5개 신문 중 가장 보수적인 논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다.[43] 역사적으로 요미우리 신문의 논조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이는 다른 전국지인 아사히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하위 섹션에 상세하게 기술될 예정인 언론 윤리 위반, 권위주의 정권과의 유착, 특정 정치 성향 편향 보도 등의 문제가 있었다.

8. 1. 언론 윤리 위반

요미우리 신문은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 오보, 날조 보도, 명예훼손 등의 사건을 일으켰다.[101][79][102][103][104][105][106][82][107][108]

사건 연도사건 내용
1911년남북조 정윤론 문제에 불을 지펴 남조를 정통으로 하는 역사 교육의 시초를 만들었다.[101]
1927년누드 사진을 사회면에 게재하여 "요미우리의 에로그로주의"라고 비판받았다.[79]
1930년대대동아 전쟁을 선동하는 보도를 했다.[102][103]
1948년쇼덴 의혹에서 검찰 정보를 유출받아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104]
1954년쇼리키 마츠타로의 정치력 확대와 원전 이권 장악을 위해 중앙정보국(CIA)과 협력하여 원자력 평화 이용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105]
1957년매춘방지법 관련 오보 사건을 일으켰다.[104]
1960년대재일 조선인의 귀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106]
1966년국유지 할당 문제로 사토 내각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82]
1974년~1975년명인전 소동을 일으켰다.[107]
1978년하루의 공백 사건을 일으켰다.
1986년소비세 도입에 대한 비판 칼럼을 바꿔치기했다.[82]
1987년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관련 오보를 냈다.[108]
1989년미야자키 킨 사건 관련 날조 보도를 했다.
1990년어린이 유기 사건 오보를 내고 책임을 어린이에게 전가했다.
1994년글리코·모리나가 사건 관련 오보를 냈다.[108]
1994년마쓰모토 사린 사건에서 코노 요시유키를 범인으로 보이게 하는 보도를 했다.
1995년지하철 사린 사건 관련 오보를 냈다.
2001년~2002년다나카 마키코 외상 경질의 선봉에 섰다.
2002년개인정보보호법과 인권옹호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번복했다.
1969년전일본공수 여객기와 공중 충돌했다.
1975년부당 저가 판매 문제를 일으켰다.
1981년확장판매단 단장이 권총 밀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147]
1990년신문 장학생 과로사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매스미디어 집중 배제 원칙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2005년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기자 회견에서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2006년쇼리키 마츠타로가 CIA에 매수되었던 사실이 밝혀졌다.[148][149][150][151]
2007년위키백과 기사를 대량으로 수정했던 사실이 드러났다.[152]
2012년배심원 재판 관련 배심원법 저촉 가능성이 있는 기사를 게재했다.[153][154][155][156][157][158]
2016년의료 사이트 편집장이 HPV 백신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징계를 받았다.[159][160][161]
2020년홋카이도 지사 기자가 각성제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서울 지국 기자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되었다.
2021년도쿄 본사 기자가 정보 유출 등의 혐의로 징계 해고되었다.
2022년도쿄 본사 직원이 강제추행 미수 혐의로 체포되었고, 홋카이도 지사 기자가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2024년이시카와현 지진 관련 오보를 냈고[162][163], 도쿄 본사 직원이 폭행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오사카 본사 사회부 주임이 담화를 날조했다.[164]


8. 2. 권위주의 정권과의 유착

쇼리키 마쓰타로 사장 시절, 요미우리 신문은 권위주의 정권과 유착 관계를 맺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쇼리키 사장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의 정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어 스가모 감옥에 수감되었다.[16] 석방 후, 와세다 대학의 아리마 테쓰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CIA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데 동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17][18]

이러한 배경으로 요미우리 신문은 과거 군사 정권 및 권위주의 정권과 유착하여 민주화 운동 탄압에 협조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8. 3. 특정 정치 성향 편향 보도

2009년 신문 통신 조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지 5개 신문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논조로 평가받는다. (5점을 중심으로 보수를 플러스, 혁신을 마이너스로 0-10점으로 측정했을 때, 요미우리 신문 5.6, 산케이 신문 5.3, 닛케이 신문 5.2, 마이니치 신문 5.0, 아사히 신문 4.4)[43]

요미우리 신문은 특정 정치 세력에 편향된 보도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진보 진영이나 노동조합에 대해 가혹한 논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8. 4. 기타

자이언츠 팬들은 요미우리 신문을 자이언츠의 “모회사”로 생각하지만, 자이언츠를 요미우리 신문의 “그룹 기업”으로 보는 시각은 적다. 그 때문에 자이언츠에 “요미우리”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이언츠 팬 대다수가 요미우리 신문 독자이거나 요미우리 신문의 논조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자이언츠라는 구단의 팬일 뿐이다. 다른 구단 팬이라도 요미우리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또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통칭으로는 “자이언츠(巨人)”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요미우리”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반자이언츠 팬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 1980년, 나가시마 시게오가 자이언츠 감독에서 해임되자, 팬들에 의한 “요미우리 신문”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 2000년 일본 시리즈 이후, 특히 규슈 지방에서 부수 감소 경향이 나타났다. 이후 서부 본사·오사카 본사 관내에서는, 현지 계열 민영 방송국(후쿠오카 방송,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배려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한신 타이거스의 기사를 동등하게 다루고 있다.
  • 2002년, 구단 경영 모체가 “주식회사 요미우리”에서 “주식회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변경되면서, 구단 정식 명칭도 “도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비지터용 유니폼의 가슴 글자도 “TOKYO”에서 “YOMIURI”로 변경되었다. 특히 유니폼 변경은 반발을 사서, 도쿄돔 우익석에 항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YOMIURI” 표기는 2004년에 폐지되었다).
  • 2004년,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의 파업 때, 선수회를 규탄하는 보도를 하여 팬들의 반발을 샀다.
  • 최근에는 각지의 프로야구 본거지 경기장(지바 마린 스타디움 등)에 “읽는 응원 요미우리 신문” 광고 간판을 게재하고 있다. 뉴욕 양키스구 양키 스타디움에도 광고 간판을 게재했었다.
  • 2011년 11월 11일, 자이언츠 코치 인사를 둘러싼 키요타케 히데토시 구단 대표와 와타나베 츠네오 오너의 소동에서는, 다른 전국지가 크게 다룬 반면, 요미우리 신문에서는 스포츠 란에서 작게 다루었다.[165]
  • 1990년 12월 4일, 도쿄도 조후시의 요미우리 신문 판매점에서 신문 장학생의 과로사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7월 27일 요미우리 신문사와 유족 간에 합의가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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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간행물 光村印刷
[172] 간행물 朝日プリンテック
[173] 간행물 新潟日報社
[174] 간행물 北日本新聞
[175] 간행물 宮崎日日新聞社
[176] 웹사이트 popstyle 夕刊購入方法 http://blog.yomiuri.[...]
[177] 웹사이트 聖教新聞の配達を読売新聞が担当することになったワケ 学会と読売に聞くと… https://www.dailyshi[...] デイリー新潮 2020-04-28
[178] 뉴스 요미우리 한일 정부 부인에도 묵묵부답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8-07-16
[179] 뉴스 독도 허위보도 요미우리 신문에 4억 소송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09-09-29
[180] 웹사이트 법원, '요미우리 독도보도' 손배訴 기각 http://ww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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