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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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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정희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변호사, 정치인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며 인권 및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제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민주노동당 대표와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이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정치 활동이 중단되었다. 2020년 민중당 지지를 표명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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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1969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정희
한자李正姬
로마자 표기I Jeonghui
로마자 표기 (매큔-라이샤워 표기법)I Chŏnghŭi
출생일1969년 12월 22일
출생지서울특별시
국적대한민국
거주지대한민국
배우자심재환
자녀장남 심승범, 차남 심준범
직업정치인, 변호사, 운동가
학력
최종 학력서울대학교 공법학 학사
고등학교서문여자고등학교 졸업
경력
주요 경력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
민주노동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대표
통합진보당 제18대 대선 후보
정당무소속
지역구 (18대)(18)
의원 선수1
의원 대수18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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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중인 이정희 (2012년 9월)
담화 중인 이정희 (2012년 9월)

2. 생애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졸업 후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며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11] 이후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거쳐, 2011년 창당된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12년 제18대 대선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강경한 비판으로 주목받았으나,[13][14][15][16]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선거 직전 사퇴했다.[12]

2013년 다시 통합진보당 대표로 선출되었지만,[17]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결정으로 당이 해산되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18][19]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 사례였다.

2. 1. 생애 초반

변호사로 활동하며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던 중, 2008년 4월 제18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11] 18대 국회 임기 동안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 정책위원회 의장, 당 대표를 역임했다. 2011년 12월에는 여러 진보 정당 및 세력이 통합하여 창당된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선거일을 앞두고 후보직을 사퇴했다.[12]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를 겨냥하여 "저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습니다"라고 발언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 등을 언급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 발언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쳐 중도층 유권자가 박근혜 후보에게 결집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야권 단일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의 패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13] 또한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남측 정부'로 지칭하고 북한광명성 3호 발사를 '실용위성'이라고 표현하여 종북 성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4][15][16]

2013년 2월, 통합진보당 대표로 다시 선출되었다.[17] 그러나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노선을 추종하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 사례였다.[18] 이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즉시 해산되었고, 이정희 대표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5명 전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같은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통합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했다.[19]

2. 1. 1. 출생과 학창 시절

이정희는 1969년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났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은 영등포구관악구 봉천동의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산동네 재래시장 지하 단칸방에서 보냈고, 여름에는 수해와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22] 중학교에 다닐 무렵 집안 형편이 나아져 이층집으로 이사했다. 서울남사초등학교서문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서문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으며, 1987년 2월 서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23] 이후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했다.

2. 1. 2. 대학 재학 시절

1987학년도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23점을 받아 인문계 공동 14등이자 여자 수석을 차지했다.[24][25] 같은 해 3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하면서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23] 1990년에는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학업을 병행하여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으나, 이로 인해 시력이 나빠졌다고 한다. 대학 초반에는 세상에 대한 시각이 부족하다고 느껴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23]

대학 졸업 무렵 동두천 기지촌에서 만난 한 소녀의 사연에 충격을 받고 여성 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23] 1992년 2월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2. 1. 3. 변호사 개업과 인권 운동

1992년 초 경기도 동두천에서 한국인 성매매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6세 여자아이를 만난 경험은 이정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26] 같은 해 10월, 동두천에서 발생한 윤금이 피살 사건은 그가 인권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로 나서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26] 당시 기지촌 여성이었던 윤금이는 주한미군 병사와의 언쟁 끝에 잔혹하게 살해되었으나, 사건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정희는 이 사건을 접하며 가해 미군 병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고, 여성 문제, 특히 주한미군 관련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본격적인 사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27]

서울여자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를 졸업한 후,[11]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 29기로 입소하여 연수원 수료 중 변호사 심재환과 결혼했으며, 2000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27]

2000년부터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27] 민변 회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문제, 인권 문제 등 다양한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주요 활동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주요 활동 내용
2001년주한미군 범죄 근절 운동 본부 운영 위원
2001년민족문제연구소 고문 변호사
2001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국 문제 연구 위원회 위원
2001년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대학교 임용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2005년민변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






2. 2. 인권, 시민운동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시민운동에 참여했다.[11] 2001년부터 주한미군 범죄 근절 운동, 민족문제연구소 활동, 민변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 임용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2005년에는 민변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특히 여성 인권 문제 해결에 힘썼다. 이러한 초기 활동들은 이후 그의 정치 행보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 2. 1. 미군범죄 규탄과 호주제 폐지 운동

2000년부터 한미 관계와 주한미군 범죄 문제, 호주제 폐지 등 여성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26] 주한미군 범죄를 규탄하고 인권 침해에 반대하는 여러 운동과 집회에 참여했다.

대학 졸업 무렵 동두천에서 백인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것이 여성 운동에 동참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23] 당시 소녀의 아버지는 본국으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빚 때문에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상태였다. 클럽 주인이 아이 엄마가 빚을 갚지 않으면 아이를 성매매시켜 빚을 받아낼 생각으로 아이를 맡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23]

2001년, 효순미선 사건 직후 조직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운영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아 주한미군 범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도 2000년부터 참여했다. 1999년 5월 여성단체들이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위헌 운동을 펼쳤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하던 상황에서, 2003년 이정희는 호주제 위헌심판 청구 소송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이정희가 호주제 위헌심판 청구 소송에 참여하여 노력한 끝에 2005년 11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호주제 위헌 판결을 얻어냈다. 이는 이태영 변호사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지 51년 만에 호주제가 폐지되는 역사적인 성과였다.

2004년에는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원임용 양성평등위원회 위원과 시민단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감사로 위촉되어 활동했다.

2. 2. 2. 시민단체, 인권 변호사 활동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시민운동에 참여했다.[11] 2001년부터 주한미군 범죄 근절 운동 본부 운영 위원,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변호사, 민변 미국 문제 연구 위원회 위원,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 임용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민변에서는 사무차장을 지냈고, 2005년에는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같은 해 평화군사법연구회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2006년에는 한국젠더법학연구회 회원이 되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26]

인권 변호사로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2007년 사진작가 이시우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변론을 맡아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28][29]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 호주제 위헌 심판 운동에도 동참했으며,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자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2003년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맞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 및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주도했다.[30] 또한 호주제 위헌심판제청 사건과 오태양의 병역법 위반 사건 변호를 담당했다.[31] 호주제 폐지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매향리 미군 폭격장 주민 집단피해소송사건,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사건 등의 문제 해결에도 힘썼다.[26]

한편, 2007년 D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재직 중 제주도의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노사분쟁에서 회사 측 소송대리인을 맡아 결과적으로 노조 측의 패배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다.[32] 이러한 인권 및 여성운동 활동 중 2007년 무렵부터 정계 입문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3]

2. 3. 정치 활동

2007년 3월 2일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3번으로 공천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33][1] 이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원내부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에는 민주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

2011년 민주노동당은 다른 정당들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고, 이정희는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를 맡았다.[1]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정희는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을 주요 출마 이유로 밝혔으며,[2] TV 토론회 등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선거를 3일 앞둔 12월 16일, "정권 교체를 위한 진보, 민주, 개혁 세력 통합"을 명분으로 후보직에서 사퇴했다.[4][12]

2013년 2월, 다시 통합진보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7] 그러나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통합진보당의 강제 해산을 결정했다.[7][18]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으로 이정희는 당 대표직과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19] 이정희는 이 결정을 "권위주의적인 결정으로 암흑기를 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7][8]

이후 한동안 공식적인 정치 활동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2020년 4월 8일 민중당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2020년 대한민국 총선에서 민중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9]

2. 3. 1. 정치인 입문기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 후 시민운동에 참여했다.[11] 2001년부터 주한미군 범죄 근절 운동 본부 운영 위원,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국 문제 연구 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05년에는 민변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1] 2008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11] 국회의원 당선 초기에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농성장, 용산 참사 현장,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투쟁 현장 등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현장을 직접 찾으며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펼쳤다.[23] 이러한 경험들을 모아 2009년 에세이집 《사랑하며 노래하며 아파하다》를 출간하기도 했다.[23]

18대 국회 임기 초반, 운영위원회, 정무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8년에는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았다.[11] 2009년에는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같은 해 민주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었다.[23][11]

의정활동 중에는 사회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09년 초,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신영철 당시 대법관에 대해 "현직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증거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탄핵소추 발의를 제안했다.[39] 그는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헌법재판소의 야간집회 규정 위헌 여부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재판을 진행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판사들에게 보낸 것은 사실상 유죄 선고를 독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39] 또한 이 과정에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하며 국회 차원의 조사를 촉구하고, 사법부가 정권에 영합하여 독립성을 해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39] 이와 관련하여 2009년 3월 10일 경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았으나, "부당한 고발에 따른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며 소환에 불응했다.[40]

같은 해,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이를 강행 처리한 한나라당에 항의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패를 던지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3] 또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주목받으며 '2009년 가장 돋보이는 의정활동을 벌인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23]

2. 3. 2. 정치 활동 초기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 후 시민운동에 참여했다.[11] 2007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으며,[1] 2008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11][1]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2008년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지냈고,[1]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당 대표를 역임했다.

2009년 8월부터는 정부와 공권력에 의한 야당, 민간인, 시민단체 도감청 및 사찰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8월 12일, 기무사령부 소속 신 모 육군 대위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증거로 수첩 메모와 감시 동영상 등을 공개했다.[41] 이 수첩에는 민주노동당 당직자, 금속노조 관계자, 인터넷 카페 회원 등 10여 명의 개인 정보(1월 이후 행적, 주소, 차량번호 등)가 기록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민간인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영상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기무사 측은 해당 영상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장병 8명의 동향 파악을 위한 것이었고, 메모는 국가기밀 유출 관련 수사 과정에서 합법적으로 수집된 자료라고 해명했다.[41]

이어 8월 17일에는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과 그의 아내(약국 근무 모습)까지 불법 사찰한 정황을 추가로 폭로했다.[42] 엄윤섭은 18대 총선 당시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출마했던 인물로 확인되면서, 야당 인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다음 달인 9월 1일에는 민주당 원혜영 전 원내대표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무사가 재일 민족학교 책 보내기 운동을 한 민간 자선단체까지 불법 사찰했다고 주장하며 사찰 범위가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43]

이러한 폭로에 따라 2010년 4월 22일, 민변은 이정희 의원이 제기한 민간 사찰 피해자 15명을 대리하여 국가를 상대로 1인당 2000만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44]

2. 3. 3. 정부의 야당, 민간인 도감청 폭로

2009년 8월부터 이정희 의원은 정부와 공권력에 의한 야당, 민간인, 시민단체 대상의 도감청 의혹을 제기하며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8월 12일, 그는 기무사 소속 신 모 육군 대위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증거로 수첩과 메모, 감시 동영상을 공개했다.[41] 이 자료에는 8월 5일 쌍용자동차 노조 관련 평택 집회 현장에서 신 대위가 소지했던 수첩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민주노동당 당직자, 금속노조 관계자, 인터넷 카페 회원 등 10여 명의 1월 이후 행적, 주소, 차량번호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들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영상도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기무사 측은 해당 영상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장병 8명의 동향 파악을 위한 것이며, 메모는 국가기밀 유출 관련 수사 문건으로 합법적인 활동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메모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다.[41] 이정희 의원은 또한 민주노동당 당원과 그 가족들을 불법 내사한 자료를 입수하여 당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어 8월 17일, 민주노동당은 당원 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 사실을 추가로 폭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이 작업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그의 아내가 약국에서 근무하는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42] 엄윤섭이 18대 총선 당시 서울 관악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는 야당 인사에 대한 탄압이라는 비판 여론을 확산시켰다.

다음 달인 9월 1일, 민주당원혜영 전 원내대표와 이정희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무사가 재일본 민족학교 책 보내기 운동을 벌여온 민간 자선단체까지 불법 사찰했다고 주장했다.[43] 그들은 동호회 관계자의 상세한 인적사항이 기록된 점을 들어 기무사가 오래전부터 집요하고 광범위하게 사찰을 벌여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는 이후 밝혀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10년 4월 22일, 민변은 민간사찰의 책임을 묻기 위해, 사찰 피해자인 민주노동당 당원과 인터넷 카페 회원 15명을 대리하여 국가를 상대로 1인당 2000만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44]

2. 3. 4. 18대 국회의원 시절

2008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1][11] 18대 국회 임기 동안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연도주요 경력 및 활동
2008년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민주노동당)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
2009년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민주노동당 대표 ( ~ 2011년)
2010년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2011년통합진보당 공동대표 ( ~ 2012년)
2013년통합진보당 대표 ( ~ 2014년)



:출처:네이트 인물 검색 2012년 12월 29일 확인

2008년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지냈고,[1] 2009년에는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 2011년 민주노동당은 다른 진보 정당들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UPP)을 창당했고, 이정희는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를 맡았다.[1]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출마 이유에 대해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를 "독재 시대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지칭하며 그를 비판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2] 득표율은 1% 미만이었으나, 통합진보당이 국회 5석 이상을 확보하여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3]

토론회에서 이정희는 박근혜 후보를 향해 "제가 대선에 출마한 목적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했으며, 박근혜의 아버지인 전직 대통령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 창씨개명 경력을 언급했다.[3][13] 또한 대한민국 정부를 “남측 정부”라고 부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실용 위성”이라고 표현하는 등,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3][14][15][16] 이러한 강경한 발언은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당시 야권 단일 후보였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기도 한다.[3][5][13]

선거를 3일 앞둔 2012년 12월 16일, 이정희는 "정권 교체를 위해 진보, 민주, 개혁 세력을 통합하라는 국민의 염원에 따라" 후보직에서 사퇴했다.[4][12] 그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퇴보"를 의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4]

2013년 2월, 당직자 선거를 통해 다시 통합진보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7] 같은 해 9월 2일,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를 수사하고 기소하자,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6]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 했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7][18] 이는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 결정이었다.[7][18] 이정희는 이 결정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결정으로 암흑기를 열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대한민국이 "독재 국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7][8] 이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즉각 해산되었고, 이정희 대표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5명 전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19] 같은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했다.[19]

2. 3. 5. 대선 출마와 자격 반납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정희는 자신이 선거에 나선 주된 이유가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는데, 박근혜를 "독재 시대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지칭했다.[2] 실제 TV 토론회에서는 "제가 대선에 출마한 목적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라고 직접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13]

비록 득표율은 1% 미만이었지만,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5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3] 토론회에서 이정희는 박근혜의 아버지이자 전 대통령인 박정희를 언급하며 그의 일본식 이름 창씨개명 경력을 거론했고,[3][13] 대한민국 정부를 북한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인 "남측 정부" 또는 "남조선 정부"라고 부르는 등[3][14]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이어갔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실용 위성"이라고 표현하여[14][15][16] 국내 여론으로부터 "친북", "종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4][15][16] 이러한 이정희의 강경한 발언과 태도는 결과적으로 당시 야권 단일 후보였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낮추고,[3][13]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이탈시켜 보수 성향의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5][13]

선거일을 3일 앞둔 12월 16일, 이정희는 "정권 교체를 위해 진보, 민주, 개혁 세력을 통합하라는 국민의 염원에 따라" 후보직에서 사퇴했다.[4][12] 그는 박근혜의 당선이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퇴보"를 의미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4] 그러나 선거 결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일부 분석가들은 이정희의 공세적인 태도가 오히려 보수층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5]

대선 이후 2013년 2월, 이정희는 다시 통합진보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7] 하지만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가졌으며 "친북"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7][18]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강제 해산 사례였다.[18] 이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즉각 해산되었고, 당 대표였던 이정희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5명은 모두 의원직을 상실했다.[19] 같은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했다.[19] 이정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결정으로 암흑기를 열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대한민국이 "독재 국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7][8]

2. 4. 18대 대선 이후

2013년 2월 당직자 선거를 통해 다시 통합진보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7] 같은 해 3월 8일에는 베네수엘라우고 차베스 대통령 장례식에 조문단을 이끌고 현지 대사관을 방문하였다.

2013년 9월 2일, 국가정보원이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6]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한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18][7]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정당 강제 해산이었다. 이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즉시 해산되었고, 이정희 대표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5명 전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19]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같은 날 통합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했다.[19] 이정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권위주의적인 결정으로 암흑기를 열었다"며 대한민국을 "독재 국가"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7][8]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공식적인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4월 8일, 민중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약 6년 만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민중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54][9]

3. 의정 활동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은 2009년 9월 3일, '시민주권모임' 창립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정희 의원이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문제를 폭로한 것을 비롯해 보여준 여러 활동을 높이 평가하며, 개인적으로도 지지 의사를 밝히고 강연료 일부를 후원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59]

3. 1. 제18대 국회

제18대 국회 임기(2008년~2012년) 4년 동안 총 404건의 의안을 대표 발의했으며, 이 중 본회의에서 가결된 의안은 총 6건이다.[55]

또한, 택시요금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10% 중 9%를 택시 운전기사의 복지를 위해 환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 이 법안 통과 이후, 다른 국회의원들에 의해 버스와 택시 운전기사의 복리 문제가 2008년 말 국회에서 잠시 논의되기도 했다.

=== 기무사 민간사찰 폭로 ===

2009년 8월 12일,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신 모 육군 대위가 민간인을 사찰한 증거로 수첩과 메모, 감시 동영상이 제시되었다. 8월 5일 쌍용자동차 노조 관련 경찰의 대응에 항의하는 평택 집회 현장에서 신 대위가 소지했던 수첩에는 민주노동당 당직자, 금속노조 관계자, 인터넷 카페 회원 등 10여 명의 1월 이후 행적, 주소, 차량번호 등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민간인의 일상생활 모습이 담긴 영상까지 확인되었다.[41]

이정희는 민주노동당 당원과 그 가족을 불법 사찰한 자료를 입수하여 당에 제공하고 언론에 폭로하도록 했다. 확보된 영상에는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이 작업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그의 아내가 직장인 약국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촬영되어 있었다.[42] 이 폭로로 국군기무사와 경찰의 야당 인사 부당 감찰 문제가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 주요 법안 표결 ===

  • '''탈북자 지원 법안 찬성''': 2010년 3월 2일, 탈북자를 위한 지역적응센터 설치, 상담사 제도 도입,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의안번호 1807771) 표결에 찬성했다.[57]
  • '''연평도 포격 규탄 결의안 기권''': 2010년 11월 24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규탄하는 '북한의 무력도발행위 규탄 결의안'(의안번호 1810030) 표결에 기권했다.[56]
  • '''복수국적법 반대''': 2009년 12월 29일, 대한민국 정부가 특정 대상(결혼이민자, 특별 공로자, 우수 외국인재, 국적회복자, 해외 입양 후 국적 회복자, 65세 이상 영주 귀국자 등)에게 제한적으로 복수 국적을 허용하기 위해 발의한 '국적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807200)의 수정가결에 반대했다.[58]

4. 논란과 의혹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 토론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해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13] 이 발언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13]

또한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남측 정부"로 지칭하거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실용 위성"이라고 표현하는 등[14][15][16]의 발언으로 인해 "종북" 성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이정희가 대표로 있던 통합진보당에 대해 북한을 추종하고 대한민국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18] 이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은 즉시 해산되었고, 이정희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5명은 의원직을 상실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통합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했다.[19]

4. 1. 사상 논란

;"남쪽정부" 발언 관련

이정희는 2012년 12월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1차 TV토론회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해 발언하던 중 '남쪽 정부'라고 언급했다가 '대한민국 정부'라고 정정한 바 있다.[60]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남쪽 정부" 또는 "남조선 정부"라고 부른 것은 한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었다.[3][14][15][16]

;한국 전쟁의 성격 관련

이정희는 2010년 8월 4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하여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청취자의 질문에 “역사적인 논쟁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블로그에 답을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61] 이후 2011년 4월 1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하여 관련 질문에 대해 "역사적으로는 그것이 남침인 거라는 게 확인된 일이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교훈을 찾을 것은 별도로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민족의 과제가 친일 청산과 민주주의 발전이었으나 이를 위해 힘을 모으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며, 역사적 과제 설정과 힘을 모으는 방안 모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6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3대 세습 관련

민주노동당 대표 시절, 이정희는 통합진보정당 추진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제안한 ‘북한의 3대 세습 반대 입장 채택’ 요구에 대해 “분단의 이분법”이라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뿌리깊은 분단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커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며, 북한 비판 여부로 동료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63]

2010년 10월 8일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온 경험에서 나온 현명한 대응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권력구조가 북한 사회 정체성의 일부인 현실에서 이를 언급하면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으며, 보수정당과 언론이 이미 비난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까지 갈등을 더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64]

;연평도 포격 관련

2010년 11월 24일, 연평도 포격 발생 다음 날 이정희는 자신의 트위터에 “연평도에서 군인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불길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한다. 대결로 생겨나는 것은 비극뿐이다”라는 글을 올려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북한의 연평도 포격 규탄 결의안 표결에서 이정희를 포함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5명 전원 등 총 9명은 결의안 내용 수정을 요구하며 기권했다.

;천안함 사건 관련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시절인 2012년, 이정희는 “남북관계를 고려해 비난하지 않는다”는 당의 기조 아래 천안함 2주기 추모식에 당 차원에서 불참하였다.[65] 그는 과거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이 아니면 누가 했겠느냐는 것은 정황, 심증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66]

;2012년 대통령 선거 TV 토론 관련

이정희는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하며, 출마 이유가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 후보를 "독재 시대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칭했다.[2] TV 토론회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향해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 창씨개명 경력을 언급하며 “제가 대선에 출마한 목적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했다.[13] 또한, 대한민국 정부를 "남쪽 정부", "남조선 정부"로 지칭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실용 위성"이라고 표현하는 등[14][15][16]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강경한 발언들이 당시 야권 단일화 상대였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낮추고, 오히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결집을 유도하여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3][5][13]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2013년 9월 2일, 이정희는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 수사를 진행한 것에 대해 "마녀 사냥"이라고 비판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6]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며 폭력 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 했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18]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 해산 결정이었다. 이정희는 이 결정을 "권위주의적인 결정으로 암흑기를 열었다"고 비판하며 대한민국을 "독재 국가"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7][8] 이 결정으로 이정희를 포함한 소속 국회의원 5명은 의원직을 상실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즉시 통합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했다.[19]

4. 2. 통합진보당 경선 관련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과 관련하여, 검찰 수사 결과 구당권파가 아닌 신당권파(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등 탈당파)의 범죄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67][68] 부정 경선 사태가 터진 직후 이정희는 한동안 침묵했으나, 자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참여당계 인사가 이석기, 김재연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69]

이정희 역시 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으나, 관악구 을 경선 여론조작 건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70]

19대 총선을 앞두고 관악구 을 지역구[71] 야권 단일 후보 경선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당시 경쟁 상대는 민주통합당의 김희철 의원이었다. 경선 중 이정희 후보 측 보좌관이 여론조사 응답 시 나이를 속여 답하도록 요청하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특정 연령대 응답이 마감되었으니 다른 연령대로 응답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캡처 사진이 퍼지면서 여론 조작 논란이 확산되었다.[72] 또한 보좌관 외 다른 인물이 여론조작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73]

이에 민주통합당은 이정희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지만, 이 후보는 이를 거부하고[74] 오히려 상대 후보인 김희철 측의 사퇴 요구가 '야권연대를 깨는 행위'라고 반발하며 재경선을 요구했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이 후보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2012년 3월 20일 이정희는 국회에서 야권 단일화 경선관리위원회가 요구한[75] 재경선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76] 이 과정에서 온라인상에서는 이정희 후보의 여론 조작 의혹을 비꼬는 패러디가 만들어지는 등 비판 여론이 일었다.[77] 또한, 2007년 D법무법인 변호사 재직 중 P사업장의 노사분쟁 관련 회사 쪽 소송대리인을 맡아 사실상 노조의 패배를 이끌어 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78]

결국 2012년 3월 23일, 이정희는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신이 출마했던 관악구 을 지역구는 통합진보당의 이상규 후보에게 양보하였고, 이상규 후보는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5. 평가

2009년 12월, 스포츠서울닷컴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PR이 공동으로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친박연대(미래연합), 무소속 등 다양한 정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 200명을 대상으로 2009년 활동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2월 18일과 19일 이틀간 진행된 이 조사에서 이정희 의원은 여러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9년 가장 돋보인 의정 활동을 한 의원' 항목에서 응답률 약 18%로 1위를 차지했으며, '가장 돋보인 의정 활동을 한 여성 의원' 항목에서도 약 20%의 응답률로 1위에 올랐다. 또한 '함께 일하고 싶은 여성 의원' 항목에서는 '없다'(10.5%)는 응답 다음으로 당시 박근혜 의원과 함께 공동 2위(5%)를 기록했다.[81]

한편 2011년 6월에는 동아일보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 정치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82]

6. 저서

최근 ''진보를 복기하다''(들녘)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통합진보당의 실패했던 정책, 13개 법안을 담고 있다. 그는 “당이 해산됐다는 것만 기억하고 무엇을 하려 했느냐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이 책을 낸 이유를 말했다.[83][84]


  • 사랑과 노래와 병 (2010)
  • 미래의 발전
  • 박식한 여성

7. 수상 경력


  • 2010년 제12회 백봉신사상 신사의원상
  • 2012년 2월 18대 국회 정의로운 의정활동상

참조

[1] 뉴스 불가사의한 에너지, '초선의원 노무현'의 재림 http://www.sisaseoul[...] SisaSeoul 2010-02-05
[2] 웹사이트 S. Korea's presidential contenders have near-opposite backgrounds https://www.washingt[...] 2012-12-12
[3] 뉴스 Far left outsider "winner" in Korean presidential debate https://www.reuters.[...] Reuters 2020-05-12
[4] 뉴스 Left-leaning presidential candidate Lee Jung-hee quits race http://english.yonha[...] Yonhap News Agency 2012-12-17
[5] 뉴스 '노골적 反朴' 이정희 되레 朴당선에 기여? http://news.donga.co[...] The Dong-A Ilbo 2012-12-20
[6] 웹사이트 UPP leader goes on hunger strike, protests 'witch hunt' http://www.koreahera[...] The Korea Herald 2013-09-02
[7] 웹사이트 South Korea court bans 'pro-North' political party https://www.bbc.com/[...] 2014-12-19
[8] 웹사이트 South Korea Disbands Party Sympathetic to North https://www.nytimes.[...] 2014-12-19
[9] 웹사이트 [2020총선] 이정희, 6년만에 공식석상 등장…"민중당 지지해달라" https://www.hani.co.[...] 2020-04-08
[10] 웹사이트 당대표 이정희(党代表 李正姫)統合進歩党ホームページ人物紹介 http://www.goupp.org[...]
[11] 웹사이트 李正姬、大韓民国の国会 http://www.rokps.or.[...]
[12] 뉴스 李正姫、朴槿恵-文在寅両者討論を成功させて辞任 http://www.labornetj[...] レイバーネット(原文チャムセサン) 2012-12-16
[13] 웹사이트 TV토론 ‘스윙보터’ 마음 흔들어… 말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김성수의 뉴스 톺아보기] https://www.seoul.co[...] 2022-02-15
[14] 뉴스 李正姫、北シンパの本性現す http://dailynk.jp/ar[...] デイリーNK 2012-12-06
[15] 뉴스 税金27億ウォン「食い逃げ」の李正姫氏は「従北」の本性を表したか http://japanese.dong[...] 東亜日報 2012-12-17
[16] 웹사이트 박 떨어뜨리려다 결국엔 '문 저격수'된 이정희 https://v.daum.net/v[...] 2012-12-21
[17] 뉴스 韓国:李正姫、統合進歩党代表に選出 http://www.labornetj[...] レイバーネット(原文チャムセサン) 2013-02-24
[18] 뉴스 韓国憲法裁、「統合進歩党」解散を決定 https://japanese.joi[...] 中央日報 2014-12-19
[19] 뉴스 強制解散決定の統合進歩党 選管委が政党登録抹消=韓国 http://japanese.yonh[...] 聯合ニュース 2014-12-19
[20] 간행물 (trans x cross)이제는 종북몰이를 끝내자 - 책 <이정희, 다시 시작하는 대화> 출간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http://entertain.nav[...] 씨네21 2017-04-06
[21] 뉴스인용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취임 http://www.gjinews.n[...] 광주인터넷뉴스 2010-08-02
[22] 뉴스 ‘부드러운 투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http://shindonga.don[...] 신동아 2011-09-20
[23] 뉴스 민노당 이정희 의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http://lady.khan.co.[...] 레이디경향 2010-03-03
[24] 뉴스인용 87학년도 대입학력고사 성적 누가분포표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1-08-29
[25] 뉴스인용 87학년도 대입학력고사 채점결과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1-08-29
[26] 뉴스 18대 초선의원 릴레이 인터뷰 https://news.naver.c[...] 주간동아 2008-05-14
[27] 뉴스인용 불가사의한 에너지, ‘초선의원 노무현’의 재림 https://archive.toda[...] 시사서울 2012-11-30
[28] 뉴스인용 <기고> 사진작가 이시우 국가보안법위반 무죄판결, 그 의미와 뒷이야기들 - 이정희 http://www.tongilnew[...] 통일뉴스 2010-02-08
[29] 웹인용 사진작가 이시우 국가보안법 무죄판결 환영 기자회견 http://minbyun.org/?[...]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2010-02-08
[30] 뉴스인용 민변, 파병 취소 가처분신청 - 헌법소원도 제기, 신속한 처리 위해 가처분신청 http://wwwga.vop.co.[...] 민중의소리 2003-04-03
[31] 뉴스인용 18代 총선 법조인 59명 여의도 '입성' http://www.lawtimes.[...] 법률신문사 2010-02-08
[32] 뉴스 이정희 당대표, 노조탄압 사측 변호사였다 http://www.newscham.[...] 2012-05-07
[33] 뉴스인용 불가사의한 에너지, ‘초선의원 노무현’의 재림 https://archive.toda[...] 시사서울 2012-11-30
[34] 뉴스인용 이정희-이승현, 토론회서 '의원 강제연행' 공방 - KBS 열린 토론회서... 이 의원 토론준비 도와준 누리꾼에게 감사 편지 띄우기도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0-02-08
[35] 뉴스인용 돌고돌아 살아남은 친박연대 4명 … 박근혜 의리공천 아닌가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12-03-24
[36] 뉴스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강기갑 선출 http://economy.hanko[...] 서울경제 2008-05-27
[37] 뉴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이정희 의원 내정 http://economy.hanko[...] 서울경제 2008-09-23
[38] 뉴스 복면방지법과 집단소송제 관련 입장 밝히는 이정희 정책위의장 http://www.newsis.co[...] 뉴시스 2008-12-26
[39] 뉴스 민노, "사법부 치욕"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 촉구 https://news.naver.c[...]
[40] 뉴스 이정희 "부당한 고발 따른 수사 협조 못해" https://news.naver.c[...]
[41] 뉴스 [풀영상]이정희 "軍 기무사, 민간인 상대 대규모 사찰 자행" https://news.naver.c[...] MBC 2009-08-12
[42] 뉴스 "기무사, 사찰대상자 부인까지 찍었다 "아내 잠 못 자... MB정권은 가정파괴범""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9-08-17
[43] 뉴스 野 "기무사, 민간 자선단체도 사찰"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9-09-01
[44] 뉴스 "민변, '기무사 불법사찰' 3억 원 배상 청구 소송" http://www.ytn.co.kr[...] YTN 2010-04-22
[45] 뉴스 '이정희 '희소식', 나꼼수에 도전장!' http://www.prosumero[...] 프로슈머 2011-12-28
[46] 뉴스 민주노동당 새 대표에 이정희 의원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10-07-16
[47] 뉴스 이정희 "박근혜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 vs 朴 "이정희 오늘 작정하고 네거티브" http://news.mt.co.kr[...] 머니투데이 20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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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뉴스 박근혜 480억, 문재인 450억...이정희는 27억 보조금보다 30억 http://news.heraldco[...] 헤럴드경제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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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뉴스 변희재 "종북·주사파의 특성상 이정희 대표는 사퇴 못해"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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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웹인용 이정희 "남쪽 정부에서는..아니 대한민국에선" http://www.newdaily.[...] 2012-12-04
[81] 뉴스 '[2009년 연말특집] 국회의원 보좌진 선정 '올해의 의원'에 이정희 의원' http://www.sportsseo[...] 폴리뉴스 - 'P-TODAY' 20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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