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초토화는 적에게 자원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전투 능력을 약화시키는 군사 전략이다. 이는 적에게 유용할 만한 것을 남기지 않고, 민간인 가옥, 농토, 마을, 자연림까지 불태우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 작전은 단기간에 수행할 수 있고 방어 측의 피해가 적다는 장점이 있으나, 작전 지역의 재건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재침공의 위험이 있다는 단점도 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전쟁과 분쟁에서 사용되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민간인 피해를 이유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도 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적대적 인수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가치를 낮추는 '초토화 방어'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전술 - 방어 (군사)
방어는 군사적으로 아군을 보호하고 적의 공격을 막는 전투 행위이며, 전술적으로 적의 공세를 방해하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며, 생물학적으로는 생물의 생존 전략을 포괄한다. - 전술 - 테스투도 대형
테스투도 대형은 고대 군사 전술로서 병사들이 방패로 대형의 전면과 상단을 덮어 적의 투사 무기로부터 보호하는 방어 대형이지만, 속도와 기동성 감소, 백병전 취약성, 강력한 무기에 대한 무력함 등의 단점도 있다. -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오렌지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로, 다이옥신에 오염되어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국제적인 비판과 법적 소송을 야기했으며, 미국과 베트남 정부는 오염 지역 정화와 피해자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 핵겨울
핵겨울은 핵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화재로 태양광이 차단되어 지구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가설이다. - 전쟁의 여파 - 탈산림화
탈산림화는 인위적·자연적 원인으로 산림이 다른 용도로 바뀌는 현상으로, 열대우림 면적 감소와 생물다양성 손실, 기후변화를 심화시키며 농업, 목재 산업, 광업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여 광범위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 - 전쟁의 여파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한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 의학적 장애로, 사건의 재경험, 회피, 과각성 등의 증상을 보이며 심리적 외상과 회복력이 발병 및 극복에 영향을 미친다.
초토화 | |
---|---|
개요 | |
유형 | 군사 전략 |
관련 전술 | 제한전 총력전 대량 학살 파괴 |
설명 | |
정의 | 적에게 유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군사 전략 |
목표 | 적의 자원 사용 능력 약화 |
포함 대상 | 자원 식량 수송 수단 통신 시설 산업 자원 |
역사적 맥락 | |
고대 | 고대부터 사용된 전술 |
예시 | 스키타이인의 전략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 상대) 로마 공화정 (제3차 포에니 전쟁, 카르타고 파괴) |
현대적 적용 | |
사용 예시 | 미국 남북 전쟁 (1864년, 윌리엄 테쿰세 셔먼의 남부 진격) 제2차 세계 대전 (소련의 초토화 작전, 나치 독일군 상대) 베트남 전쟁 (미군의 농작물 파괴) |
윤리적 및 법적 문제 | |
민간인 피해 |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술 (민간인에게 큰 피해 초래 가능성) |
국제법 | 제네바 협약 추가 의정서 (민간인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 파괴 금지) |
관련 용어 | |
유사 개념 | 슬래시 앤드 번 농업 (화전 농업) |
참고 | |
관련 문서 | 제한전 총력전 대량 학살 파괴 |
2. 군사 이론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저서 ''전쟁의 원리''에서 적의 생존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어 와해시키고 퇴각을 강요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웰링턴의 작전이 그 예시이다. 초토화 작전은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적에게 자원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적의 전투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군사 시설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가옥, 농토, 마을, 자연의 산림까지 불태우는 것을 초토 작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전술·전략상 적에게 유용할 만한 것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산림이나 목조 가옥 등 연료가 될 수 있는 가연물이 모두 불타 버리면, 주둔 부대는 취사를 위한 연료를 다른 곳에서 운반해야 한다.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등 추운 지역에서는 연료 부족이 동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초토화 작전은 한랭 지역이나 건조 지대 등 식량·연료가 부족한 지역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며, 자연림이 풍부한 열대 지역에서는 효과가 적다.
2. 1. 군사적 이점과 한계
초토화 작전은 방어 측에서 짧은 시간에 적은 피해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식량 등을 옮기고 건물에 불을 지르고 떠나면 되기 때문이다.[1] 그러나 공격 측을 격퇴한 후에도 불탄 장소에서 방어군 역시 지내야 하므로 재침공의 위험이 있으며, 불탄 건물을 다시 짓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1]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후퇴하는 군대가 국토의 모든 것을 활용하고 소비하며, 남은 것은 황폐한 마을과 도시, 수확이 끝났거나 짓밟힌 밭, 빈 우물, 진흙탕 시내뿐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추격하는 군대가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됨을 의미한다.
3. 역사적 사례
초토화 작전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쟁에서 사용된 전술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원리''에서 "방어전이든 공격전이든, 적군을 파괴하는 위대한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전투를 통해서든, 적의 생존을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것을 통해서든 말이다."라고 언급하며 초토화 작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4]
철수 시 적에게 유용할 만한 것을 남기지 않는 것은 전술·전략상의 요체이며, 대상물이 군사 시설에만 한정될 경우에는 초토 작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초토 작전은 민간인의 가옥, 농토, 마을, 자연의 산림까지 불태우는 것을 포함한다.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등 추운 지역에서는 연료 부족이 동사와 물 부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초토화 작전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반면, 열대 지방에서는 회복력이 빨라 효과가 떨어진다. 초토화 작전의 장점은 작전이 단시간에 끝나고 방어 측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격 측을 격퇴한 후에도 불탄 장소에서 지내야 하고, 재건에 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다음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초토화 작전의 사례이다.
- 중일 전쟁(1937년)에 대한 보고서에서 영어로 처음 "초토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4] 후퇴하는 중국군은 일본군의 병참을 방해하기 위해 농작물을 불태우고 도시를 포함한 기반 시설을 파괴했다.
- 1863년 나바호 전쟁 당시 키트 카슨의 작전[4]
- 앵글로-보어 전쟁에서 키치너 경이 사용한 방법[4]
- 실패한 스웨덴, 프랑스, 독일의 러시아 침공[4]
- 미국 남북 전쟁 중 셔먼의 해양 행군[4]
- 가글라 전쟁(1375년 - 1376년)[4]
- 왈라키아 공 블라드 체페슈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1462년)[4]
- 일본 전국 시대(15세기 말 - 16세기 말)의 '청전 베기'[4]
- 임진왜란(1592년-1598년)[4]
- 던바 전투(1650년)[4]
- 대북방 전쟁(1700년 - 1721년)[4]
- 설리번 원정(1779년)[4]
-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1812년)[4]
- 앤드루 잭슨에 의한 "(제1차) 세미놀 전쟁(인디언 전쟁)"(1817년-1818년)[4]
- 알제리 침공(1830년 - 1847년)[4]
- 대서양을 향한 행진(1864년)[4]
- 보어 전쟁(제2차)(1899년 - 1902년)[4]
- 니콜라예프스크 사건(1920년)[4]
- 중일 전쟁(1937년 - 1945년) (삼광 작전, 견벽 청야, 창사 대화, 황하 유실 사건)[4]
- 겨울 전쟁(1939년 - 1940년)[4]
-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소 전쟁(1941년 - 1945년)[4]
3. 1. 고대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제국의 다리우스 1세가 유럽 스키타이 원정을 일으키자, 스키타이인들은 페르시아 침략자들을 피해 스텝 깊숙이 후퇴하면서 식량 공급을 파괴하고 우물을 독살하는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1]기원전 3세기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르루코수스는 카르타고의 한니발에 대항하여 이 전술을 사용했다. 트라시메노 호 전투에서 로마가 패배한 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침략해오는 카르타고인들의 길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집과 곡물을 불태우라고 지시했다.[2]
기원전 1세기 갈리아 전쟁에서 베르킨게토릭스는 로마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골족은 로마 군대를 갈리아로 유인하여 포위, 전멸시킬 계획으로 현재의 베네룩스 국가들과 프랑스의 시골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로마 군대의 승리로 인해 초토화만으로는 로마의 정복으로부터 갈리아를 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3]
3. 2. 중세
정복왕 윌리엄은 1069년 잉글랜드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면서 험버 강에서 티스 강에 이르는 지역의 마을들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하는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이를 "북부 초토화"라고 부른다. 식량 창고와 가축도 파괴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은 겨울 동안 굶주림에 시달렸고, 심지어 인간 식인 풍습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10만에서 15만 명이 사망했으며, 피해 지역은 회복하는 데 수세기가 걸렸다.[4]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동안, 로버트 1세는 잉글랜드군이 스코틀랜드의 성들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성을 파괴하는 전략을 사용했다.[4] 그는 14세기 익명의 시에서 잉글랜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초토화 전술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4]

백년 전쟁 동안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모두 적의 영토에서 기반 시설을 파괴하는 슈보셰 습격을 감행했다.
맘루크는 십자군과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요새를 파괴하는 전략을 사용했다.[4]
1462년, 왈라키아 공국의 블라드 3세는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에 대항하여 후퇴하면서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오스만 군대는 터고비슈테에서 2만 명 이상이 말뚝에 꿰인 끔찍한 광경을 보고 전투에서 철수했다.[4]

3. 3. 근대
30년 전쟁에서 신성 로마 제국 군대를 지휘하던 토르콰토 콘티는 스웨덴군에 밀려 후퇴하면서 가옥을 불태우고 마을을 파괴하며 재산과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4] 9년 전쟁에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팔츠 지역에서 초토화 작전을 펼쳐 적군이 현지 자원을 이용하는 것을 막고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략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대북방 전쟁 동안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1세는 스웨덴의 칼 12세에 대항하여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미국 독립 전쟁 중 설리번 원정에서 대륙군은 이로쿼이 부족에 대항하여 초토화 작전을 펼쳐 40개 이상의 이로쿼이 마을과 겨울 식량 저장고를 파괴했고, 그 결과 이듬해 겨울에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로 사망했다.
아이티 혁명에서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에 대항하여 초토화 작전을 계획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포르투갈과 러시아 제국은 나폴레옹의 군대에 대항하여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특히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러시아는 초토화 전술을 사용하여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무력화하였다.
미국 남북 전쟁에서 북군의 윌리엄 테쿰세 셔먼 장군은 남부 연합에 대항하여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대서양으로의 셔먼의 행진").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영국군은 보어인 게릴라에 대항하여 초토화 작전을 펼치고, 집중 수용소를 운영했다.
3. 4. 현대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군은 1915년 여름과 가을에 독일 제국군으로부터 후퇴하면서 대규모 초토화 전략을 사용했다.[1] 농작물, 집, 철도, 도시 전체 등 적에게 유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했고,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1] 제1차 세계 대전의 루마니아에서는 영국군이 유전을 불태워 동맹국이 점령하는 것을 막았다.[2] 서부 전선에서 1917년 독일 제국 육군은 힌덴부르크 선으로 전략적 초토화 철수를 했다.[3]
그리스-터키 전쟁 (1919–1922) 동안 후퇴하는 그리스군은 아나톨리아에서 초토화 정책을 수행했다.[4]

중일 전쟁 동안 일본 제국 육군은 삼광 작전으로 알려진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5] 중국 국민혁명군은 댐과 제방을 파괴하여 1938년 황하 홍수를 초래했고, 1938년 창사 화재에서 장사시를 불태웠다.[6]

1939년 겨울 전쟁에서 핀란드는 붉은 군대가 식량과 피난처를 얻지 못하도록 국경 근처에서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7]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때, 소련 정부는 부분적인 초토화 작전을 시작했다.[8] 이후 북부 집단군과 돈 집단군의 독일군도 초토화 정책을 반복했다.[8]


1944년 핀란드는 노르웨이로 퇴각하는 독일군을 막기 위해 핀란드 북부에서 초토화 전략을 사용했다. 노르웨이 북부에서도 독일군은 초토화 정책을 실시했다.
1945년 아돌프 히틀러는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네로 칙령으로 알려진 전국적인 초토화 정책을 수행하라고 명령했지만, 슈페어는 저항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철도 쟁기는 적의 철도 사용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1961년 포르투갈령 인도 병합 당시 포르투갈은 초토화 정책을 지시했지만, 총독은 항복을 결정했다.

인도네시아 국군은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당시 반둥 해상 화재 사건에서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1999년 동티모르 위기에서도 초토화 작전이 벌어졌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기간 동안 크로아티아군과 세르비아 준군사 조직은 서로에게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은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수단 정부는 다르푸르 전쟁에서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
2009년 스리랑카 내전 동안 유엔 지역 정보 센터는 스리랑카 정부가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미얀마 내전 (2021년~현재)에서 미얀마 군부는 초토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초토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 5. 한국 관련 사례
임진왜란(1592년~1598년)에서 조선군은 일본군(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초토화 전술을 사용했다.[4] 니콜라예프스크 사건(1920년)에서 적군 파르티잔은 일본군이 니콜라옙스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도시를 불태웠다.[4]4. 현대 사회에서의 초토화 작전
현대 사회에서 초토화 작전은 민간인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고엽제를 사용하여 베트콩의 은신처와 식량 공급을 막으려 했지만, 이는 환경과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1] 과테말라 내전에서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는 초토화 작전을 사용하여 수천 명의 마야족을 학살했다.[1]
영국은 말라야 비상 사태 기간 동안 말레이 반도에서 말레이 민족 해방군(MNLA) 반군의 농작물과 덤불을 파괴하기 위해 제초제와 고엽제(주로 에이전트 오렌지)를 사용했다.[1] 이는 MNLA 반군이 식량 보급을 위해 논밭을 이용하고, 이곳을 엄폐물 삼아 영연방 군대의 호송대를 매복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1]
미국은 베트남 전쟁 기간 중 적의 은신처를 노출하기 위해 작물과 잎을 파괴하는 고엽제 프로그램 목장 손 작전의 일환으로 에이전트 오렌지를 사용했다.[1] 에이전트 블루는 베트콩에게 식량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쌀 재배지에 사용되었다.[1]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는 1981년과 1982년 과테말라의 고지대에서 초토화 정책을 사용했다.[1] 리오스 몬트는 취임 후 과테말라 국민 혁명 연합 반군과 싸우기 위해 초토화 작전을 사용하는 새로운 대반군 전략을 시행했다.[1] 빅토리아 82 계획은 이 전략의 농촌 안정화 요소의 별명인 ''푸실레스 이 프리홀레스''(총알과 콩)로 더 잘 알려졌다.[1] 리오스 몬트의 정책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그들 대부분은 원주민인 마야족이었다.[1]
초토화 작전은 철수 시 적에게 유용할 만한 것을 남기지 않는 전술·전략이다. 그러나 민간인의 가옥, 농토, 마을, 자연 산림까지 불태우는 것을 포함하기에 민간인 피해가 크다.[1]
산림이나 목조 가옥 등 연료가 될 수 있는 가연물이 모두 불타 버리면, 그 장소에 주둔하는 부대는 일상적인 취사를 위한 연료조차 다른 장소에서 운반해야 한다.[1]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등 물이 얼어붙는 추운 지역에서는 연료가 부족하면 동사하거나 물을 마실 수 없게 된다.[1] 이 때문에, 초토 작전은 한랭 지역이나 건조 지대 등 식량·연료가 비교적 부족한 지역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한다.[1]
초토화 작전의 장점은 식량 등을 가져가고 건물에 불을 지르고 떠나면 되므로 작전이 단시간에 끝난다는 점, 방어 측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점 등이다.[1] 단점으로는 공격 측을 격퇴한 후에 불태운 장소에서 방어군도 지내지 않으면 재침공을 받기도 하고, 불탄 건물의 재건에 비용이 든다는 점 등이 있다.[1]
5. 경제 분야에서의 초토화 작전
기업 경영에서 적대적 인수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여 기업 가치를 낮추는 전략을 '초토화 방어'라고 부른다.[1] 이는 군사 전략에서의 초토화 작전과 유사한 개념이다.
경제계에서는 적대적 TOB 대책으로도 사용된다. 자사의 자산(크라운 주얼)을 다른 회사에 양도하는 등 처분하여 자사의 기업 가치를 낮춤으로써 적대적 인수를 막으려는 것을 말한다.
쇼기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사용된다. 쇼기에서는 빼앗긴 말은 상대의 소유말이 되어 상대의 전력을 늘리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자신의 진영에서 적의 말이 침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의 말을 피신시켜 침입하더라도 빼앗길 말이 거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6. 결론
철수할 때 적에게 유용할 만한 것을 남기지 않는 것은 전술·전략상의 요체이며, 대상물이 군사 시설에만 한정될 경우에는 초토 작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초토 작전은 민간인의 가옥, 농토, 마을, 자연의 산림까지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산림이나 목조 가옥 등 연료가 될 수 있는 가연물이 모두 불타 버리면, 그 장소에 주둔하는 부대는 취사를 위한 연료조차 다른 곳에서 운반해야 한다. 식량이 있어도 취사를 할 수 없어 식사에 불편을 겪게 된다.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등 물이 얼어붙는 추운 지역에서는 연료 부족이 동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된다. 러시아 등의 한랭 지역에서 초토 작전이 행해지면 적군은 심각한 상황에 빠진다. 가옥이 없으면 한랭지에서 장기간 노숙해야 하며, 추위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따라서 초토 작전은 한랭 지역이나 건조 지대 등 식량·연료가 부족한 지역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며, 자연림이 풍부한 열대 지역에서는 회복력이 있어 효과가 크지 않다.
초토화 작전의 장점은 식량 등을 가져가고 건물에 불을 지르면 되므로 작전이 단시간에 끝나고, 방어 측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단점은 공격 측을 격퇴한 후 불태운 곳에서 방어군도 지내야 하면 재침공을 받을 수 있고, 불탄 건물 재건에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1]
참조
[1]
뉴스
Gaza: Israel's unjustifiable scorched-earth policy
https://www.lemonde.[...]
2024-03-06
[2]
뉴스
Israel is taking scorched earth policy to a new level - Israel-Palestine conflict - Al Jazeera
https://www.aljazeer[...]
2023-12-16
[3]
뉴스
Scorched-earth: making Gaza uninhabitable for generations to come - Greenpeace Aotearoa
https://www.greenpea[...]
2024-07-11
[4]
서적
世界戦争事典 改訂第2版
河出書房新社
2014-09-29
[5]
서적
Hitler Moves East.
1966
[6]
네이버 지식백과
전투식량 - 군대문화 이야기(7) 배가 든든해야 싸움도 이긴다
https://terms.naver.[...]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유용원의 군사세계, 디지틀조선일보
[7]
웹인용
Protocol I Additional to the Geneva Convention, 1977
http://deoxy.org/wc/[...]
Deoxy.org
1954-05-14
[8]
웹인용
State Parties/Signatories Protocol Additional to the Geneva Conventions of 12 August 1949, and relating to the Protection of Victims of International Armed Conflicts (Protocol I), 8 June 1977.
http://www.icrc.org/[...]
ICRC
2012-12-0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