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 브리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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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쿨 브리타니아는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문화 현상으로, 1960년대 영국의 코미디 밴드 본조 도그 두 다 밴드의 노래 제목에서 유래했다. 1996년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 제리스의 상표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으며, 뉴스위크가 런던을 '가장 쿨한 도시'로 소개하면서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집권 이후, 젊고 활기찬 영국 사회 분위기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브릿팝, 패션, 영화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나타났다. 토니 블레어 정부는 쿨 브리타니아를 국가 브랜드로 삼아 문화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과도한 상업화, 엘리트주의, 단기적 성과 등의 비판을 받았다. 쿨 브리타니아 정책은 일본의 쿨 재팬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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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브리타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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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원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는 1967년 영국의 코미디 밴드 본조 도그 두 다 밴드의 노래 제목으로 처음 사용되었지만, 1990년대에 이 용어가 다시 사용된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37] 1996년 초, 미국의 아이스크림 회사 벤 & 제리스가 이 용어를 등록 상표로 사용하면서 다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6년 말, 뉴스위크는 런던을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도시'로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냈고,[36][38] 이 기사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매체와 광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쿨 브리타니아'는 하나의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22][30]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쿨 브리타니아'라는 표현은 더욱 널리 쓰이게 되었다.[39][40]
2. 1. 1960년대의 기원
'쿨 브리타니아'라는 말은 1967년 영국의 코미디 밴드 본조 도그 두 다 밴드가 발표한 노래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90년대 들어 쓰이게 된 표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37] 이 노래는 본조 도그 두 다 밴드의 데뷔 앨범 ''고릴라''에 수록되었으며, "룰, 브리타니아!"를 언급하는 가사가 포함되어 있었다.[1]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본조 도그 두 다 밴드는 몬티 파이튼과도 관계가 깊었다.[27]이후 '쿨 브리타니아'란 말이 대중 앞에 다시 등장한 것은 30년 뒤인 1996년 초,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 제리스의 등록상표로 쓰이면서부터였다.[28][29] 채널 4는 1996년과 1997년에 "쿨 브리타니아"라는 제목의 잡지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2]
2. 2. 1990년대의 재등장
'쿨 브리타니아'라는 말은 1967년 영국의 코미디 밴드 본조 도그 두 다 밴드의 노래 제목으로 유명하지만, 1990년대에 쓰이게 된 표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37] 1996년 초,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 제리스가 이 용어를 등록상표로 사용하면서 다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28][29]1996년 말, 뉴스위크 지는 런던을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도시'로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냈다.[36][38] 이 기사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러 매체와 광고에서 이 용어를 차용하면서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22][30]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 대표의 노동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쿨 브리타니아'는 더욱 많이 쓰이게 되었다.[39][40]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영국 사회의 긍정적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기 때문이다.[4][5]
3. 역사적 배경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는 1967년 영국의 코미디 밴드 본조 도그 두 다 밴드의 노래 제목으로 처음 사용되었지만, 1990년대에 사용된 표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37] 1996년 초,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 제리스가 이 용어를 등록상표로 사용하면서 다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청년 문화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7] 뉴스위크는 1996년 말 런던의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며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도시 속으로'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발행했고, 이는 여러 매체와 광고에서 차용되면서 '쿨 브리타니아'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게 되었다.[36][38]
이 시기에는 오아시스, 블러와 같은 브릿팝 밴드들이 인기를 얻었으며, 스파이스 걸스와 같은 팝 그룹도 등장했다.[15] 영국 젊은 예술가들과 패션 디자이너들도 주목받았다.[7] UEFA 유로 1996 축구 대회는 잉글랜드에서 개최되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사건으로 여겨진다.[12]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쿨 브리타니아'는 이 시기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더욱 널리 사용되었다.[39][40] 노엘 갤러거의 유니언 잭 기타와 게리 할리웰의 유니언 잭 드레스는 이 시기 영국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9][10][11]
1990년대 초반부터 영국에서는 브릿팝, 테크노, 레이브 등의 음악과 영국 젊은 예술가들, 존 갈리아노, 오즈왈드 보텡, 알렉산더 맥퀸 등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주목받았다. 이들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94년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면서, 그는 "제3의 길"과 "뉴 레이버(New Labour)"를 내세우며 당의 노선을 중도 보수 쪽으로 전환했다. 블레어 정부는 신자유주의/시장 경제 노선을 추구했으며, 루퍼트 머독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블레어 이전 존 메이저 정부는 대처리즘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정하여 경제 회복을 이루었다. 1995년경부터 영국 경제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수상이 되자 노엘 갤러거 등 각계의 젊은 예술가들이 수상을 축하를 하러 오면서 화제가 되었고, "쿨 브리타니아"는 블레어의 참신한 이미지와 함께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3. 1. 경제적 부흥
스트라이커 맥과이어에 따르면,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는 1990년대에 10년간의 영국 경제의 부상을 반영하는 약칭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3] 1996년 맥과이어는 이러한 급격한 경제 발전을 1980년대의 대처리즘 정책에 기인한다고 보도하는 ''뉴스위크'' 표지 기사를 썼는데, 제목은 "런던 규칙"이었다.[3] 기사에서 런던(최근의 경제 발전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도시 중 하나)은 ''뉴스위크''에 의해 "지구상에서 가장 쿨한 도시"로 선언되었다.[3] 맥과이어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문구를 사용한 적이 없었지만, 2009년 ''가디언'' 기사에서 ''뉴스위크'' 기사에서 '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수많은 '쿨 브리타니아' 선박을 출항시켰다"고 언급했다.[3]1997년 토니 블레어의 총리 당선은 이전 총리인 존 메이저와는 다른 분위기를 나타냈다.[4][5] 블레어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대학교 시절 어글리 루머스라는 록 밴드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사진 촬영을 위해 유명 음악가들을 10 다우닝가로 초대했다.[6]
그 무렵, 소속원의 대부분이 20~30대인 중도 좌파 싱크탱크 "데모스"(Demos, 사회적 기업가 등의 개념을 제창한 것으로도 유명한 조직)에서는, 20대 초반의 젊은 연구원 마크 레너드(Mark Leonard)가, 이 호황을 미래로 연결하기 위해, 음악, 패션, 문화, 출판, 방송 등 활황을 띠고 있던 소재를 바탕으로 소프트 산업의 창업을 촉진하여 더욱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영국의 빈곤한 브랜드 이미지를 바꿔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제안을 했다.
레너드는 해외에서 본 늙은 강대국, 노후화, 쇠퇴, 실업, 흐린 날씨, 지루함과 같은 영국의 편견에 가득 찬 이미지가 해외로부터의 경제 투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젊은 재능에 의한 문화의 활황, 서비스업의 발전, 다양한 민족의 공존과 같은 현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대한 앙케이트로 뒷받침했다. 영국의 트레이드마크(등록 상표)였던 "여러 외국으로부터의 두뇌 유입"과 "문화, 정치, 경제의 새로운 컨셉 창출"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소프트 산업을 더욱 활발하게 하여 신선한 문화를 전 세계에 발신하고, 세계의 영국에 대한 이미지, 즉 브랜드를 일신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1997년에 『등록 상표 브리튼(Britain [TM]: renewing our identity)』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판했다.[26] 이것은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윽고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된다.
3. 2. 정치적 변화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 대표의 노동당은 18년간의 보수당 집권을 끝내고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39][40]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영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쿨 브리타니아'라는 표현은 이 시기를 상징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었다.[39][40]토니 블레어의 총리 당선은 이전 총리인 존 메이저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4][5] 블레어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대학교 시절 어글리 루머스라는 록 밴드에서 활동했던 점을 강조했으며, 유명 음악가들을 10 다우닝가로 초대하여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6]
1994년 41세의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그는 "제3의 길", "뉴 레이버(New Labour)"를 내세우며 전후 노동당의 좌파 노선과 결별했다. 블레어는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중도 보수 노선으로 전환하고, 당 강령에서 산업의 국유화 조항을 삭제하여 신자유주의/시장 경제 노선으로 전환했다. BBC 편집자 N. 딕슨은 블레어의 이념을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했다.[24] 블레어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조지 W. 부시와 함께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영국 유권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 소속 44세의 토니 블레어가 총리로 선출되자,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 등 각계 젊은 예술가들이 축하 인사를 하러 와 화제가 되었다. "쿨 브리타니아"라는 구절은 블레어의 초창기 신선한 이미지와 함께 세상에 퍼졌다.
블레어 총리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와 '등록 상표 브리튼'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국가의 주요 산업을 지원하는 국가 브랜드 전략을 시작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영국은 "쿨 브리타니아"를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로 삼는다.
- "젊은 욕망과 활기가 넘치는, 다양한 문화와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지향한다.
-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와 미디어를 "'''크리에이티브 산업'''"으로 규정하고, 고용 창출, 외화 획득, 관광 유치, "쿨 브리타니아" 브랜드 형성에 중요한 산업으로 육성한다.
- 크리에이티브 산업을 통해 영국에서 선진적인 '하이컬처'(상류·중류층을 위한 문화)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팝컬처", 세계의 미래를 규정할 만한 획기적인 연구를 발신하여 세계에 "쿨 브리타니아"의 이미지를 널리 알린다.
- 브랜드 형성을 통해 경제 투자 유치, 관광객 유치, 문화 관계자 이주를 촉진하고, 문화 산업, 예술 산업 강화와 관광업, 서비스업, 공업 등 각종 산업의 고용 창출, 영국을 더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에너지 넘치는 사회로 만들어 호경기 지속, 실업률 감소, 고령화 방지 등을 실현한다.
블레어 총리는 "크리에이티브 산업 특별 위원회"(Creative Industries Task Force)를 구성하고, 폴 스미스, 리처드 브랜슨 등 문화 산업 주체, 미디어 관계자, 학자들을 모아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을 협의하고 다양한 정책을 실행했다. 동시에 "홍보 특별 위원회"(Britain Abroad Task Force)를 조직하여 영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국가 홍보 전략'''을 실시했다. 정부 부처도 재편되어, 국가 유산성이 문화·미디어·스포츠부 (문화성)로 개칭되어,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블레어 정권의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 정책과 국가 홍보 전략의 내용은 주로 다음과 같았다.
- 예술 문화, 팝컬처, 스포츠계에 대한 막대한 인적·자금적·제도적 지원
-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해외 진출·수출을 위한 관민 일체의 후원
- 홍보 특별 위원회에 의한 핵심 메시지 순위 결정, 홍보 대상 선정, 홍보할 자산 선정 등의 "국가 홍보 전략" 확립
- 홍보 수단인 문서, 웹사이트 등의 쇄신, 국가 및 지방과 관련된 사업에 뛰어난 디자이너, 건축가 등을 대규모로 기용
예를 들어, 밀레니엄을 위한 대도시 재개발에 참신한 건축가를 기용하여, 런던 아이와 테이트 모던 등 대규모 문화·관광 시설이 탄생했다. 또한 복권 등으로 자금을 지원하여 문화·예술을 대규모로 지원했다. 영국 문화원, 브리티시 에어웨이스 등 해외에 열린 기관 및 영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로고와 디자인을 선진적인 것으로 바꾸고, 정부의 문서 및 웹사이트·시설 등도 디자이너의 손으로 개편했다.
3. 3. 사회문화적 분위기
1990년대 초반부터 영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악, 미술, 패션 등 다양한 문화가 발생했다. 음악 장르로는 브릿팝, 테크노, 레이브 등이 있었고, 미술계에서는 영국 젊은 예술가들(YBA), 패션 업계에서는 존 갈리아노, 오즈왈드 보텡, 알렉산더 맥퀸 등 젊은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유행을 이끌었다. 이러한 흐름은 음악 잡지, 문화 잡지, 패션 잡지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36][38]이들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 하의 불경기 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이어갔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 미디어 등으로부터 계약 및 투자를 받아 더 큰 상업적 발표 기회를 갖게 되었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 대표의 노동당이 18년간의 보수당 집권을 끝내고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내면서, 젊고 새롭고 활기찬 기운이 영국 사회의 긍정적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표현이 이 시기를 표현하는 데 더욱 많이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39][40]
1990년대 초반 이후, 영국은 음악, 패션, 출판, 광고,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축, 미술, 컴퓨터 게임,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스타를 배출하며 미국 문화에 대항해 영국의 독자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에는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오랫동안 침체되었던 영화 업계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1994년 41세의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면서 "제3의 길", "뉴 레이버(New Labour)"를 표방하며 전후 노동당의 좌파 노선과 결별했다. 그는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중도 보수 노선으로 전환하고, 당 강령에서 산업의 국유화 조항을 삭제하여 신자유주의/시장 경제 노선으로 전환했다.
블레어의 전임인 보수당 메이저 정권 시대에는 대처 정권 시대의 신자유주의에 따른 약자 배제 노선에서 정책을 수정주의로 변경했다. 경제는 점차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금융뿐만 아니라 제조업도 해외 기업의 진출 등으로 부활하여 1995년경부터 오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호황을 누렸다.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 소속 44세의 토니 블레어가 총리로 선출되자,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 등 각계 젊은 아티스트들이 축하 인사를 하러 와 화제가 되었다. "쿨 브리타니아"라는 구절은 블레어의 초창기 신선한 이미지와 함께 세상에 퍼졌다.
4. 특징
''타임''은 "쿨 브리타니아"를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청년 문화의 축하로 묘사했다.[7] 쿨 브리타니아는 런던의 유행 하우스 신을 지칭했으며, Ministry of Sound와 지하 클럽 Megatripolis at Heaven이 대표적이었다.[8] 1990년대에는 블러, 오아시스, 패션 디자이너, 영국 젊은 예술가들, 잡지 등이 쿨 브리타니아를 대표했다.
유로 1996 축구 토너먼트는 잉글랜드에서 개최되었으며, 잉글랜드에서 애국심의 부활을 장려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존 메이저는 "우리의 패션, 음악, 문화는 유럽 이웃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부한 재능은 우리의 풍부한 유산과 함께 '쿨 브리타니아'를 전 세계 방문객들에게 명백한 선택으로 만듭니다"라고 언급했다.[12] 이 시기에는 알코팝과 라드 잡지도 유행했다.[13]
1997년 3월, ''베니티 페어''는 쿨 브리타니아에 관한 특별판을 발행했으며 표지에는 리암 갤러거와 패시 켄싯이 등장했고, 제목은 '런던, 다시 흔들리다!'였다.[15]
그러나 이 시기에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구절에 질려하고 있다"고 언급했으며,[16] 앨런 맥기는 뉴 레이버의 정책에 분노를 표하며 "어떤 면에서 노동당이 하고 있는 일은 음악가들에게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토니 블레어와 크리스 스미스가 쿨 브리타니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다음 세대의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수단을 없애고 있다"라고 말했다.[17] 2000년까지 (브릿팝이 실질적인 장르로 쇠퇴한 후) 쿨 브리타니아는 주로 조롱하거나 반어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2003년 조지 마이클은 "쿨 브리타니아는 내게 헛소리일 뿐"이라고 말했다.[18]
2004년 이후 ''Later... with Jools Holland: Cool Britannia'' 1 & 2 DVD가 출시되었다.[19] 유사한 용어는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에서 각각 "쿨 킴루"와 "쿨 캘러도니아"로 사용되었다.[20][21]
4. 1. 브릿팝의 부흥
1990년대 중반,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 등의 밴드들이 이끄는 브릿팝 운동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독특한 영국 록과 팝 음악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15] 브릿팝 장르는 아니지만, 팝 걸 그룹인 스파이스 걸스 또한 이 흐름에 동참했으며, ''타임''은 이들을 쿨 브리타니아의 "가장 눈에 띄는 얼굴"이라고 칭했다.[7]노엘 갤러거의 유니언 잭 기타와 게리 할리웰이 1997년 브릿 어워드에서 입었던 유니언 잭 드레스는 영국 자부심의 부활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여겨졌다.[9][10][11] 유로 1996 축구 대회가 잉글랜드에서 개최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12]
이러한 브릿팝의 부흥과 함께, 대니 보일 감독의 1996년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브릿팝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14]
4. 2. 패션, 디자인, 예술
영국 젊은 예술가들(YBA)과 알렉산더 맥퀸 등 패션 디자이너들은 1990년대 쿨 브리타니아의 시각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7] 1997년 3월, ''베니티 페어''는 쿨 브리타니아에 관한 특별판을 발행했는데, 이 잡지에는 알렉산더 맥퀸, 데미안 허스트 등이 등장했다.[15]노엘 갤러거의 유니언 잭 기타와 게리 할리웰이 1997년 브릿 어워드에서 입었던 유니언 잭 드레스는 영국 자부심의 부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9][10][11]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게리 할리웰은 2008년에도 유니언 잭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기도 했다.
4. 3. 영화 산업의 부활
1994년 휴 그랜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개봉하면서 영국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14]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을 맡은 이 영화는 ''슬라이딩 도어스''(1998)와 ''노팅힐''(1999) 등 영국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흥행 패턴을 제시했으며, ''노팅힐'' 역시 휴 그랜트가 출연했다.[14] 엘리자베스 헐리와 함께 출연한(그녀는 그랜트와 연인 관계였다) 첫 번째 오스틴 파워 영화 ''오스틴 파워: 제 1호 작전''은 스윙잉 런던 시대를 쿨 브리타니아의 시각으로 담아내며 1990년대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14] 대니 보일 감독의 1996년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브릿팝이 주를 이루는 사운드트랙으로 주목받았다.[14]5. 토니 블레어 정부의 역할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이전 존 메이저 총리와는 다른 분위기가 나타났다.[4][5] 블레어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대학교 시절 어글리 루머스라는 록 밴드에서 활동했던 점을 강조했으며, 유명 음악가들을 10 다우닝가로 초대하여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6]
1994년 41세의 나이로 노동당 당수가 된 블레어는 "제3의 길", "뉴 레이버(New Labour)"를 표방하며 전후 노동당의 좌파 노선과 결별했다. 그는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중도 보수 노선으로 전환하고, 당 강령에서 산업의 국유화 조항을 삭제하여 신자유주의/시장 경제 노선으로 전환했다. BBC 편집자 N. 딕슨은 블레어의 이념을 신자유주의로 비판했다.[24] 블레어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조지 W. 부시와 함께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영국 유권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블레어 총리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와 '등록 상표 브리튼'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국가 브랜드 전략을 추진했다. 그는 "쿨 브리타니아"를 국가 브랜드 이미지로 설정하고, "젊은 욕망과 활기가 넘치는, 다양한 문화와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지향했다. 또한,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와 미디어를 "크리에이티브 산업"으로 규정하고, 고용 창출, 외화 획득, 관광 유치, "쿨 브리타니아" 브랜드 형성에 중요한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했다.
5. 1. 국가 브랜드 전략
1990년대 초반부터 영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악, 미술, 패션 등 다양한 문화가 나타났다. 음악에서는 브릿팝, 테크노, 레이브 등이, 미술계에서는 영국 젊은 예술가들(YBA)이, 패션 업계에서는 존 갈리아노, 오즈왈드 보텡, 알렉산더 맥퀸 등 젊은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유행을 이끌었다. 이러한 흐름은 음악 잡지, 문화 잡지, 패션 잡지 등을 통해 보도되었다.[26]1980년대 대처 정부 하의 불경기 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이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 미디어 등으로부터 계약 및 투자를 받아 상업적으로 더 큰 발표 기회를 얻게 되었다.[26]
영국은 1990년대 초반 이후 문화 분야에서 스타를 배출하며 미국 문화에 대항해 영국의 독자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음악, 패션, 출판, 광고,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축, 미술, 컴퓨터 게임, 스포츠, 그리고 1996년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오랫동안 침체되었던 영화 업계에서도 젊은 세대가 부상하면서 영국 발 표현이 세계 일부에 알려지게 되었다.[26]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정계에서는 1994년 41세의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그는 "제3의 길", "뉴 레이버(New Labour)"를 표방하며 전후 노동당의 좌파 노선과 결별했다. 또한 블레어는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중도 보수 노선으로 전환하고, 당 강령에서 산업의 국유화 조항을 삭제하여 신자유주의/시장 경제 노선으로 전환했다. BBC 편집자 N. 딕슨은 블레어의 이념을 신자유주의로 비판했다.[24] 블레어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조지 W. 부시와 함께 이라크 전쟁에 돌입하여 영국 유권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게 된다.[24]
블레어의 전임인 보수당 메이저 정권 시대에는 대처 정권 시대의 신자유주의에 따른 약자 배제 노선에서 정책을 수정주의로 변경했다. 경제는 점차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금융뿐만 아니라 제조업도 해외 기업의 진출 등으로 부활하여 1995년경부터 오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호황을 누렸다.[26]
그 무렵, 소속원의 대부분이 20~30대인 중도 좌파 싱크탱크 "데모스(DEMOS)"(Demos, 사회적 기업가 등의 개념을 제창한 것으로도 유명한 조직)에서는, 20대 초반의 젊은 연구원 마크 레너드(Mark Leonard)가 이 호황을 미래로 연결하기 위해, 활황을 띠고 있던 음악, 패션, 문화, 출판, 방송 등의 소재를 바탕으로, 소프트 산업의 창업을 촉진하여 더욱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영국의 빈곤한 브랜드 이미지를 바꿔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제안을 했다.[25]
레너드는 해외에서 본 늙은 강대국, 노후화, 쇠퇴, 실업, 흐린 날씨, 지루함과 같은 영국의 편견에 가득 찬 이미지가 해외로부터의 경제 투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젊은 재능에 의한 문화의 활황, 서비스업의 발전, 다양한 민족의 공존과 같은 현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대한 앙케이트로 뒷받침했다. 영국의 트레이드마크(등록 상표)였던 "여러 외국으로부터의 두뇌 유입"과 "문화, 정치, 경제의 새로운 컨셉 창출"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소프트 산업을 더욱 활발하게 하여 신선한 문화를 전 세계에 발신하고, 세계의 영국에 대한 이미지, 즉 브랜드를 일신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1997년에 『등록 상표 브리튼(Britain [TM]: renewing our identity)』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판했다.[26] 이것은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윽고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된다.[26]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 소속 44세의 토니 블레어가 선거에 임했고, 그가 총리로 선출되자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 등 각계 젊은 아티스트들이 축하 인사를 하러 와 화제가 되었다. "쿨 브리타니아"라는 구절은 블레어의 초창기 신선한 이미지와 함께 세상에 퍼졌다 (이는 1960년대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 내각 (1964년 - 1970년) 초기에 런던의 젊은 문화 폭발을 표현한 캐치프레이즈 "스윙잉 런던"이 퍼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26]
블레어 총리는 즉시 "쿨 브리타니아"라는 용어와 '등록 상표 브리튼'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국가의 주요 산업을 지원하는 국가 브랜드 전략을 시작했다.[26]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향후 영국은 "쿨 브리타니아"를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로 삼는다.
- 그 내용은 "젊은 욕망과 활기가 넘치는, 다양한 문화와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회"이다.
-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와 그것을 널리 알리는 미디어 등을 "'''크리에이티브 산업'''"으로 규정하고, 향후 고용 창출, 외화 획득, 관광 유치, "쿨 브리타니아" 브랜드 형성에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육성한다.
- 크리에이티브 산업을 통해 영국에서 선진적인 '하이컬처'(상류·중류층을 위한 문화)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팝컬처", 세계의 미래를 규정할 만한 획기적인 연구를 발신하여 세계에 "쿨 브리타니아"의 이미지를 널리 알린다.
- 브랜드 형성을 통해 많은 국가로부터의 경제 투자 유치, 관광객 유치, 문화 관계자 이주를 촉진하고, 문화 산업, 예술 산업의 더욱 강화와 관광업, 서비스업, 공업 등 각종 산업의 고용 창출, 영국을 더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에너지 넘치는 사회로 만들 것을 목표로 하여, 호경기의 지속, 실업률 감소, 고령화 방지 등을 실현한다.
블레어 총리는 "크리에이티브 산업 특별 위원회"(Creative Industries Task Force)를 구성하고, 앞서 언급한 DEMOS의 마크 레너드, 폴 스미스, 리처드 브랜슨 등 문화 산업의 주체, 미디어 관계자, 학자들을 모아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진흥을 협의하고 다양한 시책을 실행에 옮겼다. 동시에 "홍보 특별 위원회"(Britain Abroad Task Force)를 조직하여 영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국가 홍보 전략'''을 실시했다. 정부 부처도 재편되어, 국가 유산성이 문화·미디어·스포츠부 (문화성)로 개칭되어, 문화 유산의 관리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진흥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26]
블레어 정권의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 정책과 국가 홍보 전략의 내용은 주로[26]
- 예술 문화, 팝컬처, 스포츠계에 대한 막대한 인적·자금적·제도적 지원
-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해외 진출·수출을 위한 관민 일체가 된 후원
- 홍보 특별 위원회에 의한 핵심 메시지 순위 결정, 홍보 대상 선정, 홍보할 자산 선정 등의 "국가 홍보 전략" 확립
- 그 홍보 수단인 문서, 웹사이트 등의 쇄신, 국가 및 지방과 관련된 사업에 뛰어난 디자이너, 건축가 등을 대규모로 기용
등이었다.
예를 들어, 밀레니엄을 위한 대도시의 재개발에 참신한 건축가를 기용하여, 런던 아이와 테이트 모던 등 대규모 문화·관광 시설이 탄생했다 (대부분은 블레어 시대 이전부터의 계획이었지만, 블레어 정권에 의해 크게 선전되었다). 또한 복권 등으로 자금을 지원하여 문화·예술을 대규모로 지원했다 (이 또한 블레어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영국 문화원, 브리티시 에어웨이스 등 해외에 열린 기관 및 영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로고와 디자인을 선진적인 것으로 일신하고, 정부의 문서 및 웹사이트·시설 등도 디자이너의 손으로 철저하게 개편한 것도 그 한 예이다.[26]
5. 2. 크리에이티브 산업 육성
토니 블레어 총리는 '크리에이티브 산업 특별 위원회'(Creative Industries Task Force)를 구성하고, 데모스의 마크 레너드, 폴 스미스, 리처드 브랜슨 등 문화 산업 주체, 미디어 관계자, 학자들을 모아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을 협의하고 다양한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26] 또한 '홍보 특별 위원회'(Britain Abroad Task Force)를 조직하여 영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국가 홍보 전략'''을 실시했다. 정부 부처도 재편되어, 국가 유산성이 문화·미디어·스포츠부 (문화성)로 개칭되어 문화 유산 관리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 등도 담당하게 되었다.블레어 정권의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 정책과 국가 홍보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 예술 문화, 팝컬처, 스포츠계에 대한 막대한 인적·자금적·제도적 지원
-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해외 진출·수출을 위한 관민 일체 후원
- 홍보 특별 위원회에 의한 핵심 메시지 순위 결정, 홍보 대상 선정, 홍보 자산 선정 등의 "국가 홍보 전략" 확립
- 홍보 수단인 문서, 웹사이트 등의 쇄신, 국가 및 지방 관련 사업에 뛰어난 디자이너, 건축가 등을 대규모 기용
예를 들어, 밀레니엄을 위한 대도시 재개발에 참신한 건축가를 기용하여 런던 아이와 테이트 모던 등 대규모 문화·관광 시설이 탄생했다(대부분은 블레어 시대 이전부터 계획되었지만, 블레어 정권에 의해 크게 선전되었다). 또한 복권 등으로 자금을 지원하여 문화·예술을 대규모로 지원했으며(이 또한 블레어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영국 문화원, 브리티시 에어웨이스 등 해외에 열린 기관 및 영국 대표 기업의 로고와 디자인을 선진적인 것으로 일신하고, 정부 문서 및 웹사이트·시설 등도 디자이너의 손으로 철저하게 개편했다.
6. 비판과 한계
"쿨 브리타니아"는 본래 목적과 달리 런던의 유행하는 팝 문화 현상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였다. 블러, 오아시스 등 여러 뮤지션과 패션 분야가 그 대상이었다. 1998년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1]
브릿팝이 점차 쇠퇴하고,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도 일단락되면서 "쿨 브리타니아"는 유행어로서의 의미를 잃었다. 블레어 정권의 인기가 하락하고, 고든 브라운은 "쿨 브리타니아"보다 전통적인 영국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술계와 팝 문화계에서는 쿨 브리타니아 정책이 영국 문화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는지,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자금이 제대로 투입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1]
쿨 브리타니아 정책으로 주목받은 관광·문화 시설은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새로운 영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영국은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6. 1. 과도한 상업화
"쿨 브리타니아"라는 말은 본래 목적과는 달리, 런던의 유행하는 팝 컬처 현상을 표현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블러, 오아시스, 스웨이드, 슈퍼그래스, 더 버브, 스파이스 걸스 등의 뮤지션, 패션 디자이너, 유행하는 잡지, 일본풍 레스토랑 요! 스시 등이 그 대상이었다. 미국의 아이스크림 회사인 'Ben & Jerry's'는 영국 내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상품명을 "쿨 브리타니아"라고 짓기도 했다.[1] 1998년,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라고 기술했고, 2000년까지 쿨 브리타니아는 "비꼬는 의미나 조롱하는 의미로밖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1]웨일스나 스코틀랜드에도 비슷한 현상을 적용하려 하여 "쿨 캄브리아"나 "쿨 칼레도니아"라는 용어가 각각 생겨났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부족하여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1]
6. 2. 엘리트주의
'쿨 브리타니아'는 일부 엘리트 예술가들에게만 혜택을 집중시키고 대중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은 블러, 오아시스, 스웨이드, 슈퍼그래스, 더 버브, 스파이스 걸스 등의 뮤지션, 패션 디자이너, 패셔너블한 잡지, 일본풍 레스토랑 요! 스시 등에 집중되었다. 심지어 미국의 아이스크림 회사 'Ben & Jerry's'는 영국 내 판매 상품명을 "쿨 브리타니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1] 이코노미스트지는 1998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쿨 브리타니아'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고, 2000년까지는 비꼬거나 조롱하는 의미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1]6. 3. 단기적 성과
1998년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라고 기술했고, 2000년까지 쿨 브리타니아는 "비꼬는 의미나 조롱하는 의미로밖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1] 브릿팝은 점차 수렴하고, 영국의 젊은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의 활동도 일단락되면서, 유행어로서의 "쿨 브리타니아"는 완전히 사어가 되었다.[1] 또한 블레어 정권도 초기의 빛을 잃고 인기가 하락했으며, 대립하는 노동당의 유력자 고든 브라운은 최근 "쿨 브리타니아" 브랜드에 대해 부정적이며 "전통적인 영국적인 것"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1] 예술계나 팝 문화계에서도 쿨 브리타니아 정책의 창조 산업 진흥책이 영국 문화를 질적으로 향상시켰는지, 지원해야 할 분야에 정말로 자금이 투입되었는지에 대한 자문이 있었다.[1]7. 한국에 미친 영향
쿨 브리타니아는 일본의 문화 정책과 국가 브랜드 전략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쿨 재팬'이라는 표어가 생겨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34]
7. 1. 쿨 재팬 정책에의 영향
거품 붕괴 이후 경제·기술 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던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유행을 이룬 비디오 게임을 필두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오타쿠 문화 등 팝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형태로 해외 관광객 유치와 문화에 기반한 신산업 창출을 통해 실업 극복과 산업 전환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34] 여기에 쿨 브리타니아 정책의 어느 정도 성공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일본에서도 "쿨 재팬(재팬 쿨)"이라는 표어가 생겨났다.200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매그레이는 외교 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일본의 총체적 국가 쿨 (Japan's Gross National Cool)'을 게재하여 일본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35] 그에 따르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캐릭터 상품 등 팝 문화는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일본 팝 문화의 이론화와 세계로의 영어 발신 등의 부족, 그리고 국가 브랜드 전략의 부재로 인해 팝 문화의 확산에 장애가 있으며, 또한 일본 자체의 브랜드 이미지는 빈약한 상태라고 언급하고 있다.
7. 2. 문화 교류 활성화
쿨 브리타니아 현상은 일본이 국가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쿨 브리타니아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는 "쿨 재팬(재팬 쿨)"이라는 표어가 생겨났다.[34]200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매그레이는 외교 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일본의 총체적 국가 쿨 (Japan's Gross National Cool)'을 게재하여 일본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35] 그는 일본의 팝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이론화와 영어 발신 등의 부족, 국가 브랜드 전략 부재로 인해 확산에 장애가 있으며, 일본 자체의 브랜드 이미지는 빈약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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