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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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잘리는 1058년 이란 호라산 지방 투스에서 태어난 이슬람 신학자, 법학자, 철학자, 신비주의자이다. 셀주크 왕조의 재상 니잠 알물크의 지원을 받아 바그다드 니자미야 학원의 교수로 활동하며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의 철학을 연구했지만, 종교적 번뇌로 인해 교수직을 사임하고 메카 순례를 떠났다. 이후 수피즘에 귀의하여 이슬람 율법 준수와 신비주의 체험의 조화를 추구했으며, 1111년 사망했다. 가잘리는 이슬람 법학, 신학, 철학, 수피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철학자들의 모순』, 『종교 과학의 부흥』 등의 저서를 통해 이슬람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서구 철학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에도 이슬람 사상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알가잘리의 저술은 이슬람 법학, 신학, 철학, 변증론, 수피즘(신비주의)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른다.[117] 그는 이슬람 종교사상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종교 제학의 소생》, 《미혹으로부터의 해방》 등 다수의 중요한 저서를 남겼다.
2. 생애
알가잘리( الغزالي|알가잘리ar )는 1058년경 셀주크 제국 치하의 호라산 투스( توس|투스fa )에서 태어난 페르시아계 무슬림 학자이다.[41][42][43] 그는 이슬람 법학(피크흐), 칼람(이슬람 신학), 이슬람 철학, 수피즘(타사우프) 등 다방면에 걸쳐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으며, 특히 수피즘을 체계화하고 이를 수니파 이슬람의 주류 사상으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51][52] 그는 샤피이 학파의 법학자이자 아샤리 학파의 신학자로 분류된다.[53]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초기 교육을 받은 후[41], 니샤푸르의 니자미야 학원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 알주와이니 밑에서 수학하며 두각을 나타냈다.[1][123] 스승 사후에는 셀주크 제국의 명재상 니잠 알물크의 후원을 받아[41] 1091년 바그다드 니자미야 학원의 교수로 임명되어 명성을 떨쳤다.[41][117] 이 시기 그는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 등의 철학을 깊이 연구했으나, 그리스 철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비판하며 《철학자들의 모순》을 저술했다.[198]
그러나 1095년, 깊은 종교적 번뇌와 영적 위기를 겪으며 교수직을 포함한 세속적인 명예와 지위를 모두 버리고 수피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다.[198][47][48][49] 그는 메카 순례를 포함하여 약 11년간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등지를 순례하며 금욕적인 수행 생활을 했다.[50][130] 이 기간 동안의 경험은 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저술 활동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1099년경 고향 투스로 돌아와 은둔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에 몰두했다.[132] 1106년, 셀주크 제국의 재상 파크르 알물크의 간청으로 잠시 니샤푸르의 니자미야 학원에 복귀하기도 했으나[41], 111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135] 그는 1111년 12월 19일(혹은 18일) 투스에서 사망했다.[41][135]
알가잘리는 이슬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후즈잣 알-이슬람'( حجة الإسلام|후즈잣 알이슬람ar, 이슬람의 증거)이라는 존칭으로 불린다.[32][29][30][31] 그의 사상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알가잘리는 1058년경 이란 호라산 지방 투스(페르시아어: توس|투스fa) 근교 타바란 마을에서 태어났다.[41][120] 당시 투스는 셀주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41], 이는 셀주크 왕조가 바그다드에 진입하여 시아파 부이 왕조를 몰아내고 칼리파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직후였다.[41] 그는 페르시아계 무슬림 학자이자 법률 전문가, 합리주의자, 영성주의자로 평가받는다.[42][43]
사후 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양모를 파는 상인이었으나 가난 속에서 사망하여 어린 알가잘리와 그의 형제 아마드 가잘리(페르시아어: احمد غزالی|아마드 가잘리fa)를 수피(페르시아어: صوفي|수피fa) 친구에게 맡겼다고 한다.[41][120] 그러나 이 전승의 진위는 의문시되며[41], 동시대 전기 작가 압드 알가피르 알파르시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 덕분에 가잘리가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41][121] 가잘리에게는 여러 명의 누이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121]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마드라사(페르시아어: مدرسه|마드라사fa, 신학교)에 입학한 가잘리는[121] 처음에는 투스에서 지역 교사인 아마드 알라드카카니와 투스 출신의 나크시반디 수피 아부 알리 파르마디로부터 피크흐(이슬람 법학) 교육을 받았다.[41] 이후 카스피해 연안의 주르잔(페르시아어: جرجان|주르잔fa)으로 이주하여 아부 나술 이스마일리(페르시아어: ابو نصر اسماعیلی|아부 나술 이스마일리fa)에게 사사했다.[121] 주르잔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도적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적은 노트를 빼앗겼는데,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도적 두목이 "노트를 빼앗겼다고 지식이 사라진다면 어찌 학문을 안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122] 이 일을 계기로 투스로 돌아온 가잘리는 3년간 노트에 적힌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 힘썼으며, 유수프 나사주(페르시아어: یوسف ناصح|유수프 나사주fa) 밑에서 수피 수행을 하기도 했다.[122]
1077년, 가잘리는 니샤푸르(페르시아어: نیشاپور|니샤푸르fa)로 이주하여 니자미야 학원(페르시아어: مدرسه نظامیه|마드라사 니자미야fa)에 들어갔다.[123]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로 명성이 높았던[41] 알주와이니(페르시아어: امام الحرمین جوینی|이맘 알 하라마인 주아이니fa)[1] 밑에서 샤피이 학파(페르시아어: شافعی|샤피이fa)의 법학과 아슈아리 학파(페르시아어: اشعری|아슈아리fa)의 신학을 깊이 공부했다.[123] 그는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스승 주와이니를 대신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과도한 연구로 건강을 해치기도 했다.[123] 니샤푸르 시절, 초기 스승이었던 수피 파르마디(페르시아어: فرهمدی|파르마디fa)에게 계속 지도를 받았지만, 1084년 파르마디가 사망하자 일시적으로 수피즘에서 멀어졌다.[124]
1085년 스승 알주와이니가 사망한 후, 가잘리는 니샤푸르를 떠나 학예의 후원자이자 셀주크 제국의 강력한 재상이었던 니잠 알물크(페르시아어: نظام الملک|니자무르 멀크fa)의 보호를 받아 이스파한(페르시아어: اصفهان|이스파한fa)에 있는 그의 궁정으로 갔다.[41][125]
2. 2. 학자로서의 경력
호라산의 투스( توسfa ) 출신으로, 셀주크 조의 명재상 니잠 알물크의 도움을 받아 바그다드의 니자미야 학원 교수로 임명되었다. 재임 4년 동안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의 철학서를 깊이 연구했으나, 그들의 사상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했다.
이를 바탕으로 《철학자의 모순(矛盾)》( تهافت الفلاسفة|Tahāfut al-Falāsifaar )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일부 철학자들이 그리스 철학을 이슬람에 과도하게 접목하여 무슬림이면서도 쿠란과 모순되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고 비판했다.[198] 이 저서는 이슬람 인식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가잘리는 회의주의를 통해 모든 인과 관계가 물질적 결합이 아닌 신의 직접적인 의지의 결과라는 신학적 우연론(occasionalism)을 탐구하게 되었다. 그는 면이 불에 닿으면 타는 현상조차 자연 법칙이 아니라 매번 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의 산물이라고 보았다.[59]
그러나 종교적인 고민과 다른 이유들로 인해 1095년 명예로운 교수직을 버리고 수피행자가 되어 메카 등 여러 지역을 순례하였다. 이후 고향 투스로 돌아와 잠시 니샤푸르의 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다시 고향으로 은퇴하여 생을 마감했다.
가잘리의 사상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븐 루슈드(아베로에스)는 《모순의 모순》( تهافت التهافت|Tahāfut al-Tahāfutar )을 저술하여 가잘리의 주장을 반박했지만[59], 가잘리의 비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을 계승한 팔라시파(Falāsifa, 아비케나(Avicenna), 알파라비(al-Farabi) 등)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이슬람 철학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 가잘리의 저서가 이슬람 과학 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가잘리가 철학자(과학자 포함)들을 공격하고 신학적 우연론을 주장함으로써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켜 과학의 쇠퇴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64] 반면, 과학의 쇠퇴가 과장되었거나[63], 그 책임이 가잘리가 아닌 니잠 알물크에게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65]
2. 3. 영적 위기와 순례
바그다드의 니자미야 학원 교수로 4년간 재직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알 파라비와 이븐 시나의 철학을 깊이 연구한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철학자의 모순》을 저술하여 그리스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일부 이슬람 철학자들을 비판했다.[198]
결국 1095년, 그는 종교적인 번뇌와 다른 여러 이유로 인해 니자미야 학원의 교수라는 명예로운 직위를 버리고 수피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메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순례하는 여정을 시작했으며, 이 시기의 경험은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훗날 저술한 자서전 『오류로부터의 구원』(المنقذ من الضلال|알문끼드 민 알달랄ar)에서 이러한 영적 위기와 수피즘을 통한 극복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70][71] 그는 이 책에서 칼람(신학), 이슬람 철학, 이스마일파 등을 깊이 연구했지만, 궁극적인 해답은 수피즘적 실천과 신비적 경험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2. 4. 은둔과 복귀
1095년, 가잘리는 종교적인 깊은 고민과 여러 다른 이유들로 인해 바그다드 니자미야 학원의 교수라는 명예로운 직위를 버렸다.[198] 이후 그는 수피 수행자가 되어 메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순례하며 여행했다.[198]
1099년, 그는 고향인 호라산의 투스(توس|투스fa)로 돌아와 수피 도장을 설립하고 젊은이들과 함께 수피적인 삶을 영위했다.
그러던 중 1106년, 과거 자신을 후원했던 셀주크 조의 재상 니잠 알물크의 아들인 파크르 알물크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니샤푸르에 있는 니자미야 학원의 강단에 잠시 복귀하게 되었다.[198] 이 시기에 그는 『법원학의 정수』(المستصفى من علم الأصول|알무스타스파 민 일름 알우술ar)와 자신의 지적 여정을 담은 자서전 『잘못된 믿음으로부터의 구원』(المنقذ من الضلال|알문끼드 민 알달랄ar) 등 중요한 저술들을 남겼다.
그러나 학문 활동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110년, 그는 다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최종적으로 고향 투스로 은퇴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111년 12월 18일, 투스에서 세상을 떠났다.[198]
3. 사상
그의 핵심적인 공헌 중 하나는 당시 분리되어 있던 정통파 신학 및 법학과 수피즘을 조화시키려 노력한 점이다. 그는 수피즘의 내적 체험과 직관을 정통 신학 체계 안에 통합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형식화되어가던 종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신학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또한 그는 이슬람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플라톤파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비판하며 정통 이슬람 신앙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가잘리 개인의 지적 여정은 법학과 신학에서의 성공 이후, 형식 논리를 넘어선 내면 세계 탐구로 이어졌다. 그는 여러 학파를 섭렵한 후 깊은 내적 고뇌 끝에 수피즘의 종교적 체험에서 궁극적인 확신을 얻었으며, 이러한 과정은 그의 자서전 『오류에서 구원하는 것』(المنقذ من الضلال|알문끼드 민 알달랄ar)에 잘 나타나 있다.[169]
가잘리의 사상은 이슬람 사상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슬람 학문이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꾸란》과 하디스에 기반한 살아있는 신앙으로 회복되도록 기여했으며, 신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강조했다. 특히 수피즘이 이슬람교 내에서 정통 신앙의 일부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후대 수피 교단(타리카) 형성의 토대를 마련했다.[186] 또한 철학의 논리학 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신학 논증에 활용함으로써 철학적 사유를 일반 이슬람교도들에게 더 가깝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작 『이슬람교의 부흥』에서는 무슬림의 내적 갈등과 절제,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69] 다른 저술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신을 믿는 한 다양한 이슬람 실천 방식이 가능함을 인정하며 종파 간 관용을 주장하기도 했다.[41]
3. 1. 법학
가잘리는 이맘 알하람인 주와이니로부터 샤피이 학파의 법학을 배우고 이를 발전시켰다.[136] 그는 여러 법학 서적을 저술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말년에 집필한 『법원학의 정수』(المستصفى من علم الأصول|알무스타스파 민 일름 알우술ar)가 있다. 다만, 일부 저작은 소실되었다.[136]
가잘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이슬람 법학의 권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었으나, 그는 이러한 권위주의에 빠진 신앙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137] 그는 종교적 실천이 형식적인 숭배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고, 신앙의 본질을 개인의 내면적인 경험으로 되돌리고자 노력했다.[137] 특히, 가잘리는 권력과 결탁하여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타락한 울라마(율법학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138] 그는 하룬 알-라시드 시대의 재상이었던 아부 유수프를 예로 들며, 울라마 본연의 역할인 내세를 위한 봉사를 망각하고 현세의 이익만을 좇는 행태를 지적했다.[138]
또한 가잘리는 엄격한 이슬람법 준수와 신비주의적인 수피즘의 실천이 서로 배치되지 않고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38] 그는 그때까지 분리되어 있던 신학, 법학, 수피즘을 종합하여, 수피즘의 내적 체험과 직관을 바탕으로 정통 신학 및 법학 체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이는 당시 형식만 남고 경직되어 있던 종교 체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공인된 신학과 일반 대중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3. 2. 신학
가잘리는 이슬람 종교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그때까지 분리되어 있던 신학, 법학, 수피즘을 종합하였으며, 특히 수피즘의 인격적·신비주의적 체험과 직관지를 바탕으로 정통 신학을 재구성했다. 이는 당시 공인된 아슈아리파 신학과 이슬람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였으며, 기존에 수피즘과 대립하던 신학자 및 법학자들이 수피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여 다소 형식화되어 있던 종교 체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그가 죽은 뒤 수피 교단들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 『이슬람교의 부흥』(Ihya' Ulum al-Din)은 신학, 법학, 윤리학, 신비주의를 아우르는 방대한 저작으로, 특히 ‘영혼 단련’(Disciplining the Soul) 부분에서는 무슬림이 평생 직면하는 내적 갈등과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69] 가잘리는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인정하면서도, 이슬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는 중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69] 그의 신학 사상 전반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인간 영혼의 모든 측면에서 절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었다.[69]
또한 가잘리는 이븐 시나를 통해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비판하며 정통 이슬람 신앙을 수호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저서 『이슬람과 은밀한 불신앙을 구별하는 결정적 기준』(Faysal al-tafriqa bayna al-Islam wa-l-zandaqa)에서 그는 이슬람 정통 신앙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가잘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신을 믿는 한, 다양한 이슬람 실천 방식이 존재할 수 있으며,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어떤 전통도 다른 무슬림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41] 이는 당시 여러 이슬람 종파 간에 빈번했던 종교적 박해와 갈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보여준다.[41] 물론 그는 더 정확한 이슬람의 기준이 존재하며, 잘못된 신앙을 가진 이들은 변화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41]
가잘리는 당시 세력을 확장하던 이스마일파에 대항하는 호교론적 저술을 다수 남겼다.[117] 아바스 칼리파 알-무스타즈히르(Al-Mustazhir)의 요청으로 저술한 『무스타즈히르의 책』(Kitab al-Mustazhiri)은 이스마일파의 교리를 비판하기 위한 대표적인 저서이다. 그는 이스마일파의 특징인 이맘에 대한 맹목적이고 개인적인 숭배와 복종을 비판했다.[164] 대신 울라마(율법학자)의 자율적 판단과 이즈마(공동체 합의)를 중시하는 수니파의 입장을 옹호했다.[164] 가잘리는 인간이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을 위해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이스마일파의 무오류 이맘 사상에 반박했다.[165] 그는 진리를 전수하는 유일한 무오류의 존재는 무함마드이며, 그의 사후에는 무오류의 전수자가 필요 없다고 보았다. 또한 이스마일파가 누구를 이맘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명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166] 가잘리의 이스마일파 비판은 주로 지도자인 이맘의 무오류성과 절대성에 집중되었으며, 시지스타니(Sijistani), 키르마니(Kirmani)와 같은 이스마일파 사상가들의 철학 저술보다는 선교용 소책자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접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68]
한편, 수니파 세계의 정치적 지도자인 칼리파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칼리프에게 반드시 높은 정치적·종교적 자질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았으며,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칼리프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실력자가 통치하는 당시의 상황을 인정했다.[167]
3. 3. 철학 비판
가잘리는 이븐 시나를 비롯한 이슬람 철학의 거장들이 발전시킨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신플라톤파 철학을 깊이 이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다.[150] 당시 이슬람 철학은 이슬람 교리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울라마(ulamā)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그 비판은 감정적이거나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여 철학자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150] 가잘리는 철학을 직접 연구한 뒤, 니자미야 학원 강의와 저술을 통해 철학 이론들이 가진 모순점을 논리적으로 파헤쳤다.[151]
1094년에는 철학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철학자들의 의도』(Maqāṣid al-falāsifa|마카시드 알팔라시파ar)를 저술했고, 이듬해인 1095년에는 본격적인 철학 비판서인 『철학자들의 자기모순』(Tahāfut al-Falāsifa|타하푸트 알팔라시파ar)을 발표하여 이슬람 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152] 이 책은 주로 이븐 시나와 알 파라비(al-Farabi) 등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팔라시파(Falāsifa) 철학자들을 겨냥했다. 가잘리는 철학이 신의 계시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전지전능한 신과 꾸란의 세계관을 철학의 논리학을 이용하여 증명하고자 했다.[154] 그는 특히 세계의 영원성, 신이 개별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주장, 육체의 부활 부정 등 팔라시파의 형이상학적 주장들이 이슬람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가잘리는 철학을 수학(산술, 기하학, 천문학 포함), 논리학, 자연학, 형이상학, 정치학, 윤리학의 여섯 분야로 나누었다.[155] 그는 수학, 논리학, 자연학 자체는 종교와 양립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이러한 학문에서 사용하는 "이성"과 종교가 다루는 "진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155] 정치학은 꾸란과 하디스에 기반해야 하며,[156] 윤리학은 영혼의 본질과 개선을 다루므로 기본적으로 긍정했지만, 철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섞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157]
가잘리가 가장 문제 삼은 분야는 형이상학이었다. 그는 『철학자들의 자기모순』에서 20가지 항목을 들어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적 주장이 이슬람 교리와 충돌하며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158] 또한, 그는 모든 인과 관계가 실제로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신학적 우연론)에 의한 것이며, 자연법칙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신의 습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솜이 불에 닿아 타는 것은 불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신이 그 순간 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9][60][61][62]
그러나 가잘리는 철학 전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슬람 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논리학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논리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신학 논증과 철학 비판에 활용했다.[154] 그는 논리학을 아슈아리 학파의 신학에 도입하여 『중용의 신학』(Al-Iqtiṣād fī al-i'tiqād|알이크티사드 피 알이티카드ar)이라는 저술을 남겼다.[160] 이 책에서는 아슈아리 학파의 원자론과 철학의 논리를 바탕으로 신과 세계의 절대적인 분리를 강조했다.[160] 이러한 작업은 아슈아리 학파 신학이 철학의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12세기 아슈아리 학파 사상가 파흐르앗딘 랄지는 가잘리의 영향을 받아 철학에 더 가까운 존재론을 전개했다.[159][161]
가잘리의 철학 비판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반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철학에 대한 반감이 커져 철학 서적이 불태워지는 일까지 벌어졌다.[162] 동방 이슬람 세계에서는 한동안 가잘리의 비판에 맞서는 주장이 나오기 어려웠다. 하지만 12세기 마그레브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는 가잘리의 비판이 이븐 시나 철학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모순의 모순』(Tahāfut al-Tahāfut|타하푸트 알타하푸트ar)을 저술하여 가잘리를 반박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다시 옹호했다.[59][163]
가잘리의 철학 비판이 이후 이슬람 세계의 과학 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있다. 누 알딘(Nuh Aydin)과 같은 학자들은 가잘리의 비판, 특히 신학적 우연론이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켜 이슬람 과학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64] 반면 조지 살리바(George Saliba)는 11세기 이후에도 과학, 특히 천문학 분야에서 발전이 지속되었다며 과학 쇠퇴론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고,[63] 하산 하산(Hassan Hassan)은 과학적 사고 억압의 주된 책임은 가잘리가 아니라 니잠 알 물크에게 있다고 보기도 한다.[65]
한편, 가잘리 자신은 말년에 쓴 자서전 『오류로부터 구원받는 것』(Al-Munqidh min al-ḍalāl|알문끼드 민 알달랄ar)에서 신학이 전통 신앙을 변호하는 역할은 하지만, 지적인 논증만으로는 궁극적인 영적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이성과 논리를 넘어선 수피즘의 신비적 체험과 직관을 통해 진정한 앎과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수피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161]
3. 4. 수피즘 (신비주의)
알가잘리는 수피즘(신비주의)과 정통 이슬람 신학 및 법학을 조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51][52] 그는 샤피이 학파의 이슬람 법학과 아샤리 학파의 신학을 따랐으나,[53] 아샤리 학파와는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53][54][55] 그는 زين الدين|자인 알딘ar과 حجة الإسلام|후즈잣 알이슬람ar(이슬람의 증거)과 같은 존칭으로 불렸다.[32][29][30][31]
가잘리는 법학자이자 신학자로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학문의 형식 논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내면 세계를 탐구했다. 여러 종교학파, 특히 주지적인 철학파를 두루 섭렵한 후 깊은 내면적 고뇌를 거쳐 최종적으로 수피즘의 종교 체험에 도달했다. 그의 종교적 여정은 당시 지식인들의 정신적 동요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서전 『오류로부터의 구원(المنقذ من الضلال|알-문끼드 민 알 달랄ar)』에서 인식론적 회의의 위기를 겪었으며, 이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내 가슴에 비추신 빛…대부분의 지식의 열쇠"[71]를 통해 극복하고 수피즘적 실천에서 궁극적인 가치를 발견했다고 서술한다.[70][169] 이 책은 기독교 전통 외에는 드문 개인적 종교 고백과 자서전 문학으로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72] 다만, 일부 연구자들은 그의 1095년 방랑 시작 동기가 수피즘 귀의 외에 명예욕[172]이나 니자르파의 암살 위협 회피[172] 등 다른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잘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그때까지 분리되어 있던 신학, 법학, 수피즘을 종합하여, 수피즘의 인격적·신비주의적 체험과 직관지를 바탕으로 정통 신학을 재구성하려 한 점이다. 이는 공인된 아샤리 신학과 일반 무슬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형식화되어가던 종교 체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였다. 그는 이슬람 법학을 수피즘의 관점에서 재검토하여 여러 저술을 남겼다.
대표적인 저서인 『종교 제학의 소생(إحياء علوم الدين|이흐야 울룸 앗딘ar)』은 피크흐(이슬람 법학), 칼람(신학), 수피즘 등 이슬람 학문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 방대한 저작이다.[66] 이 책은 '예배 행위'(ربع العبادات|루브 알이바다트ar), '일상생활의 규범'(ربع العادات|루브 알아다트ar), '멸망으로 이끄는 것들'(ربع المهلكات|루브 알무흘리카트ar), '구원으로 이끄는 것들'(ربع المنجيات|루브 알문지야트ar)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 제학의 소생』은 꾸란과 하디스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이슬람 문헌 중 하나가 되었으며, 정통 수니파 신학과 수피 신비주의를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무슬림의 삶과 죽음의 모든 측면에 대한 포괄적인 안내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67] 안나와위와 같은 후대 학자들은 "만약 이슬람의 모든 책이 사라지고 『이흐야』만 남는다면, 그것으로 모든 책을 대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68] 이 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영혼 단련’ 부분에서는 모든 무슬림이 평생 겪는 내적 갈등, 특히 긍정적 품성 함양과 성욕 및 식탐 절제에 대해 다루며, 모든 면에서 중도와 균형을 강조한다.[69]
그의 또 다른 중요한 페르시아어 저술인 『행복의 연금술(کیمیای سعادت|키미야예 사아다트fa)』은 『종교 제학의 소생』을 페르시아어로 요약하고 개작한 것이다.[73] 이 외에도 『신명 주석에서의 고귀한 목적』, 『빛의 벽감』 등에서 일상생활과 내세 준비에 대해 논했다.[174]
가잘리는 수피즘의 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매일 신에 대한 찬양이나 꾸란의 특정 구절을 암송하는 일상 수행(ورد|위르드ar)과, 집중하여 짧은 구절을 반복 암송함으로써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ذكر|지크르ar를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제시했다.[175] 또한 황홀경에 이르기 위해 노래, 무용, 음악을 동반하는 암송인 سماع|사마ar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가잘리는 수행을 충분히 쌓은 사람에 한해 그 유용성을 조건부로 인정했다.[176]
가잘리는 신을 인간 사랑의 궁극적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완전한 존재인 신만이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177] 이전의 많은 신학자들이 신은 인간이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신에 대한 사랑'은 '신에 대한 복종'의 비유일 뿐이라고 본 것과 달리,[178] 가잘리는 사랑의 주체는 인식하는 인간이며, 복종은 사랑의 결과라고 설명했다.[179] 그는 인간의 사랑을 세 종류(자기 보존적 사랑, 완전함에 대한 사랑, 불가사의한 이끌림)로 나누고, 이 세 가지가 통합된 최고의 사랑이 바로 인간이 신에게 향하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이 신에 대한 사랑은 창조주에게 속한 모든 창조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다.[180][181] 다만, 후대의 이븐 아라비처럼 신과 인간의 합일을 남녀 간의 사랑에 비유하지는 않고, 신의 초월성을 유지하며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보았다.[182]
가잘리 이전의 일부 수피들은 이슬람법(샤리아) 준수보다 신과의 합일 체험을 중시하여 반율법적이거나 반체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고, 신비적 직관지를 울라마(율법학자)의 학문적 지식보다 우위에 두기도 했다.[183] 이는 체제파 율마나 일반 대중과의 갈등을 유발했다.[184] 가잘리는 신앙의 확신은 신과의 합일 경험에서 온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이슬람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온건하고 통합적인 입장을 취했다.[185] 그의 이러한 노력은 수피즘과 율법학자(울라마) 사이의 오랜 불화를 완화하고 화해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수피즘이 이슬람 사회 내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폭넓게 수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186] 가잘리의 사상은 수피즘의 대중화와 수니파 사상 내에서의 입지 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죽은 지 16년 뒤 최초의 정규 수피 교단(타리카)이 형성되는 등 후대 수피즘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187]
4. 영향
알가잘리의 사상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서구 기독교 및 유대교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술은 기독교와 유대교 학자 및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포되었다. 서구의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113][12] 데이비드 흄,[14] 단테 등이 있으며, 유대교 신학자인 모세 벤 마이몬 역시 가잘리의 저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가잘리가 저술한 철학 해설서인 『철학자의 의도』는 이븐 시나 사상의 뛰어난 입문서로 평가받으며,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117] 그러나 그의 철학 비판서인 『철학자의 자기모순』은 유럽 세계에 전해지지 않았고,[152] 유럽에 전해진 『철학자의 의도』 사본에는 저술 목적이 서술된 서문과 후기가 누락되어 있었기 때문에,[188][189] 유럽 학자들은 가잘리를 철학을 옹호하는 인물인 '알가젤(Algazel)'로 오해하기도 했다.[117][152][190] 이러한 오해는 19세기 솔로몬 뭉크가 사본의 서문 누락을 지적하고 가잘리가 실제로는 철학에 비판적인 입장이었음을 밝히면서 점차 해소되기 시작했다.[193]
가잘리의 영향력은 후대의 수많은 이슬람 학자들에게도 이어졌다. 이븐 루슈드,[15] 아인 알쿠자트 하마다니(Ayn al-Quzat Hamadani), 알나와위(al-Nawawi), 이븐 투마르트(Ibn Tumart), 파크르 알딘 알라지(Fakhr al-Din al-Razi), 수유티(Suyuti),[10] 탄 말라카(Tan Malaka),[11] 사이프 알딘 알아미디(Sayf al-Din al-Amidi),[15] 아사드 마이하니(Asad Mayhani), 알리 알카리(Ali al-Qari),[16] 무함마드 이븐 야히야 알잔지(Muhammad Ibn Yahya al-Janzi) 등이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4. 1. 현대적 평가
이슬람 종교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그때까지 분리되어 있던 신학·법학과 수피즘을 종합하여, 수피즘의 인격적·신비주의적 체험과 직관지를 바탕으로 정통 신학을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공인된 아샤리파 신학과 이슬람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였으며, 형해화되어 가던 종교 체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83] [84] [85] [26] [40] [70] [20] [21] [22] [86] 가잘리가 죽은 지 16년 뒤 첫 정규 수피 교단이 형성되었고, 이후 여러 수피 교단이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가잘리의 가장 큰 공적으로는 정통파 신학과 수피즘의 조화가 꼽힌다. 또한 이븐 시나에서 정점에 달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신플라톤파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비판함으로써 정통파 이슬람을 수호한 공적도 인정받는다. 그는 수피즘과 샤리아를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저술을 통해 수피즘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의 저술은 다른 학파에 맞서 수니 이슬람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당시 세력을 넓히던 바티니파(이스마일파)를 그의 저서 『바티니파의 악행(Fada'ih al-Batiniyya)』에서 강하게 비판했다.[87]
가잘리는 철학을 비판하면서 수피즘이 널리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88] 동시에 철학자들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철학적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여 오히려 철학적 논의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88] 그의 종교 철학의 핵심은 창조주가 모든 세상사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삶의 중심이라는 주장이었다.
그의 역할은 이슬람 종교사상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첫째, 이슬람 학문을 스콜라 철학적 접근에서 벗어나게 하여 꾸란과 하디스를 살아있는 텍스트로 부활시켰다. 이는 기독교가 유럽에서 스콜라주의의 속박을 벗어난 것에 비견될 수 있다. 둘째, 종교적 외경심을 다시 강조했다. 셋째, 수피즘의 지위를 이슬람 내에서 확고히 했다. 넷째, 철학을 일반 이슬람 교도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잘리의 영향력은 이슬람 세계를 넘어 기독교와 유대교 학자 및 철학자들에게까지 미쳤다. 서구의 데이비드 흄, 단테 알리기에리,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대교 신학자 마이모니데스 역시 그의 저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그의 교육 관련 저술과 개혁은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슬람 교육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아투시와 같은 이슬람 수학자 및 천문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89] 가잘리가 이슬람 신학교인 마드라사 교육 과정에 논리학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이후의 시기는 "아랍 철학의 황금기"로 불리기도 한다.[91]
그는 생전에 7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으며,[83] [84] [85] [26] [40] [70] [20] [21] [22] [86] 그의 대표작인 《종교 과학의 부흥》(이야 울룸 알딘)은 스승이 없다면 이 책이 스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진다.[92] 그의 사상은 함자 유수프, 셰이크 이브라힘 오시 에파, 압둘 하킴 무라드 박사(티모시 윈터) 등 현대 이슬람 학자들에게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이슬람의 증거(Hujjat al-Islam)"라는 칭호를 얻었다.[93]
윌리엄 몽고메리 와트에 따르면, 가잘리는 당대의 무자디드(mujaddid, 혁신가)로 여겨졌으며,[27][100] 많은 후대 무슬림들은 그를 무함마드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무슬림으로 여기기도 했다.[27] 이슬람 학자 알사파디는 "무함마드 이븐 무함마드 이븐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이슬람의 증거, 신앙의 장식, 아부 하미드 알투시(알가잘리) 샤피이파 법학자는 그의 말년에 라이벌이 없었다"고 평가했으며,[101] 법학자 알야피이는 그가 "이슬람의 증거"라는 이름에 합당하며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칭송했다.[102] 샤피이파 법학자 알수브키는 "무함마드 이후에 예언자가 있었다면, 알가잘리가 그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103][104] 수니파 학자 알다하비 역시 가잘리를 "이맘이자 셰이크, 저명한 학자, 이슬람의 증거, 그의 시대의 경이로움"이라 칭하며 그의 학문적 깊이와 논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105]
한편, 합리주의 철학자 이븐 루슈드(아베로에스)는 가잘리의 철학 비판서 『철학자들의 모순』에 대해 『모순의 모순(Tahāfut al-Tahāfut)』이라는 반박서를 저술하며 "철학자들이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진술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븐 루슈드의 반박은 당시 무슬림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106]
일부 동양학자들은 가잘리가 철학을 비판함으로써 이슬람 세계의 과학 발전이 쇠퇴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기도 한다. 철학자들이 신의 전지전능함을 부정하거나 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듯한 주장을 펼치는 것을 위험하게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07]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반박되기도 한다.[108][109] 역사가 피라스 알카티브는 가잘리가 경고한 것은 과학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특정 학자가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의 모든 사상과 신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러한 경고를 통해 과학이 추측과 추론에 기반한 이론 철학과 뒤섞이는 것을 막아 과학 자체를 보호하려 했다는 것이다.[107] 가잘리가 『오류로부터의 해방(al-Munqidh min al-dalal)』에서 "수학 과학의 부인으로 이슬람을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종교에 대한 범죄는 참으로 크다"[58] [110]고 말한 것은, 수학 연구를 장려하기보다는 종교와 수학이 서로 다른 영역임을 강조하며 불필요한 대립을 비판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는 같은 책에서 "계시된 법은 어디에서도 이러한 과학을 부인하거나 긍정하려고 하지 않으며, 후자는 어디에서도 종교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110]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학자들의 저서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철학은 수학, 논리, 물리, 형이상학, 정치, 도덕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111] [112]
가잘리는 이븐 루슈드, 아인 알쿠자트 하마다니, 알나와위, 이븐 투마르트, 파크르 알딘 알라지, 수유티,[10] 탄 말라카,[11] 토마스 아퀴나스,[113][12] 데이비드 흄,[14] 사이프 알딘 알아미디,[15] 아사드 마이하니, 알리 알카리,[16] 무함마드 이븐 야히야 알잔지 등 수많은 후대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 주요 저서
알가잘리는 이슬람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친 저술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는 《종교 과학의 부흥》(Ihya' 'ulum al-din)과 《미혹으로부터의 해방》(al-Munqidh min al-dalal) 등이 꼽힌다.[56][40][57]
알가잘리 자신은 생애 후반에 술탄 산자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저술이 "70편 이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까지 약 50여 편의 저술이 비교적 확실하게 그의 것으로 확인되지만, 수백 편의 저술이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중에는 제목만 다르거나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으며, 진위가 의심스럽거나 후대에 가탁된 위작으로 여겨지는 저술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특히 이븐 아라비의 저작들이 널리 퍼진 13세기 이후 가잘리의 이름으로 된 위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56] 윌리엄 몽고메리 왓트나 모리스 부이주 같은 학자들이 가잘리의 저술 목록을 정리하고 연구한 바 있다.
알가잘리는 안달루시아의 타이파 왕조 통치자들의 정통성을 비판하며 퇴위를 요구하는 파트와(fatwa)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이는 무라비트 왕조의 유수프 이븐 타슈핀이 안달루시아를 정복하는 명분으로 사용되었다.[58]
다음은 알가잘리의 주요 저작 목록이다.
제목 | 설명 | 유형 |
---|---|---|
알-문키드 민 알-달랄 المنقذ من الضلال|알문키드 민 알달랄ara | 오류로부터의 구원 (자전적 저술) | 신학 |
후즈자트 알-하크 حجة الحق|후자트 알하크ara | 진리의 증거 | 신학 |
신앙의 절제 الاقتصاد في الاعتقاد|알익티사드 필리티카드ara | 신앙의 중용 | 신학 |
일잠 알-아와암 안 일름 알-칼람 إلجام العوام عن علم الكلام|일잠 알아왐 안 일름 알칼람ara | 대중을 신학 논쟁으로부터 보호함 | 신학 |
알-막사드 알-아스나 피 샤라 아스마 알라후 알-후스나 المقصد الأسنى في شرح أسماء الله الحسنى|알막사드 알아스나 피 샤르흐 아스마 알라 알후스나ara | 알라의 99가지 이름 해설 | 신학 |
자와히르 알-꾸르안 와 두루루흐 جواهر القرآن ودرره|자와히르 알쿠란 와 두라루후ara | 꾸란의 보석과 진주 | 신학 |
파이살 알-타프리카 바이날 이슬람 와-알-잔다카 فيصل التفرقة بين الإسلام والزندقة|파이살 알타프리카 바이나 알이슬람 왈잔다카ara | 이슬람과 이단(은밀한 불신)의 구별 기준 | 신학 |
알-라드 알-자밀 리-일라히야트 이사 비-사리흐 알-인질 الرد الجميل لإلهية عيسى بصريح الإنجيل|알라드 알자밀 리일라히야트 이사 비사리흐 알인질ara | 복음서에 근거한 예수의 신성에 대한 반박 | 신학 |
미쉬캇 알-안와르 مشكاة الأنوار|미슈카트 알안와르ara[95] | 빛의 벽감 (꾸란의 빛의 구절 주해) | 신학 |
타프시르 알-야쿠트 알-타윌 تفسير ياقوت التأويل|타프시르 야쿠트 알타윌ara | 루비 해석학 주해 | 신학 |
'미잔 알-아말'' ميزان العمل|미잔 알아말ara | 행위의 척도 | 수피즘 |
종교 과학의 부흥 إحياء علوم الدين|이흐야 울룸 앗딘ara | 종교 과학의 부흥 (대표작) | 수피즘 |
지도의 시작 بداية الهداية|비다야트 알히다야ara | 지도의 시작 | 수피즘 |
행복의 연금술 کیمیای سعادت|키미야예 사아다트fas | 행복의 연금술 (페르시아어로 쓰인 이흐야 울룸 앗딘의 요약본) | 수피즘 |
나시하트 알-물룩 نصيحة الملوك|나시하트 알물루크ara | 왕들을 위한 조언 (페르시아어 저술) | 수피즘 |
알-문키드 민 알-달랄 المنقذ من الضلال|알문키드 민 알달랄ara | 오류로부터의 구원 (자전적 저술) | 수피즘 |
숭배자들을 위한 방법론 منهاج العابدين|민하즈 알아비딘ara | 숭배자들의 길 | 수피즘 |
파다이흐 알-바티니야 فضائح الباطنية|파다이흐 알바티니야ara | 바틴파(특히 이스마일파)의 오류 비판 | 수피즘 |
철학자들의 의도 مقاصد الفلاسفة|마카시드 알파라시파ara | 철학자들의 목표 (초기 저술, 이븐 시나 등의 철학 소개) | 철학 |
철학자들의 모순 تهافت الفلاسفة|타하푸트 알파라시파ara | 철학자들의 자기모순 (그리스 철학, 특히 이븐 시나와 알 파라비 비판) | 철학 |
미야르 알-일름 피 판 알-만티크 معيار العلم في فن المنطق|미야르 알일름 피 판 알만티크ara | 논리학 지식의 기준 | 철학 |
미하크 알-나자르 피 알-만티크 محك النظر في المنطق|미하크 알나자르 필만티크ara | 논리학 추론의 시금석 | 철학 |
알-키스타스 알-무스타킴 القسطاس المستقيم|알키스타스 알무스타킴ara | 올바른 저울 (논리학적 방법론) | 철학 |
파타위 알-가잘리 فتاوى الغزالي|파타와 알가잘리ara | 가잘리의 법률 의견 (파트와 모음) | 법학 |
이맘 샤피이 법학의 요약 الوجيز في فقه الإمام الشافعي|알와지즈 피 피크 알이맘 알샤피이ara | 샤피이파 법학 요약 | 법학 |
키타브 타흐지브 알-우스룰 كتاب تهذيب الأصول|키타브 타흐디브 알우술ara | 법 원리 정제 | 법학 |
법 이론에서 명확하게 المستصفى من علم الأصول|알무스타스파 민 일름 알우술ara | 법 이론학 정선 | 법학 |
아사스 알-키야스 أساس القياس|아사스 알키야스ara | 유추(키야스)의 기초 | 법학 |
예루살렘 서간 الرسالة القدسية|알리살라 알쿠드시야ara [96] | 예루살렘에서 쓴 신앙 고백 | 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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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가잘리의 『철학자들의 부조리』(Tahāfut al-Falās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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