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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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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극동은 러시아가 극동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국제적으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또는 동아시아에 해당한다.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형과 지질학적 특징을 보이며, 클류체프스카야 산 화산, 쿠릴-캄차카 해구, 바이칼 호 등이 있다. 역사는 16세기 코사크 부대의 시베리아 정복으로 시작되어, 17세기부터 러시아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고, 청나라와의 충돌과 조약을 거쳐 영토를 확장했다. 1900년대 초 러일 전쟁으로 일본에 일부 영토를 잃었으며, 소비에트 시대에는 강제 이주와 국경 분쟁을 겪었다. 현재는 극동 연방관구로 묶여 있으며, 주요 도시로는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등이 있다. 다양한 소수 민족이 거주하며, M58 고속도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 항공, 해상 운송 등 다양한 교통 수단이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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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극동 연방관구 (강조 표시)
극동 연방관구 (강조 표시)
별칭러시아 극동
위치 정보 누락 여부좌표 정보 없음
일반 정보
유형지리적 지역
하위 구역 종류최대 도시
최대 도시하바롭스크
지리
면적6,952,600 제곱킬로미터
면적 (제곱마일)2,684,400 제곱마일
인구 통계
인구 (2021년)7,975,762명
기타 정보

2. 용어

러시아에서는 이 지역을 보통 단순히 "극동"(Дальний Восток|달니 보스토크ru)이라고 부른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극동이라는 용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극동 러시아"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국제적인 의미의 극동을 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Азиатско-тихоокеанский регион|아지아츠코 티호케안스키 레기온ru, 약칭 АТР|아테에르ru) 또는 동아시아( Восточная Азия|보스토치나야 아지야ru)라고 부른다.

3. 지리적 특징

코랴크 화산 (캄차카 반도)


러시아 극동 지역의 주요 지리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4. 역사

러시아의 극동 지역 진출은 1580년 예르마크가 이끄는 코사크 부대가 시베리아를 탐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코사크들은 강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 17세기 중반에는 오호츠크해 연안에 도달하고 오호츠크와 같은 거점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와 충돌하여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아무르강 유역을 포기하기도 했으나,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약화된 틈을 타 1858년1860년에 걸쳐 아무르강 북쪽 지역과 연해주를 확보하며 현재 극동 지역의 기반을 마련했다. 1856년에는 연해주 지역을 관할하는 프리모르스키 주가 설치되기도 했다.

"극동"이라는 명칭과 그 범위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20세기 초반에는 극동 공화국, 극동주, 극동 지방 등 다양한 이름의 행정 구역이 존재했으며, 그 경계도 일정하지 않았다. 2000년 이전까지는 "극동"에 대한 공식적인 경계 정의 없이 "시베리아와 극동"(Сибирь и Дальний Востокru)이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 러시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극동 연방관구가 설립되면서 비로소 공식적인 행정 경계가 설정되었다. 이로써 극동 지역은 러시아 전체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정의되었다.

4. 1. 러시아의 확장

1580년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가 이끄는 코사크 부대가 시베리아의 여러 강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러시아의 극동 진출이 시작되었다. 코사크들은 계속 동진하여 1619년에는 예니세이강, 1629년에는 레나강에 도달했고, 1632년에는 야쿠츠크를 건설했다. 1637년에는 오호츠크해 해안까지 진출했으며, 1647년에는 태평양 연안 최초의 러시아 항구인 오호츠크를 건설했다. 이들은 1640년대에 몽골계 부랴트족을 정복하고 바이칼호 주변까지 영역을 넓혔다.

1654년 네르친스크, 1665년 알바진 등을 건설하며 아무르강 유역으로 진출했으나, 이는 청나라와의 충돌로 이어졌다. 결국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러시아 차르국은 알바진을 포함한 아무르강 일대 영토를 청나라에 넘겨주고 아르군강스타노보이산맥을 국경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1727년 캬흐타 조약이 체결되었다.

19세기 들어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며 약화되자, 러시아 제국은 다시 극동으로의 확장을 본격화했다. 1858년 스타노보이산맥아무르강 사이의 넓은 지역을 넘겨받았고, 1860년 10월 18일에는 연해주까지 넘겨받아 부동항을 확보했다. 이러한 아무르 합병 과정을 통해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블라디보스토크 1900년대 초


행정적으로는 1856년 프리모르스키 주(연해주)가 러시아 제국의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설립되었으며, 행정 중심지는 하바롭스크에 두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4. 2. 행정 구역 변천

러시아 제국1647년 오호츠크를 건설하며 태평양 연안에 도달했고, 19세기에 극동 러시아 지역을 확보했다. 연해주는 1856년 러시아 제국의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설립되었으며, 행정 중심지는 하바롭스크에 두었다.

20세기 전반기에는 "극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행정 구역이 존재했으며, 시기별로 경계가 달랐다.

20세기 전반 극동 지역 행정 구역 변천
시기명칭주요 포함 지역
1918년–1922년우크라이나 극동 운동 지역녹색 우크라이나
1920년–1922년극동 공화국자바이칼, 아무르, 프리모르스키, 캄차카주, 북부 사할린
1922년–1926년극동주아무르, 자바이칼, 캄차카 등
1926년–1938년극동 지방현재의 프리모르스키와 하바롭스크 지방



2000년 이전까지 러시아 극동은 공식적으로 정의된 경계가 없었다. 우랄 산맥 동쪽의 러시아 지역을 지칭할 때 "시베리아와 극동"(Сибирь и Дальний Востокru)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되었으며, "시베리아"와 "극동"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2000년, 러시아의 연방 주체들을 더 큰 연방관구로 묶는 과정에서 극동 연방관구가 설립되었다. 초기 극동 연방관구는 아무르주, 추코트 자치구, 유대 자치주, 캄차카주 (코랴크 자치구 포함), 하바롭스크 지방, 마가단주, 프리모르스키 지방, 사하(야쿠티야) 공화국, 사할린주로 구성되었다.

2018년 11월, 이전까지 시베리아 연방관구에 속했던 자바이칼 지방과 부랴티야 공화국이 극동 연방관구에 편입되었다.[2] 2000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극동"이라는 용어를 주로 극동 연방관구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때로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현재 연방관구의 경계로 정의되는 극동 지역의 면적은 6200000km2 이상으로, 러시아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넘는다.

4. 3. 러일 전쟁 (1904-1905)

1900년대러시아 제국은 해상 무역 활성화와 러시아 제국 해군의 활동을 위해 태평양 연안에 부동항 확보를 꾸준히 추진했다. 당시 새로 개항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여름에만 운영이 가능했지만, 1896년부터 중국에게서 조차한 만주의 뤼순항(러시아명 포트 아르투르, Порт-Артурru)은 연중 운영이 가능했다. 청일 전쟁(1894-1895) 이후, 일본 제국니콜라이 2세의 러시아 정부 간 1903년 협상이 실패하자, 일본은 대한제국과 주변 지역에 대한 자국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 한편, 러시아 내부에서는 연이은 총파업 이후 정부의 억압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전쟁을 고려하기도 했다.

일본은 1904년 2월 8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이 선전포고문이 러시아 정부에 전달되기 3시간 전에 대일본제국 해군은 뤼순항에 주둔 중이던 러시아 제1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러시아는 8일 뒤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러일 전쟁1905년 9월, 뤼순항 함락과 한반도 및 중국 동북부를 통한 러시아의 진격 실패로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또한 일본은 한반도를 통해 연해주를 침공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했다. 전쟁 당사국들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라 일본과 러시아는 만주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해당 지역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본은 랴오둥 반도(뤼순, 다롄 포함)와 전략적 자원 접근성이 좋은 남만주 철도의 조차권을 확보했으며, 사할린 섬의 남부 절반을 러시아로부터 할양받았다.

전쟁 이후, 1907년 일본은 자국의 한반도 침략과 이에 저항하는 의병 활동에 대한 우려 때문에 러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어, 당시 연해주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한인(고려인) 정착민들의 토지를 몰수하도록 강요했다.

4. 4. 소비에트 시대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은 고려인들이 일본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심 하에 20만 명이 넘는 고려인을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들이 가축 수송 열차 안에서 굶주림, 질병, 추위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소련 당국은 고려인 사회의 많은 지도자들을 숙청하고 처형했으며, 살아남은 고려인들은 이후 15년 동안 중앙아시아 밖으로의 이동이 금지되었다. 또한 한국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고려말러시아어 사용이 강제되면서 한국어는 점차 쇠퇴하였다.

스탈린 통치 기간 동안 소련 극동 지역의 개발, 특히 북부 지역의 개발은 굴라크라 불리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 크게 의존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대규모 강제 노동은 점차 줄어들었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자원한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 당시, 소련은 하바롭스크 시가 적대 세력에게 점령당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볼쇼이우수리스키섬, 인룽섬 및 주변의 작은 섬들을 점령했다.[3]

일본의 군사적 관심은 소련 영토로 향했고,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 국경 지대에서는 일본과 소련 간의 군사적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다(소련-일본 국경 분쟁). 대표적인 예가 하산 호 전투(장고봉 사건, 1938년 7월~8월)로, 일본이 점령한 만주국이 소련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소련이 1860년 베이징 조약에 따른 러시아 제국청나라 간의 국경 획정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침공을 정당화하려 했다. 비록 이후의 충돌 대부분은 만주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연해주는 지속적으로 일본의 침략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연해주는 소련과 일본 양측 모두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소련과 연합국은 이곳을 한반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침공하기 위한 핵심 거점으로 간주했으며(다운폴 작전 계획), 반대로 일본은 이곳을 러시아 동부 침공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연해주는 연합군의 일본 본토 침공 계획 수립을 위한 소련 태평양 사령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국경 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과 직후에 마무리되었다(소련-일본 전쟁). 1945년 8월,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만주, 한반도 북부, 사할린 남부, 쿠릴 열도를 침공하여 점령했다. 전쟁 후 소련은 만주와 몽강중국에 반환했고, 한반도는 해방되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소련은 점령한 쿠릴 열도와 사할린 남부를 자국 영토로 병합했다.

냉전 시기, 특히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 지역은 소련에게 안보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중국과는 1969년부터 중소 국경 분쟁이 발발하여 국경선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1991년부터 중국과 국경을 획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 2004년까지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974년 미국과 소련 간의 전략 무기 제한 협상(SALT) 개최지가 되었다. 이 협상에서 양국은 핵무기 시스템 수량 제한과 새로운 지상 기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기 건설 금지에 합의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의 여러 도시들은 소련 태평양 함대 기지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폐쇄 도시로 지정되었다. 냉전의 긴장 속에서 알래스카에서 출발한 미국정찰기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1983년에는 소련 군대의 우려가 대한항공 007편 민간 여객기를 격추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4. 5. 러시아 연방

2016년,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 극동 지역의 인구 증가를 위해 러시아 농지법(극동 1헥타르법)을 제안했다.[4] 이 법은 극동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대책이자 러시아 정부의 동방 중시 정책의 일환으로 2016년 5월부터 시행되었다. 법의 주요 내용은 러시아 국민에게 1헥타르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극동 지역 주민만 신청 가능했으나, 2017년 2월부터는 모든 러시아 국민이 신청할 수 있도록 대상이 확대되었다. 제공받은 토지를 5년간 이용하면 6년째부터는 이용자의 소유가 된다. 토지 이용 목적은 농업, 상업, 숙박 시설, 공장 건설 등으로 다양하며, 토지를 실제로 이용하는 것이 주요 조건이다. 2017년 2월부터 인터넷 신청이 가능해지면서 이용자가 증가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목표했던 100만 명의 신청자 수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2018년 초 기준으로 신청 건수는 약 11만 건이었고, 실제로 토지를 받은 사람은 약 3만 6천 명에 불과했다. 제공된 토지 중 상당수가 이용하기 불편하거나 개간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23] 또한, 네네츠족 등 원주민과의 수렵 활동 관련 갈등이나 유적 파괴와 같은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5. 인구

러시아 극동의 인구 변화 (1990-2015)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성 타티아나의 날(러시아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 학생들 (2009년)


2021년 러시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극동 연방관구의 인구는 798만 명이었다. 인구 대부분은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러시아 극동의 광활한 영토를 고려하면, 인구 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1명 미만으로 세계적으로 인구가 희박한 지역 중 하나이다.

러시아 극동의 인구는 소련 해체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러시아 전체의 인구 감소율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지난 15년 동안 14%가 감소했다는 기록도 있다.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 소련은 극동 개발을 중시했으나,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806만 명이었던 인구는 러시아 연방 출범 초기의 경제 침체와 사회 혼란 속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2002년 전러시아 인구 조사에서는 6,692,865명, 2016년 조사에서는 약 62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여러 재정착 프로그램을 논의했으며, 특히 근방 국가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을 유치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를 재정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유럽 러시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기후가 혹독한 극동 지역에 러시아인 정착민을 늘리는 것은 경제 개발과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였다. 1906년, 러시아 제국 총리 표트르 스톨리핀은 극동으로 이주하는 농민에게 1인당 15ha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1914년까지 약 353만 명이 극동으로 이주했고, 이 중 서부로 돌아간 102만 명을 제외한 인구가 잔류했다.

민족 구성으로는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극동 러시아 인구의 약 75%는 도시에 거주한다. 주요 대도시는 다음과 같다 (인구는 2020년 기준).


6. 주요 도시

인구의 75%가 도시에 거주한다.

2015년 블라디보스토크


주요 도시는 다음과 같다.

7. 소수 민족

러시아 극동에는 예로부터 다양한 소수 민족이 거주해 왔다. 이들 원주민 집단은 언어 그룹별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8. 교통

레나강의 교통 (2004)


이 지역은 2010년 M58 고속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러시아의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국내 고속도로가 없었다. 러시아의 다른 지역과 달리 대부분의 자동차가 우측 운전석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전체 자동차의 약 73%에 해당한다.[5] 도로는 우측 통행을 한다.

철도 교통은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바이칼-아무르 간선 철도 (1984년 완공)가 시베리아 및 러시아의 다른 지역과 극동 지역을 연결한다. 아무르-야쿠츠크 간선 철도는 야쿠츠크 시를 러시아 철도망에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2013년 기준으로 여객 열차는 니즈니 베스티야흐까지 운행한다.

많은 외딴 지역에서는 항공 운송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주요 교통 수단이지만, 관련 기반 시설은 부족한 편이다.

해상 운송은 태평양 및 북극해 연안 지역에 물품을 운송하고, 특히 석유, 가스, 광석 등을 수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참조

[1] 논문 The Soviet Far East: Problem Region of the USS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2] 웹사이트 Официальный интернет-портал правовой информации https://web.archive.[...] 2018-11-04
[3] 문서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recognized Russian possession of the eastern half of these lands in the treaty of 2004, whereas the western half then reverted to China.
[4] 웹사이트 On Russia's Far Eastern Frontier, Vast Stretches Of Free Land, But Little Interest https://www.rferl.or[...] 2020-09-20
[5] 뉴스 В России посчитали всех "праворуких" http://auto.vesti.ru[...] 2017-04-24
[6] 웹사이트 Northern Hazelhen (Tetrastes bonasia). Photo Gallery.Birds of Russian Far East. https://fareastru.bi[...] 2020-06-18
[7] 웹사이트 Siberian Grouse (Falcipennis falcipennis). Photo Gallery.Birds of Russian Far East. https://fareastru.bi[...] 2020-06-18
[8] 웹사이트 Northern Black Grouse (Lyrurus tetrix). Birds of Russian Far East. https://fareastru.bi[...] 2020-06-18
[9] 웹사이트 Black-billed Capercaillie - eBird https://ebird.org/sp[...] 2020-06-18
[10] 웹사이트 Willow Ptarmigan (Lagopus lagopus). Photo Gallery.Birds of Russian Far East. https://fareastru.bi[...] 2020-06-18
[11] 웹사이트 Rock Ptarmigan (Lagopus muta). Photo Gallery.Birds of Russian Far East. https://fareastru.bi[...] 2020-06-18
[12] 서적 Deer of the World: Their Evolution, Behaviour, and Ecology https://books.google[...] Stackpole Books 1998-01
[13] IUCN Moschus moschiferus 2015
[14] 논문 Conservation Genetics of the Far Eastern Leopard (Panthera pardus orientalis) https://web.archive.[...]
[15] IUCN Panthera tigris ssp. altaica 2011
[16] IUCN Ursus thibetanus 2020
[17] IUCN Ursus arctos 2017
[18] IUCN Pinus pumila 2013
[19] IUCN Picea obovata 2013
[20] 뉴스 【百年の蹉跌 ロシア革命とプーチン】第1章(6)「二匹目のドジョウ」狙う極東開発 産経新聞 2017-10-07
[21] 웹사이트 ОЦЕНКА ЧИСЛЕННОСТИ НАСЕЛЕНИЯ на 1 января 2016 года и в среднем за 2015 год http://www.gks.ru/fr[...] 2016-03-27
[22] 웹사이트 極東1ヘクタール土地無償提供とは?ロシアビザーズ https://russia.jw-ji[...] 2017-07-01
[23] 뉴스 プーチン支配 ロシア大統領選】極東開発進まず/国有地貸与や投資 効果薄く 読売新聞 2018-03-16
[24] 뉴스 【ロシア万華鏡】極東で土地分与法めぐるトラブル相次ぐ 先住民族の土地・遺跡まで分与?ずさんな内容が浮き彫りに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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