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운동
1. 개요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정치적 운동이다. 스코틀랜드는 중세 초에 독립적인 왕국으로 시작되었으나, 1603년 잉글랜드와 동군 연합을 이루었고, 1707년 연합 조약을 통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스코틀랜드에서는 자치 운동이 전개되었고, 199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설치되었다. 2014년 독립 국민투표에서는 독립이 부결되었으나, 브렉시트 이후 독립에 대한 요구가 다시 높아졌다. 스코틀랜드 독립은 문화, 민주주의, 국적, 경제, 통화, 국방, 외교, 영국과의 관계 등 다양한 쟁점을 포함하며, 찬성 및 반대 세력 간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 스코틀랜드어 | Scots unthirldom |
|---|---|
| 스코틀랜드 게일어 | Neo-eisimeileachd na h-Alba |
| 일본어 | スコットランド独立運動 (Sukottorando dokuritsu undō) |
| 목표 | 스코틀랜드의 독립 |
|---|
| 연합법 | 1707년 연합법 |
|---|---|
| 독립 국민투표 |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2016년 유럽 연합 회원국 국민투표 |
| 주요 정당 | 스코틀랜드 국민당 |
|---|
| 2014년 국민투표 결과 | 반대 55%, 찬성 45% |
|---|---|
| 스코틀랜드 정부 발표 (2022년) | 2023년 10월 19일 독립 국민투표 재실시 계획 발표 |
| 영국 대법원 판결 (2022년 11월) | 스코틀랜드 의회의 국민투표 실시 권한 부존재 판결 |
| 관련 인물 | 니컬라 스터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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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당
알바당은 2021년 로리 플린이 창당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정당으로, 스코틀랜드 독립과 사회적 정의, 환경적 책임을 목표로 하며, 앨릭스 새먼드와 케니 맥어스킬이 당 대표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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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기 위해 실시되었으나 부결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자치권 이양 문제와 경제적 쟁점 등 다양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
스코틀랜드의 정치 -
스콘석
스콘석은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에 사용되던 돌로, 잉글랜드로 옮겨져 영국 군주 대관식에도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에든버러 성에 보관되어 영국 왕실 대관식 때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
스코틀랜드의 정치 -
1997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
1997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설립과 과세 권한 부여에 대한 질문에 높은 찬성률을 보여 스코틀랜드 의회와 정부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2. 역사
스코틀랜드는 중세 초기에 독립국으로 성립되었으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케네스 1세의 재위 기간이었던 843년에 건국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침략과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스코틀랜드 왕국의 정통성은 여러 차례 위협받았다. 1290년,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위기는 잉글랜드의 개입을 불러왔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와 올드 동맹(오래된 동맹)을 맺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이후 로버트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스코틀랜드 왕국은 부흥기를 맞이했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과 아일랜드 왕을 겸하게 되면서, 1603년부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한 명의 군주를 모시는 동군연합 상태가 되었다. 이를 왕관 연합이라고 부른다. 연합 조약과 연합법의 통과를 거쳐 1707년에 두 왕국은 공식적으로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되었다.
1853년 보수당과 가까운 단체였던 전국 스코틀랜드 권리 요구 협회가 스코틀랜드 의회의 '자치' 운동을 처음으로 일으켰다. 1885년에는 스코틀랜드부 장관과 스코틀랜드부가 다시 설치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허버트 애스퀴스가 이끌던 중도정부는 '전면 자치'에 찬성했다.
1930년대에는 스코틀랜드부가 에든버러의 세인트 앤드류 하우스로 이전했다. 1930년에 존 맥코믹이 제의한 스코틀랜드 서약은 영국 정부에 자치를 요구하는 청원서로, 1949년 정식으로 작성되어 200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1951년 인구조사에서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510만 명이었다). 다만 주요 정당들은 이 서약을 무시했다.
1979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는 근소한 차이(52% 대 48%)로 권력 이양에 찬성했지만, 전체 유권자의 40%가 찬성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부결되었다.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 승리 후 도널드 드워 스코틀랜드 국무장관은 스코틀랜드 의회 설립안을 허가했고, 국민투표에서 74.3%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1999년, 스코틀랜드는 첫 번째 선거를 치렀고, 1707년 이후 처음으로 스코틀랜드 의회가 개회했다.
2007년 스코틀랜드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독립 국민투표를 약속했고, 2011년 스코틀랜드 총선에서 승리한 후 앨릭스 샐먼드 초대 총리는 2014년이나 2015년에 국민 투표를 열겠다고 밝혔다. 2012년,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 정부는 에딘버러 협정을 통해 국민 투표 실시에 합의했다.
2014년 9월 19일,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결과는 전체 투표율 84.5% 중 '반대' 55%(2,001,926표), '찬성' 45%(1,617,989표)로 독립이 부결되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은 유럽 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잔류를 선택했다. 이에 스코틀랜드 국민당 소속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스코틀랜드 독립을 요구했다.
2.1. 스코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는 중세 초기에 독립국으로 성립되었으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케네스 1세의 재위 기간이었던 843년에 건국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침략과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스코틀랜드 왕국의 정통성은 여러 차례 위협받았다. 잉글랜드는 트로이의 브루투스 설화 등을 내세워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지만, 스코틀랜드는 고이델 글라스와 스코타 설화를 통해 잉글랜드의 주장에 맞섰다.
1290년,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위기는 잉글랜드의 개입을 불러왔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와 올드 동맹(오래된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은 1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이후 로버트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스코틀랜드 왕국은 부흥기를 맞이했고, 그의 외손자 로버트 2세는 스튜어트 왕가의 첫 스코틀랜드 왕이 되었다.
2.2. 연합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과 아일랜드 왕을 겸하게 되면서, 1603년부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한 명의 군주를 모시는 동군연합 상태가 되었다. 이를 왕관 연합이라고 부른다.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 속에서 제임스 7세가 1688년 명예혁명으로 폐위되고, 개신교 계열의 스튜어트 왕조가 1714년에 단절되기까지,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가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것을 우려했다. 연합 조약과 연합법의 통과를 거쳐 1707년에 두 왕국은 공식적으로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되었다. 보니 프린스 찰리를 비롯한 자코바이트가 이끄는 연합 반대파 스코틀랜드인들의 강력한 저항은 1746년까지 이어졌다.
1800년 연합법에 따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이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성립되었다. 1922년, 아일랜드 남부 26개 주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하면서, 현재의 영국(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
2.3. 자치 운동
스코틀랜드 의회의 '자치' 운동은 1853년 보수당과 가까운 단체였던 전국 스코틀랜드 권리 요구 협회가 처음으로 일으켰다. 이 운동의 핵심 요소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초창기 운동은 정치적인 호소를 넓혀나갔고 곧 자유당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1885년에는 스코틀랜드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영국 의회에 관심을 표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부 장관과 스코틀랜드부가 다시 설치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허버트 애스퀴스가 이끌던 중도정부는 '전면 자치 (Home Rule all round)'에 찬성했고, 이로써 스코틀랜드 자치법은 1914년 아일랜드 정부법으로 제안됐던 아일랜드 자치법을 따라가게 될 것이었다. 애스퀴스는 영국을 구성하는 지방들이 공통적인 목적을 함께하기 위해서 합칠 수는 있겠지만, 그 지방들이 중앙 정부에 요청하지 않고서는 내부적인 문제를 대할 수 없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1930년대에는 스코틀랜드부가 에든버러의 세인트 앤드류 하우스로 이전했다. 스코틀랜드 서약은 영국 정부에 자치를 요구하는 청원서였는데, 1930년에 존 맥코믹이 제의했고 1949년 정식으로 작성되었다. 이 서약은 "결국에는 200만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은" 것이었다 (1951년 인구조사에서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510만 명이었다). 다만 주요 정당들은 이 서약을 무시했다.
1979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의 결과는 근소한 차이 (52% 대 48%)로 권력 이양에 찬성했지만, 국민투표의 조건은 투표가 유효하도록 전체 유권자의 40%가 찬성에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투표율은 63.6%에 불과하여 유권자의 32.9%만이 '찬성'에 투표했다. 1978년 스코틀랜드법은 결과적으로 의회에서 301대 206의 표결에 의해 1979년 3월에 폐지되었다.
1979년 이후 보수당 내각의 여러 해 동안에 스코틀랜드 입법부 운동이 창설되었고, 마침내 1989년 청구권을 공표했다. 그런 다음엔 스코틀랜드 헌법 회의에 이르렀다.
1997년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승리했고 스코틀랜드 국무장관이었던 도널드 드워는 스코틀랜드 의회 설립안을 허가했다. 9월에 열린 국민투표에서 권력 이전안에 찬성한 사람은 74.3% (유권자의 44.87%)였다. 이어서 영국 의회는 대부분의 자국내 정책에 관한 지배력을 가진 선출된 스코틀랜드 의회를 설립한다는 1998년 스코틀랜드법을 승인했다. 1999년 5월, 스코틀랜드는 양도받은 의회의 첫번째 선거를 치뤘고 그 해 7월에는 이전 의회가 1707년에 정회된 이래 사상 처음으로 개회했다.
2.4. 2014년 독립 국민투표
2007년 스코틀랜드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2010년에 독립 국민투표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선거 승리 후,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집권한 스코틀랜드 정부는 독립을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위한 선택들을 개괄한 《스코틀랜드의 미래 선택》(Choosing Scotland's Future)이란 제목의 백서를 발간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노동당, 스코틀랜드 보수당, 스코틀랜드 자유민주당은 독립을 선택지로 하는 국민투표에 반대했다.
2011년 스코틀랜드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스코틀랜드 의회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승리하자, 앨릭스 샐먼드 초대 총리는 2014년이나 2015년에 국민 투표를 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2년 1월,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의회에 "공정하고 합법적이며 결단력 있는" 국민 투표를 여는 권한 부여를 제안했다. 양측 정부 간 협의는 2012년 10월 에딘버러 협정으로 이어졌다. 2013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선거권) 법안은 2013년 6월 27일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2013년 8월 7일 여왕의 재가를 받았다.
2014년 9월 19일 오전 6시 24분 (영국 시간), BBC는 최종 국민투표 결과를 전체 투표율 84.5% 중 '반대' 55% (2,001,926표), '찬성' 45% (1,617,989표)로 발표했다. 당선을 위한 총 투표수는 1,852,828표였다. 투표 결과는 32개 의회지역에서 집계되었다. 글래스고에서는 '찬성' 53.5%, '반대' 46.5% (투표율 75%)로 독립을 지지했고, 에든버러에서는 '반대' 61%, '찬성' 39% (투표율 84%)로 독립에 반대했다. 앨리스테어 달링 베터 투게더 대표는 "침묵이 말했다"고 했고, 샐먼드는 "국민의 결정을 받아들이며, 스코틀랜드 모든 분들께 이 민주적 결정을 따르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5.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 결과, 영국은 유럽 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잔류를 선택했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유럽 연합 회원국으로 남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았다.
스코틀랜드 국민당 소속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자 스코틀랜드 독립을 요구했다. 스코틀랜드 정치권은 브렉시트가 성사되면 독립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 독립 관련 쟁점
2016년 영국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 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스코틀랜드는 62% 대 38%로 잔류를 선택했다. 이러한 결과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지도자들에게 제2차 독립 투표를 제안할 명분을 주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수반은 "유럽 연합에서의 우리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제2차 투표가 "매우 유력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테레사 메이 총리의 대변인은 2년 전(2014년) 투표에서 높은 투표율과 스코틀랜드의 영국 잔류라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제2차 투표를 할 권한이 없다고 반박했다.
2019년 영국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스코틀랜드 내 59개 의석 중 48석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스터전은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또 다른 독립 투표 실시를 요청했으나, 존슨 총리는 2014년 투표가 "한 세대에 한 번"이라는 약속을 언급하며 거절했다.
영국이 유럽 단일 시장을 떠나기 직전, 존슨 정부는 2020년 영국 국내 시장 법을 통해 스코틀랜드 의회의 입법 권한을 제한하려 시도했다. 이 법은 스코틀랜드가 웨스트민스터와 다른 경제적, 사회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법이 오히려 스코틀랜드 독립의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3월 스코틀랜드 정부 보고서 역시 이 법이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과 민주적 책임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3.1. 문화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의 문화에 대한 접근 방식은 웨스트민스터와 구별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 독립이 스코틀랜드 정부에게 문화 및 창조 산업을 육성할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립 시, 스코틀랜드 정부는 새로운 국영 방송사 설립 등을 통해 국내 창작 기회를 늘리는 한편, 시청자와 청취자에게 추가 비용 없이 현재의 TV 채널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할 계획이었다.
3.2. 민주주의
민주주의 적자라는 개념은 스코틀랜드 독립을 옹호하는 주장에서 자주 언급된다. 잉글랜드는 영국 인구의 다수(84%)를 차지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선거 결과는 영국 총선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960년대부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평균 투표 패턴은 달라졌다. 스코틀랜드는 1979년 이후 11번의 영국 총선에서 세 번만 과반수의 집권당 의원을 선출했다. 브렉시트는 스코틀랜드 유권자의 62%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여 이러한 우려를 더욱 부각시켰다. 1955년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적이 없는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영국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적자 주장의 근본에는 스코틀랜드가 자기 결정권을 가진 국가라는 가정이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스코틀랜드 인구는 자국의 정치적 문제에 관해 완전한 의사 결정 권한을 갖게 될 것이다. 알렉스 살먼드는 2012년 5월 출시 행사에서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3.3. 국적 및 시민권
영국은 다민족 국가이며, 스코틀랜드인과 영국인은 모두 국가 정체성으로 이해될 수 있고, 둘 다 가질 수도 있다.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복수의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인 대다수는 영국 국가 정체성보다 스코틀랜드 국가 정체성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
현재 '스코틀랜드 시민권'이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적법은 웨스트민스터에 귀속되어 있다. 독립 시,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나머지 지역은 기존 영국 시민에게 영국 및/또는 스코틀랜드 시민권을 할당하고 스코틀랜드의 새로운 국적법을 제정하기 위해 새로운 시민권 법을 설정해야 한다. 2014년 국민투표에서 찬성 측은 스코틀랜드가 이중 국적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코틀랜드에 통상적으로 거주하는 영국 시민과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 시민은 다른 곳에서도 자동으로 스코틀랜드 시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3.4. 경제
기업들이 독립이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면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지출 또는 투자 계획을 연기하거나 심지어 스코틀랜드를 완전히 떠날 수도 있다. 독립 국민투표로 인한 불확실성은 금융 시장과 더 넓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스코틀랜드뿐만 아니라 영국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규모 때문에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은 스코틀랜드에서 더 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경제 성과 센터의 경제 모델링에 따르면 독립은 브렉시트보다 스코틀랜드 경제에 ‘2~3배’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떠나는 것은 무역 장벽에 따라 스코틀랜드의 1인당 소득을 6.5%에서 8.7% 사이로 감소시킬 수 있다. EU에 재가입하는 것은 브렉시트의 비용을 완화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데, EU와의 무역 장벽 제거 비용이 영국과의 무역 장벽 구축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은 나머지 영국으로, 수출 상품 및 서비스에서 51200를 차지하며, EU 국가로의 수출은 16100에 불과하다. 니콜라 스터전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에 따르면, 나머지 영국과의 관세 국경이 필요할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42%는 연합 밖에서 재정적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36%와 비교).
민족주의자들은 독립 스코틀랜드만이 북해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자국 자원을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완전히 활용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14년 알렉스 샐먼드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정부에 따르면, EU 석유 매장량의 64%가 스코틀랜드 해역에 존재했으며, 데이비드 흄 연구소는 "스코틀랜드는 최대 4 가치의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조지 오스본 보수당 재무장관이 징벌적인 세금을 부과하면서 북해 유전 투자는 급격히 감소했고, 이는 독립 스코틀랜드가 주장할 수 있는 예상 수입을 깎아내렸다.
2008년 스코츠맨에 기고한 데이비드 매독스는 피크 오일로 인한 북해 유전 수입 감소를 지적했으며, 10년 이내에 석유 수입은 2008년 최고치의 10%로 떨어졌다. 스코틀랜드 보수당의 루스 데이비슨과 같은 일부는 이 문제를 연합의 더 넓은 틀 내에서 해결하기 위해 공공 지출을 줄이고 더 많은 재정 권한을 스코틀랜드 의회로 이양하고자 한다. 오크니 제도, 셰틀랜드 제도, 서부 제도와 같은 외딴 지역은 불이익을 받거나 석유 수입의 더 많은 몫을 받을 자격이 있다.
독립 스코틀랜드는 세금, 지출 및 차입에 대한 결정에 대해 완전한 자율성을 갖게 된다. 스코틀랜드는 국채를 발행하고 재정 한도를 설정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에 따르면, 스코틀랜드는 현재 영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자본 투자를 제공하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새로운 스코틀랜드 펀드'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재정 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ies)에 따르면, 이 펀드는 추가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독립 스코틀랜드는 공공 재정에 큰 구멍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신문의 분석은 예상보다 낮은 세수, 브렉시트 및 코로나19 범유행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인해 국가의 예산 적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시사한다. 재정 연구소의 간행물은 2020-21년(코로나19 범유행 동안) 스코틀랜드의 국가 적자가 국민 소득의 22%에서 25% 사이였다고 주장하며, 이는 범유행 이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간행물은, 스코틀랜드가 2020년대 중반까지 영국을 떠나면 GDP의 거의 10%에 달하는 적자를 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스코틀랜드는 적자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독립 후 1인당 1765GBP에 해당하는 세금을 인상하거나 공공 지출을 삭감해야 할 것이다. 공공 지출에 대한 단기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지만, 여전히 유용한 예측을 제공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 위원회의 보고서는 적자를 GDP의 3%로 줄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3.5. 통화
2014년 국민투표 이전에, 독립 스코틀랜드의 통화 문제와 관련하여 파운드 스털링을 계속 사용할지, 유로화를 채택할지, 또는 스코틀랜드 통화 (흔히 "스코틀랜드 파운드"라고 함)를 도입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스코틀랜드가 유럽 연합과 관련하여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한 이견과 잉글랜드 은행이 독립 스코틀랜드와의 통화 동맹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점 때문에 독립 직후에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었다. 2014년 8월, HSBC 회장 더글러스 플린트는 독립 스코틀랜드 통화가 도입되거나 스코틀랜드가 유로존에 가입할 경우 자본 도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스코틀랜드 독립 이후 일정 기간 동안 파운드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잉글랜드 은행 통화 정책 위원회 창립 멤버인 데임 디앤 줄리어스는 이를 "스코틀랜드에 매우 위험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 니콜라 스터전은 독립 이후 스코틀랜드가 파운드 스털링을 계속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 통화 정책은 잉글랜드 은행이 결정할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이후 스코틀랜드 중앙 은행을 설립하고 "경제 상황이 적절해지면" 스코틀랜드 파운드로 전환할 것이다. 스코틀랜드 파운드 도입은 스코틀랜드 의회 결정에 따르며, 스코틀랜드 중앙 은행이 신뢰성을 확보하고 외환 보유고가 충분하며 스코틀랜드가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고정 또는 변동 환율로 운영될 수 있다.
3.6. 국방
국방 및 외교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되면 독립 스코틀랜드는 클라이드 만에 배치된 트라이던트 핵무기의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 핵 군축은 오랫동안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과 관련된 문제였으며, 스코틀랜드 핵 군축 운동은 이러한 기반으로 독립을 지지한다.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은 스코틀랜드에 트라이던트 핵 억지력이 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2022년 독립 투표가 있더라도, 스코틀랜드인 45%는 핵 억지력이 스코틀랜드에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34%는 반대한다. 연합 상태에서는 스코틀랜드인의 58%가 핵 억지력 유지를 지지하며, 단 20%만이 이를 확실히 폐지하기를 원한다. 스코틀랜드 독립으로 인해 핵 억지력이 더 이상 스코틀랜드에 있을 수 없게 된다면, 재배치 비용으로 인해 영국 제도 내에서 핵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위험이 있다. 2019년, NATO 사무총장은 영국 핵 억지력 유지가 NATO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스코틀랜드인 73%는 독립 스코틀랜드가 NATO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며, 단 8%만이 이에 반대한다.
영국 국방 저널은 스코틀랜드의 국방은 영국 연합의 일부로서 가장 잘 제공된다고 적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집단 방위군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으며, 독립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방위 태세를 약화시킬 것이다. 트라이던트 외에도 스코틀랜드에는 많은 영국의 국방 시설이 있으며,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영국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12,000명의 군인이 있으며, 국방 산업에 18,500개의 민간 일자리가 더 있다. 웨스트 경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20,000개 또는 25,000개의 국방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영국 정부 보고서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의 국방의 모든 측면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새로운 스코틀랜드 정부가 처음부터 많은 국방 인프라와 서비스를 구축해야 하며, 스코틀랜드에 있는 기존의 국방 자산이 영국 전체의 국방 구조에 잘 통합되어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독립 스코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주둔하거나 스코틀랜드에서 모집된 기존의 영국 군 부대를 활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3.7. 외교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4년 독립 계획에서 스코틀랜드가 유엔,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럽 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가들은 국제 정치에서 자율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가적 이익과 가치를 증진하고, 스코틀랜드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스코틀랜드를 국제적으로 홍보하고 다른 정부에 로비하기 위해 전 세계에 스코틀랜드 대사관을 설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2014년 국민투표 당시 독립 반대 논리의 핵심은 스코틀랜드가 EU 밖에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스코틀랜드는 EU 회원국 지지가 강하여, 2016년 EU 국민투표에서 62%가 잔류에 투표했다. 브렉시트 이후, 많은 사람이 EU 재가입 기회를 얻고자 두 번째 독립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영국 소속으로서 스코틀랜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 G7,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스코틀랜드인 82%는 이러한 기구에 대한 영국의 회원 자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 연합의 추가 통합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유럽 내에서 독립하더라도 'EU 3개국' 밖에 있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독립 국가인 스코틀랜드가 더 큰 회원국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어 소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3.8. 영국과의 관계
스코틀랜드와 나머지 영국 사이에는 종교 개혁과 왕관 연합에서부터 대영 제국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참여,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산업 혁명의 기여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역사적, 현대적 유대 관계가 존재한다. 현대 대중문화 또한 주로 영어 사용을 통해 공유된다. 스코틀랜드 인구의 거의 절반이 잉글랜드에 친척을 두고 있다. 2011년 인구 조사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약 70만 명의 성인이 나머지 영국에 거주했으며, 영국에서 태어난 약 47만 명의 성인이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여 거주했다. 스코틀랜드 군수 산업 복합체와도 중요한 경제적 연관성이 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이 주장했듯이 금융 부문 내에서도 긴밀한 관계가 존재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의 미래'에서 독립 스코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영국의 다른 국가들과 묶는 많은 다른 유대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영국 제도 내에서 가족, 역사, 문화 및 언어의 사회적 연합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썼다. 영국 정부는 상호 이익에 기반한 두 주권 국가의 관계가 하나의 국가의 일부가 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썼으며, 따라서 모든 협력은 스코틀랜드뿐만 아니라 나머지 영국의 이익에도 부합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두 번째 독립 국민 투표를 제안하면서 독립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표된 일련의 논문 '새로운 스코틀랜드 건설'에서 "독립은 스코틀랜드와 영국 및 아일랜드 관계의 진화에 새로운 국면을 열 것이다. 공유된 역사, 스포츠, 문화, 언어 및 가족 관계의 '사회적 연합'은 이전과 같이 지속될 것이며, 갱신된 스코틀랜드 민주주의는 이 섬들 전체에 긍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독립 스코틀랜드가 "국방 및 안보 문제에 관해 이 섬 전역에서 가깝고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는 회원 간 협력 증진을 목표로 하는 정부 간 기구인 영국-아일랜드 평의회의 회원이다.
3.9. 법적 문제
영국은 불문 헌법을 가지고 있어, 스코틀랜드 독립을 제정할 권한을 가진 기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의회 주권 원칙에 따라 영국 의회는 국민투표 없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제정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에 대한 의회 주권 적용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컬로스 경 쿠퍼는 MacCormick v The Lord Advocate 사건에서 "의회의 무제한 주권 원칙은 ... 독특한 영국의 원칙이다"라고 언급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연합 조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두 독립 국가가 체결한 조약이므로 의회가 연합 법을 폐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임스 크로포드 교수와 앨런 보일 교수는 연합 조약이 조약으로 간주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의회가 연합 창설 조건을 수정할 수 없다는 개념은 연합 법이 의회에 의해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는 사실로 반박된다.
영국 구성 국가가 영국의 헌법 관례 밖에서 사실상 독립을 달성하거나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하는 것의 합법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국제법에 따르면 일방적인 선언은 "국가 승인 선언 이론"은 충족할 수 있지만, "국가 구성 이론"은 충족하지 못한다.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분리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질문에 대한 국민투표를 허용한다면 스코틀랜드는 국제법상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수 없을 것이다.
유엔 헌장은 민족의 자결권을 명시하고 있으며, 세계 인권 선언 또한 민족의 국적 변경 권리를 보장한다. 영국은 두 문서 모두에 서명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정치인들은 스코틀랜드 국민의 자결권을 지지했다.
스코틀랜드 정부가 독립 투표를 실시할 권한과 스코틀랜드 의회가 독립 투표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의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2022년 11월, 영국 대법원은 스코틀랜드 의회가 독립 투표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1998년 스코틀랜드법(Scotland Act 1998)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국의 연합"에 대한 권한을 영국 의회에 유보했다. 이 법의 섹션 29(2)에 따라 "유보된 사항과 관련"된 조항은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 밖에 있으며, 이는 영국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되었다.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의 헌법적 합법성을 보장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정부와 영국 정부는 에든버러 협정(2012년)(Edinburgh Agreement)에 서명했다.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은 이 협정은 스코틀랜드 의회에 2014년 말까지 독립 투표를 실시할 특별한 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두 번째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second Scottish independence referendum)와 관련해서는 그러한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법적 지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2019년 12월, 독립을 지지하는 무소속 후보인 마틴 키팅스는 세션 법원에 선언을 구했지만, 이 사건은 가설적인 성격으로 인해 자격이 없다고 기각되었다. 2021년 4월 항소가 제기되었지만, 이 항소는 기각되었다.
2021년 3월 22일, 두 번째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초안(Proposed second Scottish independence referendum)이 발표되면서 합법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2022년 6월 28일, 스터전은 투표의 합법성과 헌법성이 보장될 경우 2023년에 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제안된 투표가 "자문적이며 자동 시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투표를 실시할 권한이 스코틀랜드 의회의 권한에 속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대법원에 사건을 제기했으며, 2022년 10월 11일과 12일에 심리가 열렸다. 한 달 후, 영국 대법원은 스코틀랜드 의회가 독립 투표를 실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4. 독립 지지 및 반대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스코틀랜드 녹색당, 알바당, 스코틀랜드 사회당 등도 독립을 지지한다. 2021년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이들 독립 지지 정당은 전체 129석 중 72석(SNP 64석, 녹색당 8석)을 차지했다. SNP는 스코틀랜드가 영연방 왕국이 되기를 원하지만, 다른 독립 지지 정당들은 독립 공화국을 지향한다.
스코틀랜드 독립 협약은 독립 지지자들을 위한 포럼을 제공하고, 스코틀랜드 공화 사회주의 운동은 독립 공화국을 주장한다. 2014년 국민투표 당시 Yes Scotland 캠페인 외에도 국가 집단, 급진적 독립 캠페인 등 다양한 단체들이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2014년 국민투표 당시 선데이 헤럴드 만이 "예스" 투표를 지지했으며, 독립 지지 일간지 The National은 국민투표 패배 이후 창간되었다. All Under One Banner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대중 행진을 개최한다.
반면, 스코틀랜드 의회의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은 연합 유지를 지지하며, 더 나은 함께 캠페인을 결성했다. 영국 독립당, All for Unity, 개혁 영국, 스코틀랜드 의회 폐지당 등도 독립에 반대한다.
스코틀랜드 유니온은 연합 유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오렌지 오더는 British Together 캠페인을 통해 독립에 반대했다. 버락 오바마 등 외국 지도자들도 영국의 통합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