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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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 2. 기획 의도
- 3. 진행자
- 4. 에피소드 목록
- 4.1. 1994년
- 4.2. 1995년
- 4.2.1. 1월 7일: 계유정난 - 수양대군과 김종서
- 4.2.2. 1월 14일: 소격서 혁파 문제 - 중종과 조광조
- 4.2.3. 1월 21일: 허균과 이이첨, 적인가 등지인가
- 4.2.4. 1월 28일: 무인시대 - 최충헌과 이의민
- 4.2.5. 2월 4일: 여성의 굴레를 이겨낸 황진이와 허난설헌
- 4.2.6. 2월 11일: 1년 복이냐, 3년 복이냐 - 송시열과 허목
- 4.2.7. 2월 18일: 성삼문과 신숙주
- 4.2.8. 3월 4일: 김옥균과 민영익
- 4.2.9. 3월 11일: 일본은 온다, 오지 않는다 - 김성일과 황윤길
- 4.2.10. 3월 18일: 광해군과 인목대비
- 4.2.11. 4월 1일: 원효와 의상대사
- 4.2.12. 4월 8일: 고려냐, 조선이냐 - 최영,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
- 4.2.13. 4월 15일: 같은 뜻 다른 길 - 이성계와 이색
- 4.2.14. 4월 22일: 왕자의 난 - 이방원과 정도전
- 4.2.15. 4월 29일: 왕의 길 부자의 길 - 태조와 태종
- 4.2.16. 5월 6일: 전하, 아니되옵니다 - 왕과 사관 (세종과 맹사성)
- 4.2.17. 5월 13일: 단군조선이냐 기자조선이냐 - 세종과 최만리
- 4.2.18. 5월 20일: 청백리도 순위가 있소이다! - 황희와 맹사성
- 4.2.19. 5월 27일: 단종의 두 숙부 -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 4.2.20. 6월 3일: 왕의 정치 신하의 정치 - 세조와 한명회
- 4.2.21. 6월 10일: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 - 김종직과 성준
- 4.2.22. 6월 17일: 무오사화 - 김일손과 이극돈
- 4.2.23. 7월 8일: 갑자사화의 두 인물 - 임사홍과 성현
- 4.2.24. 7월 15일: 연산의 두 환관 - 김처선과 김자원
- 4.2.25. 7월 22일: 소격서를 혁파하소서 - 왕과 대간
- 4.2.26. 7월 29일: 나뭇잎의 주초위왕, 어디까지 사실인가 - 조광조와 남곤
- 4.2.27. 8월 26일: 서경덕과 황진이
- 4.2.28. 9월 2일: 학자의 길, 처사의 길 - 이황과 조식
- 5. 제작진
- 참조
1. 개요
'역사의 라이벌'은 우리 역사 속 대립, 대조되는 두 인물을 설정하여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재조명하는 역사 프로그램이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순신과 원균, 김상헌과 최명길, 이성계와 최영,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정몽주와 정도전,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도세자와 탕평책, 김옥균과 민영익 등 역사적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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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라이벌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 |
---|---|
프로그램 정보 | |
방송명 | 역사의 라이벌 |
장르 | 시사 교양 |
방송 채널 | KBS1 |
방송 기간 | 1994년 10월 22일 ~ 1995년 9월 2일 |
방송 시간 | 매주 토요일 밤 20:00 ~ 21:00 |
방송 분량 | 60분 |
전편 | 다큐멘터리극장 |
2. 기획 의도
한국사 속 대립, 대조되는 두 인물을 설정하여 그들의 시대 인식과 역사의식을 재조명하고, 한국 역사를 긍정적으로 되새겨 보는 역사 프로그램이다.
3. 진행자
4. 에피소드 목록
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
1 | 1994년 10월 22일 |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이순신과 원균 | 하상길, 김인석, 임혁, 김종철, 이한승, 임홍식, 김기복, 한근욱, 권병준, 차기환, 김원배, 장기수, 김경응, 이종길 |
2 | 1994년 10월 29일 | 그대는 찢으시오, 나는 맞추리니 - 김상헌과 최명길 | 신구, 안대용, 이일웅, 오영갑, 박칠용, 이원종, 반문섭, 장정국, 박경득, 박영목, 홍영자, 기정수, 김창봉, 안형식, 임영식, 이문환, 이현두, 김진오, 허기호, 박현정, 차기환, 이종길, 박승규, 권병준, 오성열, 양재원, 신용규, 서미애, 이은주 |
4 | 1994년 11월 12일 |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 1부 | 송재호, 김청, 백준기, 장희진, 정재순, 이종만, 윤덕용, 김시원, 맹호림, 하대경, 임병기, 이춘식, 이계영, 정호근, 배미자, 이일랑, 임영식, 이용진, 정용환, 강민석, 송치곤, 이미나, 서모란, 이경환, 김소연 |
5 | 1994년 11월 19일 |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 2부 | 송재호, 김청, 백준기, 김성겸, 이일웅, 이치우, 정재순, 윤덕용, 하대경, 임병기, 이춘식, 이계영, 이일랑, 정용환, 김성찬, 이미나, 서모란, 김성수, 김광영 |
6 | 1994년 11월 26일 | 역사가 만든 적과 동지,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 안대용, 이신재, 김진태, 김진해, 변희봉, 김봉근, 양재성, 김종구, 이두섭, 박건식, 박칠용, 손호균, 이광기, 진운성, 박유승, 김석태 |
7 | 1994년 12월 3일 | 두 여인의 변명 - 장희빈과 인현왕후 1부 | 이은경, 신영진, 임영규, 남윤정, 안영주, 이정웅, 박영목, 이종구, 박현정, 서미애, 박유승, 정현기, 이한승, 장기수, 배영철, 김종철, 김대운, 임용석, 박남춘, 김선영, 문은희, 오영순, 최원주, 최흘, 정태우 |
8 | 1994년 12월 10일 | 두 연인의 변명 - 장희빈과 인현왕후 2부 | 이은경, 신영진, 임영규, 김새영, 이한승, 김원배, 양재원, 박남춘, 서미애, 박현정, 장기수, 임홍식, 권오균, 김대운, 연우종, 허건영, 문은희, 김선영, 임용석, 최흘, 정태우, 박진훈 |
9 | 1994년 12월 17일 | 사도세자 죽음의 비밀 - 탕평책과 붕당 | 임혁주, 김성겸, 서학, 박영목, 이일웅, 이원종, 안형식, 박승규, 양재원, 서미애, 김원배, 전병옥, 조정국, 이종길, 김정우 |
10 | 1995년 1월 7일 | 계유정난 - 수양대군과 김종서 | 김흥기, 민욱, 주호성, 문창길, 강태기, 신동훈, 이문환, 이신재, 김성원, 박칠용, 홍승일, 윤준식, 이한승, 이동주, 이계영, 박유승, 이종길, 정철, 강신조, 배윤진 |
11 | 1995년 1월 14일 | 소격서 혁파 문제 - 중종과 조광조 | 임혁, 박진성, 임병기, 김시원, 박건식, 반문섭, 오영갑, 김성찬, 김형일, 손호균, 이미나, 박용식, 하대경, 이기철, 고광우, 이계영, 배미자, 김기준, 송치곤, 이일랑, 서모란, 이한위, 임영식, 전용환, 임종순, 이경훈 |
12 | 1995년 1월 21일 | 허균과 이이첨, 적인가 등지인가 | 나한일, 김희라, 윤승원, 안병경, 김기복, 오성열, 장기용, 박상만, 이종구, 이한승, 김새영, 박용식, 이한위, 고명안, 박이남, 연우종, 임용석, 배영철, 권오균, 김주영, 김연진, 허건영, 김혜경, 이재석, 이정 |
13 | 1995년 1월 28일 | 무인시대 - 최충헌과 이의민 | 김윤형, 오영갑, 박경득, 안형식, 반문섭, 박영목, 박승규, 한현배, 조정국, 김창봉, 안광진, 권병준, 윤진호, 이기철, 차기환, 김성희, 전병옥, 이계영, 오성렬, 양재원, 임영식, 신용규, 이종길, 강민석, 심훈보 |
14 | 1995년 2월 4일 | 여성의 굴레를 이겨낸 황진이와 허난설헌 | 노경주, 금보라, 박주아, 남윤정, 박현정, 서상익, 김종결, 윤덕용, 맹호림, 조재훈, 박영목, 안광진, 장영주, 한현배, 이두섭, 송희남, 선동혁, 이계영, 박해상, 박상규, 이경실, 김원배, 이선희, 박미지, 유지연, 유종호 |
15 | 1995년 2월 11일 | 1년 복이냐, 3년 복이냐 - 송시열과 허목 | 김성겸, 임혁, 이정웅, 반문섭, 하대경, 김시원, 박건식, 임병기, 임영식, 이계영, 박진성, 이광기, 김형일, 이한위, 손호균, 조재훈, 안해숙, 송희남, 배미자, 송치곤, 정용환, 김희진, 이미나, 정미숙, 한유림, 소병철, 이기철, 정훈희 |
16 | 1995년 2월 18일 | 성삼문과 신숙주 | 박진성, 백준기, 임영규, 주호성, 김성겸, 박병호, 윤덕용, 박건식, 이문환, 박해상, 조재훈, 이두섭, 김동완, 정소녀, 진운성, 최상길, 박유승, 이우석, 이채우, 김서형, 정태우, 박루시아, 이정윤, 윤다라, 홍예나 |
17 | 1995년 3월 4일 | 김옥균과 민영익 | 차기환, 김원배, 박경득, 안형식, 유순철, 기정수, 이종남, 조정국, 신용규, 양재원, 이기철, 배도환, 오성열, 윤진호, 이종길, 강민석, 강신조 |
18 | 1995년 3월 11일 | 일본은 온다, 오지 않는다 - 김성일과 황윤길 | 김흥기, 박칠용, 김창봉, 전병옥, 최헌철, 이신재, 김봉근, 이정웅, 양영준, 박용식, 이한승, 한현배, 허기호, 박건식, 문창길, 이문환, 박승규, 곽경환, 이두섭, 이계영, 기정수, 차양희, 송희남, 강민석, 안광진, 배도환, 양재원, 이기철, 이종길, 이일랑, 박희진, 전용환 |
19 | 1995년 3월 18일 | 광해군과 인목대비 | 임혁주, 서미애, 안병경, 박용식, 김희라, 박현정, 박칠용, 박상만, 이한승, 이종구, 배영철, 양형호, 권오균, 이두섭, 손호균, 이기철, 정형기, 손종범, 박이남, 허건영, 이정 |
20 | 1995년 4월 1일 | 원효와 의상 | 임혁, 이문환, 최선아, 이미나, 임영식, 임병기, 이종만, 안해숙, 김시원, 오영갑, 박건식, 박승규, 하대경, 안형식, 고희준, 송치곤, 이기철, 손호균, 배미자, 박혜경, 김연진, 박영숙, 전은표 |
21 | 1995년 4월 8일 | 고려냐, 조선이냐 - 최영,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 | 박병호, 나한일, 김진태, 이신재, 안대용, 이정웅, 박영목, 이광기, 선동혁, 김진해, 허기호, 기정수, 박용식, 변희봉, 김봉근, 양재성, 김종구, 이두섭, 손호균, 박건식, 전병옥, 박칠용, 진운성 |
22 | 1995년 4월 15일 | 같은 뜻 다른 길 - 이성계와 이색 | 김성겸, 김진해, 이신재, 변희봉, 이정웅, 임영규, 이종만, 박영목, 김기섭, 김봉근, 박경득, 유순철, 이계영, 김기복, 배미자, 신종섭, 김기진, 김영기, 김원배, 정승곤, 박유승, 강신조, 서재영 |
23 | 1995년 4월 22일 | 왕자의 난 - 이방원과 정도전 | 변희봉, 김성겸, 임영규, 안병경, 이두섭, 장서희, 박용식, 권오균, 배영철, 양학용, 박종보, 박이남, 허건영, 백준영, 이남혁 |
24 | 1995년 4월 29일 | 왕의 길 부자의 길 - 태조와 태종 | 임영규, 김성겸, 안형식, 박용식, 박영목, 오영갑, 박경득, 박승규, 김창봉, 조정국, 김원배, 허기호, 안광진, 서미애, 한경선, 한현배, 이종길, 임영식, 박혜경, 송복철 |
25 | 1995년 5월 6일 | 전하, 아니되옵니다 - 왕과 사관 (세종과 맹사성) | 임혁, 박진성, 신구, 박병호, 양택조, 박건식, 서학, 안대용, 김종구, 강태기, 태민영, 이두섭, 조재훈, 손호균, 이계영, 차기환, 이동준, 이동신, 이종남, 류복녀, 강민석, 진운성 |
26 | 1995년 5월 13일 | 단군조선이냐 기자조선이냐 - 세종과 최만리 | 서인석, 김흥기, 김종결, 김시원, 임병기, 최선아, 배미자, 김희진, 김형일, 하대경, 반문섭, 이계영, 이한위, 김영선, 임영식, 이미나, 이기철, 김현성, 송치곤, 권소영, 이경훈 |
27 | 1995년 5월 20일 | 청백리도 순위가 있소이다! - 황희와 맹사성 | 안대용, 임혁, 박병호, 서인석, 백인철, 이한나, 이한승, 남윤정, 박칠용, 문창길, 김주영, 조은덕, 한현배, 이두섭, 전병옥, 박해상, 손호균, 이계영, 김기복, 이제신, 장정희, 차양희, 한정국, 김백수, 고진학, 박혜경, 문윤선 |
28 | 1995년 5월 27일 | 단종의 두 숙부 -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 임혁주, 노영국, 김희라, 이정웅, 박상만, 박영목, 이한승, 김새영, 주호성, 이문환, 신동훈, 양학용, 배영철, 이두섭, 권오균, 박종보, 박이남, 강민석, 정형기, 허건영, 이재석 |
29 | 1995년 6월 3일 | 왕의 정치 신하의 정치 - 세조와 한명회 | 임혁주, 주호성, 백준기, 박정웅, 김창봉, 오영갑, 안광진, 안형식, 차기환, 조정국, 황덕재, 양재원 |
30 | 1995년 6월 10일 |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 - 김종직과 성준 | 임혁, 송재호, 안대용, 변희봉, 김진태, 양택조, 김봉근, 태민영, 박진성, 강태기, 김하림, 김종구, 박경득, 박종설, 서학, 김창봉, 차기환, 박유승 |
31 | 1995년 6월 17일 | 무오사화 - 김일손과 이극돈 | 김진태, 박진성, 변희봉, 이광기, 임혁, 양택조, 안대용, 박경득, 박칠용, 조재훈, 김동완, 김봉근, 맹호림, 태민영, 김하림, 김종구, 강태기, 차기환, 박유승, 진운성 |
32 | 1995년 7월 8일 | 갑자사화의 두 인물 - 임사홍과 성현 | 이대로, 김흥기, 김주영, 양택조, 강태기, 박용식, 배미자, 장칠군, 한현배, 박칠용, 조재훈, 유병준, 최헌철, 이경영, 김성수, 강신조, 정태우, 김영민 |
33 | 1995년 7월 15일 | 연산군의 두 환관 - 김처선과 김자원 | 이정웅, 박칠용, 김주영, 김흥기, 박경득, 장칠군, 이한나, 연운경, 이한수, 유병준, 최헌철, 한정국, 기정수, 노영화, 윤성국, 배미자, 이계영, 손호균, 김원배, 강신조, 양기철, 이대원, 진태원, 김영민 |
34 | 1995년 7월 22일 | 소격서를 혁파하소서 - 왕과 대간 | 임혁주, 이배국, 정운용, 권성덕, 유병준, 나영진, 유순철, 서영진, 박상규, 홍유진, 이강수, 이계영, 맹봉학, 홍륜의, 박상만, 허기호, 오기환 |
35 | 1995년 7월 29일 | 나뭇잎의 주초위왕, 어디까지 사실인가 - 조광조와 남곤 | 정운용, 임혁주, 이배국, 권성덕, 유순철, 강만희, 심우창, 허기호, 나영진, 이두섭, 박상만, 홍륜의, 이영재, 이한위, 권오균, 이종길 |
36 | 1995년 8월 26일 | 서경덕과 황진이 | 김미라, 서학, 서우림, 남일우, 이종만, 선동혁, 양재성, 홍영자, 이일웅, 태민영, 김형자, 이우석, 이원발, 전병옥, 김하균, 이재연, 이계영, 임찬호, 황선정, 명정옥, 현영임, 이준아, 조광식, 김지현 |
37 | 1995년 9월 2일 | 학자의 길, 처사의 길 - 이황과 조식 | 신구, 안대용, 서우림, 안해숙, 양택조, 김종구, 김하림, 박진성, 김기복, 이문환, 김형일, 김주영, 조재훈, 박칠용, 이동신, 이두섭, 양형호, 이계영, 박유승, 손종범, 김영선, 진운성, 박종설, 김상중 |
4. 1. 1994년
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
2 | 10월 29일 | 그대는 찢으시오, 나는 맞추리니 - 김상헌과 최명길 | 신구, 안대용, 이일웅, 오영갑, 박칠용, 이원종, 반문섭, 장정국, 박경득, 박영목, 홍영자, 기정수, 김창봉, 안형식, 임영식, 이문환, 이현두, 김진오, 허기호, 박현정, 차기환, 이종길, 박승규, 권병준, 오성열, 양재원, 신용규, 서미애, 이은주 |
4 | 11월 12일 |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 1부 | 송재호, 김청, 백준기, 장희진, 정재순, 이종만, 윤덕용, 김시원, 맹호림, 하대경, 임병기, 이춘식, 이계영, 정호근, 배미자, 이일랑, 임영식, 이용진, 정용환, 강민석, 송치곤, 이미나, 서모란, 이경환, 김소연 |
5 | 11월 19일 |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 2부 | 송재호, 김청, 백준기, 김성겸, 이일웅, 이치우, 정재순, 윤덕용, 하대경, 임병기, 이춘식, 이계영, 이일랑, 정용환, 김성찬, 이미나, 서모란, 김성수, 김광영 |
6 | 11월 26일 | 역사가 만든 적과 동지,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 안대용, 이신재, 김진태, 김진해, 변희봉, 김봉근, 양재성, 김종구, 이두섭, 박건식, 박칠용, 손호균, 이광기, 진운성, 박유승, 김석태 |
7 | 12월 3일 | 두 여인의 변명 - 장희빈과 인현왕후 1부 | 이은경, 신영진, 임영규, 남윤정, 안영주, 이정웅, 박영목, 이종구, 박현정, 서미애, 박유승, 정현기, 이한승, 장기수, 배영철, 김종철, 김대운, 임용석, 박남춘, 김선영, 문은희, 오영순, 최원주, 최흘, 정태우 |
8 | 12월 10일 | 두 연인의 변명 - 장희빈과 인현왕후 2부 | 이은경, 신영진, 임영규, 김새영, 이한승, 김원배, 양재원, 박남춘, 서미애, 박현정, 장기수, 임홍식, 권오균, 김대운, 연우종, 허건영, 문은희, 김선영, 임용석, 최흘, 정태우, 박진훈 |
9 | 12월 17일 | 사도세자 죽음의 비밀 - 탕평책과 붕당 | 임혁주, 김성겸, 서학, 박영목, 이일웅, 이원종, 안형식, 박승규, 양재원, 서미애, 김원배, 전병옥, 조정국, 이종길, 김정우 |
4. 1. 1. 10월 22일: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이순신과 원균
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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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0월 22일 | 임진왜란의 일등공신, 이순신과 원균 | 하상길, 김인석, 임혁, 김종철, 이한승, 임홍식, 김기복, 한근욱, 권병준, 차기환, 김원배, 장기수, 김경응, 이종길 |
4. 1. 2. 10월 29일: 그대는 찢으시오, 나는 맞추리니 - 김상헌과 최명길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의 관계 설정을 두고 김상헌과 최명길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최명길은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현실적인 선택을 중시하였다. 반면 김상헌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명분론을 내세웠다.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히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조선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의 충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최명길의 현실적인 선택은 백성을 전쟁의 고통에서 구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길이었지만, 김상헌이 주장한 명분론은 조선이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와 명예를 지키는 것이었다.
4. 1. 3. 11월 5일: 위화도 회군 - 이성계와 최영
威化島 回軍|위화도 회군중국어은 1388년(우왕 14년) 음력 5월,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을 함락하고 최영을 제거하며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1388년, 명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했다. 이에 고려 조정은 요동 정벌을 결정했고, 이성계는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성계는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에 나섰으나,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심했다.
회군 후, 이성계는 개경을 공격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켰다. 이로써 이성계는 정권을 장악하고, 훗날 조선을 건국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출연진'''
4. 1. 4. 11월 12일 ~ 19일: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 1, 2부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은 을미사변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사건은 외세의 개입과 조선 왕실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과 명성황후 1부와 2부의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1부 (11월 12일) | 2부 (1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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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5. 11월 26일: 역사가 만든 적과 동지,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鄭夢周|정몽주중국어와 鄭道傳|정도전중국어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격변기를 함께 살았던 인물들이다. 정몽주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려 했고,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주도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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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1월 26일 | 역사가 만든 적과 동지,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 안대용, 이신재, 김진태, 김진해, 변희봉, 김봉근, 양재성, 김종구, 이두섭, 박건식, 박칠용, 손호균, 이광기, 진운성, 박유승, 김석태 |
4. 1. 6. 12월 3일 ~ 10일: 두 여인의 변명 - 장희빈과 인현왕후 1, 2부
張禧嬪|장희빈중국어과 인현왕후는 조선 숙종 시대의 대표적인 두 여인으로, 왕의 총애를 둘러싼 갈등과 궁중 암투의 중심에 있었다.1부 (1988.12.03) | 2부 (1988.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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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은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숙종의 사랑을 받았으나, 지나친 욕심과 권력욕으로 인해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인현왕후는 어진 성품과 덕망을 갖춘 왕비였으나, 장희빈의 계략으로 인해 폐위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 두 여인의 이야기는 권력의 덧없음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궁중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4. 1. 7. 12월 17일: 사도세자 죽음의 비밀 - 탕평과 붕당
탕평책과 붕당은 조선 영조 시대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이다. 1762년(영조 38년)에 일어난 사도세자의 죽음은 붕당정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12월 17일 9회 방송에서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을 다루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왕실의 비극을 넘어, 당시 조선 정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출연진은 임혁주, 김성겸, 서학, 박영목, 이일웅, 이원종, 안형식, 박승규, 양재원, 서미애, 김원배, 전병옥, 조정국, 이종길, 김정우 등이었다.
4. 2. 1995년
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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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995년 1월 7일 | 계유정난 - 수양대군과 김종서 | 김흥기, 민욱, 주호성, 문창길, 강태기, 신동훈, 이문환, 이신재, 김성원, 박칠용, 홍승일, 윤준식, 이한승, 이동주, 이계영, 박유승, 이종길, 정철, 강신조, 배윤진 |
11 | 1995년 1월 14일 | 소격서 혁파 문제 - 중종과 조광조 | 임혁, 박진성, 임병기, 김시원, 박건식, 반문섭, 오영갑, 김성찬, 김형일, 손호균, 이미나, 박용식, 하대경, 이기철, 고광우, 이계영, 배미자, 김기준, 송치곤, 이일랑, 서모란, 이한위, 임영식, 전용환, 임종순, 이경훈 |
12 | 1995년 1월 21일 | 허균과 이이첨, 적인가 등지인가 | 나한일, 김희라, 윤승원, 안병경, 김기복, 오성열, 장기용, 박상만, 이종구, 이한승, 김새영, 박용식, 이한위, 고명안, 박이남, 연우종, 임용석, 배영철, 권오균, 김주영, 김연진, 허건영, 김혜경, 이재석, 이정 |
13 | 1995년 1월 28일 | 무인시대 - 최충헌과 이의민 | 김윤형, 오영갑, 박경득, 안형식, 반문섭, 박영목, 박승규, 한현배, 조정국, 김창봉, 안광진, 권병준, 윤진호, 이기철, 차기환, 김성희, 전병옥, 이계영, 오성렬, 양재원, 임영식, 신용규, 이종길, 강민석, 심훈보 |
14 | 1995년 2월 4일 | 여성의 굴레를 이겨낸 황진이와 허난설헌 | 노경주, 금보라, 박주아, 남윤정, 박현정, 서상익, 김종결, 윤덕용, 맹호림, 조재훈, 박영목, 안광진, 장영주, 한현배, 이두섭, 송희남, 선동혁, 이계영, 박해상, 박상규, 이경실, 김원배, 이선희, 박미지, 유지연, 유종호 |
15 | 1995년 2월 11일 | 1년 복이냐, 3년 복이냐 - 송시열과 허목 | 김성겸, 임혁, 이정웅, 반문섭, 하대경, 김시원, 박건식, 임병기, 임영식, 이계영, 박진성, 이광기, 김형일, 이한위, 손호균, 조재훈, 안해숙, 송희남, 배미자, 송치곤, 정용환, 김희진, 이미나, 정미숙, 한유림, 소병철, 이기철, 정훈희 |
16 | 1995년 2월 18일 | 성삼문과 신숙주 | 박진성, 백준기, 임영규, 주호성, 김성겸, 박병호, 윤덕용, 박건식, 이문환, 박해상, 조재훈, 이두섭, 김동완, 정소녀, 진운성, 최상길, 박유승, 이우석, 이채우, 김서형, 정태우, 박루시아, 이정윤, 윤다라, 홍예나 |
17 | 1995년 3월 4일 | 김옥균과 민영익 | 차기환, 김원배, 박경득, 안형식, 유순철, 기정수, 이종남, 조정국, 신용규, 양재원, 이기철, 배도환, 오성열, 윤진호, 이종길, 강민석, 강신조 |
18 | 1995년 3월 11일 | 일본은 온다, 오지 않는다 - 김성일과 황윤길 | 김흥기, 박칠용, 김창봉, 전병옥, 최헌철, 이신재, 김봉근, 이정웅, 양영준, 박용식, 이한승, 한현배, 허기호, 박건식, 문창길, 이문환, 박승규, 곽경환, 이두섭, 이계영, 기정수, 차양희, 송희남, 강민석, 안광진, 배도환, 양재원, 이기철, 이종길, 이일랑, 박희진, 전용환 |
19 | 1995년 3월 18일 | 광해군과 인목대비 | 임혁주, 서미애, 안병경, 박용식, 김희라, 박현정, 박칠용, 박상만, 이한승, 이종구, 배영철, 양형호, 권오균, 이두섭, 손호균, 이기철, 정형기, 손종범, 박이남, 허건영, 이정 |
20 | 1995년 4월 1일 | 원효와 의상 | 임혁, 이문환, 최선아, 이미나, 임영식, 임병기, 이종만, 안해숙, 김시원, 오영갑, 박건식, 박승규, 하대경, 안형식, 고희준, 송치곤, 이기철, 손호균, 배미자, 박혜경, 김연진, 박영숙, 전은표 |
21 | 1995년 4월 8일 | 고려냐, 조선이냐 - 최영,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 | 박병호, 나한일, 김진태, 이신재, 안대용, 이정웅, 박영목, 이광기, 선동혁, 김진해, 허기호, 기정수, 박용식, 변희봉, 김봉근, 양재성, 김종구, 이두섭, 손호균, 박건식, 전병옥, 박칠용, 진운성 |
22 | 1995년 4월 15일 | 같은 뜻 다른 길 - 이성계와 이색 | 김성겸, 김진해, 이신재, 변희봉, 이정웅, 임영규, 이종만, 박영목, 김기섭, 김봉근, 박경득, 유순철, 이계영, 김기복, 배미자, 신종섭, 김기진, 김영기, 김원배, 정승곤, 박유승, 강신조, 서재영 |
23 | 1995년 4월 22일 | 왕자의 난 - 이방원과 정도전 | 변희봉, 김성겸, 임영규, 안병경, 이두섭, 장서희, 박용식, 권오균, 배영철, 양학용, 박종보, 박이남, 허건영, 백준영, 이남혁 |
24 | 1995년 4월 29일 | 왕의 길 부자의 길 - 태조와 태종 | 임영규, 김성겸, 안형식, 박용식, 박영목, 오영갑, 박경득, 박승규, 김창봉, 조정국, 김원배, 허기호, 안광진, 서미애, 한경선, 한현배, 이종길, 임영식, 박혜경, 송복철 |
25 | 1995년 5월 6일 | 전하, 아니되옵니다 - 왕과 사관 (세종과 맹사성) | 임혁, 박진성, 신구, 박병호, 양택조, 박건식, 서학, 안대용, 김종구, 강태기, 태민영, 이두섭, 조재훈, 손호균, 이계영, 차기환, 이동준, 이동신, 이종남, 류복녀, 강민석, 진운성 |
26 | 1995년 5월 13일 | 단군조선이냐 기자조선이냐 - 세종과 최만리 | 서인석, 김흥기, 김종결, 김시원, 임병기, 최선아, 배미자, 김희진, 김형일, 하대경, 반문섭, 이계영, 이한위, 김영선, 임영식, 이미나, 이기철, 김현성, 송치곤, 권소영, 이경훈 |
27 | 1995년 5월 20일 | 청백리도 순위가 있소이다! - 황희와 맹사성 | 안대용, 임혁, 박병호, 서인석, 백인철, 이한나, 이한승, 남윤정, 박칠용, 문창길, 김주영, 조은덕, 한현배, 이두섭, 전병옥, 박해상, 손호균, 이계영, 김기복, 이제신, 장정희, 차양희, 한정국, 김백수, 고진학, 박혜경, 문윤선 |
28 | 1995년 5월 27일 | 단종의 두 숙부 -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 임혁주, 노영국, 김희라, 이정웅, 박상만, 박영목, 이한승, 김새영, 주호성, 이문환, 신동훈, 양학용, 배영철, 이두섭, 권오균, 박종보, 박이남, 강민석, 정형기, 허건영, 이재석 |
29 | 1995년 6월 3일 | 왕의 정치 신하의 정치 - 세조와 한명회 | 임혁주, 주호성, 백준기, 박정웅, 김창봉, 오영갑, 안광진, 안형식, 차기환, 조정국, 황덕재, 양재원 |
30 | 1995년 6월 10일 |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 - 김종직과 성준 | 임혁, 송재호, 안대용, 변희봉, 김진태, 양택조, 김봉근, 태민영, 박진성, 강태기, 김하림, 김종구, 박경득, 박종설, 서학, 김창봉, 차기환, 박유승 |
31 | 1995년 6월 17일 | 무오사화 - 김일손과 이극돈 | 김진태, 박진성, 변희봉, 이광기, 임혁, 양택조, 안대용, 박경득, 박칠용, 조재훈, 김동완, 김봉근, 맹호림, 태민영, 김하림, 김종구, 강태기, 차기환, 박유승, 진운성 |
32 | 1995년 7월 8일 | 갑자사화의 두 인물 - 임사홍과 성현 | 이대로, 김흥기, 김주영, 양택조, 강태기, 박용식, 배미자, 장칠군, 한현배, 박칠용, 조재훈, 유병준, 최헌철, 이경영, 김성수, 강신조, 정태우, 김영민 |
33 | 1995년 7월 15일 | 연산군의 두 환관 - 김처선과 김자원 | 이정웅, 박칠용, 김주영, 김흥기, 박경득, 장칠군, 이한나, 연운경, 이한수, 유병준, 최헌철, 한정국, 기정수, 노영화, 윤성국, 배미자, 이계영, 손호균, 김원배, 강신조, 양기철, 이대원, 진태원, 김영민 |
34 | 1995년 7월 22일 | 소격서를 혁파하소서 - 왕과 대간 | 임혁주, 이배국, 정운용, 권성덕, 유병준, 나영진, 유순철, 서영진, 박상규, 홍유진, 이강수, 이계영, 맹봉학, 홍륜의, 박상만, 허기호, 오기환 |
35 | 1995년 7월 29일 | 나뭇잎의 주초위왕, 어디까지 사실인가 - 조광조와 남곤 | 정운용, 임혁주, 이배국, 권성덕, 유순철, 강만희, 심우창, 허기호, 나영진, 이두섭, 박상만, 홍륜의, 이영재, 이한위, 권오균, 이종길 |
36 | 1995년 8월 26일 | 서경덕과 황진이 | 김미라, 서학, 서우림, 남일우, 이종만, 선동혁, 양재성, 홍영자, 이일웅, 태민영, 김형자, 이우석, 이원발, 전병옥, 김하균, 이재연, 이계영, 임찬호, 황선정, 명정옥, 현영임, 이준아, 조광식, 김지현 |
37 | 1995년 9월 2일 | 학자의 길, 처사의 길 - 이황과 조식 | 신구, 안대용, 서우림, 안해숙, 양택조, 김종구, 김하림, 박진성, 김기복, 이문환, 김형일, 김주영, 조재훈, 박칠용, 이동신, 이두섭, 양형호, 이계영, 박유승, 손종범, 김영선, 진운성, 박종설, 김상중 |
4. 2. 1. 1월 7일: 계유정난 - 수양대군과 김종서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문종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단종을 지키려던 김종서를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이 과정에서 수양대군은 권력을 향한 강한 야망을 드러냈다.방영 회차 | 방영 일자 | 제목 | 주요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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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994년 1월 7일 | 계유정난 - 수양대군과 김종서 | 김흥기, 민욱, 주호성, 문창길, 강태기, 신동훈, 이문환, 이신재, 김성원, 박칠용, 홍승일, 윤준식, 이한승, 이동주, 이계영, 박유승, 이종길, 정철, 강신조, 배윤진 |
4. 2. 2. 1월 14일: 소격서 혁파 문제 - 중종과 조광조
11회(1월 14일) 방송분에서는 중종반정 이후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소격서 혁파를 둘러싼 갈등을 다루고 있다.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 임혁
- 박진성
- 임병기
- 김시원
- 박건식
- 반문섭
- 오영갑
- 김성찬
- 김형일
- 손호균
- 이미나
- 박용식
- 하대경
- 이기철
- 고광우
- 이계영
- 배미자
- 김기준
- 송치곤
- 이일랑
- 서모란
- 이한위
- 임영식
- 전용환
- 임종순
- 이경훈
4. 2. 3. 1월 21일: 허균과 이이첨, 적인가 등지인가
許筠|허균중국어과 李爾瞻|이이첨중국어은 광해군 시대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허균은 시대를 앞서간 개혁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고, 이이첨은 권력을 좇는 현실적인 정치가였다.두 사람의 관계는 광해군 시대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반영한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쓴 작가로도 유명하며, 당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반면 이이첨은 광해군의 신임을 받으며 권력을 키워나갔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허균과 이이첨의 대립은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을 넘어, 당시 조선 사회의 개혁 세력과 보수 세력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4. 2. 4. 1월 28일: 무인시대 - 최충헌과 이의민
고려 무신정권 시기, 최충헌과 이의민은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다툰 인물들이다. 이들의 다툼은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이는 무신정권의 폐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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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1월 28일 | 무인시대 - 최충헌과 이의민 | 김윤형, 오영갑, 박경득, 안형식, 반문섭, 박영목, 박승규, 한현배, 조정국, 김창봉, 안광진, 권병준, 윤진호, 이기철, 차기환, 김성희, 전병옥, 이계영, 오성렬, 양재원, 임영식, 신용규, 이종길, 강민석, 심훈보 |
4. 2. 5. 2월 4일: 여성의 굴레를 이겨낸 황진이와 허난설헌
조선 시대에는 여성에게 여러 사회적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굴레를 이겨내고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꽃피운 두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황진이와 허난설헌이다.황진이는 뛰어난 미모와 시, 서, 음률에 능한 재능을 지닌 기생이었다. 그녀는 신분제 사회의 굴레 속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특히, 서경덕과의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허난설헌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녀는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수많은 시를 남겼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 고통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사후에 동생 허균에 의해 《난설헌집》으로 엮여 세상에 알려졌다.
두 여인의 삶은 조선 시대 여성이 겪었던 굴레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예술혼을 보여준다.
4. 2. 6. 2월 11일: 1년 복이냐, 3년 복이냐 - 송시열과 허목
송시열과 허목의 대립은 조선 효종의 장자 상속 여부를 둘러싼 예송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서인의 대표였던 송시열은 효종이 차남으로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왕족의 예법에 따라 1년 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인의 대표였던 허목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일반적인 상속과 같이 3년 복을 입어야 한다고 반박했다.이 논쟁은 단순한 복상 기간의 문제를 넘어, 서인과 남인 간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당쟁의 심화로 이어져 조선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횟수 | 방송 일자 | 제목 |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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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2월 11일 | 1년 복이냐, 3년 복이냐 - 송시열과 허목 | 김성겸, 임혁, 이정웅, 반문섭, 하대경, 김시원, 박건식, 임병기, 임영식, 이계영, 박진성, 이광기, 김형일, 이한위, 손호균, 조재훈, 안해숙, 송희남, 배미자, 송치곤, 정용환, 김희진, 이미나, 정미숙, 한유림, 소병철, 이기철, 정훈희 |
4. 2. 7. 2월 18일: 성삼문과 신숙주
成三問|성삼문중국어과 申叔舟|신숙주중국어는 조선 세조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상반된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성삼문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절개를 지키다 처형당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반면, 신숙주는 세조의 편에 서서 계유정난에 가담하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권력을 누렸다. 그는 뛰어난 학식과 능력을 바탕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변절자라는 오명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성삼문과 신숙주의 이야기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4. 2. 8. 3월 4일: 김옥균과 민영익
金玉均|김옥균중국어과 閔泳翊|민영익중국어은 조선 말기 개화파와 척사파(수구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1884년,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일으켜 조선의 근대화를 꾀했지만, 민영익을 중심으로 한 척사파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다.김옥균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민영익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하며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대립은 결국 갑신정변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고, 김옥균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개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4. 2. 9. 3월 11일: 일본은 온다, 오지 않는다 - 김성일과 황윤길
1592년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해 조선 조정에 상반된 보고를 한 김성일과 황윤길의 이야기이다.황윤길은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고 보고한 반면, 김성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들의 엇갈린 보고는 조선 조정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은 정보 판단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4. 2. 10. 3월 18일: 광해군과 인목대비
광해군은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는 이들을 유배 보내거나 사형에 처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서인 세력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인목대비 폐모에 대한 반감을 명분으로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에 올렸다.4. 2. 11. 4월 1일: 원효와 의상대사
신라의 대표적인 승려인 원효와 의상은 불교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원효는 모든 것이 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사상을 바탕으로 불교 교리를 통합하고, 분파 간의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했다. 그는 어려운 불교 경전 대신 쉬운 가르침과 수행법을 제시하여 일반 백성들도 쉽게 불교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의상은 당나라 유학 후 화엄종을 들여와 신라에 전파했다. 그는 화엄사상을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추구했다. 또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사찰을 건립하여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4. 2. 12. 4월 8일: 고려냐, 조선이냐 - 최영,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
高麗|고려중국어 말, 조선 초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라의 운명을 두고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인물들의 대립을 다룬다. 고려를 지키려 했던 최영과 정몽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이 그 주인공이다.이들은 각각 고려와 조선이라는 서로 다른 국가 체제 하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했다. 최영과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서, 이성계와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 주역으로서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
이들의 대립과 갈등은 단순한 권력 다툼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과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의지가 충돌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4. 2. 13. 4월 15일: 같은 뜻 다른 길 - 이성계와 이색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이성계와 이색은 처음에는 같은 뜻을 품었으나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성계는 역성혁명을 통해 새 왕조를 열었지만, 이색은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은둔 생활을 선택했다.4. 2. 14. 4월 22일: 왕자의 난 - 이방원과 정도전
조선 건국 초, 왕권 강화를 추구했던 이방원은 신권 중심의 정치를 꿈꾸던 정도전과 대립하였다. 1398년(태조 7년), 이방원은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을 제거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정도전은 목숨을 잃었고, 이방원은 권력을 장악하여 조선의 왕위에 올랐다.
4. 2. 15. 4월 29일: 왕의 길 부자의 길 - 태조와 태종
太祖|태조중국어 이성계와 太宗|태종중국어 이방원은 조선 건국 이후 권력을 둘러싼 부자 관계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왕이었으나,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며 갈등을 겪었다.이러한 부자 관계의 갈등은 권력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권력은 혈연관계조차 뛰어넘는 냉혹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부자 사이에서도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4. 2. 16. 5월 6일: 전하, 아니되옵니다 - 왕과 사관 (세종과 맹사성)
세종 시대는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로 평가받는다. 특히 세종과 맹사성의 관계는 이러한 조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맹사성은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종의 뜻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며 강하게 반대했다.세종은 이러한 맹사성의 강직함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맹사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했지만, 이는 맹사성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종과 맹사성은 서로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이는 조선 초기 정치의 안정에 기여했다.
4. 2. 17. 5월 13일: 단군조선이냐 기자조선이냐 - 세종과 최만리
세종 시대에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중 어느 쪽을 더 중시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단순한 역사 인식의 차이를 넘어, 당시 조선 사회의 지배 이념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다.세종은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보고, 단군 조선의 역사를 강조했다. 반면, 최만리는 유교적 사관에 입각하여 기자 조선을 중시하고, 단군 조선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논쟁은 조선 초기의 역사관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4. 2. 18. 5월 20일: 청백리도 순위가 있소이다! - 황희와 맹사성
黃喜|황희중국어와 孟思誠|맹사성중국어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이들은 관직 생활 동안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두 사람의 청백리로서의 면모는 다음과 같은 일화들에서 잘 드러난다.
- 黃喜|황희중국어: 오랜 기간 정승의 자리에 있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우산을 받쳐놓고 지낼 정도였다.
- 孟思誠|맹사성중국어: 세종이 몰래 맹사성의 집에 사람을 보냈을 때, 맹사성은 베옷을 입고 콩깍지로 불을 때며 저녁을 짓고 있었다. 또한, 맹사성은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부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황희와 맹사성이 단순한 청백리를 넘어, 백성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참된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 2. 19. 5월 27일: 단종의 두 숙부 -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水陽大君|수양대군중국어과 安平大君|안평대군중국어은 단종의 숙부들로, 왕위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1453년 (癸酉靖難|계유정난중국어) 이후,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사사했다. 이는 왕권 강화를 위한 수양대군의 결단이었다.해당 회차의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출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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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20. 6월 3일: 왕의 정치 신하의 정치 - 세조와 한명회
世祖|세조중국어는 조선의 왕권 강화를 추구하였고, 한명회는 이러한 世祖|세조중국어를 보좌하며 정치를 펼쳤다.4. 2. 21. 6월 10일: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 - 김종직과 성준
조선 초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김종직과 성준은 이 논쟁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다.김종직 | 성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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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집권 강화,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 옹호 |
4. 2. 22. 6월 17일: 무오사화 - 김일손과 이극돈
金馹孫|김일손중국어과 李克墩|이극돈중국어의 갈등은 조선 연산군 시대에 발생한 무오사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일손은 사초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고, 이는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 내용을 문제 삼아 유자광 등과 함께 연산군에게 보고했고, 이는 사림 세력이 대거 숙청되는 무오사화로 이어졌다.이 사건은 개인적인 원한 관계와 정치적 대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극돈은 김일손의 아버지 김맹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김일손이 자신의 비리를 사초에 기록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또한, 훈구파였던 이극돈은 사림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무오사화는 조선 초기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사림 세력의 탄압과 훈구파의 득세를 가져왔다. 이는 이후 조선의 정치 구도와 사상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2. 23. 7월 8일: 갑자사화의 두 인물 - 임사홍과 성현
연산군 시대 갑자사화를 통해 대립한 인물들로는 任士洪|임사홍중국어과 成俔|성현중국어이 있다. 임사홍은 훈구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신의 아들 임숭재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는 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남용하였다. 반면, 성현은 사림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갑자사화는 연산군의 폭정을 배경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결과였다. 임사홍은 이 사건을 주도하여 성현을 비롯한 많은 사림 세력 인사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사건은 조선 시대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 간의 대립이 더욱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4. 2. 24. 7월 15일: 연산의 두 환관 - 김처선과 김자원
金處善|김처선중국어과 金子猿|김자원중국어은 연산군 시대의 환관이다. 연산군은 폭정을 일삼았으며, 그를 둘러싼 환관들의 행태 또한 문제가 많았다.이정웅은 김처선 역을, 박칠용은 김자원 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김주영, 김흥기, 박경득, 장칠군, 이한나, 연운경, 이한수, 유병준, 최헌철, 한정국, 기정수, 노영화, 윤성국, 배미자, 이계영, 손호균, 김원배, 강신조, 양기철, 이대원, 진태원, 김영민 등이 출연하였다.
4. 2. 25. 7월 22일: 소격서를 혁파하소서 - 왕과 대간
조선 시대 도교 제사를 주관하던 관청인 昭格署|소격서중국어는 단순한 종교적 논쟁을 넘어, 왕권과 신권의 대립, 개혁과 반발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관이었다.당시 조선의 지배 이념은 성리학이었고, 성리학자들은 도교가 백성들을 현혹시킨다고 비판하며 昭格署|소격서중국어 폐지를 주장했다. 특히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림 세력은 昭格署|소격서중국어를 미신으로 규정하고, 왕도정치 실현을 위해 혁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중종은 昭格署|소격서중국어가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중요한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昭格署|소격서중국어 혁파를 둘러싼 논쟁은 왕권 강화와 신권 견제라는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중종은 사림 세력의 급진적인 개혁에 부담을 느꼈고, 훈구 세력은 昭格署|소격서중국어 혁파를 빌미로 사림을 공격했다.
결국 昭格署|소격서중국어는 혁파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조광조를 비롯한 많은 사림 세력이 숙청되는 기묘사화가 발생했다.
4. 2. 26. 7월 29일: 나뭇잎의 주초위왕, 어디까지 사실인가 - 조광조와 남곤
主草爲王|주초위왕중국어은 중종 시대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그를 제거하려는 남곤을 비롯한 훈구 세력의 음모를 다룬 사건이다.정운용, 임혁주, 이배국, 권성덕, 유순철, 강만희, 심우창, 허기호, 나영진, 이두섭, 박상만, 홍륜의, 이영재, 이한위, 권오균, 이종길 |
4. 2. 27. 8월 26일: 서경덕과 황진이
徐敬德|서경덕중국어과 황진이는 조선 중기 신분과 성별을 초월한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황진이'''
조선 중기 개성의 이름난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빼어난 미모와 예술적 재능으로 유명했다. 시, 서, 음률에 모두 능했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서경덕'''
당시 성리학의 대가였던 서경덕은 황진이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서경덕은 황진이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그녀의 예술적 성장을 지원했다. 이러한 가르침과 지원은 황진이가 당대 최고의 기생이자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서로의 재능을 존중하고 영감을 주고받는 특별한 관계였다. 황진이는 서경덕을 존경하며 그의 학문적 깊이에 감탄했고, 서경덕은 황진이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고 그녀의 성장을 격려했다. 이러한 관계는 신분과 성별의 차이를 넘어선 인간적인 교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역할 |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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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 김미라 |
서경덕 | 서학 |
기타 | 서우림, 남일우, 이종만, 선동혁, 양재성, 홍영자, 이일웅, 태민영, 김형자, 이우석, 이원발, 전병옥, 김하균, 이재연, 이계영, 임찬호, 황선정, 명정옥, 현영임, 이준아, 조광식, 김지현 |
4. 2. 28. 9월 2일: 학자의 길, 처사의 길 - 이황과 조식
李滉|이황중국어과 曺植|조식중국어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이황은 주자를 계승하여 주리설(主理說)을, 조식은 실천적인 유학을 강조하며 경의(敬義) 사상을 제시했다.두 학자는 학문적 지향점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황은 관직에 나아가 학문적 이상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고자 노력한 반면, 조식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處士)로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황은 안동에서 태어나 성균관 대사성, 공조판서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도산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학문은 일본 성리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식은 합천에서 태어나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지리산 자락에 산천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문하에서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인홍, 곽재우 등이 배출되었다.
이황과 조식의 학문적 차이는 조선 성리학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의 사상은 이후 조선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제작진
직책 |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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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프로듀서 | 남성우 |
구성·각본 | 김옥영, 이환경, 이수재, 성위환, 윤영수, 정종숙, 양경아 |
연출 | 현정주, 안영동, 임기준, 정영철, 주평문, 최훈근, 이달현, 김종선, 이강주, 신재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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