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주의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유대주의자(Judaizer)는 신약성경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고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유대인 기독교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일부였으며,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할례와 같은 유대교적 관습을 따라야 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할례 문제에 대한 논쟁을 거쳐, 이방인 개종자들은 할례를 받거나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비판하고,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는다고 강조했다. '유대교화'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정교회, 스페인 종교 재판, 현대 기독교 내에서 나타났으며, 현대에도 할례, 코셔 식단, 안식일 준수 등 유대교적 관습을 따르는 기독교 종파들이 존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신약성경 속 유대교 - 임마누엘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이름으로, 구약성서 이사야서에 등장하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유대교에서는 메시아 출현 예언으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다. - 신약성경 속 유대교 - 예수의 산헤드린 재판
예수의 산헤드린 재판은 예수가 신성 모독과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혐의로 산헤드린에서 사형이 결정되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져 십자가형을 받은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 디다케
디다케는 "열두 사도의 주님의 가르침"으로도 불리는 1873년 발견된 고대 기독교 문헌으로, 기독교 생활 지침, 의례, 교회 조직, 종말론적 예언을 담고 있으며, 특히 '두 길' 가르침을 통해 윤리적 지침을 제시하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생활과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 열심당
열심당은 1세기경 로마 제국에 저항한 유대교 분파로, 무장 투쟁과 과격한 테러 행위로 로마에 저항하며 유대 사회 내부에서도 비판받고 유대교 종파 간 갈등을 심화시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에 영향을 미쳤다. - 기독교-유대교 관련 논란 - 여호와
여호와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인 테트라그라마톤(יהוה, YHWH)을 로마자로 표기한 것 중 하나로, 정확한 발음은 불확실하지만 '야훼'라는 가설이 유력하며, '여호와'라는 표기가 널리 사용되지만, 발음과 표기에 대한 논쟁과 함께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더 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 기독교-유대교 관련 논란 - 야훼
야훼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인 YHWH를 가리키며, 다양한 종교에서 다르게 이해되고 숭배되며,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유대주의자 | |
---|---|
개요 | |
분류 | 유대교 기독교 분파 |
기원 | 1세기 |
소멸 | 5세기 이후 |
특징 | 할례의 필요성 주장 모세 율법 준수 강조 예수의 신성 부인 (일부) 유대교 전통 고수 |
관련 인물 | 베드로 야고보 바울 (논쟁 대상) |
역사적 맥락 | |
배경 | 1세기 유대교 내부의 다양한 해석과 갈등 |
발전 |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유대교 전통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발전 |
바울과의 논쟁 | 바울의 이방인 선교와 율법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논쟁 발생 |
쇠퇴 | 기독교가 이방인 중심으로 확장되면서 영향력 감소 정통 기독교 교리 확립 과정에서 이단으로 정죄 예루살렘 함락 이후 유대교적 기독교 공동체의 붕괴 |
신학적 입장 | |
예수의 이해 | 일부는 예수를 인간으로만 봄 일부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만, 신으로 보지는 않음 |
율법의 중요성 | 모세 율법을 기독교인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 |
할례의 의무 | 이방인 기독교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 |
논쟁과 비판 | |
바울의 비판 |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 |
정통 기독교의 비판 | 유대주의적 요소가 기독교의 보편성을 훼손한다고 비판 |
관련 용어 | |
유대교화 | 유대교의 풍습이나 율법을 따르는 행위 |
참고 문헌 | |
서적 | Cross, F. L., & Livingstone, E. A. (2005).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3rd Revised ed.). Oxford University Press. Murray, Michele (2004). Playing a Jewish Game: Gentile Christian Judaizing in the First and Second Centuries CE. Wilfrid Laurier University Press. |
논문 | Dunn, James D. G. (1993). Echoes of Intra-Jewish Polemic in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12(3), 459–477. Thiessen, Matthew (2014). Paul's Argument against Gentile Circumcision in Romans 2:17-29. Novum Testamentum, 56(4), 373–391. Donaldson, Terence L. (2016). Supersessionism and Early Christian Self-Definition. JJMJS, 3, 2–3. |
2. 초기 기독교와 유대화 논쟁
'유대화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유대주의자'라는 단어는[10] 이방인들이 유대교 관습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암시한다.[11]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이방인 개종자가 예수의 추종자가 되기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다. 헬레니즘 시대 동지중해 지역에서는 할례가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기에,[13][14][15][16]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바울의 개종 이전 기독교는 제2성전 유대교의 일부였고, 초기 기독교 운동은 대부분 유대인 추종자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방인이 기독교에 합류하려면 유대교로 개종해야 했고, 이는 할례를 받지 않은 성인 남성에 대한 할례, 코셔 식단 규정 준수 등을 의미했다. 그러나 문간 개종자와 같이 할례를 받지 않고 모세의 율법 일부를 따르지 않는 "부분적 개종자"도 있었다.[18]
이방인들을 초기 기독교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했다.[19][20][21] 특히 할례는 아브라함 계약의 회원임을 나타내는 표징이었기에, 전통적인 유대인 기독교인들(개종한 바리새인)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2][19][20][21][23] 반면 바울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구원에 충분하며, 모세의 율법은 이방인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24][25][26][27]
신약 성경에서 유대주의자들은 동족 신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야 하며,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들은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기독교인 집단이었다.[1][2][3][19][20][21][23] 바울은 이들을 복음 전파에 위험하고 심각한 교리적 오류를 퍼뜨리는 자들로 보며 비판했고,[1][2][3][23][24][25][26][27] 바울 서신을 통해 이들의 견해에 반박하며 실행자들을 비난했다.[1][2][3][24][25][26][27]
2. 1. 예루살렘 공의회
초기 기독교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일반적으로 예수의 십자가형 후 약 15년에서 25년 후인 서기 48년경, 즉 서기 26년에서 36년 사이에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는 이 회의가 예수의 추종자가 되기 위해 개종하는 남성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 위해 소집되었음을 시사한다. 할례 의식은 헬레니즘 시대 동지중해 지역에서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여겨졌으며[13][14][15][16] 특히 고전 문명 시대에 고대 그리스인과 고대 로마인 모두에게서 반감을 샀으며, 대신 포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13][14][15][17]바울의 개종 이전 기독교는 제2성전 유대교의 일부였다. 당시 대부분 유대인 추종자로 구성되었던 초기 기독교 운동에 합류하려는 이방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해야 했는데, 이는 아마도 할례를 받지 않은 성인 남성에 대한 할례를 받는 것, 코셔의 식단 규정을 따르는 것 등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문간 개종자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유대교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개종을 거부하고 따라서 이방인(비유대인) 신분을 유지했던 그리스-로마 동조자)와 같은 "부분적 개종자"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고 모세의 율법의 어떤 계명도 따를 필요가 없었다.[18]
이방인들을 초기 기독교에 포함시키는 것은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했다.[19][20][21] 새로운 이방인 개종자들은 할례를 받거나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19] 특히 할례는 아브라함 계약의 회원임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여겨졌으며,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가장 전통주의적인 파벌(개종한 바리새인)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2][19][20][21][23]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수에 대한 신앙(신앙 또는 충실함)이 구원에 충분하므로 모세의 율법은 이방인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24][25][26][27]
2. 2. 사도 바울의 입장
바울은 초기 교회 내의 유대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유대주의자들이 복음 전파에 큰 위험을 가져오고, 심각한 교리적 오류를 퍼뜨린다고 생각했다.[1][2][3][23][24][25][26][27] 신약 성경에 포함된 그의 많은 서신(바울 서신)에는 이들의 견해에 반박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1][2][3][24][25][26][27]바울은 베드로가 유대주의자들에게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베드로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인기 있는 곳에서는 그들을 공개적으로 포용했지만, 사적으로는 그들의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2]

바울은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모세 율법 전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2][3][23][24][25][26][27] 이 문제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논의되었고,[2][3][23][24][25] 대위임령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예수의 형제 의로운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것, 피, 목 졸라 죽인 것, 음행을 삼가라"고 권고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짓 신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강조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할례를 받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하려고 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와 멀어졌습니다.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가톨릭 백과사전''에 따르면, 바울은 이방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세 율법 준수를 반대하지 않았고, 필요할 때에는 그 규정을 따랐다.[28] 그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될 때에도 모세 의식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칭한 바울[29][30]은 할례를 비판했다. 티모테오의 경우,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기독교인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는데, 바울은 그에게 직접 할례를 행했다.[31][32] 바울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33] 할례가 더 이상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습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24][25][26][27] 그는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썼다.[34]
바울은 할례를 장려한 유대교 신봉자들을 정죄했다.[20][24][25][26][27] 그는 그들이 성령에서 육신으로 돌아섰다고 비난했다.[24][25][26][27] 바울은 구원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새 언약을 구성하는 모세 율법에 굴복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21][24][25][26][27]
할례에 대한 그의 태도는 빌립보서 3장 2-3절에서 그가 "할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에서 로마서 3장 1-2절에서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모세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과 그렇지 않은 이방인 사이의 분열은 그의 갈라디아서에서 강조되었다.
2. 3. 할례 논쟁
"유대화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유대주의자"라는 단어는[10] 성경에서 명확하게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이방인들이 유대교 관습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암시한다.[11]초기 기독교 시대, 예루살렘 공의회는 예수의 십자가형 후 약 15~25년 뒤인 서기 48년경에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에 따르면, 이 회의는 이방인 남성이 예수의 추종자가 되기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헬레니즘 시대 동지중해 지역에서는 할례 의식이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여겨졌으며,[13][14][15][16] 고전 문명 시대 고대 그리스인과 고대 로마인 모두에게 반감을 샀다.[13][14][15][17]
바울의 개종 이전 기독교는 제2성전 유대교의 일부였다. 당시 초기 기독교 운동은 대부분 유대인 추종자로 구성되었고, 이방인이 합류하려면 유대교로 개종해야 했다. 이는 할례를 받지 않은 성인 남성에 대한 할례, 코셔 식단 규정 준수 등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문간 개종자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같이 할례를 받지 않고 모세의 율법의 일부 계명을 따르지 않는 "부분적 개종자"도 있었다.[18]
이방인들을 초기 기독교에 포함시키는 것은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했다.[19][20][21] 새로운 이방인 개종자들은 할례나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19] 특히 할례는 아브라함 계약의 회원임을 나타내는 표징이었고, 가장 전통적인 유대인 기독교인들(개종한 바리새인)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2][19][20][21][23] 반면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수에 대한 신앙 (참조: 신앙 또는 충실함)이 구원에 충분하며, 모세의 율법은 이방인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24][25][26][27]
신약 성경에서 유대주의자들은 동족 신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야 하고,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들은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기독교인 집단이었다.[1][2][3][19][20][21][23]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이 이러한 제약들을 받아들이려 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노력했다.
바울은 초기 교회 내 유대주의자들을 복음 전파에 위험하고 심각한 교리적 오류를 퍼뜨리는 자들로 보며 비판했다.[1][2][3][23][24][25][26][27] 그는 바울 서신에서 이들의 견해에 반박하고 실행자들을 비난했다.[1][2][3][24][25][26][27] 바울은 베드로가 유대주의자들에게 양면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2]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초기 교회의 일부 유대인 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교로 개종한 바리새인 집단의 가정이었다. 바울은 이 입장에 반대하며,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모세의 율법 전체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예수의 형제 의로운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것, 피, 목 졸라 죽인 것, 음행을 삼가라"고 권고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짓 신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갈라디아서 2장 3-10절, 15-1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할례를 받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40]
''가톨릭 백과사전''에 따르면, 바울은 이방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세의 율법 준수를 반대하지 않았고, 필요할 때에는 그 규정을 따랐다.[28] 그는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될 때에도 모세 의식을 지키고 있었다.[28]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칭한 바울은[29][30] 할례 관습을 비판했다. 그는 티모테오에게 직접 할례를 행하기도 했지만,[31][32]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할례가 더 이상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습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24][25][26][27] 그는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썼다.[34]
바울은 유대교 신봉자들을 거부하고 정죄하며,[20][24][25][26][27] 그들이 성령에서 육신으로 돌아섰다고 비난했다. 그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새 언약을 구성하는 모세 율법에 굴복하는 것에 반대한다.
바울의 할례에 대한 태도는 빌립보서 3장 2-3절의 노골적인 적대감에서 로마서 3장 1-2절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불일치는 사도행전의 신뢰성에 대한 회의론을 낳기도 했다.[39]
모세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사이의 분열은 갈라디아서에서 강조되었다. 바울은 베드로가 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처럼, 자신이 무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았다고 말했다.
2. 4. 신약성경의 관점
"유대인"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앵커 성경 사전(Anchor Bible Dictionary)''은 "이방인들이 유대교 관습에 따라 살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 명백한 함의"라고 설명한다.[11] ''유대화주의자''(Judaizer)라는 단어는 ''유대화하다''(judaize)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 성경 번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12]초기 기독교 시대, 예루살렘 공의회는 예수의 십자가형 후 약 15년에서 25년 후인 서기 48년경에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은 이 회의가 예수의 추종자가 되기 위해 개종하는 남성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음을 시사한다. 당시 헬레니즘 시대 동지중해 지역에서는 할례 의식이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여겨졌으며,[13][14][15][16] 고대 그리스인과 고대 로마인 모두에게 반감을 샀다.[13][14][15][17]
바울의 개종 이전 기독교는 제2성전 유대교의 일부였다. 당시 대부분 유대인 추종자로 구성되었던 초기 기독교 운동에 합류하려는 이방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해야 했는데, 이는 할례를 받지 않은 성인 남성에 대한 할례를 받는 것, 코셔의 식단 규정을 따르는 것 등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방인들을 초기 기독교에 포함시키는 것은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의 유대인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했다.[19][20][21] 새로운 이방인 개종자들은 할례를 받거나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19]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가장 전통주의적인 파벌(개종한 바리새인)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2][19][20][21][23]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수에 대한 신앙이 구원에 충분하므로 모세의 율법은 이방인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24][25][26][27]
신약 성경에서 유대주의자들은 동족 신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야 하며,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들은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기독교인 집단이었다.[1][2][3][19][20][21][23]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이 이러한 제약들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강력하게 노력했다.[1][2][3][24][25][26][27]
바울은 초기 교회 내의 유대주의자들을 심하게 비판했고, 그들의 교리와 행동에 대해 가혹하게 꾸짖었다.[1][2][3][4] 그는 유대주의자들이 복음의 전파에 위험하며 심각한 교리적 오류의 선전가라고 보았다.[1][2][3][23][24][25][26][27] 바울 서신은 이 파벌의 견해에 반박하고 그 실행자들을 비난하는 상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1][2][3][24][25][26][27]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베드로의 양면적인 반응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독교로 개종한 바리새인 집단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 입장에 반대하며,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모세의 율법 전체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2][3][23][24][25][26][27] 이 문제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절정에 달했다.[2][3][23][24][25] 사도행전에 따르면, 대위임령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형제 의로운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것, 피, 목 졸라 죽인 것, 음행을 삼가라"고 권고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할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짓 신자"라고 비난했다. 바울은 초기 갈라디아 교회에 할례를 받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톨릭 백과사전''은 바울이 이방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세의 율법 준수를 반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에는 그 규정을 따랐다고 언급한다.[28] 그는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될 때에도 모세 의식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칭한 바울[29][30]은 할례 관습을 비판했는데, 아마도 예수의 새 언약에 들어가는 입구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티모테오의 경우,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기독교인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는데, 바울은 그에게 직접 할례를 행했다.[31][32] 바울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할례가 더 이상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습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24][25][26][27] 그는 또한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썼다.[34]
나중에 바울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를 장려한 유대교 신봉자들을 거부하고 정죄했다.[20][24][25][26][27] 그는 그들이 성령에서 육신으로 돌아섰다고 비난했다.[24][25][26][27]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 "거짓 형제"라고 경고했다.[36][2][20] 그는 할례 옹호자들이 육신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37] 육신을 자랑하거나 뽐내려 한다고 비난했다.[38][20][24][25][26][27] 대신 바울은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새 언약을 구성하는 모세 율법에 굴복하는 것에 반대한다.[21][24][25][26][27]
모세 율법을 따르고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사이의 분열은 그의 갈라디아서에서 강조되었다.
3. 유대화의 역사적 사례
"유대교화"라는 용어는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과 사도 교부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다. 안티오크의 이그나티우스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유대교화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언급하며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정의했다.[43] 바나바 서신은 유대교 관습을 비판하고 유대인들이 율법을 오해했다고 주장한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율법 준수 여부에 따라 유대교 기독교인을 구분했으며,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기독교인들에게 안식일에 쉬면서 유대교화하는 것을 금지했다.[44] 유세비우스는 초기 예루살렘 주교들이 "할례 받은 자"였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그들이 토라를 지켰음을 시사한다.[45] 요한 크리소스톰은 ''유대인 반대론''에서 기독교인, 유대인, 유대교화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었다.
유대교화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감소했지만, 유대교 관습을 따르는 기독교 집단은 5세기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갈라디아서는 마르틴 루터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메시아 유대교와 같은 분파들이 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 자리를 잡았다.
3. 1. 러시아
자카리아스 더 주는 러시아에서 유대교 신봉자들의 종파를 이끌었다. 1480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자카리아스의 주요 추종자들을 모스크바에 초대했다. 유대교 신봉자들은 고위 관리, 정치가, 상인, 옐레나 스테파노브나(왕위 계승자인 이반 영의 아내)와 이반의 총애를 받는 부제이자 외교관 표도르 쿠리친의 지원을 받았다. 표도르 쿠리친은 1480년대 중반에 자신의 클럽을 설립하기까지 했다.[46] 그러나 결국 이반 3세는 세속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정교회 성직자들과 동맹을 맺었다.추종자들에 대한 투쟁은 헤구멘 요셉 볼로츠키와 그의 추종자들(요세피니아인) 및 노브고로드의 대주교 겐나디가 이끌었다. 1487년경 노브고로드에서 추종자들을 찾아낸 겐나디는 다른 성직자들에게 수년에 걸쳐 일련의 편지를 써서 "그들을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태우기 위해" ''소보르'' ("교회 회의")를 소집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회의는 1488년, 1490년, 1494년, 1504년에 열렸다. 회의는 종교 서적과 비종교 서적을 금지하고 불태우도록 했으며,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추종자들을 추방하고, 파문했다. 1491년, 자카리아스 더 주는 이반 3세의 명령에 따라 노브고로드에서 처형되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러시아 정교회는 여러 관련 영적 기독교 집단을 유대교화하는 성격을 띤다고 묘사해 왔다.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 신봉자들에 대해 벌인 논쟁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라벨의 정확성은 논란이 되어 왔다. 러시아 제국의 유대교 종파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카라이파[47][48] 또는 카라이파화된-서브보트니크로, 알렉산더 자이드 (1886–1938)와 같은 사람들은 1904년부터 성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3. 2. 종교 재판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칭한 바울[29][30]은 할례 관습을 비판했는데, 아마도 예수의 새 언약에 들어가는 입구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티모테오의 경우,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기독교인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는데, 바울은 그 마을에 있는 "유대인들 때문에" 그에게 직접 할례를 행했다.[31][32] 바울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33] 할례가 더 이상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습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24][25][26][27] 그는 또한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썼다.[34]
이후 바울은 이 관습을 더 명확하게 비난하며[2][3],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할례를 장려한 유대교 신봉자들을 거부하고 정죄했다.[20][24][25][26][27] 그는 그들이 성령에서 육신으로 돌아섰다고 비난하며[24][25][26][27]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육신으로 온전하게 되려느냐?"라고 묻는다.[35]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 "거짓 형제"라고 경고했다.[36][2][20] 그는 할례 옹호자들이 육신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고[37], 육신을 자랑하거나 뽐내려 한다고 비난했다.[38][20][24][25][26][27]
대신 바울은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새 언약을 구성하는 모세 율법에 굴복하는 것에 반대한다.[21][24][25][26][27] 이것은 본질적으로 율법의 가혹한 법령으로부터 이방인들을 위한 칭의를 제공하고, 할례를 요구하지 않는 새 언약이다[21][24][25][26][27]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율법 폐기론을 지지하는 바울의 구절, 구약 율법의 폐지 참조).
할례에 대한 그의 태도는 빌립보서 3:2-3에서 그가 "할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에서 로마서 3:1-2에서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는 사도행전의 신뢰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회의론을 낳았다.[39]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할례를 공격하는 갈라디아서 전체를 썼다고 믿으며, 5장에서 "보라, 내가 바울로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라고 말한다.[40]
모세 율법을 따르고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사이의 분열은 그의 갈라디아서에서 강조되었다.
유대교화하는 사람(Judaizer)이라는 단어는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 2.18.2에 한 번 등장하며, 75년경에 쓰여진 제1차 유대-로마 전쟁 (66-73)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사도 교부 모음집에도 한 번 등장하는데, 약 100년경에 쓰여진 이그나티우스의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10:3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유대교화하는 교사들은 바나바 서신에서 강하게 비난받고 있다. 바울은 율법을 바르게 사용하면 좋다고 인정했지만, 바나바 서신은 대부분의 유대교 관습을 비난하며 유대인들이 율법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잘못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약 140년)는 두 종류의 유대교 기독교인을 구별했다. 율법을 지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 준수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그들과 성찬을 나눌 것이다—과 율법이 모든 사람에게 의무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을 이단으로 간주한다(''트리폰과의 대화'' 47).
약 365년에 열린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59개의 법령을 제정했는데, 그 중 29조는 다음과 같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4.5.3-4에 따르면 최초의 15명의 예루살렘 주교는 "할례 받은 자"였는데, 이는 그들이 유대교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단순히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이방인 기독교인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성경적 할례를 지켰고, 따라서 토라의 나머지 부분도 지켰을 가능성이 높다.[45]
요한 크리소스톰 (347 – 407)의 여덟 편의 설교 ''유대인 반대론'' ("유대인 반대")은 기독교인, 유대인, 유대교화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유대교화하는 사람들의 교회 내 영향력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동안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의 유대교 기독교 공동체를 흩어 버렸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또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135년 바르 코흐바의 반란 동안 흩어 버렸다. 전통적으로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은 유대-로마 전쟁을 데카폴리스의 펠라에서 보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이 반드시 유대교 기독교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발레리아누스의 258년 학살(그가 교황 식스토 2세, 대립 교황 노바티아누스 및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 주교, 사제 및 부제를 죽였을 때)이 로마 기독교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과 같지 않다.
라틴어 동사 ''iudaizare''는 불가타에 한 번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그리스어 동사 ''ioudaizein''은 갈라디아서 2:14에 나타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갈라디아에서 바울의 반대를 "이방인들에게 유대교 관습에 따라 살도록 강요하려 했던" 사람들, 즉 ''qui gentes cogebant iudaizare''로 묘사한다.[46]
유대교 관습을 따르는 기독교 집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5세기에 이단으로 지정되었다.
브네이 아누심은 현대의 히스패닉 유대교 신봉자이다.
기독교 종파 목록#유대-기독교, 아브라함 계통 종교, 초기 기독교의 할례 논쟁
알렉산드리아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 테와히도 교회, 에리트레아 정교 테와히도 교회는 모두 남성 할례를 계속 시행하고 있다.[55]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포함한 토라 준수 기독교 집단에서는 식단 규정과 안식일도 준수한다.[56]
주목할 만한 현대 유대교 추종자 집단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야훼의 회중
- 베네 에프라임
- 흑인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 브네 메나셰
- 영국 이스라엘주의
- 기독교 정체성
- 히브리 뿌리 운동
- 산 니칸드로 유대인
- 마쿠야
- 메시아 유대교
- 성스러운 이름 운동
-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 수보트니크
- 세클러 안식일 교도
- 예호비스트
3. 2. 1. 스페인 종교 재판
1300년부터 1800년까지 스페인 종교 재판과 포르투갈 종교 재판 기간 동안 유대교 신앙을 따르는 행위는 특히 박해를 받았다. 이는 "율법은 저주"라는 바울 서신의 언급과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율법주의에 근거했다.[46]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을 제외한 모든 토라 율법은 이방인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에게도 아나테마로 여겨졌다. 스페인 종교 재판에서 개종한 유대인이 "유대교화"로 처벌받는 형벌은 대개 화형이었다.스페인어 단어 ''Judaizante''(유대교화하는 자)는 스페인 종교 재판 시대에 스페인과 신세계에서 유대교의 일부 전통을 은밀하게 실천한 유대교 ''개종자''와 때로는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에게 적용되었다.[49]
가톨릭 교회에서 이단을 설교하거나 행한 적이 없는 개종자 후손인 가톨릭 신자들도 유대교 신봉자라는 혐의로 인해 박해를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성서 학문 교수로 재직한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이자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루이스 데 레온은 많은 기독교 시 작품을 스페인어로 쓰고 번역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라이 루이스는 스페인계 유대인 개종자 가문 출신이었다. 이는 가톨릭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것을 옹호하는 그의 발언과 함께 도미니코회로부터 이단인 마라노이자 유대교 신봉자라는 거짓 혐의를 받게 했다. 프라이 루이스는 스페인 종교 재판에 의해 4년 동안 투옥되었지만,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그는 책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고, 전설에 따르면 종교 재판 이후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첫 강의를 "저번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라는 말로 시작했다고 한다.[51]
"유대교 신봉자"라는 용어는 멕시코 시티, 리마,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에 설립된 스페인 종교 재판 및 종교 재판에서 암호 유대교로서 유대교를 계속 준수했다고 비난받은 개종자 (마라노라고도 불림)에게 사용되었다.[52][53][54] 1580~164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왕관 연합 기간에 포르투갈 신 기독교인이 스페인과 스페인 영토로 들어왔다. 당시 두 왕국과 해외 제국은 같은 군주가 소유했다.
3. 2. 2. 멕시코, 페루 종교 재판
"유대교 신봉자"라는 용어는 멕시코시티, 리마 등지에 설립된 스페인 종교 재판에서 암호 유대교로서 유대교를 계속 준수했다고 비난받은 개종자(마라노)에게 사용되었다.[52][53][54]4. 현대 기독교의 유대화 경향
(이전 출력이 비어있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source`)와 요약(`summary`)이 제공되어야 섹션 내용을 작성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
5. 한국의 관점과 유대화
(내용 없음)
참조
[1]
서적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
간행물
Echoes of Intra-Jewish Polemic in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1993-Autumn
[3]
간행물
Paul's Argument against Gentile Circumcision in Romans 2:17-29
Brill Publishers
2014-September
[4]
서적
The Early Christian World
Routledge
[5]
서적
Playing a Jewish Game: Gentile Christian Judaizing in the First and Second Centuries CE
Wilfrid Laurier University Press
[6]
문서
Greek New Testament
[7]
간행물
Echoes of Intra-Jewish Polemic in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1993-Autumn
[8]
문서
Michele Murray Playing a Jewish Game: Gentile Christian Judaizing in the First and Second Centuries CE
[9]
간행물
Supersessionism and Early Christian Self-Definition
http://www.jjmjs.org[...]
2016
[10]
문서
from the Koine Greek
[11]
문서
Anchor Bible Dictionary
[12]
문서
bibleverse
[13]
간행물
The Ideal Prepuce in Ancient Greece and Rome: Male Genital Aesthetics and Their Relation to Lipodermos, Circumcision, Foreskin Restoration, and the Kynodesme
http://www.cirp.org/[...]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20-01-03
[14]
간행물
Celsus' Decircumcision Operation: Medical and Historical Implications
http://www.cirp.org/[...]
Elsevier
2020-01-03
[15]
서적
When Christians Were Jews: The First Generation
https://books.google[...]
Yale University Press
2018
[16]
웹사이트
Circumcision: In Apocryphal and Rabbinical Literature
http://jewishencyclo[...]
Kopelman Foundation
2020-01-03
[17]
서적
Approaches to Ancient Judaism, New Series: Religious and Theological Studies
Scholars Press
[18]
서적
Judaism in the Roman World: Collected Essays
Brill Publishers
[19]
서적
A Concis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https://books.google[...]
Doubleday
[20]
서적
Lord Jesus Christ: Devotion to Jesus in Earliest Christianity
https://books.google[...]
Wm. B. Eerdmans
[21]
서적
Christianity: An Introduction
https://books.google[...]
Wiley-Blackwell
[22]
문서
bibleverse
[23]
서적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4]
서적
The New Perspective on Paul: Collected Essays
Mohr Siebeck
2019-11-30
[25]
서적
Paul and the Gentile Problem
Oxford University Press
2019-11-30
[26]
서적
Language, Religion and the Human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2019-11-30
[27]
서적
When Christians Were Jews: The First Generation
https://books.google[...]
Yale University Press
2018
[28]
웹사이트
CATHOLIC ENCYCLOPEDIA: Judaizers
http://www.newadvent[...]
2018-03-20
[29]
서적
Anatomy of the New Testament
Fortress Press
[30]
문서
bibleref2
[31]
문서
bibleverse
[32]
웹사이트
McGarvey on Acts 16
http://www.ccel.org/[...]
[33]
문서
bibleverse
[34]
문서
bibleverse
[35]
문서
bibleverse
[36]
성경
[37]
성경
[38]
성경
[39]
웹사이트
Catholic Encyclopedia (1907–1914): Acts of the Apostles: Objections Against the Authenticity
http://www.newadvent[...]
[40]
성경
[41]
웹사이트
Flavius Josephus. The Wars Of The Jews. Book II, chapter 8.14
https://web.archive.[...]
[42]
웹사이트
Flavius Josephus, The Wars of the Jews
https://www.perseus.[...]
Tufts.edu, Tufts University
[43]
웹사이트
St. Ignatius of Antioch to the Magnesians (Roberts-Donaldson translation)
http://www.earlychri[...]
Earlychristianwritings.com
2006-02-02
[44]
웹사이트
NPNF2-14. The Seven Ecumenical Councils |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http://www.ccel.org/[...]
CCEL.org
2005-06-01
[45]
서적
Christianity: An Introduction
Blackwell Publishing
2006
[46]
문서
Augustine's Commentary on Galatians: Introduction, Text, Translation, and Notes
[47]
문서
Handbook of heresies, sects and schisms
[48]
서적
Encyclopædia of Religion and Ethics
https://archive.org/[...]
T and T Clark, Edinburgh
1914
[49]
서적
The inquisitors and the Jews in the New World
1975
[50]
문서
Zumárraga and the Mexican Inquisition, 1536-1543
[51]
서적
The Golden Age: Poems of the Spanish Renaissance
W.W. Norton, New York
2006
[52]
서적
Inquisición y judaizantes en América española (siglos XVI-XVII)
Editorial Universidad del Rosario, Bogota
2008
[53]
서적
Sobre el concepto de judaizante
University Publishing Projects, Tel Aviv
2000
[54]
문서
Sobre las construcciones narrativas del “judío judaizante” ante la Inquisición
Universidad de Alicante
2014
[55]
웹사이트
circumcision
http://www.bartleby.[...]
The Columbia Encyclopedia, Sixth Edition, 2001-05
2007-08-08
[56]
웹사이트
The 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
http://www.cnewa.org[...]
Catholic Near East Welfare Association
2015-10-31
[57]
인용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