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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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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레치는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로마 시대에는 도시가 건설되었다. 동로마, 프랑크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 다양한 지배 세력의 지배를 받았으며, 1918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크로아티아에 속하며, 유프라시안 바실리카를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유적과 아름다운 해안선을 바탕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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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치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공식 명칭포레치 시
공식 명칭 (크로아티아어)Grad Poreč
공식 명칭 (이탈리아어)Città di Parenzo
토착어 명칭 (이탈리아어)Parenzo
토착어 명칭 (베네치아어)Parenso
라틴어 명칭Parens
옛 라틴어 명칭Parentium
고대 그리스어 명칭Πάρενθος (Párenthos)
포레치의 새벽 파노라마
포레치 파노라마
포레치 깃발
포레치 깃발
지리
좌표북위 45° 13′ 38″, 동경 13° 35′ 45″
면적111.7 제곱킬로미터
도시 면적14.3 제곱킬로미터
해발 고도29 미터
행정 구역
국가크로아티아
이스트라 주
자치체지방 자치체
정치
시장Loris Peršurić (IDS)
시의회 의원 수17명
시의회 구성IDS (9석)
SDP, HSS, HNS, HSLS (3석)
HDZ (1석)
HSU (1석)
ŽZ (1석)
무소속 (2석)
인구
총 인구 (2021년)16,607명
도시 인구8,841명
기타 정보
시간대CET (UTC+1)
여름 시간 (일광 절약 시간)CEST (UTC+2)
우편 번호52 440
지역 번호052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2. 역사

포레치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인들은 현재 도시 중심부에 400m x 200m 크기의 좁은 반도에 카스트룸(군사 거점)을 건설했다. 기원 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파렌티움은 공식적으로 도시가 되었고, 로마 식민지인 콜로니아 이울리아 파렌티움의 일부가 되었다. 3세기에는 이미 초기 기독교 시설을 갖춘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으며, 5세기에는 포레치의 수호 성인인 성 파렌티움의 마우루스의 유물을 모신 바실리카가 세워졌다.

수호천사 성당


유프라시안 바실리카 정문


476년 로마 제국 멸망 이후, 포레치는 동고트 왕국, 동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등 여러 지배 세력의 통치를 받았다. 12세기에는 짧은 독립 시기를 겪었으나, 이후 아퀼레이아총대주교에게 지배받았다. 1267년, 포레치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합류한 최초의 이스트리아 도시가 되었고, 이후 5세기 이상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으며 베네치아풍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1354년 제노바 공화국의 침공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1363년 도시 법령을 받았으나,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는 페스트로 인해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18세기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베네치아가 쇠퇴한 후, 포레치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했다가, 1797년부터 1814년까지는 나폴레옹의 일리리아 주에 속하며 프랑스 제1 제정에 편입되기도 했다. 프랑스 지배가 끝난 후에는 다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복귀했다. 1844년에는 트리에스테증기선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고, 1861년부터는 이스트리아의 현청 소재지가 되어 지방 의회, 학교, 행정·사법 청사 등이 설치되면서 조선업 중심지이자 오스트리아 귀족들의 휴양지로 발전했다. 1902년에는 협궤 철도 노선이 포레치와 트리에스테를 연결했다.

1918년 이후 포레치는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유고슬라비아에 점령되면서 공식 명칭이 포레치로 변경되었다. 이탈리아계 시민들은 강제 퇴거당하고 슬라브인으로 대체되었다.

전후 포레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고,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도시가 되었다.

2. 1. 고대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카스트룸이 현재 시가지 중심부의 400x 정도의 작은 반도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도시가 되었으며 로마 식민지인 '콜로니아 율리아 파렌티움'의 일부가 되었다.

3세기에는 초기 기독교 사찰 단지가 있는 조직화된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가장 오래된 바실리카에는 파렌티움의 성 마우루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고, 4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큰 로마 저택의 일부였던 기도실의 바닥 모자이크는 현재 에우프라시우스 바실리카 정원에 보존되어 있다.

데쿠마누스 거리

2. 2. 중세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포레치는 여러 통치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처음에는 동고트족이 다스렸고, 539년부터는 비잔틴 제국에 속했다. 788년부터는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2세기에는 짧은 기간 독립을 누렸으나, 이후 아퀼레이아 총대주교령에 편입되었다.

1267년, 포레치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최초의 이스트라 도시가 되었으며, 이후 5세기 이상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베네치아 양식의 궁전, 광장, 종교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1354년, 제노바 공화국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다. 1363년에는 도시 헌장을 받았다.

2. 3. 근대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카스트룸이 현재 시가지 중심부의 400m x 200m 정도의 작은 반도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1세기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도시가 되었으며 로마 식민지인 ''콜로니아 율리아 파렌티움''의 일부가 되었다.

3세기에는 초기 기독교 사찰 단지가 있는 조직화된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가장 오래된 바실리카에는 파렌티움의 성 마우루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고, 4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큰 로마 저택의 일부였던 기도실의 바닥 모자이크는 현재 에우프라시우스 바실리카 정원에 보존되어 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다양한 통치자와 세력이 포레치를 다스렸다. 처음에는 동고트족이 지배했고, 539년 이후에는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788년부터는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2세기에 짧은 독립 기간을 거친 후 아퀼레이아 총대주교령의 지배를 받았다. 1267년, 포렌초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최초의 이스트라 도시가 되었으며, 베네치아의 지배는 5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베네치아 양식의 여러 궁전, 광장 및 종교 건축물이 건설되었다. 1354년, 도시는 제노바 공화국에 의해 파괴되었다. 1363년, 포렌초는 도시 헌장을 받았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인구는 페스트로 인해 급감했다. 베네치아 공화국 멸망 이후 포레치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주권 아래 놓였다.

1805년부터 1814년까지 포레치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왕국 (나폴레옹)과 일리리아 주의 일부가 되었으며, 명목상으로는 프랑스 제1제국에 속했다. 이 기간 이후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에 합병되었고, 군주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재편되었다. 1844년에는 포레치와 트리에스테 사이에 증기선 연결이 이루어졌다.

1861년, 오스트리아 연안 아래 포레치는 학교, 행정 및 사법 사무소 및 기타 서비스와 함께 지역 의회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서서히 조선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귀족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1902년과 1935년 사이에는 협궤 철도 노선인 파렌자나('파렌자너 반'이라는 이름에서 유래)가 도시와 트리에스테를 연결했다.

2. 4. 현대

1947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2년 후, 유고슬라비아에 점령되어 도시 이름이 '''포레치'''로 변경되었다. 도시를 떠난 이탈리아인들 자리는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지역에서 온 슬라브족이 채웠다.[7]

1945년부터 1991년까지 포레치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부인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도시였다. 1991년 크로아티아는 독립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 이 도시의 이탈리아어 이름(Parenzoit) 또한 공식적으로 사용된다.[8][9]

3. 지리

포레치 해변


포레치는 이스트라반도 서쪽 해안에 위치하며, 지리적 특성과 기후 조건, 그리고 주변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포레치는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며 여름철 무더위가 덜하다. 연중 고른 강수량을 보이지만, 여름철에는 건조한 날씨가 나타난다.[10] 겨울에는 북풍인 보라와 남풍인 유고의 영향을 받으며, 여름에는 마에스트랄이라는 산들바람이 분다.

주변은 지중해성 식생이 풍부하게 나타나며, 비옥한 적토를 이용해 전통적으로 농업이 이루어져 왔다. 현재는 유기농 농업을 통해 올리브, 포도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인근에는 바레딘 동굴과 림 만 등 독특한 자연 명소가 있다.

3. 1. 기후



이스트라반도 서쪽 해안에 위치한 포레치는 바닷바람으로 시원하며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여름에도 무더위가 심하지 않다. 가장 더운 달은 7월로, 낮은 습도에서 최고 기온이 30°C에 달한다.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며, 평균 6°C이다. 연간 일조 시간은 2,400시간 이상이며, 여름에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햇빛이 비친다. 해수 온도는 28°C까지 올라가는데, 이는 공기 온도가 더 높은 크로아티아 남부 해안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920mm로 연중 고르게 분포하지만, 7월과 8월은 매우 건조하다.[10] 겨울철에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고 맑은 바람인 보라가 불고, 따뜻한 남풍인 유고는 비를 몰고 온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마에스트랄이라는 산들바람이 분다.

3. 2. 자연환경

포레치의 풍경은 지중해 식생이 풍부하며, 소나무 숲과 녹색 관목, 주로 홀름참나무와 애벌레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수 세대 동안 비옥한 혈액 붉은색 토지(crljenica|츠르리에니차hr)는 농업에 사용되어 왔으며, 주요 작물은 곡물, 과수원, 올리브 밭 및 채소였다. 오늘날 올리브, 포도 및 말바지하, 보르곤하, 메를로, 피노, 카베르네 소비뇽 및 테란과 같은 인기 있는 와인을 포함한 유기농 식품 생산이 상당하다.

발레디네의 동굴은 이스트라에서 유일하게 공개된 지리학적 기념물로, 포레치 근처에 있다. 발레디네 동굴에서는 석순이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석순 중 하나는 성모 마리아를 닮았으며, 다른 하나는 피사의 사탑을 닮았다. 림 만은 피오르와 유사한 길이 12km의 만으로, 파진치차(Pazinčica) 강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대지를 침식하여 만들어졌다. 석영의 조약돌이 종종 이곳에서 발견되어 바다에 노출된다.

경치는 지중해성 식생이 풍부하며, 소나무, 호나무, 마삭줄 등의 상용수 덤불이 펼쳐져 있다. 여러 대에 걸쳐 비옥한 적토(테라로사, 또는 츠르리에니차 ''Crljenica'')가 농업에 사용되어 왔다(곡물, 과수원, 올리브 농장, 채소밭 등). 현재 유기농산물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올리브, 포도, 그리고 말바지하, 보르곤하, 메를로, 피노, 카베르네 소비뇽, 테란 등이 재배되고 있다.

3. 3. 주변 명소

바레딘 동굴


바레딘 동굴은 이스트라에서 유일하게 개방된 지질 기념물로, 포레치 인근에 있다. 동굴 내 석순들은 기묘한 모양으로 유명하다. 그 중 하나는 성모 마리아를, 다른 하나는 피사의 사탑을 닮았다고 한다.[11]

림 만은 12km 길이의 강어귀로, 파진치차강이 아드리아 해로 흘러가는 길에 침식되어 좁은 운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바다에 노출된 석영 덩어리를 가끔 발견할 수 있다.

4. 인구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포레치-파렌초의 주요 민족 집단은 크로아티아인 (74.8%), 이스트라 이탈리아인 (3.2%), 세르비아인 (3.4%), 알바니아인 (2.7%), 보스니아인 (1.95%)이다.[13] 이탈리아 또는 크로아티아 출신에 관계없이 '지역' (이스트리아인으로)을 선택한 파렌치아인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어는 지역 인구의 15%가 사용한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포레치-파렌초 시에는 9,790명의 거주자가 있으며, 모든 정착지를 포함한 포레치-파렌초 자치구에는 총 16,696명의 거주자가 있다.[14]

포레치-파렌초의 정착지별 인구 (2011년 기준)[14]
정착지명인구
안톤치-안톤지164
바데르나-몸파데르노240
반키-반치17
바샤린카-발사리나90
블라그다니치-블라그다니치15
보나치-보나치104
브라토비치-브라토비치19
브르치치-바르치치163
부이치-부이치131
칸치니-잔지니158
체르바르-포라트-포르토 체르바라527
체르바르-체르바라99
추시-치우시20
데코비치-데코비치45
드라체바츠-드라체바초166
필리피니43
푸슈쿨린-포스코리노181
가르비나68
야키치 고린지-야키18
야세노비차-지아세노비차50
예흐니치-게치니39
유리치-유리치3
카두미-카두미216
카툰-카투노64
키르메냐크-키르메냐코48
코시노지치-코시니99
쿠크치-쿠카치500
라드로비치-라드리86
마툴리니-모톨리니16
미체티치-미체티37
미하토비치-미카티122
미헤리치-미켈리43
몬티자나-몬티사노57
무게바-몽게보180
무셸레즈-몬살리체366
노바 바스-빌라노바 델 키에토480
포레치 - 파렌초9,790
라드마니241
라도시 코즈 즈반다야-라도시 디 스반다티115
라코브치-라코바치26
루페니2
루지치-루시19
스탄치야 보다피야-스탄치아 베빌라쿠아116
스타리치-스타리8
스트라니치 코즈 노바 바시-스탄치오177
셰라예-세라이오2
슈티파니치-스테파니61
슈슈니치-수스냐노29
발카린-발카리나44
벨레니키-벨레니코107
르바리-바르바로792
브르즈나베리-베스나베리76
즈반다이-스반다티417



포레치-파렌초의 인구 역사
연도인구
18807,355
18908,478
190010,168
191012,439
192112,252
193112,607
19489,862
19538,604
19618,216
19718,820
198111,739
199114,633
200117,460
201116,696



2011년 조사에 따르면 포레치의 민족 구성은 크로아티아인 75.4%, 이탈리아인 4.23%, 세르비아인 3.24%, 알바니아인 2.45%이다.

5. 경제

전통적으로 포레치의 경제 활동은 육지와 바다에 관련되어 있었다.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은 식품 가공업이지만, 크로아티아가 더 넓은 유럽 경제로 통합됨에 따라 무역, 금융, 통신 부문에서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요 수입원은 관광이다.[12]

부동산 가격은 도시의 좋은 위치로 인해 매우 높다.

6. 교통

도심과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고속 쌍동선


도로 교통이 주요 교통 수단이다. 포레치는 이스트라 반도의 다른 지역과 트리에스테, 리예카, 류블랴나, 자그레브와 같은 대도시와 잘 연결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상업 공항풀라에 있다. 해상 교통은 이전 세기에 비해 덜 중요하며, 오늘날에는 주로 관광 여행에 사용된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이스트라주 지방 자치 단체의 소재지인 파진에 있다. 1902년에서 1937년 사이에는 협궤 철도 노선인 파렌차나가 이 도시와 트리에스테를 연결했다.[1]

7. 문화

포레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과 문화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 구조가 남아있으며, 데쿠마누스 막시무스와 카르도 막시무스 거리는 고대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마라포르 광장에는 넵투누스 신전이 있으며,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집들과 베네치아 고딕 건축 양식의 궁전도 볼 수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프란체스코회 교회는 18세기에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구시가지


6세기에 재건된 에우프라시우스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중요한 유적지이다. 12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도시는 방어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포레치에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거리 중 하나인 Ulica Stjepana Konzula Istranina가 있다.

1844년, 오스트리아 로이드 증기선 회사가 포레치에 관광 노선을 개설하면서 관광 산업이 시작되었다. 1910년에는 최초의 호텔인 리비에라 호텔이 건설되었고, 이후 관광 기반 시설이 발전하였다.

오늘날 개조된 리비에라 호텔


포레치의 해변


오늘날 관광 시설은 37km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발달되어 있으며, 성수기에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포레치의 문화 유산은 역사적인 시내 중심가, 박물관, 갤러리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비수기에는 주말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

7. 1. 주요 명소

도시 계획은 여전히 고대 로마 시대의 카스트룸 구조를 보여준다. 주요 거리는 데쿠마누스와 카르도 막시무스로, 현재도 고대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마라포르는 두 개의 신전이 있는 로마의 광장이다. 그 중 하나는 서기 1세기에 세워졌으며, 로마 신화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에게 헌정되었다. 크기는 30m x 11m이다.

로마네스크 건축 시대의 집들이 몇 채 보존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베네치아 고딕 건축 양식의 궁전도 볼 수 있다. 원래 13세기에 지어진 고딕 건축 양식의 프란체스코회 교회였던 '디에타 이스트리아나' 홀은 18세기에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에우프라시우스 성당은 6세기에 비잔틴 제국 시대에 주교 유프라시우스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포레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2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이 도시는 방어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도 오늘날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포레치에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거리 중 하나인 Ulica Stjepana Konzula Istranina가 있다.

7. 2. 관광



1844년, 오스트리아 로이드 증기선 회사가 포레치(파렌초)에 기항하는 관광 노선을 개설했다. 1845년에는 도시를 묘사하고 그린 최초의 관광 가이드가 인쇄되었다. 1910년에는 가장 오래된 호텔인 리비에라 호텔이 건설되었고, 이후 Parentino 등이 생겨났다.

오늘날, 관광 기반 시설은 미르나 강과 림 계곡 사이의 37km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분산되어 있다. 남쪽에는 플라바 라구나(푸른 석호), 젤레나 라구나(녹색 석호), 비옐라 우발라(하얀 만), 브룰로와 같은 자급자족형 센터가 있고, 북쪽에는 마테라다, 체르바르 포라트, 울리카 및 란테르나가 있다. 성수기에는 이 지역의 임시 인구가 12만 명을 넘을 수 있다.

포레치의 문화 유산은 역사적인 시내 중심가, 주택과 궁전에 위치한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볼 수 있으며, 그 중 많은 곳이 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개인 주택이다. 비수기에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온 주말 방문객이 이 지역을 방문한다. 스포츠 단지는 연중 개발 및 사용된다.

8. 자매 도시

마사롬바르다, 이탈리아

쇼포크, 헝가리

포잉, 독일

참조

[1] 웹사이트 The official site http://www.porec.hr
[2] 웹사이트 Grad Poreč - Gradonačelnik http://www.porec.hr/[...]
[3] Q Q119585703
[4] 간행물 Croatian Census 2021
[5] 웹사이트 Episcopal Complex of the Euphrasian Basilica in the Historic Centre of Poreč https://whc.unesco.o[...]
[6] 문서 Tragom povijesti gradske knjižnice Poreč
[7] 서적 I censimenti della popolazione dell'Istria, con Fiume e Trieste, e di alcune città della Dalmazia tra il 1850 e il 1936 Unione Italiana-Fiume, Università Popolare-Trieste, Centro di Ricerche Storiche di Rovigno, Trieste-Rovigno
[8] 웹사이트 The official site of the City of Poreč, Grad Poreč – Città di Parenzo http://www.porec.hr/[...]
[9] 웹사이트 The document stating the official bilingual name of Poreč http://www.istra-ist[...]
[10] 웹사이트 Poreč http://porec.mons.hr[...] 2008-07-30
[11] 웹사이트 Cave Baredine http://www.istra.com[...] 2008-07-30
[12] 웹사이트 SAS Output http://www.dzs.hr/En[...]
[13] 간행물 Croatian Census 2011
[14] 간행물 Croatian Censu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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