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중화민국 관계
1. 개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관계는 냉전 시기 반공주의를 공유하며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나, 1992년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단절되었다. 이후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대표부를 설치하여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1993년 이후 무역 규모가 증가하고, 2012년부터는 상호 비자 면제 혜택을 제공하며, 2023년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대만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등 문화 및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
| 관계 명칭 | 대한민국-중화민국 관계 |
|---|---|
| 다른 명칭 | 중화민국-한국 관계 (中華民國—韓國關係) 한중 관계 (韓中關係) |
| 1943년 |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 보장 약속 |
|---|---|
| 1949년 1월 | 중화민국, 대한민국 정부 승인 |
| 1992년 8월 |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며 중화민국과 단교 |
| 대표부 |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
|---|---|
| 대표 | 대한민국: 정병원 중화민국: 량광중 |
| 무역 규모 | 대한민국-대만 교역액 327억 달러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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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 서울특별시 - 타이베이시 부산광역시 - 가오슝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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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정보 |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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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중화민국 관계 -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는 한중 수교로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이 폐쇄된 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간 비공식 관계 유지를 위해 서울에 설치된 대만 정부의 대표 기관으로, 경제·문화 교류 및 대한민국 내 대만 국민에 대한 영사 업무를 담당하며 부산에는 부산 사무처가 위치한다. -
대한민국-중화민국 관계 -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
1949년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서울에 개설되었던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은 1992년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폐쇄되었고, 현재는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를 통해 양국 관계가 비공식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
중국-한국 관계 -
만주
만주는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을 포함한 중국 동북 지역을 가리키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왕조가 지배했으며, 지리적으로는 광활한 평야와 산맥을 특징으로 하며, 현재는 중국 정부가 "동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중국-한국 관계 -
민생단 사건
민생단 사건은 1930년대 만주에서 일본 제국의 이간책으로 만들어진 친일 조직을 구실로 중국 공산당이 항일 무장 투쟁을 하던 조선인들을 숙청한 사건으로, 무고한 희생과 조선인-중국인 간 불신 심화, 항일 연대 약화를 초래했으며 김일성이 이 사건 수습 과정에서 지도력을 강화했다. -
항공 정보 -
한미 관계
한미 관계는 1882년 수교 이후 정치, 경제, 안보 등 다방면에서 협력과 경쟁을 거듭하며 발전해왔으나, 불평등 조약, 무력 충돌, 주한미군 문제, 경제적 이권 다툼, 북핵 문제 등으로 갈등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
항공 정보 -
버진 사모아
버진 사모아는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홀딩스와 사모아 정부의 합작으로 설립되어 피지, 사모아 등 섬들을 연결하는 노선을 운항했으나, 사모아 정부의 투자 철수로 2017년 운항을 중단했다.
2. 역사적 배경
냉전 시기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반공주의와 국토수복(분단국가)이라는 공통 과제를 공유하며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중국'을 주로 중화민국의 약칭으로 사용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공산당의 준말인 중공(中共), 중화민국을 자유중국 또는 반공중국이라고 불렀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 이후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중화민국은 '대만'(타이완)으로 부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대한민국은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약 44년간 지속된 중화민국과의 공식 관계를 단절했다.
1948년5월 10일 국제 연합 관리 하에 남한 단독으로 제헌 국회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 집권 하에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4개월 후,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1949년1월 4일 서울 명동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 82와 83에서 북한의 군사 행동을 비난했는데, 당시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 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은 두 결의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1950년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 인민 지원군을 북한 측에 파견했다. 반면 중화민국은 군을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재한 화교 학교 교원과 학생들이 심리전 요원으로서 중국 인민 지원군 병사에게 투항을 호소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양국은 냉전 하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75년 장제스 총통 사망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총통 사망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명하는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했으며, 김종필 국무총리를 조문 사절로 대만에 파견했다.
2.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중화민국은 상하이에 근거지를 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한반도에는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김구, 김규식 등 주요 인물이 귀환했다.
2.2. 냉전 시대 (1948년 ~ 1992년)
냉전 시기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반공주의 이념을 공유하며 긴밀하게 협력했다. 1948년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을 승인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수교국이 되었다. 1949년 1월 4일에는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에 물자 지원을 제공하고, 심리전 요원을 파견하여 중공군을 상대로 투항을 권유하는 등 간접적으로 참전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등 대한민국 정상들은 대만을 방문하여 장제스 등 중화민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가졌다. 1975년 장제스 총통 서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김종필 국무총리를 조문 사절로 파견했다.
1949년 NATO 창설과 공통된 반공주의 입장에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필리핀과 함께 태평양 조약을 결성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82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84에서 유엔은 북한의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침략을 규탄했다. 중화민국은 두 유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대한민국과 대만은 공동으로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을 지원했다.
2.3. 단교와 비공식 관계 (1992년 이후)
199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중국’을 주로 중화민국의 약칭으로 사용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공산당의 준말인 중공(中共), 중화민국을 자유중국(自由中國, Free China) 또는 반공중국(反共中國, Anti-communist China)이라고도 불렀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 이후로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부르고, 중화민국은 ‘대만’(타이완)이라고 부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1992년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공식적인 수교관계를 맺음으로써 약 44년 동안 지속된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간의 공식 관계는 끊어졌다.
1992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할 것임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외무부에 정식으로 항의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는 단절되었다. 단교 직후 양국의 민간 교류도 일시적으로 냉각되었다. 중화민국 정부는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과 함께 대한민국산 상품에 대한 모든 무역 특혜 철폐, 대한민국과 대만 간의 항공 노선 운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서울과 타이베이를 오가던 정기 여객기의 운행이 중단되고 당분간 전세기 편이 대체 운항하였다. 정기 여객기 중단으로 1992년 42만 명에 이르던 관광객 수는 이듬해에 20만 명으로 급감하였다가, 2003년에는 36만 명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1991년 9월 17일,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대한민국은 중화민국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마지막 아시아 국가였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1992년 8월 24일,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승인 전환을 발표하기 위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중화민국에 단 며칠의 사전 통보만을 제공했고, 중화민국은 이에 대해 비난했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가, 2005년 부산광역시에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부산 사무처가 개설되면서 산업, 무역 분야에서는 교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1993년 "신 관계 프레임워크"는 대한민국과 대만 간의 비공식적인 연락 방안이 되었다. 1994년 1월부터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와 주 대한민국 타이베이 대표부는 대사관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문화 및 교육과 같은 분야에서 비공식적인 양자 교류를 촉진했다. 또한 1994년, 대한민국은 "대만과의 접촉 허용 원칙"과 "대만과의 교류 및 협력 기본 지침"이라는 내부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인이 대만의 상대방을 방문하거나 대만 정치인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했다.
2004년 9월 양국 간 항공 협정이 서명된 이후 2005년에는 54만 명, 2014년에는 100만 명 이상으로 관광객 수가 증가했다.
3. 외교 관계
1949년 8월 장제스 총통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이승만 대통령과 경상남도 진해(현 창원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53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이 타이완을 방문하여 장제스 총통과 정상회담을 하였다.
1966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타이베이시를 방문하여 장제스 총통과 정상회담을 하고 대한민국-중화민국 양국의 국토 수복 문제와 반공 협력 방안을 협의하였다.
김영삼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2001년 7월 타이베이를 방문하여 천수이볜 총통과 만났으나, 직항 항공편 재개에 대한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2004년 10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천수이볜 총통의 초청으로 다시 대만을 방문하여 국립정치대학교에서 연설을 하고, 부산광역시의 자매 도시인 가오슝시의 항만 시설을 둘러보았다.
3.1. 상호 대표부
대한민국은 1993년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를 설치하여 중화민국과 비공식 관계를 재수립했다. 중화민국은 1993년 서울특별시에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를, 2005년 부산광역시에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부산 사무처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3.2. 정상 회담
1949년 8월 장제스 총통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이승만 대통령과 경상남도 진해(현 창원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53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이 타이완을 방문하여 장제스 총통과 정상회담을 하였다.
1966년 2월 박정희 대통령이 타이베이시를 방문하여 장제스 총통과 정상회담을 하고 대한민국-중화민국 양국의 국토 수복 문제와 반공 협력 방안을 협의하였다.
김영삼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2001년 7월 5일간 타이베이를 방문하여 천수이볜 총통과 오찬 만찬을 가졌으나, 양측은 직항 항공편 재개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 문구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
2004년 10월, 항공 협정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천수이볜 총통의 초청으로 다시 대만을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립정치대학교에서 연설을 했고, 부산광역시의 자매 도시인 가오슝시의 항만 시설을 둘러보았다.
3.3. 역대 공관장
|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
| 특사 | 정환범(鄭桓範) | 1948년 11월 ~ 1949년 1월 | |
| 초대 대사 | 신석우(申錫雨) | 1949년 8월 ~ 1950년 3월 | 주중화민국대사관 (1949년 7월 29일 대사관으로 승격) |
| 2대 대사 | 이범석(李範奭) | 1950년 12월 ~ 1951년 9월 | |
| 3대 대사 | 김홍일(金弘壹) | 1951년 10월 ~ 1960년 6월 | |
| 4대 대사 | 백선엽(白善燁) | 1960년 7월 ~ 1961년 7월 | |
| 5대 대사 | 최용덕(崔用德) | 1961년 7월 ~ 1962년 7월 | |
| 6대 대사 | 김신(金信) | 1962년 10월 ~ 1970년 12월 26일 | |
| 7대 대사 | 김계원(金桂元) | 1971년 3월 ~ 1978년 11월 | |
| 8대 대사 | 옥만호(玉滿鎬) | 1978년 11월 ~ 1981년 5월 | |
| 9대 대사 | 김종곤(金鍾坤) | 1981년 7월 ~ 1985년 4월 | |
| 10대 대사 | 김상대(金相台) | 1985년 4월 ~ 1988년 7월 | |
| 11대 대사 | 한철수(韓哲洙) | 1988년 7월 ~ 1991년 7월 | |
| 12대 대사 | 박노영(朴魯榮) | 1991년 7월 ~ 1992년 8월 | 1992년 8월 한중 수교 및 중화민국과 단교, 대사관 철수. |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비고 |
|---|---|---|---|---|
| 1 | 한철수(韓哲洙) | 1993년 11월 ~ 1995년 12월 |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1992년 8월 24일 단교에 따른 변경) | |
| 2 | 강민수(姜敏秀) | 1996년 2월 ~ 1999년 2월 | ||
| 3 | 윤해중(尹海重) | 1999년 2월 ~ 2002년 2월 | ||
| 4 | 손훈(孫薰) | 2002년 2월 ~ 2004년 2월 | ||
| 5 | 황용식(黃龍植) | 2004년 3월 ~ 2006년 2월 | ||
| 6 | 오상식(吳相式) | 2006년 2월 ~ 2008년 9월 | ||
| 7 | -- | 구양근(具良根) | 2008년 9월 ~ 2011년 9월 | |
| 8 | -- | 정상기(丁相基) | 2011년 10월~ 2014년 4월 | |
| 9 | 조백상(趙百相) | 2014년 4월 ~ 2016년 11월 | ||
| 10 | 양창수(楊昌洙) | 2016년 11월 ~ 2019년 | ||
| 11 | 강영훈(姜永勳) | 2019년 5월 ~ |
4. 경제 관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연간 무역 규모는 약 30000이며, 반도체 제품이 지난 몇 년간 무역의 가장 큰 품목이었다. 2016년 4월 현재, 양측 간의 상호 투자는 통신, 소비재, 금융, 정보 기술, 철강, 의약품, 금속, 증권 및 반도체 분야에서 약 2400에 달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여러 한국 기업들이 가오슝 첩운, 타오위안 첩운 등 대만의 지하철 열차를 제조했으며, 타이베이 101, 타오위안 국제공항 등 다수의 주요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국과 대만 간의 양자 투자는 불균형을 이룬다. 2019년, 대만은 한국에 220를 투자한 반면, 한국은 대만에 37를 투자했다.
5. 교통
1992년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고, 양국 간 항공 노선 운항도 중단되었다. 서울과 타이베이를 오가던 정기 여객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1992년 42만 명에 달했던 관광객 수는 이듬해 20만 명으로 급감했다.
2004년 9월 1일,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가 항공 협정에 서명하면서 양국 간 직항 정기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었다. 이 협정으로 대한민국 항공사들은 연료비 등 330(2004년 기준 29)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2004년 양국 간 항공 협정 체결 이후, 2005년에는 54만 명, 2014년에는 100만 명 이상으로 양국 간의 교류가 증가했다.
현재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간에는 다음과 같은 항공 노선이 운항 중이다.
| 거점 도시 | 공항 IATA | 공항 ICAO | 거점 공항 이름 | 항공사 및 상대국 취항지 |
|---|---|---|---|---|
| 서울/인천 | ICN | RKSI | 인천 | ○대한항공(1개): 타이베이(도원) ○아시아나항공(1개): 타이베이(도원) |
| 부산/김해 | PUS | RKPK | 김해 | ○대한항공(1개): 타이베이(도원) ○에어부산(1개): 타이베이(도원) |
| 서울/김포 | GMP | RKSS | 김포 | ○이스타항공(1개): 타이베이(쑹산) ○티웨이항공(1개): 타이베이(쑹산) |
| 제주 | CJU | RKPC | 제주 | ○진에어(1개): 타이베이(도원) |
| 타이베이 | TPE | RCTP | 타오위안 | ○중화항공(2개): 서울(인천), 부산(김해) ○에바 항공(1개): 서울(인천) ○부흥항공(2개): 부산(김해), 제주 ○캐세이퍼시픽 항공(1개): 서울(인천) ○타이항공(1개): 서울(인천) |
| 타이베이 | TSA | RCSS | 쑹산 | ○중화항공(1개): 서울(김포) ○에바 항공(1개): 서울(김포) |
| 가오슝 | KHH | RCKH | 가오슝 | ○만다린항공(1개): 서울(인천) ○유니 항공(1개): 서울(인천) |
6. 문화 및 인적 교류
1992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발표하면서 중화민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 단교 직후 양국 간 민간 교류도 일시적으로 냉각되었다. 중화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산 상품에 대한 무역 특혜 철폐, 양국 간 항공 노선 운항 금지 조치를 내렸다. 1992년 42만 명에 이르던 관광객 수는 이듬해 20만 명으로 급감했다가, 2003년에는 36만 명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가, 2005년 부산광역시에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부산 사무처가 개설되면서 산업, 무역 분야 교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2004년 9월 양국 간 항공 협정이 체결된 이후 2005년에는 54만 명, 2014년에는 100만 명 이상으로 관광객이 증가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2만 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산둥성 또는 만주 출신이다. 대만에는 2015년 9월 기준 4,828명(재외국민 4,377명, 시민권자 451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2010년 12월에는 3,968명(재외 국민 3,548명, 시민권자 420명)이었다.
최근 대만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으며, 2023년 1~4월 대만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에서 비 중화권 국가 중 한국이 처음으로 1위를 기록했다. 2023년 11월에는 교통부 관광서 부산 사무소가 서울 이외의 지방에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7. 교육
대한민국과 중화민국(대만) 간에는 엄격한 학술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여러 중화민국(대만)계 학교가 있다.
| 학교명 |
|---|
| 서울화교초등학교 |
| 서울화교중고등학교 |
| 영등포한성화교초등학교 |
| 부산화교소학교 |
| 부산화교중고등학교 |
| 대구화교소학교 |
| 대구화교중고등학교 |
| 인천화교학교 |
| 수원중정화교소학교 |
| 의정부화교소학교 |
| 원주화교소학교 |
| 충주화교소학교 |
| 온양화교소학교 |
| 군산화교소학교 |
중화민국(대만)에는 대한민국계 학교가 두 곳 있다.
| 학교명 |
|---|
| 타이페이한국학교 |
| 가오슝한국국제학교 |
8. 국제기구 협력
대한민국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1991년 중화 타이베이의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가입을 지지했다. 대한민국은 APEC에서 회원국의 정치적 약자(acronym)의 성격을 회원 경제로 변경하여 APEC을 공식적으로 환태평양 경제 포럼으로 만들었다. 중화민국 경제부 장관, 총통이 임명한 특별 사절, 그리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중화민국의 기업 대표는 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으로 연례 APEC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중화 타이베이는 또한 기술 및 중소기업과 같이 중화민국이 특정 강점을 가진 주제와 관련된 비(非) 장관급 APEC 컨소시엄 및 워크숍을 주최할 수 있다. 이러한 컨소시엄 및 워크숍은 다른 APEC 회원 경제와 함께 경제 및 비즈니스 관련 문제에 대한 성공만을 다루도록 되어 있다. 중화 타이베이의 APEC 참여는 미국이 지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수용한다. APEC 기업인 여행 카드(ATBC) 제도는 중화민국과 왕래하는 기업인에게 적용된다. 대한민국은 또한 중화민국의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초기 참여와 후속 활동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