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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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정 (성씨)
정(鄭), 정(丁), 정(程), 정(貞), 정(井)은 한국의 성씨이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정(鄭)씨는 215만 명으로 한국 성씨 인구 5위이며, 정(丁)씨는 24만 명으로 34위, 정(程)씨는 1만 1천여 명, 정(貞)씨와 정(井)씨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 성씨이다. 정(鄭)씨는 동래, 경주 등을 비롯한 247개의 본관이 있고, 정(丁)씨는 나주, 영광 등을 본관으로 한다. 정(程)씨는 하남, 한산 등을 본관으로 한다. 정(鄭)씨는 고려 시대 정몽주, 조선 시대 정도전 등의 인물을 배출했다. 정(丁)씨는 백제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정(程)씨는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이다. 정씨의 로마자 표기는 Jung, Jeong, Chung 등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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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라 정(鄭)씨
정(鄭)씨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로, 신라 초기에 유리 이사금이 6촌장 중 한 명인 지백호에게 하사한 성씨이다.
경주 정씨의 시조는 사로 6촌 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인 지백호이다.[4] 지백호로부터 여러 본관이 분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계보를 고증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본관마다 시조를 달리한다.
고려사에는 초계 정씨 시조 정배걸,[5] 동래 정씨 4세손 정항, 영일 정씨 중시조 정습명이 기록되어 있고,[6]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정습명의 11세손이다. 봉화 정씨 5세손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해주 정씨는 해주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살았던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때 정(鄭)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고려사에 평장사 정유산과 무신정변을 주도한 정중부가 해주 정씨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토착 정씨와 달리 서산 정씨는 송나라 원외랑 정신보가 고려로 귀화한 성본이고, 낭야 정씨는 명나라 진사 정선갑이 봉림대군을 따라 조선에 귀화한 성본이다.
현대 인물로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하동 정씨이고, 신세계 그룹 정재은 회장은 온양 정씨이다.
2. 1. 개요
정(鄭)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151,87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5위를 차지했다. 동래, 경주, 연일, 해주, 진주, 하동, 초계, 청주, 온양, 봉화, 광주, 나주, 서산, 함평, 청산, 랑야 등 247본이 전해진다.[1]경주 정씨의 시조는 사로국 6촌 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村長)인 '''지백호'''이다.[4] 지백호로부터 여러 본관이 분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계보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각 본관마다 시조를 달리 한다.
고려사에는 초계 정씨 시조 정배걸,[5] 동래 정씨 4세손 정항, 영일 정씨 중시조 정습명이 기록되어 있고,[6]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정습명의 11세손이다. 봉화 정씨 5세손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하였다.
해주 정씨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살았던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때 정(鄭)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고려사에 평장사 정유산과 무신정변을 주도한 정중부가 해주 정씨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토착 정씨와 달리 서산 정씨는 송나라 원외랑 정신보가 고려로 귀화한 성본이고, 낭야 정씨는 명나라 진사 정선갑이 봉림대군을 따라 조선에 귀화한 성본이다.
현대 인물로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하동 정씨이고, 신세계 그룹 정재은 회장은 온양 정씨이다.
2. 2. 역사
정(鄭)씨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초기에 유리 이사금이 6촌장 중 한 명인 지백호에게 하사한 성씨이다. 2015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서 정(鄭)씨는 2,010,117명으로 전체 인구의 4.16%를 차지하며, 5번째로 많은 성씨로 나타났다.[1]
정(鄭)씨는 동래 정씨, 경주 정씨, 진주 정씨, 연일 정씨 등 136개의 본관이 확인되었다.[1]
2. 2. 1. 기원
정(鄭)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151,879명으로 조사되어 성씨 인구 5위를 차지했다. 본관은 동래, 경주, 연일, 해주, 진주, 하동, 초계, 청주, 온양, 봉화, 광주, 나주, 서산, 함평, 청산, 랑야 등 247본이 전한다.경주 정씨의 시조(始祖)는 사로 6촌 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村長)인 지백호이다.[4] 지백호로부터 여러 본관이 분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계보(系譜)를 고증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본관마다 시조를 달리 한다.
초계 정씨 시조 정배걸,[5] 동래 정씨 4세손 정항, 영일 정씨 중시조 정습명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6]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정습명의 11세손이다. 봉화 정씨 5세손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였다.
해주 정씨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 세거했던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때 정(鄭)씨를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고려사에 평장사(平章事) 정유산과 무신정변을 주도한 정중부가 해주 정씨로 기록되어 있다.
대다수의 토착 정씨와 달리 서산 정씨는 송(宋)나라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정신보가 고려로 귀화한 성본이고, 낭야 정씨는 명나라 진사 정선갑이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배종하여 조선에 귀화한 성본이다.
2. 2. 2. 고려 시대
초계 정씨 시조 정배걸(鄭倍傑),[5] 동래 정씨 4세손 정항(鄭沆), 영일 정씨 중시조 정습명(鄭襲明)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6]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정습명의 11세손이다. 봉화 정씨 5세손 정도전(鄭道傳)은 조선 건국에 큰 영향을 주었다.해주 정씨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 세거했던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때 정(鄭)씨를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고려사에 평장사(平章事) 정유산(鄭惟産)과 무신정변을 주도한 정중부(鄭仲夫)가 해주 정씨로 기록되어 있다.
2. 2. 3. 조선 시대
초계 정씨(草溪鄭氏) 시조 정배걸(鄭倍傑)[5], 동래 정씨(東萊鄭氏) 4세손 정항(鄭沆), 영일 정씨(迎日鄭氏) 중시조 정습명(鄭襲明)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6]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정습명의 11세손이다. 봉화 정씨(奉化鄭氏) 5세손 정도전(鄭道傳)은 조선을 설계하였다.해주 정씨(海州鄭氏)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 세거했던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때 정(鄭)씨를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고려사에 평장사(平章事) 정유산(鄭惟産)과 무신정변을 주도한 정중부(鄭仲夫)가 해주 정씨로 기록되어 있다.
대다수의 토착 정씨와 달리 서산 정씨(瑞山鄭氏)는 송(宋)나라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정신보(鄭臣保)가 고려로 귀화한 성본이고, 낭야 정씨(瑯琊鄭氏)는 명나라 진사 정선갑(鄭先甲)이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배종하여 조선에 귀화한 성본이다.
2. 2. 4. 귀화 성씨
대다수의 토착 정(鄭)씨와 달리 서산 정씨(瑞山鄭氏)는 송나라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정신보(鄭臣保)가 고려로 귀화한 성본이고, 낭야 정씨(瑯琊鄭氏)는 명나라 진사 정선갑(鄭先甲)이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배종하여 조선에 귀화한 성본이다.2. 3. 본관
정(鄭)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151,879명으로 조사되어 성씨 인구 5위를 차지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 경주(慶州), 연일(延日), 해주(海州), 진주(晉州), 하동(河東), 초계(草溪), 청주(淸州), 온양(溫陽), 봉화(奉化), 광주(光州), 나주(羅州), 서산(瑞山), 함평(咸平), 청산(靑山), 랑야(瑯琊) 등 247본이 전한다.경주 정씨(慶州鄭氏)의 도시조(都始祖)는 사로(斯盧) 6촌 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村長)인 지백호(智伯虎)이다.[4] 지백호로부터 여러 본관이 분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계보(系譜)를 고증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본관마다 시조를 달리한다.
초계 정씨(草溪鄭氏) 시조 정배걸(鄭倍傑),[5] 동래 정씨(東萊鄭氏) 4세손 정항(鄭沆), 영일 정씨(迎日鄭氏) 중시조 정습명(鄭襲明)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6]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정습명의 11세손이다. 봉화 정씨(奉化鄭氏) 5세손 정도전(鄭道傳)은 조선을 설계하였다.
해주 정씨(海州鄭氏)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 세거했던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때 정(鄭)씨를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고려사에 평장사(平章事) 정유산(鄭惟産)과 무신정변을 주도한 정중부(鄭仲夫)가 해주 정씨로 기록되어 있다.
대다수의 토착 정씨와 달리 서산 정씨(瑞山鄭氏)는 송(宋)나라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정신보(鄭臣保)가 고려로 귀화한 성본이고, 낭야 정씨(瑯琊鄭氏)는 명나라 진사 정선갑(鄭先甲)이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배종하여 조선에 귀화한 성본이다.
2. 4. 인물
정(鄭)씨는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015년 기준 2,151,87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5위를 기록했다.[1] 동래, 경주, 연일, 해주, 진주 등 247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정(鄭)씨는 신라 초기에 유리 이사금이 6촌장 중 한 명인 지백호에게 하사한 성씨라고 한다.
역사 속 주요 인물로는 정중부, 정몽주, 정도전 등이 있다. 현대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2. 4. 1. 역사 속 인물
- 정중부 (1106–1179): 고려 시대 무신, 무신정변의 주역[1]
- 정몽주 (1337–1392): 고려 시대 문신, 학자[1]
- 정도전 (1342–1398):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한 정치가[1]
- 정인지 (1396–1478): 조선 시대 성리학자[1]
- 정현조 (1440–1504): 조선 시대 문신, 학자[1]
- 하동 부대부인 (1522–1567): 조선 시대 왕족[1]
- 정난정 (1525-1565): 조선 시대 여인[1]
- 정인홍 (1535–1623): 조선 시대 성리학자, 문인[1]
- 정철 (1536–1593): 조선 시대 문신, 시인[1]
- 정구 (1543–1620): 조선 시대 학자, 정치가, 역사가, 문인[1]
- 정여립 (1546–1589): 조선 시대 정치가[1]
- 정발 (1553–1592): 조선 시대 무관, 임진왜란 관련 인물[1]
- 정기룡 (1562–1622): 조선 시대 장군[1]
- 정문부 (1565–1624): 조선 시대 문신[1]
- 정립 (1574–1629): 조선 시대 문신, 외교관[1]
- 정선 (1676–1759): 조선 시대 화가[1]
- 정지해 (fl. 1748): 조선 시대 고고학자[1]
- 정약용 (1762–1836): 조선 시대 실학자[1]
- 정약종 (1760–1801): 한국 천주교 순교자[1]
- 정하상 바오로 (1794 or 1795–1839): 한국 천주교 성인[1]
2. 4. 2. 현대 인물
- 기업인
- 예술가
- 배우
- 성우
- 영화 및 방송
- 가수
- 기타
- 축구 선수
- 기타 스포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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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출생-사망 !!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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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태 || 1970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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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근 || 1973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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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현 || 1978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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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욱 || 1978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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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기 || 1979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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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훈 || 1980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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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훈 || 1980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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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훈 || 1981년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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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우 || 1982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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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람 || 1985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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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현 || 1990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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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빈 || 1990년 출생 ||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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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희 || 1964년 출생 || 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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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순 || 1971년 출생 || 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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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민 || 1974년 출생 || 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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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란 || 1985년 출생 || 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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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택 || 1921–2006 || 무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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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훈 || 1932년 출생 || 권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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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초 || 1940년 출생 || 권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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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환 || 1940년 출생 || 합기도, 당수도, 태권도 그랜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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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영 || 1959년 출생 || 프로 권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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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 || 1969년 출생 || 유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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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용 || 1971년 출생 || 유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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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숙 || 1972년 출생 || 유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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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경 || 1978년 출생 || 유도 선수, 종합격투기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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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은 || 1980년 출생 || 태권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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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경 || 1985년 출생 || 유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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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연 || 1987년 출생 || 유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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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빈 청 || 1988년 출생 || 대한민국 출생 뉴질랜드 태권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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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다운 || 1988년 출생 || 유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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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안 좀비 || 1987년 출생 || 종합격투기, 킥복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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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기 || 1971년 출생 || 펜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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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옥 || 1980년 출생 || 플뢰레 펜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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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화 || 1981년 출생 || 에페 펜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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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정 || 1984년 출생 || 에페 펜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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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선 || 1984년 출생 || 에페 펜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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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복 || 1960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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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이 || 1964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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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경 || 1985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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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해 || 1985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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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영 || 1985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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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호 || 1986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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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 || 1988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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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라 || 1992년 출생 || 핸드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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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숙 || 1951년 또는 1952년 출생 || 탁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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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영 || 1967년 출생 || 배드민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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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석 || 1977년 출생 || 테니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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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성 || 1982-2018 || 배드민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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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은 || 1990년 출생 || 배드민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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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식 || 1992년 출생 || 탁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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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홍 || 1993년 출생 || 테니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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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 || 1996년 출생 || 테니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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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성 || 1998년 출생 || 테니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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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송옥 || 1974년 출생 || 북한 장거리 육상 선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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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철 || 1978년 출생 || 북한 장거리 육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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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옥 || 1981년 출생 || 북한 장거리 육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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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희 || 1983년 출생 || 대한민국 장거리 육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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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혁 || 1991년 출생 || 대한민국 장거리 육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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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희 || 1984년 출생 || 수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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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슬기 || 1988년 출생 || 수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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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연희 || 1989년 출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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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다래 || 1991년 출생 || 수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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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용 || 1992년 출생 || 수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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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옥진 || 1945년 출생 || 북한 배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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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기 || 1949년 출생 || 대한민국 배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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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경 || 1950년 출생 || 대한민국 배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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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무래 정(丁)씨
고무래 정(丁)씨는 제양당(齊陽堂) 정(丁)씨라고도 불리며, 강태공의 아들인 정공(丁公)의 후손들이 정(丁)을 성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압해 정씨의 시조로 알려진 정덕성(丁德盛)은 당나라 문종 때 대승상을 지냈고, 85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에 유배되어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정덕성이 정사(正史)에 등장하지 않아 실존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고, 대종회에서도 정덕성 동래설을 부정하고 있다.[7]
3. 1. 개요
정(丁)씨는 강태공의 아들인 정공(丁公)의 후손들이 정(丁)을 성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정(丁)씨는 243,803명으로 한국 성씨 인구 34위이다. 나주, 영광, 창원, 의성 등의 본관이 있으나, 나주 정씨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원래 본관은 압해였다.
압해 정씨의 시조 정덕성(丁德盛)은 당 문종 때 대승상을 지냈고, 85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에 유배되어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약용은 정덕성이 정사(正史)에 등장하지 않아 실존 인물인지 의문을 제기했고, 대종회에서도 정덕성 동래설을 부정하고 있다.[7] 『일본서기』에 따르면 554년(백제 성왕 32년) 백제의 고덕 정유타(丁有陀)가 의약술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시대부터 존재했던 성씨임을 알 수 있다.
나주 정씨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약 1520년(조선 중종 12년) 발간)에는 고려 검교대장군 정윤종(丁允宗)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영광 정씨 시조 정진(丁晉)의 손자 정찬(丁贊)은 1354년(공민왕 3) 홍건적을 물리치고,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2015년 인구 조사에서는 187,975명(0.47%)과 58,431가구가 정(丁)씨 성을 사용했다. 주요 본관은 다음과 같다.[1]
3. 2. 역사
정(丁)씨는 한국의 성씨로, 2015년 인구조사에서 34번째로 많은 성씨이며, 243,80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나주, 영광, 창원, 의성 등이 있으나, 나주 정씨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원래 본관은 압해였다.丁중국어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흔한 정(鄭)씨이다. 2015년 인구 조사에서는 187,975명(0.47%)이 이 성씨를 사용했다. 정(丁)씨의 본관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1]
압해 정씨(押海 丁氏)는 고려 문종 때 중국 등주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정덕성(丁德盛)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3]
3. 2. 1. 기원
제양당(齊陽堂) 정(丁)씨는 강성(姜姓)에서 나왔다. 제(齊)나라 강태공의 아들인 급(伋)의 시호(諡號)가 정공(丁公)이라 후손들이 정(丁)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한다.정(丁)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43,803명으로 조사되어 성씨 인구 34위이다. 본관은 나주·영광·창원·의성이 있으나, 나주 정씨의 인구가 대다수이며, 원래 본관은 압해였다.
압해 정씨(押海 丁氏)의 도시조인 정덕성(丁德盛)은 당(唐) 문종(文宗) 때 대승상(大丞相)을 지냈고, 무종(武宗) 때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으며, 853년 군국사(軍國事)로 직간을 하다가 전라남도 신안군의 압해도(押海島)에 유배되어 정착하였다고 한다. 압해 정씨는 나주·영광·의성·창원으로 동원분파(同源分派) 되었다고 한다.
다만,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은 문헌을 연구한 결과 정덕성이 정사(正史)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후대에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날조된 가상 인물이라고 보아 실존 여부에 회의를 표했다. 대종회에서도 정덕성 동래설을 부정하고 있다.[7] 554년(백제 성왕 32년)에 백제의 고덕 정유타(丁有陀)가 채약사 시덕 반량풍(潘量豊)과 함께 왜에 의약술을 전파하였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백제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성이다.
약 1520년(조선 중종 12년) 발간된 '''나주 정씨'''(羅州 丁氏)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에는 고려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정윤종'''(丁允宗)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영광 정씨(靈光丁氏) 시조 정진(丁晉)의 손자 정찬(丁贊)은 1354년(공민왕 3)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서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쳤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서북면도안무사(西北面都按撫使)가 되어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3. 2. 2. 백제 시대
554년(백제 성왕 32년)에 백제의 고덕 정유타(丁有陀)가 채약사 시덕 반량풍(潘量豊)과 함께 왜에 의약술을 전파하였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백제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성이다.[7]3. 2. 3. 고려 시대
나주 정씨(羅州 丁氏)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에는 고려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정윤종'''(丁允宗)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7]영광 정씨(靈光丁氏) 시조 정진(丁晉)의 손자 정찬(丁贊)은 1354년(공민왕 3)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서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쳤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서북면도안무사(西北面都按撫使)가 되어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3. 2. 4. 조선 시대
나주 정씨(羅州 丁氏)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은 약 1520년(조선 중종 12년)에 발간되었으며, 여기에는 고려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정윤종'''(丁允宗)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7]영광 정씨(靈光丁氏) 시조 정진(丁晉)의 손자 정찬(丁贊)은 1354년(조선 공민왕 3)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서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쳤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서북면도안무사(西北面都按撫使)가 되어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3. 3. 본관
정(丁)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43,803명으로 조사되어 성씨 인구 34위이다. 본관은 나주, 영광, 창원, 의성이 있으나, 나주 정씨가 대다수이며, 원래 본관은 압해였다.압해 정씨의 도시조인 정덕성은 당 문종 때 대승상을 지냈고, 무종 때 대양군에 봉해졌으며, 853년 군국사로 직간을 하다가 전라남도 신안군의 압해도에 유배되어 정착하였다고 한다. 압해 정씨는 나주, 영광, 의성, 창원으로 동원분파 되었다고 한다.[7]
다만,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은 문헌 연구를 통해 정덕성이 정사에 등장하지 않아 후대에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날조된 가상 인물이라고 보아 실존 여부에 회의를 표했다. 대종회에서도 정덕성 동래설을 부정하고 있다.[7] 554년(백제 성왕 32년) 백제의 고덕 정유타가 채약사 시덕 반량풍과 함께 왜에 의약술을 전파하였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볼때 백제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성씨임을 알 수 있다.
약 1520년(조선 중종 12년) 발간된 '''나주 정씨''' 최초의 가첩인 『월헌첩』에는 고려 검교대장군 '''정윤종'''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영광 정씨 시조 정진의 손자 정찬은 1354년(공민왕 3) 병마판관으로서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쳤고, 지밀직사사로서 서북면도안무사가 되어 원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2015년 인구 조사에서 정(丁)씨는 187,975명(0.47%)과 58,431가구가 이 성씨를 사용했으며, 다음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있다고 조사되었다.[1]
압해 정씨는 중국 등주의 딩잉(丁營)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고려 문종 재위 기간에 한반도로 건너온 정덕성(丁德盛; 丁德盛|딩더성중국어)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3]
4. 법 정(程)씨
법 정(程)씨는 하남(河南), 한산(韓山) 등을 본관으로 하며,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683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남 정씨의 시조 정사조는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 공민왕 때 추성보리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 한산 정씨는 조선 선조 때 정홍복, 정극신, 정극화 등이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이들의 거주지는 광주였다.
4. 1. 개요
정(程)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683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하남, 한산이다.하남 정씨 시조 '''정사조'''는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 벽상삼한(壁上三韓)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이다.
한산 정씨는 정홍복(程弘福), 정극신(程克愼), 정극화(程克和)가 조선 선조 때 생원시에 합격했는데, 거주지는 모두 광주(光州)였다.[1]
程중국어 (한도 정, *hando jeong*; 길 정, *gil jeong*)은 정씨 성씨 셋 중 가장 희귀한 성씨이다.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성씨를 가진 사람은 32,519명, 가구는 10,220가구였다.[1]
4. 2. 역사
정(程)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683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하남, 한산 등이 있다.정(程)씨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로,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32,519명이 15개의 본관을 사용하고 있었다.[1] 주요 본관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4. 2. 1. 고려 시대
하남 정씨(河南程氏) 시조 '''정사조'''(程思祖)는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 벽상삼한(壁上三韓)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이다.4. 2. 2. 조선 시대
하남 정씨(河南程氏) 시조 '''정사조'''(程思祖)는 원나라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 벽상삼한(壁上三韓)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이다.한산 정씨(韓山程氏)의 정홍복(程弘福), 정극신(程克愼), 정극화(程克和)는 조선 선조 때 생원시에 합격했는데, 거주지는 모두 광주(光州)였다.
4. 3. 본관
정(程)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683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하남, 한산이다.하남 정씨 시조 '''정사조'''는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이다.
한산 정씨는 정홍복, 정극신, 정극화가 조선 선조 때 생원시에 합격했는데, 거주지는 모두 광주였다.[1]
5. 곧을 정(貞)씨
백제의 성씨로 전해진다. 《수서》·《신당서》에는 백제의 대성팔족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나, 《통전》에는 정(貞)씨 대신 진(眞)씨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사기》에서도 정(貞)씨 인물은 확인되지 않아 진(眞)씨의 오기로 추정된다.
6. 우물 정(井)씨
통일신라 경덕왕 때 활동했던 완산주(完山州) 만경현(萬頃縣) 출신 승려 진표(眞表)의 속성으로, 현재는 사라진 성씨이다.
7. 로마자 표기
국립국어원이 2007년에 대한민국 여권 신청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48.6%가 여권에 로마자 표기로 'Jung'을 선택했다. 개정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Jeong'은 37.0%로 2위, 'Chung'은 9.2%로 3위를 차지했다. 이는 상위 5개 성씨(김, 박, 이, 최) 중 개정 로마자 표기법이 몇 퍼센트 이상 사용된 유일한 성씨였다.[2]
더 드물게 사용되는 표기(나머지 5.2%)로는 Joung, Cheong, Chong, Jeoung, Jeung, Choung, Jong, Cheung, Juong, Jeng, Chyung, Jaung, Jueng, Zheng 등이 있었다. (빈도 감소 순)[2] 대한민국에서 드물게 쓰이는 'Jong' 표기는 북한에서 수정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의 공식 표기이다.
참조
[1]
웹사이트
Results of the 2015 Census of Population and Housing survey
http://www.kostat.go[...]
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2019-05-28
[2]
서적
Plan for romanisation of surnames: a preparatory discussion
http://korean.go.kr/[...]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2009-06-25
[3]
뉴스
Aphae Jeong clan and Naju Jeong clan
http://www.segye.com[...]
2013-03-05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백호
[5]
문서
『고려사』 권95, 열전8
https://terms.naver.[...]
[6]
문서
『고려사』 권98, 열전11
https://terms.naver.[...]
[7]
웹인용
나주정씨 대종회
http://www.naju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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