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현재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에 걸쳐 존재했던 청동기 시대 문화이다. 1970년대에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에 의해 명명되었으며, 아무다리야 강과 무르가브 강 유역을 중심으로 관개 농업을 통해 밀과 보리를 재배했다. BMAC는 도시 유적, 금속기, 토기, 보석류 등 다양한 유물을 남겼으며, 인더스 문명, 이란 고원, 페르시아만 등 주변 문화와 교류했다. BMAC의 기원과 쇠퇴, 인도-이란어족과의 관계, 유전학적 연구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알틴 데페, 고누르 테페, 나마즈가 테페 등이 주요 유적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우즈베키스탄의 고고문화 - 안드로노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는 기원전 2200년에서 기원전 800년까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일대에 존재했던 청동기 시대 문화로, 다양한 하위 문화로 구분되며 바퀴살 전차를 발명하고 인도이란어족과 관련되어 초기 인도이란어족의 확산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
개요
명칭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 복합체
다른 명칭옥수스 문명 ("다섯 번째 고대 문명"이라는 의미)
지리 및 위치
위치중앙아시아 남부,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북부, 우즈베키스탄 남부 지역
지역마르기아나, 박트리아
고고학적 정보
발굴빅토르 사리아니디 (1960년대 후반 ~ 1979년)
상태유적
명명빅토르 사리아니디 (소비에트 연방 발굴)
역사 및 문화
시기기원전 2250년 ~ 기원전 1700년경
문화청동기 시대 중앙아시아 고고학 문화
시각 자료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 복합체의 범위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 복합체의 범위 (인도유럽 문화 백과사전에 따름)
"박트리아 공주" 여성 조각상, 기원전 3천년기 후반 ~ 2천년기 초반; 활석 또는 녹니석 및 설화 석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소장

2. 명칭

이 지역은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바흐디(Bakhdi)라고 불렸다.[20] 이후 중세 페르시아어에서는 ''Bāxtriš'', 신 페르시아어에서는 ''Baxl''로 불렸으며, 고대 산스크리트어 문헌에서는 바흘리카(बाह्लीक|Bāhlīkasa)로 언급되었다.[20]

현대 지명인 박트리아(Bactria)는 고대 그리스어 바크트리아네(Βακτριανή|Baktrianēgrc)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20] 박트리아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발흐 지역에 해당한다. 마르기아나(Margiana)는 페르시아의 사트라프가 형성되었던 지역으로, 그 수도는 현재 투르크메니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메르브였다.[20] 마르기아나라는 이름은 수메르어의 마르하시(Marhasi)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20] 박트리아와 마르기아나는 모두 해당 지역에 유적이 집중되어 있어 붙여진 그리스어 이름이다.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actria–Margiana Archaeological Complex, 약칭 BMAC)라는 현대적인 고고학 용어는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Viktor Sarianidi)가 1976년 발굴 조사를 바탕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이 명칭은 당시 서방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련 붕괴 후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3. 지리적 범위 및 환경

박트리아(아프가니스탄 북부)와 마르기아나(투르크메니스탄)는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이름이다.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건조한 기후대에 속하지만, 강과 오아시스를 활용하여 고대부터 농업이 이루어졌다. 코펫다그 산맥 북쪽 기슭의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정착이 이루어졌으며[21],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관개 농업 기술이 발달했다.[23] BMAC 주민들 역시 관개 시설을 이용하여 보리 등을 재배하며 생활했다.

현대 중동 지도에 표시된 알틴 데페의 위치와 다른 고대 문화권과의 관계


BMAC 문화의 지리적 범위는 상당히 넓어서, 핵심 지역인 박트리아와 마르기아나 외에도 이란 남동부, 발루치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도 관련 유적이 발견된다. 일부 학자들은 고고학 조사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발루치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남부가 BMAC의 실제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아직 이 지역에서 BMAC의 핵심적인 대규모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BMAC의 특징적인 유물인 도장 등은 인더스 문명 유적지(하라파 등)나 이란고원, 페르시아만 연안 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이 문화가 주변 지역과 광범위한 교류 네트워크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4. 역사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1970년대 후반, 당시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주도한 발굴을 통해 그 존재가 처음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델바르진(Delbarjin), 다실리 오아시스(Dashly Oasis), 토홀로크 21(Toholok 21), 고누르(Gonur), 켈렐리(Kelleli), 사펠리(Sapelli), 자르쿠탄(Djarkutan) 등 여러 유적지에서 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건축물들이 발견되었다.

초기 연구 결과는 주로 소련 학술지를 통해 발표되었기 때문에, 서방 세계에는 소련 말기까지 BMAC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문화는 대략 기원전 3천년기 말에서 2천년기 초에 걸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연대와 기원, 쇠퇴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BMAC의 지리적 범위는 상당히 넓어, 현재의 이란 남동부, 발루치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도 관련 유적이 발견된다. 일부 학자들은 고고학 조사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진 발루치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BMAC 문화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BMAC의 특징적인 유물인 도장 등이 인더스 문명 유적지나 이란고원, 페르시아만 지역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주변 지역 문명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1. 기원과 연대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1970년대 후반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주도한 발굴을 통해 처음 알려졌으며, 그가 1976년에 공식적으로 명명했다. 초기 연구는 대부분 소련 학술지에 발표되어 서방 세계에는 소련 붕괴 이후인 1990년대에 들어서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BMAC의 존속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초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에 따르면, 이 문화는 대략 기원전 3천년기의 마지막 세기(기원전 21세기경)부터 기원전 2천년기 초반까지, 또는 기원전 2200년경부터 기원전 1500년경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연대에 대한 다른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이탈리아 고고학자 마시모 비달레(Massimo Vidale)와 데니스 프레네즈(Dennys Frenez) 등은 남마즈가(Namazga) V 단계(기원전 약 2400년~1950년경)를 BMAC의 시작으로 보는 산드로 살바토리(Sandro Salvatori)의 가설을 지지한다.[18] 반면, 러시아와 프랑스 고고학자 나데즈다 두보바(Nadezhda Dubova)와 베르틸 리오네(Bertille Lyonnet)는 남마즈가 III 단계 종료와 BMAC 시작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있으며, 실제 BMAC 유적지는 대부분 기원전 2250년경 이후 황무지에 건설되어 기원전 1700년경까지 지속되었다고 주장한다.[19][3]

BMAC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며, 그 쇠퇴 원인 역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BMAC의 독특한 유물과 건축 양식은 등장한 지 몇 세기 후에 갑자기 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BMAC의 형성에 앞서 이 지역에는 오랜 정착의 역사가 있었다. 코펫다그 산맥 북쪽 기슭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7200년경부터 제이툰 문화로 알려진 농경 정착지가 발견된다.[21] 이곳 주민들은 서남아시아에서 유래한 농부들로, 진흙 벽돌집을 짓고 보리를 재배하며 염소와 양을 길렀다.[22] 후기 신석기 시대에는 관개 농업이 발달하며 건조한 환경에 적응한 작물 재배가 늘어났다.[23]

이후 채석기 시대(기원전 4000년~2800년경)에는 나마즈가 테페 I-III 단계, 알틴 데페 등에서 문화가 더욱 발전하며 인구가 증가했다.[21] 이 시기 중앙 이란 고원에서 이주민들이 유입되어 야금술 등 새로운 기술을 전파했다는 주장(바딤 마손)도 있으나[24], 최근 발굴(몬주클리 데페)에서는 신석기 후기와 채석기 초기 사이에 정착의 단절이 있었음을 발견하여[25][26] 기원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기원전 3500년경, 코펫다그 지역 문화는 서부(다채색 토기)와 동부(알틴 데페, 괴옥시우르 오아시스 등, 소박한 토기)로 나뉘는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서로 다른 부족 집단의 형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동부 괴옥시우르 사람들이 무르가브 강 삼각주와 트란스옥시아나의 제라프샨 강 유역(사라즘)까지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24]

BMAC의 도시 시대는 나마즈가 테페 V 단계(마시모 비달레에 따르면 기원전 약 2400년~2000년경[21][24], 혹은 Lyonnet과 Dubova에 따르면 기원전 약 2250년경 시작[3])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나마즈가 테페는 약 52ha 면적에 17,000~20,000명, 알틴 데페는 최대 25ha 면적에 7,000~10,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로 성장했다.[28]

4. 2. 발전과 쇠퇴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3천년기 마지막 세기(기원전 21세기)부터 2천년기 초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21] 보다 구체적인 연대에 대해서는 연구자 간 이견이 있으며, 대체로 기원전 2250년경부터 1700년경[3] 또는 기원전 2200년경부터 1500년경[21] 사이로 여겨진다. 이 문화는 관개 농업을 기반으로 발전했으며, 주민들은 보리 등을 재배했다.

'''초기 발전'''

채석기 시대(기원전 4000년~2800년)에 코페트다그 산기슭의 나마즈가 테페 I-III 단계, 알틴 데페 등에서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21] 이 시기 인구가 증가하고 야금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4][25][26] 기원전 3500년경에는 문화적 통일성이 서부(다채로운 도자기)와 동부(소박한 도자기)로 나뉘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부족 집단의 분화를 반영할 수 있다.[24] 기원전 3000년경에는 동부의 괴옥시우르 사람들이 무르가브 강 삼각주와 트란스옥시아나의 제라프샨 강 계곡까지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24]

'''도시 문명의 형성 (청동기 시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800년~2400년)에 알틴 데페는 나마즈가 데페 IV기에 해당하는 원-도시 사회로 발전했다.[21] 이 시기에는 물레로 도자기를 제작했으며 포도를 재배했다.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250년~1700년경)[3]는 BMAC의 도시 개발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통합 시대'라고도 불린다. 이 시기에는 코페트다그 산기슭, 마르기아나, 남부 박트리아 등지에 주요 도시들이 번성했다. 주요 발굴지인 델바르진, 다실리 오아시스, 토홀로크 21, 고누르, 켈렐리, 사펠리, 자르쿠탄 등에서는 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인 대형 건축물들이 발견되었다.

주요 도시 유적 (중기 청동기 시대)
도시명위치추정 시기면적추정 인구주요 특징
나마즈가 테페코페트다그 산기슭기원전 2250년~1700년경[3]약 52ha[28]17,000~20,000명[28]코페트다그 지역 최대 도시, 나마즈가 V 단계에 해당[21]
알틴 데페코페트다그 산기슭기원전 2250년~1700년경[3]최대 25ha[28]7,000~10,000명[28]원-도시 사회에서 발전[28]
고누르 테페 (마르구쉬 유적)마르기아나 (무르가브 강 삼각주)기원전 2250년~1700년경[3]약 55ha[32]-마르기아나 최대 정착지, 요새화된 단지, 궁전, 사원, 왕릉 등[32]
다슐리 3남부 박트리아 (아프가니스탄 북부)기원전 2000년경~1700년경[34]88m x 84m (단지 크기)[35]-요새화된 직사각형 단지 (궁전으로 추정)[35]



이 외에도 마르기아나의 켈렐리 유적에서는 최초의 궁전 단지가 나타났으며(켈렐리 단계, 기원전 2400년~2000년경 추정),[21][29][30] 최근에는 타지키스탄 남서부의 묘지에서도 BMAC 관련 유물이 발견되어[36], 이 문화의 영향력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넓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37][38]

BMAC 유적에서는 도시나 성채 유구 외에도 뛰어난 금속기, 토기, 보석류, 독특한 문양의 돌 인장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인장의 도안은 이란 남동부나 엘람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과 유사성을 보이며, 고누르 테페에서는 엘람어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진 도편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유물들은 BMAC가 인더스 문명, 이란고원, 페르시아만 지역과도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쇠퇴'''

기원전 1700년경[3] 또는 기원전 1500년경[21] 이후 BMAC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문화의 독특한 유적과 유물은 등장한 지 몇 세기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BMAC가 왜 쇠퇴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발전과 몰락의 구체적인 과정 역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5. 물질 문화

BMAC 주민들은 보리관개 농업으로 재배하는 정착민들이었다. 이들은 인상적인 거대 건축 기술, 청동기 도구, 도자기, 반보석 장신구 등 당시 다른 문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달된 물질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북쪽 스텝 지방의 안드로노보 문화 유목민들과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4]

특히 2001년 투르크메니스탄의 BMAC 유적지에서 발견된 독특한 형상이 새겨진 작은 석제 도장은 주목할 만하다. 이 도장은 시리아-아나톨리아 지역, 메소포타미아 문명, 페르시아만 지역, 인더스 문명의 도장과는 재료나 양식 면에서 뚜렷하게 구별되어, BMAC가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여겨진다. 비록 이 형상이 문자 체계로까지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 독창성만으로도 BMAC 문화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5. 1. 농업과 경제

BMAC 주민들은 관개 농업을 통해 보리를 경작하는 정착민들이었다.[24] 이들의 농업 기술은 코펫다그 산기슭의 제이툰 유적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이툰에서는 신석기 시대 초기(기원전 7200년 ~ 4600년경)부터 서남아시아에서 유래한 농부들이 염소을 기르고 보리를 재배한 증거가 발견된다.[21][22] 후기 신석기 시대 유적인 차길리 데페(Chagylly Depe)에서는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며 관개 시설을 활용한 작물 재배가 더욱 발달했으며, 특히 6배체 빵 밀과 같은 품종이 채석기 시대에 널리 퍼졌다.[23] 이러한 농업 기반은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농업 정착지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24]

농업 외에도 , , 염소 등 다양한 가축을 사육했으며,[22] 특히 낙타는 BMAC 내에서 가축화되어 중요한 운송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알틴 데페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 바퀴 수레 모형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중앙아시아에서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의 가장 오래된 증거 중 하나이다. 초기에는 가 수레를 끌었을 것으로 보이나,[39] 기원전 2200년경의 낙타가 끄는 수레 모형 또한 발견되어[39] 낙타가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BMAC는 뛰어난 청동기 도구, 도자기, 준보석으로 만든 장신구 등을 제작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북쪽 스텝 지역의 안드로노보 문화 유목민들과 교류했으며, BMAC의 유물은 이란 동부, 페르시아만 연안, 발루치스탄, 인더스강 유역(하라파 등)의 넓은 범위에서 발견되어 활발한 교역 활동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발달된 농업, 기술, 교역 네트워크는 BMAC가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특징들이다.

5. 2. 건축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의 주민들은 인상적인 거대 건축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건축 역량은 중기 청동기 시대, 이른바 통합 시대에 절정에 달했으며, 특히 마르기아나, 남부 박트리아 등에서 도시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43]

마르기아나 지역의 고누르 데페 유적은 이 시기 가장 큰 정착지로,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무르가브 강 삼각주에 위치하며 그 면적은 약 55ha에 달한다. 고누르 데페 북쪽에는 거의 타원형의 요새화된 단지가 발굴되었는데, 이곳에는 '기념 궁전'이라 불리는 건물, 부속 건물, 사원, 의례 장소, '왕릉', 저수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기원전 2400년에서 1900년경으로 추정하는 반면,[32] 프랑스와 러시아 학자들은 기원전 2250년경에서 1700년경으로 본다.[3] 고고학자 사리아니디는 고누르를 청동기 시대 마르기아나 복합체의 "수도"로 간주했다.[43]

고누르 데페 외에도 여러 거대한 건축물들이 발굴되었다. 북고누르 궁전은 150m x 140m, 토골로크 사원은 140m x 100m, 켈렐리 3 요새는 125m x 125m, 아지 쿠이의 지역 통치자 저택은 25m x 25m 크기이다. 이 구조물들은 모두 인상적인 요새 벽, 문, 부벽(buttress)을 갖추고 있다. 다만, 발굴된 구조물들이 구체적으로 사원인지 궁전인지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43]

고고학자 맬러리는 고누르나 토골로크와 같은 BMAC의 요새화된 정착지가 후대 중앙아시아 역사에서 나타나는 요새 유형인 킬라(qala)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이 요새들은 원형 또는 직사각형 형태를 띠며, 최대 3겹의 방어벽을 가질 수 있었다. 요새 내부에는 주거 구역, 작업장, 사원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한편, BMAC 사람들은 건축뿐만 아니라 수리 시설 건설에도 능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옥시우르 오아시스에서는 광범위한 관개 시스템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24]

5. 3. 예술과 공예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에서는 인상적인 거대 건축 기술과 더불어 청동기 시대의 뛰어난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도구, 도자기, 반보석 장신구 등은 당시 다른 문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뱀과 함께 있는 새 머리 남자; 기원전 2000–1500년; 청동; ; 북부 아프가니스탄 출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USA)


BMAC 주민들은 다양한 금속을 다루는 데 능숙했으며, 특히 청동, 구리, , 등을 사용한 정교한 금속 공예품을 제작했다.[40] 독수리 머리 악마와 동물이 새겨진 도금 은 도끼 머리, 구리 합금으로 만든 낙타 조각상, 금과 은의 합금으로 만든 비커 등은 당시의 발달된 금속 가공 기술을 잘 보여준다.

도자기는 채석기 시대부터 발달했으며, 기원전 3500년경에는 지역에 따라 다른 양식이 나타났다. 서쪽 지역(아나우, 카라-데페, 나마즈가-데페)에서는 다채로운 문양의 도자기가 사용된 반면, 동쪽 지역(알틴 데페, 괴옥시우르 오아시스)에서는 더 소박한 형태의 도자기가 주로 발견되었다. 이는 서로 다른 부족 집단의 존재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24] 괴옥시우르 유형의 도자기는 이후 무르가브 강 삼각주와 트란스옥시아나 지역까지 퍼져나갔으며, 이란 남동부의 샤르-에 수흐테 유적에서도 발견되어 광범위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24]

특히 주목할 만한 유물은 "박트리아 공주"라고 불리는 독특한 조각상들이다. 이 조각상들은 주로 석회암, 녹니석, 점토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풍요의 여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40] 크고 양식화된 드레스와 머리카락과 합쳐진 듯한 머리 장식을 착용한 모습이 특징적이며, 이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청동기 시대 사회의 종교적 믿음이나 신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에서는 이 조각상이 통제되지 않는 힘을 진정시키는 규제 역할을 하는 중앙 아시아 신화의 랭킹 여신을 구현한다고 본다.

이 외에도 2001년 투르크메니스탄의 BMAC 유적지에서 발견된 작은 석제 도장은 독특한 형상이 새겨져 있어 주목받았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초기 그림문자 또는 독자적인 문자 체계의 증거로 보기도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장은 시리아-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만, 인더스 문명의 도장과는 재료나 양식 면에서 뚜렷하게 구별되어 BMAC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돌 인장, 손잡이가 달린 추, 길로셰(guilloche) 패턴이 새겨진 용기 등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이 출토되어 당시의 발달된 기술과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5. 4. 문자

2001년 투르크메니스탄의 박트리아-마르기아나 유적지에서 독특한 형상이 새겨진 작은 석제 도장이 발견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형상을 문자로 해석하여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가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발달시킨 문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초기 그림문자 단계인지, 아니면 실제 문자 체계로 발전한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 도장은 시리아-아나톨리아 지역, 메소포타미아 문명, 페르시아만 지역, 인더스 문명의 도장과는 재료나 형태 면에서 뚜렷하게 구별되어, BMAC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2000년 투르크메니스탄 아나우의 BMAC 유적지에서 기하학적 표시가 있는 작은 돌 인장(일명 "아나우 인장")이 발견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BMAC가 문자를 개발했으며, 따라서 문명 사회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장에는 중국소전과 유사한 다섯 개의 표시가 새겨져 있다. 아나우 인장과 거의 동일한 모양의 유물로는 신장 남부 실크로드의 니야 유적(현재의 민펑현 근처)에서 발견된 작은 흑옥 인장이 유일하며, 이 인장은 기원전 7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45]

6. 다른 문화와의 관계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의 주민들은 관개 농업으로 보리를 재배하던 정착민들이었다. 이들은 인상적인 건축 기술, 청동기 도구, 도자기, 그리고 반보석 장신구 등 당대 다른 문명에 뒤지지 않는 수준 높은 문화를 발전시켰다. 2001년 투르크메니스탄의 BMAC 유적지에서 발견된 독특한 형상이 새겨진 석제 도장은 이들이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가졌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아직 초기 그림 문자 단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럼에도 BMAC의 도장은 시리아-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만, 인더스 문명의 도장과 재료나 디자인 면에서 뚜렷이 구별되어, 이들 문화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BMAC의 유물은 이란 동부, 페르시아 만 연안, 발루치스탄, 인더스강 유역(하라파 등)의 넓은 범위에서 발견되고 있어[43], 주변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BMAC는 이라크(메소포타미아), 이란(엘람 등), 인더스 문명과 같은 남쪽의 고대 문명들과 교역권을 형성했으며,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의 유목 민족인 안드로노보 문화와도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쪽으로는 간다라 무덤 문화(스와트 문화)와도 토기 등을 통해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활발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BMAC가 독립적인 문명이었는지, 아니면 메소포타미아나 엘람 문명 등 외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BMAC의 기원에 대해서도 발굴자인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주장한 아나톨리아 기원설 외에, 이란의 엘람 문명 기원설, 이라크에서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는 교역권 내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다는 설, 그리고 동시대 타림 분지의 선사 문화와 연결하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6. 1. 인더스 문명과의 관계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의 유물은 인더스 문명 유적을 비롯하여 이란 고원, 페르시아만 지역에서도 발견된다.[43] 이는 두 문명 간의 교역과 문화적 접촉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도장을 비롯한 다양한 BMAC 유물이 인더스강 유역의 하라파 등 넓은 범위에서 출토되었다.

반대로, BMAC 유적지 내에서도 인더스 문명의 유물이 발견되어 상호 교류가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의 고누르 데페(Gonur Tepe) 유적에서는 엘람 양식의 원통형 인장과 함께, 코끼리 그림과 인더스 문자가 새겨진 하라파 인장이 발견되었다. 또한 알틴 데페(Altyn Depe) 유적에서는 두 개의 하라파 인장과 상아 공예품이 발견되어, 알틴-데페와 인더스 계곡 사이의 관계가 특히 활발했음을 시사한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무다리야강 유역에 위치한 쇼르투가이(Shortugai)의 하라파 정착지는 BMAC와의 교역에서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4]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 BMAC는 메소포타미아, 엘람 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활발히 교류하며 하나의 교역권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BMAC의 도시들은 아프가니스탄 서부 헬만드 분지의 문디가크(Mundigak), 이란 동부의 샤흐르-에 수흐테(Shahr-e Sukhteh), 그리고 인더스 계곡의 하라파모헨조다로와 같은 원시 도시 정착지들과 비교될 수 있는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다.

6. 2. 메소포타미아 및 이란 고원과의 관계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의 유물은 이란 고원, 페르시아만 등 서아시아 지역과 인더스 문명 유적지에서도 발견된다.[43] 이는 BMAC와 주변 문명 간의 교류를 보여준다. BMAC 유적지 내에서도 외부와의 교류 증거가 확인되는데, 엘람 양식의 원통형 인장과 고누르 테페(Gonur Tepe)에서 발견된 하라파 인장(코끼리와 인더스 문자 포함) 등이 대표적이다. 고누르 테페에서는 엘람어로 추정되는 글자가 새겨진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BMAC 인장에서 보이는 도안은 이란 남동부에서 출토된 도자기나 은제품의 도안과 유사하며, 이란 남동부의 샤르-에 수흐테(Shahr-e Sukhteh) 유적에서는 알틴 데페(Altyn-Depe) 유형의 도자기가 발견되어 이 지역과의 연관성을 뒷받침한다.[24]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 BMAC는 이라크(메소포타미아), 이란(엘람 등), 인더스 문명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며 하나의 교역권을 형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BMAC의 기원에 대해서는 메소포타미아나 엘람 등 서아시아 지역에서 온 이주민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설과, 이들 지역과의 교류 속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설 등이 존재한다.

한편, BMAC의 도장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만 지역, 인더스 문명 등 주변 지역의 도장과는 재료나 디자인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 활발한 교류 속에서도 독자적인 문화적 특징을 유지했음을 시사한다.

6. 3. 북방 유목 문화와의 관계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와 북쪽의 유라시아 스텝 사이에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강화된 지속적인 접촉의 증거가 있다. 아랄해까지 이어지는 아무다리야강 삼각주에서는 안드로노보 문화 유목민과 유사한 유해를 가진 사람들이 관개 농업을 위해 물길을 사용했다. 이는 BMAC와의 접촉 이후 유목민들이 농업에 정착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를 타자바갸브 문화라고 부른다.

기원전 1900년경, 벽으로 둘러싸인 BMAC 중심지들의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각 오아시스는 독자적인 도자기 양식과 물건들을 발전시켰다. 동시에 북쪽의 타자바갸브-안드로노보 문화의 도자기가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농촌 지역에 널리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BMAC 요새는 계속 사용되었으며, 타자바갸브-안드로노보의 거친 각인 도자기는 요새 바깥의 목축 야영지뿐만 아니라, 요새 안에서도 이전의 BMAC 도자기와 함께 발견된다.[46] 타지키스탄의 박트리아 오아시스 위쪽 고지대에서는 바흐쉬 문화 및 비슈켄트 유형의 쿠르간 묘지가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후기 BMAC와 타자바갸브-안드로노보 전통의 요소가 혼합된 도자기가 포함되어 있었다.[46] 무르가브강 지역의 아지 쿠이 1 유적 발굴 결과, 중기 청동기 시대 후반(기원전 2210년경-1960년경)부터 목축민들이 마을 외곽에 거주하며 성채 안의 BMAC 인구와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되었다.[48]

남부 박트리아의 사파리 테페와 같은 유적에서도 안드로노보 문화와의 연관성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원전 1700년에서 1500년 사이의 기간 동안, 사파리 테페에서 발견된 금속 유물들은 타자바갸브-안드로노보 문화에서 유래한 것들이었다.[47]

이러한 북방 유목 문화와의 접촉과 그 영향은 BMAC의 변화, 특히 일부 중심지의 쇠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 역시 BMAC와 북쪽의 안드로노보 문화와의 접촉 가능성을 언급했다.

7. 인도-이란어족과의 관계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인도-이란어파 언어를 사용했던 인도이란인(아리아인)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언어학에서 인도이란어파인도유럽어족에서 분화된 주요 어파 중 하나로, 원시 인도유럽인에서 갈라져 나온 이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현대 이란페르시아어인도힌디어 등 여러 언어의 조상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BMAC의 주민들이 바로 이 인도이란인이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으며, 특히 발견자인 빅토르 사리아니디는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조로아스터교의 원형이 되는 종교 의례의 흔적으로 해석하며 이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또한 북쪽 스텝 지역의 안드로노보 문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BMAC가 인도-이란인의 형성과 이동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맬러리(J. P. Mallory)와 아담스(D. Q. Adams)는 안드로노보 문화인들이 BMAC 문화를 받아들여 남하했다고 보았고, 앤서니(D. Anthony)는 BMAC가 초기 농경 문화에 안드로노보 문화의 인도-이란어 사용자들이 융합되어 형성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원시 인도-아리아어가 발달했다고 주장했다.[46]

그러나 BMAC를 인도-이란인(아리아인)의 직접적인 문화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BMAC는 발달된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하며, 초기 아리아인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이나 전차 관련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주요 반론 근거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BMAC 주민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 계통이 아닌, 후에 인도-이란어파 언어들에 영향을 미친 기층 언어(substrate language)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즉, 인도-이란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기존 BMAC 주민들의 언어와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인도-이란어파 언어들에서 발견되는 비(非)인도유럽어족 계통 어휘들의 존재로 뒷받침되며, 현재 카슈미르 인근에 남아있는 부르샤스키어와의 관련성도 거론된다.

7. 1. 아리아인의 기원 문제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인도이란인(아리아인)의 기원과 관련된 가설로 주목받고 있다. 언어학적으로 인도이란어파인도유럽어족에서 분화되어 동쪽으로 이동한 원시 인도유럽인 집단이 사용했던 언어로, 현대 페르시아어, 힌디어 등의 조상이다. 일부 학자들은 BMAC가 바로 이 인도이란인의 초기 정착지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는 BMAC의 주민들이 인도이란인이었다고 주장하며, 발굴된 유적과 유물 다수를 조로아스터교의 원형이 되는 종교 의례의 증거로 해석했다. 예를 들어 특정 건물들을 원시 조로아스터교 신전으로 보았고, 고누르 테페 궁전 터에서 발견된 다량의 재나 양귀비, 마황 등을 아리아인의 배화 의식이나 소마(하오마) 의식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그는 BMAC 유물이 이란 남서부의 수사, 샤흐다드, 테페 야흐야 등지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근거로, BMAC 주민들이 이란 남서부에서 이주해왔다고 보았다. 반대로 람베르크-카를로프스키는 "이 복합체의 제한적인 물질은 아라비아 반도의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이란 고원의 각 유적지에 침투해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BMAC의 이란 남동부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지 않았다.

맬러리(J. P. Mallory)와 아담스(D. Q. Adams)는 1997년 연구에서 북쪽 스텝 지대의 안드로노보 문화, BMAC, 그리고 후대의 야즈 문화를 인도-이란인의 이동 경로와 연관 지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만약 사람이 남쪽의 스텝에서 이란인과 인도-아리아인의 역사적 거주지로 인도-이란인의 이동을 주장하고 싶다면, 이 스텝 문화가 중앙아시아 도시주의의 막을 통과하면서 변형되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전형적인 스텝 상품이 BMAC 유적에서 발견되고, 침투적인 BMAC 유물이 이후 이란, 아프가니스탄, 네팔, 인도 및 파키스탄 남쪽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BMAC 문화를 채택한 후 인도-이란어 사용자들이 이동했음을 시사할 수 있다." 제임스 맬러리는 베다 문헌에 묘사된 요새와 BMAC의 성채 유적을 연결시키며, 안드로노보 문화가 BMAC와 동화되어 아리아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앤서니(Anthony, 2007)는 BMAC가 초기에는 근동 신석기 시대 전통을 가진 농경민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후기 단계에 북쪽 안드로노보 문화의 인도-이란어 사용자들이 이주해와 혼합 문화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원시 인도-아리아어는 이 복합 문화 내에서 발전한 뒤 인도 아대륙으로 남하했다.[46]

하지만 BMAC를 직접적으로 인도-이란인(아리아인)의 문화로 보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지적된다. 가장 큰 문제점은 BMAC가 발달된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나 전차와 관련된 유물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유목 및 기마 문화와 연관되는 초기 아리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북쪽의 안드로노보 문화를 원(原) 아리아 문화로 보고 이들이 BMAC를 정복했다는 가설도 설득력이 약하다. BMAC가 전차를 사용하는 문화에 의해 파괴된 흔적이 일부 나타나지만,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파괴적인 문화는 오히려 남쪽에서 북쪽으로 확산되었으며, BMAC 북쪽 지역에서 발견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관련 유물은 기원전 1100년경으로 BMAC의 전성기보다 훨씬 늦다. 더불어 BMAC와 이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 문화 사이에는 단기간에 단절적인 교체가 나타나, 맬러리가 주장한 점진적인 동화 과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BMAC 주민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족 계열이 아닌, 후에 인도-이란어파 언어들에 영향을 미친 기층 언어(substrate language)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도-이란어파 언어들에는 인구어나 드라비다어와는 다른 기층적 요소가 발견되는데, 이것이 BMAC의 언어(단일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카슈미르 인근에 고립되어 남아있는 부르샤스키어가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7. 2. 기층 언어 가설

미하엘 비첼[49][60]과 알렉산더 루보츠키[50][61] 등은 원시 인도-이란어 (베다 산스크리트어)에 기층 언어가 존재하며, 이 기층 언어가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의 원래 언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원시 인도-이란어에서 발견되는 농업, 건축, 종교 의례 등과 관련된 일부 특징적인 어휘들이 인도유럽어족 계통이 아닌 다른 기층 언어에서 유래했을 수 있으며, 이것이 BMAC 언어의 흔적이라고 본다.

특히 루보츠키는 인도-아리아어에서만 확인되는 더 많은 단어들이 동일한 기층 언어에서 차용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이를 베다 산스크리트어의 기층 언어 존재의 증거로 본다. 그는 인도-아리아어 사용자들이 중앙아시아 남부로 이동한 첫 집단이었으며, 이후 이란어에 유입된 많은 BMAC 차용어들이 인도-아리아어를 통해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1] 미하엘 비첼 역시 차용된 어휘들이 농업, 마을 및 도시 생활, 동식물, 종교 의례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인도-이란어 사용자들이 BMAC의 발달된 도시 문명에 동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본다.[49]

이러한 가설은 인도-이란어파에 인도유럽어나 드라비다어와는 다른 제3의 언어적 기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되며, 이 기층 언어가 BMAC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혹은 여러 언어들)일 수 있다는 추정으로 이어진다. 일부 학자들은 현재 카슈미르 인근 간다라 지방에 남아있는 부르샤스키어가 이 기층 언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8. 유전학적 연구





2019년 나라심한(Narasimhan) 등은 BMAC의 유전적 구성을 밝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수르한다리야 주의 부스탄, 자르쿠탄, 고누르 테페, 그리고 사팔리 테페 등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BMAC 시기 유골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54][55]

분석 결과, BMAC 인구는 주로 해당 지역의 선행 구리 시대 주민들로부터 유래했으며, 이들 구리 시대 주민들은 다시 이란 고원의 간지 다레와 같은 신석기 시대 농경민 집단과 강한 유전적 연관성을 보였다. 또한 정도는 덜하지만 초기 아나톨리아 신석기 시대 농경민과 서 시베리아 수렵 채집인의 유전적 영향도 확인되었다. 주목할 점은 BMAC 핵심 유적지에서 분석된 표본들에서는 원시 인도유럽인과 관련된 얌나야 문화 인구 집단, 즉 서부 스텝 유목민(Western Steppe Herders, WSH)의 직접적인 유전적 기여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BMAC 문화권 주변부의 일부 유골 표본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얌나야 계통(WSH) 조상 요소가 확인되었다. 이는 기원전 2100년경 이후 신타슈타 문화와 안드로노보 문화로 대표되는 서부 스텝 유목민 집단이 남부 중앙아시아로 확장해 들어온 역사적 과정과 일치하는 결과이다.[54][55]

BMAC 이후 등장한 야즈 문화와 같은 후기 문화 집단은 BMAC 토착 인구와 새롭게 유입된 얌나야/WSH 계통 인구의 유전적 혼합이 이루어진 특징을 보이며, 이는 초기 인도-이란인 집단의 형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56] 그러나 나라심한 등(2019)은 후대의 남아시아인 집단에서 BMAC 인구의 직접적이고 중요한 유전적 기여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남아시아로 유입된 스텝 관련 조상 요소는 BMAC를 직접 거치지 않고 다른 경로를 통해 전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57]

분석된 BMAC 남성 유골들의 부계 Y-DNA 하플로그룹은 다음과 같은 분포를 보였다.

BMAC 남성 Y-DNA 하플로그룹 분포 (나라심한 등, 2019)[57][58]
하플로그룹표본 수 (총 26개)
J27
J* (미분류 J 포함)3
R23
G2
L2
R* (미분류 R 포함)2
J11
R1b1
H1a1
P1
Q1
T1
E1b1b1



하플로그룹 J 계통(특히 J2)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서아시아 및 남아시아 계통 하플로그룹이 확인되었다.[57][58]

현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발굴된 철기 시대 유골의 유전체 데이터는 BMAC 문화 말기에 토착 BMAC 집단과 안드로노보 문화 관련 집단(WSH) 간의 혼합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뒷받침한다. 이 남부 중앙아시아 철기 시대 인구는 유전적으로 약 57%의 조상을 서부 스텝 유목민(안드로노보)으로부터, 약 43%를 BMAC 문화 인구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대 타지크인야그노비인은 이러한 청동기 및 철기 시대 중앙아시아 인구 집단의 직계 후손으로 간주되며, BMAC와 WSH 양쪽 모두로부터 유전적 유산을 물려받아 역사적인 인도-이란인과의 유전적 연속성을 보여준다.[59] 흥미롭게도 이 철기 시대 중앙아시아인들은 현대 우즈벡인보다 현대 유럽인과 더 높은 유전적 친화성을 보이는데, 이는 지난 약 2,000년간 여러 차례의 유전자 혼합 사건을 통해 동아시아 계통의 유전적 요소가 추가적으로 유입된 현대 우즈벡인의 유전적 구성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55]

이러한 유전학적 연구 결과는 BMAC 문화와 인도-이란어파 사용 민족(종종 아리아인으로 지칭됨)의 기원 및 확산에 대한 기존의 고고학적, 언어학적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BMAC 문화를 직접적으로 원(Proto) 인도-이란 문화로 보는 사리아니디(Sarianidi)의 주장이나, 북쪽의 안드로노보 문화를 원 인도-이란 문화로 보고 이들이 BMAC와 상호작용(혹은 정복)하며 인도-이란 문화를 형성했다는 제임스 맬러리 등의 가설은 유전학적 증거 앞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유전학 연구는 BMAC 핵심 인구가 스텝 유목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스텝 계통 유전자(WSH)는 BMAC 후기 및 주변부에서 혼합되기 시작하여 야즈 문화와 같은 후속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인도-이란어파 언어들에서 발견되는 인도유럽어족이나 드라비다어족 계통이 아닌 제3의 기층 언어 요소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BMAC 주민들이 사용했던 언어(들)의 흔적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 카슈미르 인근 간다라 지역에 고립되어 분포하는 부르샤스키어가 이러한 기층 언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존재한다.

9. 주요 유적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는 1970년대 후반, 당시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주도한 발굴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그는 이 문화를 1976년에 BMAC로 명명했다. BMAC는 주로 기원전 2200년부터 기원전 1500년 사이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21] 주요 유적들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며, 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인 대형 건축물들이 특징적으로 발견된다.

주요 유적지
국가주요 유적비고
아프가니스탄다쉴리 (조우즈잔 주)
쿠쉬 테페 (테페 풀롤)
테페 풀롤의 그릇 조각, 기원전 3천년, 아프가니스탄 국립 박물관.
투르크메니스탄알틴데페
고누르 테페왕릉에서 뼈와 4륜 마차 발견[51][52]
제이툰신석기 시대 정착지, 초기 농업 및 진흙 벽돌집 증거[21][22]
나마즈가 테페채석기 시대 주요 정착지[21]
토골로크 21
울루그 데페
베르디스치란 데페
우즈베키스탄아야즈 칼라
자르쿠탄
코이 크릴간 칼라
사팔리 테페
토프라크 칼라



이들 유적에서는 관개 농업의 흔적과 함께 금속기, 토기, 보석류, 돌 인장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인장에서 보이는 도안은 이란 남동부나 페르시아만 연안 지역의 유물과 유사성을 보인다. 고누르 테페에서는 엘람어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진 도편이 발견되기도 했다. BMAC 유물은 이 지역 외에도 이란 동부, 발루치스탄, 인더스강 유역(하라파 등)에서도 발견되어 넓은 교류 네트워크를 짐작하게 한다.

참조

[1] 서적 Treasures from the Oxus: The Art and Civilization of Central Asia https://books.google[...] Bloomsbury Publishing 2017-06-21
[2] 간행물 "Thinking Around Grave 3245 in the 'Royal Graveyard' of Gonur (Murghab Delta, Turkmenistan)" https://www.academia[...] Salvatori, Sandro
[3] 간행물 "Questioning the Oxus Civilization or Bactria- Margiana Archaeological Culture (BMAC): an overview" https://www.routledg[...] Lyonnet, Bertille, and Nadezhda A. Dubova
[4] 간행물 Introduction https://www.amazon.c[...] Lyonnet, Bertille, and Nadezhda A. Dubova
[5] 간행물 "The Late Bronze Age Settlement of Tilla Bulak (Uzbekistan): A Summary of Four Years' Work" https://www.academia[...] Kaniuth, Kai
[6] 간행물 "The Metallurgy of the Late Bronze Age Sapalli Culture (Southern Uzbekistan)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tin question'" https://www.research[...] Kaniuth, Kai
[7] 간행물 "A new Late Bronze Age site in Southern Uzbekistan" https://www.academia[...] Kaniuth, Kai
[8] 간행물 "Life in the Countryside: The rural archaeology of the Sapalli culture" Kaniuth, Kai
[9] 간행물 "The Metallurgy of the Late Bronze Age Sapalli Culture (Southern Uzbekistan)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tin question'" https://www.research[...] Kaniuth, Kai
[10] 간행물 Introduction https://www.amazon.c[...] Lyonnet, Bertille, and Nadezhda A. Dubova
[11] 웹사이트 Dashly https://pages.vassar[...] Vassar College WordPress 2017-05-10
[12] 간행물 Issledovanija pamjatnikov Dashlyiskogo Oazisa Sarianidi, V. I.
[13] 뉴스 In Ruin, Symbols on a Stone Hint at a Lost Asian Culture https://www.nytimes.[...] John Noble Wilford, New York Times 2001-05-13
[14] 웹사이트 A brief history of archaeological research in Turkmenistan from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until the present https://archeorient.[...] Kurbanov, Aydogdy, ArchéOrient 2018-09-14
[15] 간행물 The Archaeological Exploration of Turkmenistan in the Year of Soviet Power Atagarryev E., and Berdiev O.K.
[16] 서적 Central Asia: Turkmenia before the Achaemenids https://anthrosource[...] Masson, V.M., and V.I. Sarianidi, London, Thames and Hudson
[17] 간행물 "Review to: Masson, V. M., and V. I. Sarianidi. Central Asia: Turkmenia before the Achaemenids (1972)" https://academic.oup[...] Levine, Louis D. 1975-04
[18] 서적 Treasures from the Oxus https://books.google[...] Vidale, Massimo, I.B. Tauris
[19] 간행물 "Questioning the Oxus Civilization or Bactria- Margiana Archaeological Culture (BMAC): an overview" https://www.routledg[...] Lyonnet, Bertille, and Nadezhda A. Dubova
[20] 서적 Origins of the Bronze Age Oasis Civilization in Central Asia Hiebert, Fredrik Talmage
[21] 서적 Treasures from the Oxus https://books.google[...] Vidale, Massimo
[22] 논문 Jeitun: Recent excavations at an early Neolithic site in Southern Turkmenistan
[23] 논문 Agricultural development in western Central Asia in the Chalcolithic and Bronze Ages
[24] 서적 History of civilizations of Central Asia
[25] 웹사이트 A-II Spatial Effects of Technological Innovations and Changing Ways of Life, http://journal.topoi[...] Reinhard Bernbeck et al. 2017-10-10
[26] 웹사이트 Monjukli Depe artefacts http://monjukli.net/[...] Monjukli Depe 2017-06-29
[27] 서적 Treasures from the Oxus: The Art and Civilization of Central Asia https://books.google[...] Vidale, Massimo, I. B. Tauris, London-New York
[28] 서적 Treasures from the Oxus https://books.google[...] Vidale, Massimo
[29] 서적 Origins of the Bronze Age Oasis Civilization in Central Asia https://books.google[...] Hiebert, Fredrik Talmage, Peabody Museum Press
[30] 웹사이트 Kelleli https://www.heritage[...] Eduljee, K. E.
[31] 간행물 The Bronze Age in Margiana Salvatori, Sandro
[32] 간행물 "Manufacturing and trade of Asian elephant ivory in Bronze Age Middle Asia: Evidence from Gonur Depe (Margiana, Turkmenistan)" https://www.academia[...] Frenez, Dennys
[33] 웹사이트 Dashly http://www.heritagei[...] Eduljee, K. E.
[34] 간행물 "Questioning the Oxus Civilization or Bactria- Margiana Archaeological Culture (BMAC): an overview" https://www.routledg[...] Lyonnet, Bertille, and Nadezhda A. Dubova
[35] 웹사이트 Dashly http://www.heritagei[...] Eduljee, K. E.
[36] 간행물 The formation of the Оxus Civilization/BMAC in southwestern Tajikistan https://www.taylorfr[...] Routledge 2020
[37] 간행물 The 'classical Vakhsh culture' https://www.taylorfr[...] Routledge 2020
[38] 간행물 The Grand'Route of Khorasan (Great Khorasan Road) during the third millennium BC and the 'dark stone' artefacts https://halshs.archi[...] Archéologies 2019
[39] 논문 The earliest wheeled transport in Southwestern Central Asia: new finds from Alteyn-Depe
[40] 서적 THE ART MUSEUM Phaidon 2017
[41] 서적 Galleries and Works of the MIHO MUSEUM https://www.academia[...] Miho Museum
[42] 논문 Les représentations portraitistes des donateurs laïcs dans l'imagerie bouddhique https://www.persee.f[...] 2009
[43] 논문 Archaeology and Language: The Indo-Iranians
[44] 논문 The rise of bronze in Central Asia: new evidence for the origin of Bronze Age tin and copper from multi-analytical research 2023
[45] 서적 Remarks on the Anau and Niyä Seals
[46] 서적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 2007
[47] 논문 The metallurgy of the Late Bronze Age Sappali Culture (southern Uzbekistan)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tin question'
[48] 간행물 Who interacted with whom? redefining the interaction between BMAC people and mobile pastoralists in Bronze Age southern Turkmenistan https://www.routledg[...] Routledge 2020
[49] 논문 Linguistic Evidence for Cultural Exchange in Prehistoric Western Central Asia
[50] 서적 Early Contacts between Uralic and Indo-European: Linguistic and Archaeological considerations. Papers presented at an international symposium held at the Tvärminne Research Station of the University of Helsinki 8–10 January 1999 Finno-Ugrian Society
[51] 간행물 The Oxus Civilization and the northern steppes https://www.taylorfr[...] Routledge 2020
[52] 간행물 Horse domestication history in Turkmenistan and other regions of Asia https://www.academia[...] MIRAS 2021
[53] 논문 The genomic origins of the Bronze Age Tarim Basin mummies 2021-11
[54] 논문 The formation of human populations in South and Central Asia
[55] 논문 Genetic Continuity of Bronze Age Ancestry with Increased Steppe-Related Ancestry in Late Iron Age Uzbekistan 2021-07-28
[56] 논문 Genetic Continuity of Bronze Age Ancestry with Increased Steppe-Related Ancestry in Late Iron Age Uzbekistan 2021-07-28
[57] 논문 The formation of human populations in South and Central Asia 2019-09-06
[58] 문서 File (aat7487_tables1-5.xlsx), Table S1, in Resources, "Supplementary Material." 2019
[59] 간행물 Genetic Continuity of Indo-Iranian Speakers Since the Iron Age in Southern Central Asia https://www.nature.c[...] 2022-01-14
[60] 논문 Linguistic Evidence for Cultural Exchange in Prehistoric Western Central Asia
[61] 서적 The Indo-Iranian substratum Finno-Ugrian Society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