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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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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밀 뒤르켐은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 사회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1858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유대교 랍비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독일 유학을 거쳐 보르도 대학교와 소르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 사회 분업, 자살, 종교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을 연구하며 사회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을 제시했다. 대표 저서로는 『사회분업론』,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 『자살론』,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등이 있다. 그는 사회 통합과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의 연구는 구조 기능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학적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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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
기본 정보
에밀 뒤르켐
이름다비드 에밀 뒤르켐
출생일1858년 4월 15일
출생지에피날, 프랑스
사망일1917년 11월 15일
사망지파리, 프랑스
국적프랑스
분야철학
사회학
교육학
인류학
종교학
직장파리 대학교
보르도 대학교
모교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마르부르크 대학교
영향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칸트
데카르트
허버트 스펜서
몽테스키외
루소
오귀스트 콩트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퓌스텔 드 쿨랑주
샤를 르누비에
J.S. 밀
루이 가브리엘 드 보날
영향을 준 학자마르셀 모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탈콧 파슨스
모리스 알브왁스
조나단 하이트
뤼시앵 레비브륄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
페르낭 브로델
피에르 부르디외
찰스 테일러
앙리 베르그송
에마뉘엘 레비나스
스티븐 룩스
앨프리드 래드클리프브라운
에드워드 에반스프리처드
메리 더글러스
휴이 P. 뉴턴
폴 포코네
로버트 닐리 벨라
지야 괴칼프
데이비드 블루어
랜들 콜린스
닐 스멜서
주요 업적사회적 사실
신성-세속 이분법
집단 의식
사회 통합
아노미
집단적 환희
주요 저서
대표 저서

2. 생애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뒤르켐은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이행하는 시기를 거쳤다. 1892년 소르본 대학에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7422366 『사회분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 이를 출간해 사회학자로서 첫발을 내딛는다.[118] 이 책에서 뒤르켐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라는 그의 사회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제시한다.[118] 그의 사상은 몽테스키외, 장자크 루소, 알렉시 드 토크빌르네 데카르트에서 뻗어 나온 프랑스의 지적 전통과 이마누엘 칸트, 빌헬름 분트, 카를 마르크스 등 독일의 지적 전통을 결합한 결과였다.[118]

1894년 뒤르켐은 보르도 대학 부교수로 승진했고, 1896년 사회과학 담당 정교수로 임명되어 1902년까지 재직했다. 이 자리는 프랑스 대학 최초의 사회학 교수직으로 간주된다.[119] 1902년 소르본 대학 교육과학 강좌 담당 전임강사로 임명되고 1906년 부교수, 1913년 정교수가 되어 1917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직했다.[119] 그가 정교수가 된 후 교육과학 강좌는 그의 소망에 따라 교육학과 사회학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프랑스 대학에서 사회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강좌였다.[119]

주요 저작으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191578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1895), 『자살론』(1897), 『[http://www.yes24.com/Product/Goods/87662118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들]』(1912) 등이 있다.

뒤르켐의 사회주의 기원에 관한 강의록(1896년) 모음. 조카인 마르셀 모스가 1928년에 편집 및 출판하였다.


1890년대는 뒤르켐에게 있어 놀라운 창작 활동의 시기였다.[17] 1893년에 그는 박사 학위 논문이자 인간 사회의 본질과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진술인 『사회적 노동 분업』을 출판하였다.[13] 뒤르켐의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은 정치적 상황에 자극을 받았다. 프랑스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는 나폴레옹 3세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이후 제3공화국이 들어섰다. 유대인이었고 제3공화국을 굳건히 지지하며 사회주의에 동정적인 뒤르켐은 따라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속했고, 이러한 상황은 그를 정치적으로 고무시켰다. 1894년의 드뢰퓌스 사건은 그의 활동적인 입장을 더욱 강화시켰다.[19]

1895년, 그는 사회학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언문인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을 출판하였고,[17] 보르도 대학교에 최초의 유럽 사회학과를 설립하였다.[17] 1898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사회과학 저널인 『L'Année sociologique』을 창간하였다.[17] 1897년에는 사회학적 단행본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사례 연구인 『자살』을 출판하였다. 뒤르켐은 범죄학에서의 양적 방법론을 사용한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 (1919년 프랑스어판 표지

2. 1. 유년 시절과 교육

1858년 4월 15일 독일과 접경한 프랑스 로렌 지방의 작은 도시 에피날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교 랍비였고, 어머니는 부유한 유대인 상인의 딸이었다. 8대조 이래 대대로 유대교 랍비를 지낸 유서 깊은 랍비 집안이었다. 어린 시절, 정규 학교 교육 외에 히브리어, 구약, 탈무드 등을 공부했으며, 철저히 유대교 규율을 지키는 금욕적 태도를 물려받았다.[113]

1867년 뒤르켐은 에피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두 차례 월반할 정도로 탁월한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랍비가 되기를 바랐으나, 뒤르켐은 파리에 위치한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파리 명문 루이르그랑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르켐은 두 번 고배를 마신 끝에 간신히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114]

고등사범학교 입학 이후, 뒤르켐은 점차 사회문제에 관심을 품기 시작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 제3공화정 수립, 산업화 이후의 계급 갈등 등으로 혼란에 빠진 프랑스 사회를 재조직하는 데 이바지하려는 학교 분위기 덕분이었다. 뒤르켐은 국가의 재건, 세속적 해방, 사회적, 경제적 조직이라는 세 가지 문제에 사로잡힌, 그리고 사회의 실증적 이해를 진척시키기 위해 노력한 젊은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다.[115] 이 무렵, 그는 오귀스트 콩트실증주의적 태도에 영향을 받아 점차 유대교와 결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공리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적 삶의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고, 자유와 정의의 조화라는 제3공화정의 공식적 형이상학(사회철학)을 제시한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 퓌스텔 드 쿨랑주(역사학, 역사학이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해야 한다고 역설), 에밀 부트루(철학자, 모든 과학이 자신의 고유한 원리에 따라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가 스승으로서 그의 지적 성장을 이끌었다.[116]

1882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르켐은 1885년까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후, 유급 휴가를 얻어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대학, 마르부르크 대학 등에서 공부했다. 1887년 보르도 대학의 사회과학 및 교육학 전임강사에 임용되었고, 그해 10월 유대인 여성 루이즈 줄라 드레퓌스와 결혼해 딸 마리 벨라와 아들 앙드레아르망을 두었다. 아들은 나중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117]

2. 2. 학문적 여정

1858년 4월 15일, 뒤르켐은 독일과 접경한 프랑스 로렌 지방의 작은 도시 에피날에서 태어났다.[113] 유대교 랍비였던 아버지와 부유한 유대인 상인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8대조 이래 대대로 유대교 랍비를 지낸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이었다.[113] 어린 시절부터 히브리어, 구약, 탈무드 등을 공부하며 유대교 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금욕적인 태도를 물려받았다.[113]

1867년 에피날 중학교에 입학한 뒤르켐은 두 차례 월반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114] 랍비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뒤르켐은 파리에 있는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114] 파리의 명문 루이르그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 번의 실패 끝에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114]

고등사범학교 시절, 뒤르켐은 점차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115]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패배, 제3공화정 수립, 산업화 이후의 계급 갈등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사회를 재조직하는 데 기여하려는 학교 분위기의 영향이었다.[115] 뒤르켐은 국가 재건, 세속적 해방, 사회적, 경제적 조직이라는 세 가지 문제에 몰두하며 사회의 실증적 이해를 위해 노력한 젊은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115] 오귀스트 콩트실증주의에 영향을 받아 점차 유대교와 결별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게 되었다.[116]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명제를 제시하며 인간 삶의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고, 자유와 정의의 조화라는 제3공화정의 사회철학을 제시한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116] 역사학이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한 역사학자 퓌스텔 드 쿨랑주,[116] 모든 과학이 고유한 원리에 따라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 에밀 부트루가[116] 그의 지적 성장을 이끌었다.

1882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르켐은 1885년까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후, 유급 휴가를 얻어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베를린 대학, 마르부르크 대학 등에서 공부했다.[117] 1887년 보르도 대학의 사회과학 및 교육학 전임강사에 임용되었고,[117] 같은 해 10월 유대인 여성 루이즈 줄라 드레퓌스와 결혼하여 딸 마리 벨라와 아들 앙드레아르망을 두었다.[117] 아들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117]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이행하는 시기를 거친다.

1892년 소르본 대학에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7422366 『사회분업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118] 이듬해 이를 출간해 사회학자로서 첫발을 내딛는다.[118] 이 책에서 뒤르켐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라는 그의 사회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제시한다.[118] 그의 사상은 몽테스키외, 장자크 루소, 알렉시 드 토크빌르네 데카르트에서 뻗어 나온 프랑스의 지적 전통과 이마누엘 칸트, 빌헬름 분트, 카를 마르크스 등 독일의 지적 전통을 결합한 결과였다.[118]

1894년 뒤르켐은 보르도 대학 부교수로 승진했고, 1896년 사회과학 담당 정교수로 임명되어 1902년까지 재직했다.[119] 이 자리는 프랑스 대학 최초의 사회학 교수직으로 간주된다.[119] 1902년 소르본 대학 교육과학 강좌 담당 전임강사로 임명되고[119] 1906년 부교수, 1913년 정교수가 되어[119] 1917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직했다.[119] 그가 정교수가 된 후 교육과학 강좌는 그의 소망에 따라 교육학과 사회학으로 변경되었다.[119] 이는 프랑스 대학에서 사회학이라는 명칭이 붙은 최초의 강좌였다.[119]

주요 저작으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191578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1895), 『자살론』(1897), 『[http://www.yes24.com/Product/Goods/87662118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들]』(1912) 등이 있다.

뒤르켐은 독일 체류 기간 동안 독일 사회과학과 철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출판했다. 뒤르켐은 특히 빌헬름 분트의 연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17] 뒤르켐의 논문들은 프랑스에서 인정을 받았고, 1887년 보르도 대학교에서 사회과학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17] 이는 대학 최초의 사회과학 강좌였다.[17] 그의 공식 직함은 Chargé d'un Cours de Science Sociale et de Pédagogie|label=none프랑스어였으며, 교육학과 사회학(당시 프랑스에서는 전례가 없는 학문)을 모두 가르쳤다.[4][13] 인문학 중심의 학부에 사회과학자가 임명된 것은 시대 변화와 사회과학의 중요성 및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였다.[17] 이 직책을 통해 뒤르켐은 프랑스 교육 제도 개혁에 기여하여 사회과학 연구를 교육과정에 도입하였다. 그러나 종교와 도덕을 순전히 사회적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그의 논란이 많은 견해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1890년대는 뒤르켐에게 있어 놀라운 창작 활동의 시기였다.[17] 1893년에 그는 박사 학위 논문이자 인간 사회의 본질과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진술인 『사회적 노동 분업』을 출판하였다.[13] 뒤르켐의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은 정치적 상황에 자극을 받았다. 프랑스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는 나폴레옹 3세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이후 제3공화국이 들어섰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쇠퇴하는 권력을 되살리기 위해 강력한 민족주의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세속적이고 공화주의적인 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유대인이었고 제3공화국을 굳건히 지지하며 사회주의에 동정적인 뒤르켐은 따라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속했고, 이러한 상황은 그를 정치적으로 고무시켰다. 1894년의 드뢰퓌스 사건은 그의 활동적인 입장을 더욱 강화시켰다.[19]

1895년, 그는 사회학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언문인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을 출판하였고,[17] 보르도 대학교에 최초의 유럽 사회학과를 설립하였다.[17] 1898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사회과학 저널인 『L'Année sociologique』을 창간하였다.[17] 그 목적은 당시 증가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협력자들의 연구를 발표하고 알리는 것이었다(이는 그의 사회학 프로그램을 발전시킨 학생 그룹을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이름이다). 1897년에는 사회학적 단행본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사례 연구인 『자살』을 출판하였다. 뒤르켐은 범죄학에서의 양적 방법론을 사용한 선구자 중 한 명이었으며, 이를 자살 연구에 사용하였다.

1902년까지 뒤르켐은 마침내 파리에서 중요한 지위를 얻는다는 그의 목표를 달성하여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교육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뒤르켐은 이전에도 그 자리를 목표로 했지만, 파리 학부는 일부 사람들이 "사회학적 제국주의"라고 부른 것을 받아들이고 사회과학을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19] 그는 1906년 정교수(구체적으로 교육과학 교수)가 되었고, 1913년에는 "교육 및 사회학" 분야의 주임 교수로 임명되었다.[4][19] 프랑스 대학은 기술적으로 중등학교 교사 양성 기관이기 때문에, 이 직책은 뒤르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 그의 강의는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적인 유일한 강의였다. 뒤르켐은 신세대 교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무렵 교육부 고문으로도 활동했다.[4] 1912년에 그는 그의 마지막 주요 저서인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출판하였다.

2. 3. 사회학의 발전과 교육 활동

1887년, 뒤르켐은 보르도 대학교에서 프랑스 대학 최초의 사회과학 강좌를 맡았다.[17] 그는 Chargé d'un Cours de Science Sociale et de Pédagogie|label=none프랑스어라는 공식 직함으로 교육학과 사회학을 모두 가르쳤다.[4][13] 대부분 인문학 중심의 학부에 사회과학자가 임명된 것은 사회과학의 중요성과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였다.[17] 뒤르켐은 이 직책을 통해 프랑스 교육 제도 개혁에 기여하여 사회과학 연구를 교육과정에 도입하였다.

1902년, 뒤르켐은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교육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19] 1906년 정교수(교육과학 교수)가 되었고, 1913년에는 "교육 및 사회학" 분야의 주임 교수로 임명되었다.[4][19] 프랑스 대학은 기술적으로 중등학교 교사 양성 기관이었기 때문에, 이 직책은 뒤르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 그의 강의는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적인 유일한 강의였다. 뒤르켐은 신세대 교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교육부 고문으로도 활동했다.[4]

2. 4. 제1차 세계 대전과 죽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뒤르켐은 성전연합에 참여하여 전쟁 협력 관련 팜플렛 등을 집필·출판했지만, 아들 앙드레를 전쟁에서 잃었다.[117] 이 사건으로 뒤르켐은 큰 충격을 받아 1917년 5월에는 소르본 강의를 중단하고 요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요양 후에도 강의에 복귀하지 못하고 같은 해 11월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119]

3. 주요 이론

뒤르켐은 종교적, 인종적 단일성이 깨진 근대 사회가 어떻게 통합을 유지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사회 현상에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사회학을 사회적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했다. 허버트 스펜서처럼 뒤르켐은 사회의 각 부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밝혀 기능주의 사회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그는 사회가 각 부분의 합 이상이며,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행동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산업화 이전의 전통사회는 유사성에 기반한 기계적 연대로 결속되었으나, 노동 분화와 사회 구조의 복잡화로 인해 유기적 연대로 변화했다. 분업의 기능은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 기계적 연대: 사회 구조가 단순하고 노동 분화가 덜 된 전통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유사성으로 결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 유기적 연대: 노동 분화와 역할 전문화가 고도화된 산업 사회에서 기능적 상호 의존성에 의해 사회가 결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산업 사회의 노동 분화가 구조적 불평등 체계로 적대적 계급 대립을 초래한다고 보았지만, 뒤르켐은 분업이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다.

  • 집합 의식: "동일 사회의 시민들이 공유하는 신념이나 감정의 총체"로, 폭, 강도, 명확성, 종교적/세속적 내용의 4가지 변수로 개념화된다.
  • 사회 변동: 물질적 밀도(출생률, 이주, 인구 집중) 증가는 도덕적 밀도(상호 작용) 증가를 가져와 경쟁을 강화시키고, 분업은 경쟁 완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자살론》에서 뒤르켐은 자살을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고, 사회적 연대를 자살의 사회적 원인으로 제시했다. 사회적 연대는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규제로 나뉘며, 개인과 사회의 부적절한 관계가 자살을 유발한다.

  • 이기적 자살: 과도한 개인화로 인한 자살.
  • 이타적 자살: 과소한 개인화로 인한 자살 (예: 일본 제국가미카제).
  • 아노미적 자살: 사회 규범 부재 상태에서의 자살.
  • 숙명적 자살: 과도한 사회적 규제로 인한 자살.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뒤르켐은 종교의 기원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하여, 사회 통합 메커니즘을 탐구했다. 종교는 사회적 산물이며, 종교 의식을 통해 집합 의식을 내면화하여 사회 통합이 강화된다고 보았다.

『도덕 교육』에서 뒤르켐은 도덕 교육을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성을 교육하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도덕성은 규율의 정신, 사회 집단에 대한 결속, 의지의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며, 도덕 교육은 이러한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뒤르켐은 사회현상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경험과학으로서 사회학의 입장(사회학주의)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학을 "도덕과학"으로 정의하고, 사회적 요인으로서의 도덕(규범)의 역할을 밝히고자 했다. 뒤르켐은 사회학의 분석 대상이 "사회적 사실"임을 명시하고, 심리학적 사회학의 입장을 비판했다. 그의 이론은 많은 사회학자, 민족학자, 인류학자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학 기관지인 L'ANNÉE SOCIOLOGIQUE(사회학연보)를 창간하여 '''뒤르케임 학파'''를 형성했다.

3. 1. 사회적 사실

뒤르켐은 사회학을 "사회적 사실"이라는 객관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했다.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주관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언어, 집합 의식, 집단 표상, 종교, 사회 연대 등이 그 예시이다.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이 개인에게 외재하면서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강제력이 있다고 보았다.[28]

뒤르켐은 사회를 각 부분의 합 이상으로 보았다. 즉, 사회 구성원들은 자아, 개인 의식,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외부적인 압박', 즉 '사회적 사실'로 인해 의식과 자유에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뒤르켐의 사회관은 오귀스트 콩트실증주의를 넘어선 '사회적 실재론'이라는 인식론적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 사회적 실재론은 외부 세계에 객관적인 사회적 실재가 존재하며, 이는 개인의 인식과는 독립적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경험론이나 실증주의와는 대립되는 관점이다.[28] 뒤르켐은 사회학이 사회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뒤르켐은 당시로서는 참신한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경험 과학으로서 사회학의 입장(사회학주의)을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사회학의 분석 대상이 "사회적 사실"임을 명시하고, 심리학적 사회학의 입장을 취하던 가브리엘 타르드를 비판했다.

뒤르켐이 말하는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외부에 있으면서 개인의 행동과 생각을 구속하는, 집단 또는 전체 사회가 공유하는 행동·사고 양식이며, "집합표상"이라고도 불린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 거짓말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등은 사회에서 일반적인 행동·사고 패턴으로 개인의 의식 속에 정착된 것이다.

뒤르켐은 개인의 의식이 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을 근원으로 하면서도 독립적인 사회의 의식이 개인을 속박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의식을 다루는 심리학적 관점으로는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노미(anomie)는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아노모스(anomos)"를 어원으로 하며, 뒤르켐은 이를 근대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사회의 규제나 규칙이 느슨해진 상태에서는 개인이 반드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정한 상황에 빠진다고 보았다.

3. 2. 사회분업론

산업화 이전의 전통사회는 유사성에 기반한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졌지만, 노동 분화가 고도화되고 사회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이러한 기계적 연대가 상실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사회적 연대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다. 노동 분화가 진전됨에 따라 차이에 근거한 기능적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새롭고 고차적인 사회 연대가 형성된다. 분업의 기능은 사회적 연대 또는 사회 통합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 기계적 연대: 사회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노동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통 사회와 같은 단순한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유사성에 의해 강력하게 결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 사회는 높은 수준의 사회 통합을 유지한다. 전통 사회는 그 사회의 집합 의식을 위반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보고 이를 처벌하는 것은 곧 사회 통합을 회복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다. 따라서 전통 사회의 법은 보복적이며 억압적이다.


특징내용
넓다.
강도높다.
명확성높다.
내용종교적. 신성한 권력의 명령에 대한 헌신과 동조를 강조한다.


  • 유기적 연대: 노동의 분화와 역할의 전문화가 고도화된 산업 사회는 집합 의식보다는 기능적 상호 의존성에 의해 사회가 결속되는 것을 뜻한다. 노동의 분화가 사회의 고차적인 연대 의식을 수반한다는 관점이다. 산업 사회의 노동 분화 과정은 개인 간, 집단 간의 기능적 상호 의존성을 증대시키고 상호 의존성의 필요성은 보다 고차적인 연대 의식, 즉 유기적 연대의 객관적 토대가 된다고 보았다. 노동 분화의 진정한 기능은 경제적 효용에 있다기보다는 기능적 상호 의존성을 통한 연대감 창출에 있고, 그래서 노동 분화가 형성한 도덕적 효과에 있다는 것이다. 법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산업 사회의 법은 범인을 적정한 교정 절차를 거쳐 원래의 자리로 복귀시킴으로써 사회 유기체의 상호 의존적 기능이 정상화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복귀법(배상적)이다.


특징내용
좁다.
강도낮다.
명확성낮다.
내용세속적. 개인성을 강조한다.


  • 마르크스와의 비교: 마르크스는 산업 사회의 노동 분화가 협동적인 기능 체계라기보다는 구조적 불평등 체계이기 때문에 적대적 계급 대립을 초래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적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뒤르켐은 분업은 재산의 사적 소유에 기초하기 때문에 착취와 소외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 집합 의식: "동일 사회의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이나 감정의 총체는 그 자체로서 생명을 갖는 명확한 체계를 형성한다." 뒤르켐은 집합 의식을 4개의 변수, 즉 1) 폭, 2) 강도, 3) 명확성, 4) 종교적 내용 대 세속적 내용이라는 변수로 개념화한다.


변수설명
가치, 신념, 규칙들이 사회 성원들이 공유하는 범위를 나타낸다.
강도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능력의 정도를 의미한다.
명확성집합 의식의 구성 부분들의 명료성 정도를 표시한다.
내용집합 의식 내의 종교적 상징과 세속적 상징의 비율과 관계있다.


  • 사회 변동: 물질적 밀도(출생률, 이주, 인구의 집중도)의 증대는 도덕적(동태적) 밀도(상호 작용의 증대)의 증대를 가져오고 이는 개인들 간의 경쟁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개인들이 투쟁을 피하기 위해서 전문화된 역할들을 상정하고 서로 간에 교환 관계를 수립해야만 한다. 이렇게 볼 때 분업은 바로 경쟁을 완화하는 메커니즘이다.

3. 3. 자살론

자살론》에서 뒤르켐은 프랑스 법무부의 기록 문서를 이용해서 자살 관련 자료 2만 6000건을 분석한다. 이는 역사상 거의 최초로 통계적 방법에 바탕을 두고, 합리주의적, 실증주의적 방법론으로 자살의 사회적 유형과 원인을 추출한 연구이다. 자살에 관해 이처럼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이고 치밀하며 심층적으로 다룬 연구는 오늘날에도 무척 드물다.[120]

이 책에서 뒤르켐은 자살을 개인적, 심리적 현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개인은 자신을 넘어서는 도덕적 현실에 의해 지배된다. 그것은 집단적 현실이다. (중략) 결혼, 이혼, 가족, 종교, 군대 등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자살에 영향을 끼치며, 그런 법칙 중 일부는 심지어 수치로 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살은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원인이 상호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적 환경이 자살의 진정한 원인이고, 자살은 사회적 원인의 개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121]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의 사회적 원인은 사회적 연대이다. 사회적 연대는 개인이 자신을 사회에 결속하고 사회에 유대감을 품는 것을 가리키는 사회적 통합과 사회가 개인의 존재, 사고, 행위 등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사회적 규제로 나누어진다. 개인이 적절한 수준에서 사회에 결속되어 있지 않거나(사회적 통합), 사회가 적절한 수준에서 개인을 규제하지 않을 때(사회적 규제) 자살이 일어난다. 개인과 사회의 적절치 못한 관계가 자살의 사회적 원인이다.[122]

자살은 사회적 통합 정도에 따라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로 나뉜다. 개인이 사회에 너무 약하게 통합되면 이기적 자살이 일어나고, 너무 강하게 통합되면 이타적 자살이 일어난다. 또한 자살은 사회적 규제 정도에 따라 아노미적 자살과 숙명적 자살로 나뉜다. 사회가 개인을 너무 약하게 규제하면 아노미적 자살이 나타나고, 너무 강하게 규제하면 숙명적 자살이 나타난다.[123]

  • 이기적 자살: 과도한 개인화로 인한 자살. 사회적 통합이 약해 개인이 극도로 고립(소외)되거나 자신만 구원되기를 바라는 이기심에서 발생하는 자살. 인간이 외로움 등의 이유로 삶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일어난다. 개신교 공동체가 가톨릭 공동체보다 개인주의적이며 집단 응집도가 낮아 자살률이 높다.
  • 이타적 자살: 과소한 개인화로 인한 자살. 자아의 행위가 추구하는 목표가 자기 자신의 외부에, 즉 자아가 속하는 집단에 있는 상태이다. 개인이 과도하게 사회에 통합되어 있거나 사회적·민족적 연대감·책임감이 강할 때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소속 집단과 사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타적 자살은 다시 의무적 이타적 자살(예를 들면, 일본 제국가미카제), 선택적 이타적 자살(오명을 벗기 위해 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자살), 신비주의적 이타적 자살(소신공양 같은 종교적 자살)로 나뉜다.
  • 아노미적 자살: 개인에 대한 사회의 규율이나 규제가 부재한 상태 또는 그러한 규범이 부재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자살이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위기 등으로 인한 아노미, 즉 사회의 가치 기준과 규범·윤리관·세계관의 혼돈으로 인한 불확실성 시대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 숙명적 자살: 과도한 사회적 규제로 인한 자살이다. 노예제 사회나 독재체제 등에서 압제적 규율에 의해 미래가 무자비하게 봉쇄되고, 욕망이 폭력적으로 억압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노예 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하는 자살이나 임신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자살 등이 그 예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이타적 자살과 숙명적 자살이 주로 나타나는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연대의 부재로 인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주로 나타난다.[124] 사회적 연대가 약하기에 현대인들은 흔히 목표 상실로 괴로워하거나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 괴로워한다. 자칫하면 과도한 개인화로 인해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기적 자살의 경우에는 사고가 완전히 자아의 내면을 향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목표를 갖지 못한다. 아노미적 자살의 경우에는 욕망이 더 이상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목표를 갖지 못한다. 전자는 꿈의 세계의 무한함 속에서, 그리고 후자는 열망의 무한함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기적 자살이 사회에 개인이 통합되지 못하고 완전히 자아의 내면 세계로 도피한 나머지 우울해지거나 꿈의 세계에 사로잡히거나 울적한 번민에 빠짐으로써 일어난다면, 아노미적 자살은 개인이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무한한 열망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맨 나머지 삶의 확고한 축과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피로, 환멸, 좌절을 느끼게 됨으로써 일어난다.[125] 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한계에 부닥치면 자신의 내면세계로 도피하고, 거기서도 욕망을 달랠 수 없으면 다시 외부로 달아나서 더욱 심화한 불안, 초조 등에 시달리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뒤엉켜 더 나쁜 쪽으로 서로를 끌어들인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자살률 급증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39세였던 1897년 뒤르켐이 출판한 『자살론』은 "사회학 연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사실"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 실태를 밝히고자 한 뒤르켐의 역작이다.

당시 유럽 각국의 자살률이 단기간에 거의 일정한 값을 나타낸 통계자료 등을 바탕으로, 각 사회는 일정한 사회적 자살률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특징에 따라 자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뒤르크하임은 이 연구에서 자살을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사회적 사실)을 바탕으로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 이타적 자살(집단본위적 자살)
  • 집단의 가치 체계에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받는 사회, 또는 여러 개인이 가치 체계·규범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복종하려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의 형태.
  • 헌신과 자기희생이 강조되는 전통적인 도덕 구조를 가진 미개 사회,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군대 조직에서 나타나는 자살·순절 등이 해당한다(일반인보다 군인의 자살률이 높고, 군대 내에서는 공병이나 후방 지원 부대의 병사보다 전투 부대의 병사의 자살률이 더 높다).
  • 이기적 자살(자기본위적 자살)
  • 과도한 고독감이나 초조감 등으로 개인이 집단과의 유대감이 약해짐으로써 발생하는 자살의 형태. 개인주의의 확대에 따라 증가해 왔다고 한다.
  • 뒤르케임에 따르면 유대교 신자보다 가톨릭 신자, 가톨릭 신자보다 프로테스탄트 신자의 자살률이 더 높고, 농촌보다 도시, 기혼자보다 미혼자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등 개인의 고립을 초래하기 쉬운 환경에서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 다만, 종교별 자살률 비교는 그 후의 연구에 의해 통계적 오류가 증명되었고, 뒤르케임이 지적한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 아노미적 자살
  • 사회적 규칙·규제가 없는(혹은 적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자살의 형태. 집단·사회의 규범이 느슨해지고, 더 많은 자유가 얻어진 결과, 부풀어 오르는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다가, 실현할 수 없다는 데 환멸을 느껴 허무감을 안고 자살에 이르는 것이다. 즉, 무규제 상태하에서 자신의 욕망에 제동이 걸리지 않아 자살하는 것으로, 불황기보다 호황기가 욕망이 과도하게 팽창하므로 자살률이 높아진다.
  • 운명적 자살
  • 집단·사회의 규범에 의한 구속력이 매우 강하고, 개인의 욕구를 과도하게 억압함으로써 발생하는 자살의 형태(그는 이 유형에 대해서는 각주에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므로, "3분류"라고 할 경우 이것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뒤르케임 자신은 이 자살 유형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지 않았지만, 미야지마 타카시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는 "정사"가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3. 4. 도덕 교육

뒤르켐은 1902~1903년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한 '도덕과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도덕 교육』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도덕 교육은 초등학교 교사들이 아동들에게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성을 가르치는 제도적 행위와 과정을 의미한다.[126] 뒤르켐에 따르면, 도덕성은 규율의 정신, 사회 집단에 대한 결속, 의지의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며, 도덕 교육의 목표는 세속화 시대의 아노미와 이기주의에 맞서 이러한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이다.[126]

뒤르켐은 개인이 도덕을 내면화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입문하는 것을 '도덕의 사회화'라고 불렀다. 그는 도덕 교육이 단순히 규칙을 따르도록 세뇌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근본적 성향(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뒤르켐은 도덕성이 다음 3단계에 거쳐 형성된다고 보았다.

  • 규율의 정신: 도덕은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규율이다. 도덕적 규율은 아노미에 저항하여 인간 행위를 규제한다.[127] 이는 행위를 규칙적, 반복적으로 규율에 따르며, 사회적 규율에는 권위가 있고 구성원은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인정하는 상태이다.
  • 사회 집단에 대한 결속: 도덕은 사회가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한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 되려면 사회적 목표나 가치 또는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 집단에 대한 결속이다.[128]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사회 집단에서 타인과 어울리고 조화롭게 살기를 지향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규범을 지키는 것은 이를 위한 것이다. 이타주의와 공감 능력 등이 이로부터 나타난다.
  • 의지의 자율성: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즉 자발적으로 도덕적 규칙에 동의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개인이 도덕 규범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이를 합리적으로 이해해서 따르는 상태를 가리킨다.


뒤르켐은 도덕성을 "행동 규칙의 체계"로 정의하며,[100] 그의 도덕성 분석은 이마누엘 칸트의 의무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 뒤르켐은 칸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칸트 도덕 이론의 몇몇 측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고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켰다.

뒤르켐은 칸트에 동의하여 도덕성 안에는 의무의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59] 도덕성은 우리에게 우월한 위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우리가 따라야 하는 특정한, 사전에 확립된 도덕적 규범이 존재한다. 그러나 뒤르켐은 도덕적 의무는 사회에서 비롯되며 범주적 명령과 같은 보편적인 도덕 개념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칸트를 비판한다. 뒤르켐은 또한 도덕성이 이러한 의무뿐 아니라 개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은 도덕성을 준수함으로써 공동의 선에 봉사한다고 믿으며, 이러한 이유로 자발적으로 도덕 계명에 복종한다.[59]

뒤르켐에 따르면, 이러한 도덕적 권위는 주로 종교에 있다. 그래서 어떤 종교에서든 도덕 규범을 발견할 수 있다. 뒤르켐에게 있어 사회만이 개인에게 도덕성의 의무적인 측면과 욕구 측면 모두를 길러낼 자원, 존중, 그리고 힘을 가지고 있다.[59]

아노미는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아노모스(anomos)"를 어원으로 하며, 뒤르켐은 이를 근대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보았다. 사회의 규제규칙이 느슨해진 상태에서는 개인이 반드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불안정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나 규칙이 느슨해지는 것이 반드시 사회에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뒤르켐의 만년 저서인 도덕 교육은 소르본 대학교에 취임 후,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 도덕 교육의 실천을 목표로 하였다. 도덕성의 여러 요소를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밝힌 후, 학교 교육에서의 실천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실천 방법과 관련하여 체벌 문제와 교과 교육(생물학, 역사, 예술)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3. 5.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는 사회 통합의 접착제였던 종교의 권위가 허물어진 혼란의 시기에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탐구할 목적으로 종교의 기원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자연계에 그 어떠한 사물도 본래 신성하거나 세속적인 것은 없다. 초자연적 표상 체계를 예찬하는 종교 의식을 통해서 집합 의식을 내면화하여 사회 통합이 강화된다. 이는 카리스마 지도자가 사회를 인도하고 통치하는 데 사용되었다. 요컨대 종교의 본질은 사회적 산물이며 개인은 종교적 실천을 통하여 집합 의식을 내면화하여 소속 집단 혹은 사회에 통합되는 것이다.

뒤르켐은 종교가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 종교란 신성한 것(the sacred; 초자연적 신 아님)에 대한 신념과 의례의 통합된 체계이며, 애초에 종교는 사회에 대한 숭배이다.

  • 종교(토테미즘)는 가장 원초적인 사회 제도이며 가장 강력한 집합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을, 때로는 집단적 열광을 공급한다.

  • 사회의 분화와 더불어 종교는 덜 중요해졌으며 대신 과학과 “개인 숭배”가 부상한다. 현대적 종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이다.

  • 종교는 사회생활의 기초적 범주(예: 시간과 달력)를 제공했으며, 따라서 인간 오성의 기원은 사회이다.[28]

4. 비판과 논쟁

뒤르켐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고 보았지만, "집단 의식"(규범, 신념, 가치)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형성하여 사회 통합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46] "집단 의식"은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며, 개인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5] 이를 통해 인간은 서로를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47]

집단 의식( conscience collective프랑스어)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공통적인 신념과 감정의 총체로, 그 자체로 독자적인 삶을 가진 특정한 체계를 형성한다.[48] 특히 집단 의식의 감정적 부분은 이기심을 억제하고, 문화에 대한 감정적 유대감을 통해 사회적 행동을 유발한다.[49] 뒤르켐은 인간이 집단 속에 있으면 불가피하게 사회가 형성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다.[49][50]

4. 1. 자살론 비판

뒤르켐의 《자살론》은 프랑스 법무부 기록을 바탕으로 2만 6000건의 자살 사례를 분석한,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통계 연구 중 하나이다.[120] 뒤르켐은 자살을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사회적 통합과 규제 정도에 따라 자살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 이기적 자살: 사회 통합이 약하고 개인이 고립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개신교 공동체가 가톨릭 공동체보다 자살률이 높다.[123]
  • 이타적 자살: 개인이 사회에 과도하게 통합되어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이다. 일본 제국가미카제 특공대나 소신공양과 같은 종교적 자살이 이에 해당한다.[123]
  • 아노미적 자살: 사회 변화나 위기로 인해 규범이 붕괴되고 혼란스러울 때 발생한다. 아노미 상태에서 개인은 불확실성과 무규제 상태에 놓인다.[123]
  • 숙명적 자살: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해 개인의 욕망이 억압될 때 발생한다. 노예제 사회나 독재 체제에서 나타날 수 있다.[123]


뒤르켐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사회적 연대가 약해져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주로 나타난다.[124] 현대인들은 목표 상실과 충족될 수 없는 욕망으로 괴로워하며, 과도한 개인화는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들 수 있다. 이기적 자살은 자아 내면에 갇혀 우울해지는 반면, 아노미적 자살은 무한한 욕망에 사로잡혀 좌절하는 것이다.[125]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4. 2. 방법론적 비판

뒤르켐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고 보았지만, "집단 의식"(규범, 신념, 가치)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형성하여 사회 통합을 이룬다고 주장한다.[46] 이 "집단 의식"은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며, 개인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5] 이를 통해 인간은 서로를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47] 특히 집단 의식의 감정적 부분은 이기심을 억제하고, 문화에 대한 감정적 유대감을 통해 사회적 행동을 유발한다.[49]

뒤르켐은 사회 통합 붕괴와 해체를 야기하는 사회 병리 현상으로 ''아노미''와 ''강제적 분업''을 제시했다.[63] ''아노미''는 사회 규범 부재 상태로, 급격한 인구 증가로 집단 간 상호작용이 줄어들 때 발생한다.[64] ''강제적 분업''은 권력자들이 이윤(탐욕)을 추구하여 사람들이 부적합한 일을 맡게 되는 상황이다.[65]

뒤르켐은 범죄가 사회생활의 기본 조건과 관련되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37] 그는 소크라테스 재판을 예로 들어, 소크라테스의 사상 독립이라는 "범죄"가 새로운 도덕과 신앙을 준비하여 인류와 조국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37] 그는 범죄가 사회 긴장을 해소하고 정화, 숙청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37] 그는 도덕적 양심의 권위가 지나치면 개인의 독창성이 억압되므로 범죄자의 독창성조차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5. 영향 및 유산

뒤르켐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보았지만, "집단 의식"(규범, 신념, 가치)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형성하여 사회 통합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했다.[46] "집단 의식"은 사회를 유지하고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5][47] 뒤르켐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공통적인 신념과 감정의 총체를 "집단 의식" 또는 "공동 의식"이라고 불렀다.[48]

뒤르켐은 일탈이 사회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66][67]

# 대중의 관점에 도전하여 사회 변화를 이끌어냄.

# 기존 규범을 지지하게 함.

# 일탈에 대한 반응은 동료애와 사회적 지지를 증가시킴.

뒤르켐의 일탈에 대한 생각은 로버트 머튼의 긴장이론에 영향을 주었다.[66]

뒤르켐은 인류학과 사회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2] 특히 사회학이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연구는 구조 기능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2][39] 조너선 하이트, 마르셀 모스, 모리스 할브바흐, 알프레드 라드클리프-브라운, 탈콧 파슨스, 로버트 K. 머튼, 장 피아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 많은 학자들이 뒤르켐에게 영감을 받았다.[2]

최근에는 스티븐 루크스, 로버트 N. 벨라, 피에르 부르디외와 같은 사회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터키 사회학의 창시자 지야 괴칼프는 뒤르켐의 '집합의식' 개념에 영향을 받았지만,[101] 이를 왜곡하여 오스만 제국의 침략 전쟁과 인구 공학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102][103] 랜달 콜린스는 뒤르켐의 종교 연구와 어빙 고프만의 미시사회학 연구를 종합하여 '상호 작용 의례 연쇄' 이론을 개발했다. 고프만 자신도 뒤르켐의 영향을 받아 '상호 작용 질서'를 개발했다.

사회학 외에도 뒤르켐은 앙리 베르그송,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 구조주의 이론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104]

6.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

에밀 뒤르켐은 한국 사회학의 발전과 사회 현상 분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저서 《자살론》은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사회 통합과 규제의 정도에 따라 자살률이 달라진다고 주장했다.[45][68] 그는 사회 통합이 약하고 사회적 규제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노미적 자살'이 발생한다고 보았다.[69]

한국 사회는 급격한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사회적 유대감이 약화되는 현상을 경험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아노미 상태를 초래하여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뒤르켐의 이론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뒤르켐의 사회 통합과 규제에 대한 개념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 문제, 예를 들어 청소년 문제, 고독사 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적절한 사회적 규제를 마련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 문제 해결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7. 저작

뒤르켐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제목비고
1892몽테뉴의 사회과학 형성에 대한 공헌
1893사회적 노동 분업
1895사회학 방법론
1897자살
1897근친상간 금지와 그 기원사회학 연보 1:1–70 수록
1900사회학과 그 과학적 영역"La sociologia e il suo dominio scientifico"라는 제목의 이탈리아어 원문 번역
1903원시적 분류마르셀 모스와 공동 저술
1912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87][109]
1914누가 전쟁을 원했는가?에르네스트 드니와 공동 저술
1915무엇보다도 독일



'''사후 출판'''된 저작은 다음과 같다.[110][111]

출판 연도제목비고
1922교육과 사회학
1924사회학과 철학
1925도덕 교육
1928사회주의
1955실용주의와 사회학



일본어로 번역된 뒤르켐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원저 출판 연도일본어 번역 제목번역자출판사출판 연도비고
1893『사회분업론』田原音(타하라 네)아오키 서점2005「현대사회학대계 2」복각판
1893『사회분업론』田原音(타하라 네)치쿠마 학예문고2017ISBN 448-0098313, 전자책 간행
1893『사회분업론』이이 겐타로고단샤 학술문고1989상·하
1895『사회학적 방법의 기준』미야지마 타카시이와나미 문고1978ISBN 400-3421434
1895『사회학적 방법의 기준』키쿠야 카즈히로고단샤 학술문고2018ISBN 406-5118468, 전자책 간행
1897『자살론』미야지마 타카시추코 문고1985, 2018ISBN 412-2066425, 전자책 간행
1912『종교생활의 원초형태』후루노 키요토이와나미 문고1975상·하
1912『종교생활의 기본형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어서의 토템 체계』야마자키 료치쿠마 학예문고2014상·하, 전자책 간행
-『사회학 강의 습속과 법의 물리학』미야지마 타카시·카와키타 타카시미스즈 서방1974, 1982, 2008ISBN 462-2016974
-『분류의 미개 형태』오세키 토지로호세이대학 출판국1980총서·우니벨시타스
-『몽테스키외와 루소 사회학의 선구자들』오세키 토지로·카와키타 타카시호세이대학 출판국1975총서 우니벨시타스
-『뒤르켐 독일론집』오세키 토지로·야마시타 마사유키행로사1993
-『뒤르켐 가족론집』오세키 토지로가와시마 서점1972
-『프랑스 교육사상사』오세키 토지로행로사1981
-『뒤르켐 종교사회학론집』오세키 토지로행로사1983
-『사회주의 및 생시몽』모리 히로시고세이샤 코세이카쿠1977, 2003
-『뒤르켐 법사회학론집』나이토 칸지고세이샤 코세이카쿠1990
-『사회과학과 행동』장 클로드 피유 편/사사키 교켄·나카지마 아키훈고세이샤 코세이카쿠1988
-『사회학과 철학』사사키 교켄고세이샤 코세이카쿠1985
1922『교육과 사회학』사사키 교켄세이신 서방1976, 1982
1922『교육과 사회학』후루카와 아츠시마루젠 플래닛2022ISBN 978-4863455108
1925『도덕교육론』아소 마코토·야마무라 켄메이지 도쇼 출판/고단샤 학술문고2010전자책 간행
1925『도덕교육』후루카와 아츠시마루젠 플래닛2024ISBN 978-4863455665



《원시 종교 형태》(1912)에서 뒤르켐은 종교의 사회적 기원과 기능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문화의 종교 간 연관성을 파악하여 공통 분모를 찾고자 했다.[45][80] 그는 종교를 "신성한 것들, 즉 따로 떼어 놓고 금지된 것들과 관련된 통합된 신념과 관행의 체계, 즉 이러한 신념과 관행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도덕 공동체인 교회로 통합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81]

뒤르켐은 종교가 초자연적인 것 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구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82][83] 그는 신성한 것, 신앙의례, 도덕 공동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제시하며, 이 중 신성한 것이 종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84][85][86][87]

뒤르켐은 종교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제도이며, 다른 사회 형태를 낳았다고 보았다.[89] 그는 종교가 초기 수렵 채집 사회에서 발생하여 집단 의식을 강화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조직화되었다고 주장했다.[55][90] 그러나 그는 종교과학과 개인 숭배에 의해 대체되면서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믿었다.[58][91]

뒤르켐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범주가 종교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62] 그는 범주가 사회에 의해 생성되는 집단적인 창조물이며, 시간과 같은 개념도 사회적 모임과 의례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45][90]

뒤르켐은 토템주의, 즉 호주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종교를 연구하여 종교의 필수 요소를 찾고자 했다.[45][82] 그는 토템이 씨족의 깃발이며, 씨족이 개인에게 불러일으키는 의존과 활력 증진의 인상이 토템에 고정된다고 보았다.[87]

뒤르켐의 종교 연구는 아놀드 반 게네프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이론적 통찰력은 여러 세대의 사회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93][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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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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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서적
[126] 서적
[127] 서적
[128]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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