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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야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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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테야마산은 일본 도야마현에 위치한 산으로, 한자로는 立山으로 표기하며 "서있는 산" 또는 "뛰어난 산"을 의미한다. 다테야마 연봉과 고타테야마 연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미다가하라와 고시키가하라, 화구호인 미쿠리가이케와 미도리가이케, 그리고 지고쿠다니 주변의 화산 가스 분출과 온천 분출 등의 지형적 특징을 갖는다. 일본에 몇 안 되는 빙하 중 하나인 고젠자와 빙하가 있으며, 주변에는 쓰루기산, 벳산산 등 여러 산들이 위치한다. 다테야마는 오래전부터 산악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가 개통되면서 연간 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산악 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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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야마산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미도리가이케에서 바라본 다테 산 (후지노오리타테 산, 오난지 산, 오 산)과 미쿠리 연못
미도리가이케에서 바라본 다테 산 (후지노오리타테 산, 오난지 산, 오 산)과 미쿠리 연못
다른 이름다테야마 (立山)
번역서 있는 산
일본어立山 (다테야마)
로마자 표기Tate-yama
위치도야마현, 일본
산맥히다 산맥
좌표36°34′33″N 137°37′11″E
지형도국토지리원 25000:1 剱岳, 50000:1 立山
지리
해발고도3015m
등재일본의 산, 일본 백명산
지질학적 정보
역사
최초 등반사에키노 아리요리 기원후 8세기경
등반 정보

2. 이름

한자로 표기된 산의 이름은 立山|다테야마일본어(Tateyama)이며, 각각 "서있는(立)" 또는 "뛰어난(顕)"과 "산(山)"을 의미한다. 도야마현 현청은 일본어 산 이름을 공식 번역으로 '다테야마산'을 사용한다.

3. 지리

다테야마산은 과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다테야마 칼데라를 중심으로, 미다가하라와 고시키가하라 같은 용암 대지 및 화쇄류 퇴적 지형이 특징이다. 미쿠리가이케, 미도리가이케와 같은 화구호도 존재하며, 현재는 지고쿠다니 주변에서 화산 가스 분출과 온천 활동이 관찰된다. 또한 조산 운동으로 형성된 습곡 산맥의 일부이며, 구로베 강을 사이에 두고 아토리야마 연봉과 마주보고 있다. 산 곳곳에는 빙하와 권곡(카르)과 같은 빙하 지형이 남아있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는 드문 지형적 특징이다.[43] 대표적인 예로 야마자키 칼이 있으며, 이는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빙하 지형으로 알려져 있다.

3. 1. 지세

넓은 의미의 다테야마는 하나의 산맥조산 과정에서 동서로 나뉘어, 다테야마 연봉과 고타테야마 연봉이라고 불리는 복열 연봉이다.

3. 2. 위치

다테야마산은 도야마시 남동부에 위치한다. 산기슭에는 다테야마정이 있으며, 이곳은 현청 소재지인 도야마시에서 기차로 접근할 수 있다. 대중교통은 등산객과 관광객을 해발 2450m의 무로도역까지 수송하며, 이곳에서부터는 도보로 산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다. 이 지역은 눈이 쌓여 빙하를 형성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며, 이곳의 빙하는 현재까지 일본에서 확인된 유일한 빙하이다.[9]

'''산체'''

과거 산체는 다테야마 칼데라에 있었으며, 원래 다테야마 화산의 정상부는 침식으로 소실되었다. 미다가하라와 고시키가하라는 이 화산의 화쇄류 퇴적물과 용암 대지이다. 미쿠리가이케, 미도리가이케는 화구호이며, 현재 다테야마 화산의 주요 화산 활동은 지고쿠다니 주변의 화산 가스 분출과 온천 분출이다. 조산 운동에 의해 형성된 습곡 산맥이며, 구로베 강을 사이에 두고 아토리야마 연봉과 마주보고 있다.

'''고젠자와 빙하'''

오야마의 동쪽 사면에 있는 고젠자와 빙하는 전체 길이 약 700m, 면적 약 0.1km2빙하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빙하 중 하나이며, 구로베 강의 수원 중 하나가 되고 있다.[43]

'''우치쿠라노스케 빙하'''

우치쿠라노스케 칼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빙하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7개의 빙하 중 일반 등산객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빙하이다.

'''야마자키 칼'''

오야마의 서쪽 사면에는 권곡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야마자키 칼이라고 불리고 있다. 1905년 (메이지 38년), 지리학자이자 제국대학 이과대학(현 도쿄 대학) 교수였던 야마자키 나오카타에 의해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빙하 지형이다. 1945년 (쇼와 20년), 야쿠시 산 동쪽의 권곡군(1952년 (쇼와 27년)에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됨)과 함께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명명자는 야마자키의 제자인 이시이 이타로 (1889년 - 1955년)로, "다테야마 연봉의 빙하 작용 - 특히 야마자키 권곡에 관하여" (지리평, 1943년) 등의 논문을 통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이끌었다.

3. 3. 주변 산

방위
정상에서참고
쓰루기산
쓰루기산
剱岳|쓰루기다케일본어2999m5.3km
북일본 백명산
벳산산
벳산산
別山|벳산일본어2880m2.4km
다테야마산
다테야마산
立山|다테야마일본어3015m0km
-일본 백명산
도야마현에서 가장 높은 산
류오산
류오산
龍王岳|류오다케일본어2872m1.7km
서남
하리노키산
하리노키산
針ノ木岳|하리노키다케일본어2820.6m7.2km
동남일본 이백명산
아카우시산
아카우시산
赤牛岳|아카우시다케일본어2864.23m12.8km
남일본 이백명산
야쿠시산
야쿠시산
薬師岳|야쿠시다케일본어2926.01m13.7km
서남일본 백명산


3. 4. 주변 고개

3. 5. 수원

다테야마산은 두 개의 의 발원지이며, 두 강 모두 동해로 흐른다.[10]

오야마 동쪽 사면에 있는 고젠자와 빙하는 전체 길이 약 700m, 면적 약 0.1km2빙하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빙하 중 하나이며, 구로베강의 수원 중 하나가 되고 있다.[43]

다테야마산을 수원으로 하는 주요 하천은 다음과 같다. 모두 도야마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3. 6. 측량 기준점

오야마 산 정상에 있는 오야마 신사 봉우리 본사 신전 오른쪽 앞에는 측량의 기준이 되는 커다란 검은색 화강암 표석(표고점 3003m)이 있다.[15] 이 표석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곳에는 1등 삼각점(표고 2991.59m, 점 이름 "다테야마")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16] 오야마는 1등 삼각점 100 명산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17]

4. 지질

다테야마산은 주로 화강암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능선과 고원을 따라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작은 안산암-데이사이트 성층 화산이 위치해 있다.[7] 이 화산의 해발고도는 2621m이며, 1961년에 마지막으로 분화하는 등 소규모 분화가 있었다.[8]

4. 1. 빙하

; 고젠자와 빙하

: 오야마의 동쪽 사면에 있는 고젠자와 빙하는 전체 길이 약 700m, 면적 약 0.1km2빙하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빙하 중 하나이며, 구로베 강의 수원 중 하나가 되고 있다[43]

; 우치쿠라노스케 빙하

: 우치쿠라노스케 칼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빙하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7개의 빙하 중 일반 등산객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빙하이다。

; 야마자키 칼

: 오야마의 서쪽 사면에 권곡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야마자키 칼이라고 불리고 있다. 1905년 (메이지 38년), 지리학자인 제국대학 이과대학 (현 도쿄 대학) 교수 야마자키 나오카타에 의해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빙하 지형이다. 1945년 (쇼와 20년), 야쿠시 산 동쪽의 권곡군과 함께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명명자는 야마자키의 제자인 이시이 이타로 (1889년 - 1955년)로, "다테야마 연봉의 빙하 작용 - 특히 야마자키 권곡에 관하여" (지리평, 1943년) 등의 논문으로 천연기념물 지정을 이끌었다.

5. 기후

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의 영향으로 동해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다테야마의 3000m급 산들에 부딪히면서 대량의 강설을 가져온다. 이곳은 세계 유수의 폭설 지대 중 하나로, 적설량은 15m 이상이며, 최저 기온은 -20°C 이하가 된다.

6. 자연환경

(내용 없음)

6. 1. 식생

실내당 주변의 상부는 수목 한계선을 넘어선 눈잣나무 지대로, 이곳에는 많은 뇌조가 서식하고 있다. 다테야마산은 꽃의 백명산으로 선정되었으며, 실내당 주변 등에서는 눈이 녹으면서 다양한 고산 식물이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테야마 용담, 타테야마 배암차즈기, 타테야마 엉겅퀴, 타테야마 금매화, 타테야마 부채붓꽃 등 '타테야마'라는 이름이 붙은 고산 식물이 있지만, 이들이 다테야마산만의 고유종은 아니다.

마타리


등산객과 관광객의 증가로 인해 실내당 주변은 외래 식물이나 병원균의 침입 등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자가용 규제가 시행되었다.

7. 역사

8. 신앙

다테야마산은 조몬 시대부터 자연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나라 시대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산악 신앙(다테야마 신앙[35])과 다테야마 슈겐이 발달하여 일본 삼령산 중 하나로 꼽힌다.

8. 1. 율령국가의 다테야마 개산

다테야마는 "만요슈"에 '타치야마(たちやま)'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36] 국문학적으로는 "심는 검"을 의미하여 "황성의 달" 가사에 나오는 "심는 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엣추노카미로 부임했던 오토모노 야카모치덴표 19년(747년)에 다테야마의 신성함을 노래했는데,[37] 이는 다테야마가 나라 시대부터 신성한 산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가타카이강 유역은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토모 씨에서 갈라져 나온 사에키씨가 이 근처에서 번성했다. 현대까지 가타카이강의 작은 돌을 정상에 가져가 바치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으며, 호노후시야마나 https://japanmystery.com/toyama/ariyori.html 아리요리 야나기[38] 등의 전승이 남아있다. 산기슭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역의 신인 타치오(칼날) 천신을 숭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8세기경 엔노 오즈누를 시조로 하는 슈겐도가 확산되었고, 9세기 초에는 구카이와 사이초 등이 밀교(진언종, 덴다이종)를 일본에 전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테야마에도 요시노·구마노 산잔, 고야산, 히에이산 등지의 슈겐도 수행승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이니치산과 쓰루기산 정상 부근에서 나라 시대 후기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의 석장(수행자의 지팡이)이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종교 활동의 증거이다.

이전까지 쉽게 오르기 힘든 봉우리였던 다테야마는 9세기 중반에 이르러 율령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개산(開山)이 이루어졌으며, 이와 함께 사찰 건립 등이 추진되었다. 교토 동쪽에 위치한 다테야마는 진언밀교 계열(대일여래, 부동명왕, 약사여래)과 천태밀교 계열(아미타여래 중심)의 수험도가 함께 발달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세이와 천황은 조간 5년(863년) 9월 25일, 엣추국의 '오야마 신(大山神)'에게 정오위하에서 정오위상으로 관위를 수여했으며(일본삼대실록 기록), 이는 다테야마가 율령 국가 체제 아래 공인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우다 천황 간표 원년(889년) 8월에는 종사위하로 승격되었다(일본기략 기록). 이러한 국가적 인정은 오야마 신사의 창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사의 정무는 현지 사에키 일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국사는 어떤 형태로든 "오야마 신" 및 "히에이산(사문파)"과 강하게 관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8세기 야마노우에노 가무치와 이케누시 외 사에키노 미카타, 사에키노 다카모리, 9세기 오토모노 구로나리, 사에키노 가와오 등이 국사로 이어졌다. 과거 우오즈에서 번성했던 현지 사에키 일족은 미카타, 다카모리 시대를 거치며 거점을 모리시리나 닛추로 옮겼다가, 개산 전에는 로쿠라, 이와쿠라의 양 거점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다테야마의 종교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는 엔친과 그의 제자 고제가 있다. 구카이의 조카이자 사에키 가문 출신인 엔친수험도 발전에 기여하고 당나라에서 밀교의 오의를 전수받아 온조지(미이데라)를 천태, 진언, 수험도를 함께 배우는 도량으로 삼았다. 엔친의 제자 고제(828년-899년)는 스승으로부터 '엣추 다테야마 건립'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하며, 후에 덴다이좌주와 온조지 장리를 역임했다. 다테야마 신앙과 등산로 정비 등은 현지 사에키 일족과 히에이산의 승려들, 특히 엔친과 고제의 계보를 잇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따르면 다테야마 산기슭에는 로쿠라지, 이와쿠라지, 오타지, 닛추지 등 6개의 큰 사찰 중심의 종교 마을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천태종 계열 사찰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로쿠라(芦峅)와 이와쿠라(岩峅)를 거점으로 했던 오야마 신사(산 정상 봉본사, 산기슭 주구(기원전), 후타치 신사)가 삼위일체 형태로 남아있으며, 무로도다이라에는 참배객 숙소였던 무로도가 복원되어 있다.[39] 그 외 도오 신사, 히토키 신사, 진다 신사 등이 남아있고, 진언밀교 계열의 도오지나 닛세키지 등도 현존한다.

후대에 형성된 개산 연기(開山縁起) 설화에서는 개산 시점을 다이호 율령이 시행된 다이호 원년(701년)으로 앞당겼다. 이 설화는 겐잔 도오텐진(하쿠타카의 쓰루기다케)을 향해 다테야마에 들어간 사에키노 아리모리(혹은 그의 아들 아리요리)가 갑자기 나타난 아미타여래(곰의 모습)에게 흰 깃털 화살을 쏘아 깨달음을 얻고 다테야마를 건립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지쿄 율사 등의 사찰 보급 활동을 아리모리 부자의 공적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구마노 산잔이나 고야산 등의 개산 설화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지쿄'와 같은 이름은 고제나 현지 사에키 일족 인물을 모델로 하여, 당시 천태종 승려들이 이름에 사용했던 '자(慈)' 자를 적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8. 2. 수험도와 밀교

8세기 무렵 엔노 오즈누가 창시한 수험도가 확산되었고, 9세기 초에는 구카이와 사이초 등이 밀교 (진언종, 덴다이종)를 일본에 전파했다. 이러한 종교적 흐름 속에서 다테야마는 산악 수행 전통인 수험도와 밀교가 결합하는 중요한 장소로 부상했다. 요시노·구마노 산잔, 고야산 곤고부지, 히에이산 지몬파 등 다른 유명 영산의 수험 수행자들이 다테야마에 들어와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37] 다이니치산과 쓰루기산 정상 부근에서 나라 시대 후기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에 사용된 석장이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초기 종교 활동의 증거로 볼 수 있다. 9세기 중반에는 율령 국가 차원에서 다테야마의 공식적인 개산(開山)이 이루어졌으며, 이와 함께 사찰 건립 등 종교 시설 정비가 진행되었다.

다테야마에서는 대일여래, 부동명왕, 약사여래진언 밀교 계열의 수험도가 발달하는 한편, 천태 밀교의 수험 장소이기도 했다. 특히 다테야마 신앙의 중심에는 서방 정토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가 자리 잡고 있다.

최징이 시작한 천태 밀교는 엔닌을 거쳐 엔친에게 이어지며 더욱 발전했다. 고보대사의 조카이기도 한 엔친은 엔노교자의 발자취를 따라 오봉산, 가쓰라기산, 구마노 산잔 등을 순례하며 수험도 발전에 기여했다. 853년 당나라로 건너가 청룡사에서 밀교의 오의를 전수받고 858년 귀국한 그는, 859년 온조지를 현교(顯教), 밀교, 수험도를 함께 수행하는 도량으로 삼았다.

엔친의 제자인 고제(828년-899년)는 스승으로부터 '엣추 다테야마 건립(越中立山建立)'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히에이산 승려들과 현지 유력 세력이었던 사에키 일족의 협력을 통해 다테야마 신앙 체계와 시설, 등산 루트 등이 본격적으로 정비되었음을 시사한다. 산기슭에는 로쿠라지, 이와쿠라지, 오타지, 닛추지, 모리시리 등 6개의 사찰을 중심으로 한 종교 마을이 번성했다고 전해지나, 현재 천태종 계열 사찰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로쿠라와 이와쿠라 지역의 오야마 신사를 비롯하여 닛추의 히토키 신사, 모리시리의 진다 신사 등이 남아 당시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야마 신사는 오야마 본봉의 봉본사(峰本社), 산기슭 로쿠라 지역의 주구(中宮, 기원전), 이와쿠라 지역의 후타치 신사(祈願殿)가 삼위일체 형태를 이루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봉본사를 바라보는 무로도다이라에는 참배객들의 숙소였던 무로도(室堂)가 복원되어 있다.[39] 또한, 도오 신사나 진언 밀교 계열의 도오지, 부동명왕을 모시는 닛세키지 등이 현존하고 있다.

고제가 활동하던 시기인 863년, 오야마 신(雄山神)은 세이와 천황으로부터 처음으로 관위(정오위하)를 받았고(일본삼대실록), 889년에는 우다 천황에 의해 종사위하로 승격되었다(일본기략). 이는 율령 국가 체제 하에서 다테야마의 신격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며, 이 시기 이전에 이미 오야마 신사가 창건되고 개산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하게 한다.

다테야마의 개산 연기(開山縁起) 설화는 다이호 율령이 시행된 701년으로 시대를 설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후대에 수험도적 관점에서 윤색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문헌에 다양한 버전의 설화가 전해지는데, 대표적으로 엣추노카미 사에키 아리야스(佐伯有若) 혹은 그의 아들 아리요리(有頼)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로하자루이쇼(伊呂波字類抄)」(헤이안 말기 추정)나 「루이쥬키켄쇼(類聚既験抄)」(가마쿠라 말기 추정) 등에는 사냥 중 곰(혹은 매)을 쫓다가 아미타여래를 만나 감화되어 출가하고 산을 열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40] 1712년에 간행된 「와칸 산사이 즈에」 권68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리요리가 아버지의 흰 매를 빌려 사냥하다 매를 잃어버리고, 겐잔(剣山)의 다치오텐진(刀尾天神)의 도움으로 매를 찾는다. 이후 큰 곰을 만나 활을 쏘았는데, 피 흘리는 곰을 따라간 바위굴에서 가슴에 화살이 박힌 아미타여래를 발견한다. 아미타여래는 중생 구제를 위해 이 산에 십계(지옥과 극락)를 갖추고 그를 기다렸다고 말하며 출가하여 산을 열 것을 명한다. 이에 감화된 아리요리는 지쿄(慈興)라는 법명으로 출가하여 다테야마를 개산하고 신사와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40] 이 설화는 구마노 산잔이나 고야산의 개산 연기와 유사한 수험도적 설화 구조를 보여준다. 아리요리가 풀을 씹어 기운을 차린 쿠사오이(草生) 언덕, 요기를 칼로 베어낸 단사이(断截) 언덕, 염불 소리에 힘입어 오른 카리아스(刈安) 언덕, 염불 소리가 들려온 쇼묘(称名) 폭포, 폭포를 우러러본 후시오가미(伏拝) 등 다테야마의 여러 지명 유래가 이 설화와 관련되어 전해진다.

다테야마 신앙의 핵심에는 신불혼효(神仏混淆) 사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오야마 신사의 주신은 이자나기노미코토이며, 그의 본지불(本地仏, 본래 모습인 부처)은 아미타여래로 여겨진다. 또한 부신(副神)으로는 데지카라오노미코토를 모시는데, 그의 본지불은 부동명왕이다. 이는 신토의 신(神)과 불교의 부처(仏)를 동일시하거나 관련짓는 본지수적 사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헤이안 시대 후기 말법사상이 퍼지면서, 다테야마는 아미타 신앙과 강하게 결합하여 서방 극락정토의 성산으로 여겨졌고, 동시에 산 정상 부근의 지옥곡 등 화산 지형과 관련하여 다테야마 지옥 설화가 발달하면서 다테야마 곤겐(立山権現) 신앙이 확립되었다. 역사적으로 다테야마의 신격은 다양하게 인식되었다. 『아시쿠라지 센조보 본 다테야마 대연기(芦峅寺千寿坊本 立山大縁起)』나 『이와쿠라지 문서(岩峅寺文書)』, 『이와쿠라지 다테야마 약연기(岩峅寺 立山略縁起)』 등에서는 다테야마를 이자나기노미코토와 이자나미노미코토 남녀 두 신의 영묘(霊廟)이자 모든 남녀의 근원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1712년의 『와칸 산사이 즈에』에서는 이자나기노미코토와 데지카라오노미코토를 다테야마(立山)와 도오(刀尾) 두 곤겐의 제신으로 언급하고 있어, 시대와 문헌에 따라 신격에 대한 설명이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8. 3. 일본 신화 설화

만요슈에는 다테야마가 "タチヤマ|타치야마일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36], 이는 "심는 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황성의 달 가사에 나오는 "심는 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엣추노카미로 부임했던 오토모노 야카모치747년에 다테야마의 신성함을 노래하는 시를 남겼다.[37] 당시 다테야마는 멀리서 숭배하는 신성한 산이었으며, 천황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만요슈에 가타카이강이 언급된 것은 이 지역에 중요한 거점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가타카이강의 작은 돌을 주워 정상에 바치는 풍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토모 씨에서 갈라져 나온 사에키 씨가 가타카이강과 후세강 근처에서 번성했으며, 산기슭에는 예로부터 토지신으로 여겨지던 타치오(칼날) 천신을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8세기경 엔노 오즈누를 시조로 하는 수험도가 확산되었고, 9세기 초 고카이와 사이초 등이 밀교(진언종, 덴다이종)를 일본에 전파했다. 산악 수행인 수험도와 밀교가 결합하면서, 다테야마에는 요시노·구마노 산잔, 고야산, 히에이산 등지의 수행승들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다이니치산과 쓰루기산 정상 부근에서 나라 시대 후기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의 석장이 발견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9세기 중반,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테야마의 개산(開山)이 이루어졌고 사찰 건립 등이 진행되었다.

다테야마는 대일여래, 부동명왕, 약사여래 등 진언밀교 계열의 수험도가 자리 잡는 동시에, 천태밀교의 수행 장소이기도 했다. 중심 신앙은 서방 정토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이다.

최징이 완성하지 못한 진언밀교는 엔닌엔친으로 이어지며 보완되었다. 사에키 일족이자 고보대사의 조카인 엔친은 엔노교자의 발자취를 따라 오봉산, 가쓰라기산, 구마노 산잔 등을 순례하며 수험도 발전에 기여했다. 853년 당나라로 건너가 청룡사에서 밀교의 오의를 전수받고 858년 귀국했다. 이후 온조지를 현교, 밀교, 수험도를 함께 배우는 도량으로 삼았다.

엔친의 제자 고제(828년~899년)는 스승으로부터 "엣추 다테야마 건립"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받았으며, 후에 덴다이좌주 및 온조지 장리를 역임했다. 다테야마 신앙과 등산로 등 기반 시설 정비는 현지 사에키 일족과 엔친, 고제로 이어지는 히에이산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테야마 산기슭에는 로쿠라지, 이와쿠라지 등 6개의 사찰 마을 유적이 전해지지만, 현재는 천태종 사찰은 남아있지 않다. 로쿠라와 이와쿠라의 오야마 신사, 닛추의 히토키 신사, 모리시리의 진다 신사 등이 당시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야마 신사는 다테야마 본봉의 봉본사, 산기슭 로쿠라지의 주궁, 이와쿠라지의 후타치 신사와 함께 삼위일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봉본사를 바라보는 무로도다이라에는 참배객 숙소였던 무로도가 복원되어 있다.[39] 이 외에도 진언밀교 계열의 도오지나 닛세키지 등이 남아있다.

고제가 활동하던 시기인 863년, "오야마 신"은 세이와 천황으로부터 처음으로 관위를 받았다. 이는 일본삼대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율령 국가 체제 하에서 다테야마 신앙이 공인되었음을 보여준다. 889년에는 우다 천황에 의해 신위가 승격되었다. 당시 국사는 현지 사에키 일족의 영향을 받았으며, "오야마 신" 및 "히에이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산 설화다테야마의 개산 연기(開山縁起)는 다이호 율령이 시행된 7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다양한 설화 형태로 전해진다. 주요 내용은 사냥꾼(혹은 국사의 아들)이 동물을 쫓다가 신령한 존재를 만나 산을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앙의 변화다테야마의 중심 신은 본래 "도오(刀尾) 신"이었으나, 덴다이종의 개산 이후 다테야마 본봉의 "오야마 신"으로 신앙의 중심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오야마 신"은 일본 신화이자나기노미코토와 관련되며, 헤이안 시대 후기 말법사상이 퍼지면서 아미타 신앙과 강하게 결합하여 서방 극락정토의 신산인 다테야마 곤겐으로 정착되었다. 겐가쿠에는 도오(刀尾) 곤겐(본지 부동명왕)으로 아메노타지카라오노미코토를 모셨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야마 신사의 제신은 주신으로 이자나기노미코토(본지 아미타여래), 부신으로 테지카라오노미코토(본지 부동명왕)를 모시고 있어 본지수적설에 따른 신불혼효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쿠라지 오야마 신사 경내 섭사에도 도오(刀尾) 신사가 있다. 『와칸 산사이 즈에』(1712년)에도 다테야마(릿산)와 도오(とおび) 양 곤겐의 제신으로 이자나기노미코토와 테지카라오노미코토가 언급된다.

헤이안 시대 이후, 다테야마 곤겐은 나라의 시조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남녀 양신을 모시는 산으로도 인식되었다. 아시쿠라지 센조보 본 『다테야마 대연기』, 『제국 일궁 순례기』(1696년), 『이와쿠라지 문서』(1770년), 『다테야마 약연기』 등 여러 문헌에서 다테야마를 남녀 양신의 영묘이자 남녀 교합의 근본이 되는 산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다테야마는 산 정상 부근에 지옥(일본어: 地獄, 고대 일본어에서는 온천을 의미하기도 함)이 있는 산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8. 4. 다테야마 대권현의 오미야 개산 연기

다테야마의 개산(開山) 연기(緣起)는 다이호 율령이 시행된 다이호 원년(7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설화로 전해진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수험도 설화 형식 등을 차용하여 형성된 이야기로 여겨지며, 엣추국의 국사(國司)였던 사에키노 아리요리(佐伯有頼, 혹은 아리야스 有若)를 중심으로 전개된다.[40]

여러 문헌에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개산 연기와 관련하여 다테야마 등산로 주변에는 여러 지명 설화가 남아있다. 아리요리가 산에서 풀을 씹어 기운을 차린 언덕을 쿠사오이(草生) 언덕, 요기를 베어낸 언덕을 단사이(断截) 언덕, 염불 소리에 힘입어 오른 언덕을 카리아스(刈安) 언덕이라고 한다. 이때 들렸던 염불 소리가 실제로는 폭포 소리였다 하여 그 폭포를 쇼묘 폭포(称名滝)라 하며, 폭포를 우러러본 자리를 후시오가미(伏拝)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8. 5. 참배 기본 작법

현대까지 가타카이강의 작은 돌을 가져와 정상에 바치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다테야마 삼산을 도는 등산은 수미산의 천계[41] 사상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이는 지옥과 정토를 통한 생사관의 대비를 상징하며, 다테야마 본봉 정상에 있는 오야마 신사 봉본사에서 북극성과 겹쳐 오호누시를 숭배함으로써 우주에 자신을 비추어 깨달음을 얻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또한, 다이니치다케나 오야마에서 쓰루기다케(구리카라 부동명왕)를 숭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앙적으로 오호누시야마(大汝山|오호누시야마일본어)와 쓰루기다케는 숭배의 대상이며, 직접 오르는 산은 아니다.

8. 6. 참배 전 정화

다테야마에 오를 때는 강가에서 돌을 주워 산 정상에 있는 웅산 신사[41]에 바치는 풍습이 있다. 본격적인 등산은 산기슭 岩峅寺|간구라지일본어에 있는 웅산 신사(옛 이름은 다테야마 곤겐・웅산 곤겐)나 '신이 내려온 장소'라는 뜻을 지닌 芦峅寺|아시쿠라지일본어의 麓大宮|후모토 오미야일본어(마에다테샤단)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다테야마에 오르는 사람들은 몸의 부정한 것과 죄를 씻어내고 등반 중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른다.

9. 관광



오래전부터 수행자들이 오르던 산이었으나, 현대에 들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가 개통되면서 다카오산이나 후지산처럼 국내외에서 연간 10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유명 산악 관광지가 되었다[42]. 또한 다테야마 연봉(쓰루기산, 오야마, 후지노오리타테)에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빙하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43][44].

9. 1. 유키노오타니

유키노오타니


다테야마・구로베 알펜 루트가 봄에 제설되어 개통되면, 무로도 터미널 부근의 도로는 양쪽이 10m~20m 높이의 눈벽이 되어 "雪の大谷|유키노오타니일본어"라고 불린다.

9. 2. 미다가하라

미다가하라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다가하라 (다테야마)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9. 3. 지고쿠다니

지고쿠다니의 이오우 탑


무로도의 북쪽에는 미쿠리가이케 호반을 지나 지고쿠다니로 향하는 산책로가 있다. 지고쿠다니의 북서쪽에는 거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엔마산이라 불리는 유황을 함유한 언덕이 있다. 지고쿠다니에는 분연, 화산 가스온천의 원천이 있으며, 유독 가스의 농도에 따라 산책로 통행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다. 이 원천은 주변의 숙박 시설에서 온천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9. 4. 구로베다이라

구로베다이라역 ()에서 바라본 다테야마의 뒷면

10. 등산

다테야마와 미다가하라 주변은 해발 3,000m급의 높은 산이지만,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참배 목적으로 올랐다. 이에 반해 쓰루기 산을 비롯한 주변의 다른 산들은 근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등산의 대상이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옛 엣추국(越中国)의 여러 마을에서 남자아이가 15세나 16세가 되면 성인식의 하나로 집단으로 다테야마(오야마 신사)에 오르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 다테야마 참배를 통해 소년들은 어른으로 인정받았다.[45] 메이지 시대 이후로는 도야마현 내 초등학교에서 학교 행사로 다테야마 학교 등산을 실시해 왔다. 과거 도야마현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현 내에서 다테야마 등산을 실시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연간 60~70개교에 달했으나[46],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범유행의 확산과 교원을 포함한 근무 방식 개혁의 영향으로 다테야마 등산을 실시하는 초등학교가 급격히 감소하여 2020년에는 7개교, 2021년에는 28개교로 줄었다[47].

1964년 6월 20일 고원 버스가 미녀평에서 무로도까지 전 구간 운행을 시작하면서 해발 2450m 지점인 무로도까지 버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다테야마 등산이 더욱 편리해졌다.

또한 도야마현 교육위원회는 현 내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12세 다테야마 꿈 등산"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7월, 이 행사에 참여한 초등학생이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학교 등산 계획 및 신고에 관한 규칙이 강화되었고, 안전 대책의 일환으로 다테야마 자연 보호 센터에서 등산용 헬멧 대여를 시작했다[48].

10. 1. 등산사

10. 2. 등산 루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교통 기관을 이용하여 무로도를 다테야마나 쓰루기다케 등의 등산 입구로 삼는 경우가 많다.[55] 다테야마 무로도 산장과 이치노코시를 거쳐 오야마 신사까지 왕복하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겨울철에는 교통 기관 운행이 중단되어 일반 등산객의 접근이 어렵다. 봄에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가 개통되면 무로도 주변에서 봄철 산악 스키를 즐길 수 있다.[15]

주요 등산 코스
출발점주요 경유지도착지
무로도역다테야마 무로도 산장 → 이치노코시다테야마(오야마)
무로도역다테야마 무로도 산장 → 무로도 산 → 조도 산 → 이치노코시
무로도역미쿠리가이케 온천 → 라이초자와 → 쓰루기 고젠 산장 → 벳산 → 마사고다케 → 다테야마(후지노오리타테, 오나지야마)
무로도역미쿠리가이케 온천 → 라이초자와 → 사이노카와라 → 오하시리 → 마사고다케 → 다테야마(후지노오리타테, 오나지야마)
무로도역미쿠리가이케 온천 → 라이초자와 → 이치노코시
구로베 댐로지 쿠로욘 → 구로베다이라 → 히가시이치노코시 → 이치노코시다테야마(오야마)
쇼묘 폭포 버스 정류장쇼묘 폭포 → 하치로자카 → 미다가하라 → 무로도 → 이치노코시다테야마(오야마)
뷰조다이라역 버스 터미널미다가하라 → 무로도 → 이치노코시다테야마(오야마)



다테야마 등산 마라닉 실행 위원회 주최로 해안에서 출발하여 하치로자카를 거쳐 오야마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10. 3. 주변 숙박 시설

실내당 주변 및 다테야마 주변의 등산로에는 호텔산장 등 많은 숙박 시설이 있다.[56] 오나지산 및 오야마에서 가장 가까운 산장은 이치노코시 산장이다. 모든 산장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명칭소재지오나지산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km)
표고
(m)
수용
인원
비고
국립 숙소 텐보 다테야마장미다가하라
일본 최고소 국립 숙소
1940m89도야마현의 학교 등산 숙박
츠루기 고젠 산장벳산 노리고에, 츠루기 고젠과 벳산과의 안부북 2.42410m200츠루기산 조망
로지 다테야마 렌포라이초다이라북서 2.42330m200
라이초자와 휫테북서 2.32350m290동쪽에 텐트 250동의 캠프장 있음
호텔 다테야마실내당 버스 터미널서 2.22420m289기간 한정으로 다테야마 산정 간이 우체국 개설됨
미쿠리가이케 온천미쿠리가이케 호반북서 2.22410m120
라이초소린도 연못 북북서 2.12400m350
다테야마 실내당 산장실내당 평원서 1.72450m200
우치조스케 산장마사고다케 산정의 동쪽 바로 아래북 1.42790m120
이치노코시 산장이치노코시, 오야마와 류오산과의 안부남서 0.92705m200다테야마에 가장 가까운 산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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