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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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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장소이자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으로, 바티칸에 위치해 있다. 교황 식스토 4세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벽화,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가 유명하며, 특히 천장화는 창세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 선출과 같은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사용되며, 내부의 장식과 건축물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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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경당
기본 정보
예배당의 동쪽, 제단 끝에서 본 모습
예배당의 동쪽, 제단 끝에서 본 모습
위치바티칸 시국
좌표41° 54′ 11″ N 12° 27′ 16″ E
종교적 소속로마 가톨릭교회
관구로마 교구
축성 연도1483년 8월 15일
상태교황의 기도실
건축가바초 폰텔리, 조반니 데 돌치
건축 유형교회
길이40.9m
너비 (내부)13.4m
최대 높이20.7m
세계 문화 유산 지정1984년
세계 문화 유산 기준i, ii, iv, vi
세계 문화 유산 번호286
세계 문화 유산 유형문화
세계 문화 유산 국가바티칸 시국
세계 문화 유산 지역유럽 및 북아메리카
명칭
일본어システィーナ礼拝堂
역사
기공1473년
완공1481년
추가 정보
웹사이트바티칸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

2. 역사

시스티나 경당은 오늘날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별히 교황이 여행 중이 아니라면 교황의 일정에서 중요한 의식이 있으면 그것을 치르는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시스티나 경당에는 상설 성가대가 있으며, 이 성가대를 위해 수많은 성가가 작곡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알레그리가 작곡한 《미제레레》가 있다.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동안 추기경들을 위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하인들의 수발을 통해 음식과 취침 장소 지원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2. 1. 건립 배경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 유명하며,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15세기 후반 교황 식스토 4세 시대에 바티칸에는 성직자, 공무원, 평신도 등 약 200명으로 구성된 법인체가 조직되었다. 당시 교황 일정표에는 모든 성당이 회합하도록 규정된 50개의 교회 행사가 있었으며,[81] 이 중 35개는 미사였다. 8개의 미사는 성 베드로 대성전과 같은 대성전에서 거행되었고, 많은 신자들이 참석했다. 여기에는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와 부활절 미사도 포함되었다. 나머지 27개의 미사는 규모가 작고 덜 알려진 장소에서 거행되었는데, 이를 위해 마조레 성당(Cappella Maggiore)이 사용되었으며, 이 성당은 나중에 시스티나 성당으로 재건되었다.

교황 식스토 4세


마조레 성당은 교황과 그의 수행원들이 매일 전례를 위해 이용하였으며, 다른 성당들과 비교하여 대성당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성당으로 프라 안젤리코가 장식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마조레 성당은 1368년부터 존재했다. 트레비존드의 안드레아가 교황 식스토 4세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지금의 성당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존의 마조레 성당을 헐었을 당시 이미 벽이 기울어진 폐허 상태였다고 한다.[8]

마조레 성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지금의 성당은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바치오 폰델리가 설계하였으며,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조반니노 데 돌치의 감독 아래 1473년에서 1481년에 걸쳐 건설되었다.[9] 지금의 성당 넓이는 원래 있었던 옛 성당과 거의 유사하다. 완공 후, 성당 내부는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전성기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치장되었다.[8]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첫 번째 미사는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치러졌으며, 축성한 다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10]

2. 2. 초기 장식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 식스토 4세 시대에 교황 전례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당시 교황의 일정표에는 50개의 교회 행사가 있었고, 그 중 35개가 미사였다. 8개의 미사는 성 베드로 대성전과 같은 큰 성당에서 거행되었고, 나머지 27개는 규모가 작은 마조레 성당(Cappella Maggiore)에서 거행되었다. 마조레 성당은 나중에 시스티나 성당으로 재건되었다.

마조레 성당은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성당으로 프라 안젤리코가 장식하였으며, 1368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레비존드의 안드레아가 교황 식스토 4세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마조레 성당은 벽이 기울어진 폐허 상태였다고 한다.

현재의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바치오 폰델리가 설계하고 조반니노 데 돌치의 감독 아래 1473년에서 1481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성당의 넓이는 원래 있었던 옛 성당과 거의 유사하다. 완공 후, 성당 내부는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들로 장식되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첫 번째 미사는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치러졌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47]

2. 3. 교황 선출 (콘클라베)

시스티나 경당의 주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추기경단이 선종한 교황의 자리를 계승할 인물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선거 장소로 제공되는 것이다. 콘클라베가 소집되면, 지붕에 굴뚝을 설치하여 신호로 연기가 피어올라 교황의 선출 여부를 외부에 알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을 경우, 콘클라베 때 사용한 투표용지들을 화학 첨가물과 같이 불에 태우면 하얀 연기가 나타난다. 만약 후보자가 3분의 2 다수보다 적은 표를 얻으면 추기경들은 투표용지들을 젖은 짚 또는 화학 첨가물과 함께 불에 태워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이것은 아직 새 교황을 선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82]

콘클라베는 서구 대이교까지 도미니코회에서 관리하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열렸으나, 1455년부터는 바티칸에서 열렸다.[83]

시스티나 경당에서 열린 최초의 교황 선출 회의는 1492년 8월 6일부터 11일까지 열린 1492년 교황 선출 회의로, 이 회의에서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선출되었다.

1996년부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헌장 ''Universi Dominici gregis''에 따라 추기경들은 교황 선출 회의 동안 성 마르타의 집에 머물러야 하지만, 시스티나 경당에서 투표를 계속해야 한다.[14]

과거에는 각 추기경 선거인에게 동등한 존엄성을 나타내는 표식인 천개(canopy)가 교황 선출 회의 중에 사용되었다. 새 교황이 선출을 수락한 후 새 이름을 부여하면, 다른 추기경들은 좌석에 연결된 밧줄을 당겨 천개를 낮추었다. 성 비오 10세가 시행한 개혁 이전에는 천개가 각 추기경이 어떤 교황에 의해 임명되었는지를 나타내기 위해 다른 색깔을 띠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천개를 완전히 폐지했는데, 이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추기경단의 인원이 너무 많이 증가하여 벽을 따라 두 줄로 앉아야 했고, 천개로 인해 뒷줄에 있는 추기경들의 시야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3. 건물

시스티나 경당 건물은 3층 구조로, 가장 아래층은 웅장한 형태의 둥근 천장이 있는 지하층이다. 여기에는 실용적인 창문들과 바깥뜰로 통하는 문이 있다.

건물 측면에는 각각 6개, 양끝에는 2개씩 긴 아치형 창문이 있다. 아치 천장 위 3층에는 근위병들을 위한 고급 사관실이 있다. 이 구역은 벽에서 솟아오른 아치로 떠받쳐져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건물 내부 비율은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지만, 전체 비율은 명확하여 오차가 몇 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건물 폭은 길이의 1/3, 높이는 길이의 2/3 정도이다. 이러한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양측에 창문을 6개씩, 양쪽 끝에는 2개씩 배치하였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 건축의 특징으로, 당시 옛 로마 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풍토를 반영한다.

성당 천장은 아치형 창문들의 기공점 높이에서 벽을 둘러싸는 반원통형 둥근 천장이다. 이 천장은 가장 낮은 높이에서 각 창문 사이의 얕은 벽기둥에서 솟아오른 일련의 큰 삼각 궁륭으로 나뉘며, 각 창문 위 작은 아치 천장에 의해 가로로 나뉜다. 원래 천장은 피에르마테오 라우로 데 만프레디 다 아멜리아의 디자인에 따라 밝은 파란색 배경에 황금빛 별들이 드문드문 그려져 있었다. 바닥은 오푸스 알렉산드리눔 양식으로, 대리석과 유색 석재로 무늬를 장식하여 내부 분할의 초기 비율을 나타낸다. 정면 현관문에서부터 난 행렬용 길은 종려주일과 같은 중요한 행사에 교황이 이용하였다.

시스티나 성당은 미노 다 피에솔레, 안드레아 브레뇨, 조반니 달마타가 대리석으로 만든 칸막이(격자)로 두 구획으로 분리되어 있다.[85] 원래 성당 내부는 제대 쪽 지성소 안 교황 전용 기도실에서 시중드는 사람들과 순례자, 로마 시민 모두에게 같은 공간을 제공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교황 수행 인원이 늘면서 칸막이가 이동되어 평신도를 위한 공간이 줄어들었다. 격자 위에는 화려한 촛대가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과거 금박을 입혔던 철문 자리에는 나무 문이 있다. 격자를 만든 조각가들은 돌출한 성가대석(Cantoria)도 만들었다.

3. 1. 외관

시스티나 경당은 높은 직사각형 벽돌 건물이며, 그 외관은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다른 수많은 이탈리아 성당들과 같이 건축상의 세세한 장식 없이 수수하다. 시스티나 경당에는 특별히 외관에 출입구가 없기 때문에 항상 교황궁 안에 있는 내실을 통해서 출입하며, 외관은 교황궁 안에 있는 채광정이나 근처 창문들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경당 내부를 측량한 결과 길이 40.9m, 너비 13.4m로 나오는데, 이는 구약성경에 적힌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규모이다.[84] 천장 높이는 20.7m이다. 건물 측면마다 여섯 개의 긴 아치형 창문들이 있고, 양끝에는 두 개의 창문들이 있다.

침전물과 석조 건축의 갈라진 금 때문에 매우 큰 부벽으로 건물을 보강해 외벽을 떠받치게 되었다. 다른 건물들이 추가로 지어져 시스티나 경당의 외양은 계속해서 변화하였다.

시스티나 경당 외부

3. 2. 내부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 선출 회의(콘클라베)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주된 기능은 교황 예배당(Cappella Pontificia)의 예배당으로서의 역할이다. 15세기 후반 교황 식스토 4세 시대에는 성직자, 바티칸의 관리, 저명한 평신도 등 약 200명으로 구성된 교황 예배당이 있었다. 교황 달력에 따라 교황 예배당 전체가 모여야 하는 행사가 연중 50회 있었으며,[7] 이 중 35번은 미사였다. 8번은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같은 큰 성당에서 열렸고, 많은 신자들이 참석했다. 나머지 27번의 미사는 더 작고 덜 공개적인 공간에서 열렸는데, 시스티나 성당과 같은 부지에 재건되기 전에는 마조레 성당(Cappella Maggiore)이 사용되었다.

마조레 성당은 교황과 수행원들이 매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용했던 곳으로, '더 큰 예배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성당으로 프라 안젤리코가 장식하기도 했다. 마조레 성당은 1368년에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예배당을 짓기 위해 철거될 당시에는 벽이 기울어진 낡은 상태였다.[8]

15세기에 시스티나 성당이 나타난 모습 (19세기 그림)


현재의 예배당은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바초 폰텔리가 설계했으며, 1473년부터 1481년까지 조반니노 데 돌치의 감독하에 건축되었다.[9] 현재 예배당의 비율은 원래 예배당의 비율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완공 후 예배당은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피에트로 페루지노, 미켈란젤로를 포함한 여러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8]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최초의 미사는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거행되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되었다.[10]

시스티나 성당은 오늘날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교황이 여행 중이 아닌 한 교황 달력의 중요한 예배를 계속해서 주최하고 있다. 시스티나 성가대가 상설되어 있으며, 많은 오리지널 음악이 작곡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곡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이다.[11]

경당은 길이가 약 35m이며, 폭은 14m이다.[15] 천장은 주 바닥에서 약 20m 높이로 솟아있다.[8][16]

경당의 외부는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이탈리아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건축적 또는 장식적 세부 사항으로 장식되지 않았다. 외부 정면이나 외부 행렬 출입구가 없으며, 출입은 항상 교황 궁전(사도 궁전) 내부의 방에서 이루어졌으며, 외부는 인근 궁전의 창문과 채광정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다른 건물의 부착은 경당의 외부 외관을 더욱 변경했다.

건물은 세 개의 층으로 나뉘며, 가장 낮은 층은 외부 뜰로 통하는 여러 개의 실용적인 창문과 출입구가 있는 매우 높은 지하실 수준이다. 건물은 각 측면에 6개의 높고 아치형 창문과 양쪽 끝에 2개의 창문이 있었으며, 그 중 일부는 막혔다.

시스티나 경당의 일반적인 비율은 길이를 측정 단위로 사용한다. 이 길이는 너비를 얻기 위해 3으로, 높이를 얻기 위해 2로 나누어졌다. 이 비율을 유지하면서 각 측면에 6개의 창문이 있었고 양쪽 끝에 2개씩 있었다. 정의된 비율은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이었으며 로마의 고전 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반영했다.

천장 그림을 그리기 전인 1480년대 서쪽 벽 예배당의 모습 재구성


시스티나 경당에서 페루지노의 잃어버린 ''성모 승천''에 대한 핀투리키오의 그림


시스티나 경당의 라파엘 태피스트리


예배당의 천장은 창문 아치의 시작 부분 높이에서 벽을 둘러싸는 코스에서 시작하는 평평한 통 모양 천장이다. 이 통 모양 천장은 각 창문 위에 있는 더 작은 볼트가 가로로 잘라져 있으며, 이는 통 모양 천장의 가장 낮은 수준에서 각 창문 사이의 얕은 기둥에서 올라오는 일련의 큰 펜던티브로 나뉜다. 통 모양 천장은 원래 피에르마테오 라우로 데 마프레디 다 아멜리아의 디자인에 따라 밝은 파란색으로 칠해지고 금색 별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8] 바닥은 오푸스 알렉산드리눔으로, 대리석과 색깔 있는 돌을 사용하여 내부의 이전 비율을 반영하고 종려 주일과 같은 중요한 경우에 교황이 사용하는 주 출입구에서 이어지는 행렬길을 표시하는 장식 스타일이다.

미노 다 피에솔레, 안드레아 브레노, 조반니 달마타가 제작한 대리석 스크린 또는 ''트란세나''는 예배당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17] 원래 이들은 제단 근처의 성소 내의 교황 예배당 구성원과 외부의 순례자 및 시민들을 위해 동일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황에게 참석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스크린이 이동하여 신도들을 위한 공간이 줄어들었다. ''트란세나''는 한때 금박을 입혔던 화려한 촛대 열로 덮여 있으며, 한때 금박을 입힌 단철 문이 있던 곳에 나무 문이 있다. ''트란세나''의 조각가들은 또한 돌출된 합창단 갤러리인 ''칸토리아''를 제공했다.

4. 장식

시스티나 성당의 내부 벽면: 아래에서부터 금은색 천을 그린 프레스코화,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 역대 로마 교황의 초상과 그리스도의 조상들.


시스티나 경당의 벽면은 크게 세 층으로 나뉜다. 아래층은 금은색 천이 그려진 프레스코화이다. 가운데 층에는 "모세의 생애 이야기"와 "그리스도의 생애 이야기" 프레스코화가 서로 보완하며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들은 1480년 교황 식스토 4세가 의뢰한 것으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산드로 보티첼리, 피에트로 페루지노, 코시모 로셀리 등 당대 피렌체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각자 이끌던 공방의 제자들과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이미 로마에 있었고, 시스티나 성당 내부 장식의 책임자로 여겨지는 페루지노를 중심으로 1480년 10월 27일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했고, 1481년 초봄부터 벽화 제작을 시작했다. 피렌체 화가들의 시스티나 성당 내부 장식 임명은 당시 식스토 4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피렌체의 지배자 로렌초 데 메디치와의 관계 회복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상층은 다시 상하로 나뉜다. 하부에는 역대 로마 교황의 초상이 등신대로 그려져 있고, 상부의 루네트에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일부로,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역사 속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부터 1512년에 걸쳐 교황 율리오 2세의 명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렸다. 이 천장화에는 『창세기』의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 『원죄와 낙원 추방』 등 9점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원형 천장을 지탱하는 삼각형 펜덴티브에는 신이 구세주 그리스도를 보낼 것을 예언한 『구약성경』의 7명의 예언자와 고대 무녀(시빌라)가 그려져 있다.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라파엘로에게 예배당 벽면 최하층을 장식하는 10점의 태피스트리를 디자인하도록 했다.[58] 당시 25세였던 라파엘로는 피렌체에서 이미 많은 부유한 후원자를 둔 유력한 예술가였으며, 야심 있는 젊은이로서 로마 교황을 후원자로 둔다는 영예를 갈망했다.[59] 활기 넘치는 로마에 매료된 라파엘로는 이후 생애를 로마에서 보내게 된다.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경당 제대 위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을 마친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다시 경당 장식을 맡았다.

4. 1.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

라파엘로가 시스티나 성당을 위해 디자인한 태피스트리는 특별히 중요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옆벽을 채우는 데 사용되었다. 이 태피스트리들은 1527년 로마 약탈 당시 독일 용병들에 의해 불태워지거나 약탈당하여 유럽 전역에 흩어졌다. 복음서사도행전에 나오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생애 사건들을 묘사한 이 태피스트리들은 20세기 후반에 여러 개가 다시 모아져 한 세트로 짜맞춰졌고, 1983년에 시스티나 경당에 다시 전시되었다. 열 개의 태피스트리 가운데 표준 크기의 예습 밑그림들은 ‘라파엘로의 밑그림’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영국 런던에 소재해 있다.[86]

라파엘로가 경당을 위해 디자인한 "성 베드로의 생애"와 "성 바울로의 생애"를 그린 태피스트리는 시스티나 경당에서 열리는 특별히 중요한 의식에서 양쪽 벽을 덮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에피소드를 모티프로 한 것으로, 라파엘로가 그린 디자인용 밑그림인 『라파엘로의 카르톤』 10점 중 현존하는 7점을 영국 왕실의 로열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으며, 1865년부터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57] 1527년 로마 약탈에서 약탈당한 이 태피스트리는 귀금속이 벗겨지고 유럽 전역으로 흩어졌으나, 20세기 후반에 시스티나 경당으로 돌아왔고 (새롭게 다시 만들어진 태피스트리도 있다), 1983년부터 원래대로 시스티나 경당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4. 2.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경당의 프레스코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벽의 아랫부분은 금은색으로 수놓은 프레스코 양식의 벽지로 장식되어 있다. 벽의 가운데 부분은 《모세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은 두 그림이 서로를 보충하며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들은 1480년 교황 식스토 4세의 명령에 따라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산드로 보티첼리, 피에트로 페루지노, 코시모 로셀리 등이 그렸다.

윗부분은 두 구역으로 나뉜다. 창문 아래쪽에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그림들과 같은 시기에 그려진 교황들의 초상화가 있다. 창문 윗부분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리스도의 선조들》을 묘사한 반원형 그림들이 있는데, 이는 천장화 계획의 일부였다.

교황 율리오 2세의 의뢰로 미켈란젤로는 1508년에서 1511년까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렸다. 여기에는 《천지창조》, 《하느님과 인류의 친교》, 《하느님의 은총을 잃은 인류의 타락》 등 아홉 점의 그림이 이어져 있다. 아치형 천장을 지지하는 커다란 삼각 궁륭에는 하느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것이라는 성경과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의 예언이 담긴 그림들이 있다.[97]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라파엘로에게 벽체 하단부에 전시할 태피스트리 열 점을 그리라고 주문했다. 레오 10세는 식스토 4세의 의뢰로 전시된 15세기의 프레스코화들 바로 밑에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들을 전시하려고 하였다.

4. 2. 1.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코시모 로셀리, 루카 시뇨렐리 등 15세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화가들이 벽화를 그렸다. 주제는 사실(史實)에 바탕을 둔 종교적 이야기들로 엄선되었으며, 중세의 발상에 따라 모세십계명을 받기 전까지의 삶, 모세와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그리스도 기원 이후 등 세계 역사상 일어났던 세 가지 중요한 사건들 형식으로 나누었다. 화가들은 구약과 신약, 또는 모세의 율법에서 비롯된 전통과 기독교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성당 그림들의 진행 순서는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 두 시대로 구분되는 척도가 되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삶으로 구성되었다. 이야기는 제대 벽에서 시작해 벽을 길게 따라 입구 벽에서 끝난다.

모세와 그리스도의 삶을 그린 프레스코화들은 구약과 신약 간 일치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식스토 4세는 프레스코화들의 순서를 꼼꼼하게 착상하여, 하느님이 모세를 거쳐 그리스도를 통해 베드로에게, 궁극적으로는 교황에게 최고의 권위를 내렸다는 것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프레스코화 가운데 두 점의 중요한 그림은 페루지노가 그린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와 보티첼리가 그린 《코라에 대한 심판》이다. 두 그림 모두 최초의 그리스도인 로마 황제이자 교황에게 서로마 영역의 정치적 권한을 넘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개선문은 교황의 권한이 황제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식스토 4세는 자신의 지위인 교황이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동시에 로마 제국의 합법적인 상속자라는 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성당 북쪽 벽에 있는 페루지노의 벽화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는 15세기 최고의 프레스코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다. 이 장면은 마태오 복음서 16장에서 그리스도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다는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여기서 하늘나라는 18절에 나오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며, 열쇠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 즉 모든 권한을 상징한다. 본문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였다. 그림을 보면 그리스도는 사도들과 시민이 지켜보는 광장의 한가운데 서서 한쪽 무릎을 꿇은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를 엄숙하고 경건하게 건네주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을 에워싼 유다(그리스도의 왼편에서 다섯 번째)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 페루지노의 자화상(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다섯 번째)을 포함해서 당시 페루지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뒤에는 넓은 광장이 보이고, 그 광장 뒤편에는 육각형의 솔로몬의 성전이 보인다. 그 옆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상기시키는 문이 양쪽에 서 있다.[87]



보티첼리는 1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세의 일생》, 《그리스도의 유혹》, 《코라[88]의 형벌》이라는 세 점의 벽화를 그렸다. 《모세의 일생》 프레스코화는 《그리스도의 유혹》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두 그림은 '유혹'이라는 주제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이 그림은 젊은 모세가 출애굽기(탈출기)의 다양한 일화를 일곱 개로 통합해 4열의 대각선에 하나의 풍경화로 담아내고 있다.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서가 전개된다. 노란 옷을 입은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데 분노해 이집트 사람을 죽이는 장면[89], 모세가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의 지역인 미디안으로 달아나는 장면[90], 모세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떼에 먹이려는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 또는 이드로[91]의 딸들을 방해하는 양치기들과 싸우는 장면[92], 모세가 르우엘(이드로)의 딸들을 도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 떼에 먹이는 장면[93],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듣는 장면[94], 이집트에서 사백삼십 년 동안 노예로 살아오면서 탄압을 당했던 히브리 사람들을 약속받은 땅으로 이끄는 장면[95] 등이다.[96]



보티첼리의 작품인 이 프레스코화는 하느님이 지정해 준 지도자 모세아론에 대해 코라의 선동에 설득된 히브리 사람들의 반란과 그 후의 선동자에 대한 하느님의 처벌을 묘사한 세 가지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다. 코라는 모세를 시기하여 그의 권위에 대항해 정권을 잡으려고 했다가 하느님의 진노를 샀다. 모세의 권위는 하느님이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탄과 아비람과 함께 땅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림에서 코라의 무리는 다시 자신들을 이집트로 데려가 줄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며, 모세에게 돌을 던지며 협박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그들 사이에 서서 온몸으로 막고 있다. 중앙 부분은 아론의 아들과 레위의 아들이 경쟁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있다. 모세의 기도로 말미암아 향로들이 흔들리며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그림의 왼쪽은 땅이 갈라져 모반자들을 삼키는 장면이며, 코라의 천진난만한 두 아들은 처벌을 면해 구름 위에 떠 있다. 개선문의 중심부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와 아론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 영광을 가져갈 수 없다.”라는 글귀가 비문으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이 프레스코화는 하느님이 임명한 지도자에게 거스르는 이는 벌을 받으리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96]



이 그림은 보티첼리가 시스티나 성당에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그린 3점의 프레스코화 가운데 마지막 프레스코화로, 마태오 복음서에 기술된 그리스도가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는 세 부분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서 악마는 은수자로 둔갑해 있지만, 그리스도는 그가 오른쪽 위에 있는 진짜 모습을 드러날 때까지 멀리 내쫓고 있다. 그림의 전경은 성전 앞에서 유다인들이 고대의 관습에 따라 매일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유다인들의 희생 제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스스로 바쳤던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해주고 있다. 배경의 왼쪽 맨 위에 있는 산꼭대기에서는 그리스도가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것을 시도하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세 명의 천사가 성찬을 위해 탁자를 준비하고 있다.[96]

시스티나 경당의 남쪽 벽은 '모세의 이야기'로 장식되어 있으며, 제단에서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그림들이 있다.

북쪽 벽에는 '예수의 생애'가 있으며, 다음 그림들이 포함된다.

  • 예수의 세례 - 피에트로 페루지노와 조수
  • 그리스도의 유혹 - 산드로 보티첼리
  • 사도들의 소명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 성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장면 - 피에트로 페루지노
  • 최후의 만찬 - 코시모 로셀리

4. 2. 2. 미켈란젤로의 회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심판 상세도


시스티나 경당의 벽은 세 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윗부분은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창문 아래쪽에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그림들과 같은 시기에 그려진 교황들의 초상화가 있다. 창문 윗부분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리스도의 선조들》을 묘사한 반원형 그림들이 천장화 계획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교황 율리오 2세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1508년에서 1511년까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렸다. 여기에는 《천지창조》, 《하느님과 인류의 친교》, 《하느님의 은총을 잃은 인류의 타락》 등 아홉 점의 그림이 이어져 있다. 천장을 지지하는 삼각 궁륭에는 하느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것이라는 성경과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의 예언이 담긴 그림들이 있다.[97]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열두 사도를 그릴 것을 주문했지만, 미켈란젤로의 복잡한 도안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나 이 그림들은 나중에 《마지막 심판》으로 제대 위 벽을 장식하라는 의뢰를 받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파괴되었다(1537-1541).[97]

1504년 시스티나 경당 천장에 큰 균열이 생겨 훼손되자, 천장을 새로 장식할 필요성이 커졌다. 1508년 5월 10일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천장화를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쳐 이 거대한 천장화를 완성했다.[98]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는 창세기의 장면을 프레스코로 재현한 아홉 점의 그림이 띠 형태로 그려져 있다. 다섯 점은 크기가 작고, 남성 누드(이누디)가 각 모서리에서 작품들을 둘러싸고 있다. 제작 순서이자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로, 첫 여섯 작품은 빛과 어둠의 분리,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원죄를 보여준다. 나머지 세 작품은 노아의 이야기로, 노아의 희생, 노아의 방주, 노아의 만취이다. 천장 중앙에서 띠를 형성하는 이 작품 양 측면에는 일곱 명의 예언자와 다섯 명의 여사제가 있다. 예언자들과 여사제들 사이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의 삼각형 공간과 루네트에는 아브라함부터 성 요셉에 이르는 예수의 선조들이 그려져 있다. 사방의 펜덴티브에는 청동 뱀, 하만의 형벌, 다윗과 골리앗,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를 그려 구세주 언약을 암시하는 구약성경의 네 장면을 나타냈다.[99]

앞쪽 절반이 완성된 후,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는 성당이 봉헌된 성모 승천 대축일인 1511년 8월 15일에 부분 공개되었다. 15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천장화 제막식이 거행되었다.[100]

최후의 심판에서 자신의 벗겨진 피부(미켈란젤로의 자화상)를 들고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경당 제대 위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 작업을 마친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미켈란젤로는 다시 경당 장식을 맡았다. 새 프레스코 제작을 위해 원래 있던 페루지노와 다른 화가들의 작품 세 점과 자신이 1512년에 그린 두 점의 루네트화를 없애야 했다.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심판’이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최후의 심판》은 1541년에 완성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맨 왼쪽 루네트를 그리고, 순서대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프레스코를 그렸다. 최후의 심판이 공개된 지 4년 뒤인 1545년에 바오로 3세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101]

작품은 세 개의 띠로 이루어져 있다. 꼭대기 두 루네트에는 날개 없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 도구들을 들고 있다. 아래 띠 왼쪽에는 종말 이후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오른쪽에는 영원한 벌을 받는 영혼을 나르는 카론의 배와 미노스가 있는 지옥이 그려졌다. 가운데 띠 중앙에는 심판 나팔을 든 일곱 대천사들이 있고, 왼쪽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영혼, 오른쪽에는 지옥 불로 떨어지는 영혼이 있다. 위쪽 띠에는 성모 마리아 옆에서 구원자 무리에 둘러싸인 심판자 그리스도가 있다.[102]

5. 복원 및 논란

시스티나 경당의 프레스코화, 특히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는 과거 여러 차례 복원되었으며, 가장 최근의 대규모 복원 작업은 1979년 시험 복원을 거쳐 1980년 6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실시되었다. 복원 팀은 잔루이지 코랄루치, 마우리치오 로시, 피에르조르지오 보네티, 브루노 바라티 등으로 구성되었다.[75] 복원 작업은 니혼 TV에서 위촉한 미술 사진가 오카무라 쓰이가 상세하게 기록하였다.[75]

최초 복원 대상은 미켈란젤로 천장화의 루네트 부분으로, 1984년에 완료되었다. 1989년 12월에는 천장화 전체 복원이 완료되었고, 이어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복원이 시작되었다. 프레스코화 전체 복원 작업은 1994년 4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공개되었다.[76] 마지막으로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등이 그린 벽면 프레스코화가 복원되어 1999년 12월 11일에 공개되었다.[77]

복원 후, 촛불 연기 등으로 흑백에 가깝게 퇴색되었던 색채는 선명하게 빛나며, 옅은 핑크색, 청사과색, 선명한 노란색, 하늘색 등이 펄 그레이 벽면과 좋은 대조를 이루게 되었다. 이로써 그을음에 덮여 있던 프레스코화는 본래의 색채를 되찾았다.[77] 그러나 이 복원 작업과 결과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부정적인 측에서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에 표현되었던 명암, 음영, 미세한 표현 등이 오염 제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한다.[78]

다니엘, 복원 전후


복원가들은 미켈란젤로가 부온 프레스코 기법만을 사용했다고 확신했다. 즉, 갓 바른 석고 위에만 작업했으며, 각 작업 구역은 석고가 신선한 상태에서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켈란젤로는 아 세코 기법으로 작업하지 않았다고 믿었다.[30]

복원가들은 이러한 가정 하에 복원에도 보편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동물성 풀과 "등 검댕"의 어두운 층, 왁스, 그리고 덧칠된 모든 영역을 일종의 오염으로 간주하여 제거했다. 복원 팀의 화학자들은 천장의 페인트가 스며든 석고까지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용매를 결정했고, 처리 후에는 부온 프레스코로 칠해진 부분만 남게 되었다.[30] 이러한 복원 과정은 미켈란젤로의 원래 의도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6. 현대 문화 속 시스티나 경당

시스티나 경당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교황이 여행 중이 아니라면 교황의 일정에서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 이곳에서 거행된다.

시스티나 경당에는 상설 성가대가 있으며, 이 성가대를 위해 수많은 성가가 작곡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알레그리가 작곡한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Miserere Mei Deus'')》가 있다.

시스티나 경당 천장의 유일한 복제본은 영국 웨스트 서섹스 주 고링 바이 시 잉글리시 순교자 가톨릭 교회(English Martyrs' Catholic Church)에서 게리 베번스(Gary Bevans)가 그렸다.[31] 전체 건물에 대한 실물 크기의 건축 및 사진 복제품은 멕시코 정부가 의뢰했으며 개인 기부자가 자금을 지원했다.[32] 이 복제품은 2016년 6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멕시코 시티에서 전시되었다. 프레스코와 태피스트리의 전체를 복제하는 데 260만 개의 고화질 사진이 사용되었다.[33] 건물을 방문하기 전에 예배당의 역사에 대한 비디오가 방문객에게 상영되며, 건물 내부에서는 빛과 소리를 이용한 시연을 통해 각 프레스코의 내용을 설명한다.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에 있는 오츠카 국제 미술관에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도판으로 원본 크기로 재현한 전시가 있다.

도판에 의한 복제화는 오리지널 작품과는 달리 2000년 이상 그대로의 색과 모습으로 남기 때문에 앞으로의 문화재 기록 보존 방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오리지널 성당 천장화는 최근 열화로 고통받고 있으며, 현재 입장 제한도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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